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의 명품소나무

醉月 2010. 12. 8. 08:54
[한국의 명품소나무] 솔고개 소나무

태백산 가는 단종 혼령 배웅했다는 노송

 

한국에는 뛰어난 기품의 노거송이 많다. 이들 노거송의 아름다움과 기상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온 사진작가 장국현씨의 ‘한국의 명품 소나무’연재를 시작한다.

 작가는 ‘영감으로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1년의 절반은 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촬영에 임해왔다. 작가의 사진을 통해 천년 노거송들의 기운이 독자들께 여실히 전해지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전체적인 수형 또한 아름다운 솔고개 소나무. 상상해서 그리기도 어려워 보일 만큼 작은 가지들의 굴곡미가 뛰어나다.

 

영월은 단종의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영월 곳곳에 단종과 얽힌 유적들이 있으며, 솔고개 소나무와 청령포 소나무도 단종의 애환이 얽혀 있다.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솔고개가 있다.

 

이 고개 위에 정이품송을 닮은 노송이 있어 지명조차도 솔고개가 되었다. 수라릿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단종의 혼령이 태백산신령이 되고자 태백산으로 가던 중 이 고갯마루에서 쉬며 수랏상을 받았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동리의 78세 된 양재창씨 말을 빌면, 과거 간혹 이 소나무에 무속인들이 금줄을 치고 치성을 드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 솔고개 소나무 줄기. 용이 용틀임하듯 힘차고도 아름답게 줄기가 휘었다.

 

태백산의 정기가 모여 있는 산자락에 위치한 이 노송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우선 이 나무에서 조금 떨어져 그림 같은 모습을 감상하고, 차츰 더 가까이 다가서 본다.

 

다음엔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고 좌선하여 편안하게 쳐다본다. 노송 바로 밑에 누워서 집중해 보기도 한다. 둥치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보면 푸른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솔고개 소나무는 한때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렸던 대상이기도 하다.

 

용비늘의 용송(龍松)과 하나가 되어 그 기상을 받아보라. 소나무의 맑은 기운이 우리 몸의 탁한 기운, 병 기운을 몰아내준다. 노송과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비워져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한가로운 가운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소나무 사진을 찍을 때면 흡사 나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위치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2리 95(송현동). 영월에서 태백 방향으로 28km 지점의 솔고개.

 

[한국의 명품 소나무] 낙동강 천년송

강변 높은 암벽 위 낙락장송 두 그루

 

▲ 벼락을 맞았으나 건재한 할배 소나무.

낙동강의 발원지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경북 봉화군과 울진군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최상류 오지마을 전곡리가 있다. 이 울진군 서면 전곡리에 신송(神松) 두 그루가 천 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보호수인 이 소나무들은 낙동강변 높은 암벽 위에 낙락장송이 되어 천년 풍상을 견디며 살아났다. 다정하게 마주보고 서 있는 ‘할배 소나무’와 ‘할매  소나무’다. 할배 소나무는 둘레 5m로 원래 키는 상당히 컸는데 벼락을 맞아 윗부분이 날아가 버렸고, 밑동에는 불이 붙어 새카맣게 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십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고도 이렇듯 살아남았으니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아직도 기상이 대단한 소나무다.


아담하게 잘 생긴 할매 소나무는 둘레 5m, 키 15m에 몸집이 우람하다. 주름살이 깊이 파이고 ‘근육’이 울룩불룩하게 생겨 기가 넘치는 소나무다. 수령은 두 나무 다 천 년을 넘겼다. 낙동강의 암벽 위라는 악조건에서 이렇게 자라 노거송이 되었으니….


절벽 밑으로는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 건너에는 시골 기찻길이 있는데, 조그마한 기차가 장난감 같이 천천히 조는 듯 지나가는 풍경이 낭만적이다. 한 편의 동시(童詩)다.


▲ 수술 전, 천 년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배어 있던 할매 소나무.

 

나는 작년에 최상의 조건에서 이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 두메산골에서 2주일을 보냈다. 나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곳에서 살면서 작업한다. 백두산 사진을 찍을 때도 한두 달씩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금년 1월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을 때 이 신송들을 다시 찾았다. 눈이 1m나 쌓여 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여 2시간을 걸어 찾아갔다. 연인 만나러 가듯 가슴 설레며….


▲ 수술 후의 할매 소나무. 썩은 곳은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고 죽은 가지는 전부 잘라냈다. 밑둥 둘레 5m, 키 15m의 거목이다.

