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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島 참치 양식장 아능교?”

醉月 2008. 8. 19. 18:58

“욕지島 참치 양식장 아능교?”


올 여름 한려수도 턱밑에 참다랑어 떼로 출현 … 200여 마리 가두리서 몸집 불리기 한창

 “지난해 10월 양식에 나선 뒤로는 참치 맛을 한 번도 못 봤심더.

값나가는 보물이다 보니 올라오는 대로 가두리로 몰어넣지예. 참치 활어 맛요? 회로 먹는 게 최곤기라.

맛 좋지예. 참말로 답니더. 살살 녹지예. 고구마, 감귤이 욕지도 특기(특산품)인데, 앞으론 참치도 특기가 될 겁니더.

올 겨울만 넘기면 성공입니더. 잘 키워야지예.”

 
 

새벽 4시30분. 어부가 잠을 깬다. 달빛은 깊고 바람은 맑다. 김복원(67) 씨에게 바다는 몸으로 문질러서 지켜낸 터전이다. 그가 6t짜리 배에 오른다. 엔진을 켠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하루는 바다로 나아가면서 시작된다. 30년 넘게 해온 바닷일은 검박했으나 비루하지 않았다. 그는 남해의 외딴섬 욕지도(경남 통영시)에서 나고 자랐다.

배 두 척이 욕지도의 적막을 가른다. 일출은 개벽처럼 찾아온다. 어선의 등불은 사위어들고 어부들의 몸은 분주하다. 9t짜리 어선에서 그물을 뜨던 이일기(53) 씨가 “욕지도는 경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장 아잉교”라며 웃었다. 9t짜리 배엔 이씨와 네 명의 어부, 6t짜리엔 김씨와 중국인 한 명이 탔다. 이 중국인은 월급 100만원을 받는다.

참다랑어가 올 여름 욕지도에 떼로 처음 몰려든 때는 7월14일. 두 주 동안 어부들은 230마리가 넘는 참다랑어를 잡았다. 무게 1~3kg으로 날렵한 몸매를 뽐내는 녀석들은 가두리로 옮겨져 자란다. 인성수산 최찬섭(54) 소장은 “2001년부터 이따금 잡히던 참치가 올해엔 떼로 올라왔으예”라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욕지도에서 가두리로 참다랑어를 키운다.

“하나, 둘, 셋. 으�!”

새벽 5시45분,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린다. 구획이 나뉜 60m의 정치망을 앞에서부터 떠 물고기를 앞쪽으로 몬 뒤 그물을 당긴다. 그물 안엔 은빛 멸치떼가 끓듯이 우글거린다. 쪽지(뜰채)로 녀석들을 퍼나르는 이씨의 팔뚝은 강건하다. 오늘 새벽엔 참다랑어가 잡히지 않았다. 참다랑어가 올라오면 뜰채로 건지지 않고 정치망과 연결한 가두리로 몰아넣어 키운다.

 

성격 급하고 품성 강퍅한 참치

참치로 불리는 참다랑어는 농어목 고등엇과의 물고기. 참다랑어 황다랑어는 주로 날것으로 먹고, 참치로 잘못 알려진 황새치는 대개 통조림으로 가공한다. “참치는 성격이 급하고 품성이 강퍅하다”고 어부들은 말한다. 뜰채에 몸이 닿거나 배로 옮기면 미친 듯 날뛰다가 피를 토하곤 죽는다. 고등어회 갈치회를 큰 도시에서 접하기 어려운 까닭도 녀석들의 비슷한 성정 때문이다.

