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충북 단양

醉月 2017. 8. 5. 08:01

충북 단양의 단양역 강 건너편 만학천봉 위에 들어선 전망대 ‘만천하 스카이워크’. 지난달 중순에 문을 열어 개장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신상’ 관광지다. 전망대에서 뻗어 나간 스카이워크는 바닥이 투명유리로 마감돼 있다.


바야흐로 여름 휴가의 절정입니다. 일상에 쉼표를 찍어놓고 너도나도 떠나는 때입니다. 늘 이맘때면 휴가 목적지가 고민입니다. 피서지 인근 도로는 어디나 극심한 차량정체에 시달리고, 관광지마다 몰려든 인파로 가득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북적거리며 다니는 게 여름 휴가라고는 한다지만, 모처럼 찾은 피서지에서 ‘휴식’은커녕 ‘전쟁’을 경험하다 돌아온대서야 될 말입니까. 그렇다면 올여름 휴가로 여기는 어떻겠습니까. ‘신상(새로운 상품)’ 명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충북 단양 말입니다. 단양은 ‘단양팔경’의 명성으로 익히 알려진 여행지입니다만, 이제는 오히려 그 명성이 매력을 가리는 듯합니다. 오래된 명소를 앞세우다 보니 단양이‘낡은 여행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즈음의 단양은 다릅니다. 단양팔경을 빼놓는다 해도 다채로운 매력의 여행 목적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남한강의 물길을 굽어보는 운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고,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에 소름이 돋는 동굴과 깊은 그늘을 드리운 계곡이 여럿입니다. 명물이 될 것임이 분명한, 남한강변의 수직 벼랑에다 매달듯 달아놓은 길인 ‘잔도’도 곧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단양에서는 예언서 정감록이 ‘변란이 닿지 않는 땅’으로 꼽았던 외딴 오지마을 의풍리에서 만나는 때 묻지 않은 산촌 풍경과 초록의 자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풍마을로 이어지는 한적한 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넘으면 깨꽃이 한창 피어나고 고추가 붉게 익어가는 산골 마을과 호젓한 계곡에 들어선 근사한 야영장쯤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 수면 위에 사진처럼 찍힌 남한강 위를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날거나, 맑은 강물 위를 래프팅 보트로 노 저어 가는 경험은 단양 여행의 알찬 부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독자들에게 단양의 새로운 명소와 오지마을로 향하는 길로 떠나는 여행을 권합니다. 줄곧 소백산 자락을 따라가는 이 길 위에서는 잘 익은 옥수수밭과 청량한 초록의 숲, 매미의 순한 울음과 은은한 독경 소리 울려 퍼지는 고즈넉한 절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곳들은 모두 여름 휴가철에도 붐비지 않고, 다녀와서도 평화로운 여름날의 시간으로 오래 기억될 만한 곳들입니다.


충북 단양의 두산활공장을 이륙한 패러글라이더가 남한강 강변 마을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두산활공장은 숙련자와 함께 체험비행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활공의 재미도 재미지만 해발고도 550m의 활공장에서 보는 경관도 빼어나다.




# 단양팔경은 잊어라…단양의 새 명소

영락없이 머그컵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독특한 형상이다. 충북 단양의 단양역 강 건너 만학천봉 정상에 들어선 전망대 ‘만천하 스카이워크’의 모습이 꼭 그렇다. 지난달 13일에 문을 열었으니 이곳이야말로 시쳇말로 ‘신상’ 관광지다.

단양은 ‘단양팔경’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전통적인 관광지다. 대표 이미지가 변변히 없는 다른 지역의 입장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겠으나, 이런 오래된 전통적인 이미지는 한편으로 단양을 ‘낡은 관광 목적지’쯤으로 취급하게 한다. 비유하자면 ‘천편일률적인 연기로 먹고사는 노배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명성이야 익히 알지만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기대가 사라지고 만 그런 여행지 말이다.

그런데 이즈음 단양에 새롭고 흥미진진한 곳들이 꾸준히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 전통적인 관광지의 낡은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다. 이제 막 새로 만들어진 곳들도 있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조명해 신선하게 느껴지는 곳들도 있다. 단양에서 ‘도담삼봉’이나 ‘사인암’처럼 잘 알려진 곳들을 다 빼놓고 새롭게 만들어진 곳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아 나섰던 건 이런 ‘신상’ 단양의 매력을 보기 위함이었고, 그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가 남한강변에 들어선 만천하 스카이워크였다.

▲ 위 사진은 철골 구조로 이뤄진 스카이워크의 외형. 컵을 엎어놓은 형상이다. 아래는 스카이워크 내부를 나선형으로 돌며 360도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보행로.
만천하 스카이워크에 오르기 전에 이름 이야기부터 짚고 가자. ‘만천하’라는 이름은 전망대가 딛고 선 바위 ‘만학천봉’에서 왔다. 만학천봉은 ‘만 개의 골짜기’와 ‘천 개의 봉우리’ 사이에 우뚝 솟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데, 가서 보면 과장도 이런 과장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로부터 이 바위의 영험함이 널리 알려져 불자와 무속인들이 자주 찾았다고 전한다. 만학천봉 아래 벼슬아치가 입는 도포를 닮은 ‘옷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아래 남한강의 물가에서 방생법회가 수시로 열렸고, 과거급제를 바라는 이들의 치성도 끊이질 않았단다.

