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사회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창조적 혁신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 행위를 성장의 결정 변수라고 규정한다. 기성세대는 ‘미등 전략(tail light strategy)’으로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 대국에 올려놓았다. 미등 전략은, 앞서가는 자동차 미등을 보고 따라가는 것처럼 선진국 모델을 모방하는 성장 방식이다. 한국은 이제 앞서가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문화 영역에서 선두권에 편입되었다.
모방보다는 창조가 필요하다. 창조적 사고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차세대 리더들에게 창조적 사고력과 혁신을 기대한다. 기성세대가 구축한 낡은 틀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를 비타협적으로 실행하는 차세대 리더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는 누구인가’라는 대형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호는 <시사저널> 창간 20주년 기념호라 ‘차세대 리더 300인’ 기획이 갖는 의미가 더욱 크다.
<시사저널>은 사회 각 분야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들은 누구인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와 존경받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지난해 조사와 마찬가지로 ‘차세대’에 주목했기 때문에 나이는 50세 미만으로 한정했다.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한국 사회 30개 분야에 걸쳐 각 분야에서 전문가 50명씩 총 1천5백명의 전문가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개월 동안 표본을 선정하고 지난 9월16~28일 13일 동안 조사원이 전화로 조사했다.
미디어리서치가 선정한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각각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은 누구인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는 어디인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또, 분야와 관계없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30개 조사 분야는 다음과 같다. 정치, 금융, 기업, IT, 과학기술, 미술, 음악, 건축, 무용, 시민운동, 여성, 연예, 연극, 영화, 소설가·시인, 만화, 변호사, 패션, 출판, 교육인, 의료인, 게임, 복지, 환경, 관광, 통일·국제·외교, 축구, 야구, 골프, 스포츠이다.
<시사저널> ‘차세대 리더 300인’ 기획은 해마다 계속될 것이다. 내년에는 지난 2년 동안의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더 철저히 조사하고 알차게 보도하겠다고 다짐한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실시한 ‘차세대 리더 300인’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2위 오세훈 시장과 두 배 이상 격차
‘차세대 리더’ 정치 분야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 원의원은 20%의 지목률을 나타내며 차세대 정치 지도자 1위로 선정되었다. 2위인 오세훈 서울시장(8%)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원의원과 오시장은 현재 모두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한나라당 나경원·권영진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은 전문가 6%의 지목률로 공동 3위에 올랐다. 공동 6위에는 다섯 명이 한꺼번에 올랐다. 이 가운데 민주당 소속 정치인은 세 명이었는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이 나란히 차세대 리더로 꼽혀 눈길을 끌었다. 송영길 최고위원도 포함되었다. 또한,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도 10위 안에 들었다.
공동 11위를 차지한 이들을 보면 여권에서는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 김태호 경남도지사,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꼽혔고, 민주당에서는 김민석 최고위원과 임종석·최성 전 의원 등이 거명되었다.
정치 분야 전문가들은 지난해 조사에서 모두 21명을 차세대 정치 리더로 꼽았으나 올해는 16명만 이름을 올렸다.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 여덟 명, 민주당 여섯 명,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한 명씩이다.
지난해 10위 안에 들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 임해규·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등이 올해 조사 결과에서 빠진 반면,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 ‘새 얼굴’이 등장했다.
상위 16명 중 한나라당 8명, 민주당 6명, 민노당·진보신당 각 1명
1위에 오른 원희룡 의원은 2년 연속 ‘차세대 정치 리더’로 선정된 것에 대해 “쑥스럽다”라며 겸연쩍어했다. 그는 제주 제일고 재학 시절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1983년 5월, 시위에 참가했다가 유기정학 처분을 받으면서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이후 그는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과 위장 취업을 하면서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옛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2년 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해 1992년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는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하다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탄핵 역풍’으로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할 때도 원의원은 건재했다. 그만큼 지역구(서울 양천구 갑)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이다. 원의원은 특히 이번 조사에서 정치 분야뿐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차세대 리더 2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3위에서 올해 2위로 한 계단 오른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에게 ‘문화 시장(市長)’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여권의 차세대 여성 정치인 중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등 갈수록 정치적 리더십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판사 출신인 나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치 리더 3위로 선정된 것에 대해 “정치인의 키워드는 애국심과 봉사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없으면 정치인으로서의 목적과 열정을 상실하게 된다. 항상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묵묵하게 일하겠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한때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지적도 있었으나, 당 대변인과 정책조정위원장 등을 거치며 지금은 ‘일하는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나의원은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면서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했다.
나의원과 함께 정치 분야 공동 3위에 오른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강단 있게 저항한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최근에는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야권의 차세대 여성 정치인 리더로 새롭게 급부상했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의 부각도 주목된다. 권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고, 한나라당 내 소장 개혁 그룹인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한나라당 개혁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 공동 간사를 맡고 있다. 특히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으로 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군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4년 첫 직선제로 연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던 ‘운동권 학생 송영길’은 현재 3선의 관록을 갖춘 중량급 있는 정치인이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송의원이 내년 지방선거와 이후 정치 일정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올해 45세인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벌써’ 4선이다. ‘미래형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남의원은 특히 외교·통일 분야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민주당의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도 ‘주군’인 노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특히 친노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주권’ 모임에 참여하면서 향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진보신당에서 유일하게 금배지를 달고 있는 조승수 의원 역시 차세대 리더 10위 안에 들면서 진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서울시장? 불펜에서 몸 풀고 있다”
나를 1위로 선정해주신 전문가들이 그만큼 나에게 주문할 사항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그것을 잘 헤아려야 하는데 솔직히 쑥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지켜보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1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나’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인의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공인 의식이 중요하다. 정치는 공적인 일이다. 사적인 일과 연고, 감정, 우월감 등은 공인 의식을 왜곡시킨다. 정치인은 국민의 아픔과 상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국민 지향적인 가치관이 중요하다.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고민하나?
여당 소속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가 좀 더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어도 서로 끌어안는 포용과 통합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정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親)서민·중도 실용 정치를 하는데, 이것은 내가 항상 고민하는 것이고 내가 정치를 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올해 정치권을 평가한다면?
국회에 망치가 등장했고, 미디어 관련 법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다. 정상적인 표결을 통해 처리되지 못해 무척이나 속상했다. 한나라당은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 정책을 뒷받침했지만 정부를 견제하는 목소리는 약했다. 야당은 과거처럼 반대하는 역할을 했는데, 일관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10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지난 2004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들어가 선거법 개정 책임자로서 돈을 못 쓰는 선거로 바꾸었다는 점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아쉬운 점은 몇 년 전부터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가 불거졌는데, 당시 정부 관료들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해서 한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영세 상인을 위해서라면 그때 과단성이 있게 뚫고 나갔어야 했다.
정치를 불신하는 국민이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들은 ‘정치인이 사리사욕을 챙긴다’라고 의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사생활에서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정치인 원희룡’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강점은 나름대로 사명감과 공인 의식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나와 얽혀 있는 이해관계를 항상 깨끗이 정리하고 있다. 약점이 많은데 특히 ‘원희룡은 무엇이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부족하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오세훈 현 시장이 같은 한나라당이어서 현재로서는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담담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다만, 내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꼭 필요한 상황에 나가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다’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통일·국제·외교 분야의 차세대 인물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은 지난해에는 없었다. 조사 결과 이 분야의 차세대 인물로는 학계 전문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그 가운데 전재성 서울대 교수가 12%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국제 관계사 및 국제 정치 이론을 전공한 전교수는 현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미래외교안보분과 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교수는 이번 선정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라는 소감만 남겼다. 그는 지난 5월 서울대 워크숍에서 ‘우리나라도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가 된 만큼 전통적인 ‘단일 민족’ 국가를 상정한 기존의 통일 방안도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연성복합 통일론’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연성복합 통일도 궁극적으로 하나의 민족 국가를 이루려는 민족적 열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통일 시기가 늦춰질 경우 과연 한반도가 반드시 근대 민족 국가 형태를 가져야 하는지 새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2년째 정치 분야 차세대 인물 1위에 오른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통일·국제·외교 분야에서 10% 지지를 받아 2위로 꼽혔다. 원의원이 외교·안보 분야 차세대 인물로 꼽힌 것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도대체 원의원이 무슨 일을 했기에 이 분야 차세대 리더이냐’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야 전문가들은 원의원이 세계경제포럼이나 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하는 세미나 등 각종 외교·안보 행사에 참석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의원은 “지난 2004년부터 민화협 활동을 하면서 북한 인사들과 수십 차례 접촉해왔다”라고 말했다.
김근식·김용현 교수 3·4위…남경필 의원은 6위
김근식 경남대 정치언론학부 교수와 한국국제정치학회 북한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5위에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선정되었다.
6위 그룹에는 모두 17명이 포함되었는데, 학계 인사로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차두현 박사와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의 이정민 원장과 모종린·한석희 교수를 비롯해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동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석우 인하대 법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등이 올랐다.
관계 인사로는 외교부의 이충면 북미1과장과 김승호 제네바대표부 참사관,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이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기업인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었다. <시사저널> ‘차세대 리더 300인’ 기획에서 조사 대상 전문가 34%가 이전무를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꼽았다. 이전무가 기업 부문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것은 삼성그룹의 차기 총수라는 후광 덕이다. 삼성그룹은 계열사 59개를 거느리고 한 해 매출 1백91조원을 거두는 국내 최대 기업집단이다. 삼성그룹 수출액은 한국 경제 총 수출액의 20%를 웃돈다. 삼성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전무를 한국을 이끌 차세대 리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이전무는 그동안 경영권 승계 과정이 순탄치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2007년 삼성전자 전무에 오르면서 COO(최고고객책임자)를 맡아 경영권 승계를 서두르는 듯했다. 비자금 사건 탓에 지난 2008년 2월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까지 받으면서 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이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전무는 백의종군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인도·브라질 같은 신규 시장 개척에 나섰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에버랜드 전무까지 겸하자 삼성그룹 후계 구도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차기 총수로서 이전무의 입지는 명확하다. 그는 지금도 미국과 중국 지역 주요 거래선과 회의할 때에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참석하고 미국이나 일본 출장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동반한다. 혼자 미국이나 중국을 돌면서 애플·AT&T·닌텐도·소니의 최고 경영진과 면담하기도 한다.
지난 8월14일 이전무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서울고법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결심 공판에서 이건희 전 회장의 배임 혐의 유죄는 인정했으나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이어 8월27일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피고인 허태학·박노빈 전 삼성그룹 고위 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영권 편법 승계와 관련해 지난 13년 동안 이전무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논란이 일단락된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온갖 구설에 상관없이 (삼성의) 차기 후계 구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전무는) DJ 조문을 비롯해 경조사마다 이 전 회장과 어김없이 동행하고 있고, 그룹 경영 시스템 안에서 최고 경영진과 현장 실무자와 교류하며 (최고경영자로서) 경험과 인맥을 쌓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인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2위에 오른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조사 대상 전문가의 24%가 최회장을 꼽았다. 최회장은 국내 제3위 기업집단 총수이다. 이재용 전무가 차기 총수라면 최회장은 현직 총수이다. SK그룹은 에너지·화학·통신·건설 분야에서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집단이다. SK그룹 총 수출액은 38조7천억원이다.
최회장은 ‘SK 불사론’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SK그룹은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었으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회장이 내건 비전은 ‘글로벌 SK’이다. 최회장의 ‘글로벌 SK’를 향한 행보는 지난해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한 해 100일가량을 외국에서 보낸다. 지난해 비행기로 움직인 거리는 지구 세 바퀴에 해당하는 11만9천40㎞였다.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 시노펙이 추진하는 에틸렌 생산 공장 건설에 SK에너지가 참여하는 길도 마련했다.
최회장은 조만간 국내 주식 부자 5위에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최회장이 지분 44.5%를 보유한 SK C&C가 오는 11월11일 상장하면서 주식 가치가 6천6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국내 주식 부자들의 지분 가치 합계액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최회장은 1조38억원으로 12위를 차지했다. SK C&C가 상장되면 최회장이 소유한 지분 가치는 1조6천7백여 억원으로 늘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1조6천3백95억원)을 제치게 된다.
안철수 교수·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명성 확인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3위(22%)에 올랐다. 안교수를 차세대 리더로 꼽은 이는 11명이나 된다. 최회장과 비교해 1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안교수는 기업 총수라는 지위나 후광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에 힘입어 3위에 올랐다. 안교수는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창업해 백신 프로그램 부문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제 국내 벤처 분야의 모범 경영인을 뛰어넘어 한국 기업 경영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4위(14%)에 올랐다. 정부회장은 지난 8월21일 현대차 기획·영업 담당 부회장에 올랐다. 현대·기아차그룹 총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이 흔들리는 와중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승승장구하면서 정부회장이 기아차 최고 경영진으로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생겼으니 ‘태자’ 책봉을 이참에 마무리한 듯하다.
현대·기아차그룹 내부에서는 정부회장에게 더 이상 ‘경영 수업’이라는 수사를 붙이지 않는다. 김익환 전 기아차 부회장이 한때 정부회장 교육을 담당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 정부회장 교육을 맡은 이는 없다.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정부회장은 이제 개인 교수에게 경영 수업을 받을 단계를 넘어섰다. 최고경영자 신분으로서 회사 시스템 안에서 실무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차기 총수에게 필요한 경험을 쌓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회장은 차기 총수로서 포스트 MK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 밖에 기업인 부문에서 차세대 리더로 꼽힌 이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0%), 정태영 현대캐피탈 대표(4.0%), 김범수 NHN 전 대표(4.0%)로 나타났다.
산업은 활발하게 가동되나 금융이 멈추면 한국 경제호는 제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에 걸맞은 금융 산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한국의 금융 산업은 여전히 취약하다. 금융 분야 전문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을 조사했으나 의미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조사 대상 가운데 28명(56%)이 모른다고 답변했다. 12명(24%)은 잘못 알고 답변했다. 국내 금융 전문가 80%가 한국 금융 산업을 이끌 차세대 리더를 지목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경철 머니투데이 전문위원, 김윤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이사관,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최상목 기획재정부 미래전략정책관, 이병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 이상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추경호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김광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 센터장, 전병조 NH투자증권 전무가 1표씩 얻었을 뿐이다. 그나마 거론된 인사 12명 가운데 8명이 금융 감독 당국 소속 공무원이었다. 한국 금융이 아직까지 관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치인이 상위권에 포진했으며 특히 차세대 리더로 새롭게 떠오른 이들이 많았다. 지난해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에 이어 2위에 올랐던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압도적인 지지(14%)를 받으며 1위에 올랐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차세대 리더 2위에 새롭게 올라온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4%)보다도 10% 높은 지지를 받았다. 나의원은 “여성계의 트렌드가 바뀐 것 같다. 여성계가 여성 중심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남녀 구별 없이 일해야 하고 남성과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 지지율을 얻은 3위 그룹에는 12명이 공동으로 올랐는데 장한나 첼리스트가 3위 자리를 그대로 지켰으며, 지난해 공동 4위였던 방송인 김미화씨와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한 계단씩 올랐다. 3위 그룹에는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정희진 여성학자, 고유경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김소연 우주비행사, 이연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 표은영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우성화 티켓링크 부회장 등 아홉 명이 새롭게 올랐다.
