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에서 그가 남기고 간 건축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그의 건축은 단순히 형태와 미감만으로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의 건축에는 사람들과 나눈 소통과 교감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 ‘그늘이 있는 관중석의 운동장’ ‘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는 그런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의 건축은 형태가 아니라 어쩌면 메시지로 읽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축물에서 미감뿐만 아니라 마음과 도리가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가 남긴 건축을 둘러보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 건축, 관중석에 등나무 그늘을 만들다
전북 무주의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7년 어느 날의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무주 공설운동장에서 전 무주군수 김세웅과 건축가 고 정기용이 나눈 이야기다. 건축가를 공설운동장까지 데려온 군수가 먼저 말했다. “공설운동장에서 군내 행사가 있을 때 주민들이 거의 오지 않아요. 왜 참석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르신께서 이렇게 대답합디다. ‘군수는 비와 햇볕을 피하고 우리는 뙤약볕에 서 있으라니 무슨 벌 받을 일 있나.’” 그 말을 듣곤 군수는 궁리 끝에 관중석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그리고 등나무가 제법 자라자 건축가를 불러서 ‘그늘을 드리운 관중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자리였다. “근사한 그늘이 있는, 그래서 누구나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세요.” 전북 무주에서 10년 동안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가 정기용이 무주 땅 곳곳에 세운 31개의 건축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으며 감동적이었다’고 술회한 무주 공설운동장의 ‘그림자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군수가 스탠드 외곽에다 등나무를 심기로 했던 건 평범한 발상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주민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교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군수가 스탠드 뒤쪽에다 등나무를 심기로 하면서 건축은 끝난 거나 진배없었다. 정기용에게 건축의 주인공은 건축물이 아니라 등나무였으니 말이다. 그는 관객석을 빙 돌며 등나무가 기대고 자랄 경량철골 파이프를 세우는 것만으로 설계를 끝냈다. 무성하게 자라는 등나무 덩굴에 건축구조물은 금세 숨었다. ‘식물이 주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건축가의 의지가 건축물을 숨김으로써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정기용은 훗날 이 작업을 통해 이른바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배웠다고 했다. 건축이 ‘공간’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시간’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도 이 프로젝트였다고 덧붙였다. 관객석을 드리운 등나무는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 해 한 해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자연으로 이식한 시간이 그늘을 더 짙게 하면서 건축을 풍부한 아름다움으로 가꿔가고 있는 것이다. 등나무 운동장은 해마다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최고의 경관을 보여준다. 그때쯤이면 운동장 스탠드를 빙 둘러 주렁주렁 보라색 등꽃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이렇게 운동장 가득 보라색 꽃등이 켜질 무렵에 건축가의 추천대로 ‘스탠드 맨 뒷줄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보면 자연이 드리운 가장 아름다운 그늘을 감상할 수 있다. 그때의 정취보다야 못하긴 하지만 여름날의 끝에서 매미 소리와 함께 초록빛 등나무 그늘 아래를 걷는 맛도 제법 훌륭했다. 주민의 말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 군수, 그런 군수의 마음 씀씀이를 설계로 구현해낸 건축가.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등나무 운동장이야말로 소통과 진정성으로 이룬 감동이다. 무주에서 정기용의 건축물에서 만나는 건 건축적 세련미보다는 공공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의 결과가 보여주는 묵직한 감동이다. 무주에서 한 건축가가 이룬 건축적 성취를 만나는 여정을 제안하는 것은 그 여행이 바로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공감, 그리고 감동을 만나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주 안성면의 면사무소, 지금은 주민자치센터로 불리는 건물을 짓기 위해 정기용이 마을을 찾았다. “다 필요 없고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줘.” 행정시설로서의 면사무소가 아니라 진짜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을 꿈꿨던 정기용이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묻고 다닌 끝에 한 촌로에게 들은 대답이었다. 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이 1년에 몇 번 승합차를 빌려 대전으로 목욕을 간다는 얘기를 들은 정기용은 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대중목욕탕을 들여놓았다. 홀숫날은 남탕, 짝숫날은 여탕이 되는 목욕탕이었다. 안성면에 이어 부남면, 적상면, 무풍면 면사무소를 지으면서도 목욕탕을 들였다. 건축이란 세련된 외관이나 기발한 형식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실현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형태나 모양으로 드러날 뿐이라는 이른바 ‘정기용 건축’을 면사무소의 목욕탕은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설천면사무소는 담쟁이 넝쿨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오르고 있고 두 건물 사이에 천문대가 들어섰으며 부남면사무소 회랑에는 머루 덩굴이 열매를 가득 달고 있다. 1층에서 3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램프가 있는 적상면사무소에는 건물 안에서 다양하게 구획된 공간을 통해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건축물에서 소통이자 경계인 창 안에 마을과 들의 경관이 가득 찼다. 건물이 액자가 돼서 풍경을 가두고 거기서 평생을 산 이들에게 제 사는 땅을 낯설게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 건축가는 필시 주민들을 수시로 자연과 마을 경관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제 사는 곳이 이리도 아름다웠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정기용은 본디 이곳에다 건축물을 세우는 걸 반대했다. 