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물길 따라서 강원 화천

醉月 2017. 7. 19. 22:11

화천의 북한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숲으로 다리’. ‘물 위를 걸을 수 없을까’란 질문에 답하듯 투박하게 뚝딱뚝딱 만들어낸 부교다. 1.2㎞가 넘게 이어지는 이 길은 ‘다리’라기보다는 ‘길’에 가깝다. 본래 자전거 도로로 만든 곳이지만, 물의 질감과 다리의 부력을 느끼며 걷는 맛도 좋다.



강원 화천(華川)을 일러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빛날 화(華)’에 ‘내 천(川)’이란 이름 그대로 파로호와 춘천댐이 차례로 가두고 있는 아름다운 북한강의 물길 때문이지요. 화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러나 물보다 그 물을 따라 유장하게 이어진 길 때문일 겁니다. 화천에서는 어떤 길을 따라가든 자연스럽게 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 길이 강변 길이 되고, 때로는 호반 길이 되는 것이지요. 한여름에 그 길을 따라나선 참이었습니다.

장마가 한 발짝 물러나고 난 뒤에 화천이 보여주는 건 ‘여름의 서정’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북한강 변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품고 선 키 큰 미루나무, 초록의 앞산에서 들리는 뻐꾸기 울음 소리, 저물 녘 논둑에서 듣는 개구리 소리…. 더플백을 멘 휴가병의 구릿빛 피부도 군사도시 화천의 여름날에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지요.

하루하루 여름은 깊어져 길옆 옥수숫대는 어깨높이를 훌쩍 넘었고, 감자는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텃밭의 고추도 제법 튼실하게 자랐고, 모내기를 일찍 마친 논마다 초록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한여름날 화천에서 이런 풍경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름에도 냄새가 있음을 말입니다. 열기가 훅 끼치는 논둑을 지날 때나 초록 덩굴 휘감긴 한여름의 숲으로 발을 들일 때 맡아지는 초록의 그 냄새 말입니다. 따가운 여름볕 속에서 북한강을 끼고 화천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그런 냄새가 났습니다.

화천의 북한강 변에는 강물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운치 있는 자전거도로가 있고, 강물에 다리를 띄우듯 만들어낸 길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길도 있고, 숲 그늘 속에서 걷기 좋은 길도 있습니다. 홍련과 백련이 등불처럼 환하게 피어난 수변 마을의 아홉 개 연못을 둘러보는 길도 있지요.

연꽃은 본래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핍니다. 흐린 물에서 고결한 꽃을 피우는 게 연꽃이라고 합니다만, 그보다는 가장 뜨거울 때 서늘한 꽃을 피운다는 말이 더 적당하지 싶었습니다. 뜨겁게 끓는 염천의 땡볕 아래서 홍련과 백련이 두 손 모으고 합장하듯 고요하게 꽃 몽우리를 틔워내고 있었습니다. 그 연꽃의 정갈한 자태에서 여름을 견디는 자세를 봅니다. 모름지기 여름을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이제 장마의 막바지. 화천으로의 여정에서 마지막 장맛비와 만나게 된다면 그건 축복일 겁니다. 장마가 지난 뒤라면 소나기를 만나도 좋겠지요. 호수에 쏟아지는 타닥이는 빗소리와 빗물이 수면 위에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울 것입니다. 강변 숲의 초록이 빗줄기 속에서 수채화 속 풍경처럼 싱그럽게 반짝일 것이고, 연잎에 물방울이 도르르 굴러떨어질 것이며, 낮게 내려온 구름이 자주 앞산 능선에 척척 걸려 선경을 빚어내겠지요. 그러다 비 그칠 때쯤이면 청아한 뻐꾸기 울음이 보태지겠지요.

북한강의 물줄기를 끼고 있는 강원 화천의 대이리 마을의 여름날 이른 아침 풍경. 강변 마을이 먹을 찍어 농담으로 그린 섬처럼 고요하게 떠올랐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관이다.





# 호젓한 수변 길… 서오지에서 만난 연꽃

▲ 화천 서오지마을 습지에 꽃등처럼 피어난 수련. 막 내린 비로 꽃과 잎에 물방울이 맺혔다.

