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04

醉月 2011. 5. 5. 11:44
발효 숙성의 예술 돼지 뒷다리 맞아?

지리산 흑돈 생햄

지리산 흑돈의 뒷다리로 만든 생햄이다. 세계 명품에 들 만한 맛을 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일 것이다. 지글지글 기름이 녹아내리는 돼지고기를 가위로 뚝뚝 잘라 상추에 받쳐 된장 바르고 마늘, 풋고추 더해 입 안에 밀어넣는 그 맛이란! 그런데 이 유별난 삼겹살 사랑 때문에 양돈업에 문제가 생겼다. 돼지고기 중 삼겹살을 뺀 다른 부위는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뒷다리는 처치 곤란이다.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결국 소비자 주머니를 터는 일이 됐다. 남아도는 뒷다리의 가격까지 삼겹살에 전가돼 비싼 삼겹살을 먹게 된 것이다.

 

돼지 뒷다리가 특히 남아도는 것은 이 부위를 굽거나 삶으면 퍽퍽하기 때문이다. 족발로도 인기가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뒷다리를 일정하게 가공하면 돼지고기 가공품 중 최고의 상품이 된다. 하몽(스페인식 생햄), 프로슈토(이탈리아식 생햄) 등으로 부르는 생햄이다. 뒷다리를 익히지 않고 소금에 절여 1년 이상 발효시킨 햄이다.

 

국내 양돈업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돼지 뒷다리의 처분을 위해, 또 싼 가격의 이 뒷다리로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생햄 개발을 시도했다. 축산 기술을 개발하는 공공기관에서도 하몽 또는 프로슈토 레시피를 연구해 양돈 농가에 보급했다. 그래서 식품박람회 등에 ‘한국식 하몽’ ‘한국의 프로슈토’를 내세운 생햄이 종종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필자도 그 덕에 한국의 생햄을 두루 맛보았다. 그러나 그 맛에는 크게 실망했다. 소비자들도 내 입맛과 비슷했는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판매되는 한국의 생햄은 현재 없는 실정이다.

 

최근 취재를 위해 지리산에 갔다가 저녁 자리에서 지리산 흑돈 생햄 제조자를 만났다. 남원군 일대 인월, 산내, 운봉, 아영 등 지리산 고지대에는 흑돼지를 키우는 농가가 여럿 있다. 이 흑돼지는 흔히 토종이라 불리는 ‘잡종 버크셔’가 아니다. 외국에서 순종 버크셔를 들여와 지리산 자연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게 개량한 돼지다. 이 흑돼지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클러스터 사업단도 조직돼 있다. 지리산 흑돈 삼겹살을 맛본 적이 있어 그 고기 맛은 인정하지만 생햄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이때까지의 한국 생햄을 먹어본 경험으로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생햄 제조자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하몽이니 프로슈토니 하는 서양의 것을 좇을 이유가 있느냐. 그들의 것은 이미 세계 명품 반열에 올랐다. 우리 생햄 맛이 웬만큼 괜찮아 판매대에 깔린다 해도 그 옆에는 세계 명품들이 놓일 것이고, 그러면 경쟁이 안 될 것이다. 우리 전통에 생햄 비슷한 제조법이 있다. 납육(臘肉)이라는 것이다. ‘증보산림경제’에 실려 있다.”

 

스마트폰에서 내 블로그를 뒤져 예전에 정리해뒀던 납육 제조법을 읽어주었다.

“싱싱한 돼지고기를 덩어리째로 말린다(밀 삶은 물에 데친다). 한 근에 소금 한 냥으로 비벼서 항아리에 넣고 2~3일에 한 번씩 뒤집는다….”

다음 날 오후 지리산 흑돈 생햄 제조공장을 방문했다. 돼지 뒷다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진을 대충 찍고 시식을 하는데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먹었던 생햄과는 차원이 달랐다. 짠맛이 적당히 죽어 있고 돼지고기의 고소한 육향이 스멀스멀 올라와 길게 남았다. 투명한 기름의 맛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 이탈리아 요리사 박찬일 씨에게 전화를 하고 샘플을 보냈다. 며칠 후 그가 보낸 답장은 ‘산다니엘레보다 맛있고 색도 좋음. 대박 예감’이었다.

 

한우 고기가 수입 쇠고기보다 맛있는 것은 한우 품종 덕이다. 돼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외국에서 버크셔는 맛있고 귀한 품종의 돼지에 든다. 돼지가 다르니 생햄의 맛도 다른 것이다. 발효 기술이야 ‘증보산림경제’를 기대지 않아도 우리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와 우리 몸에 밴 것일 터이고.

 

 

고기에 싸먹는 산마늘 원산지를 아십니까?

산마늘

갓 새순을 올리고 있는 산마늘. 4월이 제철이다.

