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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움직일 차세대 리더

醉月 2008. 12. 22. 09:40

한국을 움직일 차세대 리더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어떻게 조사했나■

모집단 ㅣ 한국 사회 30개 분야의 전문가들
표본수 ㅣ 1,500명(30개 분야별 50명)
표본 추출 방법 ㅣ 유의 할당 및 무작위 추출
조사 방법 ㅣ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여론조사
조사 도구 ㅣ 구조화된 질문지
조사 일시 ㅣ 2008년 11월 17~26일

ⓒ그림 최익견

 

세계 경제가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안팎에서 엄청난 도전이 밀려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 삼아 선진 문화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낙오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런 엄중한 시대 상황 속에서 지령 1,000호를 맞은 <시사저널>은 이를 계기로 ‘한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는 누구인가’라는 대형 기획을 마련했다.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차세대 리더들은 누구인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와 존경받는 인물들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차세대’에 주목했기 때문에 나이는 50세 미만으로 한정했다. ‘차세대 리더’ 기획은 17년째 창간 기념호에 조사·보도해 권위를 인정받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사회 각 분야로 넓힌 것이다.

<시사저널>은 이를 위해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우리 사회 30개 분야의 전문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두 달 가량 샘플을 선정하는 작업을 한 뒤 지난 11월17일부터 11월26일까지 10일간 조사원이 전화로 조사했다. 미디어리서치가 선정한 각 분야 전문가 50명에게 각각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은 누구인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는 어디인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또 분야와 관계없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30개 조사 분야는 다음과 같다. 정치, 금융, 기업, IT, 과학기술, 미술, 음악, 건축, 무용, 시민운동, 여성, 연예, 연극, 영화, 문학, 만화, 스포츠, 법조, 농업, 패션, 불교, 개신교, 천주교, 출판, 교육, 의료, 게임, 복지, 환경, 관광이다. 

한국에서 이런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조사를 책임진 미디어리서치 이윤기 과장은 “샘플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조사까지 애를 많이 먹었다”라고 말했다. 3명씩 중복 응답을 허용했지만 일부 분야의 경우 응답이 높지 않아 순위에 의미가 없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로 사람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응답을 했어도 거명된 사람이 50세가 넘으면 무응답으로 처리한 영향이 컸다. 이런 한계도 있었지만 조사 결과를 그대로 살려 보도한다.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미래 권력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사저널>의 ‘차세대 리더’ 기획은 앞으로 해마다 계속될 것이다. 내년에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 삼아 더욱 철저히 조사를 진행하고 알차게 결과를 보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령 1,000호를 기념해 시작되는 ‘차세대 리더’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정치]‘뜨거운 젊은 피’들 뚝심과 패기로 구태 정치 벗긴다
원희룡 의원·유시민 전 장관 1,2위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정치 분야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50명의 정치 분야 전문가 가운데 10명(20%)이 원의원을 꼽았다. 원의원 외에 50세 미만 정치인 20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원의원은 다른 의원들을 세 배 이상 앞질렀다.

원의원의 뒤를 이어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송영길 민주당 의원,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순으로 조사되었다. 이어 김태호 경남지사,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홍정욱·배은희·조전혁·신지호·조윤선·김영우·강승규 한나라당 의원, 박선숙 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나라당 쪽이 14명, 민주당 쪽이 6명, 진보신당쪽이 1명으로 조사되어 50세 미만의 경우 한나라당 쪽이 상대적으로 다른 당에 비해 인재풀이 너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원의원에 이어 2위에 오른 유시민 전 의원의 경우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유력한 정치인으로 거론되는 등 야권에서 가장 잠재력이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되어 주목된다.

1위에 오른 원희룡 의원의 꿈은 원래 막스 베버와 같은 사회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영화 <빨간 마후라>를 보고 공군 조종사가 되기를 꿈꾼 적도 있다. 대학 입학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법사회학자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83년 5월 시위에 참가했다가 학교측으로부터 유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원의원은 저서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유기정학 사건은 내 인생의 국면을 한순간에 바꿔 놓은 한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의 아들인 내가, 학력고사 전국 수석인 내가 대학에 와서 정학 처분을 받으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후 그는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을 했고 노동 현장에서 6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당시 돈으로 일당 2천9백원을 받으며 기계를 이용해 숟가락을 펴는 단순 노동이었다. 자취하던 방에서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는 충격을 겪은 이후 그는 진로를 바꿔 사법고시에 도전해 2년 만인 1992년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원의원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였던 이 시기를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수석만 했으니 꼴찌의 아픔을 알 리 없다, 성공만 한 사람 아니냐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에서 유기정학 처분을 받고 사회의 문제 세력으로 낙인찍혀 수배까지 받았다. 동기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자리를 잡아갈 때 라면 국물을 마시며 눈물을 삼켰다.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오갈 데가 없어 방황하며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성공이라는 마른 땅에서보다 오히려 실패와 고난이라는 질척한 늪에서 단련되었다.”

   

8년 만에 대학 졸업하고 고시 공부 시작

그는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2000년 제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원의원은 “정치를 하면서 늘 염두에 두는 좌우명 같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한다)와 함께 정치는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 과거의 성공 경험이나 인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새롭게 공동체와 대중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도록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서울 양천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때의 이른바 ‘탄핵 역풍’ 때에도 서울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만큼 지역 기반이 단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에는 지금도 ‘남·원·정 신화’가 있다. 남·원·정은 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상징되는 소장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미래연대’라는 소장 개혁 그룹을 결성해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이번 조사에서도 남경필 의원이 원의원과 함께 10위 안에 들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상징이 된 원의원은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이어 2천3백98표를 얻어 3위에 그쳤지만 ‘한나라당의 꿈나무’로서 그의 가치가 날로 빛나고 있음을 안팎에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원의원은 자신의 정치적인 비전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위기, 공동체의 위기에 대해 국민에게 통합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을 어떻게 내놓느냐,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신뢰를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경쟁이 필요하다. 자리가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정치적인 과제들 속에서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원의원에 이어 이름을 올린 유시민 전 의원은 지난 4월 총선 때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서 출사표를 던졌다가 고배를 마셨다. 이후 경북대에서 강의를 하며 지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지역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지난 8월에 실시했던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정치 분야 조사에서 9위에 오르는 등 여전한 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그룹’ ‘개혁당 그룹’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지지 세력을 갖고 있는 그가 지역 기반까지 갖추는 데 성공할 경우 정치적으로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어 향후 야권의 재편 등과 관련해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3위에 오른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미 재선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내년 지자체 선거를 향해 뛰고 있고, 4위에 오른 나경원 의원은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 내 386 세력의 리더격인 송영길 의원은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뒤 새로이 정치적 활로를 찾고 있는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이번 조사에서 정치 분야뿐 아니라 ‘여성’ 부문 1위에 올라 향후 활약이 기대된다. 


"한국판 케네디 나와야"  원희룡 의원 인터뷰

 

   
원희룡 ㅣ 3선 의원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여덟 번 완주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대선 후보에 도전한 미래형 정치인이다.
ⓒ그림 최익견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동체의 합의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정치의 핵심 가치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것이다. 내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도 사회 통합과 경제 발전을 함께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국민과의 소통 문제나 반대 집단과의 타협 등이 약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경제 성장이 다수의 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통합이 함께 갈 수 있는 모형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정치에서 제시하고 기업과 사회가 따라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악화하고 있다. 정치 집단과 지도자가 이것을 풀기 위해 어떻게 융합시켜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원의원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어떤 모습인가?

위대한 정치가는 잠자고 있던 활력을 끄집어낸다. 우리로 치면 조선조 세종,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의 케네디가 그러했다. 한국판 케네디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런 시대에는 국민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참여하는 과정이 있다. 사회적인 갈등과 격차를 깨면서 통합 효과가 나고 참여시키는 활력의 리더십이 의미 있는 리더십이다. 내가 꿈꾸는 것은 통합과 활력을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정치이다. 우리나라는 정치 수준에 비해 과제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 대해 정치권에서 말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뒤로 빠져주는 것이다. 문제는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있고, 이의원이 먼저 정치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가족’이라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인사나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외교 관계에 치중한다든지, 쓴소리를 하는 민심을 전달한다든지 하는 선의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개각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내부 집단이라는 울타리를 깨고 천하의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여권이나 지지 계층에서 ‘나누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 크다. 권력을 나누어주고 몸 사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내각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만 보인다는 비판이 많다. 거꾸로 되어 있다.

정치인들이 내각에 진출해야 한다고 보는가?

내각의 4분의 1이나 3분의 1은 정치인들이 맡아야 한다. 지금은 국민과의 소통이나 국회와의 소통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도 전문성이다. 정치인들의 진출은 반대 세력과 조율해내고 사안의 경중 완급을 가리는 등의 감각을 내각에 내장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른바 ‘박근혜 역할론’도 불거졌는데.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 국민을 위해서 국정을 성공시켜야 한다. 정치 세력으로서도 참여시키고 협력받는 것이 당연하다. 인재가 있다면 못 쓸 이유가 무엇인가.

청와대 개편도 점쳐지고 있다.

정무 기능이 너무 약하다. 정책을 조율하거나 대통령의 독려를 일선에 실행하도록 하는 부분에서 약하다. 대통령 그늘 밑으로 숨어버려 대통령과 국민이 바로 부닥치는 상황이 많아졌다. 이것이 생각보다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동력을 떨어지게 한 측면이 있다

[기업]떠오를 권력 떠오른 리더 ‘거물 2세’들에 주목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최태원 SK 회장 1, 2위

   
▲ 이재용 ㅣ 최근 법원이 삼성그룹의 불법 승계 논란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의 후계 구도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그림 최익견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는 엘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같은 세계 석학들과 칼리 피오리나 등 유명 CEO들을 초빙해 미래의 경영 환경이나 새로운 경영 기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조언을 구하는 기회를 자주 갖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빠지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일화 한 토막. 지난 2005년 타계한 피터 드러커 전 미국 글레어몬트 대학 드러커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생전에 승지원을 찾은 적이 있다. 물론 이전무도 아버지 이 전 회장과 함께 그를 맞았다. 피터 드러커는 나중에 삼성그룹 관계자를 만나 “삼성은 아주 운이 좋다. 유일한 후계자인 이전무가 매우 스마트하고 성품이 좋다. 삼성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본다”라고 전했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 이전무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그를 한 번이라도 본 직원들은 “겸손하다”라거나 “예의 바르다”라고 말한다. 회식 자리에서도 직접 폭탄주를 제조해 직원들에게 돌릴 만큼 친화적이라고도 한다.

요즘 이전무는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를 둘러싼 후계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제 자신의 경영 능력을 그룹 임직원뿐 아니라 외국인 주주들에게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가 최근 중국 상하이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해외 순환근무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전무의 활동 영역에는 특별히 제한이 없다. 주재원처럼 붙박이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중남미나 인도, 아프리카, 러시아 등을 오가며 해외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여기에서 쌓은 경험과 경영 능력이 향후 이전무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평가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전무를 둘러싼 환경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동안 그를 눌렀던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최근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법원이 삼성에버랜드 CB(전환사채)와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 발행에 따른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된 만큼 대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로 내려지리라는 것이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그룹의 한 관계자는 “원래는 12월 중순 정도면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좀 늦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둘째 주와 넷째 주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이 서초동 신사옥으로 이전한 사실도 이전무를 염두에 둔 경영 구도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2세 경영이 태평로에서 이루어졌다면, 3세 경영은 지금의 서초동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이전무는 지난 10월 사옥 이주를 앞두고 각 계열사 임원들과 직접 만나 이전 계획을 체크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조만간 단행될 예정인 연말 또는 연시의 삼성그룹 CEO 및 임원 인사에서 대폭적인 ‘물갈이론’도 제기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옛말처럼 이재용 시대에 맞는 인물들로 참모진이 대폭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례로 이 전 회장이 경영권에서 물러난 이후 삼성은 사장단협의회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룹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까지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이전무가 경영권을 물려받아 총수 자리에 오를 동안 그룹을 책임지는 한시 기구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무의 등극 시점을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해외에서 순환근무 중인 그가 언제 귀국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경영 수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소한 2~3년은 해외 순환근무를 더 할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그런 이유로 연말 인사도 중폭 정도에 머무를 것이다. 최근 그룹 안팎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폭 인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예년과 같은 수준에서 인사가 단행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공동으로 조사한 ‘기업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 차세대 인물’로 이재용 전무가 1위에 꼽혔다. 아직은 경영 수업을 받고 있지만, 조만간 후계 구도가 마무리되면 재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인물로 떠오를 게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무는 전체 응답자 가운데 28%의 선택을 받아 차세대 리더 1위에 올랐다.

안철수 등 벤처 기업인들의 약진도 두드러져

이전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인물은 최태원 SK 회장이다. 최회장은 최근 어느 때보다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말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가 열린 페루를 방문했을 당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최회장은 대통령 기조연설 직전에 이대통령을 소개하는 연설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선 지난 11월 중순 국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전경련 정례회의에서 최회장이 호스트를 맡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차세대 기업인을 뽑는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20%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재벌 그룹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최태원 SK 회장 외에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2%)도 차세대 리더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 조사에 눈길을 끄는 대목은 벤처 기업인들의 약진이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8%),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2%),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2%) 등이 나란히 차세대 리더 후보에 꼽혔다.

   

 

[여성]정치의 중심에서‘우먼 파워’를소리 높여 외치다
심상정·나경원 등 실력파 정치인들이 상위권
 

   


여성 분야에서는 정치인들의 바람이 거세다. 정당보다는 개인적 활동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인지도를 높여온 여성 정치인들이 즐비하다.

1위는 압도적인 지지(12%)로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 대표가 차지했다. 2위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다. 언론인 출신의 두 의원, 박영선 민주당 의원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낮은 지지도이지만 이름을 올렸다.

심상정 대표는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여야가 뽑은 2004년 최고 국회의원’ ‘정치부 기자가 뽑은 올해의 정치인’으로 뽑혔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1980년, 공장에 위장 취업하면서 한국의 노동 현실을 알게 된 그녀는 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장, 전국금속연맹 사무차장, 민주노동당 당대회 부의장을 거쳤다. 17대 대선 이후 진정한 서민 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후 2008년 3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18대 총선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 갑에 출마했다가 석패했다. 의석에서는 물러났지만 지난 11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한·미 FTA 토론을 제안하고 비상경제시국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여성 1위로 꼽아온 김주하 MBC 앵커도 이름을 올렸다. 방송 3사 최초의 여성 앵커이자 처음으로 MBC 주말 <뉴스데스크>를 단독 진행하는 등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0위권 내 유일한 20대이자 문화계 인사인 장한나 첼리스트의 등장은 특히 눈길을 끈다. 장한나는 음악 분야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저력을 보여줬다. 그녀는 2006년, 영국의 클래식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에서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에 선정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지휘자로 데뷔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소외 계층 위해 뛰는 ‘자랑스러운’ 여성도 있어

소외받고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도 10위권에 들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활동하는 소라미 변호사와 문경란 국가인권위상임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소라미 변호사는 최근 ‘진짜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받기도 했다. 기업인으로는 최연소 신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박남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와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도 거론되었다.

나라 살림 알뜰하게…”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학창 시절, 장래 희망으로 정치인을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인 쟁점이 터질 때마다 누구보다도 행동하는 정치인으로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돈이 없어 무시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소박한 마음이 오늘날의 심상정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그녀를 지난 12월11일 진보신당 당사에서 만났다.

 1위로 선정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50세 이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국민 특히 여성들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져 좋은 정치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기인 만큼 제대로 하라는 격려의 뜻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여성 분야로 정치권이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 이유는? (심상정 대표는 2006년, 성인지 예산 제도를 통과시키는 등 양성 평등 실현에 기여해왔다.)

여성의 짐으로 떠넘겨졌던 아이 교육, 노인 복지, 환경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 의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제들이 정책으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대거 진출해야 한다. 그런 만큼 내각의 50%를 여성으로 구성하는 법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장점과 한계는?

현실 정치에서 여성으로서 갖는 장점은 거의 없다. 실력보다는 학연·지연·혈연 등 사회적 자원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가 아닌 알뜰하게 나라 살림을 하는 여성주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여성이 강점으로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믿는다.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고비가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해서가 아니다. 나라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성장 중심의 경제 체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이 순간 큰 힘이 없고, 갖고 있는 마이크가 약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서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진보의 실천, 생활 정치를 강조해왔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가?

당에서 곧 경제 위기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금융 개혁을 위한 수술 자금 100조원과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자금 100조원 투입하라는 내용이다. 서민들의 소비를 늘리는 것이 경제 위기를 벗어날 유일한 대책인 만큼 실업 대란을 막고 교육·의료·주거 등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규모 재정 투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중3인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청소년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이들이 사회로 나오기 전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정치적 역량을 키울 것이다.

[영화]작품성·흥행성‘두 마리 토끼’ 잡는 스크린의 거인들
박찬욱 감독 1위, 배우로는 송강호·설경구 꼽혀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박찬욱 감독(45)을 첫 손에 꼽았다. 전문가들이 그를 선택한 것은 영화 산업의 성패가 결국에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창작의 정점에 있는 감독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감독 외에도 차세대 인물 10명 가운데 총 5명의 감독이 포진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 중에서도 박찬욱 감독이 가장 많이 호명된 것은 그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만족하는 몇 안 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해외에서 대중과 영화 관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박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5백80만명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우고 완성도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주류 영화계에 진입했다. 이후 복수극 3부작이라고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했다. 그중에서도 <올드보이>는 박감독의 명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으로 손꼽힌다. 특히 최고의 액션 장면으로 꼽히는 ‘장도리 액션 신’은 충격적인 이야기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감독은 <올드보이>로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영화광 출신 감독이라는 점이 통한 것일까.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올드보이>에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할리우드에서 <올드보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박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해외 언론의 보도를 확인시켜주었다. 할리우드가 워낙 유동적이어서 스필버그가 직접 감독을 할지, 제작자로 물러날지, 아니면 또 다른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내 장점은 작은 영화에서 더 잘 발현된다”

 박감독은 “솔직히 내 손을 떠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은 없다. 스필버그가 하면 다른 감독들이 하는 것보다 더 새로워질 테니까 더 궁금하기는 하다”라고 말했다. 직접 리메이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를 직접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긋지긋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의 리메이크 제안도 받았는데 흥미가 있기는 했지만 리메이크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이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그는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이 실패하고 다음 영화인 <3인조>를 내놓기까지 5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마저 실패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동안 영화광 출신답게 영화평론가로서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 출연하고 영화 비평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감독이 된다는 목표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해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를 성공시켰다.

<미쓰 홍당무>를 통해 신인 이경미 감독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자신도 제작자로서의 도전에 성공한 박감독은 현재 차기작인 <박쥐>의 후반 작업에 열심이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박쥐>에는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등이 출연하며 내년 4월30일 개봉 예정이다.

