여름이 지나고 있다. 바닷가에서 먹었던 시원한 물회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회 먹고 나면 말이야, 입안이 노래지더라.” “나는 오줌이 노랗던데?”
물회는 생선과 푸성귀에 고추장 또는 된장을 넣고 비빈 후 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다. 요즘은 맹물을 붓지 않는 식당이 많다. 맛을 더한다고 얼린 육수를 낸다. 그런데 이 육수 재료가 요상하다. 청량음료 맛이 난다. 물회 육수를 내는 비법으로 사이다를 들먹이지만 요즘은 환타나 오란씨 맛이 더 강하다. 색까지 예쁘니 이를 쓸 것이다. 환타나 오란씨 육수의 물회를 먹고 나면 혀와 입안이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든다. 나무젓가락을 쓰면 그 젓가락도 물든다. 요즘 물회는 이 청량음료 육수가 대세다.
이 청량음료 외에 또 하나 요상한 맛을 내는 것이 구연산이다. 구연산은 약간의 산미에 개운한 느낌을 주는 맛으로 최근 슈퍼에서도 파는 건강 드링크류의 주요 성분이다. 고깃집 냉면 육수에서도 이 구연산 맛이 나고, 최근에는 김치에서도 이 맛이 난다.
예전에 일본 김치에서 이 맛을 느껴 속이 거북했는데 요즘 한국 김치가 그렇다. 한국 김치를 세계화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자랑하는 국제식품규격(Codex)의 김치 기준에 구연산 첨가를 허용했다. 당시 일본 측 주장을 받아들여 그렇게 한 것인데, 그때 이미 우리는 한국 김치를 잃었다. 최근 구연산을 첨가해 만든 공장 육수가 크게 번졌다. 구연산 건강 드링크를 먹고 나면 오줌이 노랗게 나오는데, 물회를 먹고 나서 노란 오줌을 보는 황당함을 경험한 이도 있을 것이다. 오줌 냄새도 야릇하다.
물회는 어민의 끼니였다. 막 잡은 생선을 가늘게 채 쳐서 집 안에 항상 있는 된장, 고추장 따위에 버무려 먹는 것이 막회인데, 여름이면 여기에 물을 더해 냉국처럼 훌훌 먹었던 것이 물회다. 여름이면 텃밭에 푸성귀가 많으니 이것저것을 더했을 것이다. 그러니 ‘전통 물회’는 맹물을 붓는 것이 맞다. 이때 생선살에 양념이 잘 스며들어 일정한 맛이 나게 하려면 먼저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고 생선살을 치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묵나물 주무르듯 생선살에 양념을 넣고 충분히 주물러준 다음 맹물을 부으면 먹을 만하다. 가끔 맹물 물회를 내면서 주무르는 과정을 생략하는 식당이 있는데, 그러면 생선살을 물에 헹구어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싱겁고 비린 맛이 된다.
이 맹물의 전통 물회가 아무래도 맛이 조금 허전하니 최근에 물회 육수를 따로 내서 붓는 조리법이 등장한 것이다. 육수를 내려고 갖은 과일과 채소를 넣어 장시간 달이는 수고를 감수하는 식당도 없지 않지만, 청량음료나 구연산 첨가 공장 육수로 간단히 해결하는 식당도 많다. 이렇게 각기 다른 육수를 쓰는 물회는 식당의 노고를 생각해, 또 원가를 감안한 소비자가격을 생각해 구분해서 팔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식당 간판에 육수를 구분하지 않으니 고급과 저급 물회를 동일한 가격에 동일한 음식인 듯 파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음식 프로그램에서 가끔 식당 주인이 비장의 양념법이라며 카메라 뒤에 숨어 무엇인가를 넣는 장면을 연출한다. 내 경험으로는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수십 년 전통의 식당 주방에는 비밀이 없다. 어떤 재료에 어떤 조리법을 쓰는지 다 공개한다.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절대 ‘좋은 무엇’이 아니다. 해외 외식업계 사정에 밝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식당에서 그 음식을 어떻게 조리하는지 비밀이라며 유난을 떠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물회에 청량음료 또는 공장의 구연산 육수나 쓰니 그렇게 비밀스러운 것이다.
