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에선 커피도 ‘가배茶’라 불렀다 탕과 차
차는 ‘차의 신’ 신농(神農·BC 2517∼?)이 발견하면서 비롯됐다고 중국 황실에서 발행한 ‘황제내경’과 중국의 차 책 ‘다경’에서는 말한다. “염제 신농은 차를 오래 마시면 힘이 생기고 즐겁다”는 기록도 보인다.
차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차라고 부르는 것은 사철 푸른 동백과에 속하는 차나무(Camellia sinensis L) 잎을 따서 발효가 일어나지 않게 돌솥에 덖거나 찌는 ‘녹차’, 찻잎을 조금 시들게 해서 향기가 배어 나오게 한 ‘반발효차(黃茶)’,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켜 만든 ‘홍차(紅茶)’, 찻잎을 쪄서 형태를 만든 후 일정 온도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후발효차(보이차)’, 꽃을 섞어 향기를 품게 만든‘꽃차(花茶)’ 등을 말한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생강차, 대추차, 구기자차, 인삼차, 국화차, 쑥차 등 차나무 잎이 아닌 꽃잎이나 잎을 말려 우려낸 물과 뿌리를 달인 물도 차라고 하며, 뽕나무와 감잎, 은행잎을 섞어 만든 퓨전 차도 차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고종황제 시절에는 수입한 커피까지 ‘가배차’라 불렀다.
이렇게 마시는 음료마다 차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조선 후기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다. 사라져가는 차 풍속을 되살리는 데 공이 컸던 그는 어원연구서 ‘아언각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귤피차(橘皮茶·귤나무 껍질), 목과차(木瓜茶·모과차), 상지차(桑枝茶·뽕잎차), 송절차(松節茶·솔잎차), 오과차(五果茶), 강차(薑茶·생강차) 등 차가 아닌 탕을 마시면서 관습적으로 차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라야 차라고 할 수 있다”며 바로잡기를 권했다.
그런데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가 아니어도 차라고 했던 기록이 고려시대부터 보인다. 고려 왕실 의서 ‘신집어의찰요방(新集御醫撮要方)’에는 박하총차가 소개돼 있다. 박하 잎과 부들을 함께 달인 물도 차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밖에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동의보감(東醫寶鑑)’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에도 꽃잎이나 열매 등을 달인 물에‘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선시대 왕명 출납을 맡았던 관아의 기록인 ‘승정원일기’에는 인조 원년인 1623년부터 1893년(고종 30)까지 271년간 왕이 마셨던 145가지 차 이름이 기록돼 있다. 갈근소엽차, 감국차, 감초차, 생밀차, 마른 죽엽차, 계피와 생각을 달인 계강차, 구기자차 등 뿌리와 잎, 줄기를 달인 차도 보인다. 귤차, 행귤차, 송절차, 금은화갈근차 등 꽃과 뿌리를 함께 달인 혼합 차와 국화차 등의 단일 차도 있다. 다섯 가지 껍질을 달여 마시는 오피차(五皮茶)와 분말차도 보인다. 영조가 1751년(영조 27) 10월 “차를 마시는 것과 탕제와 약은 하나다”라고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왕가에서는 탕과 차, 약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가벼이 마시는 음청류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차’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고 보면 일반적으로 찻잎이 아닌 대용차에 ‘차’ 자를 붙이는 것도 잘못된 표현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홍차 하면 영국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의 귀부인들이 은으로 만든 차제구 등으로 티테이블을 꾸미고 쿠키 같은 맛있는 과자와 함께 즐기는 우아한 차 자리가 연상된다. 그러나 귀부인의 품격을 높여주는 문화인 홍차가 사교장의 허브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불어오는 혹한을 이겨내야 하는 러시아인이나 에베레스트 산 같은 설산의 눈바람을 견뎌야 하는 네팔 산간지방 사람에게 홍차는 추위를 이길 수 있는 필수 음료다. 에스키모 등 북극 가까이에 사는 사람에게 홍차는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난로 같은 차다.
