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아줌마’로 보낸 한 달…
손님·팀장 언니·동료·사장의 명령 속에 하루 12시간 뺑뺑이
한 달여 동안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8월 말에 구직을 시작해 9월 한 달간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에서 일했다. 젖은 손과 부은 다리를 부여잡고 잠이 들었던 한 달의 기록을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앞치마 허리끈을 묶는다. 주황색 셔츠에 검정바지, 검정 양말에 검정 앞치마. 머리는 단정히 반머리로 묶었다. 주황색 셔츠 두 벌과 검정 앞치마는 유니폼으로 지급받았다. 홀에서는 같은 옷을 입은 동료들이 이미 청소를 시작했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 9시50분, 하루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이곳은 서울 강서구의 ‘A갈빗집’, 나의 일터다.
가을 한 달을 ‘식당 아줌마’로 살았다. 식당에서는 누구든 ‘식당 아줌마’인 내게 일을 시킨다. 사장일 수도, 손님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해서 일하는 내내 일에 쫓긴다. 동료들은 대부분 인생의 가을을 맞은 중년 여성이다.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고 엄마다. 시급은 4천원 안팎이다. 그래도 12시간씩 쌓이니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다. 고스란히 생계비다. 식당 아줌마들의 가을은 가난하다.
1. 만능 슈퍼우먼
식당에서 중년 아줌마들은 ‘슈퍼우먼’ 혹은 ‘엄마’처럼 일해야 한다. ‘엄마’는 시키지 않아도 이것저것 집안일을 다 하곤 한다. 식당일도 집안일처럼 해도 해도 티가 안 난다. 찾을수록 할 일은 많고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무한 노동이다.
4종 걸레질로 하루를 시작하다
갈빗집의 아침은 청소와 함께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오전 9시40분에 출근하든, 10시 정각에 도착하든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업무 시작이다. 이때부터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온갖 일을 찾아내 해치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쁜 시간에 허둥대 더 피곤해진다. 청소는 크게 빗자루질과 대걸레질, 손걸레질, 화장실 청소, 이렇게 4가지로 나뉜다. 첫날, 옷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청소에 투입됐다.
직원들과는 청소를 하면서 첫인사를 나눴다. A갈빗집은 나를 포함해 홀서빙 직원 5명, 주방 직원 4명이 일한다. 사장은 40대 중반의 여성이다. 홀서빙 직원끼리는 나이가 많은 이는 ‘언니’로, 어리면 이름을 부른다. 홀서빙 직원 중에 직책이 ‘팀장’인 이가 있지만 이마저도 편하게 ‘언니’라 부른다. 주방에는 담당 업무에 따라 요리 담당 ‘실장님’, 밑반찬 담당 ‘찬모님’, 설거지 담당 ‘이모님’, 기타 잡무 담당 ‘과장님’이 있다.
가게는 넓다. 홀부터 주방까지 170평이다. 홀에는 29개 테이블이 있다. 안쪽에는 16개 테이블이 있는 방이 있다. 방 안쪽에는 또 하나의 나무 문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또 작은 방이다. 이곳에서 직원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그 안쪽으로 식자재 창고가 있어 작은 방엔 늘 매캐한 냄새가 난다.
싸리빗자루를 잡고 홀부터 쓸기 시작한다. 내 팔뚝 굵기의 빗자루를 잡고 홀 절반을 쓸고 나면 빗자루가 천근만근이다. 빗질이 끝나면 대걸레를 들고 온다. 갈빗집 바닥에는 기름때가 많다. 대걸레질은 두 손에 힘을 줘서 박박 문질러 닦아줘야 한다. 금세 주황색 셔츠가 땀에 젖는다. 한 번 쓴 대걸레는 락스와 주방세제를 풀어 손으로 벅벅 비벼 빨아줘야 한다. 이후 손걸레로 45개 테이블 위를 닦는다. 어린이용 놀이방, 어항, 선반 등도 닦아줘야 한다.
화장실 청소는 혼자 한다. 식당의 관습법상 막내인 내 담당이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락스와 주방세제를 잔뜩 풀어서 거품을 낸다. 그걸 변기와 세면대에 뿌린다. 가장 고역은 남자 소변기를 닦는 일이다. 남자 소변기 아랫부분의 둥근 뚜껑을 걷어내면 하루 동안 그곳을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곳을 수세미로 비벼 닦는다. 구역질이 난다. 락스를 너무 많이 쓰면 어느 순간 눈이 시려 뜰 수가 없다. 눈물·콧물 범벅이 돼서 물을 뿌린 뒤 후퇴한다.
허리를 펴고 시계를 본다. 1시간은 지났겠지 싶은데 이제 겨우 40분이 지났다. 12시간은 언제 지난단 말인가! 디저트용 커피와 요구르트를 준비하고 공기에 밥을 퍼넣는다. 1시간 사이에 변기부터 요구르트까지 내 손을 거친다.
오전 11시는 직원들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주방 앞 테이블에 상을 차린다. 막내가 눈치껏 밥상을 차려야 한다. “얘, 얼른 수저랑 물이랑 밥 놔!” 조금만 늦어도 언니들이 성화다. 수저, 물컵, 공깃밥, 앞접시를 가지런히 놓고 음식을 차린다. 내 입에 밥 넣는 것도 ‘일’이다. 낮 12시가 되면 손님이 물밀듯 들어오기 때문에 얼른 먹고 치워야 한다.
어림도 없는 ‘한 번에 한 가지씩’
A갈빗집의 메뉴는 다양하다. 크게 식사류, 전골류, 고기류로 분류된다. 식사류는 갈비탕, 육회비빔밥, 낙지비빔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냉면 등이다. 김치두루치기, 돼지주물럭, 버섯불고기 등 전골류도 인기 메뉴다. 고기류는 돼지왕갈비, 생삼겹, 소갈비, 한우꽃등심, 육회 등이 있다. 여기에 ‘점심 특선’ 메뉴가 있다. 하루에 한 가지 메뉴를 지정해 5천원에 제공한다.
낮 12시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앞뒷문이 열린다. 문에 매달린 종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걷지 말고 뛰어다녀!” ‘팀장님’이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이 식당에서 1년7개월간 일했다는 그는 식당일에서 베테랑이다. 한데 곧 그만둔다고 한다. 직원들 처우 문제로 사장과 다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장과 팀장은 서로 냉랭하다. “손님이 들어온다 싶으면 인사를 크게 해야지!” 어느 틈에 사장이 옆에 와서 잔소리다. 그러고는 시범을 보이듯 큰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를 외친다. 나도 따라 인사를 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선 ‘고객 만족’이 안 된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밀고 나가는데 또 손님이 들어오고 저쪽 테이블에서는 김치를 더 갖다달라고 한다. 커피를 타달라는 이도 있다. 점심시간에만 홀에 있는 29개 테이블의 손님이 두세 번 바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내게는 첫날이지만 손님들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굼뜨게 행동할수록 “아줌마!” “여기요!” 외치는 소리, 테이블벨 울리는 소리는 잦아진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최대한 빨리 상을 치워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쟁반운반차가 없으면 뚝배기와 도자기 그릇이 가득 든 쟁반을 손으로 날라야 한다. 무게에 팔목이 꺾인다. 그래도 그릇이 깨질까 조심조심 옮긴다.