강원 화천에서 북한강의 물을 끼고 이어지는 길 중에서 가장 호젓한 곳이라면 이곳이 아닐까.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지명이 낯설어 입에 딱 붙지 않는다. 마을 이름이 ‘서오지(鋤吾芝)’다. 아주 오래 전 이 마을에 노인 셋이 정착해 약초를 캐면서 살았고, 마을 지명은 그 노인들이 ‘자신(吾)이 호미(鋤)로 약초(芝)를 캤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

지존천의 물길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들어선 서오지는 1965년 춘천댐이 지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마을이었다. ‘노인 셋’에 불과했다는 건 오래 전의 얘기고, 그때만 해도 서오지에는 화천에서 가장 너른 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도 60가구가 넘었다. 그러다 춘천댐이 완공되고 물이 차오르면서 들은 모두 잠겼고 마을에는 여덟 가구만 남았다.

서오지 마을에 연꽃단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된 건 지난 2005년. 하필 연꽃이었던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수생식물을 심어 북한강 수변의 수질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도였고, 다른 하나는 연을 주제로 마을을 조성해 관광객을 유입하고 농가소득도 증대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19만8400㎡(6만여 평) 넓이의 연꽃단지에는 13만2300㎡(4만여 평)의 연밭이 조성됐다. 논처럼 구획된 7개의 습지에는 200여 종이 넘는 연꽃이 자라고 있다.

꽃은 6월 수련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홍련과 백련이 절정에 달했다. 연은 매화와 대접이 비슷하다. 오래되거나 이야기가 깃든 매화가 따로 이름을 갖는 것처럼, 연도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다. 매화의 이름이 ‘선비의 풍류’로 붙여진다면 연의 이름에는 ‘종교적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서오지 마을의 백련은 충남 아산의 절집 인취사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다. 그래서 ‘인취사 백련’이란 이름으로 따로 불린다. 인취사 연못에 피는 백련은 꽃잎의 순백색이 맑고 깨끗하기로 이름났다. 인취사의 백련이 전북 김제의 청운사로 건너가 ‘하소백련’이란 이름을 얻었으니, 여기 북한강 수면을 온통 뒤덮으며 꽃을 피우는 서오지 마을 연꽃에도 따로 이름을 붙여준다면 어떨까.



# 여름날 강변을 달리는 길… 옛 국도

연꽃 구경은 뜨겁다. 여기뿐만 아니다. 어디에서든 연꽃은 세상을 온통 삶아내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꽃을 피운다. 만개한 절정의 연꽃을 보겠다면, 달궈진 볕과 뜨거운 숨을 능히 견뎌내야 한다는 얘기다. 여름 한낮의 연밭은 숨이 턱턱 막히지만 달군 양철 지붕 같은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연은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합장하듯 꽃대를 올린다. 마치 구도를 향한 기원처럼 말이다. 연잎 아래의 물속에서 붕어와 잉어가 몸을 뒤치고, 이따금 연밭에 물닭과 뜸부기, 흰뺨검둥오리가 찾아든다.

연꽃 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소나기가 막 쏟아지고 난 뒤다. 연밭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수면에 동심원을 그리고, 연잎 위에 물방울이 보석처럼 또르르 굴러다닌다. 비가 그치고 나면 연꽃도, 주변의 초록도 한층 더 싱그러워지고 운무가 피어나는 앞산의 뻐꾸기 소리도 더욱 촉촉해진다. 그렇다고 소나기가 내릴 때를 맞춰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장마의 막바지인 이즈음이라면 그런 시간과 마주칠 확률이 높다.

비 얘기를 꺼낸 김에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건, 비 오는 강변 풍경을 끼고 강촌과 춘천을 지나 화천까지 이어지는 옛 국도의 정취다. 차량 내비게이터는 춘천고속도로와 46번 국도로 수도권과 화천을 잇는 길을 ‘추천 코스’로 안내하지만, 속도와 시간을 얻는 이 길은 그야말로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팔당과 두물머리를 지나 청평댐과 대성리, 가평, 강촌을 따라 춘천으로, 거기서 춘천댐을 지나 줄곧 북한강을 끼고 화천까지 이어지는 여름날의 옛 경강국도와 경춘국도는 얼마나 서정 넘치는 길이었던가.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길 위에서 감성은 더욱 촉촉해졌다.

그 길의 정취가 아직 살아있었다. 고속도로와 새로 난 국도가 바쁜 이들을 빨아들이고 난 뒤 개발이 멈춰지면서 지체된 시간이 그 길 위에 있다. 이 길은 느리게 달리는 게 제격이다. 길가의 좌판에서 파는 찐 옥수수를 사서 물거나, 입에 넣자마자 침이 가득 고이는 새큼한 자두 몇 알을 입에 넣고서….


