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통영 蓮花島

醉月 2013. 3. 10. 01:30

연화도의 등뼈를 짚으며 걷는 트레킹 코스의 끝 부분에서 만난 풍경. 바닷가에 치솟은 바위들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지는 왼쪽 바위 끝에 선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짐작되고도 남는다. 뒤쪽으로 늘어선 거대한 바위들이 연화도의 최대 절경이라는 ‘용머리’를 이룬다.


‘대양을 향해 자맥질하는 용의 등에 턱 하고 올라선 듯한 느낌’. 아무래도 이보다 더 걸맞은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경남 통영항 남쪽의 섬 연화도. 그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본 풍경을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섬이 몸을 뒤튼 끝자락으로 힘차게 바다 위로 솟구친 바위가 끊어질 듯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람한 바위들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모습이 마치 바다에 잠긴 용의 드러난 등과도 같았던 것이지요. 수반에 올려놓으면 그대로 최고의 명품 수석이 될 것 같은 경관. 그 풍경은 거대했고, 또 묵직했습니다.

사실 통영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을 소개한다는 건 적잖이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통영까지만 해도 먼 길인데다 부근만 돌아본대도 명소들이 즐비하니 그런 걸 다 놔두고 굳이 더 먼 섬까지 가야 하는 이유를 꺼내서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연화도라면 가능합니다. 섬의 풍경부터 거기 깃든 이야기까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까요. 통영까지 가서 다른 볼거리를 다 놓친다 해도 좋습니다. 연화도만 보고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연화도에서 기막힌 해안 풍경과 함께 만나야 할 것은 섬이 품은 향기입니다. 연화(蓮花). 연꽃이란 섬 이름에서 이미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화도에는 조선시대 지배세력의 수탈과 탄압에 시달리다 섬까지 쫓겨 들어온 가난한 이들의 간절한 기원과 수행자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어디 연화도뿐일까요. 인근 통영 바다의 욕지도, 두미도, 세존도에도 이상향에 대한 기원과 불국토에 대한 꿈이 잠겨있습니다. 하나하나 섬의 이름부터가 종교적 상징으로 읽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통영 바다 위에 꽃잎처럼, 혹은 징검다리처럼 떠있는 수많은 섬 중의 하나인 연화도에는 그 오래된 꿈이 절집으로, 암자로, 석불로, 또 석탑으로 서 있습니다. 절해고도에 암자를 지어 수도하던 이가 죽어 바다 위로 던져져 연꽃으로 피어났고, 그 뒤로 고승의 자취가 겹쳐지면서 가파른 해안 벼랑에 암자가 지어졌고,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아미타불이, 암자 앞에 해수관음상이, 그 곁에 오층석탑이 들어섰습니다. 이로써 연화도는 빼어난 풍경에다 수백 년 전 꿈과 기원의 그윽한 향기까지 얻게 된 것이지요.

아 참, 연화도에 가게 된다면 꼭 가져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넉넉한 시간’입니다. 연화도는 바삐 걷자면 서너 시간쯤이면 걸어서 다 돌아볼 정도의 크기지만,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그 멋진 섬을 그저 발끝만 보고 걷는대서야 안 될 노릇이니까요. 바다를 마주한 암자 마당에서 얕은 기왓담 너머의 바다를 오래 바라보고, 죽순처럼 치솟은 바위 벼랑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지나고, 전교생이 6명뿐인 섬마을의 작은 분교의 운동장도 차근차근 둘러보자면 하루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답니다. 느릿느릿 가는 섬의 시간에 맞춰 연화도에 머문다면 몸이 아닌 ‘마음을 쉰다’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섬으로 떠나는 여정은 늘 뱃전에서의 설렘으로 시작한다. 이즈음 연화도로 향하는 카페리 욕지아일랜드호의 갑판에서는 햇볕이 부서지는 봄바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봄은 뭍에서도 그렇지만, 바다에서도 눈이 부시게 다가온다.





