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의 명풍경을 찾아서_언양 작천정 벚꽃

醉月 2011. 5. 20. 09:11

꽃보라 흩날리는 興趣의 자리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아름다움


 


거무튀튀한 고목 가지 끝에 연분홍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벚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른 가지에 꽃망울을 매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만개하여 꽃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경남 울주군 언양읍의 작천정(酌川亭)으로 들어가는 길가는 이미 거목의 풍모를 띠고 있는 벚나무 가지에 그 검은 둥치에 대비되는 화사한 연분홍색 꽃이파리들로 장관이다. 매화가 뜰에서 겨울의 마감을 가만히 알렸다면 만개한 벚꽃은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길가에서 요란하게 알리고 있었다.

꽃 그늘 사이로 푸른 봄 하늘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살갗을 간질이는 따뜻한 햇살을 오랜만에 느껴본다. 봄이 되었다. 나는 감격스런 봄의 도래를 작천정 어귀에서 맞고 있었다. 4월 첫 주 토요일이다.

벚꽃의 미학-산화(散花)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고목의 굵은 가지 끝에 꽃이 자잘하게 달려 있다. 그 아래를 천천히 걸었다. 터질 듯한 붉은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가지도 있다. 벚꽃을 기다리는 조바심을 일으키게 하는 때가 붉은 색 꽃망울을 매달고 있을 때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따사로운 봄기운이 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정도라면 이 꽃망울들은 내일이나 모레면 일제히 꽃잎 다섯 장을 활짝 열어 보일 것이다.

벚꽃은 반가운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치듯이 한꺼번에 개화하여 마른 가지로 서 있던 겨울나무를 일순간에 꽃 천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매화나 복사꽃은 한 그루가 뜰에서 꽃을 피우고 있어도 그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또 꽃 색을 충분히 완상할 만하다. 하지만 벚나무는 무더기로 모여 그것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어야 아름답다. 언론인 문일평도 ‘도리행화(桃李杏花)에도 못 미치는 것이 벚꽃이지만 그것이 한 무더기로 모여 피어 있을 때에는 장관’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핀 꽃은 일 주일 정도 지나면 솜털 같은 봄바람에 실려 미련 없이 훌훌 날아가 버린다. 기껏 일주일 정도 피어 있는 것이 벚꽃이다. 봄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피었다가는 사라지는 꽃이다.

 
나무를 온통 뒤덮듯이 만개한 꽃이 한꺼번에 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소담스레 핀 꽃이 목이 꺾인 듯이 꽃덩이가 뚝뚝 땅에 떨어져서 핏빛의 꽃이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동백꽃의 섬쩍지근한 모습도 아니고, 이른 봄날 뜰에서 풍성하게 피었다가 한 잎 두 잎 땅으로 떨어져 까맣게 시들어 가는 목련꽃처럼 처절한 모습도 아니다.

그저 바람이 가녀린 이파리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이내 자기 몸을 붙들고 있는 꽃자루를 떨치고 다섯 이파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와 바람을 타고 훌훌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이렇게 꽃보라의 풍경으로 스러지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산화(散花)라는 것은 바로 이런 벚꽃의 낙화를 두고 한 말일 터이다.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바로 이런 산화의 순간이다.

사람들과 어우러진 풍경

꽃이파리를 솜털같이 부드러운 봄바람이 건드린다. 길가에는 벚꽃구경 나온 사람들을 맞으려는 먹거리 가게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들어서 있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가게는 이미 백열전등을 켜놓았다. 전등에 반사된 꽃이파리가 진열된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나는 그 꽃 아래를 천천히 걸었다.

꽃길에는 어느 샌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호객의 목소리가 흐벅지게 핀 꽃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걷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신나는 아이들, 오랜만에 만나는 이를 손짓하며 반기는 사람.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성이 키 높이 자란 벚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꽃송이 사이를 빠져 나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나는 벚꽃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출하는 이런 풍경이 좋다.