<박쥐>는 총 제작비 60억원이 들어간 중간 규모의 영화이다. 박감독의 명성에 비해서는 작게 느껴진다. 박감독은 “이야기가 집 하나에서 거의 다 벌어지고 등장 인물이 많거나 몹신이 등장하지도 않는다”라며 자신의 장점은 작은 영화에서 더 잘 발현된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픽처스에서 제작비 절반을 투자했다. 유니버설픽처스가 미국 쪽 배급을 담당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자막이 들어간 외국 영화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작비 절반을 투자한 결정은 해외 영화계에서도 박감독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그는 자신은 이야기꾼이라고 하면서도 좋은 감독이라면 이야기와 화면 모두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꾼이라고 알려진 빌리 와일더의 영화를 보면 이야기를 운반하기 위한 형식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들리 스콧이 스타일리스트라고 하지만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의 스토리가 얼마나 심오한가”라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의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좋은 감독은 이야기와 화면 모두 겸비해야 한다”

박감독 외에도 <괴물>의 봉준호 감독(39), 싸이더스 FNH의 차승재 대표(48), <영화는 영화다>로 제작자로도 성공한 김기덕 감독(48), <놈놈놈>으로 흥행성을 확인한 배우 송강호(41),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강우석 감독(48)과 배우 설경구(4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제작자 심재명 MK픽쳐스 대표(44)와 임순례 감독(47), 칸의 여왕 전도연(35) 등이 차세대 주자 10명에 들었다. 영화감독이 총 5명, 영화 제작자가 3명(강우석은 감독과 제작자 모두에 포함), 배우가 3명이다. 영화 현장에서 감독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감독으로 양손에 꼽히는 봉감독은 박감독과 치열하게 선두를 다투었다. 현재 봉감독은 <마더>를 작업 중이고, 이는 내년 개봉 영화 중 <박쥐>와 함께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 외에도 이준익 감독(49), 배우 김혜수(38), 김성수 감독(47), 홍상수 감독(47), 정훈탁 한국연예매니지먼트 회장(41), 김우택 전 쇼박스대표(44) 등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제 실력 발휘 못 하는 감독들은 문제 불법 다운로드가 영화산업 망치고 있다"

박찬욱 감독 인터뷰
 

   
▲ 박찬욱 ㅣ 내년 4월30일이면 그의 신작 <박쥐>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어떤 즐거운 충격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그림 최익견

박찬욱 감독을 서울 대학로의 모호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모호필름은 박찬욱 감독이 설립한 제작사로서 주로 그의 작품을 제작한다. 지금은 박감독의 차기작 <박쥐>를 제작 중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당시에도 박감독은 그 다음 날 있을 <박쥐>의 후반 작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는 최근에 신인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를 제작해 제작자로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박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일 외에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며 대답하기를 주저하고는 했지만 불법 다운로드 만연으로 인한 부가 판권 시장의 붕괴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작품 세계와 미국 진출,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미쓰 홍당무>로 다른 감독 영화의 제작자로 나섰는데.

언론이나 시사회에서의 반응에 비하면 굉장한 흥행을 거둔 것은 아니다. 본전 수준이다. 극장 수익에서는 본전이 조금 못 되었는데 수출하게 되면 본전은 넘길 것이다. 하지만 신인 이경미 감독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공효진, 서우, 황우슬혜 세 여배우가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등 전체적으로는 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자로서 어느 정도 개입했나?

우선 그 감독을 선발하고, 영화를 기획하면서 어떤 소재를 어떤 스타일로 접근할 것인가를 함께 정했다. 각본을 쓰는 일은 거의 이감독이 직접 했다. 캐스팅, 편집, 음악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중요한 일들은 거의 이경미 감독의 몫이었다.

이감독을 픽업한 계기는?

   
▲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 촬영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모호필름 제공

미장센 영화제를 통해서이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다. 이감독의 단편영화를 봤을 때는 다들 깜짝 놀랐다.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데뷔시켜준다는 제작자가 많았는데, 그런 데로 안 가고 연출부 현장 경험(이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 연출부로 참여했다)을 한 번 하고 가자는 나한테 왔다. 나를 포함한 기성 감독들이 미장센 영화제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다들 아무리 바빠도 품앗이를 해서 참여하고 있다. 거기서 이경미, 나홍진 등 아주 믿을만한 감독이 나온 것이 여간 반가울 수 없다.

한 번 해보니까 어떤가. 계속할 생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 없다. 노름에서 돈 땄을 때 빠지고 싶은 심정 있지 않은가. 딱 이 정도에서 빠지자 생각한다. 더 하다가 혹시 시원찮은 영화가 나오면 짜증나고 피곤할 것 같다.

이번 작업은 만족한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실제로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번 기분이다.

미장센 영화제에서 또 기가 막힌 신인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겠나?

발견해가지고 좋은 제작자에게 소개시켜줄 것이다.

영화시장 침체로 신인 감독 등용이 어려워졌다. 박감독도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영화 두 편을 다 실패해놓고 세 번째 기회가 온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비평적으로든 흥행적으로든 두 번씩이나 실패한 감독에게 세 번째 기회를 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데뷔를 할 때 예전보다는 신중해야 한다. 기회가 왔다고 무작정 붙들어서는 안 된다. 한 편을 해도 자기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었는데도 인정을 못 받아서 그것으로 데뷔작이 유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 작품만 할 수 있다면 한 작품 찍고 은퇴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자신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침체된 한국 영화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제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산업적인 면에서는 아는 것이 없어 나도 공부하는 중이다. 감독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감독들이 최근 실력 발휘를 충분히 못한 것이 문제일 것이다. 물론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들도 있지만 그 수가 조금 적었다. 나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산업적으로 찬물을 끼얹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감독들이 더 분발해야겠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DVD 산업의 붕괴는 큰 문제이다. 우리 아이가 중학생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애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그럴 정도이니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단시간 내에 국면 전환을 노리는 캠페인도 병행해야겠지만 좀 길게 봐야 할 것 같다. 캠페인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교육적으로 접근해야 할 듯싶다.

저작권 문제는 법적인 해결도 필요하지 않나?

정부에서도 IT 산업을 키운다고 너무 무관심했다. 불법 다운로드는 일종의 도둑질인데 방관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좀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

부가 판권 시장이 너무 빨리 무너졌다.

부가 판권 시장이 가진 포션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 직배사들이 한국 DVD 시장에서 다 철수했다. 외국에 나갔을 때 그렇게 영화시장이 큰 나라에 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DVD업체들이 다 철수했냐고 물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대답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외국에서 우리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나?

영화 관계자, 지식인 그룹, 대중의 세 가지 층위로 볼 수 있다. <올드보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못했다. 지식인 그룹에서는 한국 영화에 대해 잘 안다. 특히 김기덕 감독에 대한 지지가 대단하다. 영화 관계자에게는 한국 영화가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다. 우리가 아는 홍상수, 김기덕, 김지운, 봉준호, 나 정도의 영화는 모두 다 봤고 다음 영화를 궁금해한다.

폭력 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데.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관심사는 확실히 그런 쪽이 맞다. 폭력이 사람들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그 공포와 고통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볍고 희망적인 밝은 영화를 해보고 싶어서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찍었는데 반응이 안 좋았다. 그 길로 나가라는 관객들의 대답인 것 같다.

<사이보그…> 외에도 <3인조> <휴머니스트>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등 참여한 코미디 영화는 잘 안 되었는데.

그 각본들은 애정을 많이 갖고 있는데, 특히 <철없는 아내…>가 제일 좋다. 그렇게 코믹한 면이 강한 영화, 뭐가 웃기느냐 아니냐에 관해서는 관객 대중과 항상 잘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웃기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봐도 웃기면서 관객들도 웃긴다는 것이 어렵더라. 예를 들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의 몇몇 장면에서는 먹혔다고 봐야 하고,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의 유머는 절반밖에 안 먹혔다.

배우를 선택할 때는 무엇을 고려하나?

처음 보는 배우라면 만났을 때 뭔가 새로운 느낌, 개성이 있어야 한다.

외모를 본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배우는 생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부에서 배우들의 연기력과 내면의 무엇인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하며 생김새는 아무 관계없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잘생겨야 한다는 것인가?

조각 같은 미모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못생겨도 좋고 다 상관없는데 생김새 자체로 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은 카메라와 영사기라는 두 매체를 통해서 배우를 간접적으로 만나지만, 감독은 그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물을 직접 만났을 때 압도하는 그런 에너지가 필요하다.

젊은 배우들이 너무 일찍 스타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찌감치 청춘스타가 되는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 것은 아니다. 연기 못하는 스타도 어디에나 있고 김윤석처럼 늦게 유명해지는 배우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이 조금 아쉬운 것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계속 스타성을 유지하는 배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영향을 받은 감독을 꼽자면.

초기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이었던 것이 분명하고, 영화를 만들어오면서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향이 점점 커졌다. 두 감독 모두 인간 욕망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주목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베르히만이 제일 큰 돈을 들여서 상업적으로 만든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는 아주 히치콕스럽다.

최근 감독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언제나 나의 우상이고 미하엘 하네케,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도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는 <내가 찍은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를 재밌게 봤다. 톰 디칠로 영화를 좋아한다.

할리우드 진출설이 나오는데.

김지운 감독이 다음 작품을 그쪽에서 하는 것으로 안다. 나는 검토만 하고 있다. 좋은 작품, 시나리오가 있으면 나갈 생각이다. 좋은 작품이 입수되면 하는 것이고, 끝내 안 오면 안 해도 된다. 무조건 가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다.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가.

얼마든지 권하고 싶다. 특히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 몇 억 달러짜리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할리우드를 가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작은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다른 감독들은 빨리 가서 경험도 많이 하고 만약에 내가 나중에 가게 되면 조언도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쓰리 아미고스’라고 하는 3명의 멕시코 감독이 있다. 알폰소 쿠아론, 베네치오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이다. 이 셋이서 서로를 위하면서 외로울 수 있는 할리우드에서 서로 키워주고 끌어주고 후배도 같이 데려와서 셋이 한꺼번에 제작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럽다.

 

언젠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이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하며 ‘세 친구들’로 불리울 날을 기대해 본다

[문학]날은 저물어 팍팍한 마음 달래줄 '엄마'가 필요해
공지영·신경숙, '두 여자 전성시대' 예고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조철 2001jch@sisapress.com

   


문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는 소설가와 시인이 골고루 꼽혔다. 팍팍해진 현실 때문인지 서사적인 이야기보다 감성적인 글쓰기를 하는 문인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소설가 공지영·신경숙 씨가 공동 1위를 차지해 ‘두 여자’의 전성시대를 예고했고, 시인 안도현·문태준 씨가 그 뒤를 이어 ‘감성 회복’을 바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계에 재기발랄한 신인들이 가세해 선배들과 경합을 벌이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 타블로가 펴낸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서점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 달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킨 것은 문단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내 소설가들은 지금 외국 작가들에게 영토를 많이 내주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눈먼 자들의 도시>의 스페인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 <사랑하기 때문에> 등으로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한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 올해 펴낸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의 인기가 언제 시들지 모를 정도인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 등 유럽·미국 대륙과 일본 등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 서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량이 외국 소설 판매량의 4분의 1 정도인 형편이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름값’ 하는 몇몇 중견 작가들뿐이다. 김훈·이외수·황석영 등 ‘나이 드신’ 작가들이 쟁쟁한 외국 작가들의 책들과 경쟁하며 체면을 지켜주었다. ‘차세대 리더’로 꼽힌 공지영씨가 지난 봄에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며 지난해 말 낸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의 여세를 이어갔다. 또, 신경숙씨는 지난해 <리진>으로 6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와 최근 <엄마를 부탁해>를 펴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재미이다. 읽는 재미가 있어야 감동도 주고 메시지도 분명히 던져줄 수 있다. 감동과 메시지를 찾아보겠다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인내하며 견디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공지영·신경숙 씨가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배경에 이 점도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본다. 작가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이다.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기에 독자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불러들여 울고 웃고 또 함께 분노하고 고민하는 한 ‘두 여자’와 독자들과의 끈끈한 유대는 끊어지지 않을 듯하다.

시인 안도현·문태준도 주목…‘감성 회복’ 기대

안도현 시인은 올해 <간절하게 참 철없이>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등을 엮어내는 등 꾸준한 창작 활동을 해내고 있다. <가재미>로 잘 알려진 문태준 시인은 <그늘의 발달> 등을 펴내 시들지 않는 창작욕을 과시했다. 안도현 시인은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문태준 시인은 불교방송국 제작 PD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연수씨는 올해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잇달아 발표해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고, 지난해 말 <퀴즈 쇼>를 출간한 김영하씨는 지난여름 ‘여행자’ 시리즈 2편 <김영하 여행자 도쿄>를 펴냈다.

시인 송찬호씨는 ‘늘 빠르고 폭력적이고 불운한 것들로 가득 찬 듯한 세상 한 쪽에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힘과 실체’를 찾아 들려준 공으로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성석제씨는 지난 6월 산문집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를 펴낸 데 이어 최근에는 소설집 <지금 행복해>를 펴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초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펴낸 소설가 천운영씨와 최근 <앱솔루트 바디>를 펴낸 소설가 박민규씨도 국내 작가 중 차세대 리더 10위 안에 꼽혔다.

한국 문학의 흐름에서 ‘여성 작가’가 뚜렷하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로 기억된다. 이념과 사상이 소설의 화두로 자리 잡았던 1980년대에는 남성 작가들이 쓴 대하 역사 소설이나 현장 소설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썰물 빠지듯 그런 문학의 조류가 지나간 1990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가족과 개인에 얽힌 소소한 읽을거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이나 노동 현장을 지나온 여성 작가들은 ‘여성 해방’이라는 화두를 세밀하게 또는 예리하게 다듬어냈다. ‘운동’에서 축적한 논리와 시대의 변화에서 읽은 가능성으로 무장한 여성 작가들은 뭇 여성 독자들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 한 판 굿을 벌이듯 당기고 밀고 부수고 풀어 헤치며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부장 사회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결점이나 과거지사 등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흉이 되지 않았다. 차분하게 ‘커밍아웃’하고 소곤거리듯 새로운 질서를 말하는 그 이야기들은 가부장 사회가 억압해온 온갖 사슬들을 댕강댕강 끊는 예리한 ‘칼의 노래’였다.

그녀들의 문학은 그렇게 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였다.

여성 작가들, 1990년대 문단에 활기 띄워

1963년,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라 따로이 20여 년의 집필 활동을 해온 두 작가는, 중견 작가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에 힘겨워하는 시절을 보기에 따라서는 쉽고 편안하게 보냈다. 자기 표현과 사회와의 소통을 하는 데서 조직에 얽매이거나 집단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문학이라는 창작 방식이 여성들에게 유리한 시절이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지영씨는 1990년대 문단에 페미니즘을 확산시키고, 페미니즘 확산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 인생 20년을 훌쩍 넘으면서 그녀는 그런 인식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비판과 칭송이 엇갈리는 논쟁 속을 그녀는 ‘무소의 뿔처럼’ 정면으로 돌파했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쉼 없이 화제를 이끌어냈다.

공지영씨는 1988년, 1년 전에 있었던 구로구청 농성 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그 뒤 386 운동권 출신으로서 후일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했다. 1997년에 장편 <착한 여자>를 내놓으면서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굳혔다. 2005년에는 사형수와 여교수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큰 인기를 모아 지지부진했던 한국 소설에 활기를 띄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자전적인 소설 <즐거운 나의 집>과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 그녀는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면서 또 다른 ‘도전’에 연말연시를 바치고 있다.

신경숙씨는 한 일간지 조사에서 국내 문인 중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인된 문장가인 셈이다. 그녀는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잘 타왔다는 평,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더 정치적이지도 더 사회적이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서술해내는 것이 장점’이라는 평을 받았다.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딸기밭>을 펴냈고,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리진>으로 독자들을 다시 끌어모은 뒤 최근 펴낸 <엄마를 부탁해>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이여, 인생의 ‘의미’를 찾기 바란다"

소설가 공지영씨 인터뷰
   
▲ 공지영 ㅣ 소설가.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동트는 새벽>으로 데뷔. 21세기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수상.
ⓒ그림 최익견

이름 앞에 ‘최고, 베스트’가 붙기도 한다.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말도 있었다. 부담되지는 않나?

부담된다.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대중들의 변덕’에 시달린다. 독자의 사랑을 못 받으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데 프로로서 그 점도 마음에 걸려 한다. 하지만 최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새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고 있다. 악플로 여겨지는 댓글이 눈에 띄던데, 악플에 대항할 내공이 있는가.

그 점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셨다. 악플은 누구나 싫은 것이다. 그전에도 당했는데 그 고통을 삶으로 견뎠다.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판결을 수화로 전해들은 청각장애 학생들의 이상한 신음소리가 법정을 울렸다’는 기사의 마지막 줄에 충격을 받고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도가니>는 어떤 작품인가?

사건이 발각되고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사건에 연루된 상류층 인사들이 담합해서 사건을 덮으려 하자 그에 맞서 진실을 밝혀내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엄마와 딸이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그 책은 어린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연재에서도 어린 독자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쓰는가?

작가에게는 책을 내는 자체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놀랐다. 읽어주시는 분들 중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숨어 있던 분’들도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놀랍고도 감사했다.

한때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수식어가 떨어져나갔다.

10년 전 이야기이다. 자유주의자니 페미니스트니 다 얽매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숨어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살고 싶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좌충우돌’이다.  

취업 문제 등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려운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취직이 안 되거나 하는 그런 시대는 언제나 있었다. 요즘 20~30대를 보면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수능 다음에 토익 점수, 사회에 나가서는 연봉을 따지는…. 그것은 감옥 같은 것 아닌가.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인 것 같다. ‘의미’를 못 찾으면 인생은 부질없고 처참하다.


"방치해서 잃어버린 ‘엄마’를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

소설가 신경숙씨 인터뷰
 
   
▲ 신경숙 ㅣ 소설가.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에 소설 <겨울우화>로 데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그림 최익견
발표한 작품마다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눈물을 훔치게’ 한 결과로 1위에 선정된 것 같다. 소감은?

갑자기 들은 소식이라….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부탁해>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부에서 1997년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와 비교해 2008년 출판계 키워드의 하나로 어머니를 말한다.

그저 쓰고 싶은 작품을 썼던 것이지 사회 분위기에 맞춘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머니라는 상징이 따뜻하고 건강하게 상처 없이 존재하기를 바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라는 상징을 잃어버렸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첫 문장을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해서 개개인의 어머니 찾기를 시도해본 것이다.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화두였다고 말했다. 책이 나온 뒷얘기가 있다면.

작가가 되기 전부터 작가가 되면 어머니 얘기를 써보리라 생각했었다. 글을 쓰게 된다면 어머니 마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 되기를 희망했다. 너무 늦게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1980~90년대를 지나오면서 문학 속에서 억압의 상징으로서 ‘아버지 죽이기’ 작업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 덕에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문학 속에서는 상당히 사라지거나 희화화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러면 어머니는? 힘 센 아버지 옆에 존재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어머니는 방치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상생활과 닮았다. 하지만 어머니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를 ‘엄마’로 바꿔 부르자 달라졌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각각 화자의 시점이 다르다. 그런데 ‘나’를 지칭하는 것은 엄마뿐이고 모두 ‘너, 그, 당신’으로 지칭된다.