할매 소나무는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수술을 받았다. 썩은 곳은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고 죽은 가지는 전부 잘라내어 깨끗해졌으나 자연스러운 멋은 없어져 버렸다. 작년 가을 수술치료 전문가가 할매 소나무에 올라가 수술을 하다가 40m나 되는 낙동강 절벽에서 추락, 생을 마쳤다고 한다. 신령스러운 신송이 노했던가.


신목은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소나무가 늙으면 노송(老松)이 되고 오래 되면 고송(古松)이 되고, 초송(超松)에서 신송이 된다. 마을사람들이 보호하는 이런 신목을 해치면 화를 당한다. 문경 농암면의 반송(천연기념물)의 경우처럼 ‘해치면 죽는다’는 속설이 얽힌 신송도 있다.



찾아가는 길


경북 봉화와 현동 지나 울진으로 가다가 광비 정류소 근처 ‘광희1리ㆍ구암사’ 이정표에서 좌회전, 광희초등학교 앞을 지나면 ‘울진 쌍천리 배나무(천연기념물)’ 표지판이 선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전곡리’이정표에서 5km쯤 내려가면 전곡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언덕 위에 소나무가 보인다. 천년송 옆 주민 전화 054-782-2501.

[한국의 명품 소나무] 의령 성황리 도래솔
지상으로 드러난 뿌리의 기운이 특히 대단

사람은 늙으면 볼품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소나무는 다르다. 어릴 때는 단순한 모습을 지니지만 많은 세월이 지나 늙은 소나무가 되면 개성과 멋이 넘치게 된다. 수백 년 동안 눈, 비, 바람, 서리에 견디며 천태만상을 이룬 장송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목(神木)의 단계까지 이른다.


험상궂은 노송에는 엄청난 ‘발’이 뻗어 있는데, 그곳에 앉아보고 사진도 찍고자 8년 세월을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소나무 줄기에서 지난 수백 년 세월을 거쳐간 자연의 조화가 읽혀진다.


▲ 소나무의 발(뿌리)이 엄청난 굵기로 뻗어 있다. 왼편 아래의 집이 상대적으로 조그마하게 뵌다.

 

의령 성황리의 소나무는 의령남씨의 조상 묘 앞에 심어진 도래솔이다. 도래솔이란 무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를 말한다. 이 소나무의 나이는 약 300살. 둘레 4.8m, 높이 13.5m이며, 천연기념물 제359호로 지정된 노거송이다. 몸통에서 1.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중 하나는 죽어버렸다. 동서의 가지 길이 20.8m, 남북은 24m로 넓게 퍼져 부챗살 모양을 하고 있다. 높지는 않으나 옆으로 많이 퍼져 있는 수형이다.


▲ 키는 작으나 옆으로 굵게 뻗어 있는 의령 천연기념물 노송.

의령남씨의 조상이 이 소나무를 심은 뜻은 물론 산소에 좋은 기운이 들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이 소나무 양쪽으로 집채 만한 여러 그루의 거송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배열돼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좌청룡 우백호의 산맥으로 에워싸여 있어 이 소나무들이 선 곳이 명당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 소나무들은 워낙 커서 아래의 기와집이 조그마하게 뵌다. 줄기 가지들이 용틀임하여 승천하는 모양새이고, 뿌리까지도 용틀임하면서 뻗어 있는 모습이 희한하다. 뿌리가 노출되어 용틀임을 한 것은 땅이 청석 암반으로 되어 있어 뿌리가 땅으로 깊이 뚫고 들어갈 수 없어서인 것같다.


이 소나무의 뿌리 모양이 너무 좋아서 매년 한두 번씩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2006년 가을에 갔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조상 묘를 벌초하여 나온 풀들을 뿌리에 덮어둔 것을 보았다. 뿌리가 노출된 것이 안스러워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소나무는 생태상 뿌리로도 호흡하기 때문에 복토하거나 이렇게 덮어두면 호흡 곤란을 일으켜 잔뿌리가 썩게 된다.


소나무는 거미줄 같은 실뿌리가 생명을 좌우한다. 그래서 이식해도 잘 살지 못하고 배수가 잘 안 되어도 살지 못한다. 촬영 갔던 우리 일행은 뿌리에 덮어둔 풀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 마을 주민들에겐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이 신목에게 간단한 제도 올렸다. 돌아오는 마음은 시원하고 한결 홀가분했다.


