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전남 진도

醉月 2011. 9. 25. 12:15

진도의 동석산은 툭툭 불거진 근육질의 힘찬 암봉과 거대한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아찔한 칼날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석산을 오르는 등산객 너머로 간척지의 논과 팽목항 일대의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전남 진도의 동석산 암봉을 딛고 올라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처럼 펼쳐진 능선에 섰습니다. 거기서 굽어본 바다와 간척지의 풍경도 풍경이지만, 암봉이 이루는 뼈대며 굵은 암맥들이 어찌나 힘차고 강렬하던지요. 유독 산이 많은 진도에는 늘어선 봉우리마다 건장한 사내의 팔뚝처럼 힘찬 암릉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진도의 바위 산들이 그려 내는 아찔한 벼랑과 굵은 지맥에서 그 섬이 지닌 ‘남성성’을 봅니다.

어디 산뿐이겠습니까. 진도가 품고 있는 선혈과도 같은 붉은 기운에서도 비장미 감도는 ‘남성’을 목격합니다. 낙조 무렵의 서쪽 하늘은 핏빛으로 붉고, 구릉을 따라 겨울 대파가 심어질 황토밭이 붉고, 구름이 내려온 운림산방 앞의 연못에 심어진 배롱나무가 또 붉습니다. 여기다가 피비린내 나는 삼별초들이 뿌린 선혈이 붉고, 정유재란 때 몰살된 이들의 피도 낭자합니다. 가을의 초입에 남도 땅의 끝에서 섬으로 건너가 그 붉은 자취를 따라나섰습니다. 이웃한 완도가 둥글고 부드러운 것들이 이루는 ‘모성의 땅’이라면, 진도는 정반대의 굵고 단단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부성의 땅’입니다.

낙조의 붉은 기운에 젖어서, 역사의 핏빛에 젖어서 진도에 갑니다. 깊은 상처에도 여전히 강건한 뼈대와 힘줄을 따라 아슬아슬 암릉의 칼날 같은 능선길을 갑니다.

# 동석산의 위태로운 능선을 타고 암릉에 오르다

진도 세방리 일대에서 마주한 낙조. 해가 다 넘어간 뒤의 하늘이 선혈처럼 붉다. 세방리의 낙조는 한 해 중 지금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거기서 누구는 거대한 물고기의 등지느러미를 봤다 했고, 누구는 울부짖는 사자의 형상을 봤다고 했다. 설악의 용아장성을 가져다 놓은 것 같다는 이들도 있었고, 그 자체로 거대한 성곽이라는 이도 있었다. 전남 진도의 동석산. 산 하나가 그대로 하나의 암릉이다. 우뚝 솟은 회백색의 봉우리들은 세워 놓은 칼처럼 날카로운 바위 능선을 거느리고 있다. 거기 서면 누구든 주눅이 들고 오금이 저린다. 높이라야 고작 240m 남짓. 그러나 밑동부터 온통 바위로 이뤄진 섬 속의 산이라 체감고도는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다. 아니, 위태로움이 주는 아찔한 공포와 웅장함이 주는 거대한 위압감으로 치자면 그보다도 훨씬 고도가 높다.

동석산은 진도에서조차 그리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진도의 산이라면 단연 첨찰산과 여귀산이 맨 앞줄에 선다. 1976년 발간된 진도 군지(郡誌)에도 동석산은 이름뿐 심지어 해발 높이조차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그건 오랫동안 동석산이 ‘오를 수 없는 산’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동석산은 험준한 산세 때문에 최근까지도 ‘접근금지’의 아슬아슬한 공간이었다. 지금이야 오름길에 아슬아슬한 바위에 난간을 대거나 밧줄을 매고, 문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박아 접근이 가능하지만, 이전에는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그 산을 오르기란 불가능했다.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에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겨우 발 하나 디딜 칼등 같은 공간을 마치 외줄타기하듯 건너야 했다. 깎아지른 벼랑에서 발 디딜 곳과 오름길을 모두 제가 찾아야 했으니, 외지인들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오래도록 그 산자락 아래 살아온 이들이라 해도 지형에 익숙하고 겁이 없는 한창 때의 동네 젊은이들만 그 산의 암릉에 오를 수 있었다.

진도에서 건장한 사내의 팔뚝에 툭툭 불거진 힘줄 같은, 혹은 단단한 흰 뼈 같은 암릉이 이곳 동석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도의 진산이라는 첨찰산도, 여귀산도, 진도대교를 넘자마자 만나는 금골산도 다 그렇다. 동석산만큼 날카롭거나 우람한 것은 아니지만, 진도의 산들은 죄다 능선 곳곳에 크고 작은 암릉의 이빨을 갖고 있다. 웬만한 섬들은 ‘모성’의 바다에 기대고 있어 ‘여성성’이 두드러지지만, 진도 땅만큼은 ‘남성성’이 드러나 보이는 것도 아마 이런 산세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리라.