<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강의는 카이스트 내에서 인기 강좌로 알려져 있다. 강의평가 점수가 5.0 만점에 4.8점이라고 한다. 안교수의 수업은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대학에서 정착시켜야 할 방식이지만 시도하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안교수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라며 강단에 선 현실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기술경영대학원 지도교수직까지 맡아 대학원생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안철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진행 중이다. 그의 영향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IT 전문가들은 이번 IT업계의 차세대 리더를 묻는 질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안철수 교수를 1순위로 꼽았다. 42%의 지목률이다. 안철수 교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도 선정되어 2관왕에 올랐다. 그는 최연소 의학박사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백신 프로그램인 ‘V3’를 개발하며 보안업계에 뛰어들었고, 잘나가는 ‘안철수연구소’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뒤 자신은 와튼스쿨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신분으로 현장이 아닌 강단에서 학생들과 대면하고 있다.
물론 그는 “저는 현장 일을 더 잘하지만요…”라고 말한다.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뒤 그가 생각했던 새로운 안철수의 모습은 ‘벤처캐피탈리스트’였다. 벤처캐피탈리스트는 말 그대로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해 투자하는 사람이다. 안교수의 이력과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그 역시 아직 한국에서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곳은 대학이었다. “자신의 현장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안교수와 안철수연구소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그에게 중요한 곳이다. 다만, 이제는 경영인이 아닌 이사회 의장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 안교수는 “이상적인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 분담 체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최휘영 NHN 대표는 기존의 IT업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기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대표는 뉴스와 친숙하다. 그는 야후뉴스를 히트 상품으로 만들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NHN으로 옮겨와 만든 작품이 바로 지식검색이었다.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대표직에 올랐다. 창업 멤버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처음이다.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는 곧 사그라들었다. 최대표의 재임 기간 동안 NHN은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2004년 2천2백93억원이던 NHN의 매출액은 2008년 1조2천81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만 4천9백12억원, 순이익은 3천6백57억원을 기록했다. NHN 대표의 임기는 3년. 하지만 그의 연임은 당연했다. 창업 멤버는 아니지만 창업 멤버가 지지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최대표이다.
김희정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도 차세대 리더로 점수를 얻었다. KISA는 지난 7월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등 3개 기관이 통합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조직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조직 중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바빠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도 새롭게 지목돼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올해 ‘차세대 리더’ 게임 부문에서 2위에 올라 있다. 이번 IT업계 조사에서도 김대표는 표를 얻었다. 전문가들이 게임계의 아이디어뱅크라고 불리는 김대표를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트위터 붐이 일어나면서 바빠진 사람이 있다. ‘아래아 한글’을 만든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빠르게 소통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전도사로 활동하는 중이다. 특히 애플의 ‘아이폰’을 예찬하는 이대표를 통한다면 네티즌들은 아이폰에 관한 정보를 더욱 빠르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블루오션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허진호 네오위즈 대표는 인터넷 1세대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한 명인데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9월21일에는 8백25만 금융 소외 계층에게 소액 대출 기회를 제공하는 오픈머니마켓 ‘팝펀딩’의 대표까지 맡았다. 그를 지목한 전문가도 눈에 띈다.
이준호 NHN COO(최고운영책임자)는 네이버의 검색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검색 분야의 대표적인 1세대로 현재도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을 담당하고 있다. 숭실대 교수를 거쳐 지난 2007년부터는 NHN의 일본 검색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성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IT 젊은 과학기술자상’ 수상자이다. 이 상은 전기·전자 분야의 국제적인 기관인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와 대한전자공학회(IEEK)가 공동으로 40세 이하의 젊은 과학자에게만 수여하는 상으로 국제적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교수가 전공하는 분야는 무선랜이다. TV 광고에서 들을 수 있는 ‘인텔 센트리노 기술’이 대표적이다.
게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IT부문에서도 이름을 올렸다. 현 Daum의 초석을 닦은 이재웅 Daum 전 대표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할 일 찾아라”
의학 상식이 풍부한 정도이다. 의사 친구들이랑 만나면 의학 용어는 이해가 가능하다. 20대 때 외웠던 것이라 그런지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의사라는 자각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카이스트에서 교수를 제안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카이스트에서 풀타임 수업을 하는 전임 교수 자리를 제안했을 때 고마웠지만 고민도 많았다. 나는 현장에서 일을 더 잘하는 타입이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카이스트에서 그동안 다른 학위를 따고 책도 쓰고 그렇게 학구적으로 보낸 시간을 평가해주셨다.
스스로를 “비효율적으로 살아왔다”라고 말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 ‘비효율성’이 성공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지 두려워서 도전조차 하지 못한다.
효율성이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이 획일적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선택지가 줄어든다.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고 해서 병원이 모두 잘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잘되지 못한다.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성공인지가 중요하다.
멘토가 있나? 어떤 분인가?
멘토라면 만나서 조언도 듣고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멘토보다 롤모델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다. 의사일 때, 경영자일 때, 교수일 때마다 롤모델이 다르다. 주로 책에서 그런 롤모델을 하나하나 많이 찾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안교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올곧은 성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반기업 정서 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기업과 기업인을 동일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그동안 부도덕한 기업인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기업과 기업인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용기를 내는 것은 젊은이들의 몫’이라고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맞다. 사회가 예전보다 젊은이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재기가 어렵다.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지지 않고 안정을 추구하도록 강요한다. 벤처가 어려워지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저출산 문제가 지금은 현실이 되었듯이 10년 정도 지나면 일자리가 부족하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나?
내가 강단에 있는 이유도 그런 노력이다. 그런 뒷받침을 해주기 위해서다. 자문위원회 같은 데나 중소기업청 같은 곳에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갑갑한 부분이 있다. 오래 걸린다.
‘안철수연구소’의 비정규직은 얼마나 되나?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더라. 하지만 안철수연구소도 중소기업이라 다른 곳에 비해서는 정규직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청년들이 비정규직화되어가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정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일자리의 질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질도 좋아질 수 있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하고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이 있다면.
좋은 책은 너무 많아서…. 책을 추천하기보다는 작가를 추천해주고 싶다. 최근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재미있게 읽었다. 뉴요커의 칼럼니스트인데 이 사람 책은 나오면 본다. 토마스 프리드먼의 책도 추천하고 싶다.
곽승준 위원장도 기대 모아
교육 분야에서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이차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실세 3인방’으로 불린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를 맡았다가 이명박 정부 첫 교육과학문화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대통령 교육 공약 대부분이 이차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촛불 정국에서 청와대 쇄신 인사 때 물러났다가 올해 1월 교과부의 ‘1급 물갈이’ 파동을 겪은 후 차관으로 들어갔다. 장관급 차관이라고 해서 ‘왕차관’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1위에 올랐던 조영달 서울대 교수가 올해는 한 단계 내려앉았다. 조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41세의 젊은 나이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역임했을 만큼 교육 분야에 대한 식견이 넓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사범대학회의 의장이 되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현택환 서울대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 높은 지명도 재확인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은 교육계에서는 꽤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다. 박총장은 광주교대에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호남 유일의 교육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총장은 올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전남 지역의 농어촌 지역 고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입시설명회를 개최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곽위원장은 이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인연을 맺은 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해 새 정부의 공약을 만들었다. 지난해 6월 청와대 인적 쇄신 때 국정기획수석에서 물러났다가 일곱 달 만에 미래기획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곽위원장은 지난 4월2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학원에서 밤 10시 이후에 교습을 금지시키고 외고 입시 제도를 개편하겠다. 학원들은 반대하겠지만, 1천만명 이상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우리 편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사교육과의 전쟁’에 신호탄을 올리기도 했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차세대 한국을 이끌어 갈 과학자로 꼽힌다. 지난해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캡슐을 개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스> 2월호에 연구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천진우 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최근 세계적 학술 저널인 <어카운트 오브 케미컬 리서치>의 시니어 에디터로 선임되기도 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조사 결과를 받고 순위에 이름을 올린 젊은 과학자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과학기술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준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지난해와 같은 인물이다. 2006년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 2007년 제7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2008년에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을 수상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이다. 김교수의 수상은 비단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상이 증명해주듯 김교수가 쓴 여러 편의 논문은 생물학 분야의 상위 저널에 게재되어 있다.
‘과학에 대한 진지한 자세’ 역설
김교수의 관심 대상은 마이크로RNA(micro RNA)이다. 일명 ‘미르’라고 불린다. 미르는 DNA의 유전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일반 RNA보다 크기가 작은 RNA이다. DNA나 RNA 등에 달라붙어 단백질 합성 과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이런 과정들을 조절할 수 있다면 질병을 만드는 유전자를 자유롭게 차단할 수 있다. 미르의 유전자 조절 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암이 발병한다는 연구도 나온 바 있다. 김교수를 겪어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인간됨을 더 강조한다. 그들은 김교수를 두고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듣지 않고 끝까지 듣고 함께 토론해주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교수’라고 말한다. 김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진지한 자세’이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나노 물질 분야의 권위자이다. 국내에서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상위 0.1%에 포함된다. 피인용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논문을 썼다는 뜻이다. 현교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1년이다. 특히 2001년 12월에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한, 크기 분리 과정 없이 균일한 나노 입자를 제조한 연구 결과를 담은 나노기술과 관련한 논문이 학계로부터 주목되었다. 지난해 현교수 연구팀은 획기적인 나노 물질 제조 기술을 이용해 다공성 나노 입자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이것은 ‘암 진단·치료용 나노 전달 물질’로 사용될 수 있다.
현택환 교수는 국내에서 논문 피인용 횟수 가장 많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를 여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과학기술과 IT의 경계선이 모호한 탓도 있지만, 안교수가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영욱 연세대 교수는 유학 시절부터 유명했다. 예일 대학 천문학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끝냈고, 1990년 예일 대학 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은 뒤 29세의 젊은 나이에 나사(NASA)의 허블펠로십을 받았다. 지금은 연세대에서 자외선 우주망원경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이교수의 논문을 인용한 국제 피인용 수는 5천회가 훌쩍 넘는다. 2006년 <네이처>에 연세대 이석영 교수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타원 은하는 보통 나이가 많은 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젊은 별도 있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최근에 국내 과학자 중에서 세계 최상위권 과학 저널의 에디터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0월2일 천진우 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학술지 <ACR(Accounts of Chemical Research)>의 시니어 에디터로 선임되었다. ACR은 최상위 1% 안에 드는 학술지로 화학 분야의 3대 저널 중 하나이다. 천교수 팀은 지난 5월 카이스트 생명과학부 박태관 교수팀과 함께 15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산화철 입자에 암 추적용 생체 입자인 펩티드와 암 치료를 위한 ‘작은 간섭 RNA(siRNA)’ 조각과 형광물질을 결합시켜 새로운 나노 입자를 개발했다. 암세포의 진단과 치료 및 영상 촬영까지 한 번에 가능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지난 60여 년간 세계 수학계의 난제로 남아 있던 ‘세베리의 추측’의 오류를 증명하고 새로운 4차원의 존재를 발견한 박종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를 꼽은 전문가도 있었다. 박종일 교수팀은 이용남 서강대 교수팀과 함께 구(球)와 비슷한 새로운 4차원 곡면 구조물을 찾아냈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4차원 구조체 이론에 오류가 있음을 입증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 역시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랐다. 새로운 결과는 세계 3대 수학 학술지 중 하나인 <인벤쇼네스 마테마티케(Inventiones Mathematicae)>에 게재되었다.
최근 대장균에서 나일론 원료인 다이아민(diamine)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카이스트 생명과학공학과의 이상엽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이교수는 지난해 세계적인 화학·제약회사인 머크(Merck)사가 제정한 ‘머크 대사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상은 매년 대사공학 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1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변호사]‘오세훈 서울시장’ 말고 변호사 없나
오세훈 서울시장(48)이 쟁쟁한 변호사들을 제치고 변호사 부문 차세대 리더 1위로 꼽혔다. 오시장의 ‘변호사 1위’는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 절반이 ‘모름’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아서는 이 부문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인물이 없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오시장이 변호사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부터. 일조권 개념이 생소하던 그때,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뒤를 이어 이제호 변호사(43), 조국 서울대 교수(44) 등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9월20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선임된 이제호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국회 파견법관,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최근까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해왔다. 조국 서울대 교수(44)는 최근 진보와 평등을 다룬 책 <보노보 찬가>를 출간했다.
[관광] 다양한 관광지만큼 직업도 ‘다양’
지난해 조사에서 상위권은 대부분 대학 교수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학계와 업계, 연예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관광맨’들이 골고루 꼽혔다. 1위에는 지난 7월 2년 임기인 한국관광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한범수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와 전남 해남 화원관광단지를 조성한 고종화 한국관광공사 중문골프장 팀장이 공동으로 선정되었다.
10명이 꼽힌 2위 그룹에는 한양대 호스피탈리티 아카데미 부원장으로 국내외 관광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조민호 한양대 교수를 비롯해 장병권 호원대 교수, 강신겸 전남대 교수, 차석빈 순천향대 교수, 윤세목 경기대 교수 등 대학 교수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송재호 원장과 류광훈 연구위원, 백현 롯데관광개발 부사장 등도 차세대 리더로 부상했다. 특히 최근 여행 작가로 변신한 ‘욘사마’ 배용준씨와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진행하고 있는 강호동씨 등 인기 연예인들도 이 분야의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어 눈길을 끌었다.
[환경]‘초록빛 지구’ 미래 일구는 데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환경 부문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차세대 인물들이 대거 물갈이 되었다. 지난해 1위였던 안병옥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2위로 밀려났다. 새로 1위에 오른 인물은 이경율 국토환경재단 이사장이다. 이이사장은 환경 분야에 여러 가지 직함이 있다.
지난해 설립된 환경실천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올해 제2대 회장으로 연임되었다. 월간 <녹색코리아> 발행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부 부처의 NGO(비정부기구) 부문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6대부터 지금까지 정기국회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18대에는 모니터단 공동단장을 맡았다. 이외에도 KBS 라디오 환경 부분 자문위원, SBS 환경프로그램 자문위원을 거쳤고, 올해에는 해양환경국민운동연합 자문위원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한때 사업가의 길을 걸었으나 외환위기 때, 하던 사업을 접고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락한 안병옥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환경운동연합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환경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열두 살 환경운동가 조나단 리도 이름 올라
올해 새로 부상한 차세대 리더들 가운데 올해 열두 살인 조나단 리(한국명 이승민)가 눈길을 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린이 환경운동가인 조나단 리 ‘GoGreenman’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세계적인 환경만화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친환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그린맨은 세계를 지키는 슈퍼히어로로 지구 온난화, 수질 오염 등 다섯 가지의 미션을 수행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이다. 올해 인천세계환경포럼 유소년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밖에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국시모) 사무처장, 송지현 세종대 교수, 남광희 환경부 기획재정담당관이 새로 주목되는 차세대 인물들이다. 특히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이 눈에 띈다. 그녀는 오는 2012년까지 환경재단을 ‘아시아의 대표적인 환경단체’로 만드는 것이 포부이다.