상을 치우고 식당이 좀 조용해졌다 싶어 허리를 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30분이다. 개수대 옆엔 우리가 닦아야 할 물컵, 맥주컵, 가위, 국자, 집게 등이 쌓였고 그 옆 얼음제조기 위에는 식수가 담겼던 물통이 쌓여 있다. 물통에 얼음과 물을 채워놓고 설거지를 한다. 아침에 해놓은 밥도 다 팔렸다. 새로 밥을 해 공기에 퍼담는다. 다시 허리를 펴면 오후 2시30분. ‘언니’들이 내게 직원들 점심상을 차리라고 한다.
첫날의 ‘점심 특선’은 카레였다. 우리의 점심상도 카레였다. 이때부터 세 끼 연속 카레를 먹었다. 생각보다 ‘점심 특선’을 찾는 손님이 적어 카레가 많이 남은 까닭이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팀장 언니가 “가서 1시간 쉬라”고 한다.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경희(가명) 언니가 옷 갈아입는 방으로 슥 들어간다. 경희 언니는 마흔 살, 재중동포다. 피부가 희고 얼굴이 예쁘다. 화장도 열심히 한다. 그를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얇은 전기요가 깔려 있다. 언니는 그 위에 누웠다. 방석을 베개 삼고 발밑의 얇은 담요를 배까지 끌어올렸다. 나도 따라 누웠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뜨거운 전기요에 노곤한 몸이 달라붙는 듯했다. 언니가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놀라 깼다. 1시간 쉬는 것도 2인1조로 2교대다. 잠을 자라고 시키니 잠을 자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코드를 꽂아 충전한 기계처럼 밖으로 나간다. 이제 저녁 장사를 준비할 때다. 경희 언니는 다시 화장을 고친다.
5분 늦고 하루 종일 ‘주의’
자고 일어나 불판을 닦았다. 주방에 들어가니 까맣게 타버린 불판 수십 개가 큰 고무 대야에 담겨 있다. 앉은뱅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철수세미로 불판을 문지른다. ‘찬모님’과 ‘이모님’이 자기들 음식하는 데 거치적거린다며 소리를 지른다. 몸집이 큰 50대 찬모님과 깡마른 60대 이모님은 둘 다 욕을 잘 한다. 어쩔 수 없이 구석으로 옮겨 마저 닦는다. 한참을 문지르다 보면 불판을 이렇게 태워먹은 손님이 원망스럽다. 도대체 누가 왜 고기를 불판에 구워먹을 생각을 해냈을까. 수십 개를 닦고 나면 무릎도 어깨도 뒤틀린다.
오후 6시께부터 저녁 손님이 든다. 골프연습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혼자 온 손님부터 회식 단체 손님까지 밀려와 꾸준히 바쁘다. 고기 손님이 많아지면서 손님 시중을 드는 일도 더 많아진다. 시곗바늘은 꾸물거렸다. 배가 고팠다. 회식 손님의 삼겹살을 구워주다가 한 개 집어먹을 뻔했다. 너무도 맛있어 보였다.
식당일을 시작하면 서러운 순간이 많다. 미자(가명) 언니는 “나 때는 울면서 일 배웠다”고 했다. 43살 미혼인 미자 언니는 늘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이다. 예전에 우울증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감정의 기복이 크다. 그 언니 앞에서 실수를 하면 등짝을 짝짝 맞는다. 원래 식당일이란 것이 기존 직원들의 텃세에 사장의 구박, 손님들의 타박에 혼자 울 때가 많다고 한다. 맞은 자리가 아파도 앞에서는 웃는다.
사장도 기선을 제압하려고 꾸준히 구박을 한다. 내게도 그랬다. 5분 지각했다가 하루 종일 ‘주의’를 들었다. 10초나 됐을까, 음식준비대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결정타는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걸린 사건이다. 일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청소를 하다가 잠시 휴대전화를 받았는데 그 모습을 사장이 목격했다. “너 지금 다른 사람 일하는데 혼자 노는 거야? 일할 생각이 있는 거야 뭐야? 일 안 할 거면 그만둬!”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나의 말을 사장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었다. 나는 “일을 계속 할지 어쩔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날 저녁,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인생에 고비를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가 중요하다”며 설교를 늘어놨다. 그러더니 사람을 구할 때까지는 있으라고 했다. 돌아서며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과연 생계가 절박한 상황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의연히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진짜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드네”
드디어 애타게 그리던 밤 10시가 됐다.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사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들과 우르르 몰려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축축해진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언니들은 유니폼을 집에 가져가 빨아오기도 하고 퇴근 직전 개수대에서 빨아 가게에 널어놓기도 한다. “아이고, 하루가 또 이렇게 갔구만.” 바지를 벗던 이모님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너무 힘들다.” 팀장 언니가 거든다. 무뚝뚝한 찬모님까지 말을 보탠다. “진짜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드네.”
식당 아줌마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12시간 만에 마시는 바깥 공기다. 허벅지, 종아리, 발목, 발바닥이 모두 아파 걷기가 괴로웠다. 그래도 “스트레스나 풀 겸 소주나 한잔하자”는 아줌마는 아무도 없다.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집에 가서도 할 일이 많다. 팀장 언니는 가족과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 이모님도 찬모님도 집에 가면 집안일이 기다린다. 나 역시 집에 오니 빨래와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다. 외면하고 잠이 들었다.
2. 잔혹한 ‘달인’ 시스템
식당 아줌마들은 모두 ‘달인’처럼 일한다. 뜨거운 물건을 마구 잡는 신공은 가장 놀라웠다. 뜨거운 공깃밥과 펄펄 끓는 누룽지 그릇을 한 손으로 태연히 잡고 나른다. 뜨거운 불판 위에서 고기를 자를 때도 평온하다. 나는 매번 “앗 뜨거”를 연발한다. 장갑 없이는 공깃밥을 보관하는 온장고에 손을 넣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얼음과 냉면 그릇, 냉장고에 있던 고추장통을 만져야 하니 손이 타올랐다가 얼어버리기를 반복한다. ‘공깃밥 잡기’는 훗날 감자탕집에서도 나의 숙제였다.
비법이 뭘까? 빛의 속도로 물컵 설거지를 하고 있는 팀장에게 물었다. “고무장갑도 안 끼고 하세요?” “만날 하는 건데 뭐. 내 손 만져봐. 손이 그냥 수세미야.”
팀장 언니의 손등엔 주름이 가득하다. 40대 중반인데 노인의 손 같다. 손바닥도 손등만큼 거칠다. 주름이 너무 많아 손금을 구분하기 어렵다. 사람 손이 이렇게 촘촘히 거칠 수 있나 싶다. 그의 손은 이제 뜨거운 것도 더러운 것도 다 만질 수 있다. ‘달인’의 손이다. 락스물에 담근 내 손끝도 조금씩 트고 있었다. 언니들 말로는 그렇게 트기 시작해서 나중에 단단해진단다. 그때쯤엔 공깃밥을 너끈히 잡을 수 있을까.
홀에 켜놓은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한 번에 140장의 접시를 나르는 뷔페 직원을 ‘달인’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케이블 채널을 틀어놓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생활의 달인>이 방영된다. 각종 일터의 베테랑 일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뷔페 직원은 얼마나 많은 접시를 얼마나 빨리 날라야 했기에 손가락 사이마다 접시를 끼우게 됐을까. ‘달인’들과 함께 있는 나는 그들이 달인이어서 슬펐다. ‘노동의 달인’인 이들의 하루하루는 수세미처럼 거칠었다.