겨울에 홍차를 마시는 이유는 홍차가 오장 기열(氣熱)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홍차의 이러한 기운은 제다법(製茶法)에서 생성된다. 찻잎을 따 22~27℃에서 20여 시간 시들게 한 다음 잘 비벼 발효 과정을 촉진시킨다. 그 후 27℃ 정도의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암갈색이 되도록 찻잎을 충분히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찻잎은 등홍색(橙紅色)이 되고 홍차 특유의 향기와 오장을 돋우는 기운이 생긴다. 발효된 차는 은근한 불에 덖은 후 체에 밭쳐 부서진 찻잎을 걸러내고 마무리한다.
세계 3대 명차는 다르질링(Darjeeling), 우바(Uva), 기문(祁門) 홍차다. 인도 동북부 히말라야산맥의 고지대인 다르질링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르질링 홍차는 부드러운 맛과 달콤한 멜론 향이 특징이다. 스리랑카 중부 1200m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우바 홍차는 하이 실론티에 해당하는 고급차로, 꽃향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산뜻한 떫은맛이 특징이다. 중국 안후이성 기문에서 생산하는 기문 홍차는 밝은 오렌지색으로 겨울날 마음을 덥혀준다.
그 밖에 18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얼 그레이 경이 개발한 얼 그레이와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인도 아삼(Assam)의 아삼 홍차가 있다. 이들 홍차는 맛과 향이 강하면서 차 빛이 진한 적갈색을 띠어 아침에 우유를 첨가해 마시는 밀크티로 좋다.
최근에는 과실홍차 종류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차에 망고, 오렌지, 레몬, 사과 등 각종 과일 분말이나 말린 과육을 첨가한 과실홍차는 은은한 홍차와 상큼한 과일 향으로 인기를 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홍차가 생산됐다. 1950년대엔 홍차의 붉은색으로 양은냄비에 염색을 하는 등 공업용 색소로 사용했고, 옷감 염료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지금도 몇몇 제다 회사에선 온돌방에 찻잎을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으로 홍차를 만든다. 우리 찻잎은 소엽종으로 홍차 만들기에 적합하다.
홍차 우리기 : 티포트에 뜨거운 물을 부어 따뜻하게 데운 후 그 물로 찻잔을 데운다. 데운 찻잔에 찻잎을 3티스푼 정도 넣고 뜨거운 물 200cc를 약간 높은 위치에서 붓는다. 이렇게 하면 찻잎이 물을 만나 점핑하면서 맛을 고르게 한다. 2분 정도 지난 후 거름망에 밭쳐 따르면 3잔 정도가 나온다. 유리 티포트에서 우리면 차 색이 우러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홍차에 레몬을 얇게 썰어 넣으면 레몬티가 되고, 밀크를 타 마시면 밀크티, 사과 한 쪽을 홍차와 함께 넣고 우리면 애플티가 된다. 생강즙을 넣으면 생강홍차가 되는데 이는 감기를 다스리는 약차다.
생강즙 만들기 : 생강과 황설탕을 같은 양으로 준비한다. 생강은 껍질을 벗긴 후 잘게 썰어 믹서에 넣고 물을 조금 부어 곱게 간다. 설탕과 생강을 같은 양으로 섞어 병에 담아 일주일 정도 밖에서 숙성한 후 거름망에 밭쳐 병에 넣고 차가운 곳에 보관한다. 홍차가 한 잔이면 생강즙은 큰 스푼 하나 정도를 넣는다. 생강즙이 들어간 홍차는 떫은맛이 없어지고 달콤상큼한 맛을 자랑한다. 추위에 냉해진 가슴이 따뜻해지고 소화도 잘 된다. 홍차와 생강에는 기운을 돋우는 성분이 있어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 건더기를 불에 졸여 생강잼을 만들어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 먹으면 훌륭한 다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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