물론 찻길을 가득 메운 길가의 벚꽃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하동에서 구례로 달리는 섬진강의 벚꽃길이나, 쌍계사로 들어가는 계곡에 붙어 있는 꽃길도 벚꽃의 명풍경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섬진강과 쌍계계곡을 내려다보면서 끝간데없이 이어지는 꽃지붕 길을 질주하는 체험은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굽이진 길 끝에는 마치 꽃이 벽처럼 막아서 있는 듯하지만, 그 굽이에 다가서면 다시 훤히 열린 꽃길이 저 멀리로 이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이 풍경 체험은 어떤 숭고한 존재가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밀한 곳으로 이끄는 듯하여 마음을 사뭇 경건하게 한다.

특히 어두움이 사위를 에워싸는 밤이 되면 낮에 본 모습과는 달리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자동차 불빛 탓에 발그레 홍조를 띤다. 그 길을 지날 때는 마치 요염하게 줄지어 서 있는 밤거리의 여인들 사이를 지나는 듯하여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도로변에 서서 여행객의 눈길에 스쳐 지나치는 벚꽃보다는 저자처럼 사람들로 가득 찬 시끌벅적한 마당 여기저기에서 키가 쭉쭉 자란 벚나무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머리 위를 새하얗게 뒤덮고 있는 벚꽃이 더 좋다. 정확하게는 사람들과 벚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풍경이 좋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름다운 벚꽃과 풍경 체험의 공유

꽃 그늘 아래를 거닐다가 가게에서 마련한 자리에 들어가 술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꽃 대궐 속에 들어가 오래된 손님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얼른 지져내온 더운 음식을 한 점 먹는다.

음식 행위는 그곳의 풍경체험을 인상깊게 한다. 봄에 푸른 풀을 밟는 답청(踏靑)이나, 냇가나 언덕에서 천렵(川獵)하거나 밥을 지어먹는 화류(花柳) 역시 시각적인 봄 풍경을 음식을 통하여 육화하는 행위다.

진달래꽃으로 만든 화전(花煎), 녹두 국수에 꿀물을 띄운 수면(水麵), 녹두가루를 익혀 가늘게 썰어서 오미자 국에 띄워 꿀과 잣을 넣은 화면(花麵)이 서울 지방의 화류에서 맛보는 단골 메뉴다. 세시 행사에는 그 고장 산하에서 제철에 나는 먹거리 재료로 만든 제철음식을 시식하는 것이 약속이다.

그런데 그런 풍류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계절과 장소와는 무관하게 언제 어디에서나 꼭 같은 음식을 내놓는 요즈음의 축제판은 실망이다. 나는 작천정의 벚꽃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벚꽃과 썩 잘 어울리는 음식이 없는 것이 아쉽다.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어두운 하늘 탓인지 불빛에 반사된 흰 꽃잎이 한층 더 화사해 보였다. 그런 꽃들 아래에 마련된 좌석을 둘러싸고 술을 한 잔 들이키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도 조명을 받아 무척이나 싱그러워 보였다. 나들이에 걸맞은 성장을 하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한껏 즐겁게 담소하는 사람들과 좌중으로 낮게 처진 벚꽃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적당히 어두워진 야음 속에서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누군가도 그런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이 보고 보여지는 이런 연극적 체험으로 풍경을 교감한다. 밤벚꽃놀이의 재미다.

벚꽃 풍경이 인상적인 것은 짧은 순간 일제히 피었다가 산산히 지는 꽃에 그 원인을 돌릴 수 있지만, 실은 그것보다는 벚꽃을 핑계로 다가온 봄 풍경을 사람들과 함께 맛보는 데 있다. 일본의 풍경학자 나카무라 요시오(中村良夫)도 ‘풍경이란 고립한 마음에 비추이는 것이 아니라 좌중의 흥취로서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풍경이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할 때 그 체험이 증폭된다는 말이다. 답청이니 화류니 하는 세시행사가 특별히 인상적인 것도 봄 풍경을 집단체험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구경을 위해서 일부러 사람 많은 곳으로 모여드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쌍계계곡이나 섬진강의 벚꽃길 보다 작천정 들목의 벚꽃길을 더 좋아하는 것도 그곳이 사람들과 함께 소리내어 얘기하고 술을 한 잔 들이키며 만개한 꽃가지를 그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이기 때문이다.

슬쩍 바람이 불었다. 일찍 핀 꽃 이파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분분 난분분. 작은 흰나비가 날아다니듯이 꽃보라가 향연의 좌중 위를 난무하고 있었다. 나는 봄 속에 있었다.

ㆍ기고자: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