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을 향해 자맥질하는 용의 등에 턱 하고 올라선 듯한 느낌’. 아무래도 이보다 더 걸맞은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경남 통영항 남쪽의 섬 연화도. 그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본 풍경을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섬이 몸을 뒤튼 끝자락으로 힘차게 바다 위로 솟구친 바위가 끊어질 듯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람한 바위들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모습이 마치 바다에 잠긴 용의 드러난 등과도 같았던 것이지요. 수반에 올려놓으면 그대로 최고의 명품 수석이 될 것 같은 경관. 그 풍경은 거대했고, 또 묵직했습니다. 사실 통영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을 소개한다는 건 적잖이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통영까지만 해도 먼 길인데다 부근만 돌아본대도 명소들이 즐비하니 그런 걸 다 놔두고 굳이 더 먼 섬까지 가야 하는 이유를 꺼내서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연화도라면 가능합니다. 섬의 풍경부터 거기 깃든 이야기까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까요. 통영까지 가서 다른 볼거리를 다 놓친다 해도 좋습니다. 연화도만 보고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연화도에서 기막힌 해안 풍경과 함께 만나야 할 것은 섬이 품은 향기입니다. 연화(蓮花). 연꽃이란 섬 이름에서 이미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화도에는 조선시대 지배세력의 수탈과 탄압에 시달리다 섬까지 쫓겨 들어온 가난한 이들의 간절한 기원과 수행자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어디 연화도뿐일까요. 인근 통영 바다의 욕지도, 두미도, 세존도에도 이상향에 대한 기원과 불국토에 대한 꿈이 잠겨있습니다. 하나하나 섬의 이름부터가 종교적 상징으로 읽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통영 바다 위에 꽃잎처럼, 혹은 징검다리처럼 떠있는 수많은 섬 중의 하나인 연화도에는 그 오래된 꿈이 절집으로, 암자로, 석불로, 또 석탑으로 서 있습니다. 절해고도에 암자를 지어 수도하던 이가 죽어 바다 위로 던져져 연꽃으로 피어났고, 그 뒤로 고승의 자취가 겹쳐지면서 가파른 해안 벼랑에 암자가 지어졌고,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아미타불이, 암자 앞에 해수관음상이, 그 곁에 오층석탑이 들어섰습니다. 이로써 연화도는 빼어난 풍경에다 수백 년 전 꿈과 기원의 그윽한 향기까지 얻게 된 것이지요. 아 참, 연화도에 가게 된다면 꼭 가져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넉넉한 시간’입니다. 연화도는 바삐 걷자면 서너 시간쯤이면 걸어서 다 돌아볼 정도의 크기지만,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그 멋진 섬을 그저 발끝만 보고 걷는대서야 안 될 노릇이니까요. 바다를 마주한 암자 마당에서 얕은 기왓담 너머의 바다를 오래 바라보고, 죽순처럼 치솟은 바위 벼랑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지나고, 전교생이 6명뿐인 섬마을의 작은 분교의 운동장도 차근차근 둘러보자면 하루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답니다. 느릿느릿 가는 섬의 시간에 맞춰 연화도에 머문다면 몸이 아닌 ‘마음을 쉰다’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 연화도에서 처음과 끝을 묻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蓮花島). 그 섬에 건너가려거든 먼저 통영 앞바다에 떠있는 섬에 얽혀있는 옛 문장 하나 읽고 가는 게 순서겠다. 통영 바다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더 좋겠고, 지도가 없다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행 배를 기다리며 한쪽 벽에 걸린 항로표지를 읽어봐도 좋다. ‘욕지(欲知) 두미(頭尾)하거든 문어(問於) 세존(世尊)하라.’ 한자로 된 말을 풀어보면 뜻이 이렇다. “처음과 끝을 알고자 하거든 세존께 물어보라.” 선문답 같은 이 글에 등장하는 한자어가 모두 통영 근해의 섬이나 포구의 이름이다. ‘욕지’와 ‘두미’ ‘세존’은 통영 앞바다의 섬 이름이고, ‘문어’ 역시 통영 앞바다의 섬 한산도의 포구 이름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위 징검다리 같은 포구와 섬 이름을 이어붙이니 불가의 선문답같기도 하고, 한편의 시같기도 한 문장이 완성된다. 문장이 먼저일까, 섬의 이름이 먼저일까. 아무런들 어떠랴. 통영의 바다가 종교적 사색을 일깨우는 한 줄의 문장으로 ‘장엄(莊嚴·불교적 의미의 장식)’돼 있는 셈이다. 그 장엄의 바다 가운데 섬 연화도가 있다. ‘연화(蓮花)’라면 곧 연꽃이다. 그 이름에서 불교적 이상향을 의미하는 ‘연화장(蓮花藏) 세계’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순서다. ‘처음과 끝을 알려면 세존께 물으라’ 가르치는 통영의 앞바다에 답변처럼 이상향의 불국토 연화도가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불가의 바다에 떠있는 연꽃 한 송이. 그게 그저 이름뿐만이 아니다. 연화도의 이야기들은 모두 불교와 만난다. 섬에는 평생 불법을 닦았다는 신비의 도인(道人)의 흔적과 불법 높은 고승의 자취도 있으며, 윤회의 신비스러운 바퀴도 구르고 있다. 연화도를 읽는 ‘키워드’는 불교이지만, 불법에 문외한이라거나 아예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부처든, 예수든 그걸 만든 게 누군지는 모른다 해도 섬의 곳곳에서 만나는 압도적인 풍광 앞에서는 절로 무릎을 꿇게 되니 말이다. 대체 누가 바다 위에 이런 비경을 빚었을까. 섬의 풍경만 보려 연화도로 건너간다고 해도 밑지는 셈속이 아니란 얘기다.
