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만들기- 찻잎의 선택과 가마솥 열 조절
전라남도에는 지금도 차가 지명이 되어 내려온 고을이 몇 군데 된다. 나주시 다도면茶道面은 1914년 다죽면茶竹面과 도천면道川面을 합하여 다도면이 되었다. 예로부터 차가 있는 곳을 다촌茶村또는 다전茶田이라 하고 차를 가공하는 곳을 다소茶所라 했다. 다도면에 구다舊茶부락이 있고 지금의 계금鷄金부락은 전에 신다新茶부락이었으며 몽탄면夢灘面에 다산리茶山里가 있다. 화순에는 다지리茶智里내에 또 다산茶山부락이 있고, 차를 공납했다는 공다貢茶부락이 있다. 또 담양군 월산면에 삼다리三茶里가 있고, 장흥군 관산면 송촌리에 다촌茶村부락이 있었지만 모두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차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조선 중엽 이후 지나치게 농민에게 차를 세금으로 부과시키자 관청의 눈을 피해 차를 송두리째 파헤쳐버렸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차나무도 없어지고 차 만드는 풍습도 사라졌다.
산중사찰의 선원차, 작설차와 반차
산중사찰, 남부 온대지방에 있는 선원禪院에서는 차 밭 조성과 차 만드는 법이 한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에 유학 갔던 승려들이 일본의 찐차(증차) 제다법을 배워 돌아오는 바람에 사찰의 전통차 풍습이 없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해방 후 여순사건과 6.25사변이 일어나 산중사찰의 피해가 극심한데다 불교분규가 일어나 차 풍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불교의 전통이 소멸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분규 속에서 순천 선암사의 선곡(禪谷, 1898~1968) 대선사가 한국 선원차의 본원을 지킬 수 있었다.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요 경전은 부처의 말이라 하므로 불교의 근원은 마음이다. 자기 스스로 지닌 마음을 찾는 것이 선수행이다. 선수행은 외롭고 고된 길인데 이 길에 유일한 벗이 차茶이다. 선수행의 적賊은 혼침昏沈이다. 이 혼침을 제거하고 마음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수행자는 밥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못산다는 사람들이다.
산중사찰의 선원차는 작설차雀舌茶와 반차般茶로 구분하여 만들었다. 작설차는 고급차이고 반차는 상용대중차이다. 작설은 참새 혓바닥이란 뜻이다. 활엽수의 그늘과 햇빛이 7:3의 균형을 이루는 데서 자란 자생 차나무의 일창이기一槍二旗의 잎 중, 약간 자색을 띄운 잎으로 만든 최고의 차로 알려져 있다. 이것의 색이나 모양이 참새 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설은 일창이기의 때를 맞춰 채취한 잎으로 정밀한 과정을 통해 정성을 다해 만든 차로서, 특별한 행사나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기일에 불단에 올리는 차이다. 작설은 많이 만들 수가 없다. 자급자족을 하며 참선수행을 하는 사찰에서 찻잎을 작설로만 따서 세밀하게 정성들여 만들 만한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차般茶는 참선하는 대중스님들이 주로 공양후에 마시고 방선放禪시간이나 담소談笑를 나누는 일반 상용의 차이다. 봄에 찻잎이 나올 때 대중울력으로 무작위로 따서 만들고, 사시사철 때 없이 따서 대강 만들어 마신다. 심지어 차가 떨어지면 생잎을 주전자에 넣고 바로 끓여 마시기도 한다. 그래도 안 마시는 것보다 마시는 것이 차를 마시고자 하는 의욕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킨다. 초의草衣스님이 다신전茶神傳에서 경상도 지리산 칠불선원을 찾았을 때, 좋은 차나무의 찻잎을 함부로 만들어 마시더라고 탄식하신 것이 바로 이 반차를 가리킨 말씀이다. 초의 스님과 추사秋史와 다산茶山이 마셨던 차는 작설차였고 자생차였을 것이다. 옛 선비들이 작설차를 매우 즐겨했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차시들이 증명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과 체험이 필요한 덖음차의 비결
차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차 만드는 법이 다르고 같은 차나무라도 채취시기에 따라서 차를 법제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인도종 교목의 찻잎으로는 완전 발효차인 홍차밖에 다른 도리가 없고, 중국종 관목의 찻잎은 나라와 지방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서 만드는 방법이 다양해진다.