서창리는 무주 적상산의 산자락인데 적상산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서고가 있었던 역사적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사적이고 신성한 땅은 빈터로 남겨두는 게 마땅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건축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그에게 설계가 맡겨졌다. 그는 너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건축물을 생각했다. 공간구획과 배치에 앞서 그는 지어지는 박물관에서 이뤄지게 될 전시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건축이 끝난 향토박물관은 내부 콘텐츠 부족과 재정난 등으로 표류하다가 급기야 임대물건이 돼서 카페와 공방을 겸하는 누추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생전에 그가 이 건물을 두고 ‘늘 가슴에 부담으로 남아 미완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던 것처럼 건축물은 제 용도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쇠락해가고 있는 중이다. 향토박물관과는 달리 제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건축물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무주 추모의 집’이다. 추모의 집은 무주의 공설 납골당 시설이다. 정기용은 인삼밭의 경사진 차광막을 모티브로 삼았다. 인삼은 그늘에서 자란다. 그늘은 죽음을 상징하는데 죽음으로 은유되는 그늘이 불로의 꿈인 인삼을 길러낸다는 데 착안했던 것이다. ‘죽음의 공간’인 추모의 집은 밝고 환하다. 벽면 전체를 창으로 두어 볕이 환하게 든다. 추모의 집 중앙에도 옥외 중정을 두고 소나무를 심어 햇볕을 들여놓았다. 이곳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이 아닐까. ‘통곡의 방’으로 이름 붙여진 자그마한 공간의 창밖으로는 벽에 딱 붙어 악착같이 자라는 담쟁이덩굴과 화려한 잎을 매단 단풍나무가 내다보인다. 그게 무엇을 은유하는지 그리고 때로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이게 다 치밀한 건축가의 계산의 결과라는 것도 말이다. 무주에 갔다면 정기용이 설계한 버스 정류장은 꼭 보고 오자. 콘크리트와 목재로 만들어낸 정기용의 정류장은 단순한 직선의 공간이다. 직선으로 구획해놓은 창이 있고 벽이 있고 지붕이 있다. 버스 정류장 유리창이 뒤편의 경관을 담는 훌륭한 액자로 기능하는 것도 놀랍지만 이것보다 더 눈길을 잡는 것이 ‘ㄱ’자로 교차해 놓은 의자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란히 앉아 한 곳을 보는 게 아니라, ‘ㄱ’자 형의 의자에 앉아 시선을 교차한다. 교차하는 시선이 만들어 내는 건 관계와 온도다. 버스정류장이 차를 기다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도 기능한다는 것이다. 정기용이 설계한 소박한 버스정류장의 특별함은, 무주군이 최근 보급하고 있는 원색지붕과 번쩍이는 스테인리스의 무표정하고 차가운 버스정류장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먼저 반딧불이 얘기부터. 무주에서 볼 수 있는 반딧불이는 두 종류.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다. 애반딧불이는 6~7월에 나오고 늦반딧불이는 8월 하순부터 9월 말에 나오는데 늦반딧불이가 더 크고 빠르게 밤하늘을 수놓는다. 해마다 8월 말 무주군이 개최하는 반딧불 축제는 늦반딧불이 축제다. 무주에서 반딧불은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구천동 계곡에서도, 반디 랜드가 있는 남대천에서도, 칠연계곡 아래에도 반딧불이가 출몰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금강의 물길이 흘러가는 무주읍 북쪽의 내도리 앞섬다리 부근이다. 무주읍에서 앞섬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이어지는 강변 둑길은 반딧불이 명멸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장면을 가장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명소다. 사실 이즈음 금강은 반딧불이 없어도 아쉬울 게 하나 없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앞섬은 물론이고 부남면 일대의 늦여름 강변 풍경은 더없이 서정적이다. 강변에는 한결 순해진 매미울음과 풀벌레 소리로 그득하고 초록의 강변길에는 제법 시원한 강바람까지 지나간다. 부남 유원지 쪽에서는 금강래프팅도 즐길 수 있는데 물굽이가 워낙 순해 급류의 스릴은 없는 대신 젓는 노가 만들어내는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강변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늦여름 무주에서 덕유산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무주 덕유산 리조트의 곤돌라를 타면 덕유산 설천봉까지는 한 걸음이다. 여기서 다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잘 닦인 등산로를 딛고서 20분 남짓만 걸으면 된다. 그러나 이즈음은 정상인 향적봉보다 거기서 대피소를 지나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이 닿는 덕유평전 쪽이 훨씬 더 아름답다. 덕유평전까지 가는 길은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향적봉에서 30분이면 족하다. 초여름에 만발해 덕유평전을 가득 채우는 원추리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 길섶의 여름꽃은 아직 다 지지 않았다. 너른 초지를 이룬 거대한 평전에는 지금 동자꽃이며 까치수염 등 막바지 여름꽃들이 한창 피고 지고 있는 중이다. 덕유산의 능선에는 벌써 바람 끝이 서늘하다.
무주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산내분기점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무주 IC에서 고속도로를 나와서 19번 국도를 타고 가면 이내 무주읍이다. 무주군청에서 남대천교를 건너면 누각 한풍루가 서 있는데 그 뒤쪽에 등나무 운동장이 있다. 등나무 운동장 주위에는 반딧불 체육관, 청소년수련관, 예체문화관, 국제화교육센터, 전통공예테마파크 등 공공건물들이 몰려 있다.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물 투어를 하려면 관광안내소에서 안내를 받아 동선을 짜는 게 좋겠다. 무주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먹을거리라면 단연 금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낸 어죽이다. 읍내의 금강식당(063-322-0979)과 내도리로 건너가는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063-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063-322-3605) 등이 이름났다. 무주구천동 계곡 입구에는 식당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덕유산 국립공원사무소가 운영하는 주차장은 무료이지만 식당 음식값이 거의 바가지 수준이다. ‘산채’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허술하게 차려 내는 산채비빔밥 한 그릇이 9000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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