# 하늘 걷는 전망대, 물 위를 걷는 잔도

만천하 스카이워크는 산 아래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산 뒤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전망대 아래까지 가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는 따로 벽이 없이 항아리 형태의 철골 구조 뼈대로 서 있다. 그 형상이 마치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하다. 전망대 정상까지는 내부의 나선형 보행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암나사의 홈처럼 전망대 내부를 빙빙 감아 도는 길을 놓아둔 건 개방감 넘치는 공간에서 360도의 조망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다. 보행로의 방향에 따라 소백산과 월악산, 금수산의 유장한 산줄기가 바라다보인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허공으로 뻗은 길이 세 개 있다. 발이 셋인 까마귀, 즉 ‘삼족오’에서 따온 디자인이라는데, 그중 허공으로 가장 길게 나간 길 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다른 두 길과 달리 이 길은 바닥이 유리로 마감돼 있다. 전망대 높이가 남한강 수면에서 120m니 유리 바닥 위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웬만한 강심장도 오금이 저린다.

스카이워크 정상에 올라서면 남한강 물이 휘감은 단양읍 일대는 물론이고 단양읍에서 단양역으로 강을 건너가는 상진대교와 철교, 그리고 충주호 상류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의 탁 트인 시야가 시원시원하다. 장마 뒤끝이라 강물도 어디나 그득하다. 전망대 아래에는 외줄에 의지해 980m를 내려오는 스릴 만점의 집라인 코스가 설치돼 있다. 내년에는 레일을 따라 내려가는 모노레일 알파인 코스터도 선보일 예정이다.

스카이워크 인근 남한강변의 험한 벼랑에는 개장을 코앞에 두고 있는 ‘수양개 역사문화길’이 있다. 강가의 벼랑을 지나는 구간에 선반을 매달듯 길을 달아맨 이른바 ‘잔도’로 연결되는 길이다. 폭 2m의 잔도는 1.12㎞ 남짓 이어지는데 수면 위 20m 높이의 암벽을 지나는 구간만 800m 정도다. 접근이 불가능한 암벽을 따라 만들어진 이 길은 중국 장자제(張家界)의 ‘텐먼산(天門山) 잔도’를 연상케 한다. 당초 7월에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마무리 작업 중인 절벽 낙석방지턱 공사가 늦어지면서 이달 중순 이후 개장할 계획이다.

# 산과 강에서…패러글라이딩과 래프팅

단양 여행에서 새롭게 뜨고 있는 게 바로 패러글라이딩 체험이다. 단양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숫자가 가장 많다. 양방산에만 다섯 개가 있고, 두산에도 세 개의 활공장이 있다. 숙련자가 관광객을 태우고 비행하는 이른바 ‘탠덤비행’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이 바로 단양이다. 단양에 이처럼 패러글라이딩이 활성화된 건 최적의 날씨와 지형 덕분이다.

단양은 비가 내리는 날이 많지 않고 급격한 날씨 변화도 드물다. 이즈음 같은 한여름에도 상승기류가 쉽게 만들어진다. 남한강변에 펼쳐진 너른 초지는 착륙장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지역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비행 가능일이 연평균 70일가량에 불과하지만, 단양에서는 연간 300일에 달한다.

단양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은 단연 두산활공장이다. 이곳을 찾은 젊은 여행자들은 망설임 없이 패러글라이더에 몸을 맡긴다. 맑은 날이면 젊은이들의 함성과 함께 강을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더 캐노피가 꽃처럼 펼쳐진다. 꼭 패러글라이딩을 즐기지 않아도 좋다. 해발고도 550m의 이륙장 끝에 서면 가곡면 덕천리 일대를 사행하는 남한강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륙장 주변에는 펜션과 커피숍 등도 들어서 있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서늘한 바람과 함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단양에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대표 레포츠가 바로 남한강 래프팅이다. 영춘면 오사리에서 상리 느티마을까지 이어지는 7㎞ 구간이 대표적인 래프팅 코스다. 수묵화 같은 풍경을 배를 저어 지나는데 출발부터 도착까지 2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강원지역의 래프팅 코스와 달리 유속이 느린 편이어서 배를 젓다가 수시로 물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힌다. 종착 지점에서 가까운 용진대교 아래에는 비명을 부르는 제법 거센 급류도 있다.

충북 단양 영춘면의 남한강 물길에서 래프팅을 하는 모습. 단양의 래프팅에서는 급류의 스릴보다 평화로운 강변풍경을 즐겨야 한다. 용진대교 아래 포말이 부서지는 급류가 딱 한 곳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구간에서 물길이 순해 노를 젓다 강물에 뛰어들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 호젓한 계곡의 명소…남천계곡

단양에는 소백산의 능선이 빚어 놓은 계곡이 많다. 단양 남쪽의 선암계곡은 상선암과 하선암으로 이름난 곳이고, 어의계곡과 새밭계곡, 다리안계곡, 천동계곡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계곡미와 맑은 물을 자랑한다. 품은 계곡이 여럿이어서 어떤 곳이든 한여름 피서철에도 그리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단양 계곡의 매력이다.