이 소나무 북쪽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소나무가 있는데, 이 가지와 맞닿으면 광복이 된다는 말이 전해오더니 그런 현상이 사실로 나타났다.


▲ 의령 성황리 소나무 군락. 중간의 키가 가장 작은 것이 천연기념물 소나무다. 왼쪽의 키가 큰 소나무와 가지가 맞닿으면 광복이 된다는 전설은 1945년 8월15일 현실이 되었다.
 

아가는 길

 

경남 창녕에서 20번 국도로 합천 방면으로 가다가 20km 지점에서 낙동강을 건너는 적포교로 좌회전,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 16km 지점의 정곡면 입구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성황·상혼마을 이정표에서 좌회전, 성황리 마을회관 지나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면 소나무가 있다. 남해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에서 의령으로 나와 정곡으로 약 10km 거리다. 마을 주민 남공우씨 전화 055-572-4507.

 

[한국의 명품 소나무]오대산 장송림

청와대 세울 때 목재로 사용

 

청와대 목조 건물은 오대산 금강송으로 세웠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곳, 척박한 암벽에서 자라는 오대산 금강송은 송진이 많이 포함돼 있어 썩지 않고 뒤틀림이 없으며 벌레가 먹지 않는다.

보통 소나무는 심재율(心材率·소나무 줄기 가운데의 단단한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52%인데, 이곳 금강송은 87% 이상으로 조밀하여 단단하고 갈라짐이 거의 없다. 때문에 재질이 탁월하다. 청와대는 이 오대산 금강송을 헬리콥터로 운반해 지었다.

▲ 눈과 서리를 이기고 꿋꿋이 서 있는 오대산 금강송.

이곳의 소나무는 많은 눈의 압력으로 가지는 도태되어 가늘고 짧은 반면 줄기는 곧다. 이곳 산능선은 물기가 거의 없으며 눈과 바람 많고 몹시 추운 극한상황이기 때문에 빨리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처럼 이곳 소나무는 기(氣)가 세다.

오대산 소금강에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을 쌓아 만든 둘레 8km의 금강산성이 있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쌓고 마지막을 보낸 곳이라 하여 마의태자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 주위에 둘레 3~5m, 높이 30m나 되는 노거송들의 군락이 있다. 이 장송림(長松林)에 가을철 안개가 덮이면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묘한 장면을 연출한다.

안개가 끼어 물기를 머금으면 몸통은 더욱 붉어지고 단풍은 원색으로 농담이 이루어져 묵직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붉은 가지의 용틀임한 모습에서 강렬한 힘과 열정을 느낀다. 소나무 잎은 악조건에서 다 자라지 못하여 짧고 봄의 신록 빛이 사계절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 청와대 한옥에 사용한 그 목재를 베어간 곳의 오대산 장송림. 이 송림이 혹 훼손될까 저어해 정확한 위치는 밝히지 않으려 한다.

북풍한설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늘 푸른 소나무에게 배울 것이 많다. 이런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이런 멋장이 소나무들과 친구가 되어 며칠씩 밤낮없이 같이 지낼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사귀를 먹으며, 가을에는 열매를 따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캐 먹으며 소나무와 같이 산다. 속세의 생각은 붙을 수가 없다. 오대산 금강송의 맑고 센 기를 받아 병을 모르고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이 66세인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 단풍이 들기 시작한 오대산록에 선 줄기가 붉은 적송.

 

산은 저절로 무심히 푸르고(山自無心碧)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도다(雲自無心白)
그 가운데 한 도인도(具中一上人)
역시 무심한 객이로다(亦是無心客)
-서산대사

무심이란 말 속에 깊은 뜻이 있다. 무심에서 지혜가 움터나온다. 예술의 영감이 나타난다.

 

[한국의 소나무] 권금성 묘송 & 무학송

 

무진장 눈이 많이 오는 설악산. 권금성에 올라 묘송(妙松)을 구경하러 가보자. 권금성 케이블카에서 내려 우측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봉화대가 있다. 이 봉화대 오른쪽 밑으로 접근하면 천 년은 살아온 노송 한 그루가 숨어 있다. 암벽에 뿌리박고 악착같이 살아왔다.

