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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이 생존을 위한 인류의 숙명이었다 해도 축복이다. 생계를 위한 걷기는 숭고하지만 처연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살아남기 위한 걷기’를 뛰어넘어 ‘자유로워지기 위한 걷기’ 문화가 생겨났던 건 아닐까. 산책이나 산보 같은 번역어투의 모호함이 아닌 진짜 ‘걷기’는 정면보다는 나를 둘러싼 주변을 살펴보게 해주고, 내 주장보다 타인의 생각을 곱씹게 해준다. 걷기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바로 ‘길’이다. 본래부터 있던 길은 없다. 길은 사람의 수많은 발자취가 쌓여 만들어진 것. 인간이 만든 모든 길은 오솔길, 산길, 흙길, 돌길, 신작로, 아스팔트길을 차례로 지나며 문명과 자연을 아우른다. 이러한 길들이 이어지며 역사가 만들어졌다. 1000년이 넘는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를 잇는 750여 ㎞에 이르는 ‘성 야고보의 길’이 그 대표적인 예다. 흔히 ‘순례자의 길’이라 일컬어지는 이 길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서명숙 제주올레재단 이사장이 자신의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놓는 계기가 됐다. 서 이사장은 성 야고보의 길을 걷는 내내 고향 땅 제주를 떠올렸다고 했다. 이런 사연으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마을 사이에 놓인 올레길은 지난해 무려 100만 명의 도보여행자들을 불러들였다. ‘올레길’의 유례없는 성공 신화는 급기야 일본 규슈(九州)에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일본 규슈에서 도보코스 조성을 위해 연 100만 엔(1200여만 원)에 ‘올레’의 브랜드를 수입해 간 것이다. 이렇게 제주에서 이름을 빌려간 규슈 올레는 지난해 2월 4개 코스가 조성된 데 이어 1년 만인 지난 16일 또다시 4개 코스가 새로 놓였다. 올레길이 제주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규슈에 새로 놓인 4개의 올레 코스를 나흘에 걸쳐 느린 걸음으로 돌아봤다.
◆동서양이 현해탄 섬들의 군무에 어우러지다-나가사키현 히라도 코스 규슈(九州)는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중 한국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남한 면적의 절반 크기다. 2012년 규슈를 방문한 외국관광객 100만 명 중 한국인이 65만 명이고 그중 10%는 10회 이상 다시 찾았다고 한다. 선박과 항공 등 접근이 편하고 온천이 좋고 음식이나 숙박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규슈 북부의 서쪽 끝에 자리한 히라도(平戶)는 인구 3만5000명의 옛 영화를 간직한 항구도시다. 항구 앞 현해탄을 통해 당·송나라 등 중국, 한국 등과 교역이 이뤄졌고 1500년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양과의 해외무역항이었으면 아픈 일본 기독교 역사의 흔적이 산재한다. 이러한 히라도의 특징을 담아 올레길은 이어졌다. 항구 어디에서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1710년 개축한 히라도성을 바라보며 들어선 골목에는 1500년대 개업한 가게 등 목조 건물들의 생생한 전시장이 이어졌다. 일본 내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물어 재조명되는 중이란다. 상가를 빠져나와 809년 창건했다는 사이코지절에 들어서니 그 역사만큼 세월의 두께가 산문을 따라 늘어선 지장보살에 새겨져 있다. 눅눅한 숲길을 벗어나자 외딴집 밖에 “아무쪼 록드셔 주십시오”라는 서툰 한글 아래 사탕 등의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낯모르는 집주인의 배려가 친근했다. 민둥산 같은 해발 200m의 가와치토오게 초원은 정상에서 360도 파노라마 같이 히라도 내해를 볼 수 있다는데 이날은 오락가락한 짙은 안개가 드러내고 숨기를 반복하던 섬들의 군무를 더 아름답게 했다. 희미했던 섬들과의 거리는 바로 아래 마련된 야외 캠핑장에 내려서자 훨씬 가까워졌다. 말 그대로 가슴을 뚫고 섬들이 흔들흔들 춤을 춘다. 한국의 어지간한 야구장보다 시설이 뛰어날 것 같은 아카사카 야구장을 지나자 히라도 기독건축물을 대표하는 민트색 찬란한 자비엘기념교회가 반갑게 맞는다. 기독교 인구가 전국민의 1%도 안 되고 보통 성당의 교인이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미약한 교세지만 교회게시판에 붙은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신앙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에도(江戶) 막부시대 금교령으로 히라도에 숨어 있다 화형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들어선 돌담길은 천주교당의 뾰족탑과 쇼주지절을 고즈넉하게 품어 안아준다. 