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의 周遊天下_02

醉月 2012. 6. 25. 06:47

대통령 훈장 받은 고위 공무원이 역술가로 변신한 까닭

명리학 도사 김영철

조용헌| 동양학자, 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2009년 2월 장남의 대학 졸업식때 아내와 함께 한 김영철씨.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의 생활은 2가지로 압축된다. 먹이 사냥과 종족 번식이 그것이다. 하루 종일 뛰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설명하면 식(食)과 색(色) 아니겠는가. 다른 것은 별로 없다. 이것 빼면 다 너스레다. ‘식색(食色)’이야말로 동물 세계의 본질인데, 인간도 동물은 동물이므로 이 생활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인간계는 여러 잡다한 치장이 많아서 이 본질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동물 세계를 보면 생식기능이 끝나면 생명도 끝난다. 수사자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생식기능이 떨어지면 힘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면 곧바로 젊은 수사자의 도전을 받고 무리에서 추방되거나 부상을 당해 사망한다. 생식기능이 완료되면 곧 사망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 생식기능이 마감되더라도 10~20년을 더 산다. 바로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시작된다. 동물에게는 없는 이 10~20년 동안 축적된 지혜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문화적 장치’ 내지는 ‘찬란한 문명’이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특히나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어지간하면 80세를 넘기고, 암(癌)만 안 걸리면 100세까지도 수명을 유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생식기능이 끝나고도 엄청난(?)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동물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일 뿐 아니라, 인간 역사에서도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一陰一陽之謂道

그렇다면 생식기능 완료 후의 30~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인류사적으로는 문명의 축적이 이뤄지는 시간이지만, 개인사적으로는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문제로다. 색(色)은 끝났다 하더라도 식(食)은 유지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식이 도와주는가, 보험이 보태줄 것인가. 아니면 자기 스스로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직장 다니던 남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점은 평균 50대 중반 전후다. 회사는 조금 더 빠르고, 공무원은 조금 더 늦다. 직장은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놀이터이기도 하다. 20~3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생계수단의 종료이기도 하지만, 놀이터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 안 들어오는 것보다, 매일 직장 동료들과 만나 싸우고 지지고 웃고 술 먹던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청경(靑?)역학연구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역술가의 길로 들어선 김영철(金永哲·62) 원장을 만난 이유는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인생 이모작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라고나 할까.

 

필자가 청경 선생을 처음 만난 시기는 2009년이다. 그때만 해도 이 양반은 공무원이었다. 광주지방공정거래사무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창밖으로 무등산의 능선이 잘 보이는 빌딩 7층 사무실에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단아한 난(蘭)이 한 분(盆) 올라 있었다. 여직원이 내온 진한 차향이 사무실에 가득 차 있던 기억이 난다. 이 깔끔한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던 관료로 있을 때 그를 만났다. 보통 관료와 다른 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사주(四柱)였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사주를 잘 보는 도사’로 소문나 있었다. 이 소문을 접한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어느 정도 내공을 갖고 있을까?”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이 명리학(命理學)이라는 ‘미아리’ 골목 바닥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사부가 있다면 누구인가, 독학으로 배웠는가?” 등등이었다.

 

이 양반은 공무원으로 있다가 2010년 12월 3급인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했다. 이후 1년 정도 집에서 놀다가, 2011년 겨울 역술관 사무실을 냈다. 청경역학연구원은 광주 치평동의 10여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있다. 공정거래소장이 역술원장으로 둔갑해 있었다. 60세를 기점으로 이전이 밥통이 보장된 공무원이었다면 이후는 사람들의 운명을 감정해줘야 하는 역술원장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기업체들이 공정거래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감찰해야 하는 권력직이었다면, 이제는 서민들의 고달픈 인생을 해석해주고 달래줘야 하는 역술가인 것이다. 대기업의 횡포가 심할 때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검찰’로 불리던 시기도 있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전까지는 접대를 받는 측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손님들에게 접대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낼 필요 없이 입을 닫고 있어도 아무 불편이 없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꺼내면서 운명을 예측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상대방이 나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하는 갑(甲)의 위치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상대방의 심정을 헤아려야만 하는 을(乙)의 입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쪽에서 먼저 차려주는 밥상을 받다가 내가 먼저 밥상을 차려서 갖다줘야 하는 입장으로 변모한 셈이다.

