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한의학의 원류를 찾아서_02

醉月 2012. 6. 22. 06:43

편작

고대 명의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들은 현대인의 고정관념으로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조의 뇌 속 종양을 볼 수 있었던 화타의 투시 능력이었고, 오늘 이야기할 편작 또한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내경을 필두로 한 동양 의학의 정수는 심신을 수련해 선인과 진인이 되는 도가 사상에 담겨 있다. 의학은 이 과정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도가 수련에서는 천목(天目)을 비롯한 투시 능력에 대한 언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도가 수련은 사부가 제자 한 사람을 찾아서 자신의 정수를 전해주었다. 일종의 도제식 수련이라 할 수 있으며, 제자를 선별하는 기준은 심성이 바르고 인내심이 강해야 했다. 


편작이 투시 능력을 가지게 된 일화에서도 편작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사기에는 편작이 스승인 장상군(長桑君)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은 발해군 사람으로 성은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었을 때 여인숙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당시 투숙객 중에 기품이 범상치 않은 노인이 있었는데, 편작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고 존경하며 성심껏 그를 대했다. 편작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 노인을 공경했으며 어떠한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 노인은 편작을 십년 넘게 관찰했고, 편작의 본성이 순진하고 자비로우며 선량할 뿐만 아니라 참을성이 강해서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편작에게 자신의 탁월한 의술을 전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노인은 편작이 똑똑하다거나, 돈이 많아서 제자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하다보니 과거에 명의로 이름을 떨친 의사들은 재물을 탐하거나, 환자를 속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노인은 편작을 불러서 “내게 한 가지 비방이 있는데, 내가 지금 나이가 너무 많아 이것을 너에게 전수해 줄테니,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거절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다. 편작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노인은 품에서 책 한권과 몇 가지 약을 꺼내 편작에게 건넸다.


노인은 “이 약을 가지고 ‘상지(上池)의 물’ 즉 땅에 떨어지지 않은 빗물로 30일간 마시면 많은 일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편작은 노인이 말한 대로 30일간 상지의 물로 약을 마셨다. 30일 후 갑자기 편작은 벽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됐다. 이후 몸속의 오장육부도 볼 수 있었고, 오장육부가 어떻게 병들었는지 볼 수 있게 됐다. 진단에 필요한 능력을 얻은 편작은 노인이 준 책을 공부해 치료의 바탕으로 삼았다. 이에 편작은 병의 원인을 보는 즉시 알아냈고 효과적으로 치료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편작의 진단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보급할 수 없는 것이었다. 편작은 사리사욕이 없기에 투시 능력을 사람을 치료하는 것 외에는 사사롭게 사용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욕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도가에서 제자를 고를 때 몇몇 제자만 뽑고, 진정한 전수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편작이 남긴 것은 진맥하는 방법과 이론을 다룬 난경(難經)이라는 책이다. 일설에는 저자가 편작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재로는 편작이 난경의 저자라는 것이 정설이다. 편작은 난경에서 기색(氣色)을 관찰하는 방법을 서술했다. 오장육부의 상태가 얼굴 등 형상에 반영되고, 이러한 기색을 관찰하는 방법을 통해 병의 원인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사실 얼굴, 손, 머리카락, 피부, 혈관의 겉으로 드러나는 상태는 모두 내장의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망진(望診)이라 하며 진단의 첫 번째 단계라고 본다.


난경은 1난에서 61난까지 있는데 주로 어떻게 진맥하는가에 대해 다뤘다. 난(難)은 난제 혹은 중요한 항목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편작은 역대 명의가 그러했듯이 따로 전문 분야를 두지 않았다. 어디에 가서 어떤 질환이 있으면 치료했다, 예를 들어 편작이 한단을 지날 때, 한단 지역은 부녀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부인과 질환을 치료할 때 더욱 주의를 기울였고 유명한 대하의로 이름을 날렸다. 대하는 냉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하의는 냉 등 부인질환을 잘 치료하는 부인과 의사를 뜻한다. 낙양을 지날 때는 낙양 사람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것을 알고, 노인 질환을 많이 치료했다. 편작은 이 지역에서는 노인병을 잘 치료하는 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함양에서는 소아과 의사로 명성을 얻었다.