문학 속에서도 엄마를 주변에만 두었지 그 자리를 중앙에 내줘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늦었지만 엄마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작가로서 엄마들에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배려였다. 더 나아가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지점까지 가보고 싶었다.       
 
어머니를 여읜 사람들은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라고 말한다. 지난해 겨울 집필하는 동안 보름인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엄마가 서울에 와 계셨다. 사춘기 때 엄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이후로 30년 만에 처음 그리 여러 날을 보냈다. 새벽에 엄마가 자고 있는 방으로 건너가 그 옆에 나란히 누워서 옛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엄마 마음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슨 얘기인가를 하다가 딸인 내 가슴에 안겨 우는 엄마를 보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하도록 기반이 되어준 분을 그리 두었다는 아픔이 밀려왔다. 엄마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이 작품을 쓰는 동안 가장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면 이 책은 자전적인 내용인가?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엄마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의 엄마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를 지닌 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엄마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0여 년 글을 써오면서 본인의 문장과 서술 방식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글 쓰는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일로 세상과 소통을 해왔다. 내게 절실한 것은 읽는 이에게도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써왔을 뿐이다.

‘신경숙 마니아가 몇십만 명’이라는 식의 말도 나돈다. ‘신경숙 장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몇십만 명은 과장된 말이고 처음부터 쭉 따라 읽어온 독자들은 있다. 내 소설은 읽기가 쉬운 소설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에 의존하는 서사를 향해서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식의 서술 방식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며 상징이며 보편성을 떠난 독자적인 시공간들이 소설 속에 무수하게 들어와 있다. 그런데도 놓치지 않고 따라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쓰든 인생이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다. 나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사회적 단절을 지나왔고 내면의 변화를 겪어왔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면 더 튕겨져 나가는 성격이어서 쓰는 나도 읽는 독자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소설의 흐름에 따라 뒷문을 열어둠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거기까지가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작품의 마침표는 읽는 사람이 찍는다고 본다. 내 독자들과 함께 보기 좋게 나이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배 작가들 중에 엄마 같은 존재로 생각되는 분을 꼽는다면.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 힘든 시대를 겪어온 분들이기 때문에 강인하고 아름답다. 잘 늙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 때 그들을 생각한다. 내게는 문학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어려울 때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만 그렁그렁해진다. 방황하는 젊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0대 이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힘들지만 먼저 이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하겠다 싶은 일을 정하고, 정해졌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미술]두려움 모른 채 그리고 조각하는김홍도의 후예들
도전 즐기는 토종 작가 이불 1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이재언 (미술평론가)

   

최근 우리 미술계의 대표적 인물을 선정하는 조사에서 유독 미술시장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주로 갤러리보다는 미술관, 미술관보다는 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주요 국제 행사에서의 비중이 주로 반영되었던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몇 년 사이 아트페어나 경매 등의 소식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결과 때문이다. 1990년 말 외환위기 사태 이후부터는 ‘꿩 잡는 게 매’라고 외국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곧 애국자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간의 관심은 많은 변화를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술 분야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가로 이불에 이어 강익중이 선정된 것은 세간의 평가와 예상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불은 토종 작가라는 점에서, 강익중은 미국을 거점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실이 주목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작가의 최근 활동 시점이 이번 조사의 시점과 얼마나 가깝냐는 것이었다.

이불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은 최근에 있었던 개인전이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에 전시를 가진 작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모두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0년대에 가장 주목받는 활약을 한 작가로서 또한 미래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가로 그를 손꼽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이다.

2위 강익중은 백남준의 후예로 주목받아

이불(45)은 홍익대 조소과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도발적인 누드 퍼포먼스, 광채 나는 시퀸이나 구슬, 몬스터나 에일리언 등 각종 캐릭터들로 기성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어딘지 모르게 엽기적이고 음란해 보이면서도 반항적이고, 그러면서도 우수와 여운이 주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1997년 뉴욕 MoMA에 설치된 생선은, 생선이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로 인해 철거되는 스캔들로 말미암아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9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휴고보스 미술상 최종 후보 작가 전시,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등으로 명실 공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강익중은 홍익대를 졸업한 후 1984년 도미해 뉴욕에서 현대미술의 에센스를 섭취하면서 성장해온 작가이다. 도미 후 10년 만인 1994년 백남준에게 발탁되어 휘트니에서 함께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시를 갖는 등 미국 무대에서 백남준의 뒤를 이을 작가로 주목되기 시작했다.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함으로써 국제적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밀레니엄 작가 1백20명에 백남준과 함께 선정된 것은 그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시켜준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광화문 가림막 작품으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작품은 작은 단위들의 조합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시대의 패러다임에 적중되는 양식의 결정체로서, 미학적인 담론의 차원에서도 거론되는 양식으로 하나의 획을 그었다. 뉴욕에서 그림 그릴 시간이 없던 그가 주머니 속에 작은 캔버스를 만들어 넣고,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작업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데, 일상적 경험의 그물망에 포획된 각종 이미지들이 변화무쌍하게 조합을 창출해나가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무명 서양화가 김동유, 크리스티 경매에서 ‘파란’

일견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이 양식은, 우리 동시대의 언어는 좀더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라는 미학적 인식을 조형화시키고 있다. 동양의 정적인 요소와 서양의 역동적인 문화의 내용들을 조화시키며, 아울러 그 어떤 공간에서도 조화와 해석을 수행하는 것을 강점으로 하는 전천후 양식은 그 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이제 유니트 컴바이닝 페인팅은 보편적 양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2표를 받은 공동 3위에는 김동유, 차대영, 홍경택, 서도호, 최정화, 유근택이 함께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서도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서도호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약관의 나이에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참가했고, 미국으로 활동 본거지를 옮긴 뒤에는 현재까지 각국에서 초대되어 전세계를 누빈다 해도 지나침이 없는 작가이다. 국내에서는 2006년 선미술상 수상전 외에는 이렇다 할 전시를 갖지 않아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위의 두 사람에 비해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6년 전시에서 선보인 서도호의 작품은 주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충돌 및 화해, 관계성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자신이 살았던 한옥이 어느 날 태풍에 실려 미국 서부의 어느 가옥 위로 떨어진 모습을 표현한 정교한 미니어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유발했다. 작가 자신이 체험한 기억들과 다양한 인종들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소통의 문제를 상징적 아이콘과 오브제들을 통해 치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미의식을 조형화시켜 나가고 있다.

재작년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지방 작가의 작품 한 점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의 20배가 넘는 가격 3억5천여 만원에 낙찰되어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서양화가 김동유이다. 모택동, 마릴린 먼로, 박정희 등의 역사적 인물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앤디 워홀처럼 매체 속의 이미지를 집적시키고 반복시키는 것까지는 유사하다. 그런데 그 조합은 다시 통일적인 이미지로 복제되는 독특한 방식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대영의 경우는 한 송이의 꽃 이미지를 거대한 화폭에 해맑게 펼침으로써 한 폭의 추상적 화면이 되도록 하는 인상적인 그림으로 유명하다. 홍경택은 원색의 연필, 책 등이 화면에서 몇 개의 소실점을 가지면서 쾌활하고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홍경택 역시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기념비적인 낙찰가를 기록했다. 그래픽과도 같은 메커닉한 이미지들이 보여준 쾌거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기념비적인 경매 이후 한창 입체적인 평가 작업이 진행 중인 단계에 있다.

최정화는 미술과 비즈니스를 넘나드는 자유로움과 분방한 사고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회화, 인테리어, 영화, 설치 등의 많은 분야에 걸쳐 제도의 규범을 무시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모든 것이 조형으로 승화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나의 거대한 서사를 짓는다"

이불씨 인터뷰

   
▲ 이불 ㅣ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기성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림 최익견

인터뷰를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작가 이불씨의 작업실이자 자택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무언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작업복을 입은 채로 포즈를 취했다. 이불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본명이냐고 묻자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이불과 현대미술가, 모두 생경하게 느껴졌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금세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불의 작업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컨셉트 외에는 너무 많이 바뀌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부를 말이 없다. 조각, 비디오, 페인팅,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를 하니까. 누군가가 적절한 말을 찾아내서 나중에 정리를 하겠지만 지금은 뭐라고 딱 짚어서 얘기할 수 없다.

작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천착하는 주제는 있다. 그게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면 뭐 하러 작업을 계속하겠나. 살면서 계속 변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주제는 있으되 문장으로 얘기하기는 좀 그렇다. 최근 3~4년 정도는 큰 주제로서 단어 하나를 잡아놓고 작업을 하고 있어 그것은 말할 수 있다. ‘Mon Grand Recit’이라는 프랑스어인데 ‘나의 거대한 서사’라고 해석이 되겠지만 굳이 해석을 하는 순간 그 의미가 사라지기에 프랑스어를 그대로 쓴다. 근대에 이루어진 유토피아에 대한 플랜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실패했거나, 실현되지 못했거나, 시간이 지나며 변한 것들이다. 건축, 문학, 영화 등 여러 분야의 유토피아 아이디어를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엮어 하나의 서사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동안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업을 한다는 평을 들었다.

매체에서 선정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그들도 실제로는 사용하면서도 어떤 뉘앙스인지 모르고 사용했을 것이다. 한 번 이름 붙여져버리면 그것이 나를 수식하는 단어가 된다. 불리는 순간 이미 불편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쓴다.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려운 것은 굉장히 어렵다. 작가들이 어려워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으로 치면 다른 분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화학도 어렵지 않는가. 사실 미술은 클래식 음악보다 훨씬 덜 어렵다.

일반인이 미술에 익숙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딱히 어떤 방식이 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권한다면, 차이가 큰 작품들을 두루두루 많이 봤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 작품 전시가 있으면 그것도 보고, 젊은 작가의 작품도 보고 하면 둘 사이의 차이가 크겠지만 자기가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 뭔지 알게 된다. 그 반응에 따라서 더 알기를 원하면 책자를 본다든지 하는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다.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어디가 좋은지, 자기에게 맞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시기에 한 군데만 매진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좋다.

[무용]프리마돈나 안무의 달인 함께 정상에 ‘우뚝’
발레리나 강수진·현대무용가 안애순, 공동 선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무용은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어서 연륜과 신체적인 조건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30대에서 40대 사이의 비교적 젊은 층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시사저널>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에서도 눈에 띄는 젊은 무용인들이 많았다. 다만, 이런 현상은 장르의 특성상 한국무용보다는 발레나 현대무용에서 두드러진다.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무용인은 발레리나 강수진씨와 현대무용가 안애순씨이다.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서 무용의 저변을 넓혀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최초 동양인 단원인 강수진씨는 무대에서 직접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발레리나로서, 안애순무용단의 안애순씨는 아름다움을 엮어내는 안무가로서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CF에서 ‘울퉁불퉁한 발’로 화제를 모으면서부터이다. 그동안 발레리나 강수진을 몰랐던 국민도 발레를 향한 그녀의 열정과 노력에 감명받았다. 실제 그녀는 상상을 초월한 노력과 끈기로 동양인 최초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고, 세계적인 콩쿠르에 연달아 입상하며 무용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떠올랐다.

문훈숙·최태지 단장은 3, 4위에

하지만 우아하고 환상적인 발레 연기로 찬사를 받는 강수진도 40세가 넘으면서 ‘현역’ 무용가에서 은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위해 내한했을 때 “나이가 나이이기에 마지막 줄리엣 연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수진은 독일에서 발레를 해왔고 한국에서는 간혹 공연만 하고 떠났다. 한국에 영향력이 있다기보다는 단지 유명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강수진 때문에 대중이 발레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한국 발레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은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과 국립발레단을 이끄는 최태지 단장이다. 왕년의 ‘스타 발레리나’들이 한국 발레계의 양대 산맥을 하나씩 맡아 책임지고 있다.

현대무용 안무가 중에는 댄스시어터 온의 홍승엽 단장과 도발적인 무용으로 유명한 안은미씨가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 10위 안에 선정되었다. 둘은 안무 역량이나 인지도 면에서 안애순씨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평이다. 20위권 안에는 학계의 인물들이 많았다. 국민대 문영 교수, 우석대 양순희 교수, 신라대 정신혜 교수, 한양대 손관중 교수, 안동대 정숙희 교수, 강원대 조성희 교수, 상명대 박재근 교수, 동덕여대 김순정 교수 등이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지목되었다.

 


"휴머니즘 담긴 시대의 몸짓 펼치겠다"

현대무용 안무가 안애순씨 인터뷰

   
ⓒ그림 최익견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뽑혔다. 소감은?

20년 넘게 한국의 정체성, 역사, 문화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난해한 현대무용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 점을 인정해준 것 같다.

외국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현대무용가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20대 중반 무렵, 스스로 작가로서의 확신을 얻고, 내 이름을 무용계에 각인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유학을 미루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유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린 나이에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았다면 온전한 나만의 움직임이나 정체성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발레와 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작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내면에서 자유와 휴머니즘을 열망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런 플롯을 만들어야 하며, 그 역할을 예술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안무를 만들 때 관심이 가는 주제들이 있다면.

한국의 문화적·사회적·역사적인 충돌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관심이 많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오는 문화적 혼란과 갈등의 문제, 집단에 다양한 개인성이 매몰되는 문제 등이다.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순수 무용으로 사회문제를 폭로하던 평소 안애순의 안무 경향을 고려할 때 조금 의외이다.

대중들이 많이 보는 <대장금> <바람의 나라>와 같은 창작 뮤지컬의 안무는 의무감을 가지고 담당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순수 예술은 대중과 가깝지 않다. 순수 무용은 본질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실 같은 영역이다. 그렇게 순수 무용에서 찾은 근원적인 움직임이나 안무 스타일이 고립되지 않고 대중들과 만나려면 뮤지컬과 같은 문화 상품이 필요하다.

앞으로 활동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다수의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개인의 문제를 다룬 <백색소음>이라는 작품에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2010년부터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공연한다. 내년 6월에는 LG아트센터에서 창작 안무를 선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무용이라는 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들을 찾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귀와 눈과 감각이 충족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패션]상큼한 그녀의 ‘위풍당당’ 워킹 누가 막으랴
가수 겸업 패션모델 장윤주 ‘독주’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패션모델 장윤주씨의 독주가 여전하다. 장씨는 이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패션모델의 정년은 보통 25세인데, 장윤주의 올해 나이는 29세이다. 숫자로 보면 정년을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런데도 그녀의 아성은 더욱 단단하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장씨는 최근 어릴 적부터 품어오던 가수의 꿈을 이루었다. 첫 번째 정규앨범 <드림>(Dream)을 발매하고 모델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장윤주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열여덟 살에 모델에 데뷔했다. 올해로 벌써 11년차이다. 장씨의 애칭은 애니메이션 뮬란의 여주인공인 ‘뮬란’이다. 죽 찢어진 눈이 영락없이 뮬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키가 1백73cm이지만 모델이 되기에는 작은 키이다.

한마디로 키도 작고 못생겼다. 그런데도 국내 모델계의 최정상에 올랐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장씨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최정상 모델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단점을 개성으로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장점은 최대로 살렸다. 모델계에서는 ‘장윤주스럽다’는 아이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모델 변정수·디자이너 정욱준 공동 2위

   

차세대 인물 2위는 모델이자 탤런트인 변정수씨(34)와 디자이너 정욱준씨(42)가 차지했다. 변정수씨의 인기는 30대 중반에 들어서도 식을 줄을 모른다. 오히려 ‘아줌마’라는 이미지를 잘 살려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변씨는 평소 ‘S라인’을 뽐내다가 임신 후에는 ‘D라인’을 뽐내며 공식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래서 변정수씨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워킹맘’이다.  

디자이너 정욱준씨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정씨는 지난 1991년 에스모드 서울을 졸업하고 쉬퐁, 클럽모나코, 닉스의 디자이너를 거쳤다. 1999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론 커스텀(Lone Costume)을 론칭했다. 지난 2000년부터 서울컬렉션에 참가하는 동시에 영화 의상과 호텔 유니폼 디자인에도 관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해왔다.

지난해 6월, 준지(Juun.J)라는 이름으로 파리 컬렉션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올해 파리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4위에는 디자이너 손정완(49), 강진영(45), 두리정(35)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디자이너 손정완씨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패션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숙명여대 산업공예학과를 다니면서 패션 디자인 학원을 다녔다. 그가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걸은 것은 1987년이다. 그의 이름을 딴 ‘손정완 부티크’를 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손정완씨가 만든 옷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누구나 한 번 입어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의 컨셉트는 로맨틱함에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한 ‘로맨틱 룩’이다. 지난 2006년 9월에는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 전시회 ‘후즈 넥스트’(Who’s Next)에 초청을 받아 포르테 드 베리사이유 단독 패션쇼를 개최하기도 했다.

강진영씨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에 진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이다. 지난 1993년 서울 강남 신사동에 ‘오브제(Obzee)’라는 이름으로 여성 의류점을 낸 후 1년만에 롯데백화점에 입점하는 성과를 올렸다. 강씨는 부부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부인 윤한희씨도 유명 디자이너이자 강씨의 파트너이다. 여성복업체 ‘오브제’로 국내에서 시장 공략에 성공한 강진영·윤한희 부부는 지난 2002년 뉴욕 컬렉션에 진출해 와이앤케이(Y&Kei), 하니 와이(Hanni Y) 등의 브랜드를 키워냈다.

재미교포 패션 디자이너 두리정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네 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다. 지난 1995년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의류회사인 바나나 리퍼블릭에서 남성 의류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가 미국 패션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제프리 빈에게 발탁되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의 브랜드인 ‘두리(Doo Ri)’로 옷을 만들었다. 두리정은 지난 2005년 미국의 <뉴스위크>가 선정한 ‘2006년 패션업계를 이끌 유망주’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06년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와 패션잡지 <보그>가 선정한 ‘유망 디자이너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모델 혜박·디자이너 장광효 등 공동 7위

   

모델 혜박씨(23), 디자이너 장광효씨(48), 정구호씨(46), 송자인씨(35), 최범석씨(32)가 공동 7위이다. 혜박씨(한국 이름 박혜림)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톱모델이다. 지난 2005년 모델계에 데뷔한 이후 동양인 모델 최초로 샤넬, 프라다 등 명품 패션쇼 무대에 섰다. 그는 지난 7월 세계 패션모델 랭킹을 소개하는 사이트 모델스닷컴의 ‘여자 모델 톱 50’에서 전세계 18위에 올랐으며, 아시아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불리는 사람이 장광효씨이다. 그는 1987년 서울 압구정동에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를 열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파리 국제 남성기성복전시회(SEAM)에 참가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007년 한국 섬유패션 대상을 수상했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씨는 제일모직 여성사업부 상무이다. 그는 미국 휴스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각각 전공했다. 지난 2005년 아시아패션연합 한국협회 디자인 디렉터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6월에 열린 제45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의상상(황진이)을 받았다. 영화
<정사> <스캔들> <텔미썸딩> 등의 아트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디자이너 송자인씨는 이화여대 조소과를 전공했다. 디자이너로 본격 데뷔한 것은 지난 2004년 봄에 개최된 스파컬렉션을 통해서이다. 송씨는 같은 해 자신의 이름을 딴 개인 브랜드 ‘자인 바이 자인 송’을 출시했다. 송씨의 어머니는 유명 디자이너인 김동순씨이다.