 

인생에서 갑은 무엇이고, 을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팔자는 갑으로 살고, 어떤 팔자는 을로 산단 말인가! 갑은 성공이고, 을은 실패한 인생인가? 환생(還生)과 윤회(輪廻)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갑은 을로 태어나고, 을은 갑으로 태어나는 수가 있다. 업보를 쌓으면 업보를 갚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 우주적 균형이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는 것이 주역의 핵심이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인 것이다. 갑에서 을로의 전환을 기독교식으로 설명하면 ‘거듭나는 삶’이 된다. 그렇다면 갑과 을을 다 살아보는 팔자는 어떤 팔자란 말인가? 공평한 인생이 되는 셈인가. 김영철 도사의 인생 반전은, 이모작치고는 드라마틱한 이모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떡시루에 얽힌 추억

김 원장의 체격은 그리 크지 않고 단아한 체구다. 170㎝가 넘지 않는 키다. 목소리 톤도 높지 않다. 조용조용 말하는 스타일이다. 필요한 대목에만 간단하게 대답하는 스타일은 오랜 공무원 생활에서 다져진 화법이다. 얼굴 표정은 평범하지만 한 번씩 치켜뜨는 눈매에는 예리한 면이 들어 있다.

“사주팔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물었다.

 

“유년시절의 체험이 작용한 것 같다. 고향이 전남 광산군 동곡면 하산리(下山里) 기룡(起龍)마을인데, 어릴 때 할아버지가 밤에 떡시루를 가끔 들고 오셨다. 조부 성함이 김덕홍(金德弘)이다. 조부가 서당 훈장을 하셨고, 한학에 능했다. 평소 학동들에게 천자문과 소학 등을 가르쳤고, 부업으로 가끔 사주를 봐주셨다. 특히 부업으로 하는 사주가 잘 맞았는지 옆 동네에까지 사주를 봐주시러 출장을 가곤 했다. 궁합도 봐주고, 택일도 해주고, 어디 아픈 데 있으면 침도 놔주고 한약 처방도 내려주곤 했다. 갔다 오면 답례품으로 받은 물품 중에 떡시루가 있었다. 떡을 시루째 주는 선물이다. 지금이야 보릿고개가 없어졌지만, 1950년대 후반만 해도 배고프던 시절 아닌가. 그 시절에 쌀로 만든 떡을 먹는 것은 호사에 속했다. 그 떡을 시루째 받아서 조부가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어린 손자들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할아버지가 가져올 걸로 예상되는 떡시루의 떡을 먹기 위해서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와 답례로 받은 떡시루를 놓으시면 그렇게 기분 좋고 흐뭇할 수가 없었다. 7~8세의 어린 마음에도 ‘사주를 봐주면 이렇게 떡이 들어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주는 떡을 불러오는 어떤 요술 방망이라는 인식이 어린 나의 뇌리에 박혔지 않았나 싶다.”

 

“본격적으로 명리학 공부를 하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다시 물었다.

“1973년이다. 이때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9급 공무원으로 전남 광양군 다압면에 근무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명리학 책을 이것저것 구해다가 시간 날 때마다 독학했다. 자연히 주변 동료들 사주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다. ‘사주기초이론’ ‘사주정설’ 등의 책을 본 것으로 기억된다. 1980년대 중반에는 서울 용산의 국방부 총무과에 근무하면서 당시 서울의 몇몇 역술가를 찾아가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는 국방부에서 내가 승진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고, 부차적으로는 나의 명리학 실력을 점검하고, 프로 역술가들은 어떤 식으로 명리 해석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중에 어떤 사람이 인상적이었는가?” 질문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에서 만난 백우(白羽) 김봉준이라는 역술가가 인상적이었다. 내 사주를 보더니만 ‘이 공부 해도 되겠는데, 남쪽에서 일인자가 될 수 있겠어’라고 격려해주었다. 내가 찾아가서 단순히 장래 승진 여부만 물어보는 게 아니라, 사주 이론 가운데 큰 틀인 격국(格局)이 어떻게 되느냐, 용신(用神)이 무엇이냐 등의 전문용어로 질문하니까 ‘이 사람이 사주 공부를 하고 있구나’ 알고 답변해준 것이다. 일인자가 될 수 있겠다는 말에 자신감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번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해서 청경 선생 본인의 사주팔자가 궁금해졌다.