‘달인이 아닌 자’ 노여움을 살지니
눈치도 빨라야 한다. 손님이 들어오면 언니들은 3초 안에 손님이 몇 명인지 파악해 물컵과 물수건을 쟁반에 담는다. 한꺼번에 세 팀이 들어오는 걸 보고 물컵을 챙기려고 하면 이미 한 언니가 물통 3개와 물컵 여러 개를 들고 출동한 다음이다. 설거지도 요령껏 해야 한다. 물컵을 손으로 비벼 닦다가 혼났다. 주방세제를 묻힌 뒤 두 번만 ‘튕기란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수도꼭지 아래에서 상하로 두 번만 흔들란 얘기다.
모두가 ‘달인’이니 ‘달인이 아닌 자’는 노여움을 살 뿐이다. 개수대에 물을 받아 깻잎을 한 장씩 씻으니 경희 언니가 소리친다. “어머, 얘! 그렇게 닦으면 언제 다 해!” 왼손으로 깻잎 뭉치를 잡고 수도꼭지 아래에서 오른손으로 돈 세듯 넘겨주면 된다. 물까지 탁 털어주면 깻잎 100장을 씻는데 30초도 안 걸린다. 경희 언니는 가르쳐주다 말고 “아이고, 내가 빨리 하고 말지” 하며 자기가 마저 씻는다.
손님상, 특히 단체 손님상을 치울 때 ‘달인’의 면모는 빛을 발한다. 우선 가운데 불판을 치우고 환풍기 후드 아랫부분을 분리한다(이 부분은 매번 분리해 씻어줘야 한다). 음식물 찌꺼기를 한데 모으고 수저와 컵, 채소 등을 싹 걷는다. 그릇을 크기순으로 포개고 쓰레기를 한 번에 쓱 쓸어내 담는다. 20명이 먹은 상을 치우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음식을 갖다주고, 손님이 음식을 먹고, 손님상을 치우고, 다시 그릇을 닦아 정리해 음식을 담아 갖다주는 행위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그 위에서 아줌마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하다. 그래야 한다.
기술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다. 삼겹살부터 한우꽃등심까지 제대로 구워 제 타이밍에 잘라주지 않으면 큰일이다. 한쪽 면이 익어 핏물이 나올 때쯤 뒤집어 잘라줘야 한 번에 잘린다. 삼겹살을 자를 때는 비계 쪽부터 자른다. 한우꽃등심은 1인분에 3만5천원이다. 내 시급이 4487원꼴이니, 한우꽃등심 1인분을 사먹으려면 8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하다못해 5천원짜리 ‘점심 특선’도 내 시급보다 비싸다. 그러니 ‘비싼 음식님’에게 잘해야 한다.
열흘새 입안 헐고 발바닥엔 굳은살
불호령의 나날이었다. A갈빗집 일을 그만두기 사흘 전인 지난 9월8일부터 갑자기 내가 마감 당번이 됐다. 마감 당번이란 다른 직원들이 밤 10시에 퇴근한 뒤에도 가게를 지키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직원을 뜻한다. 갑자기 마감 당번이 됐기에 9월8일에는 13시간 노동을 했다. 1시간만큼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다음날부터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라고 했다. 술손님 시중을 들다가 밤 11시가 됐다. 사장이 고생한다며 자두 하나를 줬다. 허겁지겁 먹었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빵을 사먹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매일 밤 뜨거운 수건을 다리에 올려두고 자도 다리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9월10일, 마지막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열흘새 입안이 헐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혔다. 근육과 관절이 아팠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이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완전한 착각이었다.
3. 조건반사 노동
인천의 B감자탕집은 A갈빗집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특히 노동 착취가 심했다. 24시간 문을 여는 감자탕집은 150평 규모에 걸맞지 않게 주방에 1명, 홀서빙에 1명의 직원만을 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씩 2교대다. 한 달에 두 번 쉴 수 있고 월급은 120만원이다. 12시간을 균일하게 봐도 시급이 3571원에 불과하다. 덩치가 좋은 50대 남자 사장은 아침·저녁으로 수금을 위해 잠깐 들러 1시간 정도 잔소리만 하다 간다.
“감자탕 대자로 드릴까요?”
식당에서는 ‘소리’에 민감해진다. 갈빗집 출입문엔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감자탕집 자동문에선 <클레멘타인> 노래가 나왔다. 밥 먹을 때도, 서빙을 할 때도, 반찬통을 채울 때도 ‘딸랑딸랑’ 소리나 <클레멘타인> 전자음이 들리면 바로 일어나 “어서 오세요!”를 외쳐야 한다. 어느새 내 몸은 이들 소리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한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이 노래는, ‘넓고 넓은 감자탕집 홀서빙은 나 혼자~’로 들린다.
몸은 어느 순간부터 자동으로 움직인다. 손님이 오면 문쪽을 보고 인사를 한 뒤 물수건과 컵을 사람 수대로 챙겨 테이블로 안내한다. 주문을 받고 카운터에 와서 선택 메뉴와 수량을 입력한 뒤 주문서를 음식준비대에 가져다준다. ‘딩동’ 하고 테이블벨이 울리면 “네, 손님!” 하고 바로 외친 뒤 해당 테이블로 달려간다. 가는 길에 다른 손님이 뭔가를 요구하면 따로 기억해야 한다. 주방에서 “음식 나가요”란 소리가 들리면 상을 치우다가도 달려가 음식을 서빙해야 한다. 음식이 식으면 절대 안 된다. 특히 뚝배기에 담긴 음식은 보글거릴 때 내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평을 한다. 다시 끓여달라는 이도 있다. “계산이오!” 소리가 들리면 카운터로 달려가야 한다. 반찬 냉장고 앞에서 카운터까지는 35걸음이다. 이 모든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뛰어야 산다.
내 몸이 힘들어지니 음식도 더 이상 사람이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원수 같은 물건일 뿐이다. 갈수록 반찬 재활용도 위생도 신경쓰지 않는다. 야간 홀서빙 언니에게 전수받은 상 치우는 법은 이랬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는 버리면 안 된다. 고추와 마늘, 쌈장도 딱 봐서 지저분하지 않다 싶으면 그대로 쟁반에 올린다. 밥도 깨끗하게 한쪽으로만 먹고 남겼다면 ‘살린다’. 나중에 볶음밥용으로 쓸 수 있다. 하다못해 감자탕의 시래기가 많이 남아 있으면 그것만 따로 담아 쟁반에 올린다. ‘반찬 재활용’은 갈빗집에 있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A갈빗집은 김치와 마늘, 고추, 상추 등을 재활용했다. 나는 은근슬쩍 남은 반찬을 다 버리곤 했다. 하지만 바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겨를도 없다.
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감자탕 대(大)자로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자동이다. 이는 사장의 특별 지시 사항이다. 감자탕은 대 2만7천원, 중 2만2천원, 소 1만7천원이고 1인분씩 나오는 뼈해장국은 5천원이다. 손님 3명이 들어와 뼈해장국 3개를 시키면 1만5천원, 감자탕 대자에 각자 공깃밥을 시켜 먹으면 3만원이니 꼭 감자탕을 시키도록 유도하란다. 일단 ‘감자탕 대자’를 시키면 그 자리에서 주방을 향해 “감자탕 대자요!” 하고 소리를 지르란다. 이후에 손님이 주문을 바꾸려고 하면 “이미 음식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란다. 불륜 커플로 보이는 이들은 구석 자리를 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몸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인다.