 

우리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려고 동굴에서 삼칠일 동안 먹은 것이 쑥과 마늘이라고 배웠다. ‘삼국유사’에서 마늘에 해당하는 한자는 산(蒜)이다. 산은 달래, 파, 마늘, 부추 등을 이른다. 그러니 굳이 마늘이라 번역하지 않아도 된다. 대체로 조선시대까지 마늘은 산이라기보다 호(葫)라 했다. 따라서 산은 마늘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달래나 산파, 산부추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근래 단군신화의 그 산을 산마늘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생겼다. 산마늘이 유행하면서 나온 말이다. 뒤에 ‘-마늘’이 턱하니 붙어 있고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니 단군신화의 그 식물이라 주장할 만하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한글로 ‘마늘’이라 쓰여 있는 것이 아니며, 산마늘이 일상에서 흔히 먹었던 식물도 아니니 단군신화의 그 음식이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요즘 산마늘장아찌를 내는 고깃집이 많다. 마늘 향이 흐릿하게 나고 약간 새콤달콤하게 절인 것이라 고기구이와 잘 어울린다. 산마늘 넓이도 고기를 싸기에 딱 맞아 무엇이든 쌈 싸먹기 좋아하는 한국인에게는 그만이다. 고깃집에서 산마늘장아찌 붐이 일면서 물량이 크게 달린다. 산마늘 최대 자생지 울릉도에서는 산마늘장아찌를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사정이 이러니 남획의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산마늘은 씨앗 발아 후 4년 정도 돼야 잎사귀가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때면 잎이 두 장 나오고, 이 중 한 장을 따 먹는다. 두 장을 다 따면 죽는다. 욕심을 부리면 자생 산마늘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산마늘장아찌는 잎사귀가 지나치게 크다. 양을 늘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웃자란 산마늘은 맛이 좋지 않다. 향이 약하고 억세 ‘이걸 왜 먹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마늘은 웃자라면 독성이 있다는 말이 있으니 안전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최근엔 중국산 산마늘이 수입된다. 몇 년 전부터 외식업체 사이에 산마늘 확보경쟁이 붙었는데 누군가 재빠르게 중국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장사란 그런 거다. 유행이 일어날 때 물건을 싸게 다량 확보하는 사람이 돈을 벌게 돼 있고, 그 논리에 따라 중국산 산마늘장아찌가 널리 퍼지는 것이다. 원산지 표시 대상도 아니니 식당에서도 싼값에 쓸 수 있어 이득이다.

 

일본에서도 산마늘을 먹는다. 잎을 먹는 우리와는 달리 어린 싹이 올라올 때 줄기째 캐서 요리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일본 산마늘 줄기의 굵기는 적어도 4~5년생은 돼 보인다. 자연산이 아니라 재배한 것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먹는 것이다.

 

경기 양평엔 산마늘 농장이 있다. 서울에서 강원도 가는 6번 국도에 ‘산마늘밥’ 간판이 걸려 있는데, 그 식당 뒤 공간이 산마늘 농장이다. 이 농장에서 산마늘을 재배한 지는 15년이 넘는다. 울릉도에서 모종을 가져와 조금씩 넓힌 것이다. 산마늘은 땅속줄기로도 번식을 하는데 한 포기, 한 포기 정성껏 분을 갈라 심어 이제는 농장 안이 온통 산마늘이다. 산마늘은 자생종이라 병충해가 거의 없어 재배 환경만 적절히 조성해주면 잘 자란다. 몇 년을 꾸준히 관리하면 해마다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채소다.

 

봄이 돼 여기저기서 산나물이 나온다. 대부분 재배를 한 것이다. 산에 자생하는 것은 남획으로 그 양이 점점 줄어 현지에 가도 구하기 힘들다. 나 하나 욕심 조금 부리면 어때 하는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올봄 울릉도 산마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해서 정보를 찾아보다 ‘울릉도’ 이름을 건 업체가 중국산을 취급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어렵게 찾아간 울릉도에서 자칫 중국산 산마늘을 먹고 올 수도 있다.

 

 

고소하고 쫀득쫀득 내 어린 시절 어묵 돌리도

어묵의 배반

 

부산 자갈치시장의 즉석 어묵이다. 생선이며 기름이 옛날의 그것이 아니다.

 

필자는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걸음마 배우고 나서부터(내 기억은 그렇다) 어머니가 시장에 가면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명절 전 대목장을 보실 때면 미아가 될 수 있다며 나를 떼어놓으려고 하셨지만 그때도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시장에서 맛난 거 하나를 얻어먹기 위해서였는데, 그중 하나가 어묵이었다.