“1951년생이니까, 신묘(辛卯), 정유(丁酉), 정묘(丁卯), 신축(辛丑)이다. 천간(天干)에 정(丁)이라는 화(火)와 신(辛)이라는 금(金)이 같이 나타나 있으니까, 백우 김봉준이 이 대목을 보고 역술가 해도 되겠다는 해석을 해준 것 같다. 불과 금이 같이 있는 사주는 수사를 하는 수사관이나 검찰 같은 직업에도 적합하고, 아니면 역술을 해도 분석력이 있어서 소질이 있는 사주라고 본다.”

 

  2만 명 임상실험

 

공정거래위원회 부이사관을 지낸 고위공무원 출신 역술가 김영철 씨는 공직 퇴임 때 받은 훈장을 오피스텔 벽에 걸어 놓고 찾아온 이들의 운명을 점친다.

 

처음 만나 수인사를 할 때 보통 명함을 주고받는다. 명함에는 직업이 나와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대강의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끼리 만났을 때는 세속적인 명함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서로의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표시한 팔자(八字)를 주고받는다. 오장육부를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이 명리학의 예법이다. 따지고 보면 팔자를 주고받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성실한 태도에 속한다. 자신의 운명이 담긴 바코드를 주는 것은 자신에 대한 정직한 소개이기 때문이다. 성격과 주특기, 가족관계, 재물과 씀씀이 등이 팔자에 담겨 있기 때문에 자신의 팔자가 좋지 않은 사람은 선뜻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팔자를 내놓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구나, 더 이상 묻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짐작한다. 상대방은 말하고 싶지 않은데, 험한 팔자를 자꾸 캐묻는 것도 실례 아닌가.

 

필자도 명리학을 공부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본격적인 경지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질 부족이다. 임상실험도 중요하다. 2만 명설이 있다. 임상으로 2만 명 정도를 봤을 때 프로의 경지에 진입한다는 설이 그것이다. 2만 명을 보면 사람 사주를 보는 순간 어떤 감이 온다고 한다. 관운이 있다·없다, 이 사람은 사업하면 돈을 번다·못 번다, 배우자 복이 있다·없다 등을 순식간에 훑어내는 감(感)이다. 프로는 팔자를 보는 순간 전체의 틀을 정확히 본다. 세부적인 각론에는 약간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 틀에서 오류가 생기는 이는 프로가 아니다. 자격 없다.

 

그 사람의 전체적인 특징, 예를 들면 직업 성격 대운 등을 정확히 감정할 수 있어야 프로의 자격이 있다. 프로가 되기 위해 1년에 2000명씩 임상실험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10년이면 2만 명을 채운다. 1년에 2000명을 보려면 한 달에 최소한 160명 이상을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러자면 1년 열두 달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5명 이상의 사주를 봐야 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말이다. 이걸 10년 이상 계속하면 대강 2만 명이 채워진다.

 

하루에 5~6명의 사주를 정밀하게 분석하려면 최소한 3~4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여덟 글자에서 숨은 의미를 캐내고, 이걸 다시 종합해 균형 잡힌 해석을 내리려면 명리학의 여러 고전을 참조하고 비교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게 쉬운 일인가? 이 과정을 10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야만 프로의 경지에 진입하는 것이다.

 