이 나무는 서쪽에서 부는 세찬 바람으로 가지가 사방으로 뻗지 못하고 동쪽으로만 뻗어 있다. 그것마저도 살아남기 위해 많은 가지를 말려 죽여 버렸다. 관솔로 이루어져 잘 썩지 않는‘뼈’만 남아 몇 백 년을 보냈다. 홀로 독야청청한 노송(老松)이다.


▲ 설악산 권금성의 암자 안락암 옆 무학송./눈을 인 무학송에서 신비한 기운이 돈다.

눈 오고 안개 낀 날이면 무학송(舞鶴松)을 보러 가자. 케이블카 정상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조그마한 암자 안락암이 있다. 이 암자 바로 밑에 수령 800년의 신령스러운 노송 한 그루가 큰 바위 위에 버티고 있다. 둘레 4m, 높이 8m의 낙락장송이다. 춤추는 학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무학송이다. 머리, 날개, 몸통, 다리, 꼬리를 모두 갖추었으며, 하늘로 향해 있는 거대한 학의 형상이다.

동쪽은 천길 단애라 뿌리 내릴 데가 없어 서쪽으로만 뻗어 있다. 세찬 서풍으로 가지는 뻗지 못하고 있다. 서쪽으로 부는 미친 바람은 동쪽에 뿌리가 없으니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돼 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동쪽으로 뿌리 대신 큰 가지가 Y자 형으로 거꾸로 암벽 위에 떠받치고 있다. 지게를 받치는 지팡이와 같다. 800년 세월 풍상에 시달리면서 싹튼,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지혜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존경심마저 들게 된다. 신송(神松)의 경지에 든 나무다.

흰 눈을 쓰고 있으니 깨끗한 흰 학이며, 안개까지 끼어 있으니 신비롭기 그지없다. 여름 장마철에 이곳을 올라가보면 구름은 산봉우리를 감고 오락가락하고 저 멀리 토왕성폭포가 숨바꼭질한다. 총 길이 320m나 되는 거대한 토왕성폭포의 희디흰 물줄기와 거대한 암벽이 배경으로 어울리면서 신송의 신비는 더한다.

큰 바위에 붙어 있는 소나무들은 그림 같다. 신선이 좋아하는 선경 그 자체다. 신선은 기가 센 바위와 맑은 기운의 소나무와 깨끗하고 장수하는 학을 좋아한다. 신선은 마음이 비어 한가로움을 즐기는 자이며 지혜를 가지고 있다. 마음이 맑고 눈이 밝아 만물의 이치를 다 안다.

▲ 북서풍에 동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봉화대 묘송.
 

찾아가는 길

설악동 소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권금성에서 내린 다음 우측으로 올라가면 봉화대 밑에 독야청청한 노송이 뵌다. 케이블카 종점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안락암(전화 033-636-8345) 바로 밑 무학송을 만난다.

 

[한국의 명품 소나무] 괴산 왕송

신비한 기운 발산하는 600년 거송…龍松이라고도 불러

 

충북 괴산 삼송리의 천연기념물 제290호로 지정된 소나무 왕송은 임금 왕(王) 자가 붙을 자격이 있는 나무다. 이곳의 삼송(三松)리라는 지명도 이 나무처럼 멋진 자태의 소나무가 세 그루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 붉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의 왕송. 용송이라고도 부른다.

 

이 소나무를 밖에서 보면 우산처럼 아담하고 얌전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딴판이다. 한 마리의 거대한 붉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용송(龍松)이라고도 부른다. 줄기가 유난히 붉으며, 줄기부터 가지 끝까지 모두 용틀임을 하고 있다.

 

이 수령 600년 된 거대한 왕송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의 생동감은 대단하다. 주변에는 평범하게 생긴 노송들이 있어 왕송의 웅장한 자태가 더욱 빛을 발한다.

 

외양은 마을 초입부의 앞쪽에서 보는 것이 특히 아름답다. 왕송의 기상을 느껴보고 싶을 때는 오히려 반대편 뒤쪽 안으로 들어가 자세를 낮추든지, 아니면 아예 누워서 보면 된다. 엄청난 기운과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 뒤틀린 모양새는 우주 리듬의 재현이라 할 만하다.


▲ 줄기에서 우듬지까지 한결같이 붉고 구불구불 용틀임한 왕송.

 

삼송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청화산(靑花山) 자락에 있다. 풍수지리상 천혜의 명당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용송은 이 명당의 기운을 받은 덕에 탄생했을 것이다.

