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05

醉月 2011. 5. 27. 10:14

막걸리 한 잔에 빈대떡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막걸리와 빈대떡

빈대떡은 갓 갈아낸 녹두를 사용해야 향이 제대로 살고, 돼지기름을 써서 지져내야 고소한 맛이 난다. 빈대떡이 맛있는 집은 그래서 귀하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한국에 거주하거나 관광 온 외국인, 특히 일본인을 대상으로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에 대해 묻는 것을 봤다. 대답은 단연 ‘지짐이’ ‘부침개’ ‘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대답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설문에 불만이다. 막걸리에 부침개가 어울린다는 것은 다 안다. ‘막걸리에 어떤 부침개가 어울리는가’를 물어봤어야 했다. 파전, 빈대떡, 김치전, 부추전, 배추전, 동그랑땡, 애호박전, 깻잎전, 가자미전, 육전, 굴전, 고추전, 가지전 가운데 도대체 어떤 부침개가 막걸리에 어울리는 걸까.

 

막걸리 붐을 타고 최근 개업한 선술집은 기본 안주로 부침개를 마련해둔다. 메뉴판 최상단에 있는 것이 ‘모듬전’이다. 그런데 빈대떡이 있는 선술집은 드물다. 옛날에는 막걸리집이라 하면 으레 빈대떡집이었던 사실을 요즘 젊은 세대는 공유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녹두를 갈아야 하고 또 질 좋은 돼지기름을 구해야 하는 일이 귀찮아 그런 것일까.

 

서울 사대문 안에는 유서 깊은 빈대떡집들이 있다.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이다. 그런데 이들 빈대떡집은 오늘날 막걸리 붐과 아무 연관도 없는 듯 보인다. 그곳엔 단골들만 북적인다. 막걸리 붐이라고 빈대떡집에 찾아와 막걸리를 마시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막걸리 붐은 젊은이가 들락거리는 유흥가에나 있는 유행인 것이다.

 

빈대떡집에선 빈대떡이라는 이름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빈대떡을 파는 종로 뒷골목에 빈대가 많아 빈대떡이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빈대떡 어원에 대한 ‘가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빈대(賓待)떡, 즉 귀빈을 접대하는 떡이란 말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억지스럽다. 귀빈을 접대한다는 뜻이 되려면 한자어 구성 원리상 대빈(待賓)떡이라 해야 한다. 후세에 누군가 꾸며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빈자(貧者)떡, 즉 가난한 자의 떡으로 빈자떡이라 하다가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빈자떡이 빈대떡보다 더 흔하게 쓰였는데, 그 빈자가 곧 가난한 자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셋째, 중국음식 이름인 병저(餠)가 빙자→빈자→빈대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문헌자료까지 있어 상당히 신빙성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빈대떡 어원에 대한 주장이고, 최근 이 빈대떡 어원 논쟁에 끼어들 만한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빈대가 녹두라는 주장이다. 한자로 녹두(綠豆)는 ‘푸른 콩’이란 뜻이다. 녹두의 사투리(또는 옛말)에 푸르대가 있다. 사전에도 올라 있는 단어다. 우리 민족은 콩 이름에 ‘-태’라는 접미사를 붙였다. 서리태, 백태, 흑태, 오리알태…. 이를 한자로 ‘-太’라 쓰지만 이 한자는 표기를 위해 빌려온 것일 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콩을 ‘-太’라 하지 않는다. 푸르대의 ‘-대’는 ‘-태’와 같은 것으로 콩을 말한다. 이 푸르대가 풀대→분대→빈대로 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인다(인터넷에 떠도는 ‘가설’인데 아쉽게도 이 ‘가설’을 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는 보통 논쟁거리가 하나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다. 빈대떡 어원 논쟁에 ‘푸르대 어원설’을 보탰으니 막걸리 맛이 더 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막걸리에는 빈대떡이 제일이다.

 

기념품 스테인리스 공기 외국인 시선 왜곡할라

한국인의 밥그릇

서울 인사동 관광상품 가게에서 파는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한반도 지도에 KOREA, 대한민국, 삼천리금수강산까지 써놓았다.

 

2010년 한식 세계화 관련 전시회장에서 희한한 일이 있었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릇에 담겨도 다 어울린다며, 서양의 유명 브랜드 식기에 담아 전시했다. 그 그릇이 서양의 어떤 음식을 담는 데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식탁에 밥이 오르지 않으니, 적어도 밥그릇은 아닐 것이다. 내가 희한하다고 한 이유는 우리 밥그릇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그런 전시를 했기 때문이다.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 인사동에선 한국인의 밥그릇이 관광상품으로 팔린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밥그릇이 대부분이다. 한국인이 ‘공기’라고 부르는 그릇이다. 옛날 여성 밥그릇인 합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합의 단아한 멋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은 한국 식당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 그릇이 관광상품이 된 이유는 외국인의 눈에 한국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보였을까. 디자인이 멋있을까, 아니면 한국 전통미가 물씬 풍긴다고 여기는 것일까. 내 눈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은 저급한 한국 음식문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외국 관광객은 그릇을 사면서 “한국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 별난 민족”이라며 낄낄거렸을 것이다. “한국 가정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을 쓰지 않는다”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 봤는데 무슨 소리!”라고 할 테니 말이다.