환경 부문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차세대 인물들이 대거 물갈이 되었다. 지난해 1위였던 안병옥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2위로 밀려났다. 새로 1위에 오른 인물은 이경율 국토환경재단 이사장이다. 이이사장은 환경 분야에 여러 가지 직함이 있다.
지난해 설립된 환경실천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올해 제2대 회장으로 연임되었다. 월간 <녹색코리아> 발행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부 부처의 NGO(비정부기구) 부문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6대부터 지금까지 정기국회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18대에는 모니터단 공동단장을 맡았다. 이외에도 KBS 라디오 환경 부분 자문위원, SBS 환경프로그램 자문위원을 거쳤고, 올해에는 해양환경국민운동연합 자문위원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한때 사업가의 길을 걸었으나 외환위기 때, 하던 사업을 접고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락한 안병옥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환경운동연합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환경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열두 살 환경운동가 조나단 리도 이름 올라
올해 새로 부상한 차세대 리더들 가운데 올해 열두 살인 조나단 리(한국명 이승민)가 눈길을 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린이 환경운동가인 조나단 리 ‘GoGreenman’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세계적인 환경만화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친환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그린맨은 세계를 지키는 슈퍼히어로로 지구 온난화, 수질 오염 등 다섯 가지의 미션을 수행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이다. 올해 인천세계환경포럼 유소년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밖에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국시모) 사무처장, 송지현 세종대 교수, 남광희 환경부 기획재정담당관이 새로 주목되는 차세대 인물들이다. 특히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이 눈에 띈다. 그녀는 오는 2012년까지 환경재단을 ‘아시아의 대표적인 환경단체’로 만드는 것이 포부이다.
참여연대 출신 시민운동가들이 약진했다. 차세대 리더로 거론된 다섯 명 가운데 세 명이 참여연대 소속이다. 지난 1994년에 공식 출범한 참여연대는, 의정 감시 활동과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 등을 통해 대표적 시민단체로 자리매김했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48)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하위원장은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7년간 활동가로 일하다가 결별했다. 그는 2000년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를 직접 만들어 정부의 예산 낭비 사업을 감시·감독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전문화된 운동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총 1천억원대의 세금 낭비를 막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위원장은 이런 활동에 힘입어 지난 2002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아시아 차세대 리더의 한국인 12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참여연대 삼총사’ 약진에 눈길
현재 하위원장은 2008년부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2년째 맡아오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희망과 대안’이라는 이름 아래 대안적 정치 메시지를 전하는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시민운동이 변화된 상황에 맞게 거듭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들을 이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하위원장 다음으로는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42)이 꼽혔다. 사무처장은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5년에 참여연대에 합류했다. 정책실장과 사무국장을 거쳐 지난 2007년부터 사무처장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시민과 소통하는 시민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민생 문제 중심의 사회개혁 운동에 전력하고 있다. 이밖에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39), 김기식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43),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45) 등이 뒤를 이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촛불 집회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참여연대 창립발기인으로 15년째 참여연대에서 활동해 온 그는 지난해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겸임하며 촛불 집회 한복판에 섰다. 촛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지만, 지난 4월에 보석으로 풀려나 참여연대에 복귀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제2의 박원순’으로 불린다. 지난 2002년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던 박원순 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김 전 처장에게 물려주었다. 김처장은 그 후 5년 간 사무처장을 맡아 일했다.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석면 전문가 최예용 환경연합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도 순위에 올랐다. 환경운동권에서는 몇 안 되는 박사급 전업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영국 런던 대학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을 이수한 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환경보건학을 전공해 박사 과정을 마쳤다.
복지 분야에서 50세 이하 차세대 리더로 꼽힌 인사는 이성규 서울복지재단 대표,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 정진모 서울시 사회복지사협회장,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등 순.
서울시립대 교수인 이성규 서울복지재단 대표는 스스로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김영삼 정권 때 청와대 사회복지수석실 행정관으로 있었고, 이후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원장 등을 거치며 복지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대표는 최근 주목된 희망드림프로젝트 등 이른바 ‘서울형 복지’를 창안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자살 예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76년 설립된 한국생명의전화는 24시간, 연중 무휴로 자살 관련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17개 센터에서 6천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정진모 전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장도 복지 분야에서 공로가 많다. 현재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복지경영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료] 건강보험만으로 건강한 나라 만들기
이진석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의료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의료계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공공의료 서비스의 범위와 품질 향상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교수는 “병원 간 의료 품질에 큰 편차가 있다. 환자가 중소 병원을 외면하고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이유이다. 또, 중복 검사와 같은 의료 과잉이나 의료 오용이 많아 국민이 피해를 본다”라고 의료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교수는 그 해결책으로 국민건강보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 품질을 높이려면 공공의료비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의료비에서 공공의료비의 비중이 55% 정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5%에 도달하려면 1인당 연간 4만~4만5천원 정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민간 의료보험료로 매년 1인당 10만원씩 쓰는 것에 비하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민간 의료보험에 들지 않더라도 국민건강보험으로 웬만한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의료인으로는 조홍준 울산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이상이 제주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선정되었다.
개성 있는 작품으로 왕성한 활동 펼쳐 공동 1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로 뽑힌 이불과 공동 1위인 서도호, 4위인 최정화는 ‘글로벌 플레이어’이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이불은 1990년대부터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등을 수상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이불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재언씨는 “엽기적이고 음란해 보이면서도 반항적이고, 그러면서도 우수와 여운이 주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라고 평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그런 도발적인 이미지가 익숙해져서인지 몰라도 이불의 작품은 최근 초대형 복합쇼핑몰에 설치되는 등 대중과 친숙해지고 있다.
이 복합쇼핑몰 외부에는 서도호의 설치 작품 <카르마>도 설치되었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서도호는 요즘에는 베를린에서 1년 예정으로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20대에 미국으로 활동 본거지를 옮긴 그는 자신의 서울 성북동 한옥집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 적극 반영해 세계의 미술 관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한옥이 미국 서부의 어느 가옥으로 떨어진 이미지를 형상화한 설치 작품에 대해 “집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문화의 결정판이고,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되 신체에 대한 해석이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내 작품 속) 건축과 옷은 이같은 동·서양의 시선 차이를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공동 1위에 오른 조강훈 미술협회 경기도지회장은 내년 1월에 예정되어 있는 미술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4위에 오른 김수정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작가이다. 김두섭·박금준 등과 더불어 3세대 디자이너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소리 혹은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는 다양한 컴퓨터그래픽 작업에 주력하고 있는 그는, 퓨전 타악 그룹 ‘공명’과 국내 최초로 음악과 그래픽의 영상 협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와 손을 잡고 ‘모바일폰을 위한 시각적 패턴의 표피’라는 산학 협동 프로젝트도 선보였고, 지난해 정부의 여권 디자인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뽑히기도 했다. 해외 여행객들은 조만간 그의 작품을 하나씩 소장하게 될 전망이다.
최정화 작가, 장르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지도 높아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펴는 작가 중 한 명인 최정화씨는, 요즘은 옛 기무사 건물 옥상에 플라스틱 소쿠리로 거대한 장벽을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10월22일 시작하는 ‘기무사 부지 미술관 전환 기념전’에 출품하는 <총, 균, 쇠 2009>라는 작품이다. 그가 최근 몇 년간 벌여온 소쿠리 작업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정화는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미술 작업을 진행했고, 출판사 아트디렉터, 건축디자인과 교수 등의 이력에서 보듯 영화, 인테리어, 설치미술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왕성한 활동을 펼쳐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김대진 등 국내파 연주자들 두각
음악계의 전문가들은 50세 미만의 음악계 인사 중 누구를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차세대 리더로 지목했을까? 국내 전문가들은 첼리스트 장한나씨를 첫 번째로 지목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던 장한나는 이번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국내 활동도 많이 했다. 1994년 12세의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장한나는 국제적 연주자로서 차근차근 경력 관리를 받아온 경우이다. 천재 소녀 첼리스트에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철학도로, 첼로 연주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자신의 외연을 확장해나갔다. 지난 9월에 지휘자로 국내 무대에 섰던 장한나는 10월 중순 베스트 음반을 내고 11월18일부터 첼리스트로 돌아와 브람스의 <첼로 협주곡>을 들고 전국을 돈다.
2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아홉 살에 데뷔한 이후 세계적인 연주 단체와 연주회장에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연주한 경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신동 소리를 듣던 거의 모든 천재들이 겪는 딜레마도 그녀를 비껴간 듯하다. 20대가 된 이후에도 그녀의 음악적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다. 1991년 아홉 살 때, EMI 클래식과 전속 계약한 이래 18년 동안 18장의 앨범을 발매한 장영주는 오는 11월 초, 19번째 앨범 <브람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내놓고 12월 말부터 국내 투어를 하며 음악팬과 만난다.
2위 장영주, 12월 말부터 국내 투어 연주 예정
3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국내파의 대표 주자로 최근 들어 절정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 스스로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고, 김선욱 등 뛰어난 음악 영재들을 배출해 온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청소년음악회 등 열린 음악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2007년 금호아트홀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실내악 운동을 주도했다.
지난 조사에서 10위에 머물렀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이번 조사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에게 배운 김선욱은 2006년 18세의 나이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기록을 남겼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순수 국내파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하반기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10위에서 4위로 뛰어올라
5위를 차지한 작곡가 진은숙은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과 쇤베르크상(2005년) 수상자로 클래식 작곡계에서는 당대 최고 스타 중의 한 명이다. 그녀에게 작곡을 의뢰한 이들이 줄줄이 밀려 있다.
2007년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독일에서 초연되어 DVD로 발매되는 등 호평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관현악곡 <로카나>를, 지난 8월에는 영국의 명문 음악제인 BBC 프롬스에서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이 초연되었다. 이어 같은 달에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진씨의 생황 협주곡이 초연되었다. 이 곡은 지난 9월 미국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의 취임 콘서트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6위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소프라노 조수미가 차지했다. 내놓는 앨범마다 국내 클래식 차트 상위권을 휩쓸다시피 하는 그녀는 지난 9월 말 빈필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합동 콘서트를 열어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7위에 선정된 강충모는 1999~2003년에 걸쳐 바흐 건반 음반 전곡 연주라는 대기록을 세운 진지한 연주자이다. 피아니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서, 음악 기획자로서 클래식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공동 7위는 피아니스트 유영욱이다. 10세에 첫 작곡 발표회를 열어 천재 꼬마 작곡가로 언론에 소개되었던 유영욱은 스페인 산탄데르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독일 본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유럽 쪽에서는 그에게 ‘베토벤의 환생’이라는 별칭도 붙였다고 한다. 연세대 음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내에서 앨범도 발매하고 공연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또 다른 공동 7위인 손열음과 박종훈 역시 피아니스트이다. 10위권 안에서 무려 여섯 명이 피아니스트이다. 반면, 현악으로 분류되는 첼로와 바이올린은 세 명뿐이다. 가히 피아노가 국민 악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손열음은 예종에서 김대진 교수에게 배운 국내파 피아니스트이다.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동안 뜸했던 여성 피아니스트 신동의 계보를 잇고 있다.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클래식의 FM 진행자로, 가요를 클래식음악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등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공동 7위인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는 말이 필요 없는 국내의 대표적인 첼로 연주자이다. 연세대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한편, 2007년에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실행한 데 이어 올해에는 슈베르트 첼로 소나타로 전국 투어를 벌였다.
[소설가·시인] 현실 놓치지 않는 작가를 이 시대는 바라고 있다
최근 펴낸 소설집 인기와 함께 가장 주목받아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이 한때 번성하고, 지난해와 올해 여성 작가들이 쓴 ‘위로의 편지’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문학의 흐름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던가. 한 출판 평론가는 몇 년 동안 문학 분야에서 출판의 흐름을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국내 문학 분야가 침체되었다고 말했고, 신진 작가들은 출판계의 현실에 절망하고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예술원 원장은 지난해 제1회 동아시아 문학 포럼에서 문학 독자의 현격한 감소를 예로 들어 “문학의 존속이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동아시아 3국에서 문학이 쇠퇴하고 있다며, 낭만주의 시대 주류였던 시가 변두리로 밀려났듯 본격 소설도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원장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 앞에 문학인들의 선택은 현재의 문화적 포퓰리즘에 굴복할 것인지 비판 정신으로 무장한 기존의 문학 전통을 이어나갈 것인지 기로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문학 현장은 ‘소망이와 희망이, 그리고 절망이’가 함께 섞여 갈팡질팡하며 혼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의 본질에 충실하고, 문학이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젊은 작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었다. 이 사실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인지 올해 차세대 인물 1, 2위에 오른 두 문학인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되지 못했어도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소설가와 시인이었다.
차세대 인물로 가장 많이 지목된 작가는 소설가 김연수씨였다. 김씨는 지난 1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최근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내고 이전과 사뭇 다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씨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국민 작가’가 되기보다는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독자들을 겨냥한 작품들만 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에게 국내 문학에 위기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인생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복잡하다고 해서 회피할 수는 없는데도, 귀찮다는 이유로 다들 회피하려고 든다. 최대한 복잡한 일들에 직면하는 시기를 늦춘다. 이런 식의 회피가 일반화되면, 사람들이 깊이 있는 문학을 외면하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위기란 그런 것이다. 인생이 점점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그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대로 표현해야만 하는 소설 같은 것을 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회피해도 소설가는 회피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소설가는 엇나가는 인생에 대해서 사실대로 써야만 한다”라면서 자신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소설로써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김씨를 바짝 추격하며 2위를 차지한 문태준 시인. 공교롭게도 김연수 작가와 같은 경북 김천 출신인 데다 중·고교 동창생으로 잘 알려져 눈길을 끈다. 최근 문시인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 김연수 작가가 등장해 우정을 확인했다. 문시인은 “김연수 작가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 축하한다”라며 김작가와는 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라고 말했다. 문시인은 지난해에도 상위권에 포함되었는데, 지난해 차세대 인물 공동 1위를 차지했던 두 여성 작가보다 많은 지지를 얻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드물게 같은 수의 지지를 얻어 공동 1위에 올랐던 신경숙·공지영 작가는 올해 조금 적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기는 올해도 식을 줄을 몰랐다. 신경숙 작가는 지난해 말에 펴낸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100만부 판매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3개월 이상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던 그 책의 흥행으로 봄과 여름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편, 공지영 작가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해 화제가 되었던 장편 <도가니>를 출간해 큰 호응을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건재함을 증명해 보였다.