동대문 출신 고졸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씨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이다. 최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나르면서 옷을 팔았다. 그는 지난 2003년 서울컬렉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동대문 브랜드는 ‘Mu(무)’였다. 그 후 ‘빨간색의 고흐’를 메인 이미지로 한 남성복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를 설립했고, 3년 만에 파리 쁘랭땅 백화점 등에 진출했다. 

이밖에 10위권 밖에는 방송인 장윤정씨, 모델 박둘선씨, 모델 이선진씨, 슈퍼모델 김소연씨, 모델이자 영화배우 강동원·권상우 씨, 디자이너 이상봉씨, 모델이자 가수인 이효리씨, 가수 비, 모델 최지호씨,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 간호섭 홍익대 교수, 디자이너 서상영·노승은·김성민·조용현 씨, 모델 한혜진·최진희 씨, 디자이너 박윤정·박윤수 씨, 권영아 신라대 교수 등이 뒤를 이었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즐겁다"

장윤주씨 인터뷰

   
▲ 장윤주 ㅣ 패션 모델. 개성있는 외모와 끼로 모델계의 최정상을 지켜왔고, 최근 가수로 데뷔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림 최익견

톱모델 장윤주씨(29)는 역시 바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인터뷰 일정을 잡아놓고도 몇 번이나 변경한 끝에 지난 12월9일 오후에 겨우 만났다. 장윤주씨를 만난 곳은 서울 압구정동의 한 미용실. 그녀는 저녁에 잡혀 있는 행사에 나가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최근 앨범을 냈는데, 반응은 어떤가?

괜찮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정규 앨범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앨범까지 냈다. 평론가들의 평도 나쁘지 않다. 판매율도 만족스럽다.

이번 앨범의 가사를 직접 썼다. 평소에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인가?

일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언제 글을 써야겠다고 정해놓지도 않는다. 다만,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 하는 편이다.

원래부터 가수에 대한 꿈이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나름으로 소질도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음악을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한 곡 한 곡을 써봤다. 앨범을 낼 때까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올해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로 뽑혔다. 평소 옷 입는 스타일이 궁금하다.

평소에는 옷을 자연스럽게 입는 편이다.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내추럴하고 편하게 입는다. 명품 옷과 국내 브랜드를 잘 조화해서 입는다. 공식 자리에서는 코디의 조언에 따라 입지만 내 생각도 반영한다.

장윤주씨를 일컬어 ‘신이 내린 몸매’라고 한다.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누구든지 자기 몸매에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비교적 내 몸매에 만족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관리를 잘 못해서 살이 많이 쪘다. 몸매 관리를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다. 운동하려면 시간도 있어야 하고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먹는 것 조절이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얼굴을 고친 곳이 있는가?

전혀 없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얼굴 그대로이다.

주량은 얼마 정도인가?

맥주 한두 잔 정도를 마시는 것 같다.

결혼은 언제쯤 생각하고 있나?

30대에는 결혼을 하려고 한다. 나도 벌써 나이가 서른을 앞에 두고 있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제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이상형은 몸과 정신이 건강한 남자이다. 생각하는 것도 마음가짐도 건강한 남자가 좋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선후배 중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최미애 선배이다. 현재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는데 여전히 멋진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베풀면서 산다. 주변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우러난다.

연예인 중에 친한 사람은 누구인가?

홍진경씨와 친하다.

성격은 어떤가?

다양하다. 침착할 때는 침착하고 지나치게 감성이 풍부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해볼 생각은 없나?

그럴 생각은 없다. 지금은 모델 일을 하면서 음악에 전념하고 싶다. 음악은 나의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 앨범을 내면서 내 능력을 다해서 성공하고 싶다.

자신의 경쟁력이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이나 재능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자연스럽다. 장르가 달라도 ‘장윤주스럽다’라고 할 정도로 표현이 매끄럽다. 나만의 개성 있는 표현, 이런 것이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보기술]“벤처 성공 모델 만들겠다”
안철수 의장 인터뷰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이석 ls@sisapress.com

   
▲ 안철수 ㅣ 소프트웨어 업체 CEO에서 최근 교수로 변신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고 있다.
ⓒ그림 최익견
지난 2005년 안철수 연구소 CEO에서 물러나 유학을 떠났다.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나에게 가장 편한 일은 안철수연구소의 CEO이다. 백신 엔진 개발 및 회사 설립 때부터 최근까지 적지 않은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다.

최근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창업을 꺼리고 있다. 돈을 쌓아놓으면서도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퇴행적 현상들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경제를 활활 살려놓는 데는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제격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에서 대학 교수들을 많이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는다. MIT 등과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부분에서 외국 학생들과 차이가 났다. ‘How’만 생각하다 보니 근본적인 부분을 다루는 데 소홀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직을 승낙했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과목은 생소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인가?

흔히들 기업가라고 하면 ‘비즈니스맨’으로 착각을 한다. 기업가의 ‘기’를 한자로 쓰면 ‘企’(바랄 기)와 ‘起’(일으킬 기) 등으로 나뉜다. 일본의 경우 후자인 일으킬 기로 번역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원뜻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비즈니스맨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후자이다. 창조적인 기업인을 양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면 된다.

어려움은 없나?

솔직히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전혀 생소한 분야를 가르치다 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새로 수업 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수업도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 형식으로 진행하는 탓에 학생들에게 벅찬 감이 있지만 서로 노력해서 이겨낼 것이다.

향후 계획은?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한 학기가 다 되어간다. 방학이 되면 우선 책 쓰는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그동안 바빠서 전혀 작업을 하지 못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벤처의 연결 고리를 만들 예정이다. 미국 유학 중에 의미 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벤처 인맥이다. 이들을 활용해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현재 몇 가지 모델을 만들어두었다. 내년 1월 미국에 가서 최종적으로 한 가지를 선택할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많다. 

위기는 항상 있었다. 이 위기를 잘 넘기면 또 다른 호황기를 맞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말로 중요한 시기는 위기일 때이다. 호황기에 조금 더 잘되는 것은 의미 없다. 오히려 침체기 때 못하면 망가지게 된다. 국운이나 인생이 모두 그렇다.

위기를 겪는 사람이나 기업에 할 말이 있다면.

위기 때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편법보다는 정공법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단기적 편법에 매달리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경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위기에 놓여 있을 때  호황기에서 찾지 못했던 문제들을 고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라고 본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고 비관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고, 문제를 고칠 힘도 안 난다. 지금은 힘들지만 잘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게임]세계 무대를 평정하는 '아이디어 뱅크'들
엔씨소프트 김택진·넥슨 권준모 대표가 '선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지영 young@sisapress.com

   


‘게임계의 살아 있는 신화’ ‘게임계 대통령’ ‘게임 산업을 이끄는 절대 군주’.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이미 그는 게임계에서는 절대 지존에 등극한 상태이다. 그래서 <시사저널> 설문조사 ‘차세대 인물’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로 2관왕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인 그는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했고, 1997년 3월에 엔씨소프트를 창업해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업체로 성장시켰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은 1998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로, 지금까지 전세계 누적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2003년에 출시된 ‘리니지2’를 통해 3D 입체 영상 게임 시대를 열어, 누적 매출액이 6천억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지난 11월에는 ‘아이온’을 처음 선보였는데, 또 한 번의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어 벌써부터 ‘역시, 김택진’이라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김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도 ‘여성계의 차세대 인물’로 꼽혀 눈길을 끈다.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게임계의 아이디어뱅크’로 불리는 차세대 인물이다. 넥슨은 현재 지주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대표의 넥슨홀딩스가 지주회사이며, 그 아래에 일본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넥슨재팬이 있다. 넥슨은 넥슨재팬의 자회사이다. 김대표는 총 자산이 3천4백11억원으로 우리나라에서 50번째 부자이기도 하다. 지난 1994년까지만 해도 텍스트 기반의 머드(MUD) 게임이 전부였다. 그런데 김대표가 세계 최초로 그래픽 기반의 머그(MUG)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선보이며, 세계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카트라이더’를 선보여, 국민 게임으로 불리며 큰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개발자뿐 아니라 포털업체·교수도 나서 게임 영역 확장

권준모 넥슨 대표는 인생 자체가 변신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에서 심리학과 교수(1995~2005년)로 교편을 잡으면서도, 모바일 게임업체인 엔텔리전트 대표(2001~05년)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넥슨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6년부터 강신철씨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게임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대한민국게임대상 심사위원장으로 있었으며, 2007년부터는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검색 포털업체인 NHN의 최휘영 사장도 무시하지 못할 차세대 주자이다. NHN은 우리나라 인터넷업체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NHN의 사업 가운데서도 게임 사업(한게임)이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와 YTN 기자 출신인 그는 지난 2005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끊임없는 퍼블리싱과 게임 개발에 주력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게임계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는 게임 마니아인 아들과 딸, 쇼핑몰을 애용하는 아내가 최고의 조언자라고 말한다.

김경식 호서대 게임공학과 교수 역시 게임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김교수는 지난 199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호서대에 게임공학과를 만들었으며,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70여 개 대학에 게임학과가 설치될 수 있도록 ‘게임 아카데미 전도사’ 역할을 했다. 게임계에서는 “2007년까지 한국게임학회장을 맡았던 김교수가 게임학계 발전과 안정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크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엔트리브의 서관희 이사는 지난 2004년 골프를 소재로 한 게임 ‘팡야’의 개발을 총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틈새시장을 공략해 게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주인공이다. 팡야는 이전까지 중세풍인 ‘정통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일색이던 게임시장에 캐주얼 게임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게임은 안 된다’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깬 것이다. 온라인 골프 게임의 첫 흥행 신화를 만든 ‘팡야’는 그동안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왔다. 닌텐도 Wii 전용인 ‘스윙골프 팡야’ 시리즈는 지난 8월 말까지 무려 42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서이사는 팡야 이전에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화이트데이’ ‘강철제국’ ‘악튜러스’ 등의 개발에 직·간접으로 참여해 ‘게임계의 마이더스’로 불리고 있다.

컴투스 박지영 대표, <타임> ‘세계 14대 기술대가’에 선정

컴투스의 박지영 대표는 2007년 말 영국의 모바일 콘텐츠 전문지인 <ME>에서 선정한 ‘세계 톱 경영인 50인’에 선정된 명실상부한 차세대 리더이다. 당시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앤드 루빈 등 세계 콘텐츠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들과 나란히 선정되어 게임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박대표는 모바일 게임의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시장 확대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컴투스는 2000년 세계 처음으로 휴대전화용 자바 게임을 선보였으며, 2001년부터는 해외로 진출해서 40여 개국에 1백20여 종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박대표는 2003년에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 14대 기술대가’에 선정된 바 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리니지’의 개발자인 송재경 XL게임즈 대표도 차세대 인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송대표는 1994년 최초의 상용 머드 게임 ‘쥬라기공원’을, 1996년에는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1998년에는 ‘리니지’를 개발한 게임 개발 1세대이다. 

지난 12월2일 열린 ‘제45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천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은 엠게임의 권이형 대표도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게임업계가 무역수지의 개선에도 일조를 하고 있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에서 ‘보이지 않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2007년 6월부터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수장을 맡고 있는 최규남 원장이다. 그는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공업경영학과를 전공했고, 뉴욕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리고 벤처 투자회사 사장과 보광창업투자 고문 등을 두루 거쳤다. 국제 금융과 다국적 기업 경영의 전문가로, 어찌 보면 게임 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시장의 트렌드와 통계 분석 등을 통해 게임 산업이 발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최원장을 꼽았다.

 


"문화 산업은 창의력에 달렸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인터뷰
 

   
▲ 김택진 ㅣ 엔씨소프트 대표.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이끄는 절대 군주로 평가되며 ‘존경하는 인물’로도 선정되었다.
ⓒ그림 최익견

게임 분야의 ‘차세대 인물’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동시에 지목되었다. 소감이 어떤가?

게임이라는 것이 신(新)성장 동력으로 차세대 산업이다 보니, 게임을 만드는 회사 대표라고 해서 뽑아주신 것 같다.

가장 처음 접했던 게임은 무엇이며,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은 ‘유닉스’나 ‘리눅스’ 같은 단어들이 익숙하지만, 대학 2학년일 때인 1986년 서울대에 유닉스가 처음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유닉스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동아리를 통해 유닉스 오퍼레이션(operation·운영)할 사람을 뽑았고, 내가 지원했다. 그러면서 유닉스 소스를 보고 프로그래밍하고, 그런 와중에 짬짬이 게임도 했다. 그때도 물론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로그(Rogue)와 넷핵(Nethack)이라는 게임이었는데, 넷핵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현대전자에 들어가 소프트웨어연구소에 있을 때도 그 소스를 들고서 게임에 대한 꿈을 계속 이어갔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현황은 어떤가?

우리나라 게임 산업 규모가 7조4천억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적인 변화보다는 게임이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런 면에서 위상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게임업계에서는 경기 침체기를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게임과 같은 문화 산업의 경우에는 창의력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어떻게 글로벌 아이피(Global IP·국제 지적재산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다고 보는가?

함께 모여서 만드는 게임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창의력의 결과물이다. 하늘 아래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정말 창조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후에 정말 끝난 얘기인 듯하다. 그럼에도 ‘아! 정말 창의력 있다’ ‘정말 천재적이다’ ‘이거 새로워!’라는 것들을 우리가 느끼지 않는가. 나는 창의력이란 과거의 위대한 아이디어에 관한 자신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에도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있는데, 자신의 해석 없이 그냥 뜯어다 붙이면 모방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어’라고 자기가 해석한 것을 내놓으면 창조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나의 주관, 나의 해석’ 등을 질문할 수 있어야 되고, 그래야만 자신의 해석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한 해석 속에서 창조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조]공무원 범죄 칼같이 걷어내는 서초동 ‘포청천’들
김경수 차장검사·정진경·김상준 부장판사 1~3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지영 young@sisapress.com

   


법조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로 김경수 수원지방검찰청 2차장 검사가 1위로 선정되었다. 김차장 검사는 연세대 법대를 나와 지난 1985년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춘천지검을 시작으로 부산·서울·대전 등지를 돌았고, 2003년에는 법무부 검찰3과장, 2007년에는 대검 홍보기획관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탈북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 결과를 발표하면서 언론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검찰 내에서는 공무원 범죄 수사에 일가견이 있으며,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차세대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저를 그렇게까지 인정해주신 것에 대해 고맙기는 한데, 저희들 공무원은 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겸손해했다.

법원에서는 법관들의 모임인 ‘노동법 커뮤니티’의 간사를 맡고 있는 정진경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와 행정고시(1982년)·사법시험(1983년)을 잇따라 패스했던 김상준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차세대 인물로 꼽혔으며, 배성중 대구지법 판사도 10위권 안에 포함되었다.

검찰에서는 봉욱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부장검사를 비롯해 최진규 서울고검 검사 등이 기대주로 올랐다.

변호사로는 김원일·장덕순·전오영·조봉 씨 등이 전도 유망한 법조인으로 꼽혔다. 특히 법무법인 화우 소속인 장덕순·김원일 변호사는 관악고와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최근 특허 사건에서 잇따라 승소해 두각을 나타냈다.

 

[금융]금융 위기 한파에 가치 투자 전도사 ‘소신 전망’ 눈에 띄네
이채원 부사장·이남우 대표, 상위권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이석 ls@sisapress.com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서 국내 금융 산업의 어려움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은행권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저축은행, 여신 전문 업체 등 제2 금융권으로 급속히 퍼져 그 끝이 어디인지 종잡을 수조차 없다. 주식이나 펀드는 연이은 악재로 인해 불과 1년여 만에 반 토막이 나다시피 했다. 내년 2월 금융 선진화를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이 도입되지만, 금융 환경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서일까. 금융 부문 차세대 리더를 묻는 질문에 절반 이상(56%)이 ‘모름’이라고 답했다. ‘없다’라는 응답도 34%에 달했다. 금융 부분 전문가 10명 중 4명이 부정적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벨류자산운용 부사장과 이남우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리서치 부문 대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이 그나마 눈에 뛰는 인물로 거론되었을 뿐이다. 이채원 부사장의 경우 최근 ‘가치 투자’를 표방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형주보다는 저평가된 중소형주를 집중 공략함으로써 ‘가치 투자’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는 최근 보도 자료를 통해 “펀드 수익률이 좋지 못한 것에 전적으로 통감한다.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대형주나 거래량이 높은 종목을 중시하는 성향이 커진 탓이다. 그러나 이부사장은 오히려 자신의 허점을 인정하고 투자자에게 공개 사과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남우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리서치 부문 대표도 최근 활발한 대회 활동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각종 언론사에 기고하는 칼럼은 상당한 가독률을 보여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자신의 허점 인정해 좋은 평가받기도

평소 조용한 성품 때문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도 향후 금융계의 차세대 리더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국내 증권사 사상 최연소 CEO로 최근 한국투신운용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그는 최근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몰락했다고 해서 자본시장의 역할이 달라진 것은 없다. 금융시장이 위기라지만 한국 자본시장이 취약한 만큼 IB를 키운다는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정확히 50세인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겸 부사장도 증권가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40대가 정년일 만큼 나이를 먹으면 버티기 어려운 애널리스트 세계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소신 있는 전망으로 ‘족집게’라는 별명과 함께 팬클럽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 역시 향후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부사장은 지난 9일 국회 현장경제연구회가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내년 하반기에는 서서히 소비가 증가하고 아주 어려운 경기에서 탈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듯 금융가에서도 최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등을 잇는 ‘스타’들의 탄생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차세로 리더’로 꼽힌 4명의 지목률은 10%로, 전체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금융 위기 이후 금융 부문의 세대교체와 함께 이미지 쇄신 작업이 한층 빨라질 것을 예고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환경]‘녹색 한국’ 따로 또 같이 건설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 ‘대약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이은지 lej81@sisapress.com

   

환경 분야에서는 시민단체 환경 활동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총장(45)은 공금 횡령 사건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상근직 자리에서 물러났다. 25년간 환경 이슈를 따라 백방으로 뛰어온 그는 앞으로 환경 서적 번역을 비롯해 연구 활동에 주력할 뜻을 밝히고 있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44)은 18년간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며 신자유주의 개발 방식에 맞서 녹색 경제를 외쳐왔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사무국장을 지낸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42)은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환경 연구 기관의 연구원들도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비한 정책과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정계·관계·시민단체 등에 젊은 전문가들 포진해

한화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본부장(49)을 비롯해 박용기 한국화학연구소 책임연구원(43), 박정훈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온실가스연구단 선임연구원(39)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상훈 가톨릭대 교수(43)는 지난 2005년 영국의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공직자로는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경남을 환경 수도로 선언한 김태호 경남도지사(44)와 폐기물 에너지 자원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연만 환경부 자원순환국 국장(49)이 순위에 올랐다. 조승수 진보신당 녹색사업특별위윈회 위원장은 녹색 정치의 바람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농업 분야의 차세대 리더는 10명 가운데 6명이 농장 대표이다. 이들은 전문가들로부터 동일한 선택을 받았다. 농민운동가는 2명에 불과하다. 농민들이 조직화되어 있는 단체가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하나뿐인 데다 농민운동이 예전만큼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장 대표 6인은 농사만 짓는 농사꾼이 아니다. 농촌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부농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강용 학사농장 대표는 지난 10월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 부문에서 수상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2년 세운 학사농장을 친환경농산물 전문 생산·유통업체로 키운 덕에 연간 매출액이 80억원대에 이른다.