# ‘천하 제일의 등산로’에서 내려다보는 장쾌한 조망

진도의 급치산전망대는 외지인들에게는 그닥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언제 찾아가도 호젓하게 낙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동석산 곳곳에는 종(鐘)소리가 깃들어 있다. 동석산은 그 산의 우뚝 솟은 암봉인 종성바위에 북풍이 스치면 종소리가 난다 해서 종을 짓는 구리(銅)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신라의 승려가 중국을 다녀와서 하동 쌍계사로 탑을 세우러 가다 잠깐 이곳에 머물렀는데, 동석산 봉우리들이 일제히 종소리를 토해냈단다. 그때부터 산 아래 골짜기는 종성골이 됐다. 동쪽 직벽 아래 1000개의 종을 뜻하는 ‘천종(千鐘)사’가 있고, 남쪽 능선의 바위 아래에는 ‘종성교회’가 들어선 것도 그래서다.

동석산은 종성교회쪽에서도, 천종사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발가락 끝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아찔함을 맛보겠다면 종성교회를 들머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밧줄에 매달려 거의 수직의 벼랑으로 오르며 칼날 같은 능선을 줄타기 곡예를 하듯 건너야 하는 이 길은 웬만해서는 말리고 싶은 코스다. 거대한 암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종사쪽에서 오르는 코스는 최근에 정비돼 비교적 순하다. 암봉 등반에 익숙지 않다면 이 코스를 택한다. 두 길은 천종사 위쪽에 펼쳐진 종모양의 암봉인 종성바위 부근에서 만나게 된다.

동석산의 매력이라면 힘줄처럼 툭툭 불거진 암봉의 짜릿함과 함께 능선에서 펼쳐지는 장쾌한 조망이다.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동석산과 석적막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내내 어디에서든 고개만 들면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시야가 어찌나 거침이 없던지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들머리의 암릉에서는 봉암저수지와 가을볕에 벼가 익어가는 간척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팽목항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천종사에서 올라와 닿는 중업봉은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의 특급 명소. 동쪽으로는 산으로 둘러싸인 봉암저수지 뒤로 첩첩이 산자락의 능선이, 남쪽으로는 물골을 끼고 있는 너른 간척지가, 동쪽으로는 남해의 푸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이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가야 할 능선들이 마치 물고기 등지느러미처럼 펼쳐져 있다. 마침 연무가 끼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대기가 청명한 날이면 여기서 완도, 보길도, 구자도, 추자도, 우이도는 물론이거니와 흑산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단다.

동석산에서 석적막산을 지나면 등산로는 큰애기봉을 지나 진도의 낙조 명소인 세방낙조전망대로 내려간다. 종성교회에서 출발했다면 4시간30분 남짓, 천종사에서 출발하면 3시간30분쯤 걸린다. 오후 나절 산자락에 올라 낙조 무렵에 맞춰 세방낙조전망대쪽으로 내려선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다. 낙조 무렵에 석적막산에서 내려서도록 시간을 맞춘다면 진도군이 이 산길에다 ‘천하 제일 등산로’라는 이름이 붙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 진도에서 더 붉고 비장하게 지는 해를 만나는 시간

동석산의 종성바위에 올라서 내려다본 봉암저수지의 풍경. 이국적인 느낌의 호수 위로 청명한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떴다.