인간은 참 자동이다
점심과 저녁, 바쁜 시간 사이에 틈을 내 화장실 청소를 한다. 화장실 냄새는 ‘24시간 업소’다웠다. 청소 첫날, 남자 화장실에서 난 잠시 숨을 멈췄다. 어떤 이가 변기에 변을 그대로 남겨두셨다. 물을 몇 번 내려봐도 내려가지 않는 굳기를 보니 적어도 1시간 이상은 됐다. 용의 선상에 몇 명을 올려본다. 변기 앞 재떨이에 담배꽁초도 여러 개다. 재떨이에 사장이 피우는 담배도 있다. 소변기도 늘 대충 닦았는지 더럽다. 식당에서 먹고 싼 이들을 생각해본다. 인간은 참 자동이다.
4. 휴식 없는 노동
B감자탕집 언니들은 지난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주방과 홀에 사람이 1명씩 있으니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다. 이렇게 직원 수를 줄인 지 3개월 됐다. 사장은 곧 1명을 더 뽑겠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언니들은 눈치를 보며 누구 하나 쉰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쉬면 가게는 어떻게 해.” 속 터지는 소리만 한다. 사장은 휴일을 모른 척한다. 쉬지 않는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9월 넷쨋주, 나와 주방 언니는 하루 차이로 생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리통에 고통스러워하자 주방 언니는 비밀스럽게 말했다. “반찬 냉장고 앞에 잠깐 엎드려 있어. 내가 손님 오나 보고 있을게.” 주방 입구의 반찬 냉장고 앞은 구석진 곳이어서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 30분 이상,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인천 B감자탕집에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없다. 정식 휴일도 못 쉬는데 생리휴가가 통할 리도 없다. 손님과 사장의 눈을 벗어나 앉을 수 있는 곳은 화장실과 이 냉장고 앞뿐이다.
» 휴식 없는 노동. 일러스트레이션 유승하 |
수술하면 당분간 일을 할 수 없으니…
다음날은 주방 언니가 그 자리에 엎드렸다. 언니는 주방 문턱을 베고 방석을 덮고 누워 끙끙 앓았다. 주방 언니 자궁에는 혹이 있다. 수술을 해 자궁을 들어내야 한단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당분간 식당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방 언니의 생리통은 극심했다. 생리 기간에는 하루에 진통제 한 통을 다 먹었다. 따뜻한 바닥에 10분만 배를 깔고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그는 바랐다. 하지만 그는 지난 석 달을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버텼다. 방석 하나를 덮어주었다.
9월18일 금요일, 점심을 먹으려고 수저를 드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무거운 뚝배기를 들고 오전 내내 뛰어다녔더니 팔다리의 힘이 다 빠졌다. 주방 언니를 쳐다보는데 언니도 손을 떨고 있었다. 주방 앞 준비대에 서서 밥을 먹는 참이었다. 어이가 없으니 서로 웃음이 나왔다. 식당일을 한 기간 중 이날이 가장 바빴다.
애초에 바쁘기로 예약이 된 날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산악회 20명, 친목회 14명이 예약을 했다. 오전에 수영장 회원 20명 예약이 추가됐다. 모두 저녁 7~8시였다. 가뜩이나 손님이 많은 편이라는 금요일 저녁, 혼자 얼마나 뛰어다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침 교대 시간부터 사람이 많았다. 점심시간에는 밀려드는 손님에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뼈해장국을 나르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오고 한 팀은 나가면서 “여기 계산이오!”를 외쳤다. 뜨거운 뚝배기를 아슬아슬하게 내려놓고는 새로 온 손님들에게 금방 간다고 외치고 정문 쪽에 있는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해줘야 했다.
손님 54 대 직원 1의 전쟁터
이렇게 넓은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주말 식사 시간대까지 홀서빙을 단 1명만 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은 이날도 일할 사람을 더 구해주지 않았다. 오후 5시께, 사장이 홀로 나타났다. 그러고는 주방과 홀 사이에 서서 끝도 없이 잔소리를 했다. “밥 볶을 때 성의 있게 해라” “저기 18번 주문 받아라” “음식 먼저 갖다드려라”….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시켰다. ‘니가 해!’라는 말이 목구멍 아래서 부글거렸다. 산악회 20명, 수영장 회원 20명, 친목회 14명은 모두 저녁 7시30분 언저리에 몰려왔다. 가게는 전쟁터였다. 나는 전쟁터 한가운데 서서 이대로 전사할 것만 같았다. 그날 밤엔 골반이 빠지는 듯 아팠다.
주방 언니는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가 벌써 4년째다. 그 사이 그는 완전히 사장의 노예가 됐다. 사장은 그에게 식당 뒤쪽에 배추와 오리를 키우게 했다. 주방 언니는 매일 오리장 청소를 하고 오리 목욕을 시켰다. 오리를 키우기 전에는 도사견 5마리를 키웠단다. 개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추가 업무지만 돈을 주진 않는다.
사장의 횡포에도 주방 언니가 묵묵히 일하는 이유가 있다. 주방 언니의 남편은 직장이 불안정하다. 의자 공장을 하다 망한 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언니가 이 감자탕집에서 벌어오는 돈은 귀하다. 집도 5분 거리여서 하굣길에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가게에 들른다. 언니는 이때 아들에게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어떤 날은 감자를 볶아놨다가 건네며 저녁 반찬으로 먹으라고 한다. 3개월이 아니라 더 오랫동안 휴일 없이 일을 시켜도 계속 다닐 수밖에 없다. 이왕 익숙해진 일이니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도 생각한다.
A갈빗집 팀장님도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식당 아줌마’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는 자영업자가 급증한 시기이기도 하다. 제조공장들이 쓰러지고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셈이다.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은 고스란히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최근 자영업의 몰락은 식당 아줌마의 위기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들은 가장 먼저 직원 수를 줄였고 식당 아줌마들은 점점 더 혹사당한다. 식당에 배달된 인천 지역 신문을 보는데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인천 지역에서 중·장년층 여성의 취업 건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그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3년새 2만4천 명이 늘어 20만6천 명의 중·장년층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 하늘 아래만도 비정규직 아줌마가 이렇게나 많다.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 5일째 되는 날, 난 사장에게 “사흘 뒤인 9월23일에 쉬겠다”고 말했다. 교대 시간이라 주·야간 언니들이 함께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사장은 이유를 물었다. 애초 취업할 때 한 달에 두 번은 쉬기로 했는데 사장은 그걸 아예 잊은 듯했다(근로기준법상에는 일주일에 1회 이상 유급 휴일을 주도록 돼 있다). 개인적으로 일이 있다고 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쉬라고 했다. 그러고는 주방 언니에게 나 대신 일할 1일 파출부를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직 미숙하니까 파출부로 대체할 수 있는 거지, 우린 못 쉰다”고 했다.