친환경·유기농 등으로 21세기형 농업 일궈

주형로 환경농업마을 대표는 오리농법을 기반으로 생태환경 농업마을을 조성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김병귀 천지원 농장 대표 역시 유기농산물 재배로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종노 원평허브농원 대표는 40여 종에 이르는 허브 가공품으로 연간 7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민수 청매실 대표는 3대째 매실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장윤수씨는 청고춧가루 개발로 특허를 받았다.

문경식 전농 전 의장은 4년간 의장직을 맡았으며, 강병기 전농 전 사무총장은 농민의 정치 세력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한 벤처농업 전문가 민승규 대통령실 농수산비서관과 식물 전문가인 윤대진 경상대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농업]땀과 두뇌로 꿈을 수확하는 신바람 농군들
첨단 농법 개척한 농장 대표 6인 10위권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이은지 lej81@sisapress.com

   

농업 분야의 차세대 리더는 10명 가운데 6명이 농장 대표이다. 이들은 전문가들로부터 동일한 선택을 받았다. 농민운동가는 2명에 불과하다. 농민들이 조직화되어 있는 단체가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하나뿐인 데다 농민운동이 예전만큼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장 대표 6인은 농사만 짓는 농사꾼이 아니다. 농촌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부농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강용 학사농장 대표는 지난 10월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 부문에서 수상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2년 세운 학사농장을 친환경농산물 전문 생산·유통업체로 키운 덕에 연간 매출액이 80억원대에 이른다.

친환경·유기농 등으로 21세기형 농업 일궈

주형로 환경농업마을 대표는 오리농법을 기반으로 생태환경 농업마을을 조성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김병귀 천지원 농장 대표 역시 유기농산물 재배로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종노 원평허브농원 대표는 40여 종에 이르는 허브 가공품으로 연간 7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민수 청매실 대표는 3대째 매실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장윤수씨는 청고춧가루 개발로 특허를 받았다.

문경식 전농 전 의장은 4년간 의장직을 맡았으며, 강병기 전농 전 사무총장은 농민의 정치 세력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한 벤처농업 전문가 민승규 대통령실 농수산비서관과 식물 전문가인 윤대진 경상대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음악]음악을 넘어 '세상'을 변주하는 준비된 거장들
장한나 '으뜸' …연주자가 다수 포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강은경 (음악 평론가)

   
▲ 장한나 ㅣ 지휘자로 변신하는 실험 과정에서 잡음이 나왔지만 가을에 발표한 비발디 앨범으로 '역시 장한나'라는 평을 들었다.
ⓒ그림 최익견

국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을 움직이는 차세대 리더’ 선정 결과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전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우선,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0~40대 음악인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단순히 뛰어난 연주력이나 음악성을 가진 연주자 내지 음악 전문가로서의 모습에서 나아가, 동료 예술가나 일반 대중을 선도하는 ‘지도자 그룹’으로서 브랜드를 구축한 음악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징으로 보인다. 신영옥·조수미와 같은 세계적 디바들이 10위권 밖에 밀려나 있는 반면, 장윤성·성기선·변욱 등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지휘자들이 상당수 순위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차세대 리더에게 단순한 재현 시장의 연주자로서의 역할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위를 차지한 장한나는 1994년 12세의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이후, 국제적 연주자로서 차근차근 경력 관리를 받아온 경우이다. 장한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천재 소녀 첼리스트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철학도답게 첼리스트로서의 외연을 확장해가는 지적 리더로서 강하게 인식되는 듯하다. 최근 어린이 음악교육이나 지휘 영역에까지 도전하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위를 차지한 김대진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 이외에도, 뛰어난 음악 영재들을 배출해온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이자 청소년음악회 등 열린 음악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을 이끄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1인 다역의 활발한 활동으로 예술가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위한 의욕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적 카리스마 구현한 장영주는 3위

순수하게 연주자로서 천착하는 모습에서 지도자적 카리스마를 구현한 경우는 3위를 차지한 장영주일 것이다. 지난 세기 정경화가 구축한 국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상을 넘겨받은 듯, 9세에 데뷔한 이후로 세계적인 연주 단체와 연주회장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연주 경력을 자랑해온 장영주는 모든 천재들이 겪는 딜레마가 비껴간 것처럼 기량을 앞세운 어린 천재에서 존경받는 음악 거장으로의 성장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행해온 드문 경우이다. 2006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차세대 여성 지도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4위로 선정된 강충모는 바흐 시리즈 등 비중 있는 레퍼토리를 꾸준하게 펼쳐온 진지한 연주 행보로 인해 구도자적 음악인으로 각인된 경우이다. 피아니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서, 음악기획자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존경받으며 소리 없이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7위를 차지한 작곡가 진은숙은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과 쇤베르크상(2005년) 수상자이다. 일찍이 거장 사이먼 래틀이 진은숙을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는 점은 그녀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작품 위촉 및 철저한 자기 관리에 따라 정선된 작품 활동, 센세이셔널한 세계 초연 등으로 한국의 국보급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거주지인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상주 작곡가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르스 노바’ 시리즈 등의 기획을 통해 현대음악의 전도사로서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 앞장서는 한편 국내에서 받은 상금 등을 후배 작곡가 육성에 사용하도록 하는 등 훈훈한 미담을 낳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들이 상위권 휩쓴 까닭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오로지 연주자로서의 길을 더 잘 걷기 위해,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소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특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건반 터치로 선배 거장 세대와 손열음·임동혁·김선욱 같은 신세대 연주자들 사이에서 항상 최고의 연주자 그룹의 한 명으로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면은 오로지 피아니스트로서 일생을 천착해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오른 선배 거장 백건우의 경우를 떠올리게도 한다.
10위권 안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음악인들이 피아니스트라는 점은 현악과 성악에 이어서 21세기에 들어 한국 음악계 전반에 확고히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임동혁·임동민 형제와 김선욱 등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스타덤에 오른 20대 남성 피아니스트들이 두드러지는데, 10대에 세계 권위의 리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해외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국제 무대로 진출한 김선욱은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공부한 음악인이라는 점 때문에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약관의 청년 김선욱의 장래 희망이 세계적 악단의 지휘자라는 점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한편, 선배 세대로도 분류될 만한 성악가 리더 그룹인 소프라노 조수미·신영옥 이외에 바그너 오페라의 세계적 권위자인 베이스 연광철(21위)과 미국과 유럽 최고의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테너 김우경(13위)은 성악계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꼽히고 있다.

김동규·유진박·이루마·오정해 등 미디어를 통해 대중 친화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음악인들 가운데, 최근의 사례로 흥미로운 것은 26위를 차지한 조윤범의 경우이다. 그는 콰르텟 X의 리더로서, 클래식의 경계에 서 있는 일련의 파격적인 시도들로 일찌감치 대중에게 신고식을 마친 뒤, 소극장과 케이블 TV를 활용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연한 클래식 강의 <파워클래식>을 펼쳐 스토리텔러로서의 브랜딩에 성공한 경우이다. 표방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김대진·강충모 교수가 각각 ‘스쿨 클래식’이나 ‘인투 더 클래식’ 같은 해설이 있는 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음악 멘토어로서 입지를 굳힌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스포츠]열광의 주역 올림픽 영웅들 '영향력 메달'도 석권
문대성 IOC 선수위원 '금', 박태환 '은'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문대성 ㅣ 동아대 태권도학과 교수.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그림 최익견

‘차세대 리더’라는 단어가 스포츠 부문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화제거리가 되지 못한다. 스포츠 스타들은 보통 20대를 기점으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들의 영향력은 선수로 활동하는 시기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진작부터 젊은 인물들의 영향력이 컸다. 최근에는 그 연령층도 더욱 낮아졌다. 20~30대가 잡았던 주도권을 10대가 가져오는 모양새이다. 김연아·박태환 선수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스포츠 부문에서 박태환 선수가 2위, 김연아 선수가 4위를 차지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내가 기폭제가 되어 운동을 그만둔 후에도 후배들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이 도전 정신 앞에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문대성 위원(동아대 교수)은 지난 8월 아시아인 최초로 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첫 도전만에 최다 득표로 IOC 선수위원 당선

문위원은 IOC 선수위원 선거에서 29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총 투표 수 7천2백16표 중 3천2백20표를 획득하며 최다 득표자로 당선되었다.

이번 스포츠 부문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문위원이 가장 기대받는 인물로 첫손에 뽑혔다는 점이었다. 보통 스포츠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꼽혔던 선수들은 전성기와 맞물리면서 미디어 노출이 많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년 전의 박찬호(LA다저스)가 그랬고,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그랬다. 최근에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대였다.

반면 문위원은 돌려차기로 상대를 KO시키면서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에 올랐지만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인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IOC 선수위원’이라는 직함에서 ‘리더’를 끄집어냈다. 이제는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그 외적인 요소 역시 스포츠인을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IOC 선수위원은 임기가 8년으로 정해진 명예직이지만 종신직인 IOC 위원과 동일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올림픽 개최지 투표권도 행사할 수 있다. 과거 쇼트트랙의 전이경 선수가 도전했던 자리이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아픔이 있다. 반면, 문위원은 첫 시도만에 성공했다.

문위원은 현재 동아대학교 태권도학과에서 ‘태권도 경기론’을 가르친다. 지금의 문대성을 만든 태권도이다. 내년 9월 코펜하겐에서는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와 종목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린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 여부가 달린 회의이기도 하다. 문위원의 당선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교수 출신 안민석 의원·이용수 해설가도 상위권 진입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도 재미있는 결과이다. 안의원은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 출신으로 체육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뒤 당시 열린우리당 체육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며 제도권 내 체육 발전에 힘써왔다. 최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포럼의 대표를 맡아 학교 과목에서 사라져가는 체육을 살리고자 ‘학교체육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축구 해설위원인 이용수 교수(세종대)가 순위권에 이름이 오른 것도 경기력 외적인 측면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축구선수로 이교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프로축구가 태동할 때 럭키금성의 창단 멤버였고 한때는 할렐루야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축구선수 이용수’보다는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해설가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축구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 교수가 되었고, 최근에는 ‘변화’를 내걸고 대학축구연맹 회장직에 도전하기도 했다.

리더보드의 위쪽에는 현역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의 큰 획을 그은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 주말마다 양말이 닳도록 영국의 축구장을 누비고 있는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선수는 문대성 위원의 뒤를 이었다. 바로 아래에는 피겨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연아 선수가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은 ‘김연아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고, 피겨스케이팅이 이처럼 스포츠 뉴스를 장식했던 적도 없었다. 한마디로 ‘피겨 붐’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이 확정될 때까지 1차 시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던 역도의 장미란 선수. 장선수 역시 스포츠 부문에서 주목받을 차세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노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10대, 20대의 아성 속에서 박찬호 선수를 꼽은 전문가도 많았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라는 상징성, 굵직한 국제 대회에 자신의 일정도 포기하며 참가해온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발 투수로 뛸 곳을 찾고 있는 그에게 최근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이 아닌 올드 멤버 중에서는 홍명보 코치가 눈에 띈다. 그만큼 한국 축구에서 그가 가졌던 위상이 얼마나 컸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래는 축구 행정가를 꿈꿨지만 요즘은 일본 J리그의 한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등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다. 차기 한국 축구의 지도자군을 이룰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최의창 교수(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언급한 전문가도 있었다. 이번 조사의 특징은 선수 외에도 스포츠의 범주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조용철 교수(용인대 유도학과)와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리며 유도 그랜드슬램을 이루었던 같은 과 전기영 교수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신지애·최경주·박세리 선수 등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골프 스타들의 이름은 이번 조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교육]교육 행정가 NIE 전도사 선두에 서다
조영달·정문성·홍후조 교수, 상위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교육 부문에서는 사범대 교수들이 순위를 채웠다. 반면 ‘없다’라고 대답한 전문가도 50명 중 22명이나 된다. 언급된 인물들을 살펴보자. 우선 조영달 교수(서울대)가 눈에 띈다. 조교수는 서울대 사범대 교수 시절인 지난 2001년, 41세의 젊은 나이로 DJ 정부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적이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서울대 사범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지난 10월에는 2년 임기의 세계사범대학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응답한 전문가 중에는 정문성 교수(경인교대)를 추천한 사람도 있었다. 정교수는 특히 신문 읽기를 통한 교육에 힘써왔다. 한국신문협회 산하 한국NIE(신문활용교육)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NIE 활용법을 전파하고 있다.

홍후조 교수(고려대)는 최근 각종 교육 현안 관련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여하면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교육 부문 자문위원으로 조언했었다.

교육학과 관련이 없는 인물도 더러 보였다. 요즘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양혁승 교수(연세대)는 경실련 정책위원장으로 낯익은 인물이고, 유근택 교수(성신여대)는 한국화를 이끌어갈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고 있다.

[연예]한국을 적시고 세계를 적시고…큰 ‘비’가 내린다
연기자로서도 입지 굳힌 정지훈 1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비 ㅣ 2002년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 <비>의 타이틀 곡 <나쁜 남자>로 데뷔한 가수.
ⓒ그림 최익견

‘월드 스타’라는 호칭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국내스타가 또 있을까. 이른바 ‘한류 스타’들은 많지만 월드스타라고 불릴 만한 연예인은 사실 드물다. ‘한류 스타’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아시아 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대부분 국내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26)는 아시아 무대를 뛰어넘어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 미국의 빌보드와 할리우드 진출을 구체화하고 있다.

비에게는 3개의 이름이 있다. 먼저 가수로서 처음 자신을 대중에게 알린 비라는 이름, 다음은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자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굴해낸 정지훈이라는 이름, 마지막으로 세계 무대로 도약하기 위한 ‘Rain’이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가수 비는 2002년 자신의 이름을 건 1집 앨범 <비>의 타이틀곡 <나쁜 남자>로 데뷔했다. 당시 GOD를 만들어냈던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난 그는 ‘리틀 박진영’으로 불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가수로서 확고한 위치를 다진 것은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에서부터이다. 그는 고난이도의 안무와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인기를 얻었다. 댄스 가수로서 화려한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를 무난하게 뽑아내는 모습이 그를 뮤지션으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이후 3집 <It’s Raining>, 4집<Rain’s World>를 거쳐 최근에 발매한 <Rainism>까지 계속 성공시키며 가수로서 슈퍼스타의 위치에 올랐다.

연기자 정지훈은 2003년 KBS 미니시리즈 <상두야 학교 가자>로 그 가능성을 알렸다. 가수 출신 연기자의 어색하고 어눌한 연기는 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후 송혜교와 함께한 <풀하우스>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표민수 감독의 연출도 훌륭했지만 정지훈과 송혜교의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 수출되며 인기를 끈 <풀하우스>로 인해 정지훈은 한류 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연기자 정지훈과 가수 비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아시아 지역에 ‘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한국인 최초 단독 콘서트

비는 Rain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월드 스타로 도약할 수 있었다. Rain은 가수로서 뉴욕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한국인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가졌고, 지난 2006년에는 미국 <타임>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다. 베이징올림픽 폐막식 무대에 한국의 대표 가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배우로서는 <매트릭스>를 만든 세계적인 명감독 워쇼스키 형제의 대형 블록버스터 <스피드 레이서>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기도 했으며, 그 인연으로 2009년에는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브이 포 벤데타>를 만들었던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의 차기작 <닌자 어쌔신>을 통해 할리우드 주연 배우로서 신고를 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인이 단독 주연을 맡은 것은 Rain이 처음이다. 비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성실성과 노력이다. 그는 슈퍼스타가 된 지금도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닌자 어쌔신>의 스틸샷이 공개되었을 때 체지방률 제로의 군살 없이 근육으로만 꽉 찬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런 비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지금의 그를 만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스승 박진영과의 결별 때문이다. 그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배신’이라는 단어가 뒤따랐다. 거기에 월드투어가 부실한 준비로 파행 운영되면서 앞만 보며 달리던 비의 기세가 꺾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월 5집 <Rainism>을 들고 국내에 복귀하며 자신의 스타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첫 타이틀곡 <Rainism>은 나오자마자 각종 온·오프 라인 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비가 출연한 <패밀리가 떴다> <상상플러스> <무릎 팍 도사> 등 방송 예능 프로그램은 자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특히 <무릎 팍 도사>에서 밝힌, 치료비가 없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연은 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비는 지금 진정한 월드 스타로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다. 내년 초에 개봉할 <닌자 어쌔신>이 성공한다면 그는 지금과는 또 다른 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그이다.

비를 만들어낸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36) 역시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이 밖에도 예능 전성 시대를 이끌고 있는 MC 유재석(36)과 강호동(38), <태왕사신기>로 위상을 확인한 배용준(36), <런드리 워리어>로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한 장동건(36), 기부 활동으로 이미지가 더욱 좋아진 국민 여동생 문근영(21)과 가수 김장훈(41), 신세대의 아이콘 빅뱅, 돌아온 황제 서태지(36) 등이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연극]무대는 작아도 우리의 꿈은‘광장’으로 간다
연출·행정 ‘양수겸장’ 최용훈 극장장, 첫 손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연극 분야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연극계는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분야여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을 찾아내기 어렵고 전문가들마다 꼽는 인물이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연극인은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예술극장 극장장 최용훈씨였다. 최씨는 보기 드물게 연출과 행정 업무를 동시에 맡으며 연극계에서 활약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연극인들이 귀찮아하는 행정 업무를 맡으니까 뽑았나 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연출가로서는 극단 ‘작은 신화’의 대표로 있으면서 20여 년간 실험적인 소극장 공연을 무대에 많이 올렸다. 행정가로서는 1997년 세계연극제 사무국장부터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맡아왔다.

다음으로 많은 선택을 받은 연극인은 세종대 김태훈 교수이다. 그는 배우로서 유명했고 아직도 배우로서 활발하게 무대에 선다. 그는 지난 11월에도 과학자의 윤리를 묻는 연극 <코펜하겐>에 출연해 과학자 하이젠베르크 역을 연기했다. ‘러시아 유학 1세대’인 그는 지난 9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러 교류축제’에서 개막식 총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 밖에도 연극배우 강신일씨, 극작가 김명화·선욱현 씨, 서울연극협회장 박명성씨, 한국연출가협회장 손정우씨, 공연 제작자 설도윤씨, 연출가 장진·천동희 씨, 대진대 윤우영 교수 등을 연극계의 차세대 리더로 꼽았다.