올봄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음식점에 별점을 주는 ‘레드 가이드’가 아니라, 한국의 여러 관광지를 소개하는 ‘그린 가이드’로 여기에 실린 음식점들도 덩달아 화제로 떠올랐다. ‘미슐랭 가이드’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판 ‘그린 가이드’에 실린 음식점 중 내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닭 한마리’를 내는 식당이었다. 양푼에 별 양념도 없이 대충 끓여 먹는 서민 음식이 ‘그들’ 목록에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게 뭔 맛이라고…’하는 생각이 있었다. 많은 언론도 이 내용을 흥밋거리로 다루었는데 “미슐랭이 한국의 서민 음식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반응이었다. 예전 마이클 잭슨이 방한했을 때 비빔밥을 먹었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 유사해 보였다. 한국인은 남의 시선에 참 민감하다.
닭 한마리는 동대문시장 골목 음식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이 음식을 내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집도 여기에 있다. 이 식당이 닭 한마리를 처음 냈다는 사실에는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닭 한마리가 누구의 개발품인지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실상은 그냥 닭백숙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닭 한마리라는 이름을 최초로 붙인 곳이 이 식당인 것이다.
닭 한마리는 말 그대로 닭 한 마리를 양푼에 삶아 고기는 양념에 찍어 먹고, 그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 먹은 뒤 먹을 배가 더 남았으면 밥을 넣어 볶거나 죽을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값싸게 술과 끼니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서민 음식이다. 오래전 나는 이 음식 맛에 혹평을 했었다. 그리고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그 식당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그나마 그 집이 낫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 동대문시장 안의 ‘원조’ 집을 취재했는데, 이곳 음식점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대체로 좋은 닭을 써 누린내가 조금 덜하고 질기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굳이 닭 한마리를 먹자면 그 식당에 가라고 추천까지 했었다.
최근에 이 닭 한마리를 먹으러 갔다. 그 골목은 여전했다. 닭 한마리를 내는 식당은 다들 번창하는 듯 보였다. 여름이라 더했을 수도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그 식당은 번듯한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불이 나 건물을 다시 올렸다고 했다. 허름한 시장 골목에는 어쩐지 안 어울려 보였다.
음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회색 양은그릇도, 닭 등짝에 감자를 끼워 넣은 것도 똑같았다. 간장에 고춧가루, 겨자, 식초를 더한 양념이며 그 맛없는 떡볶이도 여전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일본인 관광객이 손님의 절반은 넘어 보였다는 점이다. 단체가 아니라 삼삼오오 찾아온 관광객이었다. 그들은 이 음식에 대해 잘 아는 듯 익어가는 닭을 집게로 잡고 가위로 자르는 일을 능란하게 했다. 고기를 다 먹고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유럽인의 관심을 끌기 전부터 일찌감치 일본인들이 자기네 음식인 양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시장이 일본인의 관광 및 쇼핑 코스가 되면서 닭 한마리도 덩달아 뜬 것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의 어느 유명 연예인이 이 음식을 극찬해 ‘붐’이 일었다는 말도 있다.
일본에 한국 음식과 식당을 소개하는 책을 내는 작가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닭 한마리가 일본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 음식인지 그에게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원초적이잖아요.”