“하루 쉬겠다”에 화들짝 놀라는 언니들
얼마 뒤 감자탕집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장은 호통을 쳤다. “놀게 해줬더니 마음이 변해서 온 거 아냐! 그만둘 거면 당장 나가!” 축축한 앞치마를 벗는데 눈물이 났다. 주방 언니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일도 생리통을 참고 진통제를 한 통씩 먹어가며 일을 할 것이다. 가게 문을 나섰다. 자동문이 어김없이 <클레멘타인>을 흐느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식당 구직과 시급 두 곳 다 “내일 나올 수 있느냐”
구직 과정은 단순했다. 8월 말,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요즘은 오프라인 생활정보지도 인터넷에 구인 정보를 올린다. 구인 사이트를 방문하면 전국의 식당 구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지역은 집에서 30분 거리인 강서구로 정했다. 생계를 위해서는 풀타임 직원이 돼야 했다. 구인 정보를 보고 전화를 하면 다들 나이를 묻는다. ‘30살’이라고 하면 중국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A음식점’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홀서빙 직원을 구했다. 전화를 해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이냐고 물으니 그냥 한식이란다. 일이 가장 힘들다는 갈빗집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면접을 보러 갔다. 식당 앞에 도착해서 경악했다. ‘A음식점’은 ‘A갈빗집’이었다. 면접에서 사장은 내게 일해본 경험이 있는지, 결혼을 했는지, 내일부터 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임금은 한 달에 나흘 쉬고 140만원이다. 고용보험을 들면 여기서 보험금을 뗀다. 사장도 같은 액수만큼 내야 한다. 결국 둘 다 꺼린다. 140만원을 한 달 근무일인 26일, 하루 12시간으로 나누면 시급이 4487원이다. 12시간 중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을 넘겨 일하는 4시간엔 1.5배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시급이 약 3846원으로 최저임금인 4천원에 못 미친다. 다만 A갈빗집에선 종종 “들어가서 1시간 자라”고 했으니 그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뺀다면 추가 노동은 3시간, 시급은 약 4308원이다. 조제희 노무사는 “노동자가 외출을 할 수도 있는, 재량껏 쓸 수 있는 시간이라야 휴게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취직한 인천의 B감자탕집은 더 열악했다. 한 달에 두 번 쉬고 120만원이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한다. 한 달 28일, 하루 12시간으로 계산하면 시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3571원이다. 시간외수당까지 고려하면 겨우 3천원이 넘는다(3061원). 감자탕집에서는 직원들이 3개월째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었는데, 휴일수당도 따로 지급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은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 임금의 1.5배 이상의 가산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점까지 감안해 계산하면 실제 시급은 더 적어지는 셈이다. 감자탕집은 면접도 사장 대신 ‘주방 언니’가 봤다. 그가 내게 확인한 것은 “내일 나올 수 있느냐”는 한 가지뿐이었다. 사람이 아주 급한 집이었다. 몇 달째, 일하러 온 사람마다 일주일을 못 넘겼다. 면접 당시 홀서빙은 용역회사를 통해 온 1일 파출부 아줌마가 담당했다. 150평 식당에 홀서빙이 1명뿐이다.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쉬는데 120만원밖에 안 주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별수 없다. 당장 일할 곳이 필요하다면 견뎌야 한다. |
식당일 끝나면 집안일
여성 8782명 가운데 91%가 거의 매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담당해
“식당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일하는 건 똑같아.”
A갈빗집 ‘팀장 언니’가 말했다. 그의 거친 손은 식당일이 절반, 집안일이 절반의 책임이다. 10년 전, 남편이 공장을 운영할 때는 공장 식구들 밥을 전부 해먹였다. 20년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웠다.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지금도 밤 10시에 퇴근해 집에 가면 밥을 차려 가족과 먹는다. 아침에도 빨래를 해 널어놓고 출근한다. 억척스럽다.
12시간 식당일, 3시간 가사노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내놓은 ‘2008 여성가족패널조사’는 ‘억척’을 증명한다. 기혼 취업 여성의 경우 평일에는 184분, 토요일에는 203분, 일요일에는 213분 가사노동을 한다. 퇴근한 뒤 하루 3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하는 셈이다. 평균만도 이렇다. 12시간 식당일을 마치고 3시간 가사노동을 하면 하루 9시간이 남는다. 출퇴근 준비 시간을 빼면 잠잘 시간도 빠듯하다.
한 달간의 식당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되도록이면 집안일을 그대로 두라 했다. 자녀를 키우는 ‘식당 아줌마’들에게 주어진 집안일이 내 것보다 더 많을 테다.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환경을 만들려 했다. 아침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집에 와 빨래와 청소를 할 요량이었다. 의욕은 좋았다. 하루이틀 집안일이 쌓여갔다. 집에 가면 짜증이 났다. 싸움이 잦아졌다.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일을 하며 집안일을 걱정한다. “집에 김치가 떨어진 지 한 달짼데….” B감자탕집 ‘주방 언니’가 깍두기를 담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감자탕집에서 주방 언니는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가야 한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번갈아 담근다.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는 언니가 김치가 없어 걱정이란다. 3개월째 못 쉬다 보니 집에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할 시간이 없다. 가족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가게 바로 옆 마트에 뛰어가 감자 몇 개를 사온다. 감자를 볶아놨다가 하굣길에 식당에 들른 중학생 아들 손에 쥐어준다. 저녁 반찬이자 다음날 도시락 반찬이다.
» 하루하루 억척스럽게 산다. 식당일을 마치면 다시 앞치마를 입고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한다. “부지런히 사는 방법밖에 없다”고 ‘식당 아줌마’들은 말한다. 사진 연합 유형재 |
A갈빗집 팀장 언니처럼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퇴근 뒤 늦은 저녁을 먹는다. 밤 9시가 되도록 가족은 엄마를, 아내를 기다린다. 주방 언니에겐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스란히 일이다. “어제는 집에 가서 바지락 칼국수를 해먹었어. 애들이 잘 먹더라고.” 내가 집에 돌아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주방 언니는 칼국수를 만들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밤 12시가 금방이란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를 도우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하루만 푹 자는 게 소원이다.
하루만 푹 자는 게 소원
비정규직 중년 여성에게 가사노동은 또 하나의 굴레다. 위 조사에서 여성 8782명 가운데 91%가 거의 매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자신이 담당한다고 응답했다. 아내가, 엄마가 없으면 가족은 밥 먹기도 힘이 든다. ‘가족의 행복’과 ‘먹고살 돈’을 위해 아줌마는 달린다. 집이든 식당이든 멈출 수 없다. 억척스러운 건 아줌마가 아니라 세상이다.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애쓴다?
기혼여성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 남자 정규직 임금 100·여자 비정규직 임금 39.1
지난 2005년 현재 맞벌이 가구는 전국적으로 363만3천 가구이고, 남편 혼자 버는 가구는 477만6천 가구다. 아내 혼자 버는 가구는 40만8천 가구다. 그런데 맞벌이 가구만 볼 때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일수록 맞벌이를 더 많이 할까, 아니면 저학력 저소득층 여성일수록 맞벌이에 더 많이 뛰어들고 있을까? 맞벌이 가구의 직종별 취업 구성을 살펴보면 몇 가지 짐작을 해볼 수 있다.