 

만약 편작이 지금 세상에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만인의 난치병을 두루 살피는 모습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 투시와 진맥 등을 통해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택했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볼지도 모를 일이다. 편작과 제나라 왕 환후의 일화를 먼저 살펴보자. 제나라 최고의 명의였던 편작은 환후를 만나서 진단한 후 아뢴다.


“전하께옵선 지금 병이 그리 깊지 않아 살갗에 있긴 하지만 이내 깊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환후는 아픈 곳이 없다며 시큰둥하게 편작의 말을 무시하더니 편작이 물러가자 “의사들은 이익에 밝아서, 병이 아닌 것도 치료하려 드는 자들이다”라고 신하들에게 말한다. 당시에도 과잉진료나 허위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편작은 열흘 후 다시 환후를 만나 진단한다.

 

“전하의 병이 이제 더 깊어져 피부 안으로 파고들어 갔습니다. 속히 치료하셔야 합니다.”

 

환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불쾌한 표정만 지었다. 그는 여전히 편작이 허위 진단을 하고 치료비를 뜯어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열흘이 지난 후 편작은 왕을 뵙고는 또다시 간곡히 말했다.

 

“전하! 이제는 치료를 미룰 수 없습니다. 이미 전하의 병은 장위(腸胃)까지 미쳤습니다.”

 

이번에도 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대단히 불쾌하게만 여겼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갔다. 편작은 멀리서 왕을 보고는 황망히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왕이 사람을 시켜 편작에게 물어보게 했다. 편작이 말했다.


“병이 살갗에 있을 때는 살짝 지지기만 해도 됩니다. 피부 안으로까지 미쳤을 때는 침으로 다스리면 됩니다. 장기(臟器)에 침습했을 때는 강한 약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병이 골수에까지 미쳤다면 생사를 관장하는 사명(司命)이라는 신조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전하의 병은 이런 지경에까지 미쳐서 치료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닷새가 지나자 왕은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그 고통이 심해졌다. 왕은 사람을 시켜 다시 편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진(秦)나라로 피신해 버린 뒤였다. 며칠 후 왕은 정말 그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 일화를 통해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다. 한의학은 병이 커지기 전에, 혹은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는 치미병(治未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미 병이 퍼져 생사의 고비에 이르렀을 때는 치료하기 늦었다고 봤다. 물론 난치병을 치료하는 치료법 등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예방에 치중했다. 예방은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치료를 떠나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과 사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즉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탐욕을 버리고 담담하게 살아감으로써, 삶의 질이 훨씬 고상하고 고급스럽다는 이야기다.


편작은 일찍이 훌륭한 의사라면 환자의 병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미리 알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환후의 병의 예후를 정확하게 알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며,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는 초능력의 일종인 ‘숙명통(宿命通)’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과거에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서로 예를 갖췄고,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물론 돈만 밝히는 의사, 연구는 게을리 하고 남을 속이는 의사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가 많았고, 환자도 이를 존중했다. 


편작은 이와 관련해 여섯 가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언급한 바 있다. 어떤 병이었을까? 암, 파킨슨병, 루게릭병, 에이즈와 같은 병이었을까?


첫째, 교만하고 이치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교만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기에 이런 사람은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몸을 경시하고 돈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그다지 주의하지 않지만 오히려 자시의 재산은 소중히 생각해 돈을 쓰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는 건강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을 말한다.


셋째, 의사가 말한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환자는 지금도 많다. 기름지게 먹지 말아야 하는데 기름진 것을 먹거나, 몸을 따듯하게 하라고 해도 지키지 않는 등 많은 사례가 있다.


넷째, 음양과 장의 기운이 일정치 않은 환자이다. 즉 병세의 음양 균형이 깨지고 장부의 기운이 안정되지 않은 환자를 말하는데 치료하기 어렵다.


다섯째, 극도로 허약해 약을 먹을 힘조차 없는 환자 역시 치료할 수 없다.


여섯째,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