문학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듯 크게 눈길 끄는 신진 작가는 없어
그 밖에도 안도현 시인, 김영하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박민규 소설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안도현 시인은 따로 시집을 엮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안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국장 때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자신이 쓴 조시를 직접 낭송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영하 소설가는 지난 1월에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펴내 각국을 여행하면서 성찰한 것과 내밀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몇 년째 여행기를 내면서 여행의 의미와 참맛을 전하는 작가로도 통하고 있다. 성석제 소설가는 자신만의 문장론을 담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을 정리해 올해 초 펴냈다. 여러 매체에 글쓰기 또한 빠지지 않아 그의 입지는 올해도 견고했다고 볼 수 있다. 박민규 소설가는 최근 소설 <근처>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 7월 펴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뽑힌 차세대 인물 중에서 새롭게 이름을 올린 문인은 함민복 시인, 이승우 소설가, 공광규 시인 등이다.
함민복 시인은 최근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고, 지난 7월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를 펴내 어린이들의 사랑도 받았다. 이승우 소설가는 지난해 말 소설집 <오래된 일기>를, 공광규 시인은 시집 <말똥 한 덩이>를 펴내 눈길을 끌었다.
신세대 작가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새로운 형식을 거론하며 문학의 위기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출판과 문학을 따로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출판인과 생존과 도약을 꿈꾸는 일부 작가들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
외국 유명 작가에게 거액의 선인세를 주면서 국내 작가들에게는 출판계의 현실을 들어 적은 액수조차 깎으려 드는 환경에서 국내 작가들이 책을 내고 싶은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만 연명할 수 있는 풍토에서는 차세대 문학인은 물론 신인들의 분투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소설가와 시인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한 분야의 지식인으로 자부심을 가지던 시대는 지나간 것일까. 소설가 지망생, 시인 지망생이 그런 대로 존재의 이유를 가질 수 있었고, 가난하다 해도 그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일 수도 있었던 시대가 손에 잡힐 듯한데, ‘절망이’를 닮은 한 문인은 월간 문예집에 단편을 기고해 받은 원고료 30만원을 들고 나타나, 소주 한 잔 마시고 닭발 뜯으며 성토했다. 지난해 국내 전업 작가들의 평균 수입을 조사한 한 통계에 따르면 평균 월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말이다.
“암담한 사회라 낙천적인 소설 쓰겠다”
내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내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최근 신작이 이전 작품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이라도 있어서인가?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야심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예전 작품들을 쓸 때는 꼭 이루어내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다. 새로운 단어를 많이 쓴다든가, 유려한 문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거나, 역사적인 사건들에 도전한다거나. 하지만 이번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은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것들이다. 그렇게 하니까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집에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고민한 것들이 눈에 띈다. 특히, ‘용산 참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더라.
이것도 그냥 쓰고 싶었다. 용산 참사는 나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 또한 사회의 일원이니까 그 일이 그대로 잊혀지지 않도록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도 블로그를 만들어서라도 글을 썼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눈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죽어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변했다는 사실만은 말하고 싶었다.
16년 전 시로 등단했다. 등단할 때와 지금의 작품을 비교해 변한 것이 있나?
많이 바뀌었다. 바뀌는 게 맞는 것 같고. 등단할 때는 새로운 문학을 하고 싶었다. 문학 하면서 폼도 잡고, 멋도 내고 싶었으니까. 머리도 기르고, 이상한 말도 많이 하고, 괴상한 이야기들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문학 하면서 폼도 잡고 멋도 내는 일이란 그 시점에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쓰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다들 느끼겠지만, 내가 얼마나 하찮은 소설가인지 알게 된다. 매번 한계를 느끼는데, 창피해서 그만 쓰고 싶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각들이 나를 좀 살려주는 것 같다.
사회가 양극화하고 있다. 논객들도 보수와 진보로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정부는 ‘중도 실용’을 내세우기도 한다. 작가의 입장은 어떤가.
이 정부가 들어선 뒤에 사람들은 이 나라는 권력과 부가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승자 독식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별로 좋지 않은 사회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입장이다. 권력과 부가 있으면 반드시 관용도 함께 가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쪽에 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이라고 말했다는데, 지금의 3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가장 낮았을 때가 바로 서른 살 무렵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하려고 보니까 완전히 밑바닥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밑바닥을 확인한 뒤로는 어쨌거나 좋아지고 있다. 다시 거기까지 내려가지 않는 한, 그때보다는 좋은 상태 아닌가. 그래서 서른 살들에게, 비록 그들의 손을 잡아서 위로 끌어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이에는 아무리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괜찮다고, 먼저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작품 세계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지난 몇 년간 사회가 마냥 개선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이렇듯 비전이 암담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낙천적인 소설을 쓰고 싶기는 하다.
세계가 인정한 건축계의 ‘쌍두마차’로 공동 1위
건축 부문에서는 장윤규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와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차세대 1위에 선정되었다. 두 사람은 건축 스타일은 다르지만 건축가로 걸어온 길은 비슷하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반 건축가 김종성의 서울건축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것도 똑같다.
지난해 6월 완공된 금호건설의 복합문화관 ‘크링’은 장윤규 교수가 설계한 것으로 건축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인식될 만큼 파격적이고 획기적이었다. 장교수는 지난해 대한민국 우수디자인 국무총리상, 한국공간디자인 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 건축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장교수의 실력은 세계가 먼저 알아보았다. 2001년, 일본의 건축 잡지 <10+1>이 뽑은 세계 건축가 40인에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아키텍처 레코드의 디자인 뱅가드, 이듬해에는 아키텍처 리뷰의 커멘디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지난해에 상위권에 꼽혔다가 올해 1위에 오른 김승회 교수는 1995년에 지역보건의료기관 표준설계안에 당선되면서 무려 12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김승회표’ 보건소를 짓는 작업을 진행했다. 빠듯한 예산에도 공공 건축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초청을 받은 김교수는 그해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건축가협회상, 건축문화대상 본상 등을 수상하며 실력을 검증받았다. 김교수는 주거 문화 개선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서울 방배동에 지은 2층짜리 주택이 2007년 서울시 건축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건축가 조민석씨와 정영균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차세대 리더 10인에 올랐다. 1998년 미국 조슬레이드 아키텍처 건축사무소를 설립한 후 본격 활동에 나선 조민석씨의 경우 1999년 ‘폰 얼라크 하우스’로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0년에 미국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매스스터디스 사무소를 개설한 뒤, 지난 한 해에만 건축 분야 네 개의 상을 휩쓸며 건축계를 놀라게 했다.
유럽에서 인정받은 정영균씨, 지난해 1천6백억원대 매출 기록
건축가 정영균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는 올해 1월에 발간된 유럽 최고 권위의 건축 종합 잡지 <Building Design>이 조사한 건축설계업체 부문 순위에서 12위에 선정되었다.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순위이다. 희림은 지난해 지독한 건설 불황 속에서도 33% 성장세를 이뤄, 1천6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건축가 문훈씨도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문씨는 지난 2001년 ‘문훈건축발전소’를 차린 이래 현대고등학교, 묵동 다세대주택, 전주동물원 등 굵직한 작업을 진행하며 주목받았다. 서울 홍대 앞 상상사진관으로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PC방 앞을 지나다 보면 간혹 이런 입간판이나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쿼드코어(Quad core) 최신 사양으로 교체.” 이렇게 최신 사양으로 교체한 PC방은 100이면 100, 엔씨소프트의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아이온’을 위해서 교체했다고 보면 된다. 아이온을 서비스하지 않으면 손님이 줄어들 것 같고, 서비스를 하자니 컴퓨터 사양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상당수 PC방들은 후자를 택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에게 아이온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선사했다. 아이온은 제대로 떴다.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이를 반영한다. 지난 2008년 11월25일 아이온이 런칭되었을 때 엔씨소프트의 종가는 4만3천원. 11개월이 채 안 되는 2009년 10월14일 엔씨소프트의 종가는 15만원이다.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김택진 대표는 국내 벤처인 중 처음으로 주식 지분 가치 1조원을 돌파했다. 아이온을 개발하는 데 투입된 비용은 총 3백억원. 기대작인 만큼 실패했을 경우 부메랑도 클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도, 시장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지난해에 이어 <시사저널> 설문조사 ‘차세대 인물’의 게임 부문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50%의 지목률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김대표는 아이온을 런칭하기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나의 가장 큰 소망은 아이온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작인 리니지 등이 아시아에서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과 달리 아이온은 현재 북미에서도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많이 닮았다”라고 말하지만 대신 그런 의구심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그래픽을 자랑한다. 아이온은 북미와 유럽의 통합 사전 판매량이 약 45만장을 기록했다. 현지 유통사에 출시한 한정판은 품절되었다.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2위를 차지했다. 김대표는 은둔형 CEO로 불린다. 어지간해서는 넥슨의 자체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외부 노출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표가 게임계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은 상당하다. 여전히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와 ‘카트라이더’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한 김대표는 지난해 넥슨이 동종 게임업체인 네이플을 인수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적극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했다.
“시장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리한다”라는 속설대로라면 김대표의 넥슨은 승리자이다. 바람의 나라로 태동을 알린 넥슨은 가장 오래된 게임 회사이다. 1994년 창립했으니 15년째 굳건히 버티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타 게임사들이 하나의 킬러 콘텐츠를 가지고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넥슨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크레이지아케이드, 워록 등 어지간한 회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콘텐츠들을 이미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게임 이야기를 하는 데 거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한게임이 빠질 수 없다. NHN㈜ 부사장(COO)을 역임하고 NHN 한게임 대표로 옷을 갈아입은 김정호 대표 역시 김정주 대표와 함께 2위에 올라 게임 부문 차세대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김대표는 2009년을 한게임이 진정한 게임 공급자로 거듭나는 시기로 보고 있다. 한게임이 게임 포털임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개방 정책을 펴는 것도 질적 변화를 도모하는 한 방법이다.
모바일 게임업계에서 유명한 박지영 컴투스 사장, 올해에도 주목
한국의 최고 게임 크리에이터로 손꼽히는 사람이 이번 조사에서 4위에 오른 송재경 XL게임즈 대표이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 강국이 되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든 사람이 송대표라는 말도 나온다. 송대표가 창조한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리니지’였다. 리니지의 성공은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화를 가능하게 했고, 수많은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평가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학계에서 게임에 가장 정통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특히 게임업계의 주먹구구식 마케팅 기법 등에 대해 냉정하게 쓴소리를 던져왔다. 지난 5월에는 영국에서 자신의 책인 <이노베이션 & 스트래티지 오브 온라인 게임>을 출간했다. 2006년 국내에서 나온 <온라인 게임 비즈니스 전략>의 영어판이다.
게임업계에는 여성이 드물지만 박지영 컴투스 사장은 모바일 게임업계에서 유명하다. 이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미니게임계를 장악하고 있는 컴투스는 ‘골프스타’를 통해 온라인 게임 시장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박사장은 영국의 모바일 콘텐츠 전문 월간지인 <ME>가 선정한 ‘2009년 세계 Top 50 여성 경영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권준모 넥슨 전 대표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권대표는 지난 2001년 인텔리전트(현 넥슨모바일)를 만들어 모바일 게임 사업을 직접 운영했었다. 인텔리전트를 넥슨에 매각한 후 2006년 말부터 넥슨 대표이사를 지냈지만 지난 2월 갑자기 사퇴했다. 최근 권 전 대표는 복귀를 위해 새로 법인을 세웠는데 모바일 게임업체로 알려지고 있다.
리얼버라이어티 전성기 이끌어
지상파 방송에서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이전까지 드라마를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걸었던 방송사들은 잘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개편 시기가 오면 가장 많이 올려지고 내려지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이다. 시청자에게 외면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한두 달도 못 가서 폐지되기 일쑤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힘을 받으면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메인 MC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또 다른 축인 포맷의 힘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누구를 메인 MC로 기용하느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맡는 프로그램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최고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방송가의 블루칩이다. 방송 3사를 넘나들며 황금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유재석·강호동 두 MC의 힘은 연예 부문 차세대 리더 선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재석이 1위, 강호동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시청자에게 웃음 줘
유재석은 모범적인 이미지와 게스트를 배려하는 진행, 어수선한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진행자이다. 그가 진행하는 MBC <무한도전>과 <놀러와>, SBS <패밀리가 떴다>, KBS <해피투게더>는 동시간대 시청 점유율 최고를 자랑한다. 그중에서 <무한도전>은 유재석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다. 고정 MC 여러 명이 등장해 각자 캐릭터를 형성하며 시트콤을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리얼버라이어티 형식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2인자 박명수, 쩌리짱 정준하, 돌+아이 노홍철, 개그만 빼고 다 잘하는 정형돈 등 개성 강한 진행자들을 잘 추스르며 매번 다른 형식과 아이템을 등장시키는 <무한도전>을 몇 년째 이끌고 있다.
토크쇼 형식의 <놀러와>에서도 게스트를 편안하게 만들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한다. 유재석은 두 프로그램 출연료만으로 지난해 MBC로부터 9억4천3백60만원을 벌어들였다.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선량하면서도 만만한 이미지가 통했다. 시골에 사는 노인분들에게 쉴 시간을 주고 농촌 체험을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김수로, 김종국, 이효리 등이 보여주는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다독이며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간다.
강호동은 유재석과는 정반대 스타일을 지녔다. 씨름선수 출신 특유의 건장한 체격에 정돈되지 않은 언어 구사, 억센 경상도 사투리 억양,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진행이 매력이다. 어찌 보면 안티팬을 양산할 것 같은 특징들이지만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강호동이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것은 KBS <1박2일>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우기기 대장에 때로는 장난스러운 폭력까지 행사한다. 진행자 중 맏형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을 대할 때 더욱 돋보이는 솔직한 진행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MBC <무릎 팍 도사>에서 게스트를 앞에 두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질문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속 시원히 뚫어주기도 한다. 강호동은 가을 개편을 맞아 이승기와 함께 SBS <강심장>을 내놓았다. 20명 가까운 게스트를 불러모아 에피소드를 들어보는 형식이다.