 

이 희귀한 용송은 생태적 보호가치가 높아 ‘충북의 자연관광명소’로 지정돼 있다. 가까운 곳인 충북 보은군의 정이품송과 쌍벽을 이루는 명목 중의 명목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이 왕송 앞에서 성황제를 지낸다. 왕송 주변의 송림은 풍수적 의미를 지닌 곳이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킨다 하여 신성시한다. 그중 왕송은 신으로 추앙될 만큼 위엄있는 존재다.


▲ (좌)왕송에서는 천하장사의 그것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우)왕송은 전체적인 모습은 아담하게 생겼다.

 

나는 10년 전부터 매년 몇 차례씩 용송의 기도 받으면서 사진을 찍어왔다. 2008년 7월에 찾았을 때는 살충제도 뿌리고 영양주사도 놓고 죽은 가지도 정리하여 깨끗하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주변에 펜스를 쳐놓고 근접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나는 나무를 지키고 있는 주민의 허락을 받아 제단에 과일을 차리고 큰 절로 경배한 뒤 왕송의 기상을 담았다. 천 년 세월 이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관람객들에겐 좋은 기운을 발산해 주기 바랄 뿐이다. 
 

찾아가는 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서 경북 상주군 화북 방향으로 3km 지점 입석보건소를 지나면 삼송리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콘크리트 포장 농로를 따라 800m 가면 왼편 들판에 있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이다.

소재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 250.
수령 600년
둘레 5.3m
높이 12.5m


 

[한국의 명품 소나무] 새해 아침의 의상대·하조대 고송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의상대와 하조대의 노송은 일출 무렵에 보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바다 위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 날아갈듯 수려한 정자가 서 있고, 여기서 바다 풍경을 바라본다.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는 열정적인 에너지를, 소나무는 맑은 기운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 자연의 에너지는 아무리 취해도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바다 저 멀리 안락하고 평화로운 피안의 세계가 있다. 가까이 우리 안에도 있다. 피안의 세계는 천심(天心)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야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이 참으로 비워지면 텅 빈 충만이 되어 부자가 된다. 구하는 마음이 없어도 저절로 구족되는 묘한 작용이 일어난다.


▲ 하조대 고송 일출.

낙산사 의상대 노송(老松)

2005년 4월 진달래 붉게 피는 봄날, 낙산사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갔다. 천년고찰 낙산사는 불타고 나무들은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바다 위 높은 암벽에 있는 이 노송은 반쯤은 화상을 입었으나, 살아났다. 그리고 찬란한 아침 해를 맞이하고 있다. 겨울에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기나긴 겨울밤을 독야청청하며 홀로 지낸다.


▲ 아침 해를 맞이하고 있는 의상대 노송.

 

하조대 고송(孤松)

 

바닷가 외로운 돌섬에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가 섰다. 태풍과 눈보라 몰아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고송은 바위섬에 착 달라붙어 살아간다. 뒤틀린 채 눈보라를 맞으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애처롭지만 의연해 보인다. 발톱으로 기를 쓰고 바위를 움켜쥐듯 하고 있다. 얼마 후, 일망무제의 수평선 위로 해가 따듯하게 떠올라 백설을 소리 없이 녹여준다.


▲ 하조대 고송이 눈보라를 맞으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

 

2008년 1월 이곳에 많은 눈이 오고 있을 때 하얀 눈을 맞으며 고송을 촬영했다. 행복감에 눈물을 흘리며-. 조선 초의 문신 강희안의 소나무를 읊은 시를 소개한다.

 

섬돌 아래 길게 누운 외로운 소나무여.
긴 세월 늙은 등걸은 용의 모습 닮았구나.
해 저물고 바람 세찬데 병든 눈 씻고 보니
천길 용이 청공으로 오르는 듯하여라.

 

[한국의 명품 소나무] 주문진 늘 푸른 솔,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적룡인 듯

▲ 서설을 인 주문진 푸른솔.

소재지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2리 392-7
수령 500년
둘레 4m
높이 20m
찾아가는 길 주문진 읍내 여성회관 앞 씽씽카클리닉 마당에 서 있다.

주문진은 푸른 솔 푸른 바다의 고장이다. 주문진 읍내에 용비늘처럼 신령스러운 분위기의 껍질로 둘러싸인 노거송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극한의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린 흔적을 생생히 보여준다. 푸른 용이 하늘에 뜬 구름을 안고 있고,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적룡(赤龍)과 같다. 머리에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으나, 지조와 절개를 잃지 않고 오히려 푸르름을 더한다.

