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이라면 젓갈부터, 논산이라면 훈련소부터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그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강경 땅에는 우리가 지나온 근대의 모습이 깃들어 있습니다. 누추하고 쇠락한 적산가옥이 늘어선 좁은 골목에서는 빛바랜 기억들이 길어 올려집니다. 일제강점의 식민지 시대는 100년 전쯤의 일입니다. 그 시대를 건너오지 않았음에도 그 오래전의 얘기가 어쩐지 그곳에서는 가깝습니다. 아마도 강경의 오래전 흔적들이 울타리 없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시간과 얽혀있기 때문일 겁니다. 목적지를 강경에서 논산까지로 확장한다면 그곳에서는 나당연합군과 맞선 백제의 마지막 결전, 후백제 견훤의 최후와 고려의 건국, 청렴의 기운으로 푸른 서릿발 같았던 조선의 선비를 만나게 됩니다. 계백 장군이 신라에 맞섰던 황산벌이 논산에 있고, 아들의 배신으로 결국 죽음에 이른 견훤의 묘가 논산에 있으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개태사의 삼존불이 대표하는 고려의 기원도, 노론 일당체제에 맞서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조선 선비 윤증의 청렴함을 볼 수 있는 고택이 또 논산에 있습니다. 논산은 한 번도 역사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지만, 이처럼 시대의 굵은 역사가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여름날 석 달 열흘을 피고 진다는 배롱나무가 이제 마지막 붉은 꽃을 농염하게 피워내고 있는 논산으로 갑니다. 역사의 시간을 건너면서 논산과 강경을 오가면서 둘러봤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일찌감치 어디선가 놓쳐버린 채 쇠락해가고 있는 강경 땅과 역사가 지나간 자취가 뚜렷하게 새겨진 논산 땅을 여행한다는 건 마치 긴 호흡의 대하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논산과 강경에서는 번성했던 과거의 시간과 쇠락해서 애잔한 지금의 공간이 벌려놓은 간극을 기록과 흑백사진으로 채워가면서 둘러보는 여정을 제안합니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어 읽어내는 여행의 경험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논산과 강경을 여행해 본다면 금방 알게 될 겁니다.
# 금강의 뱃길과 강경의 번성 강경은 일찌감치 번성했다. 강경의 본격적인 번성은 1899년 군산항 개항으로 금강이 근대적 내륙 수로로 활용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충청·전라도 유역의 곡창지대 화물이 모여들면서 강경은 말 그대로 ‘물류집산지’가 됐다. 물건과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강경에는 자연스럽게 장이 열렸다. 당시 강경 장은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에 꼽혔다. 1904년 강경에는 일본인 최초의 여관과 병원이 개업했고 1906년에는 군산-강경 간 전화가 개통됐으며, 1909년에는 재판소가 들어섰다. 한일합병 이듬해인 1911년에 대형 극장까지 들어섰을 정도로 대표적인 근대상업도시로 떠올랐다. 그 무렵 성어기 강경포구의 선착장에는 줄잡아 100여 척의 어선이 정박했다. 점포 숫자만 900여 개를 헤아렸다는 강경 장에는 하루 2만∼3만 명의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복옥동 선창에 있었다던 색주가도 불야성을 이뤘다. 당시만 해도 강경의 인구는 지금의 세 배가 넘는 3만 명이었다. 여기다 상인 등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인구는 10만 명을 훌쩍 넘겼다. 강경이 가장 화려했던,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광의 시간이었다. # 강경, 길고 긴 쇠락의 시간 지금 강경은 젓갈 말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쇠락한 소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구는 급격하게 줄었고,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젓갈 축제가 열리는 가을 한철을 빼고 나면 강경 읍내는 고즈넉함을 넘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지금 강경 읍내는 도로마다 내걸린 플래카드로 온통 어수선하다. 플래카드마다 ‘경찰서 이전 결사 반대’의 글귀가 적혀있다. 강경이 쇠락하면서 행정기관이며 상점들이 슬금슬금 논산으로 빠져나간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논산경찰서까지 논산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격분한 강경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경찰서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경찰서 이전 반대에 써달라며 수백만 원의 기탁금을 낸 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은 “지금 강경 땅에 있는 논산경찰서는 한국전쟁 당시 서장을 포함해 경찰관 83명이 북한군에 맞서다 모두 순직했던 역사적인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경찰서 이전 반대는 기실 이런 역사적 의미보다는 쇠락에 따른 상실감이나 서운함 때문인 듯 했다. 강경의 몰락은 경부선의 개통으로 시작했다. 경부선 개통으로 육로교통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으면서 금강의 수운 역할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호남선 대전-강경 간 철로 부설로 강경의 침체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철도와 수운의 결합이란 장밋빛 미래를 꿈꿀 무렵 강경읍에 수많은 근대 건축물이 지어졌지만, 애초에 철도와 수운은 비용이나 속도 면에서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호남선 개통 구간이 늘면서 수운이 급격하게 위축돼 강경 상권은 쇠락했고, 일본 수탈기지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강경의 쇠락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 근대건축 앞에서 번성을 추억하다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남아있는 강경에는 근대 역사를 볼 수 있는 비슷한 이름의 전시관이 두 곳 있다. 하나가 강경역사관이고, 다른 하나가 근대역사전시관이다. 나중에 문을 연 근대역사전시관은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의 전반적 상황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데 ‘강경’이란 공간성이 취약하다. 