필자는 5000명쯤 하다가 “아이고, 이거 못해먹겠다”는 심정이 돼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었다. “내 팔자는 역술의 대가는 못되는 것인가 봐” 깨달았다고나 할까. 프로바둑에는 입문하지 못하고 아마바둑 애호가 수준에서 그친 것이다. 그러나 아마추어이기는 하지만 동네 기원에 가면 말참견은 할 수 있다. 이렇다저렇다 평론은 할 수 있는 실력이다. 평론도 아무나 하나. 기본 실력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청경 선생의 팔자를 보니 신금(辛金)이 2개나 천간(天干)에 나와 있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신묘(辛卯)년 신축(辛丑)시에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날은 정묘(丁卯)일이다. 정(丁)은 불이다. 신(辛)은 금이다. 화극금(火克金)이다. 자기가 극하는 것, 즉 자기가 이겨 먹는 것이 재물이요, 여자다. 고대 사회에서 돈과 여자는 같은 것으로 보았다. 돈과 여자는 가만히 있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투쟁해서 빼앗아 와야 하는 존재였다. 투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고로 극(克)해야 한다는 이치가 나왔다. 극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게 마련이다. 태어난 일간(日干)인 정(丁)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辛)은 재물이자 여자라고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양처(兩妻)를 거느릴 팔자다. 쉽게 말하면 ‘장가 두 번 가야 되는 팔자’다. 이 정도 독해(讀解)가 되면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스파크가 튀더라도 멘트를 하나 날려야 한다. 만약 이 진단이 틀리면 체면 구긴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장가 두 번 가야 하는 팔자인데, 어떻게 넘어갔는가? 이거 극복하려면 상당한 절제와 도 닦는 마음으로 인내하셨어야 하는데…?”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렇다. 그거 극복하려다 보니까 집사람이 아팠다. 갑상선 수술도 하고, 자궁 수술도 했다. 장가를 두 번 갔으면 집사람이 안 아팠을지 모르는데, 한 번으로 끝내는 과정에서 옆으로 부작용이 터진 셈이다.(웃음) 집사람이 수술한 것도 내 팔자 액땜을 하느라고 그렇게 된 것 같다. 집사람 아픈 데를 고치려고 구당(灸堂) 선생 문하에서 뜸도 배우고 아울러 침도 배웠다. 뜸과 침으로 집사람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질문이 이어졌다. “사주에 대한 확신이라고나 할까. 이거 참 신통하게 맞는다 생각한 계기는 언제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할 때 상사로 모시고 있던 전윤철 위원장 사주를 봐줄 때였다.”

 

    

관운을 타고난 전윤철 전 장관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1990년부터 김영철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전윤철이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부임했다. 법제처에 근무하다가 경제기획원 산하 공정거래위원회에 온 것이다. YS에서 DJ로 정권이 바뀌면서 전남 목포 출신인 전윤철은 다른 좋은 자리 물망에 올랐다. 경제부서에 주로 근무해 장관 자리에도 거명됐다. 하마평이 무성할 즈음 부하 직원이던 김영철은 상사인 전윤철의 사주를 봤다. 평소 사주를 잘 본다고 소문나 있던 그에게 전윤철이 “내 사주 한번 봐라”고 주문한 것이다. 김영철은 사주를 본 뒤 “지금 당장은 운이 좋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장관으로 나가지 않고 그냥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쯤 운이 좋아지니까 그때 움직이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관료라는 게 그렇다. 지금 당장 장관 하라고 하마평이 신문에 오르는 상황인데, 사주에 운이 좋지 않다는 말을 믿고 “나는 안 나가겠다”고 거절하는 것이 쉬운 결단은 아니다. 눈앞에 다가온 실익을 택하지 않고 미래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애매한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공무원은 승진에 목을 매는 직업이다. 승진 여부에 인생의 성패가 걸렸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어지간한 자리도 아니고 장관 자리가 쉽게 오는가.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제의가 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전윤철은 부하의 사주 해석을 믿었다. “나는 공정거래위원장감밖에 안 되니까 그냥 놔두시오”라고 정권 실세들에게 밝혔다. 이렇게 사주를 믿고 기다릴 줄 알았던 게 지나고 보면 매우 현명한 결단이었다.

“왜 그때 모시고 있던 상사인 전윤철 보고 감투를 받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나? 어떤 운세였길래 그렇게 조언을 했나?” 사주적인 근거를 물었다.