▲ 줄기에도 흰 눈이 얹힌 푸른솔의 서기가 대단하다.

소나무는 우리의 생활과 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민가에서는 혼례식을 올릴 때 대나무와 솔가지를 꽃병에 꽂아 혼례상 위에 올려놓는다. 솔과 대나무는 사계절 변하지 않는 늘 푸른 잎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염원의 뜻이 담겨 있다. 소나무는 군자를, 대나무는 열녀를 상징하는 것이다. 군자송(君子松), 열녀죽(烈女竹)이라 했다.

‘저 들에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친 들판에 솔잎 되리라.’

소나무를 보면 늘 떠오르는 가수 양희은의 노래 상록수의 노랫말이다.

[한국의 명품 소나무] 소광리 대왕송(大王松)
국보급 소나무들 소광리에 많아
 
울진 소광리의 500년생과 510년생 금강송 대왕송 두 그루는 조선조 제 9대 임금 성종 때 태어났으며 경상북도 도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오랜 세월 풍우상설(風雨霜雪)에 시달려 수형의 완성미가 극에 도달한 걸작들이다. 500년 송에서 다리 건너 솔숲 후계목 자생지를 지나 1km 걸어 오르면 우측 산 위에 510년 송이 보인다.
 
겨울의 대왕송은 한 폭의 그림이다. 휘어진 솔가지며 용틀임하는 가지마다 수북이 눈이 쌓이고 설화가 피어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흰 눈과 붉은 가지의 절묘한 대비와 조화는 경탄을 자아내는 운치다. 눈더미를 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굳은 지조와 절개를 느낄 수 있다. 몸통이 울룩불룩한 모습에서 기를 느낄 수 있으며, 송진이 많이 내장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울룩불룩한 몸통에서 기를 느끼게 된다.(510년 송) / 폭설이 내린 후 두툼한 눈을 이고 있는 500년 송.

소광리 솔숲은 질 좋은 소나무를 확보하려 했던 조선 왕조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이곳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불리는 이유는 장군터 자연석에 새겨진 ‘황장봉표(黃腸封標)’ 때문이다. 도로변 계곡의 바윗돌에 한자로 새겨져 있다. 송진으로 자연 방부 처리된 황장목으로 임금이 사는 궁궐을 짓는 목재나 왕실 가족의 관곽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벌목을 금지한 것이다.

 

근래 경복궁 복원 공사 때도 인간문화재 대목장 신응수 도편수가 이곳 금강송 사용을 주장해 벌목한 흔적이 있다. 산림청장과 문화재청장은 ‘이곳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심은 금강송은 150년 뒤 후손들이 문화재 등에 귀중한 목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이에 이 소나무들이 재목으로 성장하기까지 향후 150년 동안 보호돼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정성과 염원을 담아 여기에 금강송 보호비를 세운다’라고 비석에 새겨 2004년 11월 11일 선포식을 가졌다. 또 국무총리도 이곳 땅속 깊숙이 타임 캡슐을 묻었다.

 

학계에서는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우리 소나무 숲의 원형이라 하며 특히 중요시한다. 소나무 숲이 원시림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다. 출입금지돼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할 정도의 높고 깊은 산중에는 세 아름, 네 아름이나 되고 키가 30m가 훨씬 넘는 장령목들이 있는 곳도 있다. 두 아름 되는 500년 대왕송이 오히려 조그마하게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노거송들이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이런 금강송을 베어 숭례문을 복원한다면 오히려 너무 굵어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소나무들은 살아 있는 국보와 같으니 우리가 잘 보존해야 한다.

 

지난 2000년 동해안에 큰 산불이 나 일주일 이상 산이 불타고 있을 때 일선 공무원들이 소광리 솔숲만은 지키려고 사력을 다했던 것도 소광리 솔숲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 티 없이 맑은 하늘로 뻗어 기상을 느끼게 하는 우람한 510년 송.
 

찾아가는 길

 

영주에서 36번 신설 국도를 따라 봉화를 지나 현동으로 간 다음 울진 방면으로 접어든다. 현동에서 통고산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소광리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 이정표까지 29km다.  이정표에서 좌회전, 포장도로를 따라가노라면 비포장 길이 나오는데 대왕송까지 15km다. 대왕송 전 500m 지점에 관리소가 있고 그 옆에 넓디넓은 주차장이 조성돼 있다.