# 연화도에서 처음과 끝을 묻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蓮花島). 그 섬에 건너가려거든 먼저 통영 앞바다에 떠있는 섬에 얽혀있는 옛 문장 하나 읽고 가는 게 순서겠다. 통영 바다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더 좋겠고, 지도가 없다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행 배를 기다리며 한쪽 벽에 걸린 항로표지를 읽어봐도 좋다. ‘욕지(欲知) 두미(頭尾)하거든 문어(問於) 세존(世尊)하라.’

한자로 된 말을 풀어보면 뜻이 이렇다. “처음과 끝을 알고자 하거든 세존께 물어보라.” 선문답 같은 이 글에 등장하는 한자어가 모두 통영 근해의 섬이나 포구의 이름이다. ‘욕지’와 ‘두미’ ‘세존’은 통영 앞바다의 섬 이름이고, ‘문어’ 역시 통영 앞바다의 섬 한산도의 포구 이름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위 징검다리 같은 포구와 섬 이름을 이어붙이니 불가의 선문답같기도 하고, 한편의 시같기도 한 문장이 완성된다. 문장이 먼저일까, 섬의 이름이 먼저일까. 아무런들 어떠랴. 통영의 바다가 종교적 사색을 일깨우는 한 줄의 문장으로 ‘장엄(莊嚴·불교적 의미의 장식)’돼 있는 셈이다.

그 장엄의 바다 가운데 섬 연화도가 있다. ‘연화(蓮花)’라면 곧 연꽃이다. 그 이름에서 불교적 이상향을 의미하는 ‘연화장(蓮花藏) 세계’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순서다. ‘처음과 끝을 알려면 세존께 물으라’ 가르치는 통영의 앞바다에 답변처럼 이상향의 불국토 연화도가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불가의 바다에 떠있는 연꽃 한 송이. 그게 그저 이름뿐만이 아니다. 연화도의 이야기들은 모두 불교와 만난다. 섬에는 평생 불법을 닦았다는 신비의 도인(道人)의 흔적과 불법 높은 고승의 자취도 있으며, 윤회의 신비스러운 바퀴도 구르고 있다.

연화도를 읽는 ‘키워드’는 불교이지만, 불법에 문외한이라거나 아예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부처든, 예수든 그걸 만든 게 누군지는 모른다 해도 섬의 곳곳에서 만나는 압도적인 풍광 앞에서는 절로 무릎을 꿇게 되니 말이다. 대체 누가 바다 위에 이런 비경을 빚었을까. 섬의 풍경만 보려 연화도로 건너간다고 해도 밑지는 셈속이 아니란 얘기다.

바다를 굽어보는 바위벼랑에 지어진 연화도의 보덕암. 가파른 경사면에 지어져서 바다 쪽에서 보면 5층이지만, 섬 안에서 보면 맨 위층의 법당이 단층건물로 보인다.
# 대양을 향해 헤엄치는 용을 만나다

연화도를 둘러보는 데는 정해진 코스가 있다. 선착장이 있는 섬 동쪽에서 일단 연화봉에 올랐다가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섬끝의 동두마을까지 다녀오는 게 순서다. 이렇듯 간명한 코스 안에 연화도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있다. 선착장에서 섬끝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선착장까지 걸어서 되돌아 오는 시간까지 합친대도 도합 3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섬을 제 발로 걸어서 다 돌아보는 데 이 정도 시간이면 된다는 뜻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연화봉은 해발 212m. 선착장에서 출발해 30분 정도면 정상에 당도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줄곧 풍경에 취해 걷는 내리막의 순한 길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연화봉 정상에는 우람한 석조 아미타대불이 세워져 있다. 이 자리에 서보면 연화도에 왜 와야 하는지를 대번에 알게 된다. 연화도에서 최고로 꼽는 풍경이 바로 거기서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글로 옮겨보자. 발 아래로 해안절벽에 세워진 암자 보덕암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들면 섬끝으로 열도처럼 늘어선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용머리’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분명하다. 섬에 딸린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 영락없이 용이 자맥질을 하며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다. 그걸 바라보는 자리인 연화봉은 아마도 용의 등쯤 되겠다. 용의 등에 올라서 섬이 통째로 대양을 향해 헤엄쳐 가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런 비슷한 풍경은 어디서든 본 적이 없다. 바다와 섬이 보여주는 새로운 미감(美感). 자연 풍경에다가 이런 비유를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머리의 풍경이야말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 섬을 가득 채운 수행의 자취