# 물 위를 걷는 길… 숲으로 다리

화천에서 만나는 길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게 바로 ‘숲으로 다리’다. ‘숲으로 다리’는 물 위에 놓은 부교(浮橋)다. 말이 ‘다리’이지 물에 뜨는 구조물 위에 나무판을 얹어 강물 위에다 놓은 ‘길’이다. ‘숲으로 다리’가 ‘다리’가 아닌 ‘길’인 이유는 이 길이 물을 건너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이야말로 누구나 떠올렸을 법한 상상을 가장 투박하게 구현한다.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판타지의 해답을 그냥 뚝딱뚝딱 물에 띄운 부교로 만들어 보여준 셈이다.

이 부교에 ‘숲으로 다리’란 이름을 붙여준 건 소설가 김훈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1.2㎞의 부교 구간을 지나면 길이 숲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지어줬다. 본래 이 길은 보행자들보다 자전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물 위에 놓인 긴 부교 위를 자전거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은 특별하다. 마치 푸른 수면을 가르며 달리는 듯하다. 자전거가 아니라 걷는 느낌도 좋다. 부교를 밟을 때면 그 힘만큼 부교의 부력이 발을 밀어내는데, 부교 전체가 출렁이면서 물의 질감과 다리의 부력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독특하다.

숲으로 다리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조성한 ‘파로호 산소 100리 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산소 100리 길’은 북한강 변을 따라 42㎞에 걸쳐 조성된 자전거 길이다. 대부분의 구간이 평탄하게 조성돼 있어 누구나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한 여름 뙤약볕 속에서 무슨 자전거냐’ 싶겠지만, 여름날 이른 아침에 강과 숲이 뿜어내는 촉촉하고 서늘한 기운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페달을 저어 달리는 기분은 훌륭하다. 해가 지고 난 뒤에 수변의 가로등을 따라 느릿느릿 자전거를 달리는 맛도 괜찮다. 화천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붕어섬 입구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MTB와 미니벨로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여료 1만 원을 내고 자전거를 하루 빌리면 반납할 때 화천군내 모든 곳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화천사랑상품권 5000원 권으로 되돌려준다.



화천의 인민군사령부 막사. 한국전쟁 중에 인민군이 쓰던 시설이다. 분단과 전쟁의 ‘실재’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 북으로 향하는 길…전망대와 사령부

화천은 접적지역이자 군사도시다. 화천에만 국군 3개 사단이 있어 군 전체 인구의 60%가 군인이다. 화천 일대의 도로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이동하는 전차와 작전 중인 군인들을 태운 수송 차량과도 자주 만난다. 화천에서 만나는 접적지역의 전쟁과 대립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형이다. 교각은 일제가, 철골은 옛 소련이 놓고, 상판은 우리 손으로 올려 지었다는 ‘꺼먹다리’도, 북한 금강산 댐 수공논란 속에 지은 ‘평화의 댐’도 분단의 과거를 만나는 곳이다.

분단의 ‘현재 모습’은 화천의 칠성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북한 땅에서 지척인 전망대는 적 초소와의 거리가 600m에 불과하다. 칠성전망대가 있는 일대의 능선은 영화 ‘고지전’의 실제 무대였다. 1951년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시작된 이후 1953년 7월 27일까지 37개월 동안 여기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휴전을 코앞에 두고 고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세에 따라 남과 북이 바꿔가며 점령했다. 중부전선 고지전은 결국 국군의 승리로 끝나 그 고지 옆에는 이렇게 전망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는 군부대 내의 전망대들은 대부분 엄격한 제한조치 등으로 다소 분위기가 딱딱하게 경직돼 있는 편인데 여기 칠성전망대는 좀 다르다. 관광객을 안내하는 부대원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보다 ‘해도 괜찮은 것’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했다. 똑같은 수칙도 이렇게 말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전망대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인상적이었다. 통제조치나 수칙은 다른 전망대와 같지만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마다 자유스럽게 기념사진 등을 찍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도 눈에 띄었다. 비무장지대(DMZ) 칠성전망대를 가려면 신분증을 지참하고 상서면 산양리의 장병안내소를 방문해 미리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출입신고를 한 뒤 정해진 출입시간에 군인 동행하에 단체로 움직이게 된다.