예상 못했던 참신한 인물 중에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고 연극 연출도 하지만, <루크레티아의 능욕>과 같이 새로운 작품으로 프린지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는 김민정씨가 있었다. 하지만 연극계는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이 더 많다. 현장의 연극인들은 순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연출가 박근형·조광화·이성렬 씨, 극작가 장성희씨, 배우 서미숙·서현철 씨 등 앞으로 영향력이 커질 50세 미만의 ‘제3 세대’ 연극인들이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 생겨나는 젊은 극단의 인물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연극인들은 엄격한 도제 시스템이 있는 극단에 들어가는 대신 또래 연극인들끼리 뭉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뛰다’ ‘토마토’ 같은 극단을 직접 만들어 활동한다.

 

[건축]인간 중심의 따뜻한 건축으로 한국을 리디자인하다
'쌈지길'로 새바람 일으킨 최문규 교수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김진령 jy@sisapress.com

   


건축계에서 50세 이하의 차세대 리더로 지목된 이는 모두 8명이다. 최문규 교수(연세대 건축학과·47),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42),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45), 김영석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41), 백민석 건축사 사무소W 대표(41), 서혜림 건축사 사무소 힘마 대표(47), 유석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39), 정영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사장(46) 등이 그들이다.

최교수는 파주 헤이리의 ‘딸기가좋아’, 인사동 쌈지길 설계로 성가를 올렸고, 조대표 역시 ‘딸기가좋아’와 강남의 명물로 떠오른 ‘부띠크 모나코’ 건물로 널리 알려졌다. 여성 건축인 가운데 홍일점으로 뽑힌 서대표는 뉴욕에 사무실을 내고 지금도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유석연 교수는 최근 학교 일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김영석 교수는 설계가 아닌 건설 관리 쪽에서 유일하게 뽑혔다. 그는 건설자동화 같은 첨단 융·복합 기술과 관련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개념 선보여

가장 많이 지목을 받은 최문규 교수는 쌈지길이나 ‘딸기가좋아’ 등의 작품에서 위압적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접근하는 건축물의 개념을 살려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체계나 관습에 대해 되묻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건축관을 설명했다.

그는 현재 한국 건축계의 문제에 대해서 초고층이나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지어지고 있는 스펙터클한 건물이 대도시마다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상업적 이벤트만 중시한 결과라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디자인이 돈을 번다’는 맹신을 앞세워 정치적 슬로건으로 건축을 남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일반인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축물인 아파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최교수는 “집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룰이 감춰져 있다. 안방은 남향이고 반드시 가장 커야 하는 등 지배 계급 의식이나 통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부엌을 없앤 아파트나 방 구분이 없는 아파트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며 자유로운 사고를 강조했다.

 

[관광]‘관광 한국’ 밑거름 상아탑에서 차곡차곡
해당 분야 대학 교수들 강세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관광 분야에서는 대학 교수들이 강세를 보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인물 8명 중 7명이 학계에서 나왔다. 호텔·관광 분야 전문가인 조민호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45)가 1위로 꼽혔다. 조교수는 한양대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호텔·외식 경영학 석사, 버지니아 주립대에서 호텔·관광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문화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체인 호텔 브랜드 ‘베니키아’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조민호 체인 호텔 브랜드 ‘베니키아’ 대표 1위

2위는 한범수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49)와 박중환 동명대 관광경영학과 교수(48)이다. 차기 한국관광학회 회장으로 내정된 한범수 경기대 교수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참여해 국제자유도시 계획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런 공로로 지난 2006년에 제주도로부터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장병권 호원대 관광개발학과 교수(46), 송재호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48),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43), 유기준 상지대 관광학과 교수(49), 이희도 경북관광산업본부 관광마케팅사업단 단장(49)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장병권 호원대 교수는 지난 12월10일에 출범한 한나라당 새만금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새만금특별위원회는 앞으로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 새만금 사업 예산 배정, 새만금 내부 개발 계획 등 정책 반영 업무를 추진한다. 송재호 제주대 교수는 지난 2006년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을 지냈다. 송교수는 문화관광 분야에 전문 지식이 풍부하다.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문화관광교육분과 정책기획위원, 정부혁신분권위원회 제주특위 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관광 전문가로 알려진 이희도 경북도 관광마케팅사업 단장은 지난 8월 민간 개방형 직위 공개 모집에서 발탁되어 공직에 들어갔다. 이단장은 경동정보대학 겸임교수와 대구시관광협회장, 한국관광협회 중앙회 부회장 등을 지내 관광마케팅 분야에서의 다양한 실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불교]들려주신 음악 불러주신 동요에 ‘해탈’이 절로
불교방송의 진행자 정목 스님 인기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비구니 MC’로 유명한 정목 스님(48)이 ‘가장 영향력 있는 50대 미만의 차세대 인물’ 불교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정목 스님은 1976년 열여섯 살에 출가했다. 그 뒤 동국대 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것은 지난 1990년 불교방송(BBS)의 개국과 함께 방송 진행을 맡으면서이다. 정감어린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2006년 1월에는 스님이 진행하는 불교방송 인기 프로그램 <마음으로 듣는 음악>(월~금 저녁 7시)에서 소개했던 글들을 모아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

최근에는 어른들을 위한 동요집 <따뜻한 그리움>을 냈다. 중년 이상의 세대들에게 익숙한 옛 동요를 스님이 직접 불러 앨범으로 낸 것이다. 정목 스님은 1995년 수행 정진을 위해 약 10년간 방송을 떠났다가 2004년 12월에 복귀했다. 그동안 한국방송대상 사회상,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진행자상 등을 받기도 했다.
정목 스님은 평소에도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인 월호 스님, 중앙대 초빙교수인 마가 스님,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성원사 주지 주경 스님,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 사찰음식 전문가 미래불교연구원장 효원 스님, 우제선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황순일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월호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쌍계사 말사인 국사암 주지이며,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이다. <영화로 떠나는 불교여행>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불광출판사) 등 불교를 쉽게 풀이한 책 등을 펴냈다. 지난해부터 불교방송에서 참선 수행 프로그램 <참선 백문백답>과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불교연구원장 효원 스님은 사찰음식 전문가로 현대 채식세계에서 사찰음식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우제선 교수와 인도철학과 황순열 교수는 불교학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폭넓은 연구성과를 인정받고 있으며 불교신도 모임인 불이화가 제정한 불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복지]걷히지 않는‘리틀 노무현’개혁의 그림자
1위 유시민 전 장관, 영향력 여전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유시민 ㅣ 노무현 정부 복지부장관 시절 개혁적 정책 표방으로 일약 복지 분야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유시민 전 장관은 현재 정치 활동을 잠시 접은 채 강의와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림 최익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내 복지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선정된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유 전 장관만큼 자신에 대한 ‘지지 세력’과 ‘비판 세력’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정치인도 드물지만, 딱히 복지 분야를 대표할 만한 스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김근태 전 장관이 복지부장관을 더 오래 역임했음에도 유 전 장관이 상징적으로 우선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그의 복지 정책에서 개혁 성향이 강했고, 또 그에 따른 일부 관련 단체들의 반발 등 논란도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유 전 장관이 차세대 리더를 묻는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정치 분야 2위에 오른 데 이어, 복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향후 그의 행보에 제법 탄탄한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유 전 장관은 지난 4월 총선 낙선 이후 경기도 파주와 대구를 오가며 강의와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초빙교수 신분으로 경북대에서 매주 한 차례씩 강의를 하고 있고, 각 학교와 단체에서 특강 요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분간 정치 활동을 재개할 의사도 없고, 또 언론에 나서고 싶지 않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강의 내용은 주로 국제 정세와 대구 지역 현안에 관한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 특히 복지 정책에 대한 언급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규 서울복지재단 대표와 최균 한림대 교수는 현 정부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복지 분야의 차세대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대표는 스스로가 몸이 다소 불편한 장애인이다. 서울대와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복지행정과 복지정책을 전공했다.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실 행정관,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최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울시장 시절부터 복지 분야에 대해서 자주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현 정부 출범 때 보건복지부 차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현 정부에서 활약 기대되는 이성규 대표·최균 교수도 순위에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성공회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대 신학대학원의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 실행위원이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정 추진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창엽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그곳 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4월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원장 시절 실제 상당한 양의 자료를 직접 챙겨 직원들을 상당히 긴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미국의 의료보장> 등 의료복지 분야에 관해 많은 책을 저술했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는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가톨릭대 교수를 거쳐 현재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평소 대기업들의 사회 공헌에 대한 노력을 강조하며, 여러 가지 활발한 포럼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는 정치사회학자이다. 당초 정치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다가 2000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연구위원으로 발탁되었다. <균형적 복지국가>, <근로빈곤층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김원종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정책관은 1988년 총무처 행정사무관으로 공무원의 길에 들어선 이후 198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보건복지부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유시민 장관 밑에서 사회서비스 혁신사업단장을 맡기도 했다. 김정책관은 지난 6월 “올해 사회서비스 사업에 1조4백10억원을 투입해 취약계층 2백30만명에게 혜택을 주고 16만7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라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사회서비스 사업에 대한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과 방송인 김미화씨가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송의원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소속해 이명박 정부 복지 정책의 후퇴성을 따끔하게 질책하는 등의 질의를 많이 펼쳤다. 개그우먼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김미화씨는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매년 1위를 하고 있는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로부터 얼마 전 “따뜻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2005년 늦깎이로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과학기술]과학 한국 미래 짊어진 '젊은 그대' 노벨상이 기다린다
10위권 안, 여성 과학도들이 선전했다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감명국 kham@sisapress.com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차세대 리더 10위’ 안을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등 젊은 과학도들이 대부분 채웠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김빛내리 교수는 2006년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과 2007년 제7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에는 ‘여성 과학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2008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유전자 제어에 관여하는 새로운 종류의 RNA 분자가 형성되는 여러 중요한 단계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에서 RNA생물학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특히 중성미자와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김수봉 교수는 국내 최초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에 가장 근접한 석학으로 꼽힌다. 최희철(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교수와 안동준(고려대 화학생명공학과)·천진우(연세대 화학과)·최인성(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교수 등은 나노 기술 개발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발한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다. <과학 콘서트>로 유명한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는 과학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 호에 동승해, 국내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된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도 10인에 꼽혔다. 그녀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2008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7명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벤처업계의 ‘영원한 스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도 이름을 올렸다.

[개신교]‘저 낮은 곳을 향하여’날마다 기도하며 사는 목회자들
1위에 김학중 꿈의 교회 목사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감명국 kham@sisapress.com

   


개신교 분야의 차세대 리더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신중했고, 언급된 인사들도 대개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입장이다.  개신교 분야의 전문가들이 ‘차세대 리더’로 가장 주목한 이는 김학중 꿈의교회 목사로 나타났다. 김목사는 얼마 전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한다’ ‘남편의 말 한마디가 아내의 인생을 결정한다’ 등 가정의 행복을 위한 ‘말 한마디’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가정의 소중함과 행복을 설교하는 까닭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더 좋아하는 목사라는 이야기도 있다. ‘가정살리기 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의 모범과 모델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가는 젊은 리더로 꼽히는 이유이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국문인협회에 소속된 시인으로 많은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발한 시민단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목사도 눈에 띈다.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는 신도들의 신임투표를 통해 담임목사의 재신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해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진해 신영통제일교회 목사, 김농주 오산반석교회 목사, 고명진 수원중앙교회 목사,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가 개신교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리더’로 이름을 올렸다.

[만화]따뜻한 시선 탄탄한 스토리로 네티즌을 녹이다
인터넷 만화가 강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력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안성모 asm@sisapress.com

   
▲ 강풀 ㅣ 온라인 만화가 1세대로 ‘칸 없는 만화’의 국내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 작품이 연극·영화·드라마로 재탄생하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림 최익견

만화가 강풀(34·본명 강도영)의 활약상은 말 그대로 눈부시다.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강풀은 그동안 만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 전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2003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순정만화>는 책으로 출간되더니 2005년 10월 연극 무대에 처음 올라 4년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올해 들어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보> 등 두 편의 연극이 새롭게 무대에 올라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강풀 작품이 인터넷을 빠져나와 스크린에서 재탄생하는 경우는 이제 일반화되었다. 2006년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2008년 차태현·하지원 주연의 <바보>가 이미 관객을 만났고, 유지태·채정안 주연의 <순정만화>가 현재 상영 중에 있다. 그 밖에 <타이밍> <이웃사람>도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고, 5·18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26년>도 제작 직전 단계이다. 안방 극장에도 곧 진출한다. 윤손하 주연 드라마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2009년 3월 전파를 탈 예정이다.

강풀 만화가 이렇게 연극·영화·드라마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맹활약을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탄탄한 스토리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멜로물을 번갈아가며 내놓고 있는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감정은 현대인의 아픔인 ‘소외’와 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사랑’이다. 그래서 강풀 작품은 때로는 쓸쓸하지만 항상 따뜻하다.

스토리의 탄탄함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전체 스토리를 정리하고 나서야 펜을 들기로 유명하다. 지난 12월3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대담 프로그램 <아트샤워>에 출연한 그는 “아내가 재미있다고 할 때까지 스토리를 바꾼다”라고 밝혔다.

원작의 인기를 타고 성공적인 무대를 올리고 있는 연극과 달리 영화로 제작된 두 편의 작품은 흥행에서 실패했다. 등장인물끼리 얽히고설킨 사연을 2시간짜리 카메라에 담기에 버겁기 때문일까. 강풀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봤기 때문에 홍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나리오 작가들은 ‘원작과의 비교’라는 독자의 눈에 부담을 느낀다. 독자가 많다는 것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공간에 ‘제2의 강풀’ 꿈꾸는 후배들 ‘와글와글’

세 번째 영화 <순정만화>는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이전 영화보다 더 애착을 보였다. 강풀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린 영화 리뷰에서 “내 만화의 주인공들이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라며 원작자로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앞선 두 영화에 대해서는 “하나는 너무 달랐었고, 하나는 너무 닮았었다”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온라인 만화가 1세대로서 ‘칸 없는 만화’의 국내 창시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기존 만화가 가졌던 형식의 틀을 벗어난 강풀 작품은 인터넷 만화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 마우스가 상하 공간으로 움직이기 편하다는 점을 착안해 길게 펼쳐지는 만화를 그린 것이 주효했다. 그는 “만화 그리는 것을 배운 적이 없어 칸 만화 연출법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더욱 스토리에 매진하자고 다짐했다”라고 밝혔다.

유명세를 타면서 책임감도 그만큼 커졌다. ‘공짜 만화’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대해 그는 “만화가로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며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라는 환경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만화가들 역시 그러한 추세에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이 소장본을 꼭 사게 만들겠다는 포부도 변함없다.

현재 인터넷 공간에는 제2, 제3의 강풀을 꿈꾸는 후배 만화가와 지망생이 즐비하다. 그는 “만화를 배운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성공했다. 100번의 습작보다는 한 번의 실전을 위해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기를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강풀은 현재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만화계 차세대 리더로는 강풀 이외에도 여럿이 있다. 1969년생 동갑내기인 강도하(본명 강성수)와 윤태호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강도하는 1987년 보물섬 신인만화가상으로 데뷔한 20년 경력의 베테랑 작가이다. 인터넷을 통해 연재된 <위대한 캣츠비>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2005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만화 웹진 대표로도 활약 중이다.

윤태호도 1988년 어린 나이에 만화계에 입문했다.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인 허영만·조운학 문하에서 만화를 배웠다. 1993년 잡지 <점프>에 <비상착륙>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상한 아이들>을 발표한 1999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첫 작품 <누들누드>로 만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온 양영순(37)도 국내 만화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에로물을 코믹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예전에 볼 수 없던 독창성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카메라로 찍은 듯 다양하고 독특하게 구성된 컷 구도를 선보인 작품은 이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2002년 출판만화대상 인기상, 2006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한국 만화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았다.

2004년 현실 세계에 살게 된 어른 공룡 둘리의 이야기를 담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로 화제를 모았던 최규석(31)도 이름을 올렸다. 데뷔 당시부터 덧칠한 밀도 높은 그림과 함께 유머와 위트와 페이소스가 버무려진 독특한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동아 LG 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부문 대상,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만화계 새로운 리더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조회 수 1천만회 기록한 <삼봉이발소>의 하일권도 ‘젊은 피’

1980년대 생인 하일권(27)과 조석(25)은 새롭게 떠오른 신예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이다. 조회 수 1천만회를 기록하며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가 된 <삼봉이발소>의 하일권은 이 작품으로 2008년 한국 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만화계의 젊은 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엽기적인 그림체로 소심한 일상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낸 <마음의 소리>의 조석은 독특한 캐릭터와 그만의 개그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양경일(38)은 신화와 전설을 차용해서 작품의 스토리를 연결해내는 고전 판타지 분야를 새롭게 개척한 작가이다. 1993년 <소마신화전기>로 데뷔한 그는 <신암행어사>를 일본 대형 출판사를 통해 연재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2004년 한·일 양 국가에서 동시에 개봉되기도 했다. 일본 만화와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40대 작가 그룹에서는 원수연(47)과 김진(48)이 후배 작가들을 이끌어갈 리더로서 주목을 받았다. 1987년 <그림자를 등진 오후>로 데뷔한 원수연은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동료 작가인 강도하의 아내이기도 하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원작자인 김진은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명지대 사회교육원 만화창작학과 전임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천주교]신의 사랑 전하려 어제도 오늘도‘귀찮게 하는 신부님’
곽승룡 대전가톨릭대 교수, 저술·목회 ‘활발’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안성모 asm@sisapress.com

   


천주교 분야 차세대 리더로는 곽승룡 대전가톨릭대 교수(48·세례명 비오)가 첫손에 꼽혔다. 1989년 서울가톨릭대를 졸업한 곽교수는 대전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충남 당진 천주교회와 대전 용전동 천주교회에서 2년간 사목을 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신학을 전공해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충남 금산 천주교회에서 주임신부로서 사목을 하면서 1999년 2월부터 대전가톨릭대에서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도 맡고 있다.

저서 활동도 활발하다. 1997년 <아름다움의 사랑>, 1998년 <귀찮게 하는 신부님>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비움과 충만의 그리스도>, 1999년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함께>를 출간했다. 역서로는 1997년 <선교신학>과 1998년 <어제와 오늘 그리고 항상 계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대전교구 김용태 신부(38·세례명 마태오)도 차세대 리더로 이름을 올렸다. 김신부는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5대손으로,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다. 서울가톨릭대와 대전가톨릭대를 졸업하고 2001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도룡동 성당, 신방동 성당, 둔산동 성당 보좌 신부를 거쳐 2006년 대전 반석동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사목하고 있다.

김신부는 현재 대전교구에서 ‘젊은 사제 대표’로 있다. 또, 교구 내 정의평화위원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교회 울타리를 벗어난 여러 사회 문제에 동참하고 있다.

두 신부 이외에도 천주교 내 차세대 리더로 세 명의 신부가 더 거론되었다. 서울대교구 소속인 한 신부는 “아직 차세대 리더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많다”라며 기사화를 정중히 사양했다. 나머지 두 명의 신부도 비슷한 이유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시민운동]'시민 행동' 모아모아 참 세상 만든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합회의 운영위원장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안성모 asm@sisapress.com

   


최근 시민사회 진영은 분주하다. 밖으로 정부 감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며, 안으로 조직 쇄신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으로서 외부 탄압에 맞서고 내부 개혁을 이끌어가고 있는 하승창 위원장(47)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차세대 시민운동가로 꼽혔다. 하위원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차세대 리더로 각광받았다. 2002년 세계경제포럼은 아시아 차세대 리더를 발표하면서 한국측 인사로 12명을 공개했다. 당시 강금실 변호사, 변대규 휴맥스 대표, 이병훈 남양알로에 사장 등 대부분 국내에서 이미 주목받던 사람들 옆에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의 이름이 올랐다.