어부들이 참다랑어 먹으라고 삽으로 푼 멸치를 가두리로 던져 넣었다. 녀석들이 수면으로 바싹 몰려와서 멸치를 낚아챈다. 물 위로 날아오르는 녀석도 여럿이다. 녀석들의 등이 아침 햇살을 받아 푸르게 빛난다. 9t짜리와 6t짜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덕동마을의 항구로 돌아간다. 어부들이 흘리고 간 생선을 갈매기 50여 마리가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욕지도에서 잡는 참다랑어는 어리다. 남태평양의 참다랑어는 몸길이가 최대 3m, 몸무게는 최대 560kg까지 자란다. 지난해 10월 그물에 걸린 13마리의 참다랑어는 3~5kg. 녀석들은 10개월 동안 가두리에서 새우 고등어 오징어를 먹으면서 컸다. 지금은 15~18kg이 나간다고 한다. 두 번의 겨울을 더 넘겨 50~60kg으로 몸집을 불리면 마리당 200만원이 넘는다.

9t과 6t 배의 어부들에게 품삯을 주는 회사는 욕지도에서 참다랑어 양식을 실험한다. 참다랑어는 등 푸른 생선 중 가장 비싸다. 한국에서 활어로 참다랑어를 먹는 예는 거의 없다. 참다랑어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일본(연간 100만t). 전 세계에서 잡은 참다랑어의 4분의 1을 일본이 소비한다. 한국은 일본 미국 다음으로 매년 25만∼30만t의 참다랑어를 먹는다.

 

“몸무게 100kg까지 키워봐야죠”

1 남해에서 손꼽히는 욕지도 어장. 2 9t짜리 배는 멸치로 만선을 이뤘다. 3 욕지도 바다에서 참다랑어가 먹이 다툼을 하고 있다.

일본은 500g 미만의 치어를 3~4년간 기른 뒤 출하하는 참다랑어 양식에 성공했다. 가두리에서 기른 참치는 현재 일본에서 kg당 5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호주 멕시코 스페인 포르투갈 크로아티아도 참다랑어를 양식한다. 한국에선 욕지도가 처음으로 참다랑어 양식에 나섰다. 한국국립수산과학원도 호주에서 양식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오후 1시, 여름나들이 온 행락객으로 분주한 덕동마을 항구에 어부들이 모인다. 스타일리시한 선글라스를 쓴 홍승표(40) 씨도 고향이 욕지도다. 20년 넘게 배를 탔다. 치어를 길러 밥을 벌다가 2001년부터 가두리에서 일한다. 고등어 전갱이를 주로 키우다 지난해 10월부터 참다랑어에게 밥을 준다. 몸무게 100kg까지 참다랑어를 키워 보이겠단다.

“지난해 겨울 수온이 9℃까지 내려갔을 때는 아찔했지예. 겨울철 바닷물이 차가우면 참치가 콱 죽어뿌지 않습니꺼.”

지름 20m, 깊이 12m의 가두리는 욕지도에선 가깝지만 뭍을 기준으로 하면 망망대해에 떠 있다. 홍씨를 태운 배는 지난해 잡은 참다랑어가 사는 가두리로 향했다. 살이 제법 오른 녀석들이 앞다퉈 오징어를 삼킨다. 13마리 가운데 2마리는 지난 겨울 죽었다. 멋도 모르고 쪽지로 참치를 떴다가 그렇게 됐다. 녀석들의 강퍅한 성정 탓이다.

   

가두리의 참다랑어는 새우 오징어 전갱이를 먹는다.

 

올해 잡은 참다랑어가 사는 가두리엔 새우를 밥으로 줬다. 새우를 골고루 나눠주는 홍씨의 손놀림이 능란하다. 200마리 넘는 참다랑어가 먼저 먹으려고 서로 부딪치면서 파닥거렸다. 참다랑어는 어부들이 주는 먹이와 가두리에 함께 갇힌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어부들은 뜰채로 죽은 잡어를 떠낼 때마다 참다랑어에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지난해 10월 양식에 나선 뒤로는 참치 맛을 한 번도 못 봤심더. 값나가는 보물이다 보니 올라오는 대로 가두리로 몰어넣지예. 참치 활어 맛요? 회로 먹는 게 최곤기라. 맛 좋지예. 참말로 답니더. 살살 녹지예. 고구마, 감귤이 욕지도 특기(특산품)인데, 앞으론 참치도 특기가 될 겁니더. 올 겨울만 넘기면 성공아잉교. 잘 키워야지예.”