 

[한국의 명품 소나무] 운문사 처진소나무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 가르치는 자연의 스승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날인 삼월 삼짇날은 운문사 처진소나무가 막걸리 공양 받는 날이다.

운문사는 240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승가대학과 승가대학원이 있는 곳이다. 교육을 마친 꽃 같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막걸리 열두 말에 물 열두 말을 섞어 이 노송(老松)에 드시게 한다.

처진소나무를 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겉에서 본 전체 수관의 모양은 부드럽고 편안한 곡선으로 마치 우리 옛 초가 지붕을 연상케 한다.

▲ 서설을 이고 있는 운문사 처진소나무. 운문사 스님들이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눈을 털어내는 일을 잠시 보류해 특별히 배려한 덕분에 이 희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 180호
소재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68 운문사
수령 400년
높이 6m
둘레 3.4m

나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두 아름쯤 되는 둥치에서 조금 올라가 여러 갈래의 가지가 용틀임하면서 사방으로 뻗어 기(氣)가 넘친다. 가지들이 상하좌우로 가다가 다시 안쪽으로 굽고 그러다가 다시 위로 솟구치고, 솟구치는가 하면 아래로 기묘하게 처져 별천지(別天地)를 이루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루 다 형언하기조차 어렵다.

▲ 얹힌 눈으로 한층 더 서기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가지들.
 

막걸리 공양은 30여 년 전, 쇠약해진 이 소나무를 살리고자 선대 스님들이 고안한 지혜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모든 절집이 불탔지만 이곳 처진소나무만은 피했다고 한다. 지난 600여 년 동안 천년 고찰 운문사의 역사를 목격한 것도 처진소나무뿐이라라.

이곳 260여 명의 스님들은 이 처진소나무를 스승으로 섬긴다. 다른 나무들은 자랄수록 가지를 위로 펼치는데 이 노송은 자랄수록 가지를 아래로 낮춘다.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겸허한 자세를 본받는 것이다.

이 노송은 이 하심의 모양새로 무한한 진리를 말없이 설하고 있다고 여긴다.  선정(禪定)에 든 소나무라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이곳에서 경학(經學)을 수학하고 계율(戒律)을 지키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실천하고 있다.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지어 자급자족하고 있다.


▲ 처진소나무로부터 하심을 깨우치고 있는 운문사 스님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이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처진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질까 하여 스님들은 밤낮없이 눈을 털어 내린다. 스님들이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30m나 뻗어난 긴 가지들이 부러지거나 죽은 가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관리하니 눈 덮인 소나무를 사진 찍기란 불가능하다.

나도 15년 가까이 스님들에게 공을 들였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학인스님들이 눈을 털지 않고 그냥 두어 특별한 배려를 한 것이다. 사진 찍는 동안 스님들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기다려 준 고마움 덕분에 눈 덮인 처진소나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 삼월 삼짇날 스님들이 처진소나무에 막걸리 공양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IC 지나 대구, 부산 신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청도IC에서 내린다. 그후 운문면 지나 운문사로 오면 된다. 청도 IC에서 운문사까지 약 30km. 운문사 054-372-8800.

[한국의 명품 소나무] 경주 삼릉 도래솔
용비늘 몸통에 힘찬 기운 생동하는 듯
 
경주 삼릉(三陵)은 사적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시대 세 임금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8대 아밀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삼릉 바로 옆에는 55대 경애왕릉이 있다. 경애왕은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포석정에서 잔치(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친 임금이다. 무덤 주위에 소나무를 심고 관리하였는데 ‘도래솔’이라 한다.

▲ 삼릉의 도래솔 숲에 아침 안개가 밀려오고 있다.

도래는 원래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의 고삐가 자유로이 돌도록 굴레 또는 목사리와 고삐 사이에 단 고리 비슷한 물건을 이른다. 그 모양에 빗대어 무덤을 둘러싸고 둥글게 늘어 선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한다. 삼릉 도래솔은 묘지를 보호하고 속기(俗氣)를 물리쳐 좋은 기운이 들게 하여 좋은 환경을 만들고 묘지 안 저승에서 지내는 영혼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조성했을 것이다.

솔잎 성분 가운데 방향성 물질은 테르펜(Terpene)으로서 우리 민족은 이 솔향을 유난히 좋아한다. 테르펜은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나무 삼림욕이 좋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아침 햇살을 받아 불그레 상기된 용의 몸통 같은 도래솔 노송 줄기.