중국은 거의 모든 음식을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차를 마실 수밖에 없다. 중국은 국토가 광활하여 차를 보관하고 옮기는 시간이 몇 달씩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덖음차나 찐차를 만들 경우 변질을 막을 수 없어 반발효가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몇몇 지방이나 원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찐차나 덖음차를 만들어 짧은 시간에 소비하기도 한다. 일본은 섬나라로 태평양의 염기 있는 바닷바람의 기후 영향을 받기에 어린 찻잎을 쪄서 건조시킨 찐차를 만든다. 그리고 더운 물을 식혀 우려 마시거나 가루 내어 타 마시며 이를 ‘Japanese tea’또는 녹차라 한다.
한국 남부지방은 토질이 양호하고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의 온대에 속하여 자생차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이라도 한두 달이면 어디든 왕래할 수 있으므로 구태여 발효나 반발효차가 필요하지 않아, 차 중의 차인 덖음차가 발달하였다. 하지만 찻잎을 채취한 즉시 차를 만들지 못하거나 차 따는 시기를 놓친 경우에는 찻잎을 찌기도 하고 반발효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묘지의 관 속에서 발효차인 엽전 모양의 차가 나왔다고 하여 이 차가 한국차의 원형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죽음 뒤의 길가는 분을 위한 차일뿐이다.
발효된 찻잎으로는 차만의 고유한 향이나 맛을 느끼지 못한다. 기계로 단번에 찻잎을 찌는 것도 점진적으로 수차례 유념(비비는 공정)해서 차의 요소와 향과 맛을 만드는 덖음차만 못하다. 찻잎은 80%의 수분과 20%의 다소茶素로 형성되어 있다. 덖음차의 비결은 80%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20%의 다소를 점진적으로 함축시키는 방법을 10회 내외로 덖고 부비고 털어 식히는 반복이다. 덖음차는 고도의 기술과 체험이 아니면 봄에 차를 만들었다 해도 여름 우기에 차가 자체 변질을 한다. 또한 가마솥의 열 조절을 잘못하면 찻잎이 타버려서 차의 위상을 잃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덖음차가 실격을 하면 애초에 발효한 것만 못하다.
한국의 자생차 잎으로 법제한 순수 전통덖음차는 수준 높은 차이다. 하지만 일제 치하의 영향을 받아 기계로 찐 야부기다차가 선진문화라고 인식된 후, 이는 한국 전체에 만연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중국을 여행한 한국인들이 중국의 반발효차를 경험한 뒤 한국에서 도반 발효차만들기가 조금씩 늘어가는추세이다. 기계로 발효차나 찐차를 만드는 일은 비교적 간편하다. 수확량을 비교해도 비료나 농약 없이 자란한국 자생 차나무는 찻잎의 수확이 지극히 저조한 데 비하여 과학의 힘을 입어 창조된 야부기다는 그 수십 배의 다수확 품종이다. 그래서 야부기다로 만든 발효차와 녹차라는 찐차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야부기다 찻잎으로는 제대로 덖음차를 만들기 어렵다. 야부기다는 애초에 찐차에 맞게 실험된 종이다. 손으로 유념, 즉 멍석 위에서 제대로 부빌 수가 없다. 만약 여기에 비료까지 가미된다면 찻잎은 비료 기운까지 머금게 된다. 세포조직이 촘촘하지 못하고 수분기가 많아 비누거품을 바른 것처럼 미끄러워서 유념을 한다 해도 손에 힘을 주기 힘들다.
산 속에서 비료를 모르고 자란 자생차 잎은 가마솥에서 사람이 손으로 덖어서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하며, 비벼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 손바닥에 엉겨 붙을 정도로 찰지기만 하다. 한국 전통 순수 자생차는 나무가 자라는 것도 더디고 만들기도 대단히 어렵다.