욕지도에 감귤나무가 처음 들어온 때는 홍씨가 태어난 1968년이다. 제주도에서 묘목을 들여와 키웠는데 소출은 시원찮았다. 날씨가 더 따뜻해진 1990년대부터 작황이 좋아졌다고 한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정자(50) 씨는 “달콤한 욕지 감귤을 맛본 사람은 시큼한 제주 감귤을 못 먹는다”며 웃었다.

욕지도 감귤이 이름난 배경엔 지구온난화가 있다. 제주도 주변에서도 거의 잡히지 않던 참다랑어가 한려수도 턱밑까지 올라온 까닭도 수온이 예전보다 높아서다. 욕지도 어부들이 참다랑어를 가장 많이 잡은 7월18일의 수온은 지난해보다 2℃ 높았다. 8월에 처음 올라오던 녀석들이 올해엔 7월에 나타났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한류성 어종(명태 대구 청어)은 감소하고 난류성 어종(참다랑어 전갱이 갈치 고등어 멸치)은 증가했다. 그리고 아열대성 어종이 나타났다. 동해의 명태는 씨가 말랐으며 서해에서도 조기와 꽃게 대신 오징어와 멸치가 더 많이 잡힌다. 제주도 특산물인 자리돔이 남해로 북상하는 등 남해는 따뜻해지고 있다. 아열대 바다에 주로 사는 흑새치 백미돔 돛새치 보라문어 제비활치도 올라온다. 남해로 참다랑어가 떼지어 몰려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4월 전남 여수시 근해에서 3000여 마리가 잡혔다. 5월 말엔 제주도 해역에서 대형 선망어선 한 척이 7000여 마리를 잡는 대박을 터뜨렸다. 남해에서 몸길이 2m 넘는 대형 참다랑어가 그물에 걸린 일도 있다. 남해의 황금어장인 욕지도로 올라오는 참다랑어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보다 수온 2℃ 올라 7월에 출현

홍승표 씨가 바다에서 잡아올린 참다랑어를 뽐내고 있다.
한국은 최근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5℃ 올랐다. 그 기간 세계 평균기온은 0.74℃ 상승했다. 기온이 1℃ 올라갈 때마다 기후대는 200~250km 북상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70~80년 뒤 ‘욕지도 감귤’이 ‘대전 감귤’로, ‘양구 사과’가 ‘함흥 사과’로 바뀔지도 모른다. 바닷물 온도 상승이 가져올 어종 변화도 가속화할 것이다. 욕지도의 참다랑어 양식장은 인류의 삶을 통째 바꿔놓으리라고 보이는 지구온난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가져온 ‘꺼림칙한 선물’인 셈이다. 우주의 시간대로 보면 게 눈 감추듯 지구의 자원을 삼켜온 인류가 서로 약속한 대로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100년 뒤엔 충청도 근해에서 가두리로 참다랑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후 4시30분, 어부들이 ‘물을 보러’ 나간다. 9t과 6t 배가 엔진음을 내며 정치망과 가두리로 향한다. 오후에도 참다랑어는 올라오지 않았다. 한수대가 욕지도 부근을 지났기 때문이다. 뱃사람들이 쓰는 말 중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있다. 기술의 몫은 고작 3할. 운이 따라줘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참다랑어는 “참말로 달다”, “살살 녹는다”. 살코기를 말려 얇게 갉아내면 우동 국물을 우려내는 ‘가쓰오부시’가 된다. 에이코사펜타엔산(EPA), 도코사핵사엔산(DHA), 셀레늄이 많아 ‘어르신 건강’과 ‘아이들 두뇌’에 좋다. 머리칼과 피부결도 부드럽고 반짝이게 한다. 그래서 ‘등 푸른 보석’으로 불린다. 어부들은 이 좋은 참다랑어가 팔려나갈 날을 기다린다. 조바심을 낸다. 목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