연화도에는 사찰 한 곳과 암자 하나, 그리고 아미타대불과 해수관음상 등 석불 두 개, 오층석탑 하나가 있다. 크지 않은 섬에 사찰과 암자, 그리고 석불과 탑이 모두 들어선 것은 유례가 없다. 이것들은 모두 근래에 지어졌다. 마을 뒤편 절집 연화사는 1998년에 창건됐고, 그 절집에 딸린 암자 보덕암과 석불은 2004년에 지어졌다. 절집과 암자는 모두 쌍계사 조실과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두루 지낸 고산스님의 손으로 창건된 것이다. 이렇듯 작은 섬에 사찰과 암자를 모두 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연유는 5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연산군의 불교탄압이 극에 달했을 무렵, 서울 삼각산에 실리암이란 암자에서 수도하던 이가 이곳 외딴 섬 연화도로 도망쳐왔다. 연화도인이라 불렸던 그는 섬에서 몸 더럽힘없이 수행하며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했다. 마을 주민들은 도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로 찾아들어 수행에 정진한다. 사명대사를 따라 비구니가 된 여동생 채운, 그리고 출가 전 사명대사의 처 보월과 연인 보련도 이곳 섬까지 찾아들어왔다. 섬 사람들은 훗날 섬을 찾아든 사명대사가 연화도인의 환생이라 믿었다. 사명대사의 연화도 행은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바 없지만, 이곳 섬 주민의 구전뿐만 아니라 1974년에 발간된 전남 순천의 마을기록에도 연화도에 얽힌 도인과 사명대사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그게 마냥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리라.

연화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토굴이 복원돼 있다. 하지만 군대 벙커를 연상케 하는 복원된 토굴은 가짜다. 본래 토굴은 연화봉 반대편 쪽에 있다. 토굴은 굴이라기보다는 암벽의 오목한 자리인데 여기다가 섬 사람들이 성황당을 짓고는 연화도인이 불상 대신으로 삼았다는 매끄러운 둥근 돌을 모셔두었다. 성황당 옆에는 서툰 솜씨로 ‘富(부) 吉(길) 財(재)’란 글이 새겨진 돌판이 누워있다. 연화도인이 자신을 받아준 섬사람들을 위해 손가락으로 바위에 썼다는 글이다. 사찰측에서 암자를 지으면서 본래 자리에 토굴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신령스러운 토굴의 훼손을 우려한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엉뚱하게 반대편 능선에 복원된 토굴을 세워놓은 것이다.

보덕암의 법당 안 자그마한 마당에서 낮은 담 너머로 바라본 용머리 해안의 모습. 열도(列島)처럼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용이 대양을 향해 힘차게 자맥질을 하는 형상이다.



# 기암의 해안절경 사이를 걷다

연화봉에서 내려서면 섬의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다. 곧 해안바위 끝에 매달린 암자 보덕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보덕암은 빼놓지 않고 꼭 들러봐야 한다. 가파른 비탈면에 세워진 보덕암은 위에서 볼 때는 단층이지만, 바다 쪽에서 건너다 보면 4층 건물이다. 암자 마당에서 보는 용머리의 풍경은 연화봉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또 다르다. 암자 처마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길게 이어진 바위섬들이 그려내는 풍경을 바라보는 맛이 어찌나 좋던지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보덕암에서 다시 되돌아나와 섬의 등을 타고 걷는 길은 줄곧 바위벼랑과 바다를 끼고 가는 최고의 코스다. 섬의 좁은 목에서 잠깐 시멘트포장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깎아지른 해안벼랑을 끼고 가는 코스로 이어진다. 이쪽의 해안벼랑은 삐죽삐죽 거대하게 솟은 바위들의 형상이 마치 죽순과도 같다 해서 ‘대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한발 한발 벼랑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점입가경이다.

