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경남 함양의 조망명소

醉月 2017. 7. 12. 21:56

지난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됐다가 이태 전에야 복원된 경남 함양의 농월정. 정자는 월연암이라 이름 붙여진 거대한 바위를 딛고 서 있는데, 바위에는 물살이 씻고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가득하다.


지리산은 ‘몸으로 만나야 하는’ 산입니다. 지리산의 능선으로 들어가 안개로 휘감긴 이른 새벽, 혹은 은하수가 쏟아지는 여름밤에 두 발로 산을 딛고 서봐야 지리산을 비로소 알 수 있지요. 지리산을 보려면 산이 드러내는 경관뿐만 아니라, 그 산 안에 든 스스로의 모습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이며 고된 종주로 딱딱해진 근육, 길고 짙은 숲에서의 청량한 들숨과 날숨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지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수는 없는 일. 지리 능선은 길고, 종주는 이른바 ‘산꾼’들에게도 힘겹습니다. 지리산이야말로 의지와 결심을 바쳐야만 오를 수 있는 산이니 말입니다. 마음이야 누구나 낼 수 있지만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한 발 뒤로 물러서 지리산을 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그곳이 지리산이라면 동의할 수 없지만, 때로 한 발쯤 뒤로 물러서 바라보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니까요.

LIFE&Style은 이번 주에 남으로는 지리산을, 북으로는 남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는 경남 함양 땅에서 ‘보는 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리산의 주 능선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암자에 새로 놓인 화룡점정의 조망처를 찾았고, 남덕유에서 흘러내린 금천의 물길이 그려낸 풍경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자도 찾았습니다.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소실된 이후 10년 넘게 복원이 미뤄져 아쉬웠던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이 이태 전에 새로 지어졌더군요.

이제 장마가 가면 폭염의 한여름이 시작됩니다. 휴가의 긴 행렬이 곧 시작되겠지요. 더위를 식히자면 바다나 강, 계곡을 찾아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이렇게 뒤로 물러서 쥘 부채 하나 챙겨 들고 느긋하게 풍경 속을 소요하는 풍류는 어떨까 싶었습니다.

깊은 산중 암자에서 독경 소리를 들으며 지리의 능선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지는 자리에 걸터앉거나, 물길을 끼고 있는 정자 마루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면서 처마와 기둥이 만든 사각 틀 안에 풍경을 담아보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정 덥다면 물가에서 탁족이나 등목을 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한옥마을의 고택 대청마루에서 소나기 쏟아지는 날 마당의 흙냄새를 맡는 것도 좋겠고, 거기서 목침을 베고 혼곤한 낮잠을 자도 좋겠습니다. 고택 툇마루에서 은은한 솔향이 감도는 영남지역의 이름난 전통주 ‘솔송주’ 한 잔, 또는 지난봄 첫 잎을 덖어 만든 우전차 한 잔을 앞에 둔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습니까. 아, 이건 슬쩍 알려드리는 건데 문재인 대통령도 평소 솔송주를 증류해 만든 술을 즐겨 마신답니다.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보는 최고의 조망처로 꼽히는 경남 함양 금대산 자락의 금대암. 암자 안에 새로 지은 나한전 옆의 큰 바위 위가 금대암에서도 최고의 명당이다. 여기 올라앉으면 천왕봉은 물론이고 하봉부터 칠선봉까지 지리산의 긴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지리산을 보는 최고의 자리

지리산의 주 능선을 조망하는 명당 중의 명당이 경남 함양 땅에 있다. 함양의 마천면에는 기세 좋게 지리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금대산(852m)이 있다. 그 산자락에 놓인 ‘갈 지(之)’ 자의 가파른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암자 금대암이다. 금대암이야말로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는 최고의 조망처다.