# 전쟁의 실재 그리고 물길 여는 수달

칠성전망대까지 갔다면 상서면 다목리에 있는 옛 인민군사령부 막사 건물도 함께 둘러보자. 화천 인민군사령부 막사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돌로 지은 단층 건물인데 한국전쟁 당시 화천과 철원 일대를 지휘하던 북한 인민군사령부가 이곳에 주둔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1970년대까지 국군의 피복 수선소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이후 방치돼 오다가 지난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건물이 군부대가 그은 금 밖으로 나오게 됐다.

화강석과 시멘트로 단단하게 마감한 사령부 막사건물의 뼈대며 벽채는 아직도 튼튼하다. 시멘트로 칸막이를 쳐놓은 내부로 들어서면 전쟁 당시에 막사에 주둔했던 이들의 긴장과 공포가 느껴지는 듯하다. 온 산하를 피로 물들인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화천에서 여기 주둔했던 이들은 어떤 꿈을 꾸었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폐허가 된 빈 방은 한때 그들의 숨소리로 가득했을 것이었다. 인민군사령부 막사에서 느끼게 되는 건 분단과 전쟁이 ‘실재’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최전방 DMZ의 전망대에서는 분단이 총체적인 느낌으로, 인민군사령부 막사에서는 개별화된 비극과 고통으로 다가온다.

화천에서 가봐야 할 곳을 더 꼽는다면 파로호를 끼고 있는 간동면 방천리의 ‘한국수달연구센터’다. 연구센터는 멸종위기종 1등급인 수달의 보존과 증식을 위한 연구시설인데 다치거나 어미를 잃어 구조된 수달을 보호한 뒤 적응과정을 거쳐 DMZ의 야생 공간으로 되돌려보내는 일도 한다. 수달연구센터에는 작은 공원을 끼고 수달이 서식하는 ‘수달사’가 다섯 개 있다. 동물의 종류는 수달 하나뿐이지만, 관측 덱까지 마련해 놓은 수달사는 작은 동물원이나 진배없다. 운이 좋다면 수달이 헤엄치거나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달은 야행성이라 오후 4시 이후에 방문하는 게 목격 확률을 올리는 비결이다. 그때쯤 연구원들이 그날 첫 먹이를 준다. 수달은 북한강 물길을 따라 남과 북의 철조망을 넘나드는 유일한 중대형 육상동물이다. 이렇게 보호를 거쳐 DMZ로 돌아간 수달은 대립과 철조망으로 끊기고 만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유전교류의 임무를 맡게 된다.



화천 가는 길=화천을 가려면 춘천고속도로로 춘천을 딛고 가는 게 빠르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갈림목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춘천나들목으로 나간다. 46번 국도를 따라 소양6교를 건너 간척사거리까지 가서 화천 오음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오음사거리에서 다시 화천 방면으로 좌회전, 간동면사무소와 파로호관광지를 지나 대붕교를 건너면 화천읍이다.

호반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겠다면 옛 경강국도(6번 국도)와 경춘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덕소에서 경강국도를 타고 양수리까지 가서 조안교차로에서 좌회전. 북한강로로 이름 붙여진 45번 국도를 따라가다 금남교차로에서 경춘국도인 46번 국도로 갈아탄다. 의암교차로에서 의암교를 건너가는 46번 국도를 버리고 박사로라 불리는 40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곧 춘천댐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길은 화천군으로 이어지는데, 사북 우체국과 신포리 성당을 지나서 절집 현지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연꽃마을 서오지리다. 서오지리는 ‘건넌들’이라고도 불린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북한강을 끼고 있는 하남면의 펜션단지 아쿠아틱리조트(033-441-3880)를 추천한다. 2인실부터 최대 10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객실 18개가 있다. 시설이 깔끔한 편이지만 숙박요금은 저렴한 편이다. 수변에 제법 규모가 있는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짙고 서늘한 숲에 들어선 화천의 용화산 자연휴양림(033-243-9261)이나 춘천의 집다리골 자연휴양림(033-243-1443)은 예약만 할 수 있다면 최상의 선택이다.

화천에는 널리 알려진 ‘전국구 맛집’은 없다. 군인을 상대로 그만그만한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내는 식당들이 많은 탓이다. 그래도 직접 만든 두부를 재료로 한정식을 차려 내는 콩사랑(033-442-2114)이나 새콤한 닭육수에 닭고기를 찢어넣고 먹다가 막국수를 말아먹는 초계탕으로 이름을 날리는 평양막국수(033-442-1112) 등은 주민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집이다. 용화산 자락의 하남면 삼화리에서 닭찜과 삼겹살 등을 내는 용화산가든(033-441-9999)도 추천할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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