흰 매화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 사찰 경내를 지나면 자연히 히라도항과 마을들이 사정없이 두 눈을 호사하게 한다. 수령 400년의 큰 소철나무가 있는 주택가를 지나 소박한 기념품 상점가를 지나면 포경항으로 유명했던 곳답게 고래고기 전문점을 만날 수 있다. 고로케와 햄버거에서 특유의 풍미가 느껴진다. 특산품인 아고라고 불리는 말린 날치를 둘러보던 제주에서 온 중년의 올레꾼은 제주와는 다른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올레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섯 다리 건너 하늘 정원서 쉬다-구마모토현 아마쿠사 마쓰시마 코스
일본어에서 ‘아메 온나’는 비를 몰고 오는 여자라는 뜻으로 변화무쌍한 일본의 기후가 언어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필 이 코스를 걷던 날 ‘그녀’가 왔다. 우비를 챙겨입고 출발에 나선 첫 지점은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치슈관음상 앞이었다. 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관음상 주변은 흡사 제주를 닮았다. 규슈를 일본의 제주라 부르는 이유가 이런 것이리라. 규슈는 제주처럼 1960∼1970년대 최고의 신혼여행지이자 휴양지였지만 해외여행 열풍 속에 전만큼의 위력은 없다고 한다. 올레길를 통해 규슈의 알려지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을 새롭게 선보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섬답지 않게 아마쿠사에는 벼농사를 위한 논길들이 이어진다. 논길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생겨난 농촌마을의 한적함이 익숙하다. 이 길들은 예전에 걸었으나 잊어진 옛길을 다시 찾아내 복원한 길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 흘러들어오고 나가는 치슈해안을 따라 산길과 바닷길을 1.7㎞ 오르내리다 보니 일본의 해안길은 흔적을 남긴 나무 잎사귀들 덕분에 푹신하다. 빗속, 바닥에 머무른 나무향이 서서히 푹 가라앉으며 거대한 바위가 아름다운 센켄노모리다케를 향해 오르는 가쁜 심장박동을 따라 스멀스멀 깊이 파고든다. 숲이라 하기에는 좀 뭐한 해발 234m의 센켄노모리다케에서 보는 소나무산 밑 전원과 섬과 섬을 연결한 다섯 개의 다리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기암괴석과 쌍을 이룬 노송이 있는 센간산에 오르면 1637년 농민반란군의 지휘관이었던 방년 16세의 아마쿠사 시로가 사지의 길을 앞두고 동료들과 더불어 섬들을 바라보며 최후의 잔치를 벌였다는 역사의 현장이 궂은 날씨만큼 쓸쓸하다. 산을 내려와 도로에 접어들기 전 천공의 정원이란 환상적인 이름의 쉼터는 소나무숲과 다리, 섬, 바다, 집들이 더 가까이 한데 어울려 나그네의 발길을 못내 붙잡는다. ‘용의 족탕’에 발을 담그고 올레를 마무리하는 항구에는 던지기만 하면 잡힌다는 참돔낚싯배와, 만날 확률 95%라는 돌고래탐방선이 사이좋게 파도에 넘실대고 있었다. 직통 교통편이 없을 정도로 규슈에서도 오지지만 생으로 먹는 보리새우와 진주 양식의 본향이다.
◆창조신화와 전설을 품은 협곡에 들어서다-미야자키현 다카치호 코스 신화와 전설의 고장이라는 문구가 이 작은 산골 곳곳에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태양신 아마테라수오카미가 내려왔다는 천손강림의 성지로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요카구라(夜神樂)가 매일밤 공연되는 다카치호(高千穗)신사에서 길은 출발한다. 다카치호신사는 2000년 전 창건된 유서 깊은 신사로 수령 800년의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이른 시간 다홍색 전통치마 차림의 신녀는 나무 빗자루질로 경건함을 더하고 신사를 빠져나온 뒷길은 오랜 발걸음에 닳아가는 돌계단으로 안내한다. 돌계단을 벗어날 즈음 물소리가 들리더니 80여m 높이 절벽이 7㎞ 이어진 깊은 다카치호 협곡이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풍광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협곡길 따라 가지런히 난 돌길은 깊이 있는 울림을 던지고 12만 년 전 아소산의 분화 때 흘러나온 화산쇄설류가 긴 시간을 거쳐 침식돼 깊은 계곡에 만들어 놓은 주상절리 속에서 미나이 폭포가 물을 쏟아내고 그 아래로 보트가 노를 저으며 스쳐간다. 이 협곡의 백미를 감상하기 안성맞춤인 보트는 3명 정원으로 20분간 빌려 탈 수 있어 언제나 줄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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