납세·인권 등 특정 분야 전문화한 시민운동에 주목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하위원장은 1987년에서 1992년 사이 노동운동,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으로 두 차례 투옥되었다. 1992년 경실련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그는 간사, 조직국장,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을 체계적으로 경험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위원장은 기존의 시민단체와 달리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전문화된 시민운동을 펼쳤다.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납세자운동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전국 30개 지역의 40개 전문 분야 단체를 끌어들였다.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실무진을 활용한 것이다. ‘밑빠진 독’ 수여 행사는 혈세가 낭비되는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세금 문제를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부터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아온 그의 삶은 “할 줄 아는 것이 시민운동밖에 없다”라는 말처럼 시민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48)도 차세대 시민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그의 인생 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권 찾기를 위한 지난한 싸움’이었다. 1986년 5월 영등포 한미은행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1988년 6월 동생 박래전 분신 사망 이후 유가족으로 활동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고문 피해자 문국진과 함께하는 모임 총무를 역임했다.

1994년 8월부터 시작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정책기획팀장,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등 굵직한 사안의 책임자로도 역할을 했다.

제주대 법학부 교수로 있는 하승수 변호사(40)와 중앙대 진중권 겸임교수(45)도 차세대 시민운동가로 거론되었다. 1998년부터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활동한 하승수 변호사는 1992년 공인회계사, 1995년 사법시험에 잇따라 합격해 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다. 자원 봉사라도 하겠다며 시민운동에 뛰어든 그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보 공개 소송에 앞장서온 대표적인 변호사로 꼽힌다. 지난 촛불 집회에서 인터넷 생중계 진행으로 스타가 된 진중권 교수는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출판]불황의 비 그치면 더욱 단단해질 젊은 ‘출판장이’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교앙서의 대가'로 꼽혀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조철 2001jch@sisapress.com

   


달리는 자전거를 멈추면 쓰러지는 법. 출판인들은 불황에도 계속 페달을 밟으며 출판에 부여한 의미를 놓지 않는다. 가장 영향력 있는 50세 미만의 차세대 출판인으로 꼽힌 인물들은 인문 서적, 교육, 실용서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 걸쳐 골고루 지목되었다.

인문 서적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가 많은 표를 얻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이는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였다. 김대표는 “현재 창업의 1단계 목표 중 하나가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까지 동시대인이 요구하는 역사, 철학, 자연과학, 예술 등 기초 교양 분야의 교양서 1천 종의 발행이었다. 이제 그 목표 중 절반을 성취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상위 명단에 오른 출판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2004년, 20여 년의 편집자 경험을 담은 <편집자 분투기>를 출간해 출판계들의 관심을 모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2005년 웅진씽크빅 단행본 그룹에 들어가 3년 만에 매출을 3배로 성장시킨 웅진씽크빅 최봉수 대표,  △민음사에 입사해 편집장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오른 장은수 민음사 대표,  △<완자> 시리즈 등으로 내로라하는 참고서 출판 업체들과 어깨를 겨루는 양태회 비유와상징 대표,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사랑받고 2008년 한국출판인회의 출판인 본상을 수상한 이종원 길벗출판사 대표,  △김기중 랜덤하우스 총편집인, △만화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다 2002년 출판사를 차려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을 펴낸 정정란 황매출판사 대표, △웅진윙스 대표를 거쳐온 경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 등이다. 그림책 작가로 알려진 김세실씨도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다.

[의료]‘치료 보다 예방’공공의 정책 새 지평 연다
평등한 의료 설파한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노진섭 no@sisapress.com

   


신영전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차세대 의료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었다. 의료계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신교수는 평등한 의료 제공과 건강권 확립에 노력한 업적으로 의료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교수는 1998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의료 이용의 지역 간 격차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강형평성학회, 국가인권위원회 정신장애인인권위원회, 건강연대, 건강정책포럼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교수는 “국민의 평등한 건강권과 대북 보건의료 지원 방안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는데, 그런 노력들이 남의 눈에는 중요하게 부각된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부 부처 합동 ‘건강 공공 정책’ 나와야 한다”

그는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은 다수 국민의 건강을 위한 ‘공공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사스, 조류독감, 광우병처럼 최근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신종 질병들은 과거보다 복잡해지고, 불확실하고, 거대하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미시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노동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관련 정부 부처가 협력하는 건강 공공 정책(healthy public policy)이 나와야 한다. 현행 건강 의료 정책을 건강 공공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예방의학의 최대 현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신교수는 1990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4년과 1998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2002~04년까지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연구 활동을 했고, 현재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보건행정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의료인으로 이상이 제주대 의대 보건정책·의료관리학과 교수,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용철 전북대의대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한승호 가톨릭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역학·건강증진학과 교수, 홍수종 울산대 의대 소아천식아토피센터장 등이 거론되었다.

 

한 길로 뚜벅뚜벅…작은 언론들의 큰 걸음
가장 영향력 있는 분야별 매체 / <전자신문> <공간> <법률신문> <농민신문> 등 전통·전문성 강한 미디어들 ‘두각’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감명국 kham@sisapress.com

   
▲ 건축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 선정된 <공간>의 박성태 편집장(앞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편집국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시사저널>이 매년 창간 기념 기획으로 실시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에 대한 조사를 병행해서 실시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의 영향력과 함께 각 매체의 준엄한 평가가 된다는 점에서 해마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 본지가 지령 1,000호를 맞아 실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 조사에서도 역시 30개의 각 전문 분야별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조사를 병행해 실시했다. 이번 조사는 종합 일간지나 방송사 등을 제외한 각 분야의 전문 매체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 성격상 정치·기업·금융 등 3개 분야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각 분야별 전문가 50명 등 총 1천5백명을 대상으로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언론 매체를 최대 3개까지 답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전문 분야라는 특성을 감안해서 학회지나 학술지 협회지 웹사이트 등도 언론 매체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정보통신(IT) 분야에서는 ‘전자신문’이 72.0%의 압도적인 지목률을 나타냈다. 전자신문은 1982년 <전자시보>라는 제호의 주간지로 처음 창간되었다. 1989년 지금의 전자신문으로 제호가 변경되었고, 1991년부터 일간지로 전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밖에도 IT 분야에서는 <디지털타임스>(40.0%), <아이뉴스24>(10.0%) 등이 후순위를 잇고 있다. 전자신문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2위(20.0%)에 올랐다. 이 분야의 1위는 <과학동아> (24.0%)가 차지했다. 동아일보사에서 1985년 창간한 월간지로 현재 과학 분야에서 가장 폭넓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각 종교 분야, <불교신문>·CBS·PBC가 최고 영향력

   
ⓒ시사저널 유장훈

건축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월간지 <공간>(38.0%)은 최근 잡지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잡지에서 광고를 모두 빼버리는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한 것. 1966년 창간된 이후 국내 최고 건축 전문지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해온 만큼 광고주들의 선호도 1위 매체였기에 그 궁금증은 더했다. 박성태 <공간> 편집장은 “잡지에서, 특히 대중지가 아닌 전문지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수익을 판매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 모험이다. 하지만 그런 재정적인 어려움보다는 상업성의 배제를 통한 전문성 확보를 더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다. 다행히 이번 12월호까지 모두 24차례 광고 없는 잡지를 발행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광고를 전면 배제한 잡지로서 얻는 반사 이익도 뒤따르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대형 서점에 <공간>은 항상 비치되고 있고, 또 하버드 대학 등 유명 대학의 도서관에도 어김없이 이 책이 배달된다고 한다. 박편집장은 “국내 시장 1위에 안주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해외 건축 분야에서도 인정받는 잡지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건축 분야에서는 이외에도 <건축>(34.0%, 대한건축학회지), <건축사>(12.0%, 대한건축사협회 월간지), <건축문화> <플러스>(이상 10.0%) 등이 두각을 보였다.

법조 분야에서는 5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법률신문>이 84.0%로 압도적인 지목을 받았다. 지난 12월4일자 창간 58주년 기념호에서는 ‘법조인의 세컨라이프’ 설문조사와 ‘변호사 평균 수명’ 조사를 보도하는 등 법조계의 흐름과 법조인들의 경향을 잘 반영하는 심층 기획을 많이 발굴하는 매체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 분야에서는 1971년 창간된 <일간보사>가 1위(10.0%)를 차지했다. 그 뒤를 <데일리메디> <메디칼투데이> ‘한국사회복지학회’ 학술지 등이 이었다. 의료 분야에서는 <의협신문>이 18.0%로 가장 높은 지목률을 보였다.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으로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2년 진보적 성향의 소장파 의사들이 만든 신문인 <청년의사>도 16.0%로 2위를 차지했다. <메디게이트>와 <데일리메디>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시민운동 분야에서는 <시민사회신문>이 1위(10.0%)를 차지했다. <시민의 신문>이 지난해 폐간되면서 그 대안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 여러 매체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한국환경기술인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환경기술인>(18.0%)이 1위를 차지했다. 신문인 환경일보와 환경신문, 월간 잡지인 <환경미디어>와 <첨단환경기술> 등도 5위권 안에 포함되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한국교육신문>(12.0%)이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한국교원신문>, 월간지 <새교육> <교수신문> 등이 이었다.

농업 분야와 여성 분야에서는 예상대로 가장 전통 있는 매체가 나란히 1위(58.0%)로 선정되었다. 농업 분야의 1위 <농민신문>은 처음에는 농협중앙회의 기관지로 출발했다가 1982년부터 농민신문사로 분리되었다. 현재 격일간지로 발행되고 있다. 기존 매체의 보수적 성향에 반발해서 2000년 창간된 <한국농정신문>은 날카로운 비판 의식으로 26.0%의 지목률을 보이며 2위를 차지했다. 여성 분야에서는 <여성신문>이 그동안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나, 진보적 성향의 웹사이트 ‘일다’와 2001년 창간된 <우먼타임스> 등이 서서히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관광 분야는 두드러진 전문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외식 전문 잡지인 <호텔&레스토랑>이 1위를, <청사초롱>(한국관광공사 발생 신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웹사이트·한국관광공사 웹사이트 등이 공동 2위 그룹을 형성했다.

불교 분야에서는 <불교신문>(52.0%)이 BBS(42.0%)를 누르고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1위를 차지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경우 모두 방송사가 1위에 꼽힌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1960년 창간된 전통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불교신문>(18.0%), <법보신문>(14.0%), 불교TV(12.0%) 등이 3~5위를 차지했다. 개신교 분야에서는 CBS가 14.0%로 1위를 차지했지만 CTS(기독교TV)도 12.0%로 바짝 추격했다. 천주교 분야에서는 PBC(평화방송TV, 58.0%)와 <카톨릭신문>(56.0%), <평화신문>(52.0%) 등 세 매체가 단연 두드러진 가운데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문학 분야에서는 전통을 자랑하는 여러 매체들이 각축을 벌인 가운데,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56.0%의 지목률을 나타내며 1위를 차지했다. 염종선 편집장은 “우리 잡지는 문예 전문지라기보다는 전문지와 대중지의 혼합 성격인 종합지에 가깝다. 창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문학, 인문·사회과학 외에도 사회적인 현안과 담론들에 대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것이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진보적 성향의 대표적 문예지로 꼽히는 <창작과 비평>은 1966년 창간했다가,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때 폐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복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 문예지인 <문학동네>(32.0%)를 비롯해 <문학사상사> <현대문학> <문학과 사회> <현대시학> <문학과 지성> <실천문학>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계간지 성격인 문학 전문지는 최근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한 고민이 많다. <창작과 비평>도 예외는 아니다. 염편집장은 “1년에 네 번 발행되는 계간지의 성격상 독자들과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런 고민의 일환으로 2년 전 창간 40주년 되는 시점을 맞아서 ‘창비주간논평’을 온라인 매체로 새롭게 개설했다”라고 밝혔다.

문학 <창비>·음악 <피아노음악>·게임 <경향게임스> ‘선두’

음악 분야에서는 월간 <피아노음악>(22.0%)이 월간 <객석>(20.0%)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음악춘추> <음악저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객석>은 종합 예술잡지의 성격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음악과 연극 분야에서 2위에, 또 무용 분야에서 4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미술 분야에서는 <월간미술>이 68.0%로 1위를 차지했고 <미술세계> <아트인컬쳐> 등이 뒤를 이었다. 무용 분야에서는 월간 <춤과 사람들>(60.0%)이 1위를 차지했다. 고석린 편집장은 “과거 친분과 이해관계로 작품성과 상관없이 호의적인 기사를 그냥 써주고 하던 관행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런 점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월간지인 <댄스포럼>과 <춤>이 2~3위를 차지했다. 패션 분야에서는 대중 성향의 잡지가 상위권을 점했다. <보그>가 64.0%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엘르>(30.0%), <BAZAAR> (14.0%)가 그 뒤를 이었다.

영화·연극·연예 등의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씨네21>의 파워가 두드러졌다. 영화 전문 주간지로 1995년 출발한 <씨네21>은 영화 분야에서는 76.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연예 분야에서도 22.0%로 역시 1위를, 연극 분야에서는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영화 분야에서는 <무비위크>와 <필름2.0>이 2, 3위를 차지했고, 연예 분야에서는 스포츠조선과 일간스포츠가 공동 2위를 형성했다. 연극 분야 1위는 <월간 한국연극> (58.0%)이 차지했다.

출판 분야에서는 <기획회의>(46.0%)가 1위에 올랐다. <기획회의>는 1999년 창간된 격주간지이다. 출판계 소식뿐만 아니라 기획자들의 실무 이야기 등을 다루며 반향을 키워가고 있다. 2위는 <출판저널>(26.0%)이 차지했다. 만화 분야에서는 웹사이트가 강세를 나타냈다. ‘팝툰’(16.0%)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점프> <만화규장각> 등이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3대 스포츠 일간지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간스포츠가 간발의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스포츠조선, 스포츠서울과 함께 인터넷방송인 ‘Stn’이 공동 2위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게임 분야에서는 타블로이드 주간 신문인 <경향게임스>(18.0%)가 1위를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게임업계의 호황과 관심 속에 많은 게임 전문지들이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창간 7년차의 후발 주자인 <경향게임스>가 1위를 차지한 배경에 대해 김동욱 편집장은 “그동안 게임 산업에 대해 쓴소리를 한 매체가 없었는데, 우리는 다소 네거티브한 성향으로 비칠 만큼 업계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해왔다. 오히려 그런 비판 의식이 독자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라고 밝혔다.


건축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 선정된 <공간>의 박성태 편집장(앞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편집국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영웅]우리 시대의 영웅은 ‘김연아’
스포츠·문화예술 분야 인사들이 상위권 형성…50위 안에 경제인은 안철수·이건희 둘뿐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김연아 ㅣ 피겨스케이트 선수. 불모지인 한국에 피겨스케이팅 열풍을 몰고 왔다.

우리 시대에 영웅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영웅도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 왕조 시대 영웅은 주로 군사적인 개념이었다. 치열하게 영토 다툼을 벌이며 ‘군사력이 힘’이었던 시대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생명을 부지하게 해주는 장수가 영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봉건 시대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던 근대 국가가 태동하는 시기에는 나라의 기본 틀을 갖추는 일이 중요했다. 나라를 세우고 체계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선 선구자들이 영웅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꼴이 만들어진 뒤에 등장한 산업화 시대에는 다시 그림이 바뀌었다. 경제 개발이 우선 순위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다원화된 민주 사회에서는 어떨까. 영웅 지형도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이들이 영웅이 되었다. 매스미디어의 힘이 영웅을 탄생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지형도는 이제 우리 사회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사저널>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정치·기업·법률·연예·스포츠 등 30개 분야의 전문가 1천5백명을 상대로 이 시대의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3백35명의 이름이 거론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웅관을 반영했다.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국민 요정’으로 불리는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진정한 영웅’ 1위로 꼽았다. 79명(5.3%)이 “김연아가 영웅이다”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박지성 축구선수, 연기자 문근영씨, 가수 김장훈씨, 노무현 전 대통령, 박태환 수영선수,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10위 안에 들었다. 문화예술·스포츠인이 다섯 명이고 정치인이 네 명, 종교인이 한 명이다. 평소 기부 활동과 봉사 활동을 많이 해 대중 스타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문근영·김장훈 씨가 ‘영웅’ 상위권에 오른 것은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와 나눔의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된다.

   



영웅을 탄생시키는 힘은 매스미디어

김연아·박지성·문근영·김장훈 씨 등이 상위권에 오른 데는 최근의 경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김연아·박지성이 맹활약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박세리 선수가 국민에게 힘을 주었던 것과 같다고나 할까. 또, 어려움을 같이 나누며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전문가들로 하여금 이미 이를 실천해 시대의 한 아이콘으로 떠오른 ‘문근영·김장훈’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예술 인사들의 강세는 11~20위에서도 이어졌다. 이 그룹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장미란 역도선수, 민노당 강기갑 의원, 신지애 골프선수, 소설가 이외수씨, 가수 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50위 안에 든 사람들을 살펴보니 문화예술계 인사가 18명, 스포츠인과 정치인이 각각 아홉 명이었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여주듯 최근 우리 사회에는 ‘김연아 신드롬’이 일고 있다. 12월10일자 중앙일보는 ‘김연아의 힘, 뉴스 시간도 뒤로 밀었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12월12~13일 진행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을 생중계하기 위해 SBS가 8시 뉴스 시간을 뒤로 미룬 것을 표현한 말이다. 지난 12월9일 새벽 4시에 김연아가 입국하는 인천공항 현장에 취재진과 팬 2백여 명이 몰린 것도 화제가 되었다.

출전하는 대회 입장권이 순식간에 동이 나고, 김연아가 즐겨듣는 클래식 음악을 모은 음반과 ‘김연아빵’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심지어 ‘김연아 화장법’까지 유행한다. 기업들은 광고 모델로 모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는 해맑은 얼굴에 뛰어난 패션 감각과 센스를 갖춘 김연아만한 ‘상품’이 등장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19일부터 12월4일까지 16일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가구를 방문해 1 대 1 면접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김연아는 ‘올해 한국을 빛낸 스포츠 선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김연아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흐름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웅 김연아’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전통적인 영웅관이 바뀌었다. 현대는 대중문화 시대이다. 과거에는 난세에서 나라를 구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본 반면 지금은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필요는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정치·사회 분야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만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또, 개인이 노력해서 인기를 얻고 이름을 날린 것인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영웅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지성은 꿈과 자부심의 상징

‘산소탱크’ 박지성 선수는 한국인의 투지를 상징한다. 무명 선수였던 그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맹활약한 뒤 유럽 무대에 진출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꿈’과 ‘자부심’의 상징이다. 김연아처럼 박지성 또한 모범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며 예의도 발라 안티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은 조금 세련되었지만 기본적으로 투박하면서도 정이 가는 얼굴은 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 무대를 휘젓는 대스타, 영웅이라기보다는 보듬어주고 싶은 동생, 의지하고 싶은 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은 ‘영웅 박지성’이 나온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티셔츠를 팔기 위해 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박지성은 자신의 노력으로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떤 클럽인가. 잉글랜드·포르투갈·불가리아에서 에이스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박지성은 이들과 경쟁하면서 출전 기회도 많이 얻고 맹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희망을 주는 데서 영웅의 모습을 본 것이다.”