 

그 시절 마산 어시장 어묵 공장은 제조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맨바닥에 조기와 갈치 새끼 같은 잡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벨트를 돌리는 원동기가 있었고, 벨트는 돌로 된 절구인지 맷돌인지를 돌렸다. 인부들이 삽으로 생선을 집어넣으면 꾸물꾸물 생선살이 갈려서 나왔다. 생선을 씻은 것도 아니고 내장이나 머리를 뗀 것도 아니었다. 막 잡아 그물에서 떼어낸 싱싱한 생선 새끼들이 그 자리에서 갈렸다. 갈린 생선살을 삽으로 다시 치댔는데, 그때 어떤 첨가물이 들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선살은 기름 솥 뒤로 운반됐고, 그곳에는 네모 틀에 생선살을 집어넣어 모양을 잡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양이 잡힌 생선살은 곧바로 기름 솥에 던져졌다. 힘없이 축축 처지는 생선살이 기름 안에서 차르르 소리를 내면서 익어 떠오르면 쫄깃한 어묵이 됐다.

 

어머니는 반찬으로 어묵을 사든 안 사든 내 손에 이걸 하나씩 들려주었다. 거무스레한 색깔에 식감은 거칠었다. 생선 내장까지 갈려 들어갔으니 색깔이 검은 것이고, 뼈와 머리까지 들어갔으니 뼈 조각이 씹혔던 것이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입 안에 가득 찼다. 지금의 식물성 기름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아주 짙은 고소함이었다.

 

부산의 한 어묵 공장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내 추억 속에 있는 그 어묵 기름 냄새의 근원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4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어묵 제조 기술자를 만났다. 그는 그때의 기름은 생선 기름이라 말해주었다. 기름을 낼 수 있는 생선은 고등어, 멸치, 삼치, 전갱이 등인데 당시 남해에서 전갱이가 많이 잡혔으니 전갱이 기름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어묵은 싱싱한 생선살을 생선 기름으로 튀긴 것이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어묵의 향과 맛은 오롯이 생선에서 유래했던 것이다.

 

요즘의 어묵 재료는 연육이라는 것을 쓴다. 연육은 생선살을 발라 으깨 가공한 것이다. 원양에서 잡은 생선을 배 또는 육지의 공장에서 연육으로 만들어 냉동 상태로 수입한다. 명태나 도미 같은 하얀 생선살을 주로 사용해 어묵 색깔이 하얗다. 여기에 찰기와 양을 더하기 위해 밀가루 등을 배합한다. 이 밀가루 등의 함량에 따라 어묵의 맛이 달라진다. 어묵을 끓였을 때 두세 배 부풀어 오르는 것은 밀가루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선의 살은 그렇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시중의 어묵은 두 종류다. 대형 공장에서 내는 어묵과 시장의 즉석 어묵. 이 둘의 원료 차이는 없다. 수입 냉동 연육을 쓰는 것도 같고 튀기는 기름도 비슷할 것이다. 밀가루 등의 배합 비율이 다를 수는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대형 공장의 어묵은 포장해 냉장 유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생선살의 조직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요즘에도 시장에 가면 즉석 어묵 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춘다. 어렸을 때 어묵 맛을 추억하고 싶은 것이다. 그 욕심에 으레 어묵 한 봉지를 사지만 집에 와서는 냉장고에 처박아두게 된다. 아무리 기준을 낮추어도 그 옛날 맛이 아니다. 근대화 이후 한국의 식품산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내 입맛을 기준으로 보자면 후퇴한 것이다.

 

 

기름기가 좔좔 흘러야 최고의 쇠고기인가

쇠고기 마블링의 신화

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한우고기. 쇠고기 맛을 제대로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이 지방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사람들은 쇠고기에 마블링이 있어야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블링이란 지방이 촘촘히 박힌 ‘쇠고기의 때깔이 대리석 문양 같다’ 해서 생긴 말이다. 지방이 촘촘히 박힌 정도를 가리키는 공식 단어는 근내지방도다. 이 근내지방도가 좋으면 등급을 높게 받는다(물론 육색, 지방색 등의 기준도 적용되지만 근내지방도가 가장 중요하다). 1++가 제일 높고 1+가 그 아래 등급이며 1, 2, 3… 으로 이어진다. 요즘 축산 농가는 이 등급 기준에 맞춰 사육 기술을 발달시켜 1 이하 쇠고기는 거의 없다. 사실 1등급이 ‘보통 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고깃집에 가면 1등급 이하 쇠고기를 판다는 데는 없다. 기름이 박혀 있는 고기밖에 없다는 말이다.

 

마블링을 중심으로 쇠고기에 등급을 매기게 된 것은 1992년 도체등급제 시행부터다. 1980년대만 해도 쇠고기 마블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블링이 좋은 쇠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세계인의 일반적 기준도 아니다. 일본인이 마블링 쇠고기를 특히 선호한다. 어떤 음식이든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쇠고기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을 따라 생긴 것이 ‘마블링 쇠고기 신화’다.