 

한국 상차림의 중심에는 밥이 있고, 밥은 밥그릇에 담긴다. 우리 조상은 남성은 운두가 높은 발, 여성은 운두가 낮은 합을 썼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도자기, 유기 밥그릇을 쓰면서 나름 문화적 계통을 유지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우리 밥상에 ‘공기’라는 별종의 그릇이 등장했다. 한자로 공기(空器)라고 쓰는데, 번역하면 ‘빈 그릇’이다. 정부에서 밥그릇을 작게 해 밥을 덜 먹자는 운동을 벌이면서부터 그렇게 국적 불명의 공기가 퍼져 나갔다. 지금 가정집에서는 도자기 공기를 흔히 쓰고, 식당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를 쓴다.

 

가정용 공기는 디자인이 다양한 편이다. 이 디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자기 회사에 전화해봤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도자기 회사가 1970년대 혼수식기세트를 출시하며 서양 그릇에서 본을 많이 따왔고, 그 그릇 가운데 일부가 공기로 쓰였으리라는 정도다. 요즘은 변형이 워낙 많아 도자기 회사도 그 모양의 유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양에는 밥이 없으니 스튜 그릇이 우리 밥그릇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다 보니 한국인은 밥그릇도 잃게 된 것이다.

 

음식도 문화이니, 한국음식을 세계화하면 한국문화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외국 유명 요리사를 데려다 한국음식을 먹이고, 외국에서 한국음식 전시회를 하는 등 여러 행사를 연다. 특급 호텔에 한식당 하나가 리모델링 후 다시 문을 열었다며 들썩이고, 호텔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이벤트도 벌인다.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 음식은 일상 문화라는 점을 한식 세계화 주도자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 특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유명 한정식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관광객은 대중식당에서 보통의 한국인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또 거기서 먹는다. 따라서 대중식당의 음식이 곧 한국음식 세계화의 통로인 것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대중식당에서는 대부분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에 밥을 담아낸다.

 

난 음식 만드는 기계…맛을 바라는 것은 사치다

어느 주방 노동자의 항변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 농어민에게는 감사해도, 주방에서 일한 사람은 잊는다. 맛 타령 전에 살필 일이다.

 

요즘 텔레비전에 요리사가 많이 등장한다. 대체로 멋있게 생긴 젊은 남성으로, 하얀색 조리복을 입고 음식 만드는 모습이 마치 예술가처럼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요리사의 이런 멋진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요즘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요리사가 떠올랐다.

 

내가 아는 요리사의 세계는 텔레비전 속 이미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화면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멋진 주방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최상급 식당에나 있다. 보통의 주방은 최악의 노동 환경이다. 한국의 살인적인 가게 임대료를 이겨내려면 주방 공간을 넉넉히 둘 수 없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불을 피워야 하니, 공기는 덥고 혼탁하다. 바닥은 마를 짬이 없는 물기와 조리도구에서 튄 기름 탓에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조리도구와 음식재료는 언제든지 흉기로 변할 수 있어 부상은 예삿일이다. 한국에는 외식업체가 50여만 곳에 이른다. 이들 주방에서 대부분의 요리사, 아니 주방 노동자가 거친 노동을 한다.

 

나는 주방 사정을 잘 아는 편이지만, 자주 잊기도 한다. 취재하면서 주방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맛있다, 맛없다’고만 말한다. 소비자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고속도로 휴게소의 돈가스와 관련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민영화됐다지만, 음식 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형편없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이 글에 제법 긴 댓글이 붙었다. 주방 노동자의 항변 같은 것이다(맞춤법이 맞지 않아도 그냥 두었다. 글의 양을 줄이고, 읽기 편하게 일부 문장 부호는 손을 봤다).

 

“저 돈까스를 만들기 위해 피와 살을 깎아내면서 하루하루 일하고, 한 달에도 몇 명 혹은 몇십 명이 그만두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왔다가 힘들어서 그냥 간 사람도 부지기수고요. 손님 입장으로 보면 여러 가지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건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D. 말 그대로 힘들고, 몸 상하고, 돈 안 되는 일입니다. 돈까스를 만들기 위해 돈육부터 소스까지, 거기에 손님들 왕창 몰리면 음식 빨리 달라고 난리치는 손님 상대하랴 일 쳐내랴, 말 그대로 죽어납니다. 현재의 근로 환경으로는 손님에게 내주는 음식은 정성이 결여된, 그냥 돈 벌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기계처럼 뽑아낸 음식을 먹는데 ‘맛있다’라고 느끼기 힘들 수도 있단 겁니다.”