자아성취보다는 임금소득을 위해서
통계청 조사를 훑어보면, 맞벌이 가구 안에서 아내가 주로 종사하는 직종은 농림어업·사무직·판매직·서비스직이다. 홑벌이 부인 가구의 주요 취업 직종 역시 서비스·판매·단순노무 직종이 대부분이다. 반면, 홑벌이 남편 가구의 남편은 사무, 기계조작·조립, 기능원 및 관련종사자, 기술공 및 준전문가가 많다. 특히 전체 홑벌이 남편 가구 가운데 남편의 직업이 ‘의회 및 전문·관리직 종사자’(의회의원, 고위임원 및 관리자,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 포함)인, 즉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직종은 27.6%에 이른다. 전체 맞벌이 가구에서 남편의 직종이 이 부류에 속하는 비중은 19.0%였다.
그런데 기혼 취업여성의 임금수준은 놀라울 만큼 낮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9년 3월)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남자 비정규직은 402만 명(43.2%), 여자 비정규직은 439만 명(64.9%)이다.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비정규직 임금은 49.7이고,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39.1에 불과하다. 이처럼 여성 비정규직의 가슴에는 ‘여성노동의 빈곤화’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다.
특히 김유선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 측면에서 미혼자는 남녀 간 차이가 거의 없지만, 기혼자는 큰 격차를 보인다. 즉, 기혼남자는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39.1%인 반면, 기혼여자는 그 비율이 69.3%나 된다.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혼여성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성차별적인 저임금 비정규직이 ‘기혼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표면상 성차별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이윤을 남겨줄 수만 있다면 자본은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거대한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기혼여성 노동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거짓말과 그 성차별적 성격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다.
식당일 등 ‘장기 임시근로’에 대거 포진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가보자. 김유선 소장의 분석에서는 전체 기혼여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을 69.3%로 집계했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이 비율은 44.1%(203만 명)다. 왜 이런 차이가 빚어지는 걸까? 이유는 기혼여성 노동자가 대거 취업하고 있는 ‘장기 임시근로’라는 고용형태 때문이다. 장기 임시근로란 근로계약 없이 1년 이상 일하는 경우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9년 3월 현재 기혼여성 임금노동자 중 42.5%(200만 명)가 장기 임시근로에 해당한다. 지난 3월 현재 이들은 월평균 임금 125만원, 시간당 임금 5803원, 주당 노동시간 50.8시간으로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다.
그런데 통계청은 이 기혼여성 비정규직들을 정규직 범주에 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기혼여성 보호 정책이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한쪽에는 주로 기혼여성을 착취해 이윤을 얻는 신자유주의 자본이 있고,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이를 묵인하거나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격이다.
웬만해선 식당에서 탈출할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가족 생계 부양 때문에 아파도 못 쉬는 식당 아줌마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
숟가락을 드는데 이 말이 떠올랐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말이다. 식탁 위엔 카레가 놓여 있다. 전날 ‘점심 특선’ 메뉴였다. A갈빗집은 매일 5천원짜리 ‘점심 특선’을 준비한다. 카레는 잘 안 팔렸다. 많이 남는 바람에 식당 직원들은 세 끼째 카레를 먹었다. ‘팔고 남은 음식’이 내 몸을 채운다. 그 덕에 배곯지 않고 일한다.
갈빗집에서 갈비를 못 먹듯, 감자탕집에선 감자탕을 못 먹는다. 식사 시간, 감자탕 국물만 줬다. “이거 먹고 힘 안 나요. 뼈다귀 하나만 줘요.” 주방 언니에게 사정했다. “사장이 우리가 뼈다귀 먹는 것 싫어해.” 그가 난처해했다. 이튿날 사장은 식당에 애완견을 데려왔다. 뼈다귀에서 고기만 발라 애완견에게 줬다. ‘먹는 것’은 철저히 계급에 따른다.
일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한다. 12시간 식당 노동자는 끼니를 모두 식당에서 해결한다. A갈빗집의 아침식사는 11시, 점심은 2시30분, 저녁은 8시30분이다. “저녁만이라도 가족과”가 목표인 팀장 언니와 “다이어트”를 외치는 경희 언니만 저녁을 건너뛴다. B감자탕집은 아침식사 9시30분, 점심 2시30분, 저녁은 없다. 퇴근하면 뭐든 허겁지겁 먹게 된다. 그러니 식당에서 주는 대로 잘 먹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출근 전, 퇴근 뒤에 사먹어야 한다. 다 돈이다.
끼니는 영업시간 뒤에 팔고 남은 음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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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사건’은 반란이었다. A갈빗집 직원들이 ‘팔고 남은 음식’ 먹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전면적인 거부는 아니었다. 소심한 저항에 가까웠다. 8월 말, 콩국수가 ‘점심 특선’인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팔고 남은 면을 두고 직원들은 고민에 잠겼다. 아침부터 삶아놓은 면은 불을 대로 불어 있었다. “이걸 먹어야 하나.” 때마침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직원들은 면을 새로 삶아 콩국물에 말았다.
식사 도중 사장이 돌아왔다. “누가 불은 면 안 먹겠다고 했어, 응?” 사장이 콩국수를 젓가락으로 휘적이며 눈에 불을 켰다. 국수를 먹다 말고 직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랬는데요.” 팀장 언니가 맞섰다. 사장이 그를 따로 불렀다. “진짜 네가 그랬어? 다른 애들이 그랬으면 잘라버리려고 했더니.” 팀장 언니는 자신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돈 벌더니 사람이 변했어. 예전엔 고기도 자주 줬는데….” 팀장 언니는 A갈빗집에서 일한 지난 2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콩국수 사건’ 열흘 뒤 팀장 언니가 그만뒀다. 9월5일 밤 9시, 팀장 언니의 환송회가 열렸다. 사장이 돼지갈비를 내왔다. 1인분에 1만1천원짜리다. 직원들은 두 달 만에 가게에서 고기를 먹는다. 젓가락이 바쁘다. 팀장 언니는 소주만 들이켰다.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표정이 밝네?” 요리 담당인 ‘실장님’이 농을 던졌다. 팀장 언니는 발끈했다. “남은 심란해 죽겠고만! 눈알을 뽑아서 당구를 쳐버릴까보다.” 설거지 담당 ‘이모님’과 밑반찬 담당 ‘찬모님’이 배를 잡고 웃었다. 직원들은 자꾸만 팀장 언니에게 술을 따라줬다.
1. 닮은꼴 언니들
서울 A갈빗집과 인천 B감자탕집은 퍽 다르다. A갈빗집은 소갈비 전문, B감자탕집은 돼지뼈가 주재료다. 손님의 성격과 식당 소재지도 다르다. 한데 ‘식당 아줌마’들의 사연은 서로 닮았다. 식당일을 시작한 까닭, 현재 가족의 경제 상황 등이 비슷했다.