연예 부문 차세대 리더 세 번째 자리는 배용준이 차지했다. 원조 한류 스타 배용준은 <태왕사신기> 이후 작품 활동이 뜸하지만 여전히 한국 연예계를 움직이는 큰손이고 일본 팬들에게는 영원한 ‘욘사마’이다. 배용준이 최근 펴낸 여행에세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일본 주간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행 에세이 펴낸 배용준도 건재
3위부터는 배우들 차지
이번에도 선택의 결과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었다. 한국 영화계를 현재 진행형으로 이끌어가는 두 감독이 한국 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로 선정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첫 번째, 봉준호 감독이 두 번째로 꼽혔지만 그 차이는 미미한 정도이다. 두 감독은 올해 나란히 <박쥐>와 <마더>를 내놓았다. 평단과 대중의 평가는 나뉘었지만 두 감독이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박찬욱 감독은 흥행 감독이지만 자기 색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올해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영화 <박쥐>를 내놓았다. 영화는 대중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내러티브가 끊겼고, 두 주인공이 선택하는 길에 필연성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송강호가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박찬욱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관객 2백21만명을 동원하는 데에 그쳤다. 이전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던 평단에서도 <박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자기 세계에 너무 빠져들어 보편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세계 영화계는 여전히 박찬욱을 지지했다. <박쥐>는 세계 최고 영화제로 꼽히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3대 판타스틱영화제 중 하나인 시체스영화제에서는 김옥빈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감독은 차기 영화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작품인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의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20년간 수입 금지되었던 정치영화 <제트(Z)>를 연출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거장이다.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 제작사 스튜디오 카날로부터 리메이크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 영화는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가장이 재취업을 위해 다른 취업자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을 가진 블랙코미디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재능 많은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기뻤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두 감독은 10월10일과 11일 함께 만나 식사를 하면서 신작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박쥐>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면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마더>는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르게 받았다. 비경쟁부문에 출품했던 칸영화제에서도 <박쥐> 수상이 결정되기 전까지 <마더>에 대해 더 좋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었다. 국내 흥행 성적에서도 3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쥐>에 앞섰다. 하지만 영화가 모성이라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고,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비해서는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다. <마더>는 김혜자와 원빈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고 배우 진구를 발굴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잘 알려진 대로 <설국열차>이다. <설국열차>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을 맡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은 갑작스럽게 혹독한 추위가 닥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SF 대작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설국열차는 난방과 식량 자급이 가능한 유일한 생존처로 그 안에서 인간 군상이 벌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봉감독은 “각색을 준비하며 기차에 관련된 책 20~30여 권을 보고 있다. 기차 바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관객들은 2012년에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두 감독 모두 차기작 준비로 분주해
두 명의 쌍두마차 감독들 뒷자리는 배우들이었다. 배우들 중 첫손에 꼽힌 사람은 장동건이다. 미남 배우에서 연기파 배우로 진화하고 있는 장동건은 장진 감독이 연출을 맡은 <굿모닝 프레지던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대통령 중 강성 외교를 지향하는 젊은 미남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해안선>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등에서 맡았던 남성미를 강조하는 역할과는 조금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할리우드와 공동 제작으로 촬영되는 <전사의 길>로 미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추격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하정우는 <국가대표>로 연타석 홈런을 치며 한국 영화를 이끌 차세대 리더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국가대표>와 함께 한·일 합작 영화 <보트>를 개봉시켰다. <멋진 하루>에서 함께한 이윤기 감독의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추격자>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차기작으로 기다리고 있다. 한창 촬영을 진행 중이던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예산 문제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밖에 <박쥐>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 송강호, <해운대>를 통해 흥행 배우로 입지를 공고히 한 설경구, 할리우드 작품 <지아이조>에 이어 <씨클로>의 트란 안 훙 감독이 연출을 맡고 조쉬 하트넷, 기무라 타쿠야와 함께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출연한 이병헌 등이 영화 분야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었다.
연극 분야 차세대 인물로는 연극연출가 박근형씨가 30%의 지목률로 1위를 기록했다. 국내 연극계에서 그만큼 개성이 뚜렷한 연출가는 흔치 않다. 그의 작품들에는 어김없이 뒷골목 인생들이 등장하며, ‘출구 없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묘사된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독창적이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기대와 전혀 다른 행동들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죽음을 눈앞에 두거나 배우자가 눈앞에서 외도하고 있어도 인물들은 투쟁 의지나 치열한 내적 갈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냥하고 상식적인 얼굴로 ‘금기’라는 것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식이다.
<눈사람>의 인물들은 집단 자살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모자 색깔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고 “대관아, 관이나 짜”와 같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돌아온 엄사장>에서 인물들은 한 사람을 고문하는 와중에 커피 타임을 갖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고, 벌을 받기는커녕 끝까지 승승장구한다. <너무 놀라지 마라>에서는 한술 더 떠서 자식들이 자살한 아버지의 시신을 방치한다. 영화감독인 첫째아들은 영화 한 편을 다 찍고 나면 ‘처리’하겠다고 하고, ‘히키코모리’인 둘째아들은 시신의 눈에서 고름이 흐르지 않도록 검은 테이프를 붙여놓는다. 노래방 도우미인 맏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시신이 매달려 있는 집으로 남자 손님을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상식을 뒤엎는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웃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온 윤리 기준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같은 상황 묘사 자체가 아니다. 그 속에 차마 소리 내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상황 설정은 매우 극단적이지만,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사회의 고름 엑기스를 모아놓은 듯 ‘응축된 현실’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TV 미니시리즈로도 방영된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서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나가는 작품도 있다. 박근형은 초기 작품인
<청춘예찬>에서 폭력적이고 직선적인 표현들로 충격을 주었다면, 해를 거듭할수록 세련된 은유와 역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뒤통수 맞는 재미를 맛보게 하고 있다.
연출가들이 배우들보다 더 많은 지지 받아
공동 2위에 오른 이는 연극연출가 위성신·양정웅 씨이다. 위성신은 정공법으로 삶을 묘사하는 연출가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인생을 건강하게 바라보려는 촌스러운 연출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스스로는 ‘촌스러움’이라 했지만, 달리 말하면 소박함과 진실함이라 할 수 있다. 트렌디한 소재 여부에 개의치 않고 삶에 대해 진솔하게 묘사하는 그의 작품들은 젊은 관객층에 한정되지 않은 인기를 누려왔다. 위성신의 연극들은 대부분 어떤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담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라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종류들이다.
<술집>에서는 연극배우들이 대학로의 어느 골목에 있을 법한 작은 술집에서 다양한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연극인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담은 자기 반영적인 공연인 것이다.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에서는 나이도, 사연도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또한, 위성신은 종종 황혼기 노인들의 삶을 칙칙하지 않은 색깔로 묘사한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는 황혼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순수하고 안타까운 ‘마지막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염쟁이 유씨>는 노인 염쟁이가 염을 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두 작품 모두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유머러스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위성신의 작품들은 초연 이후 거의 쉬지 않고 롱런하거나 리바이벌을 거듭하고 있다. 일상의 이야기를 쉽고 위트 있게 풀어낸다는 점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하며 소통을 추구한 것이 한 이유이다. 근래에는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에 이어 이근삼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락시티>를 뮤지컬로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그의 작품이 지닌 대중적인 힘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재확인되고 있다.
양정웅은 ‘국제적인’ 감각과 실험 정신을 갖춘 연출가이다. 그는 ‘여행자’라는 극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영국, 일본, 폴란드 등 해외에 수없이 초청 공연을 다녔다. 이것은 그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체험하고 용감하게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의 바비칸센터에 초청받아 화제가 되었던 <한여름 밤의 꿈>은 ‘한국의 전통 연극이 발전했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라는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한국적’으로 매끄럽게 재구성한 이 연극은 원작의 핵심 플롯만 취하고 해학과 놀이성을 극대화했다.
양정웅은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들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었다. 명망 있는 ‘카이로 국제 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우리 연극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연-카르마>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통과 의례를 움직임과 이미지 중심으로 표현한 제의적인 연극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원작으로 한 <환>은 언어를 축약하고, 시청각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양정웅의 작품들은 종종 제의성을 강하게 풍기는데, 그로토프스키가 이야기한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영접인 교섭이 가능한 그곳’과 같은 근본적인 소통과 교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간혹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 이외에도 존재감 있는 연기와 다양하게 활동하는 연출가 최용훈, 이성열, 고선웅 씨 등과 배우 이상직·조재현·김태훈 씨 등이 연극계 차세대 리더에 뽑혔다.
패션 분야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디자이너 일색이다. 차세대 리더로 거론된 11명의 인사 가운데 가수 서인영과 탤런트 이영애를 제외하고는 모두 디자이너들이다.
올해 차세대 리더 1위로 선정된 정구호 디자이너는 해를 거듭할수록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여성의류 브랜드 ‘구호’는 최근 4년간 해마다 20~3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가 ‘구호’ 브랜드를 들고 제일모직 여성사업부 상무로 입성하던 2003년, 제일모직의 연매출은 1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5년 만에 여섯 배 가까이 뛰었다. 올해 매출액이 7백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패션업계에서 대표적인 ‘대기업은 여성복에 약하다’라는 속설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그가 제일모직으로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상업주의에 휘둘릴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대중과 폭넓게 대화하는 길은 ‘잘 팔리는 옷’을 만드는 것이라는 철학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구호’를 대중적인 브랜드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창의성과 상업성을 적절히 버무리며 ‘구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그에게, 국내 1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옷 디자인만 작업하는 일반 의류 회사 디자이너와 달리 감성을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창조적 업무를 진두지휘한다. 제일모직의 든든한 지원 아래 그는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디자이너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았다. 1986년 휴스턴 대학 광고미술과를 졸업한 뒤,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1996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대기업은 여성복에 약하다’는 속설 한 방에 무너뜨리기도
35세가 되던 1997년, ‘해보고 싶었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패션디자이너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서울 청담동에 ‘구호’ 매장을 열자 특유의 절제된 스타일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숨에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9년에는 패션 잡지 <ELLE>가 선정한 최우수 신인 패션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영화 <정사>(1998년), <텔미썸딩>(1999년)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데 이어 <스캔들>(2003년)로 대종상영화제 의상상도 수상했다. 그해 제일모직은 ‘구호’를 사들였고, 6년 만에 ‘구호’는 여성복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한섬의 ‘타임’을 바짝 추격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언론도 그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기자들이 선정한 패션피플 30인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언론은 그를 ‘스타일 유발자! 여자의 옷을 짓는 남자’라고 정의 내렸다. 그의 옷을 즐겨 입는 영화배우 장미희씨는 “옷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어주는 브랜드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강진영 디자이너가 그 뒤를 이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강디자이너는 세계가 먼저 주목한 신인이었다. 여성복업체 ‘오브제’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그는 2002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뉴욕 컬렉션에 진출했다. 뉴욕 현지에서 선보인 브랜드 ‘Y&Kei’는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결과 2003년에 미국 패션그룹 인터내셔널이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는 ‘라이징 스타 어워드’를 수상했다.
가수 서인영·탤런트 이영애는 올해 처음 이름 올려
그의 부인 윤한희씨도 같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오브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2004년에는 부부가 함께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한 ‘2004 서울패션인상’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여성복 브랜드 ‘하니 Y’로 일본 시장에도 진출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혼자 힘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힘이 부쳤다. ‘오브제’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키워내기 위해 2007년, 그는 SK네트웍스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반 만에 SK네트웍스에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9월부터 미국 코넬 대학에서 어패럴 디자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최범석 디자이너도 차세대 리더로 거론되었다. 올해 성공적으로 뉴욕 컬렉션에 진출하며 현재 패션업계에서 가장 ‘핫(hot)한’ 디자이너로 부상하고 있다. 그에게 늘 붙어다니던 동대문 출신 고졸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21세가 되던 1997년, 동대문에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상표도 ‘무’(Mu)였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다는 뜻에서 정했다. 2003년에 내놓은 제너럴아이디어(General Idea) 브랜드를 가지고 프랑스 백화점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일이었다. 6년 만에 디자이너 12명과 직원 40명을 둔 대형 패션 디자인업체로 키웠다. 그의 도전은 패션 분야마저도 벗어났다. 책도 두 권이나 냈다. 지난 9월에는 가수 브라운아이즈걸스와 함께 동대문 패션축제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 뒤로는 장광효·두리정·간호섭 디자이너가 동일한 지지를 받으며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장광효 디자이너는 대한민국 최초로 남성복 컬렉션을 개최하고 최초로 파리 남성복 전시회와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에는 이랜드와 손을 잡고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오는 10월 출시되는 이랜드그룹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와 콜레보레이션 계약을 맺은 상태이다.
두리정 디자이너는 재미교포 출신으로 5년 전 뉴욕 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2002년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 ‘두리’를 선보이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녀는 2004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수여하는 유명 디자이너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미국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할 인물(패션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간호섭 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신예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인 케이블TV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덕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다. 송자인·리처드 채·서은길 디자이너와 가수 서인영, 탤런트 이영애도 올해 처음으로 패션 분야 차세대 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작업하는 동안 문제 풀리니 일하는 것이 곧 휴식”
그리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더욱이 믿기지 않는 것은 그가 진행하는 것 모두가 성공을 거둔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의 넘치는 끼와 정열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직접 물어보았다.
패션 부문 차세대 리더 1위로 선정되었다.
먼저 1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해 온 모습들을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다방면의 일을 소화해내고 있다. 동시에 여러 일들을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패션은 단순히 옷을 만들고 파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옷에 스며들어 있는 배경과 라이프스타일을 대중에게 알려주고, 유행을 선도해가는 것이 패션이다. 일종의 문화 장르인 셈이다. 패션의 트렌드는 의식주 전반을 서로 연관지어야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다. 디자이너가 다방면의 일을 동시에 소화해내어야만 의도한 바를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켜줄 수 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하는 것이 휴식이다”라고 했다.
한 곳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다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알려줄 때가 많다.
일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에 일이 곧 휴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의 24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하루와 별반 다름이 없다. 단지 쉬는 날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보람되고 알차게 보내려 노력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이 대단하다.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진정으로 패션이 좋아 패션을 선택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수많은 능력 가운데 어떤 점이 가장 탁월하다고 보는가?
패션 트렌드를 미리 읽을 줄 알고, 컨셉트가 정해지면 연결감 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다.
내년 2월에 뉴욕 컬렉션으로 진출한다. 계획은?
패션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더 많은 가능성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많이 제시한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한국무용은 주춤
무용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로는 이원국 이원국발레단 대표와 박호빈 댄스씨어터 대표(현대무용가)가 꼽혔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국무용보다는 현대무용 쪽 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원국 대표는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린다. 지난 20여 년간 국립발레단의 간판으로 활약해왔다. 국내 발레 무대에서 처음으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것도 그였다. 하지만 이대표는 지난 2005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원국 발레단’을 설립해 독립했다. 창립 모토는 ‘발레의 대중화’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월요 공연에 공을 많이 들였다. 대중들과 직접 호흡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군부대를 찾아 공연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원국 발레단은 최근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상주 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대표가 50세 미만의 차세대 주자로 꼽힌 배경에는 발레 대중화를 위한 그의 노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호빈 댄스씨어터 대표(현대 무용가)도 무용계에서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다. ‘댄스씨어터’라는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가 발표한 작품들마다 독특함과 실험 정신이 물씬 묻어난다. 그는 발레에 연극적 요소를 접목해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과 5일 이틀 간 서강대 메리홀에서 선보인 <엘리베이터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은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변사체를 중심으로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를 꼬집고 있다. 상반기에 공연한 <로미오와 유령 줄리엣>이나 <토스트(Toast>, 가족 무용극 <어린 왕자> 등도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작품들이다.