연화도를 둘러보는 데는 정해진 코스가 있다. 선착장이 있는 섬 동쪽에서 일단 연화봉에 올랐다가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섬끝의 동두마을까지 다녀오는 게 순서다. 이렇듯 간명한 코스 안에 연화도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있다. 선착장에서 섬끝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선착장까지 걸어서 되돌아 오는 시간까지 합친대도 도합 3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섬을 제 발로 걸어서 다 돌아보는 데 이 정도 시간이면 된다는 뜻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연화봉은 해발 212m. 선착장에서 출발해 30분 정도면 정상에 당도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줄곧 풍경에 취해 걷는 내리막의 순한 길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연화봉 정상에는 우람한 석조 아미타대불이 세워져 있다. 이 자리에 서보면 연화도에 왜 와야 하는지를 대번에 알게 된다. 연화도에서 최고로 꼽는 풍경이 바로 거기서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글로 옮겨보자. 발 아래로 해안절벽에 세워진 암자 보덕암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들면 섬끝으로 열도처럼 늘어선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용머리’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분명하다. 섬에 딸린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 영락없이 용이 자맥질을 하며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다. 그걸 바라보는 자리인 연화봉은 아마도 용의 등쯤 되겠다. 용의 등에 올라서 섬이 통째로 대양을 향해 헤엄쳐 가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런 비슷한 풍경은 어디서든 본 적이 없다. 바다와 섬이 보여주는 새로운 미감(美感). 자연 풍경에다가 이런 비유를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머리의 풍경이야말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 섬을 가득 채운 수행의 자취 연화도에는 사찰 한 곳과 암자 하나, 그리고 아미타대불과 해수관음상 등 석불 두 개, 오층석탑 하나가 있다. 크지 않은 섬에 사찰과 암자, 그리고 석불과 탑이 모두 들어선 것은 유례가 없다. 이것들은 모두 근래에 지어졌다. 마을 뒤편 절집 연화사는 1998년에 창건됐고, 그 절집에 딸린 암자 보덕암과 석불은 2004년에 지어졌다. 절집과 암자는 모두 쌍계사 조실과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두루 지낸 고산스님의 손으로 창건된 것이다. 이렇듯 작은 섬에 사찰과 암자를 모두 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연유는 5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연산군의 불교탄압이 극에 달했을 무렵, 서울 삼각산에 실리암이란 암자에서 수도하던 이가 이곳 외딴 섬 연화도로 도망쳐왔다. 연화도인이라 불렸던 그는 섬에서 몸 더럽힘없이 수행하며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했다. 마을 주민들은 도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로 찾아들어 수행에 정진한다. 사명대사를 따라 비구니가 된 여동생 채운, 그리고 출가 전 사명대사의 처 보월과 연인 보련도 이곳 섬까지 찾아들어왔다. 섬 사람들은 훗날 섬을 찾아든 사명대사가 연화도인의 환생이라 믿었다. 사명대사의 연화도 행은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바 없지만, 이곳 섬 주민의 구전뿐만 아니라 1974년에 발간된 전남 순천의 마을기록에도 연화도에 얽힌 도인과 사명대사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그게 마냥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리라. 연화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토굴이 복원돼 있다. 하지만 군대 벙커를 연상케 하는 복원된 토굴은 가짜다. 본래 토굴은 연화봉 반대편 쪽에 있다. 토굴은 굴이라기보다는 암벽의 오목한 자리인데 여기다가 섬 사람들이 성황당을 짓고는 연화도인이 불상 대신으로 삼았다는 매끄러운 둥근 돌을 모셔두었다. 성황당 옆에는 서툰 솜씨로 ‘富(부) 吉(길) 財(재)’란 글이 새겨진 돌판이 누워있다. 연화도인이 자신을 받아준 섬사람들을 위해 손가락으로 바위에 썼다는 글이다. 사찰측에서 암자를 지으면서 본래 자리에 토굴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신령스러운 토굴의 훼손을 우려한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엉뚱하게 반대편 능선에 복원된 토굴을 세워놓은 것이다.
# 기암의 해안절경 사이를 걷다 연화봉에서 내려서면 섬의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다. 곧 해안바위 끝에 매달린 암자 보덕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보덕암은 빼놓지 않고 꼭 들러봐야 한다. 가파른 비탈면에 세워진 보덕암은 위에서 볼 때는 단층이지만, 바다 쪽에서 건너다 보면 4층 건물이다. 암자 마당에서 보는 용머리의 풍경은 연화봉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또 다르다. 암자 처마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길게 이어진 바위섬들이 그려내는 풍경을 바라보는 맛이 어찌나 좋던지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보덕암에서 다시 되돌아나와 섬의 등을 타고 걷는 길은 줄곧 바위벼랑과 바다를 끼고 가는 최고의 코스다. 섬의 좁은 목에서 잠깐 시멘트포장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깎아지른 해안벼랑을 끼고 가는 코스로 이어진다. 이쪽의 해안벼랑은 삐죽삐죽 거대하게 솟은 바위들의 형상이 마치 죽순과도 같다 해서 ‘대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한발 한발 벼랑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점입가경이다.
|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연희의 옛 그림 속 인물에 말을 걸다_06 (0) | 2013.03.14 |
---|---|
차향만리_06 (0) | 2013.03.13 |
규슈 올레길 (0) | 2013.03.08 |
고연희의 옛 그림 속 인물에 말을 걸다_05 (0) | 2013.03.05 |
차향만리_05 (0) | 2013.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