그곳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이 있었다. 1990년대 말, 제조공장이 무너지고 정리해고가 횡행했다.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린 자영업자가 늘었다. 몰락 가장의 부인들이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A갈빗집 팀장 언니도 ‘사모님’에서 ‘아줌마’가 됐다. 2000년에 식당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30대 중반이었다. 그해 겨울, 남편이 운영하던 지갑공장이 부도났다. 유명 브랜드 지갑을 외주로 생산해온 꽤 탄탄한 공장이었다. 직원도 30명이나 됐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거래처들이 하나둘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일거리가 뚝뚝 끊겼다. 모든 거래처를 중국에 뺏기고야 공장을 정리했다. 남편 나이 40대 중반에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좀처럼 취직을 못했다. 40대 중반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대부분 공장 비정규직이었다. 어렵게 들어갔다가도 며칠을 못 버텼다. 그들에겐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이 있었다. 팀장 언니가 나서야 했다. 생활정보지를 뒤져서 식당일을 알아봤다. 서울 여의도역 근처 갈빗집과 발산역 근처 갈빗집을 거쳐 서울 강서구의 A갈빗집까지 왔다. 이제 아들은 스무 살이 넘었다. 그렇게 10년이다. 여전히 그는 식당에서 일하고, 남편은 공장 일자리를 알아본다. 아들은 지방대에 진학했다가 휴학하고 식당일을 한다.
팀장 언니는 B감자탕집 주방 언니의 ‘미래’다. 주방 언니 남편의 사업이 망한 지 5년이 됐다. 의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외환위기 전후에도 쓰러질 듯 견디며 운영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일이 닥쳤다. 전국에 가맹점을 둔 PC방 업체 주인이라는 사람이 고급 의자를 대량 주문했다. 물건을 넘기자 주문자가 잠적했다. 공장은 무너졌고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해 남편은 한동안 쫓기는 신세가 됐다.
주방 언니가 B감자탕집에서 일을 시작한 건 그때다. 그렇게 4년째 일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아직 빚은 갚을 엄두도 못 낸다. 지난 9월에도 대출금 1500만원의 만기가 돌아와 ‘대출상환연기신청서’를 써냈다. 남편은 부도 이후 계속 일용직으로 일한다.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아들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 까지는 돈을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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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실패한 남편과 공부할 자녀 둔 언니들
비슷한 처지에도 ‘과시욕’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은행원이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40대 후반 아줌마는 직원들 사이에서 ‘밥맛’으로 통했다. “한 달에 쇼핑하는 데만 200만원씩 써왔는데 120만원을 벌어서 어디에 쓰나?” 이 말에 식당 아줌마들은 격분했다. ‘밥맛 아줌마’는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일이 너무 힘들어 온몸이 아프다 했다. 다른 식당을 알아본다 했다.
비혼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팍팍한 삶에 드라마는 없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처럼 죽집에서 일하다 왕자님을 만난다? 어림없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은 어떤가. 설렁탕집에서 서빙하다가 유산을 받아 사장이 된다? 꿈이다. ‘골드미스’도 다른 세상 이야기다.
43살 미자(가명) 언니는 생계가 절박하다. 저축은 없는데 월세부터 술값까지 나갈 돈은 많다.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다. 지금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번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을 나오지 않는다. A갈빗집에서도 그게 문제가 돼 그만뒀었다. 8월 말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팀장 언니 환송회날도 술을 많이 마셔 인사불성이 됐다.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다행이었다.
40살 경희(가명) 언니는 ‘중국동포’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위장결혼을 했지만 마음은 비혼이다. 그는 친구 따라 성인 나이트에 갔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오후 3시가 되면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경희 언니의 얼굴이 활짝 핀다. 언니들은 “유부남 만난다”고 수군댄다. 경희 언니는 며칠 휴가를 내고 그와 놀러가는 것이 소원이다. “지난여름에 같이 동해 바다를 갔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큰 자랑이다. 얼굴이 예쁘고 화장도 잘하는 그가 한국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2. 잘 가라, 자궁아
식당 아줌마들은 언제 식당을 그만두게 될까. 절박해서 시작한 일, 그만두기 어렵다. 돈을 많이 모아 식당일에서 ‘탈출’하긴 쉽지 않다. 100만원대의 월급을 받아 10만원을 저축하기도 빠듯하다.
‘낙오’만이 식당일을 벗어나는 길이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하게 되면 ‘낙오’한다. 그렇게 식당 앞치마는 벗지만 생계는 막막하다. 식당 아줌마들은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럴수록 몸은 더 약해져간다. 악순환이다.
“여기 좀 만져봐. 딱딱한 게 있어.” A갈빗집의 현숙(가명) 언니는 8월 말 어느날 동료들의 손을 자기 아랫배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음날, 병원에서 자궁의 종양을 발견했다. 자궁근종이다. 9월 초, 그는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식당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자궁을 잃고서야 식당 아줌마 생활 10년 만에 식당일을 쉬게 됐다.
식당 아줌마들에겐 남 일 같지 않았다. 다들 폐경을 앞둔 나이다. 하루 날 잡아 휴게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다 같이 병문안을 갔다. 수술은 잘됐다고 했다. 당분간 힘든 일은 하면 안 된다. 식당 아줌마들은 현숙 언니의 아들을 가게로 불렀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말 없는 아이에게 밥을 차려줬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조용히 갈비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갔다.
자궁에 탈… 병원행 대신 폐경기 기다려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자궁에 혹이 있다. 남편 공장이 망하고 식당일을 시작한 뒤 발견했다.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당분간 일도 못한다. 돈도 든다. 주방 언니는 수술을 포기했다. 매달 생리 기간이면 골반이 뒤틀리고 출혈이 심하다. 고통을 진통제로 누른다. 차가운 바닥에 조용히 누워 눈을 감고 고통이 사그라지길 기다린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휴일은 생리 기간에 맞춘다. 한데 3개월 전부터는 하루도 못 쉬고 있다. 차라리 어서 폐경이 오길 기도한다. 폐경 뒤엔 여성호르몬이 줄어 종양이 작아지기도 한단다.
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걸까? 맞다. 통계가 증명한다. 통계청의 2008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인 인구 중 “지난 2주간 아픈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가 34.7%다. 이들은 14일간 평균 10.2일을 아팠다. 가구소득 100만~200만원인 경우 17.8%가 평균 8.4일간 아팠다. 가구소득이 500만~600만원으로 올라가면 13.6%, 6.4일로 떨어진다.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은 13.8%, 6.6일이다. 가난한 계층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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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줌마가 웃을 때
“에이, 왜 이런 거를 봐.“
9월22일, TV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다가 걸렸다. “저런 놈들, 만날 저러는 거.” 주방 언니는 채널을 돌렸다. A갈빗집과 B감자탕집 직원들은 다들 <패밀리가 떴다> <해피선데이-1박2일> 등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저렇게 놀러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감자탕집 주방 언니가 말했다. TV를 보는 식당 아줌마에겐 매주 놀러가는 <패밀리가 떴다>도, 출연자들이 받는 거액의 출연료도 비현실적이다.
연예 프로·음담패설로 허탈한 웃음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음담패설’이다. 여자 넷이 모이면 음담을 나눴다. B감자탕집 교대 시간인 아침 9시, 주·야간 아줌마 넷이 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이다. “아이고, 이번달엔 수도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나 몰라.” “밤마다 욕조에 물 받아놓고 누구 기다린 거 아니여?” “어느 임을 맞으려고 그렇게 씻어댔다니.” “아무나 오라고 문 열어놨지.” 그러다가 야간 주방 언니가 “아이고, 저 가슴 큰 거 봐”라며 주간 주방 언니 가슴을 덥석 만진다. 웃음소리가 식당에 퍼진다.