동양인 최초 파리오페라단 무용수 된 김용걸씨도 주목
그 뒤를 이어 발레무용가인 김용걸씨와 안은미 안은미컴퍼니 단장(현대무용가), 손관중 한양대 교수 등이 꼽혔다. 이 중에서도 김용걸씨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27세의 늦은 나이로 오디션을 통과해 동양인 남자로는 처음으로 파리오페라단 무용수가 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솔리스트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처음으로 주역으로서 공연하기도 했다.
안은미씨도 충격과 도발, 개성을 가진 작품들로 주목되고 있다. 손관중 교수는 현재 한국현대춤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가림다무용단’ 예술감독도 겸임하고 있다. 이밖에도 무용가 김장우, 김승일 중앙대 교수, 문영 국민대 부교수, 현대무용가 홍승엽, 문영철 한양대 교수, 발레무용가 김지영씨 등이 무용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인사로 선정되었다.
올해도 출판 문화의 내공 키우기에 앞장서 가장 주목
지난해에 이어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가 출판계에서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그는 2년 전 미국 컬럼비아 대학 내 동아시아 연구소의 연구원 자격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최근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내 성공 노하우와 함께 출판인의 역할은 무엇이며 위기를 헤쳐나갈 역량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 자답했다. 그동안 열심히 해 온 출판 종사자를 위한 강의 내용을 보강하고, 책 한 권, 한 권 엮어낼 때마다 따로 써왔다는 ‘편집 일기’를 공개한 것이다. 김대표는 “미국에서의 경험 또한 공유해 국내 출판의 돌파구를 찾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전자책 사업 뛰어든 조유식 알라딘 대표도 상위권에
올해 조사에서 조유식 알라딘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상위권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조대표는 대형 서점과 메이저 출판사, 언론이 공동 출자해 지난 9월 출범한 국내 전자책 사업 공동 법인 ‘한국이퍼브’의 초대 대표로 선임되었다. 한국이퍼브의 조대표는 “해외에서는 이미 전자책 활성화를 위해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야후 등이 ‘동맹’을 형성했다. 이퍼브가 앞장서 국내 전자책의 콘텐츠 수급과 시장 활성화를 꾀하겠다”라고 말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들을 펴내고 있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민음사에 입사해 편집장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오른 장은수 민음사 대표, 실용 학습서에 매진해 올봄 5백만부 돌파 기념 이벤트를 치른 이종원 길벗출판사 대표 등이 지난해에 이어 상위권에 꼽혔다.
올해 새롭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출판인으로는 주정관 북스토리 대표와 김흥국 보고사 대표가 있다. 북스토리의 주대표는 한국출판인회의 유통대책위원장 역임하고, 현재 한국출판인회의 독서진흥위원장과 젊은 출판인들의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기획간사를 맡고 있다. 올해 책의 날 행사에서 정부 표창을 받았다. 한편, 보고사의 김대표도 기초 학문 분야의 출판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만화가 강풀씨(본경 강도영)의 독주가 이어졌다. 강씨는 전체 응답자의 30%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강씨는 최근 웹툰 작가를 넘어서 최고의 콘텐츠 제작자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인터넷에 연재한 만화가 곧잘 영화나 드라마, 연극으로 재탄생한 결과이다. 지금까지 그가 내놓은 일곱 편의 작품 가운데 세 편이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올해 단행본으로 나온 <이웃사람>도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캐스팅 작업이 한창이다. 다른 작품들도 모두 영화나 드라마, 단행본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보통 만화가는 인세를 먹고 살지만 그는 영화 판권 수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특이한 경우이다.
강풀씨의 유명세는 개인 홈페이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가 지난 2002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엽기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배설물 만화가’로 주가를 올렸다. 그 다음 해에 내놓은 <순정만화>는 클릭 수가 무려 6천만번에 이를 정도로 빅 히트를 쳤다. 네티즌들은 탄탄한 스토리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장편 연재만화에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차기작으로 내놓은 미스터리 스릴러물 <아파트>도 흥행에 성공하자 그의 이름 앞에는 ‘온라인 만화가 1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이후 내놓은 <바보> <타이밍 1>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도 모두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한동안 공백기를 가진 강풀씨는 올해 7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 호러만화 <어게인>을 연재하고 있다. 그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작품을 시작하면서 ‘무단 펌질’을 허용해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그는 “저작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강화되면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이 줄어든다”라며 저작권을 공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만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칸이 없는 독특한 형식을 취해 주목되었다. 탄탄한 스토리를 보고 어떤 이들은 그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노력과 집중’으로 비전공자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만화 연재를 하고 있을 때는 작업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 시간 조정이 안 되는 술자리에는 나가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도 일절 거절한다. 2006년 2월부터 맡기 시작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 자리도 최근 그만두었다.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니 양쪽 모두 충실할 수 없어서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연재를 할 때에는 20시간씩 앉아서 작업을 하는 탓에 건강도 많이 해쳤다.
그렇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지난해에는 영화 <괴물 2> 시나리오 작업을 맡으면서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올해 크랭크업에 들어가는 자신의 작품 <이웃사람>에는 절반가량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올해 5월에는 선배 만화가들과 함께 만화 콘텐츠 매니지먼트사인 ‘누룩미디어’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박철권·양영순·윤태호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 판권 등 산업적인 부분을 관리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뭉쳤다.
강풀씨에 이어 2위는 지난해에 이어 만화가 윤태호씨가 차지했다. 윤씨는 스물다섯 살이던 지난 1993년에 <비상 착륙>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13편의 작품을 내놓았다. 1998년 내놓은 <YAHOO>가 이듬해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은 이후, 3~4년 간격으로 큰 상을 받는 실력파 만화가이다. 윤씨는 만화가들이 선망하는 허영만씨와 조운학씨 문하에서 만화를 배웠다. 윤태호씨는 만화계에 입문한 지 10년째인 2007년부터 웹툰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때부터 유료 웹진에 연재하기 시작한 <이끼>는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지난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초한지> 내놓은 형민우, 처음으로 10위권 진입
만화가 양영순씨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1995년 미스터블루에 응모했던 <누들누드>로 데뷔한 양씨는 성적 묘사를 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나가는 독창성으로 주목을 끌었다. 2001년에는 성인 만화 <아색기가>를 내놓으면서 성인 만화 작가로도 자리매김했다. 2006년에 발표한 <천일야화>로 한국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만화가 박소희씨는 올해 처음으로 차세대 리더에 이름이 올랐다. 2006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히트를 친 <궁>의 작가로 유명하다. 이듬해에는 <궁-시즌 2>도 방송되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만화 <궁>은 여전히 연재 중이다. 그녀는 2000년에 서울문화사 신인만화대상에서 은상을 차지하면서 데뷔했다. 2년 뒤에는 순정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하기 시작한 <궁>으로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상에서 인기상과 신인상을 독차지했다. 그 이후에도 <궁>으로만 무려 다섯 개의 상을 더 받았다.
이밖에 만화가 형민우·하일권·조석 씨가 차세대 주자로 꼽혔다. 이들 중 형민우씨는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1990년대 후반부터 내놓은 <프리스트>는 국내 만화가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렸다. 올해 7월에는 이문열의 원작을 각색한 만화 <초한지>를 내놓으면서 만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씨가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재학할 당시에 연재한 <삼봉이발소>는 인터넷에서 조회 수 2천만건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될성부른 나무’로 평가받았다. 조석씨는 2006년 <마음의 소리>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2007년, 2008년 연달아 대한민국 만화대상 인기상을 거머쥐며 유망주로 꼽혔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리더로 이름을 올린 만화가는 최규석(32)이다. 그에게는 리얼리즘 만화가, ‘예술적인, 작품성 있는 상업만화’의 포문을 연 젊은 만화가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상업지면 데뷔작인 <공룡둘리>로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초청작가,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에 선정된 바 있다.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를 통해 뼈 있는 바른말을 잔잔한 웃음과 함께 전했다. 2008년에는 6월 항쟁을 기록한 만화<100°C>를 발표하면서 실용적인 역사만화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스포츠 발전에 대한 기대도 한 몸에
낭중지추(囊中之錐·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뜻)라는 사자성어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김연아는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스포츠계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30%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시사저널>이 지난 8월 보도한 한국을 움직이는 스포츠 스타 1위로도 꼽혔다.
김연아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 선수를 뛰어넘어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었다. 그녀가 입은 의상 하나, 표정 하나가 뉴스가 될 정도이다. 광고업계에서 가장 먼저 모시고 싶은 모델 0순위에 오를 정도로 상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그녀가 국내외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국민의 뇌리에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2009~10 시즌을 맞아 김연아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점도 이번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시즌 첫 무대는 10월1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 ‘트로피 에릭 봉파르’이다. 이번 대회에는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와 세계 랭킹 1위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4위 나카노 유카리(일본), 미국 피겨의 기대주 캐롤라인 장 등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최근 일본 외신은 김연아의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의 부진을 전했다. 외신들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쟁을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전초전’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이미 김연아가 앞서가고 있는 흐름이다. ISU가 지난 10월11일(현지 시각) 발표한 여자 피겨스케이팅 세계 랭킹에서 김연아는 3840점으로, 캐롤리나 코스트너(3861점)에 불과 21점 뒤진 2위에 올라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연아는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이다. 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207.7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트 사상 최초로 2백점을 돌파했다.
특히 쇼트프로그램 점수는 종전 자신이 세운 72.24를 뛰어넘는 76.12를 기록하는 등 신기록 갱신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김연아는 그동안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클럽빙상장에서 철저한 보안 속에 새 시즌을 준비해왔다. 그녀는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최고로 평가받았던 2008~09 시즌보다 점프 완성도는 물론 연기력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녀는 최근 언론을 통해 “전체적인 컨디션을 보았을 때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준비가 더 완벽해진 것 같다”라며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에서 <죽음의 무도>(쇼트프로그램)와 <세헤라자드>(프리스케이팅)에 맞춰 나래를 펼쳤던 김연아가 이번에는 영화 <007 시리즈> 메들리와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 맞춰 빙판을 가른다. 이번 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는 2010 밴쿠버올림픽을 염두에 둔 첫 무대인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 그녀는 지난 10월15일 대한민국 체육상도 수상했다.
박지성·홍명보·문대성도 스포츠 미래 짊어질 ‘준비된 영웅’들
김연아에 이어 박지성 축구선수와 홍명보 축구감독이 각각 26%의 지지를 받아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연장 계약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축구를 통해 ‘성공신화’를 보여준 한 전형이다. 사람들은 무명이었던 그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 맹활약을 펼치며 거액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특별히 잘나거나 못난 것도 아닌 외모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성실함이 사람들의 정서에도 호소력이 있게 먹힌다.
홍명보 감독은 진작부터 축구 샛별들의 ‘큰형’이었다. 말은 적으나 오랜 경험과 속 깊은 사고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홍감독은 장래 한국 축구계를 이끌 지도자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현장 경험은 물론 이론 공부와 국제 감각을 익히는 데도 열심인 노력형이다. 선후배는 물론이고 언론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싫어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장점이다. 감독으로서 첫 무대였던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성공적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이런 분위기로 미루어볼 때 향후 축구계에서 홍감독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보인다.
홍감독의 뒤를 이어 이름을 올린 사람은 지난해 올림픽 선수위원이 되어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 데뷔한 문대성 동아대 교수이다. 그는 장기인 뒤돌려차기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특히 태권도계에서 주목되는 인물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이미지를 구겼던 박태환 수영선수는 요즘 재기에 열심이다. 아직 가능성이 무한하기에 전문가들은 그가 또다시 수영계에 새로운 신화를 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많은 전문가가 그를 여전히 한국 스포츠계의 차세대 리더로 꼽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현재 박태환은 전문가들로 꾸려진 별도 팀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조련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최근 들어 다시 예전의 구질이 살아나고 있는 박찬호 야구선수와 한국 역도의 간판 장미란 선수, 쇼트트랙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전이경 스포츠 해설가, 이번 시즌에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나 일본 야구에 한국 야구의 매운 맛을 보여준 이승엽 선수, 유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하형주 동아대 교수가 그 뒤를 이어 ‘스포츠 차세대 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 한국 축구 최고의 화제는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다. 이들은 2009년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이집트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다. 8강전에서 결승에 오른 가나 대표팀에 2 대 3으로 아쉽게 지기는 했지만 국민들은 청소년대표팀이 거둔 성과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난 1984년 멕시코 청소년월드컵 4강 신화를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8강 진출만 해도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달성한 이후 18년 만에 이루어낸 결과이다.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홍명보 감독이다. 홍감독은 기성용이라는 최고 스타가 빠지고 프로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대학 선수가 11명이나 포함된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예상을 넘어서는 성적을 거두었다. 히딩크 감독에게서 배운 ‘스타보다는 전술과 조직력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성적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현역 시절 화려했던 경력과 수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홍감독이지만 청소년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을 때는 부족한 지도자 경험과 적은 나이로 인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이런 목소리를 잠재웠다. 홍명보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여러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존댓말을 썼다. 2002년 한국적 위계 질서를 허물기 위해 선수 간에 반말을 사용하게 했던 히딩크 감독의 전략을 뒤집은 것이다. 감독과 선수 간의 벽을 허물어 감독 지시에 이끌려다니는 로봇 같은 선수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동적인 선수를 만들어냈다. 홍감독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선수들에게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고, 결국 김민우·김보경·박희성 등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
청소년대표팀이 주축이 될 올림픽대표팀 감독 취임이 유력하고 벌써부터 2014년 월드컵 사령관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홍감독에게는 앞으로 헤쳐나갈 역경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많이 남아 있다. 그는 이제 겨우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축구계 차세대 인물로 홍명보 감독이 첫손에 꼽힌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 잡아 자신의 뒤를 이을 새로운 별들을 발굴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축구계 차세대 리더 두 번째 자리는 박지성이 차지했다. 최고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현 국가대표팀 주장인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최고 스타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 시즌 박지성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호날두의 이적으로 체질을 확 바꾸어버린 맨유에서 좀처럼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까지 박지성은 공격 성향이 강한 호날두로 인해 발생하는 수비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며 맨유 주전으로서 활약했다. 올 시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약화된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 박지성보다는 루이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중용하고 있다.