차 만드는 사람의 사명
덖음차는 무비료 무농약으로 활엽수 아래 자란 자생 차나무(야생 차나무)의 어린잎으로 만든다. 그 중에서도 일창이기의 여린 순이면 더욱 우수한 차가 된다. 우수한 차의 판별은 향색미香色美로 나타난다. 향이 시원찮고 색이 맑지 못하며 맛이 은은하게 당기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잘 만든 한국 전통 덖음차는 찻잎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정밀해야 한다. 이는 모든 것이 수공업이다. 농촌의 인구가 현격하게 줄어서 제 철에 찻잎 따줄 사람도 귀하고 더욱이 전통 순수 덖음차를 만드는 방법도 이미 구한말에 끊어지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천지가 변하더라도 한국차가 시작된 지 1,600년이나 된 전통은 어딘가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한두 권의 책이나 구전으로 전해온 이야기를 듣고 차를 만들어 보려 노력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생 차나무도 귀하지만 더 귀한 건 역사의 흔적을 갖추는 차 만드는 사람이다. 전통이란 역사이며 역사가 스민 흔적에서 시간을 초월한 가치가 화현한다는 것을 가슴에 담아둔다면 진정한 전통 지킴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잘 만들려면 차나무의 삶이 어떠한지 그 생태의 우여곡절을 이해하고, 1년에 한 번 차나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보내는 찻잎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차나무를 직접 길러보고 차를 만들어보지 않고는 차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차가 지닌 향색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공부를 해봐야 공부의 어려움을 알고 성공을 해봐야 성공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아는 것과 같다. 차 만드는 과정이 잘못되면 차라는 생명이 희생당하는 것이고, 차가 잘 되어 좋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찻잎이 승화되는 길이요 피안에 이르는 길이다. 상대의 불행이 자기의 온전한 행복일 수 없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의 생명이 귀중하듯 소중한 존재다. 소중한 차나무의 찻잎으로 좋은 차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차 만드는 사람의 사명이다.
덖음차를 잘 만들려면 좋은 찻잎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다음은 만드는 장소가 좋아야 한다. 덖음차의 필수는 가마솥에 열을 가하고 찻잎을 덖어야 하는데, 불을 때는 방법으로는 가스와 나무장작이 있다. 가스일 경우 연기가 나지 않고 편리하긴 하지만, 가열하는 심지가 있어 가마솥에 가하는 열이 고르지 못하며 사람의 손이 솥 속에서 찻잎을 뒤적이더라도 미흡하게 된다.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차츰 열을 낮추어 덖기를 반복할 때 마다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볶기는 낮은 열에서 2시간가량 걸려야 차가 제대로 되는데, 솥바닥 부분의 열이 부분적으로만 일정하다면 향색미에 결함이 생겨 좋은 차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나무장작불은 연기가 나서 차를 만드는 데 장애가 되므로, 차 만드는 집을 지을 때 방안에다 솥을 걸고 부엌을 벽으로 차단하여 연기로 인한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장작불은 불이 타면서 불꽃이 흔들리므로 솥바닥 전체에 고온을 유지할 수 있어 좋은 차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차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 조절이다. 차를 만드는 최고 기술자는 불을 지피는 사람이다. 솥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인데, 덖는 과정마다 열이 높은 데서 차츰 낮아지므로 이를 알아서 조절할수 있는 능력이 좋은 차를 좌우한다. 솥은 두터워야 한다. 솥을 만들 때 쇠를 달구고 물에 식히는 과정을 거듭하여 쇠의 강한 성질을 유연하게 해야 좋은 솥이 된다. 좋은 솥을 구하는 것은 차 만드는 사람의 큰 관심사인데, 고려나 조선시대의 솥들이 이에 합당하다. 요즘 만든 것은 시설이 발달하여 두텁기는 해도 솥 바탕이 유연치 못하다. 장작 역시 중요하다. 잡목은 불이 거세며 소나무 중에서도 육송이 고열의 불에서도 가장 유순하다. 유순한 불이 유연한 솥에 닿아야 좋은 차를 만드는 데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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