하루 12시간씩 식당일을 하며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할까? 내 경우는 식당일을 시작한 뒤로 남편의 팔베개조차 귀찮아졌다. 내 몸뚱아리가 무거우니 성욕이 사라졌다. “그래도 그거 할 힘은 따로 있는 거지!” 언니들이 타박이다. “지금은 밥 먹다가도 밀어놓고 할 나이 아니여!” 다 같이 까르르 웃는다. 주말부부인 50대 야간 주방 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은 지금도 주말마다 보약 챙겨먹듯 챙겨.”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를 하고도 부부관계를 갖는단다. 한바탕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언니들이 말한다. “우리 나이 돼봐, 이런 얘기 아니면 하루 종일 웃을 일이 없어.”
음담패설 없이도 크게 웃은 날이 하루 있다. 오리를 잡은 날이다. 두 달 전, 감자탕집 사장은 새끼오리 네 마리를 들고 왔다. 심심하니 식당에서 키우라고 했다. 뒷문 앞 오리장 관리는 고스란히 식당 아줌마들 몫이었다. 매일 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켜야 했다. 그래도 악취가 심했다. “청소를 제대로 안 하니까 냄새가 나지!” 사장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식당 아줌마들은 진심으로 오리가 죽길 바랐다. 어느 날, 꿈이 이루어졌다.
손님 중에 “오리를 잡아주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주·야간 언니들 모두가 함께 사장을 설득했다. 사흘 만에 사장이 승낙했다. 9월22일, 오리를 잡았다. 언니들은 환호했다. 잡은 오리를 삶았다. 꼭꼭 씹어먹었다. 며칠 뒤 사장이 말했다. “오리 없으니까 할 일이 없지? 인제 뭘 갖다 키워볼까.” 웃을 일이 없다.
4. 햄버거와 덧버선
B감자탕집은 150평 홀이 전부 ‘방’이다. 신발을 벗고 일해야 한다. 발뒤꿈치가 하얗게 일어나더니 딱딱해졌다. 식당 아줌마들이 덧버선을 신으라고 했다. 식당 길 건너에 있는 양말 노점에 갔다. 발바닥을 두껍게 처리한 덧버선이 반갑다. 얼마냐 물으니 5천원이란다. 시급이 3571원인데 5천원짜리 덧버선을 살 순 없다. 계속 머뭇거리자 노점삼 주인이 헛기침을 한다. 결국 얇은 헝겁으로 만든 덧버선을 집었다. 500원이다. 발 뒤꿈치는 더 딱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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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금세 비루해진다. A갈빗집에선 늘 배고팠다. 밤 10시에 퇴근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10시40분이다. 단것을 먹지 않으면 걷지 못할 듯하다. 늦게까지 문을 연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플레인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4800원. 후회막심이다. 다음날부터는 편의점에 갔다. 잘 찾아보면 350원짜리 과일맛 음료도 있다.
휴일에는 친구와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7천원이다. 나와서 햄버거를 먹었다. ‘버거킹 와퍼’를 먹었다. 새로 나온 ‘매운맛’을 먹으니 햄버거 하나에 5300원, 세트에 6900원이다. 친구 것까지 사니 1만원을 훌쩍 넘었다. 괜히 기분냈다. 친구한테 돈을 달라고 할까 싶다.
두툼한 덧버선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시급
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쉽다. 대한민국은 최저시급으로 햄버거 하나 사기 힘든 나라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햄버거가 비싼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빅맥지수’를 보면 맥도널드 빅맥의 한국 가격은 2.59달러다. 미국이 3.57달러, 일본 3.46달러, 영국 3.69달러, 터키 3.65달러다. 스위스와 덴마크는 5달러를 웃돈다. 그런데도 햄버거 앞에 최저임금 노동자는 작아진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초라하다.
욕망은 돈이요, 괴로움이다. 멋내기 좋아하는 경희 언니는 사고 싶은 게 많다. “청바지 어디 것 입어?” 슬며시 내게 묻는다. 몇 개 브랜드를 말하니 “그거 비싼 거 아니야? 나도 청바지 하나 사고 싶은데…” 한다. 하루는 식당 아줌마들끼리 모여 화장품에 대해 애길 나눴다. 쇼핑할 시간이 없는 언니들은 주로 방문판매원을 통해 화장품을 구입했다. 국산 중저가 브랜드인 경우가 많다. 아이크림은 뭐가 좋다, 영양크림은 어느 브랜드가 최고다 한참 수다를 떨었다. “화장품도 떨어졌는데…. 아이고 돈 들 데는 왜 이리 많냐.” 팀장 언니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5. 공부 못하는 아이들
식당 아줌마는 무슨 꿈을 꿀까? 전일제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생계비를 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고 싶을까? 그런 기대를 하기엔 현실은 냉혹하다.
오후 4시께면 회색 교복에 어깨를 움츠린 중학생이 식당에 온다. 평일엔 어김없다. 들어와서는 물끄러미 주방 쪽을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듯 고개를 돌린다. B감자탕집 주방 언니의 아들이다.
매일같이 만나지만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웃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고 가게에 들러 엄마 얼굴을 본 뒤 집에 간다. 저녁 반찬을 담은 봉지를 받아가기도 한다. 2천원 용돈을 받아 PC방에 가기도 한다.
아이의 꿈은 만화가다. 엄마는 진작부터 그 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다. 만화가는 돈을 못 벌 것 같아서다. 공부를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돈을 못 버는 건 싫다. 많이 벌길 바라는 건 아니다. 뭘 하든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딱히 다른 진로를 제시해주기 어렵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원에 보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원비가 18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랐다. 둘째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학원을 끊었다. 두 아이 다 성적이 부진하다. 그것도 진작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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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식당 아줌마 중 자녀가 있는 이는 7명이었다. 이들의 자녀 중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이는 없었다. 현재 초·중·고에 재학 중인 자녀 중 성적이 학급에서 상위권인 경우도 없었다.
A갈빗집 팀장 언니의 아들은 장애가 있다. 출산 과정의 잘못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중학생 때 집안의 몰락을 겪었다. 이후 부모는 일로 바빴다. 학원에 다닌 경험이 거의 없다. 그는 지방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에 보탰다. 1년을 다니다가 휴학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편입을 할까 했지만 포기했다.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식당에서 일할 생각이다.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 선배들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팀장 언니도 “차라리 일찍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딸도 열심히는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가난 대물림, 체념하며 수긍하는 수밖에
팀장 언니 후임으로 온 정화(가명) 언니 아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애초에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찌감치 횟집 주방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이제 27살, 지금도 횟집에서 일한다. 월급은 100만원대 초반에서 정체돼 있다. 줄곧 여자친구가 없어 고민이다.
B감자탕집 야간 홀서빙 언니의 딸은 올해 전문대에 입학했다. 그는 딸의 등록금을 벌 요량으로 지난해 말부터 식당일을 시작했다. 감자탕집에서 일하기 전에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았다. 하루 5시간씩 김밥을 말아도 월급은 60만원이 못 됐다. 감자탕집으로 왔다. 밤을 꼬박 새워야 하지만 100만원을 넘게 받아 좋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는 시절이 있었다. 그 모형은 어느덧 과거형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 학생의 75.1%가 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원이다.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7%에 육박한다. 하위 20%는 절반이 사교육을 못 받았다. 갈수록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해진다. 식당 아줌마의 아들딸들이 다시 식당일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자시 비정규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가난한 중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낙오’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 약해지는 육신을 고된 노동은 봐주지 않는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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