금대암의 중심이 되는 본전인 무량수각 앞마당. 시선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지리 능선을 마주하고 서면 다른 설명이 없어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우뚝 일어선 산의 능선이 하늘에 금을 그어놓은 듯하다.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 영신봉, 칠선봉…. 봉우리를 세고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다. 모르긴 해도 1300여 년 전쯤 여기다 암자를 처음 세운 이도 이런 경관 때문에 이 자리를 택했을 것이었다.

무량수각 앞마당뿐만 아니라 금대암으로 드는 길 어느 자리에 서도 뒤를 돌면 거대한 지리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암자 안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따로 있다. 이른바 ‘화룡점정’이라 부를 만한 조망의 명당인데 근래에 무량수각 뒤쪽에다 나한전을 새로 들이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자리다.

새로 지은 나한전 옆에는 전각과 딱 붙어 있다시피 한 집채만 한 바위가 있다. 바위는 예전에도 그곳에 있었지만, 워낙 바위가 커서 나한전을 세우기 전에는 그 위로 올라설 수 없었다. 나한전을 놓는 과정에서 바닥을 높이면서 바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바위 위가 바로 지리산을 바라보는 최고의 자리다. 지리산과 마주한 바위 위에 앉으면 저절로 ‘산을 보는 자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앉아서 지리산을 대하는 느낌은, 법당 아래서 서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평안하게 앉은 몸이 마음을 이완시키고,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느긋하다. 무언가 자연에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여기 앉으면 시간을 잊는다.

금대암보다 더 쉽게 가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리산 조망 명당이 삼봉산 아래 있다. 함양읍에서 마천면 방향으로 1023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오도재를 넘어 만나는 ‘조망공원 휴게소’다.

지리산 전망이 빼어난 자리에 휴게소를 들여서 이름을 ‘조망’으로 지었을 정도다. 금대암에서보다 뒤로 한참을 물러났으니 눈에 들어오는 능선은 더 길다. 금대암에서 오른쪽 시야의 끝이 칠선봉인데, 여기서는 그 오른쪽으로 덕평봉, 벽소령, 형제봉, 반야봉까지 펼쳐진다. 지리산 주 능선의 전부를 여기서 볼 수 있는 셈이다.

휴게소의 정자에는 ‘지득정(智得亭)’이란 현판을 걸었다. ‘지리산을 얻는 정자’란 뜻인데 여기가 시야의 규모는 크지만, 산이 멀어 지리산이 주는 압도의 느낌은 금대암에서 보는 것에는 못 미친다. 휴게소에서 종일 크게 틀어놓고 있는 트로트 노랫가락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 물을 보는 자리…농월정

금대암이 ‘산을 보는 자리’라면, 함양에서 ‘물을 보는 자리’는 단연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화림동’의 정자 농월정이다. 함양 안의면에서 육십령으로 이어진 26번 국도, 그 도로를 끼고 흐르는 금천의 물길 주변은 예로부터 절경으로 알려져 화림동이라 불렸다. 물가의 경관이 아름답다면 풍류를 누리는 정자가 없을 수 없다. 화림동 계곡에는 ‘8담(潭) 8정(亭)’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제법 규모가 큰 누정(樓亭)만 꼽아도 농월정을 비롯해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이 있다.

이들 정자 중에서 가장 규모가 당당하고 풍류가 넘치는 게 농월정이다. 농월(弄月). 그대로 풀면 ‘달을 희롱한다’는 뜻이지만, 본디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온 말일 테니 ‘맑은 달 아래 풍류’쯤으로 해독하게 된다. 이름뿐만 아니라 물가의 흰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는 정자는 실제로 물과 함께 달빛을 감상하기에 더없는 자리다. 그러나 농월정이 품고 있는 달의 의미는 이보다 더 깊다. 정자는 풍류를 넘어 정자 주인의 상처와 내면을 드러낸다.