진도에서 만나는 낙조는 다른 곳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바다로 지는 해야 서쪽에 바다를 두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볼 수 있지만 진도 세방리의 해넘이는 유독 선혈처럼 붉고 비장하다. 이처럼 세방리의 낙조가 유독 아름다운 데는 무슨 연유가 있을 터인데, 그게 설명이 잘 안 된다. 세방리 앞에 점점이 떠 있는 양덕도, 주지도, 장도, 소장도, 당구도, 혈도 같은 섬 때문인 듯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유난히 붉고 처연한 색감을 빚어내는 이곳의 낙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세방리의 낙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라고 정해 준 기상청도 그 아름다움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세방리의 낙조를 ‘세방낙조전망대’라 이름 붙여진 전망대에서 맞이하지만, 굳이 전망대를 찾아갈 것 없이 세방해안일주도로인 801번 지방도로를 따라 지산면 가치리와 가학리 해안도로 어디에서나 감상할 수 있다. 세방낙조는 대기가 맑아지는 9월부터 12월 말까지가 최고의 절정이다. 그러니 지금 진도를 찾아간다면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낙조라면 이글거리는 해가 선명하게 수평선으로 잠기는 모습이 으뜸이라지만, 세방리의 낙조는 해가 구름 뒤로 숨어 버린다 해도 그 맛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 오히려 해가 넘어가는 순간보다는 해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서쪽 하늘과 구름을 갖가지 색으로 물들일 때가 더 황홀하다. 그러니 해가 넘어간 뒤에 관광객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더라도, 자리에 남아서 지고 남은 빛이 어떻게 사그라지는지, 해가 진 뒤에 푸른 어둠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오래도록 바라볼 일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진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세방낙조전망대로 모여드는데, 그런 번잡스러움이 싫다면 여기서 남쪽으로 3~4㎞쯤 더 내려가다가 만나는 급치산의 낙조전망대를 찾아가는 편이 낫겠다. 급치산 정상의 군부대로 향하는 오름길 옆에 만들어진 급치산전망대는 고도가 높아 다도해 경관과 함께 더 크고 장엄한 낙조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세방낙조전망대의 높은 명성에 밀려서인지 찾는 이들이 적다. 호젓하게 낙조전망대의 난간에 기대서서 멀리 발아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과 그 섬 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기울어 가는 해를 받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순간을 마주하면 가슴이 절로 저릿저릿해진다.

# 삼별초의 절망과 외로움, 그리고 처참한 최후

진도가 가진 ‘남성성‘은 그 섬이 딛고 온 역사에도 깃들어 있다. 진도의 역사를 말하자면 대개 정유재란 때 울돌목의 명량대첩으로 대표되는 승전의 기억만을 떠올리지만, 그에 앞서 진도에는 삼별초의 항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있었다. 명량대첩만 해도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조선수군이 벌인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대승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진도는 해전에서 패한 왜군들이 상륙하면서 벌였던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살육극을 감당해야 했다.

진도를 찾았다면 시간의 태엽을 되감아 8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잇단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까지 저항했던 고려. 그러나 원종때 몽골과 화의를 맺고 개경으로 천도하기로 합의했다. 몽골과의 화의는 곧 몽골군에 칼을 들고 맞섰던 무신정권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엇다. 몽골군에 맞서 싸우며 적개심을 갖고 있었던 무신정권 병력인 삼별초는 화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무신과 대립했던 원종은 삼별초의 명단을 몽골에 넘기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넘겨진 명단은 삼별초 소속 군사들의 처참한 살육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에 삼별초는 배중손 장군을 필두로 몽골과의 항쟁에 나섰다. 고려 현종의 8대손인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는 1000척의 배에 삼별초 군사들과 가족 1만2000명이 나누어 타고 이곳 진도로 내려왔다.
전세는 암울했다. 고려의 정통 정부임을 내세웠고 대몽항쟁의 명분과 기치를 들고 저항했지만, 누가 봐도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삼별초는 진도의 남도석성에서, 용장산성에서 패퇴했고 왕으로 추대됐던 왕온은 논수골에서, 배중손 장군은 굴포리 포구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어 제주까지 쫓겨갔던 김통정 장군은 끈질긴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휘하의 병사를 다 잃고는 어승생 서쪽 붉은오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4년 동안의 삼별초 항쟁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

진도의 왕무덤재 부군에는 삼별초 항쟁 당시 죽음을 당했던 왕온의 묘가 쓸쓸히 남아 있고, 삼별초의 주둔지였던 용장산성 터와 남도석성이 남아 있다. 용장산성 터에는 아직도 800여년 전의 기와조각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굴포리 포구에는 근래에 만들어진 배중손 사당도 있다. 당시의 흔적들을 돌아보노라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삼별초의 승산 없는 싸움의 와중에서 빠져들었을 절망과 외로움이 사무친다. 오래된 절망의 전쟁터 느낌은 어쩐지 진도의 저물녘 하늘을 온통 선혈로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색감과 닮아 있었다.


카페 운영하는 화가 박병락 씨

“진도는 섬이지만,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곳입니다. 자연의 기운이 힘찬 곳이지요.”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진도로 들어와 임회면 죽림리의 해안가에서 그림 작업을 하면서 ‘작은 갤러리’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화가 박병락(51)씨는 ‘진도의 진면목을 보려면 산의 형세를 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동석산의 암봉들이 그려 내는 굵은 선들이 바로 진도의 느낌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화가답게 그는 진도를 ‘붉은색의 이미지’라고 했다. 붉은색의 첫째는 단연 낙조다. 그는 “진도의 낙조는 너무 붉어서 불덩어리 속에 해가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붉은색은 황토다. 이즈음 겨울대파를 심기 위해 갈아 놓은 밭이 온통 붉다. 세 번째 붉은 것으로 그는 ‘홍주’를 들었다. 쌀로 빚은 술에 지초를 넣어 붉게 우려낸 홍주는 맛도 맛이지만 우선 그 빛깔부터 사람을 매혹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진도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는 붉은색만 한 게 없다”며 “그래서 이즈음에는 붉은 계통의 색감을 주로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진도의 숨은 명소로 임회면 남동리 남도석성 앞의 작은 포구인 동령개 일대를 꼽았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화려하거나 웅장한 경관이 아니어서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동령개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진도에 왔다면 소리와 그림을 빼놓을 수 없다”고 추천했다.