 

“전윤철 위원장은 1938년 무인(戊寅) 생이다. 사주 구성이 무인(戊寅), 정사(丁巳), 정사(丁巳), 기유(己酉)였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초여름에 태어난 데다 태어난 날도 정사(丁巳)일이니 불로 가득 찬 사주다. 불이 너무 많은 팔자다. 이런 사주에 목이나 불이 들어오면 좋지 않다. 금이나 물이 들어오면 좋다. 자리를 제의받을 당시의 세운(歲運)에 목(木), 화(火)운이 들어왔다. 이때는 잠자코 있는 게 좋다. 이렇게 운이 안 좋을 때 움직이면 구설이 따르거나 부작용이 발생한다. 다음해에 세운이 좋게 들어오니 그때 자리를 받으면 탈도 없고 좋다고 봤다. 다행히 전윤철 위원장이 내 말을 믿어주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올해만 넘기면 틀림없이 경제부처 수장을 할 운세입니다’라고 조언했고, 그 뒤로 정말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영전했다. 그 다음에는 경제부총리로 가더니, 대통령실장으로 다시 갔고, 감사원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전윤철의 인물평은 신문에 ‘직업이 장관인 사람’으로 나오곤 했다. 얼마나 관운이 좋으면 ‘직업이 장관’이란 소리를 듣겠는가. 아마 70대 중반인 지금도 그는 어느 장(長) 자리를 맡고 있을 것이다. 불이 왕성한 팔자에다가 태어난 시가 ‘유’(酉)시라는 점이 참 보기 좋은 사주다.

 

사람은 시(時)를 잘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전윤철의 사주에서 입증된다. 유시(時)는 금(金)에 해당한다. 왕성한 불로 이 금을 지지면 그게 돈이 되고 벼슬이 되는 팔자인 것이다. 명리학에 ‘재생관(財生官)’이라는 용어가 있다. 재물에서 벼슬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고, 돈과 재물을 모두 움켜쥔다는 뜻도 된다. 이런 팔자는 벼슬을 해도 돈 만지는 쪽에서 벼슬을 하기 쉽다. 은행장이라든지, 재무장관, 금융감독원장 같은 것이 벼슬도 하면서 돈도 만지는 자리에 해당한다. 전윤철이 기획예산처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것은 팔자에 타고나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렇지만 말이다.

 

통변(通變)의 원리

사주를 공부하려면 어떤 교재가 좋은가? 교과서는 무엇인가? 교과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이 분야의 고전들은 모두 한문으로 돼 있어 번역본을 읽어도 초보자는 얼른 이해가 안 된다. 한문 어투인데다 용어가 어렵다. 우리말로 된 현대의 책들은 부분 부분 원리를 밝힐 뿐, 핵심 노하우는 밝히지 않고 있다. 자기 밥벌이 노하우를 공개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청경 선생은 ‘사주첩경(四柱捷徑)’을 보면서 공부가 늘었다고 했다. ‘사주첩경’은 명리학계의 바이블이다. 필자가 10년 전쯤 쓴 책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명리학계에서 최고로 꼽는 교과서가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이북 출신인 이석영 선생.

 

한국 명리학계의 빅3를 꼽는다면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1903~92),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1920~83),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1935~2000)이다. 세 사람 가운데 실전 사주에 강했던 인물은 도계와 제산이었다. 도계는 인품도 훌륭했다. 일상생활에서 무욕담백했다. 90세까지 장수했는데, 일생동안 사주를 보는 내공이 항상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평균 시속 100㎞를 항상 유지했다. 그 이하는 내려가지 않았다. 제산은 맞힐 때는 족집게처럼 귀신같이 맞히던 인물이다. 삼성의 이병철, 포철의 박태준 장자방을 했으니 그 내공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하다 죽었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니까 진기를 과도하게 소모해 중풍이 온 것이다. 이것을 조절 못한 점이 아쉽다.

 

도사는 숨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비해 자강은 그가 남긴 책이 명저(名著)가 됐다. 실전 사주 적중률은 제산이나 도계보다 약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책은 불후의 명작이 됐다. 죽고 나면 책이 남는다. 후학들이 명리학을 공부하려면 사주첩경을 본다. 명리학의 종가인 중국의 어떤 명리학 책보다 현대 한국 사람 자강이 저술한 사주첩경이 더 훌륭하다. 더구나 실전 사례를 소상하게 소개함으로써 초보자들이 통변(通變·변화에 통한다)의 원리를 이해하도록 했다.