농월정의 주인은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병자호란의 시기를 건너간 선비 박명부다. 예조참판을 지내던 중 병자호란을 겪으며 강화를 반대하고 끝까지 청에 맞서 싸우고자 했으나 인조가 결국 항복하고 무릎을 꿇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서 은거한 곳이 바로 여기 농월정이다.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물러났던 그가 과연 여기서 단지 산수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달을 희롱’하려 했던 것일까.

그 해답이 농월정 중수기에 있다. 중수기에는 하나같이 ‘농월’이란 이름을 설명하면서 이태백이 시 ‘고풍 10수’에서 ‘밝은 달(明月)’에 빗댄 중국 제나라의 노중련이 등장한다. 노중련은 과연 누구일까. 그는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책략가였다. 진나라가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전멸시키고 조나라 도읍을 포위했을 때 기막힌 계략으로 풍전등화의 조나라를 구해냈다. 병자호란을 뼈저리게 겪었던 박명부는 진나라를 청나라로, 풍전등화의 조나라를 조선에 대입했을 것이고, 최고의 책략으로 조나라를 구해냈다는 노중련의 지혜를 갖지 못한 것을 자책했을 것이었다. 이태백의 시 구절을 따다 이름으로 삼은 ‘농월’에는 추앙과 부러움이 함께 깃들어 있을 것이었다.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금천의 물길이 흘러가는 화림동에 세운 정자 거연정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본 모습. 기둥과 들보가 만들어낸 액자 안에 초록이 그득하다.


# 밖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자리

농월정은 근래 다시 지어진 것이다. 400년 내력의 정자는 지난 2003년 10월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전소된 뒤에 곧 다시 지어지지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빈터로 남아 있다가 2015년에야 다시 세워졌다. 희고 너른 암반 위에 돌기둥을 받치고 있는 농월정은 시간의 묵은 맛은 없지만 우선 규모가 당당하고 앉아 있는 자리도 예사롭지 않다.

정자 앞의 마당 삼아도 될 만큼 거대한 너럭바위에는 ‘월연암(月淵岩)’이란 글씨가 뚜렷하다. 월연암에는 물이 깎아내 만든 부드러운 곡선이 여기저기 있다. 물살이 씻고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문양이다. ‘월연’이라면 ‘달의 연못’을 뜻하는데 바위 아래 수면에 달빛이 비친다면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으리라. 유독 흰빛의 바위가 초록의 숲, 옥색의 물빛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자리에 서 있는 정자가 거연정이다. 거연정은 금천의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자리에 들어서 있다. 계곡 한가운데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정자로 가려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다리 아래로는 연못처럼 고요한 물이 담겨 있다. 이 물을 일러 옛 선비들은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바위에 부딪히며 흐르는 물소리가 휘감고 있는 정자의 정취는 이런 풍류 넘치는 이름에 능히 값하고 남는다. 거연정은 정자 안에서의 풍류도 좋지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연과 함께 감상하는 게 더욱 멋지다. 정자가 계곡과 바위 그리고 여윈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연정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강원도 깊은 산중으로 숨어들었다는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선비 전오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자의 빼어난 경관 속에는 세속을 버리고 물러나 자연과 벗 삼았던 지조 있는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 정자에 앉아 자연을 보는 자리

▲ 화림동 계곡의 군자정. 규모는 작지만 단청 없는 소박한 정자가 단아하다.
거연정에서 26번 국도로 2㎞쯤 내려가면 물길을 끼고 동호정이 서 있다. 동호정은 경쾌하게 들어 올린 팔작지붕의 처마가 당당한 풍모를 자랑하는 정자다. 처마와 기둥, 대들보에 선명한 단청을 입혀서 화려한 맛도 풍긴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란하던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린 공로를 인정받아 충신으로 추앙된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업고 달린’ 공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 계곡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소일했다고 전해진다.

동호정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정자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통나무를 비스듬히 놓고 홈을 파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솜씨가 간결하면서도 미감이 느껴진다. 더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정자의 기둥이다. 통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썼다. 기둥에는 나무 옹이 문양이며 비틀린 흔적들이 뚜렷하다.