단양의 계곡 중에서 첫 번째로 손꼽을 만한 곳은 남천계곡이다. 남천계곡에는 구룡팔문(九龍八門)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계곡 위쪽의 소백산 여덟 봉우리에 감춰져 있는 아홉 개의 문을 찾아 열면 새 세상이 열린다는 얘기다.

남천계곡에는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남천야영장이 있다. 야영장은 캠핑사이트 예약자에 한 해 야영장 출입을 허용한다. 피서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피크 시즌에도 야영장이 끼고 있는 우거진 숲 속의 상류 계곡이 호젓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남천야영장에는 일반 캠핑사이트인 ‘오토존’ 외에 텐트와 그늘막을 쳐놓은 ‘풀옵션존’이 있다. 풀옵션존을 예약하면 빈손으로 찾아가더라도 미리 쳐놓은 텐트는 물론이고 침구와 조리도구까지 모두 빌릴 수 있다. 대여요금도 저렴한 편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예약의 어려움이다.

야영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예약 통합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예약을 받는다. 여름 성수기인 오는 15일까지는 추첨을 통해 이미 사이트가 배정됐고, 8월 말까지 예약도 지난 1일 마감됐다. 아쉽지만 내년 여름을 기약하거나 가을 여행을 겨누는 수밖에 없다.

# 깊은 오지에서 가장 유순하게 사는 사람들

단양에서 가장 깊은 땅이라면 영춘면 의풍리다. 영춘면 소재지에서 935번 지방도로를 타고 베틀재를 넘어 한참을 달려야 하는 곳. 충북 단양과 강원 영월, 경북 영주가 만나는 소백산 자락의 경계쯤에 의풍마을이 있다. 태백과 소백 사이, 그러니까 정감록에서 능히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길지로 지목한 ‘양백지간(兩白之間)’의 땅, 의풍리는 그곳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이 뻗어내린 산줄기와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받아내고 있는 땅이다.

소백산 아래의 청량한 자연과 오래된 마을 풍경 말고는 의풍리에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다. 의풍리는 첩첩한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도 땅이 척박해 옥수수나 오미자 말고는 소출마저 보잘것없어 가난했던 마을이다. 주민들은 “정감록의 예언대로 재난은 들지 않았으되, 길지나 명당으로 치켜세우기에는 턱없이 어려운 살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의풍마을에서 봐야 하는 건 어려웠지만 따스했던 시절의 농촌 풍경의 추억이다. 오지 땅을 지키며 대대로 살아온 주민 중 8할은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노인들만 남았지만, 그 빈자리에 바쁜 삶과 치열한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도회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옥수수와 고추를 심고 오미자와 수세미를 기르는 주민들의 형편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토박이 노인들에게 가난이 ‘숙명’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산골로 스스로 찾아든 이들의 가난은 ‘자발적’이라는 것. 의풍마을에는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과 가난을 자발적으로 택한 이들이 모여 정답게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유순하게 사는 모양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가는 길=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영동고속도로로 만종분기점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북단양IC로 나오면 단양읍내로 들어가는 5번 국도를 만난다. 5번 국도 어의곡 교차로를 지나 상진대교 건너기 전 상진교차로에서 오른쪽 샛길로 접어들면 새로 개장한 ‘만천하 스카이워크’다. 스카이워크 아래 매표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를 산 뒤 무료 셔틀버스 편으로 스카이워크 아래까지 올라간다. 스카이워크 관람료는 2000원. 집라인 이용료는 3만 원인데 단양에서 쓸 수 있는 단양사랑상품권 5000원권을 돌려준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남천야영장은 온달관광지 인근에 있고, 온달관광지에서 59번 도로를 따라 영춘면 소재지까지 가서 935번 지방도로로 베틀재를 넘으면 단양의 오지마을 의풍리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단양읍의 대명리조트 단양(043-420-8311)이 최적의 숙소다. 객실이 700개가 넘는 매머드급이라 극성수기만 피하면 객실을 얻기는 어렵지 않다. 소선암휴양림이나 황정산휴양림, 새밭계곡 등에 캠핑장이 있다. 농촌체험마을인 한드미마을(043-422-8416)의 민박도 괜찮은 선택이다.

단양읍의 구경시장에는 다양한 식당이 몰려 있다. 구경시장 손두부(043-421-5999)는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 요리를 내는 집이다. 양념을 하지 않은 고소한 맛의 ‘맑은 순두부’가 추천메뉴다. 외지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다리식당(043-423-3960)은 단양 육쪽마늘을 넣은 마늘솥밥을 내오는데, 솥밥정식을 주문하면 마늘샐러드, 마늘장아찌, 마늘맛탕 등 15가지 안팎의 반찬과 함께 육회, 수육 등이 나온다.

단양읍내 돌집식당(043-422-2842)은 곤드레돌솥밥과 더덕, 육쪽마늘에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 먹는 ‘삼합’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