 

통변은 사주에서 가장 어렵다. 그리고 기존의 사주 책에서 제일 안 밝히는 부분이 바로 통변이다. 통변이란? 시골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호적서기에 비유할 수 있다. 호적서기는 매일 사람들의 호적을 들여다보고 호적을 발급하는 일을 하니까, 호적상으로는 사람 이름을 많이 외운다. 누가 누구의 아버지고 아들이라는 식으로 머리에 암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면사무소 호적실에서 나가 길거리의 사람을 보면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른다. 장부상으로는 이름을 알지만 실전에서는 모르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주도 그렇다.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실전 사주풀이에 들어가면 캄캄한 경우가 있다. 자동차 부품은 많이 모아놓았지만, 이걸 어떤 순서에 의해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셈이다. 조립 순서, 즉 어떤 볼트를 어떤 너트에 조립해야 하는지 순서를 알려주는 게 통변이다. 부품만 많이 갖고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이걸 조립해 자동차를 완성해야 타고 다닐 것 아닌가. 대부분의 사주 책이 부품 이야기만 하고, 이걸 조립하는 노하우에 대해서는 설명이 소략하다. 그런데 사주첩경은 이 조립 노하우를 공개했다. 이 점이 대단한 것이다.

 

청경 선생도 사주첩경을 갖고 공부함으로써 통변의 이치를 터득한 셈이다. 사주첩경은 전체 6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3권과 6권이 하이라이트다. 특히 6권은 ‘112 문답집’이라고 돼 있어서 통변의 원리를 사자성어로 압축해 표현했다는 점이 압권이다. 예를 들면 전이불항(戰而不降), 목화통명(木火通明), 자오쌍포(子午雙包), 명관과마(明官跨馬), 부성입묘(夫星入墓) 등의 표현이 그렇다. ‘전이불항’은 ‘싸움이 붙으면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는 사주를 가리킨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전이불항 사주였다. 부엉이바위 위에서 뛰어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필자가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노무현을 ‘전이불항의 시라소니’라고 신문에 표현한 적이 있는데, 사주첩경의 내용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무튼 청경 선생도 사주첩경을 보고 통변의 원리를 이해했다고 하니, 이 책이 자타가 공인하는 사주학의 바이블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글문파, 영발파, 입신파

타고난 신기(神氣)가 아니라 책을 보고 사주를 공부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필자는 ‘글문파(派)’라고 정의한다. 글 ‘문(文)’에서 따온 작명이다. 파벌도 여러 종류가 있다. 책과 글을 보고 이치를 터득한 문파는 글문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공이 증진한다. 물론 꾸준히 공부를 계속할 경우다. 그런가 하면 ‘영발파(靈發派)’가 있다. 글문파가 죽을 둥 살 둥 하며 공부를 지독하게 하면 영발파가 된다. 피 터지게 공부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내면에 신령(神靈)이 있다. 프로이트는 이 신령을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무의식은 자기 미래를 알고 있다. 꿈으로 이 미래를 예시한다.

 

문제는 생각이 복잡하면 이 무의식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마음이 고요해야만 신령이 발동한다. 흔히 ‘도 닦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내면의 이 신령을 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가 도통(道通)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령이 발동해 미래를 예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영발파가 된다. 영발파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약간 다른 파벌이 ‘입신파(入神派)’다. 바둑 9단을 입신(入神)의 경지라고 하지 않던가. ‘신이 들어온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들어오거나 붙은 케이스다. 접신했다고도 한다. 신(神)도 급수가 있다. ‘국졸신’도 있고, ‘고졸신’도 있으며,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를 딴 신도 있다. 플라이급, 밴텀급, 웰터급, 미들급, 헤비급 등 다양하다. 문제는 어느 급수의 신이 들어왔느냐에 따라 적중도나 지속 기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국졸신이나 중졸신이 들어오면 무속인이 된다. 자유가 없다. 하급신이 들어오면 그 신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고급신이 들어오면 상황이 다르다. 인품이 대단히 고상하면서도 고준한 철학을 지니고 있고, 국가 대사에 대한 예언도 적중하는 수가 많다. 어느 한 교파(敎派)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입신파의 주특기는 족집게라는 점이다. 미시적인 부분에서 족집게처럼 맞힌다. 흔히 말하는 ‘족집게 도사’는 대개 입신파로 분류된다. 등급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계시받았다’는 것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입신파의 영역에 속한다. 이 세 파벌을 정리하는 데 필자가 들인 정력과 시간은 엄청나다. 20년 넘게 걸렸다. 자료 수집하고 분류하고,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는 데 말이다.