박지성 등 월드컵대표팀 주전들이 대거 지목받아
그래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구단과 3년 재계약하며 2012년까지 맨유에서 뛰게 되었고, 퍼거슨 감독도 박지성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주전을 확보하는 일과 함께 박지성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다. 국가대표팀에서 박지성이 가지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허정무 감독의 전술에서도 박지성을 어느 위치에 놓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적 요소이다. 이제는 주장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도 부여받았다. 그가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월드컵 성적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과 AS 모나코에서 활약 중인 박주영도 차세대 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로 변신한 지금까지 황선홍이라는 이름 옆에는 항상 홍명보라는 이름이 함께했다. 둘은 절친한 친구이자 뗄 수 없는 라이벌이다. 홍명보 감독이 청소년대표팀 8강 진출로 앞서 나가고 있지만, 황감독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고 있는 황감독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등 올 정규 리그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나 지난 컵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구단 전력을 감안하면 좋은 성적이다. 박주영은 AS 모나코 이적 이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팀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고 대표팀에서도 재조명을 받으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에 진출하기 직전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넓은 무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밖에 최순호 강원 FC 감독,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 FC로 자리를 옮긴 이영표 선수 등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부진한 성적 거둬도 역량은 ‘최고’ 평가받아
한국 야구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리더로 선동렬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1위를 차지했다. 선동렬 감독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 투수이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최동원 전성기, 선동렬 전성기, 박찬호 전성기를 비교하며 최고 투수를 가리는 것은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선동렬은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05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처음 부임한 이후 올 시즌까지 5년 동안 팀을 이끌었다. 부임 첫해와 이듬해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고 계속해서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다. 한국 야구를 이끌어갈 인물로 선동렬 감독이 첫손에 꼽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렇듯 실패를 모르는 선감독이지만 올 시즌은 만족스럽지 않은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2009 프로야구 시즌 막바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포스트시즌이라는 축제에 삼성은 초대받지 못했다. 정규 리그 막판까지 롯데 자이언츠와 4위 싸움을 펼쳤지만, 결국 5위에 만족해야 했다. 감독을 맡고 나서 처음 겪는 일이다. 이런 그에게 삼성구단은 재계약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5년간 계약금 8억원, 연봉 3억8천만원 등 총 27억원을 받는 조건이다.
삼성 구단이 재계약 결정을 내린 것은 두 번 우승을 거둔 감독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즌 5위라는 성적이 명문 구단 삼성에 어울리는 기록은 아니지만, 현재 전력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다. 올 시즌 삼성은 무너진 선발진, 지쳐버린 구원진, 철벽 마무리 오승환의 부상 등으로 투수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최형우·박석민·채태인으로 이어지는 젊은 타선의 힘 덕이었다. 삼성의 내일을 책임질 젊은 타선은 선감독이 진행해 온 리빌딩 작업으로 가능성을 꽃피웠다. 그는 젊은 타자 육성을 위해 용병 타자와 대형 자유계약선수 수급을 거부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삼성 같은 부자 명문 구단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선감독은 과감한 선택을 해 성공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 시작하는 한화 송진우도 주목
2009 프로야구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한화 이글스 송진우 선수의 은퇴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송진우는 지난 9월23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영구 결번된 자기 등번호 21번에 꼭 어울리는 21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오랜 세월 마운드에 오르면서 그는 2백10승, 2천48 탈삼진, 3천3 이닝 투구 등의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기록들을 남겼다. 이런 기록을 가능케 한 꾸준한 자기 관리와 강인한 정신력은 후배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마운드 밖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0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초대 회장으로서의 활동은 그에게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주었다. 송진우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1년간 일본으로 연수를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랜 선수 생활로 인해 지도자 송진우는 또래에 비해 늦게 출발선에 섰다. 88 서울올림픽 출전으로 프로 생활을 1년 늦게 시작한 것과 닮았다. 그는 늦게 시작한 프로선수 생활을 꾸준함으로 극복해 화려하게 꽃피워냈다. ‘지도자 송진우’를 기대해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구계 차세대 리더 세 번째 자리에는 기아 타이거즈 이종범 선수가 올랐다. 이종범은 2년 전만 해도 은퇴를 종용받는 퇴물 취급을 당했다. 1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한국 야구에서 이루어놓은 업적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이종범은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기아를 정규 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올려놓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0년 만에 10번째 우승을 거두어 2009년을 기억될 만한 해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밖에 박찬호 필라델피아 필리스 선수,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선수, 한대화 한화이글스 신임 감독 등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박찬호는 올 시즌 구위를 회복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선발투수에서 구원투수로 변신한 것도 성공적이었다. 부상으로 디비전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이승엽에게 2009년은 잊고 싶은 한 해였다. 부상과 부진으로 1군보다는 2군에 더 오래 있었다. 요미우리와의 계약 마지막 해인 내년 시즌에 화려하게 복귀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국내 사회 각 분야 중 골프만큼 새로운 별이 자주 등장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국면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를 평정하면서 국내 골프 스타들의 미국 진출 러시가 일어났다. 이제 골프계에서는 국내 투어나 아시아 투어 우승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고 스타 탄생도 아니다. 미국 PGA나 LPGA에서 우승해야 스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의 글로벌 무대 활약상에 치이고, 동양 남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기 죽어 지내던 한국 남자 골프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은 ‘탱크’ 최경주와 ‘야생마’ 양용은의 원투 펀치였다. 최경주·양용은 선수는 이번 <시사저널> 차세대 리더 조사 골프 분야에서 나란히 공동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최경주 선수가 먼저 미국 PGA 컴팩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남자 골퍼의 가능성을 알렸다. 지금까지 최선수는 통산 7승. 하지만 메이저 대회와는 아직 인연이 없다. 양용은 선수는 지난 3월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했다. 그는 2006년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스’에서 타이거 우즈를 물리치고 우승한 여세를 몰아 미국 PGA 투어에 도전했다. 2007~08년 성적 부진으로 고심하던 그는 지난 3월 우승하며 골프 인생의 2막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 8월 PGA챔피언십에서 역시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역전 우승을 했다. 역전을 불허한다는 타이거 우즈에게 마지막 4라운드에서 우승한 양용은에게는 ‘호랑이 잡는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양인 가운데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은 양용은이 최초였다. 미국 언론은 그의 우승을 스포츠계 3대 이변이라고 불렀다.
한국 골프의 앞날을 책임지고 있는 두 선수는 서로 끌어주고 있다. 최경주 선수는 사회 환원 차원에서 최경주 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양선수는 자신의 미국 투어에 도움을 준 최선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지난 3월 첫 우승을 하자 우승 상금 중 1억원을 이 재단에 기탁했다.
골프 분야 차세대 리더로 꼽힌 3위는 박세리 키즈의 선두 주자인 신지애 선수이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LPGA 투어에 데뷔한 첫해인 올해 신인상과 다승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다. 관건은 ‘멕시코의 박세리’인 로레나 오초아와의 대결이다. 10월 말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리는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과 미즈노 클래식(일본)에서 오초아와 맞대결해 어떤 성적을 올리느냐에 따라 데뷔 첫해에 4관왕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신지애를 비롯한 한국 낭자군이 올해 LPGA에서 합작한 승수가 8승에 이른다는 점이다. 최나연·지은희·박인비 등이 주력인 이들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고 골프채를 잡은 이른바 ‘박세리 키드’들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누가 더 뛰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선수들이라 한국 여자 골퍼의 황금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코리아 붐의 노둣돌 역할을 하고 있는 박세리 선수는 이번 조사에서 5위를 기록했다. 박선수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던 다른 여자 선수들의 이름이 20위권 바깥으로 쳐져 있음에도 그녀가 여전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은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선수는 활동 근거지를 미국으로 옮긴 1999년 이래 한국 선수 가운데서는 최다승인 24승을 올렸고, 2007년 나이 서른에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박세리는 ‘골프 치는 기계’에서 골프를 즐기는 쪽으로 변신하고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세리 선수는 “예전에는 골프밖에 몰랐지만 지금은 경기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압박감도 서두름도 없어진다”라고 말했다. 경쟁이 아니라 스포츠 본연의 맛을 즐기면서 치는 것이다. 박세리 선수의 이런 시도는 국내 선수들에게 또 한 번 롤모델이 될 것이다.
국내 상금 랭킹 1위 배상문은 4위에
4위에 오른 배상문 선수는 한국 남자 골프의 차세대 선두 주자이다. 올해 한국프로골프투어 상금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배선수는 연습생 출신으로 역경을 딛고 골퍼로 우뚝 선 최경주·양용은 선수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부모의 헌신적 도움과 우월한 신체적 조건 등으로 어린 나이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성공적인 골퍼로 발돋움한 경우이다. 배상문 역시 미국 무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말께 미국으로 날아가 퀄리파잉스쿨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최경주와 양용은이 보여준, 두드리면 열린다는 교훈을 배상문도 실천할지 주목된다.
배상문과 김대섭은 올해 한국프로골프투어 상금 순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 2005년 KPGA선수권을 제패한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김대섭은 지난해 다시 우승하며 국내 프로골프계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위에 오른 김대현 선수는 대표적인 장타자이다. 182cm, 72kg의 김대현은 2007년과 2008년 한국 프로골프 2년 연속 장타왕에 올랐고, 올해도 장타 부문 선두(303.92야드)를 달리고 있다. 투어 데뷔 이후 준우승만 세 번 한 끝에 지난 9월 말 KPGA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 2차 대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했다.
8위에 오른 김경태 선수는 2007년까지만 해도 젊은 피의 대명사였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그는 역대 최고 아마추어 선수였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데뷔전부터 2연승을 달리더니 3승으로 다승왕과 상금왕, MVP를 휩쓸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슈퍼 루키’ ‘괴물 루키’였다. 9위에 오른 허인회는 한국체대에 재학 중인데, 183cm의 키에 비주얼과 실력까지 겸한 골프계의 대표 꽃미남이다.
법률신문은 점유율 88%
종합 일간지나 방송을 제외하고 이루어지는 ‘가장 영향력 있는 분야별 매체’ 조사에서는 지난해 조사에서 제외되었던 기업이나 금융 분야가 올해 새롭게 추가되었다. 기업 및 금융 분야에서는 매일경제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지난 1966년 창간된 매일경제는 그동안 세계지식포럼, 세계한상대회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잇달아 개최했다. 특히 세계지식포럼의 경우 지난 8년간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잭 웰치 전 GE 회장,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 등 세계적인 연사들이 참여해 그해의 어젠다를 제시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매일경제는 금융 분야뿐 아니라 기업 분야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꼽혔다는 평가이다.
금융 분야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34%가 매일경제를 지목했다.
<이코노미스트>(18%), 한국경제(16%), <매경이코노미>(16%), 머니투데이(14%), 이데일리(6%), <월간 금융계>(6%), 서울경제(4%), 블룸버그통신(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기업 분야 역시 응답자의 26%가 매일경제를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꼽았다. 다음으로는 한국경제(14%), <이코노미스트>(6%), <비즈니스위크>(4%), <월간 CEO>(4%), <포춘>(4%) 등이 뒤를 이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전자신문이 1위로 꼽혔다. 전자신문은 지난 1982년 전자시보라는 제호의 주간지로 처음 창간되었다. 1989년 지금의 전자신문으로 제호가 바뀌었다. 1991년부터는 일간지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지 성격이 강했다. 전자신문이 대중화된 것은 지난 2000년을 전후로 확산된 ‘닷컴 열풍’을 통해서였다. 전세계적으로 IT 열풍이 불면서 전자신문은 ‘신문사들도 보는’ 전문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최근 IT 거품이 꺼지면서 신문의 영향력 또한 예전 같지가 않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IT업계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전자신문을 꼽은 전문가들은 76%로 지난해 72%에서 4% 상승했다. 2위인 디지털타임스는 지난해 40%에서 올해 36%로 하락했다. 이밖에도 아이뉴스(4%), K-모바일(2%), <방송통신정책>(2%) 등이 뒤를 이었다.
ⓒ시사저널 임영무
<과학동아>, 지난해보다 인지도 12% 급등
과학기술 분야 1위는 <과학동아>가 차지했다. 동아일보사에서 1985년 창간한 월간지로 현재 과학 분야에서 가장 폭넓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응답률은 지난해 24%에서 올해 36%로 급등했고, <과학과 기술>(14%), <동아사이언스>(12%) 등이 뒤를 이었다. 전자신문의 경우 지난해 2위(20%)에서 올해 공동 3위(12%)로 이 분야 점유율이 소폭 하락했다.
게임 분야에서는 1위와 2위를 타블로이드 주간 신문인 <경향게임스>(16%)와 <더 게임스>(14%)가 차지했다. 지난 2000년대 초부터 국내에서는 게임 광풍이 불었다. ‘리니지’ ‘뮤’ 등 온라인 롤프레잉게임(RPG)이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발돋움했다. 프로야구선수처럼 ‘프로게이머’에 열광하는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경향게임스>는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탄생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게임은 대중들에게 오락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게임 관련 매체도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웹진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경향게임스>가 가판에 걸리면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또한 많이 달라졌다”라고 평가했다.
타블로이드 판형 특유의 네거티브한 성향도 일조했다. 업계의 이슈를 과감히 들추어냄으로써 정부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이다. 물론 게임업계에서도 전자신문의 파워를 무시할 수는 없다. <경향게임스>에 이어 영향력 2위를 차지한 <더 게임스>가 현재 전자신문사에서 발행되기 때문이다. <경향게임스>가 게임 소개와 함께 업계 이슈를 만들었다면, <더 게임스>는 산업 쪽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평가이다. 이같은 점이 영향력 있는 매체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게임학회 논문지(12.0%), 웹진인 디스이즈게임(10.0%), <PC게임매거진>(10.0%), 웹진인 게임메카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법조 분야에서는 59년 전통의 법률신문이 88%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응답률도 지난해에 비해 4% 이상 상승했다. 이 신문은 지난 1985년부터 ‘무료법률 상담 사례’를 지면에 게재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법률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변호사의 문턱이 높아 서민이 법률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도 <법률저널> <법조> <법원 사람들> 법경신문 등이 이 분야의 영향력 있는 매체로 조사되었다.
소설·시나 출판 분야에서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의 영향력이 여전했다. 점유율이 38%에 달했다. <창작과 비평>은 진보적 성향의 대표적인 문예지로 지난 1966년 창간했다. 하지만 지난 1980년 단행된 언론 통폐합 조치로 인해 폐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복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학동네>(32%), <문학과 사회>(20%), <현대문학>(14%), <월간문학>(14%), <문학사상>(10%) 등이 뒤를 이었다. 출판 분야에서는 <출판저널>의 응답률이 34%로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기획회의> (18%), <창작과 비평>(4%), <북새통>(4%) 등이 뒤를 이었다.