일본인이 쇠고기를 먹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교 영향으로 오랜 기간 소를 잡아먹지 못하다가 메이지시대에 와서야 그 금기를 없앴다. 어찌 보면 그들은 쇠고기 맛을 잘 모르는 것이다. 쇠고기를 먹은 지 오래된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마블링 쇠고기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본만의 독특한 쇠고기 식용 습성을 한국이 이어받은 것인데, 이는 한국 축산 관련 종사자가 일본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앞선 축산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좋았지만 그들의 특별난 기호까지 배워올 것은 아니었다. 심하게 말하면, 입맛의 식민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도체등급제 실시 이후 한우는 온통 지방질 범벅 쇠고기가 됐다.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야 높은 등급이 나오고 그래야 소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축산 기술은 ‘어떻게 하면 지방질을 올릴까’ 하는 데만 집중됐다. 사정이 이러니 고기 맛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1++ 등급 등심을 구우면 기름 맛만 날 뿐, 고기 맛이 맹탕인 것이 수두룩하다. 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고기를 먹는 건지 기름을 먹는 건지 모를 일이 됐다.

 

도체등급제 실시 이후 소비자의 쇠고기에 대한 미각도 크게 왜곡됐다. 쇠고기를 오직 기름 맛으로 먹는 것이다. 인기가 있다는 몇몇 고깃집에 가보면 가관이다. 테이블에는 가운데가 움푹한 무쇠 솥 모양의 불판이 올려져 있다. 여기에 쇠고기를 굽기 전 기름덩이 하나를 올려놓는다. 불판에 쇠고기가 붙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기름 향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콩팥 옆에 있는 두태라는 기름덩이인데, 무척 고소한 맛을 낸다. 이 두태가 녹으면 쇠고기를 굽는다. 쇠고기에서도 기름이 나오면서 무쇠 솥 모양의 불판은 기름으로 꽉 찬다. 쇠고기를 쇠기름에 튀긴다고 해야 맞을 정도다. 쇠고기를 쇠고기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기름 맛으로 먹는 것이다.

 

가끔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수입 쇠고기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일이 있는데, 스테이크를 칼로 썰면 붉은 살코기만 보이고 기름은 안 보인다. 그 촉촉한 살코기를 입 안에 넣어 쇠고기의 깊은 육향을 느끼기도 한다. 그 순간 기름 범벅의 한우고기를 한번 떠올려보자. 어떤 게 진짜 쇠고기 맛일까.

 

 

하얀 쌀밥에 가자미찜 봄날 별미가 꽃보다 좋다

착한 가자미

 

봄날 동해 포구에는 가자미가 여기저기 널린다. 해정한 모래톱에서 욕심 없이 착하게 자라 살이 하얀 가자미가 요즘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을 것이다.

 

선우사(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란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괏은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선우사(膳友辭) :‘반찬 친구에게 바치는 글’이란 뜻.

나조반 : 소반의 하나로 전남 나주에서 제조한 소반.

해정한 : 맑고 깨끗한.

세괏은 :‘억센’의 평안북도 사투리.

 

백석이 1937년 발표한 시다. 함경남도 함흥에 있을 때 지었다. 함흥 바다면 동해고, 그 바다에서는 가자미가 많이 잡힌다. 가자미는 사계절 있지만 봄에 더 많이 잡힌다. 속초, 고성 등의 포구에 가면 작은 배가 바로 앞 바다에서 가자미를 잡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가자미는 그물로도, 낚시로도 잡는다.

 

동해에는 참가자미, 물가자미, 용가자미가 주로 산다. 참가자미는 배 바닥에 노란색이 묻어 있다. 참가자미는 살이 차져 잘게 썰어 회로 먹는다. 물가자미는 회로도 먹지만 뼈가 연해 식해로 담근다. 용가자미는 몸집이 조금 큰데, 말려서 굽거나 쪄 먹는다.

 

백석이 먹은 ‘반찬 친구’ 가자미는 욕심이 없어 살이 희고, 착해서 억센 가시가 없다. 파리할 정도로 정갈하다. 붉은 고춧가루 범벅인 가자미식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진 않았을 것이다. 파리하게 정갈할 수 있으려면 불에 구운 가자미도 아닐 것이다. 짐작할 수 있는 음식은 말린 가자미를 찐 반찬이다. 바닷바람에 곱게 말린 가자미를 가마솥 채반에 올려 쪘을 것이다.

 

흰밥과 가자미로 차린 저녁상이고, 이를 나와서 받았으니 따스한 날일 것 같다. 쓸쓸한 저녁이라 했지만 그런 쓸쓸함은 ‘흰밥과 가자미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며 백석은 스스로를 위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