아들딸바위, 망부석, 만물상…. 이름처럼 기기묘묘한 형상의 거대한 해안바위들이 줄을 선다. 이윽고 암봉 사이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면 섬끝 용머리의 바위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당도한다. 여기쯤에서 열 가구 남짓의 작은 포구마을인 동두마을로 내려서면 얼추 섬을 다 둘러본 셈이다.

# 섬에서의 넉넉한 시간이 주는 선물

다시 선착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을을 잇는 시멘트 길을 택해도 좋겠고, 아무래도 아쉽다면 온 길을 되짚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연화도까지 갔다면 뱃시간에 쫓겨 바삐 걷기보다는 남녘의 따스한 봄햇살 속에서 느릿느릿 걷기도 하고, 더러는 치솟은 암봉의 끝에 걸터앉아 봄바다를 내려다 보는 호사를 넉넉히 누려보시길…. 그러자면 당일여정보다는 1박 2일쯤이 맞춤하겠다. 그건 연화도에 이틀을 봐도 다 못 볼 것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으로의 여정에 가장 필수적인 게 ‘여유’이기 때문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연화도를 제대로 만나겠다면 필히 가져가야 할 것은 ‘여유있는 시간’이란 얘기다. 이른 아침 부지런한 고깃배가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모습, 저물 무렵 푸른 어둠 속에 잠겨가는 섬마을 풍경, 그리고 파도소리 가득한 적요한 섬에서의 하룻밤을 지내보지 않고서야 어찌 섬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까.

넉넉한 시간은 제 발끝만 살피는 시선에서 벗어나 풍성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지금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쪽 섬들은 한때 지배세력의 탄압과 수탈을 피해 찾아들었을 곤궁했던 주민들이나 도주한 수행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에 다름 아니었을 터. 섬을 찾아든 주민들은 여기서 뭍에서 이루지 못했던 밥굶거나 헐벗지 않는 연화세상의 꿈을 꾸었겠고, 수행자들은 불국토의 세상을 기원했으리라. 그렇게 하나둘 모인 꿈의 흔적이 불교의 이름에서 비롯된 통영 앞바다의 섬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옛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이상향으로 꿈꾸었던 ‘헐벗지도 굶주리지도 않는 삶’이 실현된 지금의 나는 과연 행복한가. 연화도에 가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연화도 가는 길 = 통영항에서 연화도까지 배편은 하루 다섯 번이 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오전 6시 50분과 9시 30분, 11시, 그리고 오후 1시와 3시에 배가 뜬다. 연화도에서 통영으로 나가는 배는 오전 8시 30분, 11시 45분, 오후 1시 20분, 3시 30분, 5시에 있다. 출항시간은 통해해운(055-641-6181)에 문의하면 된다. 통영에서 연화도까지는 뱃길로 1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연화도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섬이다. 이웃한 욕지도의 면적과 비교하면 어림도 없지만, 인근의 작은 섬 우도나 초도, 갈도보다는 서너 배 이상 크다. 도보여행을 겸해 걸어 둘러보기에 딱 좋은 정도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연화도에는 깔끔한 민박집들이 제법 있다. 민박집 중에서 단연 추천할 만한 곳이 바다민박(055-648-9126). 1층은 주인 내외의 살림집이고 독립된 2층을 민박으로 내주는데 냉장고, TV, 주방 등을 갖춘 콘도형 방이 정갈하게 관리돼 있다. 연화도용머리횟집 민박(055-643-6915)은 식당을 겸하는 민박집인데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깔끔하다. 민박집에 부탁하면 배를 타고 나가 연화도의 해안절경도 둘러볼 수 있다. 5명 이상이라면 1인당 1만 원 남짓이면 배를 빌려 섬을 한바퀴 돌아볼 수 있다. 이즈음 연화도에서는 볼락과 도다리 등이 제맛이다. 겨울이 제철인 볼락은 이제 끝물이긴 하지만 살이 달다. 봄철 연화도 인근에서 잡히는 도다리의 고소한 맛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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