동호정에서는 선비들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노닐었는데 그 풍류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비들이 술을 마시며 즐겼던 공간이 바로 동호정 앞의 천변에 있는 거대한 바위다.

해를 가리는 천막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차일암(遮日岩)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바위에는 물살이 깎아놓은 바위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술을 부어놓고는 주연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차일암 한쪽에는 금적암(琴笛岩)과 영가대(詠歌臺)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금적암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바위’란 뜻이고 영가대는 ‘노래를 부르는 곳’이란 의미다. 선비들이 여기서 술만 마신 게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풍류를 한껏 즐겼다는 얘기다.

거연정과 동호정 사이에는 군자정도 있다. 다른 정자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인 이 정자는 함양을 대표하는 선비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다. 단청으로 장식하지 않아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박한 정자에서는 묵은 시간의 맛이 물씬 풍긴다. 기초석을 세우지 않고 바위 위에 나무기둥을 박아 세운 모양도 독특하다. 편액 가득한 단아한 정자 안으로 들어 계곡의 물길을 바라보는 맛이 그윽하다.

정자가 즐비한 화림동 계곡을 소요하던 옛 선비들은 무더운 한여름에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탁족을 즐겼다. 옛 선비들에게 탁족은 그저 더위를 식히기 위한 피서만은 아니었다. 찬물에 발을 씻는다는 건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탁족이란 말은 본래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의 ‘어부사’에 등장하는 ‘탁영탁족(濯纓濯足)’에서 온 말이다. 풍류를 즐기되 자연 속에서 늘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던 옛 선비들. 한여름에 쥘 부채 하나 들고서 옛 선비들의 시선과 풍류를 따라가 볼 수 있는 자리가 함양 땅 곳곳에 있다.



함양 가는 길=수도권에서 가자면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가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남원 방면으로 가다가 함양IC에서 내려서면 된다.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금대암은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로 인월 쪽으로 가다 지리산·백무·칠선·오도재·마천 방면으로 좌회전해 1023번 지방도로를 탄다. 지안재를 넘어 마천면사무소를 지난 뒤 안국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대암이다. 비포장 구간이 있지만 승용차로도 쉽게 갈 수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한여름철 함양의 숙소라면 한신계곡 인근 콘도형 숙소 한일리조트(055-964-0097)를 권한다. 시설이 깔끔하고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물놀이도 할 수 있다. 용추계곡의 용추자연휴양림(055-944-5555)도 좋지만 성수기 주말에는 예약이 어렵다. 함양의 명소로 꼽히는 일두 정여창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한옥펜션 스타일의 정일품농원(1577-9958)도 추천할 만하다.

개평마을에는 전통주 양조장 명가원이 운영하는 솔송주 문화관이 있다. 솔송주는 하동 정씨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530년 전통의 가양주. 문화관에서는 술 빚는 과정을 설명 듣고 시음도 하고 술을 구입할 수도 있다.

솔송주를 증류해 만든 술인 ‘담솔’은 문재인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행사 참가차 함양을 방문했다가 이 술을 처음 맛본 뒤에 곧바로 다시 명가원을 찾아 술을 구입했고, 네팔 여행 때도 이 술을 챙겨갔다.

함양의 맛집으로는 단연 안의면의 갈비찜이 손꼽힌다. 한옥을 개조해 식당으로 쓰는 안의 원조갈비집(055-962-0666)이 가장 잘 알려진 곳. 간장에 조려 오이, 당근, 양파 등을 올려서 내온다. 갈비찜을 주문하면 작은 국그릇에 갈비탕 국물을 함께 낸다. 칠선계곡 초입의 칠선산장식당(055-962-5630)은 지리산에서 캔 산나물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열두 가지가 넘는 산나물의 종류도 훌륭하지만, 나물을 무쳐내는 솜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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