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되어 기슭에 돌아오는 물처럼 세월의 백사장을 쓸며
저만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물을 앞질러 해안에 먼저 드러�는 가을
큰키로 일어서면 하늘 꼭대기 까지 닿는다
천지간에 수북히 담기게 된 가을이
내 온몸에 새 계절의 청량한 물방울을 끼얹는다
머리를 감아빗고 전축에 판을 건다
해일에 얹혀 출렁이면서 오는 음악의 범람
이내 젖어서 젖어서 못견디게 된다
이 물기를 타고 아무 전류나 와버리면 어쩌나 ?
삽시의 감전으로 온세상의 가을이 모조리 불붙으면 어쩌나 ?
해마다 첫가을에 진한 색칠을 하듯 가을의 설레임이
무섭게 염색하며 번져오곤 하는데 이때문에 병이 깊으지면 어쩌나 ?
갈수록 내 감정은 익어가고 달가와서 너무나 쉽사리
선정의 전깃줄에 감겨버린다
두손을 활짝펴 박제의 나비모양 유리창에 밀착시키면
명주 실오리 같은 손금 마디에서 청유리 속으로
수혈처럼 전율이 흘러든다
지붕 꼭대기에 이르러선 잘달군 철사같이 찬 밤공기를 쑤신다
새삼 소스라치게 되는 광막한 허공
이안에 지금 메아리 치며 퍼져나가는 한낱 호명이 있다
여보-오 !
이렇게 발음하게 되는건지
모든 이름이 들어있고 모든 이름을 지나서 넘어가는
이건 필시 사람들이 자기의 본향을 향하여
먼 타향에서 외쳐보내는
망향의 뜨거운 절규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먼젓 세상에서 먼훗 세상에 까지 줄곧 머리카락에
묻어 다니는 바람도 몇오라기 있으리라
사람인들 아마 세번 세상에 거푸 연분있게 되는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꼭 있을법 하다
여보-오 !
하면 아는 그를 부르는 이름이 틀림 없을테지
지등에 불을 밝혀들고 이가을엔 그사람을 찾아나설 필연에 몰린다
나
네게로 가리
한사코 가리라
이슬에 씻은 빈손이어도 가리라
눈 멀어도 가리라
정녕 누구라도 다 간다
길다랗게 줄을 이으면 아득한 길머리를 한없이 간다
잠잠히 그저 간다
이 아득한 대열에 대해 신이 물으신다면
갈망의 먼수로를 여는 사람의 은하라고 대답해 드리지
뒤의 물살을 이어 끝없는 물결이 더욱 이랑져 굽이치는
흰띠 모양의 다함없는 수량
가랑비 오듯이 밤이슬이 내리면 만상이 고이 씻겨
동터오는 새날은 한결 더 정결하게 열리리라
웬진 몰라도 올해의 가을은 유달리 더 길고
기초의 뼈대부터 먼 회귀의 염원으로 채워져 있다
아주 먼데서 돌아오거나 아주 먼데까지 찾아나서는 따위
전에 없이 담대한 만안이 눈물겹도록 치받아 오른다
그렇다
더는 참을수 없는 바람과 격정의 파열인듯 싶다
오랫동안 경건히 가꾸어 온 해후의 농경에서
마침내 완숙의 과일을 거두고 싶은 열망
그래야만이 정녕 신의 승낙이 두팔안에 비로서 마음놓고
안겨들수가 있었기에
길벗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에겐 이미 태초에 사람끼리의 길벗이 있으리라는
축복이 있었다
한 사나이에겐 한 여인을 짝지워 백년을 해로하라 하시었고
형이 있은 다음엔 아우가 출생하여
형제를 이루도록 바라시었다
이 범상한 기본에서 부터 이미 길벗의 원리는 비롯한다고 보겠음을
지아비를 위해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사랑과 헌신의
영원한 청탑을 쌓으며
또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도
이 성질은 놀라운 깊이로 진척되어 간다
이는 모두 혈연을 따르는 인간관계 려니와
선택을 거쳐 각별히 맺는 후천의 길벗도 있음을 들어야 한다
연인들과 동지가 그렇고
모든 이웃사이가 다 이것이다
누가 누구의 진정한 길벗인가
이를 참으로 아는건 오직 그 당사자들 뿐이다
가장 불가사의한 내면의 친구
뭐라고 이름이 붙을만한 관련도 못되면서 항시 한 몸처럼
서로를 느끼는 보다 근원적인 길벗도 있다
참 이상하지
아무것도 주지않는 사람이 언제나 흡족히 채워주기만 한다
하등의 맹약이 없었건만 어느 한가지도 제한하지 않는
전적인 허락을 알도록 만든다
만나지 못하나 부자유 없이 뜻을 통하고
의식과 무의식에서 매양 함께 있다
두사람의 삶이 마치도 하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듯이
동일의 질서로써 다스려지고 순한 습관처럼
어느덧 평화스러운 안주에 머무른다
그러나 이런일은 설명으로 나타낼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 진정한 길벗에 대해 알아차림은
바로 그의 영혼이 도맡아 하는 더없이 신령한 촉각의 일이기 때문에