<씨네21>은 지난해보다 영향력 절반가량 낮아져
ⓒ시사저널 임준선
연예 및 영화 분야에서는 <씨네21>이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995년 창간한 <씨네21>은 한때 영화계에서 일간지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씨네21>이 본지인 ‘한겨레 신문사를 먹여 살린다’라는 소문이 언론계에 나돌 정도였다. <무비위크> <필름2.0> 등 영화 잡지 창간의 매개체가 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상이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는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영화 분야 조사에서 <씨네21>의 영향력은 76%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절반 정도인 34%로 낮아졌다. 그 뒤를 <무비위크> <스크린> <프리미어> 등이 멀찍하게 뒤쫓고 있다. 연예 분야에서는 <씨네21>이 24%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만화 매체로는 팝툰(16.0%), 만화 규장각(10%)이 선두권을 형성했다. <챔프> <코믹챔프> <뉴타입> <윙크> 카툰네트워크, 투니버스 등이 뒤를 이었다. 미술 분야에서는 <월간미술>이 56%, <미술세계>가 22%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연극 분야에서는 <한국연극>(66%)과 <객석>(12%), 음악 분야에서는 <음악춘추>(32%)와 <객석>(30%), <음악저널>(22%), <피아노음악>(20%) 순이었다. 무용 분야에서는 <월간 춤>(68%), <춤과 사람들> (52%), <댄스포럼>(44%), <몸>(42%) 등이 고른 점유율을 보였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스포츠조선과 일간스포츠가 각각 14%로 조사되었고, 스포츠서울이 10%로 다음을 이었다. 스포츠지를 제외한 축구 분야의 영향력 있는 매체 조사에서는 <베스트일레븐>이 6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은 한국축구신문(36%), 포포투(14%), <월간 축구가족>(6%), <월간 사커21>(4%) 순으로 조사되었다. 골프 분야의 언론 매체는 <골프다이제스트>(56%), <골프매거진>(26%), <PAR GOLF>(24%), <더 골프>(12.0%), <골프가이드>(10.0%)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야구 분야에서는 <베이스볼클래식>이 20%로 1위를 차지했다.
여성 분야에서는 여성신문이 74.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진보적 성향의 웹사이트 일다와 2001년 창간된 우먼타임스가 서서히 입지를 넓히며 여성신문의 경쟁지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일다는 이번 조사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했고, 우먼타임스 역시 최근 휴간에 들어가면서 여성신문이 독주하는 형국이다. 이밖에도 <여성중앙> <여성동아> <미즈엔> 민우회신문 등이 여성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매체로 꼽혔다.
정치 김대중·박근혜, 기업 이건희·정주영 ‘순위 역전’
존경하는 인물이 다소 바뀌었다. 지난해와 올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순위를 살펴보면 분야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일부 분야에서는 특정 인물의 독주가 계속되는가 하면 또 어떤 분야에서는 지난해 1위였다가 올해는 10위원 밖으로 밀려난 경우도 있다. 반면, 새로운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굳건한 아성이 구축된 분야가 아니면 분야별 현안과 이슈에 따라 부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사저널>은 지난해에 이어 미디어리서치와 공동으로 총 30개 분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했다. 올해는 어떤 인물들이 ‘존경하는 인물’에 올랐을까.
정치 부문에서는 지난 8월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2위였던 김 전 대통령과 1위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순위가 바뀌었다. 전문가들이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북 화해와 평화·인권에 기여한 업적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5위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3위에 올랐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순위가 이채롭다. 이대통령은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공동 3위에 올랐으나 올해는 6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공동 5위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7위)와 손학규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10위)는 순위가 약간 하락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추락이다. 정대표는 제1 야당의 대표인데도 지난해 5위였다가 올해는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금융 분야에서는 지난해 6위였던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이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반면, 지난해 국내 인사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워렌버핏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은 2위로 내려앉았다.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이 공동 2위로 급부상했고,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3위였다가 올해는 10위권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기업 분야에서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던 이 전 회장은 올해는 정 전 명예회장과 순위를 맞바꾸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 1987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인간 중심·기술 중시·자율 경영·사회 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삼성그룹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3위에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올랐다.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 중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공동 7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최태원 SK 회장(공동 8위) 등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2위), 오명 전 과학기술부장관(3위)이 그 뒤를 이었다.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락한 4위이다. 공동 4위에는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이 올랐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공동 1위이다. 서남표 총장은 지난 2006년 7월부터 제13대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동 3위에는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오세정 서울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가 차지했다.
미술계 백남준·음악계 정명훈·무용계 김백봉·영화계 안성기 1위
미술계는 지난해 서양화가 박수근 화백과 공동 2위였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올해는 박화백과 공동 1위로 올라섰다. 반면, 지난해 1위였던 이우환 일본 다마 미술대학 교수는 서양화가 장이석씨와 공동 3위이다. 시각디자이너 조영제씨, 한국화가 천경자씨, 조각가 문신씨, 한국화가 이종상씨 등이 10위권에 새로 진입했다.
음악계에서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감독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정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고 존경받는 음악인’으로 선정되었다. 지난해 공동 3위였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이번에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한 기타리스트 이석원씨가 공동 2위이다. 작곡가 백병동씨, 성악가 안형일씨, 지휘자 금난새씨가 공동 5위에 랭크되었다.
건축 분야에서는 국내 대표 건축가인 고 김수근씨가 1위에 선정되었다. 김씨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2위는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건축가 꼬르뷔제이다. 지난해 1위였던 유춘수 이공건축 회장은 김석철 명지대 교수와 함께 3위에 머물렀다.
무용계에서도 지난해와 올해 순위가 상당히 바뀌었다. 지난해 1위인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 4위로 내려갔고, 그 자리를 6위였던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가 차지했다.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은 지난해 3위에서 2위로 올라왔다.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이 3위이다.
시민운동가 가운데서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지난해에 이어 독보적인 1위이다. 전체 응답자의 44%를 차지했다. 한비야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강교자 YMCA 회장, 이학영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이 그 뒤를 이었다.
존경하는 여성 분야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와 함께 공동 1위였다. 그런데 올해는 6위로 급전 직하했다. 한비야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새롭게 10위권에 등장하더니 단번에 2위에 올랐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공동 3위이다.
연예 분야에서는 지난해 공동 1위였던 가수 김장훈씨와 배우 안성기씨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 대신 방송인 유재석씨와 강호동씨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3위였던 탤런트 최불암씨, 공동 4위였던 가수 조용필씨와 배우 문근영씨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반면, 대표적인 한류 스타인 배용준씨가 3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4위, 가수 비가 5위에 올랐다.
연극 분야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30%가 배우이자 연출가인 박근형씨를 꼽았다. 연출가 위성신씨와 연출가 양정웅씨가 공동 2위이다. 지난해 1위였던 오태석 서울예술대학 교수는 10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영화 분야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배우 안성기씨가 1위이다. 2위 자리도 지난해와 변동 없이 임권택 감독이 지켰다. 영화배우 송강호씨와 박찬욱 감독 그리고 강우석 감독이 공동 3위이다.
소설·시 분야에서는 다소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3위였던 소설가 박완서씨가 1위로 오른 반면, 1위였던 소설가 조정래씨는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지난해 7위였던 시인 고은씨가 2위이고, 4위였던 시인 신경림씨와 소설가 이청준씨가 공동 3위이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지난해 4위에서 올해는 5위로 약간 떨어졌다.
만화 분야 전문가들은 이현세 세종대 교수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만화가로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 등의 작품이 있다. 2위는 <임꺽정>으로 유명한 이두호씨, 3위는 지난해 1위였던 <타짜>의 허영만씨이다. 김재동 화백, 조관제씨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변호사 부문에서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위,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2위, 조무제 전 대법관과 고 조영래 전 변호사, 문흥수 변호사가 공동 3위이다.
패션계에도 전년도와 비교해 순위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단독 1위였던 앙드레김과 2위였던 디자이너 진태옥씨가 공동 1위에 올랐다. 진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유니폼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3위에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선정되었으며, 4위는 디자이너 이영희씨이다.
축구 차범근·야구 김인식·골프 최경주 ‘으뜸’
출판 분야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1위이며, 공동 1위였던 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사장은 2위로 한 계단 내려섰다.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가 3위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지난해 공동 1위였던 이홍우 전 서울대 교수, 이상주 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가 10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정운찬 국무총리가 1위에 올랐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스위스의 교육자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가 공동 2위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 문용린 서울대 교수 등도 있다.
의료인 중에는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가 새롭게 1위에 올랐고, 지난해 1위였던 김용익 서울대 교수는 2위이다. 이밖에 김규원 서울대 약대 교수, 박정의 성균관대 의대 교수, 조승연 연세대 의대 교수, 프랑스 의사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등이 거론되었다.
게임 분야에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지난해 3위였던 송재경 XL게임즈 대표가 2위를 차지했고,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3위로 순위 변동이 없었다.
복지 분야는 현직 장관의 프리미엄이 강했다. 지난해에는 전·현직 보건복지부장관들이 1위부터 5위까지 싹쓸이했다. 올해는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일도 다일공동체 목사가 공동 1위이다. 이경호 인제대 총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대표, 이익섭 연세대 교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공동 4위에 올랐다.
환경 분야에서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아성이 굳건했다. 올해도 이 분야에서 2위와 큰 차이를 보였다. 류재근 한국환경기술진흥원 감사가 2위이다. 이만의 환경부장관, 조용진 충주대 교수, 곽결호 한양대 석좌교수, 김정욱 서울대 교수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관광 분야에서는 전·현직 관광 정책의 사령탑들이 강세를 보였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1위,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2위이다. 이참 사장은 지난 7월 귀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고위 공직자에 올랐다.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3위이다. 지난해 1위였던 박석희 경기대 교수, 오지철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은 10위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올해 새로 추가된 통일·국제·외교 분야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존경하는 인물’ 1위이다. 그런데 현직 장관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10위권에 들지 못했고,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공동 6위에 랭크되었다. 반면,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이 2위, 노태우 정부 시절 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던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이 3위,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과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공동 4위이다.
올해 새로 추가된 축구 분야에서는 차범근 수원 삼성 블로윙즈 감독이 1위이다. 2위에는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꼽혔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위이다. 박종환 전 감독,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박지성 선수가 공동 4위에 올랐다.
야구 분야에서는 국민 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한화 이글스 고문이 42%의 지목률로 1위를 차지했다. 김성근 SK 감독이 2위,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과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골프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1위로 조사되었다. 골프의 황제로 불리는 ‘타이거 우즈’가 2위, 지난 8월 US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한 양용은 선수가 3위이다.
전체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동 중인 박지성 선수가 꼽혔다. 박선수는 지난해에는 10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다. 지난해 1위였던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 선수와 지난해 2위였던 김운용 전 IOC 위원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공동 2위이다. 김성집 전 태릉선수촌장, 홍명보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찬호 필라델피아 필리스 선수가 공동 5위로 조사되었다.
10위 안에 전·현직 대통령이 5명으로 절반 차지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영웅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어느 순간 ‘필부’로 전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반면에 지극히 ‘평범했던 소시민’이 하룻밤 자고나서 일약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모습도 보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언젠가는 내려가야 하는 법. 영웅도 예외는 아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온 ‘낙성(落星)’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산 정상에 올라 영웅의 깃발을 꽂은 ‘혜성(彗星)’이 있다.
<시사저널>이 차세대 리더 여론조사를 처음 실시한 것은 지령 1천호를 맞은 지난해 11월이었다. 당시 조사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저마다 ‘2008년을 빛낸 영웅들’을 꼽았다. 이번에 1년이 지나 창간 20주년을 맞은 지금 시점에서 정치·경제·법조·예술·종교 등 우리 사회 30개 각 분야 전문가 1천5백명에게 다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 결과, 나온 응답은 지난해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 사회 영웅으로 거론된 대상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3백35명이었는데 올해는 4백18명이 언급되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영웅의 ‘서열’도 엎치락뒤치락했다. 더불어 새롭게 영웅 명단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단에서 아예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조사 결과, 각계 전문가들은 ‘정도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 1위로 꼽았다. 지난해 조사에서 12위였던 안교수는 1년 만에 무려 11계단을 뛰어 오른 셈이다. 1백18명(7.9%)의 전문가들이 안교수를 최고의 영웅으로 추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1백15명, 7.7%)은 안교수와 불과 ‘3표’ 차이로 2위에 올랐다. 그 다음으로 축구선수 박지성(1백13명, 7.5%), 고 김대중 전 대통령(99명, 6.6%),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9명, 5.3%),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73명, 4.9%), 이명박 대통령(70명, 4.7%),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6명, 3.7%), 고 박정희 전 대통령(51명, 3.4%), 오바마 미국 대통령(48명, 3.2%) 등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조사에서 각각 5위와 9위에 올랐던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올해 서거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2위와 4위로 순위가 몇 계단씩 올라간 것은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곱 번째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50위권에 정치인·스포츠인 각각 12명씩으로 가장 많아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스포츠 스타’인 박지성·김연아 선수는 지난해 1, 2위에서 순위가 다소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10위권 안에 들면서 영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안철수 석좌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위에 오른 것에 대해 “의외이다.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치인 것 같아 어깨가 더 무겁다. 예전에 박원순 선생(희망제작소 상임이사)과 ‘꽤 큰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박원순 선생이 소감을 말하며 ‘이게 상이 아니라 벌이다’라고 했는데, 이해가 된다”라는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와 마주했다. 그래서 느낀 점을 물었더니 “참 좋았다”라며 “요즘 젊은 사람들도 예전과 같이 도전 정신과 호기심이 왕성하고 사명감도 많다. 다만, 사회 구조가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좁혀놓았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에 기여하려고 대학 강단에 서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IT산업에 대한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교수는 “현재 IT산업은 소외감이 강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 참모진 개편 때 IT특보를 신설하면서, 안교수에게도 그 자리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조직이 없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IT특보는) 조직 자체가 없는 명예직이니까, 성과를 만들어내기 힘든 여건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름으로 갖고 있는 ‘원칙’ 하나를 소개했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것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자문위원을 맡는 것이었다. 따라서 IT특보를 맡으면 그 경계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그는 “토론 위주의 수업으로 바꾸고 지식보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대학 강단에 계속 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5월 서거한 노 전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높은 지목률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분향소에는 무려 5백만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고, 현재도 자서전 등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3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고,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차지했다. 우리 국민은 그의 변함없는 ‘성실함’과 ‘겸손함’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형 스타’임에도 ‘안티’가 거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연아 선수는 지난해 우리 시대 영웅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에는 비록 6위로 순위가 밀려났지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기만 하다. 특히 2010년 2월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전 국민이 염원하고 있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11~20위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 인사들이 골고루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정치인으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13위)가, 재계 인사로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12위)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19위),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16위) 등이 영웅으로 꼽혔다. 문화예술·스포츠인으로는 여행작가인 한비야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11위)과 야구선수 박찬호(15위), 가수 김장훈(18위), 골프선수 양용은(20위) 등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특히 한국인의 정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채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14위)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백범 김구 선생(16위)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해 ‘반짝 영웅’이 아닌 ‘한국인의 영원한 영웅’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을 보면 정치인과 스포츠인이 각각 12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스포츠인 중에서도 골프선수가 다섯 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경제인은 지난해 두 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여덟 명으로 제법 늘어난 양상을 띠었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염병의 과거와 미래 (0) | 2009.10.28 |
---|---|
세종시 논란으로 본 대한민국 도시계획史 (0) | 2009.10.27 |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0) | 2009.10.22 |
손영숙의 뇌중산책 (0) | 2009.10.18 |
인간 하토야마 유키오‘일본 총리’ 연구 (0) | 2009.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