소나무는 우리네 지친 삶에 위안을 주며 생기(生氣)를 불어 넣어준다. 소나무의 시각적인 질감은 투박하고 거칠어 보인다. 줄기의 껍질 무늬와 빛깔은 우리에게 친근감과 편안함과 기(氣)를 느끼게 한다. 붉은 용 두 마리에 뜨거운 아침 햇살이 비추어 불그레 상기되는 용비늘 몸통에 기운이 생동하듯 아침의 소나무는 왕성한 생명력, 강한 기(氣)를 느끼게 한다.

▲ 안개 속 보랏빛이 감도는 솔숲은 환상적이며 신비스럽다.

삼릉의 솔숲은 절제된 균형과 조화미를 이루고 있는데 자욱한 안개가 들어오면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천년 세월에 걸쳐 신라의 세 왕릉을 지켜온 노송들. 지기(地氣)와 천기(天氣)가 만나서 이룩한 걸작품이다.

▲ 발레단의 변화무쌍한 다리의 율동을 느끼게 하는 도래솔 숲.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동 산73-1 배리삼릉

찾아가는 길
경주 IC에서 시내 방향으로 약 1km 가다가 부산·언양으로 우회전하여 약2km 가면 ‘삼릉’ 이정표가 뵌다.

[한국의 명품 소나무] 신선대 와룡송
 
큰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설악산이 선경을 이루었다. 소나무 어울린 풍광은 일상의 구속과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겐 탈속과 풍류의 이상향이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한국인들의 철학과 미의식이 여기에 있다.
 
“소나무는 바위 틈에서 나서 천길이나 높이 솟아 그 곧은 속대와 거센 가지와 굳센 뿌리를 가지고 능히 추위를 물리치고 엄동을 넘긴다. 그러므로 뜻있는 군자는 소나무를 법도(法道)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 설악산 암벽과 적송 사이로 구름이 춤을 추고 있다.

매, 란, 국, 죽에 소나무를 더해 오군자(吾君子)라 일컫는다. 혹독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노송과 큰 바위가 많은 곳은 속세의 번뇌를 잊고 수행하기 좋은 곳이며 정신통일이 잘 되어 문득 영감으로 나타나 지혜가 움터 나온다.

 

설악산 용아장성에는 제일 가는 기도 도량인 봉정암이 있다. 기도 영험이 있는 곳이라 전국에서 몰려온다. 원효대사는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로운 이의 거처할 곳이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골짜기는 수행자가 살아갈 곳이다”라고 했다.


▲ 공룡릉 신선대에 누운 와룡송.

 

용아장성 큰 암벽에 단청(丹靑) 색깔을 띤 금강송들이 붙어 있다. 오랜 세월의 암벽과 적송 사이로 구름이 내려와 춤을 추면 신선의 세계, 선경을 이룬다.

 

공룡능선 초입, 신선대에 와룡송(臥龍松)이 있다. 암벽에 붙어 있는 천년 묵은 와룡송 묵은 등걸은 오랜 세월 시달리며 옹이져 있다. 가지는 바위 사이로 물 흐르듯 하는구나. 밑이 안 보이는 천길 절벽 위에 이리 꿈틀, 저리 꿈틀 공룡의 기세로다. 세속의 안개를 헤치고 자기 본래의 심성(本性)을 자각해 와룡송의 영기(靈氣)를 통해 영성(靈性)이 충만해지면 지혜는 자연히 나타난다.


▲ 단출하게 갖출 것만 갖춘,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노송.

 

지식이 없으면 무지(無知)한 사람이 되며, 지혜(智慧)가 없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지식은 남을 해칠 수도 있지만 지혜는 남을 이롭게 한다. 풍류도인(風流道人)은 탈속과 풍류의 상징인 소나무를 유독 좋아한다. 도인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지혜가 있는 자는 어디를 가든 즐겁지 않음이 없다.


▲ 용아장성 암릉에 선 고송.

 

잡목들은 울긋불긋 사치를 좋아하나 소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다.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딱없이 지낸다. 단풍이 진 후 모든 잎이 다 떨어지는 겨울에도 독야청청한 자기의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단풍 곱게 물든 설악산에 늘 푸른 노송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설암 장국현
대구사진대전 초대작가, 정수국제사진대전 초대작가, 대구시교육청·대구MBC주최 개인전·사진집 발간 3회, 한국사진문화상 금복문화예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