   

청경 선생은 내가 보기에 글문파다. 증거는 사주첩경을 보고 공부했다는 점이다. 텍스트를 중시하고 여기에 의존하는 부류는 글문파라고 보면 된다. 글문파가 죽을 고비를 한번 겪으면 영발파로 전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고비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쉽게 권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청경 선생도 사주를 보는 데는 직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에는 직감이나 영발이나 같은 말이다. 청경은 40대 중반부터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기운이 막힌 경락을 뚫으면서 아랫배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도 겪었다. 일종의 명현반응이다. 그 뒤로 어떤 직감이 강화됐다. 지금도 매일 아침 일어나면 1시간 정도 단전호흡을 한다고 한다.

 

혹룡혹사(或龍或蛇) 이모작

앞에서 이야기한 명리학계의 ‘빅3’를 이 분류법으로 분류해보면 자강 이석영은 글문파고, 도계 박재완은 영발파이며, 제산 박재현은 입신파다. 이 세 파벌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지, 어느 한 파벌이 도덕적으로나 실력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이 이 세 파벌도 모두 다 일장일단이 있다.

“정부부처의 고위 관료로 있던 사람이 공직을 그만두면 로펌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로펌행(行) 말고 역술행(行)에 접어든 소감은 어떤가?” 다시 문답을 시작했다.

 

“친구 몇몇은 로펌으로 갔다. 나를 보면 ‘우리는 3~4년이면 단물이 떨어진다. 그런데 자네는 여생을 할 수 있는 일을 잡았으니 상팔자 아니냐’고 립서비스를 한다. 한편으로 부이사관을 했던 경력이 이 일에도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경력을 보고 나를 신뢰하는 편이다.”

“역술원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물어도 되나?”

 

“지금은 사무실 임차료 내고 내 한 달 용돈 정도 버는 수준이다. 이 정도 수입에 만족한다. 퇴직하고 1년쯤 집에만 있었더니 갑갑해서 혼났다. 하루 종일 집사람하고 얼굴을 부딪치니까 서로 불편했다. 연금이 매달 300만 원 정도 나오지만 돈 문제만 불거지면 기가 죽는다. 그동안 와이프에게 쌓아놓은 신뢰를 다 까먹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하듯 집을 나오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이렇게 내 일이 있고, 내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일정 수입도 생기고, 다른 사람의 인생사 어려운 문제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있다. 상담료로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적은 돈 받으면서 카운슬링해주는 직업이 역술가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역술업을 천하게 보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내 경우는 그렇게 천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전직 경력도 쳐주는 것 같다. 요즘은 역술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쿨하게 본다. 사무실 벽에다가 퇴직하고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홍조근정훈장’을 걸어놓았다.”

 

운이 나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경에게 물어보니 몇 가지로 정리됐다. 우선 운이 안 좋으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움직이지 않을수록 좋다. 그러자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현재 상태에 만족해야지, 무엇인가 하려고 움직이면 낭패를 보기 쉽다. 그런데 운이 나쁘면 공통적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고 한다. 만약 10년 이상 계속해서 운이 좋지 않다고 나올 때는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한다. 장기간 운이 좋지 않다는 것은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운이 나쁘면 건강부터 나가기 시작한다. 돈이 나가면 건강도 나가고, 건강이 나가면 모든 게 무너진다. 돈은 나갔어도 건강이 그런대로 유지되면 그 사람은 운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게 청경의 주장이다.

 

고위공무원을 하다 역술가로 새 출발한 청경 김영철. 이모작에 성공한 삶이다. 이모작의 시발은 어릴 때 떡시루를 가지고 오곤 하던 그의 조부가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이모작의 핵심은 갑으로 살다가 을로 살아보는 체험이다. 인간 세상에 와서 한 번은 갑도 되어보고 한 번은 을도 되어보는 것이 공부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은 ‘용도 되어보고, 때로는 뱀도 되어보는 것이 대장부’라고 밝힌 바 있다. ‘혹룡혹사(或龍或蛇)’가 인생 이모작의 노하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