박태환 선수는 김연아와 쌍벽을 이루며 ‘국민 남동생’으로 불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10위 안에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정치인도 네 명이 올라 있다. 5위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은 최근 형인 노건평씨가 검찰에 구속되는 등 곤혹스런 입장에 있지만 나름의 강력한 이미지와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가 그것을 보여준다. ‘친노 세력’이라고 통칭되는 정치 세력이 강력하게 지지하는 가운데 기존의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돈키호테 이미지’가 전문가들에게 ‘영웅’을 떠올리게 한 것 같다. 9위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으로 호남이라는 든든한 지역 기반이 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에 새 전기를 연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국제적인 인물이 되었다. ‘영원한 신부’ ‘영혼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은 ‘영웅’ 10위에 올랐다.

   

10위권 밖에서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이름이 눈에 띈다. 경제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예견했던 그의 글은 다음 카페 아고라에서 조회 수 수십만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평화의 전령사가 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한국 어린이들의 ‘큰 바위 얼굴’이 된 지 오래이다. 정도 경영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 시민사회의 리더로 흔들림 없는 위상을 갖고 있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도 많은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영웅’을 보는 시각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범주를 넘어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좀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년에 더 크게 활약할 것으로 기대되는 골프선수 신지애와 최근 텔레비전 등에 출연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소설가 이외수씨도 이름을 올렸다. 경제인 가운데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유일하게 20위에 올랐다. 50위까지 살펴보아도 안철수·이건희 외에 다른 경제인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봐달라

김연아 밀착 인터뷰 
“힘들고 어려웠던 고비에 배운 것도 많아…사람들 반응 잘 못 느껴”


   
▲ 김연아 선수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국이 김연아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김연아의 인기와 그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 직전이다. 지난 12월11일 개막된 2008-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가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려 김연아는 더더욱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었고 김연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분석한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김연아의 다양한 표정과 연기를 담은 사진들이 화보로 인터넷에 떠돌았다. 김연아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지방에서 관광버스로 올라온 팬들이 오전 6시부터 경기장 주변에서 장사진을 치는가 하면 지난 11월 개시된 인터넷 입장권 판매는 예매 시작 40분(2차분은 15분) 만에 매진되고 말았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김연아가 이토록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김연아의 귀국부터 대회 준비까지 밀착 취재하면서 그의 또 다른 면면을 살펴보았다.

설마 했다. 김연아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오전 3시45분에 귀국하는 출국장에 그렇게 많은 사람(취재진+팬들)이 모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3시. 인천공항 전용도로를 타고 공항 부근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대의 차량도 발견하지 못한 탓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국장을 향했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연아가 나오기로 되어 있는 게이트에 수많은 취재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플래카드와 응원판을 들고 김연아를 기다리는 팬클럽 회원들도 수십 명이 눈에 띄었다. 김연아가 나올 무렵에는 100여 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고, 당시 그 상황만으로는 오전 3시30분이 아닌 오후 3시30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맹훈련으로 부상에 대한 두려움 떨쳐내

놀란 것은 김연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표현대로 ‘방송 3사 카메라만 있을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게이트를 나오다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의 봉투를 받아들고 다시 안으로 뛰어들어간 김연아는 스폰서사의 로고가 박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인터뷰 전 가까이 서 있는 기자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올 줄 정말 몰랐다”라면서도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마에 청춘의 심볼인 여드름이 도드라져 보였지만 장시간 비행을 한 사람답지 않게 김연아는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매스컴과의 인터뷰 도중 김연아를 직접 보려고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한 할머니는 “실물이 훨씬 예쁘네. 근데 아가씨 손 한 번 만져보자”라며 김연아에게 다가가려 애쓰기도 했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마음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시즌 준비는 너무 잘 돼서 걱정일 정도로 완벽했지만 시즌 시작 직전에는 은근히 부담이 커졌다. 아마도 팬들의 높아진 기대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낸 탓에 부상 재발에 대한 염려도 컸었다. 하지만 연습 과정이 좋았고 훈련을 통해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니 자신감이 붙었다.”

김연아가 올 시즌을 ‘희망 모드’로 삼은 계기는 지난 10월27일(한국 시간)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 컴캐스트 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이다.

“걱정이 많았던 만큼 미국 대회에서의 결과가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털고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베이징 대회까지 이어졌고 결국, 또다시 1위를 차지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연아가 이번 시즌을 신바람나게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그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부상이 없다는 점이다.

“2~3년 전부터 심한 부상들이 지속되었다. 그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배운 점도 많았다. 부상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 등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즌만큼은 부상 없이 건강한 몸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김연아는 지난 3월 스웨덴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고관절 통증으로 5위에 머무르며 순위 밖으로 밀려났었다. 결국 싱글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며 총점 순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당시 5위라는 성적이 김연아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당시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부상에다 순위가 밀려난 부분 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그녀를 자극했던 탓이다.

귀국한 다음 날 경기가 열리는 고양시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공식 훈련이 재개되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6명의 선수 가운데 아사다 마오만 비행기 연착으로 뒤늦게 도착했고, 5명의 선수가 모두 링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얘기를 나누며 몸을 풀던 김연아가 자신의 차례에서 이번 시즌 새로 선보인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생상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에 맞춰 펼쳐갔다. 이때는 기자도 기자가 아닌 팬이 되고 만다. 김연아의 주특기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했을 때 절로 박수를 치게 되었다.

“나는 아사다 마오를 떠올릴 틈이 없다”

연습 후 공식 인터뷰를 가졌는데 김연아의 인터뷰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이 또다시 등장했다. 바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이다. 김연아가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부터 줄곧 아사다 마오와 비교되었고 기자들도 일본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아사다 마오를 김연아와 비교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러나 정작 김연아는 오랫동안 계속된 아사다 마오와의 비교가 이제는 부담스럽다 못해 지겨울 정도이다.

“내 경쟁자가 아사다 마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시즌 들어가면 다른 선수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더욱이 많은 선수들과 겨룬 끝에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 서는 까닭에 아사다 마오를 떠올릴 틈이 없다. 상대 선수에 따라 내가 변화되기보다는 아예 신경 안 쓰고 내 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김연아를 일컫는 여러 가지 수식어 중에서 ‘과학이 빚은 몸매’ ‘신이 내린 몸매’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1백63cm, 43kg의 체격에다 긴 팔과 다리, 그리고 신체에서 풍겨나오는 감성과 표현력 등이 김연아의 연기에 플러스 알파를 덧붙인다. 그러나 김연아는 타고난 신체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의 구동회 부사장은 김연아에 대해 성실하고 의지가 강하며 똑똑한 선수라고 설명했다.

“캐나다에 가서 놀란 것은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영어 공부를 했냐고 물었더니 국제 대회 나가면서 틈틈이 배웠다고 하더라. 오서 코치와의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히어링(듣기)이 거의 완벽했다. 토론토에서 영어 개인 교사도 김연아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고 하더라. 머리도 좋고 끼도 많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이제는 말도 잘한다. 이전에는 인터뷰할 때 미리 대본을 짰는데 올 초부터는 인터뷰에 관해 따로 조언하는 게 없을 정도이다.” 김연아는 자신에게 쏠리는 엄청난 관심과 인기에 대해 ‘실감을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기자가 김연아에게 ‘가히 톱스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라고 설명하자, “캐나다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잘 느끼지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김연아는 ‘아직은’ 자신이 ‘트렌드세터’가 되든 ‘셀러브리티’로 평가를 받든 별로 신경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은 선수 신분이고 대회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 ‘김연아=사회적인 아이콘’으로 연결 짓는 부분들이 와 닿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포장된 김연아’보다 ‘꾸미지 않은 김연아’를 더 편안해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표현했던 내용을 살펴보면 김연아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학교 생활을 하고 싶지만, 나한테 사인받으려 몰려들기보다는 나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다면 그가 나를 유명인으로 대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한다.”

[존경받는인물]“전·현직 대통령들보다 박근혜가 존경스럽다”
분야별 ‘가장 존경받는 인물’ / 정치인 2위 DJ…기업인 1위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
[1000호] 2008년 12월 17일 (수)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존경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말과는 격이 다르다. ‘존경’이라는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사상·행위 등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영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시사저널>은 미디어리서치와 공동으로 총 30개 분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했다. 과연 누구에게 영광이 돌아갔을까.

정치 분야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쟁쟁한 정계 거물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평가하거나 차기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인 인물까지 통틀어 조사한 ‘존경하는 인물’에서 나온 결과치고는 의외이다. 한때 정치 라이벌이었던 이명박 대통령(3위)을 따돌렸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5위)보다도 앞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2위)도 박대표에게 뒤쳐졌다. 박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 ‘0순위’인 것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결과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3위를 차지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박정희 전 대통령, 손학규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 정세균 민주당 대표,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는 나란히 5위에 올랐다.

분야별로 나눠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1위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뽑혔다. 정명예회장은 맨손으로 현대그룹을 일구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통일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기업인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직접 성사시켰고, ‘통일소’라고 불린 소떼 5백 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었다.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었다. 국민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정주영 향수’가 적잖이 남아 있다.

2위에는 부자지간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공동으로 올랐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는 4위이다. 6위 그룹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강덕수 STX 회장, 잭 웰치 전 GE 회장 등이 올랐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권위자’ 안철수, IT 분야 1위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안의장은 컴퓨터 바이러스 잡는 의사로 유명하다.

오명 전 과학기술부장관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이 2위이다.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은 3위,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원장, 박성덕 전 정보통신부 차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공동으로 5위에 뽑혔다.

금융 분야에서는 투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 버크셔헤더웨이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금융 전문가들을 모두 제쳤다.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보여진다. 국내 금융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반증일 수 있다. 국내에 ‘CEO 주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김정태 하나은행장이 2위이고, 황영기 KB금융지주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3위이다. 강정원 KB국민은행장과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6위로 선정되었다.

검찰 수사받은 최열 환경재단 대표도 환경 분야 선두


   

존경하는 여성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공동 1위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정치와 여성 부문에서 1위에 올라 2관왕을 차지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는 비록 18대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내년 4월29일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 전 국무총리는 지난 2006년 3월 당시 이해찬 총리가 사임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되었다. 지금은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여성학의 대모’인 이효재 경신사회복지연구소 소장이 4위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최대표에게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환경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최근 공금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났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유재근 한국환경기술진흥원 감사, 조용진 충주대 교수, 조광명 인하대 교수가 나란히 2위 그룹에 포진했다. 이만의 환경부장관, 이경률 환경실천연합회 회장, 이규용 전 환경부장관, 윤서성 전 환경부 차관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농업 분야에서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1위를 차지했다. 강대표는 평범한 농민에서 농민운동가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강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농민복은 비웃음의 대상에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수화 농촌진흥청 청장이 2위, 고 우장춘 박사, 조은기 농업과학원 원장, 허문회 서울대 명예교수, 문경식 전 전국농민연합회 의장,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류갑희 농촌진흥청 차장, 정광훈 진보연대 상임 공동대표가 7위이다.

게임 분야에서는 명성대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1위에 꼽혔다. 대한민국의 게임 아이콘인 김대표는 국제 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등을 개발해 엔씨소프트를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닌텐도 개발자인 미야모토 시게루가 2위, 정광호 게임과학고등학교 교장·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송재경 XL게임즈 대표·최휘영 NHN 대표가 3위이다. 게임업계에서는 한동안 ‘김택진 아성’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이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나타났다. 김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점기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관련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았다. 8·15 광복 후 한민당 창설애 참여해 중앙감찰위원장이 되고, 1948년 초대 대법원장이 되었다. 

조무제 전 대법관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존경하는 인물 2위로 꼽혔다. 윤관 전 대법원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 신상규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이 4위이다.

미술계에서는 현대미술가 이우환 일본 다마 미술대학 교수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혔다. 이교수는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니혼 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권위 있는 국제전에 참여했으며, 일본의 획기적 미술운동인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하고 있다. 최종태 김종영미술관 관장·아티스트 백남준씨·서양화가 박수근씨가 2위, 김한기 근대미술 대표가 5위이다.

   



음악 분야에서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1위에 올랐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정명훈 감독은 1989년 프랑스의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 총 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았고, 지난 2006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2위, 세계적인 테너 가수 파바로티가 3위, 작곡가 진은숙씨·성악가 조수미씨·작곡가 백병동씨·피아니스트 백건우씨·작곡가 고 윤이상씨·성악가 홍혜경씨·작곡가 고 홍난파씨·바이올리니스트 홍사근씨·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씨·부천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임헌정씨·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지휘자 사이먼 래틀·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가 공동 4위이다.

독일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영웅인 손기정 선생이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에 꼽혔다. 손선생은 우리나라 육상의 역사이며 산증인이다. 생전에 대한체육회 부회장, 육상연맹 회장 등을 지내며 스포츠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 뒤를 이어 김운용 전 IOC위원장이 2위, 축구 코치 홍명보씨가 3위, 김성집 전 태능선수촌장·김정행 용인대 총장·문대성 IOC 선수위원·이연택 대한체육회장·임번장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마라톤선수 이봉주씨가 공동 4위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이홍우 전 서울대 교수, 이상주 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가 나란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천석 전 문교부 장관, 이어령 문학평론가,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이 4위이다. 최생림 한양대 교수는 5위에 선정되었다.

가수 김장훈·국민배우 안성기 공동 1위


   

연예 분야에서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가수 김장훈씨와 국민배우 안성기씨가 사이좋게 1위에 꼽혔다. 탤런트 최불암씨 3위, 가수 조용필씨·영화배우 문근영씨 4위, 가수 비와 탤런트 나문희씨가 6위이다.

영화 분야에서는 연예 분야에 이어 배우 안성기씨가 1위에 올라 2관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뒤를 이어 임권택 감독 2위, 유현묵 감독 3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4위, 영화평론가 김종원씨와 영화감독 이창동·이준익·이만희·봉준호 씨가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인 김복희 한양대 교수가 무용 분야 1위이다. 김이사장은 지난 2005년 1월부터 무용협회 이사장을 맡았으며 지난해에는 문화관광부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국수호 국립무용단 단장 2위, 발레리나 강수진씨와 현대무용가 육완순씨 3위, 무용가 이매방씨 5위,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 6위이다.

   

연극분야에서는 오태석 국립극장 예술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오감독은 그동안 숱한 명작들을 연출하며 무대에 올렸다. 동랑레퍼토리의 <루브>의 연출로 연극계에 데뷔한 이래 <태> <춘풍의 처> <어미> <부자유친>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연출가 이윤택씨가 2위, 김성녀 중앙대 교수와 연극인 손숙씨가 3위이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연극연출가 손진책씨, 탤런트 신구씨, 연극인 최종원씨, 연극배우 윤문식씨, 연출가 임진택씨, 연극인 유순웅씨, 연극배우 백성희씨 등도 이름이 올랐다.

소설·시 분야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위에서 4위까지를 시인이 아닌 소설가가 차지했다. 소설가 조정래씨가 1위, 소설가 황석영씨 2위, 소설가 박완서씨 3위, 소설가 신경림·이문열·김훈 씨가 4위이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시인 고은씨는 7위이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고은씨는 7위 차지해 ‘의외’

   

건축 분야에서는 유춘수 이공건축 회장이 1위이다. 이회장은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가 김수근씨 2위, 건축가 김중업·송효상 씨 3위, 김광현 서울대 교수와 윤장섭 서울대 명예교수가 5위이다.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패션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패션 분야 관련 조사 때마다 맨 먼저 거론되는 것이 앙드레김이다. 패션계에서 앙드레김이 갖는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앙드레김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로 꼽혔다. 그 뒤를 이어 디자이너 진태옥씨 2위, 디자이너 이상봉씨 3위,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4위이다.

관광 분야에서는 강우현 남이섬 사장과 박석희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가 공동 1위이다. 강사장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남이섬을 명소로 바꾼 인물이다. 그는 또 지난 2001년 사장에 취임한 후 연매출 20억원에 은행빚 60억원 부채를 안고 있던 남이섬을 100억원이 넘는 알째배기 회사로 키웠다. 강사장은 재생지 쓰기 운동을 펼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박석희 경기대 교수는 한국공원휴양학회 회장, 한국관광자원개발학회 회장, 한국농촌관광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박상환 하나투어 사장, 이장춘 경기대 교수, 손대현 한양대 교수, 이선희 경기대 교수, 정광환 배제대 교수 등도 존경하는 인물군에 들었다.

불교계에서는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이 1위이다. 지관 스님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종교 편향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가 원만히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광사 수련원 원장 법정 스님 2위, 용화사 주지 송담 스님 3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전 성륜사 주지 청화 스님·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이 4위이다.

복지 분야, 전·현직 복지부장관 3명이 5위권 안에 들어

   

복지 분야에는 1위부터 5위까지 3명이 전·현직 보건복지부장관이다. 현직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이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혔다. 김상균 서울대 교수 2위, 최성재 서울대 교수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3위, 손학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5위에 올랐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1위이다. 서총장은 (사)한국언론인연합회가 선정하는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교육발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장관 2위, 미국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물리학자 아인슈타인·최형섭 전 과학기술처장관·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오명 전 과학기술부장관·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공동 3위이다.

개신교에서는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조목사는 지난 5월 순복음교회 당회장에서 물러난 후 사랑과 행복나눔 이사장을 맡아 봉사 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옥한음 목사 2위, 김삼환 예장 총회장 3위, 한경직 목사 4위,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5위,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6위이다.

만화 분야에서는 <타짜> <식객>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허영만씨가 1위에 선정되었다. 만화가 이두호씨 2위, 만화가 이현세씨 3위, 만화가 이희재씨 4위, 만화가 윤승은씨 5위, 만화가 김동화·고우영 씨 6위이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시민운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이사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김재옥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회장과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단장 도법 스님이 2위이다.

천주교 분야에서는 국가 원로이자 한국 천주교의 산증인인 김수환 추기경이 1위이다. 그는 46세에 서울대교구장이 되고 이듬해인 47세에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올랐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지키는 등불이 되었다. 마더테레사 수녀 2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3위, 교황 베네딕토 16세 4위,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이 5위이다.

   

출판 분야에서는 박맹호 민음사 회장과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공동 1위이다. 박은주 김영사 대표, 정진숙 을유문화사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나성훈 예림당 대표 3위에 올랐다.

의료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가 1위에 선정되었다. 이밖에 박창일 연세대의료원 원장, 박재갑 서울대 교수, 신영수 WPRO 사무총장, 김병수 포천중문의대 총장, 김남규·김일순 연세대 교수, 의사 현봉학씨 등이 거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