올겨울 미슐랭의 ‘레드 가이드’ 한국판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이 닭 한마리 집이 여기에 실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린 가이드’는 흥미로운 것을 중심으로 소개한 흔적이 보이는데 ‘레드 가이드’는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탁에서 손님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직접 조리하는 음식점을 ‘레드 가이드’에서는 어찌 평가할지 정말 궁금하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정도’라는 한국판만의 별도 평가항목을 하나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
맛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여름배추의 진실 |
한국인은 사계절 배추김치를 먹는다. 겨울이 든다고 김장을 따로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사계절 내내 시장에서 배추를 팔기 때문에 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 배추를 사다 담그면 된다. 아니, 담글 필요도 없다. 공장김치를 사계절 내내 파니 그냥 사먹으면 된다. 홈쇼핑 방송에서 배추김치를 안 파는 날이 없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지. 우리가 배추김치를 이렇게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배추는 원래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채소다. 가을이 들 무렵 씨앗을 뿌려 겨울이 들 무렵 거두는 것이 배추였다. 봄과 겨울에는 ‘봄동’이라는 얼갈이를 겨우 먹을 수 있었고, 여름배추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름에는 고온 탓에 배추가 녹아버렸던 것이다. 여름배추가 시장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70년대였다. 강원도 고랭지가 여름에도 시원하니 그곳에서 배추를 재배해 내놓은 것이다. 그즈음 해남 등 남녘 바닷가에서 겨울배추 재배를 시도해 한겨울과 이른 봄에도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됐다. 또 봄철 하우스에서 재배한 배추가 고랭지 여름배추 나오기 전에 시장에 깔리기도 한다. 30여 년 만에 한국인은 배추 제철을 잊었다. 배추는 사계절 내내 나오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제철 배추가 아니니 풍년과 흉년 기복이 무척 심하다. 특히 여름배추는 고랭지 기상 상황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비가 많이 내리면 여름배추는 녹아내리고 시장에서는 ‘금추’가 됐다고 난리다. “원래 제철이 아니니 여름배추 작황에 연연하지 말고 여름에 많이 나오는 열무를 사다 김치를 담가 먹자”고 하면 “한국인의 식탁에 어찌 배추김치를 빼놓을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계절을 잊은 한국인의 습생이 과연 올바른지를 따져 묻는 슬로푸드 전문가가 없다. 제철 아닌 채소가 진정한 로컬푸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없다. 어느새 한국은 ‘배추김치’ 하면 슬로푸드고 로컬푸드가 되는 묘한 세상이 된 것이다. “재배 기술이 발달해 사계절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하겠지만, 농산물 재배라는 것이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연은 농산물을 재배하는 데 절대적 조건이며, 인간의 기술은 여기에 보조적 구실밖에 하지 못한다. 기술로 농산물 재배 조건에 관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 한계는 결국 반자연적 결과물을 낳는다. 그러면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농민 손해, 소비자 손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고랭지에 있는 밭은 대부분 비탈에 자리한다.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진다. 이 물을 따라 흙이 쓸려 내려가고 유기물도 함께 빠져나간다. 고도가 높은 비탈 밭에 유기물 퇴비를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또 대부분 ‘땅 임자 따로, 재배 농가 따로’여서 땅심을 돋우기 위한 조치도 일어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고랭지에서의 농사는 ‘약탈적’이다. 약탈적 농법으로 땅심이 약해진 밭에서 자라는 배추는 무사마귀병에 잘 걸린다. 뿌리가 썩는 병이다. 고랭지 여름배추에 이 병이 돌았다 하면 끝장난다. 다행히(?) 이 병에 잘 걸리지 않도록 개량한 품종이 있다. CR계라는 배추다. 그런데 이 품종의 배추는 맛이 없다. 배춧잎이 뻣뻣하고 단맛도 없이 매운 내가 난다. 병을 이기자고 맛을 버린 것이다. 최근에 이 CR계 배추가 맛없다고 소문나면서 일반계 배추를 심는 밭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농약을 참 많이 쳐야 한다. 비가 내린다 하면 쳐야 한다. 고랭지 여름배추는 맛없거나 농약투성이인 것이다. 이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소비자 앞에 놓여 있다. 당신은 어떤 배추를 먹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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