그는 진도향토문화회관 공연장에서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토요민속여행’ 공연과 금요일 오후 7시에 남도국악원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상설공연을 놓친다면 ‘진도를 다녀갔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토요일 오전 11시에 운림산방 부근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남도예술은행의 토요그림경매도 둘러볼 것을 권했다. 굳이 그림을 구입할 뜻이 없더라도 찾아가서 상설전시실 등을 둘러보면 여행이 훨씬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진도는 흘낏거리며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보기보다는 온몸을 푹 담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게 우람한 암릉이 될 수도 있겠고, 낙조의 붉은빛이 될 수도 있겠고, 소리가 될 수도 있겠고, 한폭의 그림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진도의 매력에 몸을 적시고 돌아간다면 돌아가서도 오래도록 그 향기가 남아 있을 겁니다.”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 목포나들목에서 나와 영산호 하구둑과 영암방조제, 금호방조제를 지나 77번 국도로 갈아타고 우수영을 지나 진도대교를 건넌다. 동석산은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로 진도읍 소재지를 거쳐 임회농협가공공장을 지나자마자 지산 방면으로 우회전, 다시 인지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찾아갈 수 있다. 암봉 등반의 아슬아슬한 매력을 즐기려면 종성교회를, 정비된 등산로를 택하려면 천종사를 찾아가면 된다. 여기서 세방낙조전망대와 급치산낙조전망대는 차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볼거리 & 놀거리

진도를 가겠다면 오는 30일부터 10월2일까지 전남 진도군 녹진관광지와 해남군 우수영관광지 일원에서 열리는 ‘명량대첩축제’기간에 맞춰 가는 편이 좋겠다. 명량대첩축제는 특산물 장터 수준의 다른 축제와는 전혀 다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재현부터 진도와 해남의 750개 마을 주민들이 각 마을의 깃발을 들고 진도대교에 집결해 펼치는 초대형 깃발 퍼레이드 등의 볼거리들이 충실하다. 이 밖에 조선시대 수군체험과 진도대교 위에서의 체험놀이도 재미있고,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난 녹진 메밀꽃밭의 정취도 좋다. 이 밖에 주민들이 펼치는 마당놀이와 강강술래 대회, 유등 띄우기 등의 행사도 마련됐다. 이 중 압권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함대를 격파하는 해전을 재현하는 프로그램. 150여척의 어선들을 당시 조선수군과 왜선함대로 치장하고 1200여명의 해남군민과 해양대생, 스턴트맨들의 퍼포먼스가 실감나게 펼쳐진다. 행사 진행자의 해설이 곁들여지고 갑판 위에서의 전투 장면은 대형 화면으로 생중계된다. 양쪽 해안에는 5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마치 영화를 보듯 감상할 수 있다.

묵을곳 & 먹을것

진도의 금갑리해수욕장 일원에 새로 들어선 팔도한옥펜션(061-544-7316)을 추천할 만하다. 한옥 형태지만 실내는 최신 설비로 꾸며져 있다. 4채의 한옥 동마다 방이 4개씩 있는데 샤워실과 TV, 에어컨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시설은 괜찮은 편이지만, 친절한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진도의 낙조 풍경을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면 세방낙조전망대 부근 지산면 가학리의 ‘낙조펜션’(061-542-3006)이 좋겠다.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조용한 휴식을 원한다면 임회면 죽림리의 ‘자운토방’(061-544-4555)이 제격이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기 직전 왼편으로 ‘임하기사식당’(061-535-3121)은 꼭 들러 봐야 할 맛집이다. 한상에 7000원짜리 밥상을 내는데, 혼자 가더라도 삼겹살구이부터 생선조림까지 총 스무 가지가 넘는 푸짐한 반찬이 펼쳐진다. 진도대교를 건너 우회전하자마자 우측에 있는 ‘진도통나무집’(061-542-6464)은 6000원짜리 간장게장정식을 내놓는데, 게의 크기가 작긴 하지만 짭조름한 맛이 제법이다. 횟집들이야 음식이 그닥 차이가 없지만 세방낙조를 즐긴 뒤 저녁식사를 하겠다면 부근의 ‘다도해관광회센터’(061-543-7227)가 적당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