가을이라 해서 갑자기 여름과 판이해 지는건 아니다
여름을 살던 감정의 침전물이 남아 이리 가을햇살을
조는것이라고 하겠기에
바위 바수어
돌가루 눈물에 반죽하듯
막막한 세월이랴
시월 하늘아래 어지럽고 어지럽고
다만 고개 숙일뿐이다
자칫 거북한 숙취같이 가을의 감정이 설익은채
가슴속에 엉키려 한다
나는 본래가 침울한 성격이다
갈수록 내 감정은 밑바닥에 가라 앉는다
그러면서 항시 자지않는 파도
이 모순된 전체의 불합리를 잡아 당기는 저심의 추
하면 이건 무엇이고 누가 관할하여
어떤 앞날을 맞게하나
내 정신의 구심
그 내달리는 지표끝엔 무슨 게시가 나붙었나
그렇지
이리 따지는 논조부터 상명한게 못되리라
내 동굴은 습하다
미끈거리는 이끼와 지하수 같은 어둑한 점성외엔
그 지적에 대해 내자신 별반 아는바도 없다
그러면서 부단히 무언가를 느끼고 곱씹게만 되어
그게 병이라고 하겠거니
쉬지않는 감관은 그 자체가 벌써 한낱 형벌일것도 같다
노상 소모를 보낼 뿐이기도 할것을
그러나 마멸의 이치라야만 들어맞을 이 토질 속에서
치밀어 솟아나는 신선한 새순들이 있다
그것이 얼마 만큼이나 축복에 합당한 것인지 아니지는 몰라도
여기 연연한 꿈을 쏟아 부으며 충실히 꽃피우고자 애쓰리라
내 안에서 자라는 사람들
그는 생명속의 생명이어서 내몸 전부가 그의 집이 된다
비록 그에겐 부족하다 해도 나로선 이것이 전부다
주고 있는일이 내겐 기쁘다
이 기이한 자족은 내 마음을 환히 눈부시게 한다
하긴 신망에 인색할 까닭이란 결코 없지
줄어드는 시간속에 이 일을 외면하면 사람이 누릴 복락으로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내 앞에서 자라는 이 여린 푸성귀
그 사람을 먹이려는 이 소박한 식단
진실로 말하거니
이름도 없이시한도 없이 내생명의 시간동안
내안에 머무르는 다시없는 사람아
가을은 여정을 일깨운다
마른 피리에서도 축축히 젖은 가을의 노래가 뽑혀 나온다
끝없이 가고싶다
큰바다를 건너는 아름다운 객선에 몸을 담고싶다
지금은 떠남을 바라게 되고 다음엔 돌아 올것을 또 원하리라
여심은 서정의 양모여서
작은 바람에 몹시 민감하다
풍향을 따라 깃털이 한편으로 하르르 누웠다가
이내 본디대로가 된다
마치도 수면에 자잘한 주름을 일구던 파문이
얼마후 사그라져 원래의 정적에로 되돌아 감과도 같이
지도를 보면 내 나라다 작다
작은 내 나라에 못다가본 산천이 많아
아슴한 고갯마루에 녹아 흐르는 구름빛깔
무애의 하늘에
흰깃발 꼭지가 언제나 보인다
하긴 살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다
나면서 부터 줄곧 죽는날까지 멈추지 않는 여행이다
여로는 무궁하다
그러나 이래의 무향감은 터무니 없는 착각임을 알게된다
우선 사람의 삶이란 결코 영원한게 못됨을 오래잖아 알게된다
종말이 보이는 여로를 실로 그때문에 더 아끼며 음미한다
그래서 애석과 귀중감이 필연코 더 따르게 되는것을
흔히 금싸라기 견주어 말하는 사람의 시간
살면서 일깨워 주는 갖가지 교훈, 회오, 묵상
어느것이나 다 무겁고 귀하지만 이중의 으뜸은 영락없이 사람이다
사람의 어여쁨 그 측은함과 뼈 마디마디 저려오는 아픔
그래 참말로 그건 통증이다
이 아픔때문에 갈을 걷다가도 갑자기 가슴을 움켜 잡을때가 있다
불시에 치미는 격정이 핏덩이를 토해낼 사태를 빚어도 된다
그리고 제일로 신비한건 사람으로 해서 생겨난
상처에 난만한 장미가 꽃피는 일이다
그대와 나의 상혼에 꽃봉오리가 솟아난다
그럼 피밭에 핀 장미의 시를 쓰랴 ?
번뇌의 가시마다 촘촘히 선혈의 이슬이 맺히는 사람의 꽃나무
죄의 내음이 증발하고 죄의 풋과일이 하나 둘 매달렸다 떨어지는
사람의 수목
그렇다
지금은 시름시름 잠들려고 하는 죄의 곤혹
오히려 죄를 부러워하고 탐내기까지 했던 그 한철
엄청난 결정의 모든 전말은 어�게 되었나
나는 아무말도 못한다
기실 그건 아무런 얘기도 남겨주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흐른다
만조되어 기슭에 돌아오는 물처럼 세월의 백사장을
가을이 오고있다
감아 빗은 머리를 날리며 전축에 새판을 건다
해일에 앞서 좔좔 밀려오는 음악의 범람
멜로디의 물결을 타고 내앞에 당도하는 한 척의 배
뱃머리에 서있는 내 친구
아주 먼데서와 언제까지나 손닿지 않는 이역의 섬 그대
하나 기쁘게 난 손을 내어준다
몇번 이라도 새로운 감동에 넘치어 가을과 음악에게
매번 눈시울 젖게하는 그대에게
못견디며 이 손을 내어준다
그리고 이날 이심정을 오래새겨 영 잊지 앉을것이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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