그는 이 댓글로도 부족했는지 그 아래에 다시 긴 글을 달았다.

 

“참고로, 미친 듯이 하루 12~14시간 일하면 초봉 150만 원 정도 될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손님에게 어떤 음식을 낼 수 있을까요? 직접 주방 일을 해보지 않고는 모를 겁니다. 전에 없었던 무좀, 습진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바쁠 땐 10~20분 만에 밥을 먹고 조리해야 하고, 잠시도 쉼 없이 2~5시간 동안 음식을 계속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밥 못 먹을 때도 부지기수. 그러면 식당 사장이나 업주가 직원 격려 차원에서 간식이라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주방에 먹을 것 천지라고 알아서 해 먹으라’는 곳도 많습니다. 손님들은 말합니다. ‘음식이 왜 이렇게 맛이 없어?’ ‘돈이 아까워’라고.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하루에 몇백 개 몇천 개를 만들어 파는데 어떻게 맛이 나겠습니까. 미국, 캐나다 등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우가 좋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직업이고, 그 일이 고되고 힘든 걸 알기 때문이죠. 먹는 음식에 장난을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직업을 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나라도….”

그 싸구려 돈가스에 담긴 그들의 노동은 생각지도 않고 맛 타박만 해야 하는 내 직업이 때로는 정말 부끄럽다.

 

식후 커피 한잔 끊기 힘드시죠?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 커피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인 커피가 인스턴트커피에서 원두커피로 바뀌고 있다.

 

민족마다 습관성 음료가 있다. 서양 각국의 커피나 홍차, 남미의 마테, 중국과 일본의 차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음료는 각 민족의 음식문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는 무엇일까. 녹차나 식혜, 아니면 수정과? 이런 음료는 기호로 마시는 전통차다. 습관성 음료란 끼니를 때울 때나, 끼니를 때우고 난 뒤 늘 마시는 음료로 전통차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 숭늉? 글쎄다. 외식업체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면거의 커피가 한민족 습관성 음료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다. 대부분 밥 먹고 나서 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고급 한식당에서는 마무리 음료로 수정과나 매실차를 내지만 식당을 나서면서 자판기 커피를 또 뽑아든다.

 

커피는 조선 말 한반도에 들어왔다. 커피 관련 책을 살펴보면, 이 땅 최초의 커피 중독자는 고종이었다. 고종을 커피 중독자로 만든 사람은 손탁이라는 독일 여성이었다. 당시엔 인스턴트커피가 없었으니 고종도 원두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없었고, 드립하는 방법이 정착된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구에서 커피를 마셨던 방법을 추정해보면, 달임식 커피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원두가루를 작은 냄비 같은 데 넣고 달여서 마셨을 것이다. 커피 원산지나 중동 등지에서는 아직 이런 달임 커피를 마신다. 당시 물류 사정으로 봐서 고종은 신선한 원두커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손탁에게 로스터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데, 가마솥에 원두를 볶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종은 오래된 원두로, 그것도 적절하게 가공하지 못한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그 커피는 향도 없었을 테고, 쓰디쓰기만 했으리라. 왕국의 종말을 맞이하는 고종에게는 그 쓰디쓴, 소태 같은 커피가 딱 맞는 음료였을 수도 있다. 하긴 어떤 음식이 그의 입에 달았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커피는 모던한 지식인의 감상적 허영을 채우는 음료였다. 토속적 서정을 소설에 담은 이효석조차 낙엽을 태우면서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색하는 것이 그 시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땅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6·25전쟁 때다. 미군 피엑스에서 몰래 빼돌린 인스턴트커피는 보따리 아줌마의 손에 의해 가정집으로 번져나갔다. 찻잔이 없어 사발에 커피를 탄 뒤 숭늉 마시듯 하면서도 이를 멋으로 여겼다. 1970년 동서식품이 한국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했다. 이 인스턴트커피에 같이 타 마시는 가짜 크림인 프림도 나왔다. 1980년대에는 스틱포장의 일회용 커피가 출시됐다. 곧 한국은 인스턴트커피만 있고 원두커피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가 됐다.

 

한국의 인스턴트커피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스턴트커피는 설탕과 프림을 넣어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커피 향이 거의 없는 흐리멍덩한 인스턴트커피가 한국에 크게 번진 까닭은 커피의 쓴맛과 신맛을 없애고 달고 구수한 맛을 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커피가 모습을 바꾸고 있다. 원두커피가 빠른 속도로 인스턴트커피를 대체하는 것이다. 1998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질 떨어지는 커피에 뉴요커적 삶을 담아 비싸게 파는 업체로 욕을 먹지만, 한국의 커피시장을 바꾸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스타벅스 이후 수많은 원두커피 전문점이 생겼으며, 커피가 단지 쓴맛만 나는 음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인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한국인은 우리의 음식문화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부심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한민족 고유의 것보다 이미 세계화한 음식문화를 즐기는 일이 더 많다. 음식문화는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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