반면 강경역사관은 기념비적인 근대건축물 안에 들어서 있는데다 전시도 강경에 집중하고 관장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강경에서 근대의 시간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그래서 강경역사관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춤하다. 강경역사관은 1905년 세워진 붉은 벽돌의 근대건축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에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이야말로 강경에 남아있는 180여 채의 근대건축물 중에서 첫 번째로 꼽을 만한 것이다. 본래 한호 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지어진 건물은 일제시대 조선 식산은행 강경지점이 됐고, 해방 후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다시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바뀌었다. 건물 내부는 강경역사문화연구원이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근현대 사진과 유물의 전시공간이다. ‘좋았던 시절’ 강경의 사진이 석유 풍로와 주판, 생활용품 등과 함께 다소 어지럽게 전시돼 있지만, 오히려 이런 소박한 모습 속에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강경역사관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중앙리 골목 700m구간에 조성된 ‘강경근대역사문화촌’이 있다. 논산시가 관광자원화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까지 3년에 걸쳐 다듬어 만든 곳이라는데, 과연 이게 완성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럽다. 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는데도 심하게 말하면 ‘조악한 세트장’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다. 전체 디자인이야 그렇다고 쳐도 골목 안의 집을 시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같은 색깔의 마감재료를 써서 ‘공장제품’처럼 만들어버린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논산시는 이곳을 관광지 겸 촬영 세트장으로도 활용할 생각이었다는데, 방송사 관계자도 이곳을 둘러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단다. 결국 논산시는 추가 예산을 투입해 이번에는 골목 안에서 근대 건축물이 아닌 집을 모두 사들여 헐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모조 근대건축물을 세우기로 했다. 진짜 근대건축물 옆에다 가짜 근대건축물을 지어 올린 뒤 골목 전체를 세트장으로 쓰겠다는 발상이다. 이러다가오히려 진짜를 가짜로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 옥녀봉, 미내다리… 강경의 명소
옥녀봉의 백미라면 정상에서의 경치다. 봉긋한 언덕의 봉수대 옆 늙은 느티나무 아래 서면 강경천과 논산천, 금강의 물길과 강 건너 논강 평야가 발 아래로 굽어 보이는데 그 경관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원스럽다. 정상에서 탁트인 경관을 보고 난다면 옥녀봉에 대한 주민들의 대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리라. 강경 사람들이 꼽는 명소 또 하나가 바로 ‘미내다리’다. 일대의 세도가들이 300년 전에 추렴해 미내천 물길 위에 세웠다는 미내다리는 당시만 해도 삼남 일대에서 가장 큰 다리였단다. 이 다리가 오죽 유명했으면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미내다리는 물길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천변에 물길과 나란히 서 있는데,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 기발한 설계와 배려… 윤증 고택 이제 논산으로 건너간다. 논산시 노성면에는 조선 후기 소론 계열의 대학자였던 명재 윤증의 고택이 있다. 배롱나무 만발한 연못과 운치있는 사랑채, 장독이 그득한 장독대를 품고 있는 그윽한 옛집이다. 고택은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 ‘백의정승’이라 불렸던 윤증이 초라한 집에 기거하는 것을 못내 안타깝게 여긴 제자들이 지어 올린 집이지만, 실제 그는 ‘큰 집이 과분하다’며 단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윤증 고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윤증이 살지 않았던 집이란 얘기다. 고택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윤증이 ‘과분하다’고 했지만,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집은 경북 안동 세도가의 고래등 같은 고택의 규모에다 대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집이 특별한 건 건물에서 드러나는 집 지은 이의 세심한 배려다. 안채와 곳간채 건물을 나란히 세우지 않고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놓은 건, 건물 사이가 넓은 쪽에서 좁은 쪽으로 공기를 끌어들여 바람의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공기가 넓은 쪽에서 좁은 쪽으로 흐를 때 바람이 빨라지므로 건물 좁은 쪽에다 차게 보관할 식품을 넣어두는 찬광을 들였다. 과학도 이런 과학이 없다. 문과 안채 사이에 바닥에서 30㎝쯤 띄워 세운 내외벽도 기발하다. 벽을 세워 시선을 가리되 바닥 틈 사이로 신발을 볼 수 있도록 해 문을 들어선 이가 누구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세 개의 문만 열어두면 안채 방 안에서 사랑채에서 뒷간으로 가는 길이 보이도록 설계한 건 사랑채를 기웃거릴 수 없었던 아녀자가 안채에 앉아 바깥 주인을 찾아온 손님이 누군지 알 수 있도록 해놓은 배려다. # 시간을 거슬러 꼬리를 무는 이야기 논산 땅에는 시간을 거슬러 고려, 후백제, 삼국시대로 올라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잠겨있다. 윤증 고택과 함께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과 그의 제자 송시열이 세운 정자 임리정과 팔괘정, 그리고 이 두 학자를 모신 돈암서원의 시원시원한 건물배치와 현판 글씨가 논산의 조선 이야기라면, 절집 관촉사와 개태사에는 논산의 고려 이야기가 있다. 고려 광종의 명으로 조성된 관촉사 은진미륵의 비현실적인 비례가 보여주는 위용이며, 굵고 강한 선의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는 고려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왕권의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 관촉사 아래 주택가 마당에 서 있어 ‘은진미륵의 어머니’라고 장난스럽게 불리는 비로자나석불의 부드러운 자태는 부록 격이다. 덧붙이자면 쌍계사 대웅전의 꽃 문살이며, 칡나무 기둥도 논산에 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논산에서 후백제의 시간은, 아들에 배신당해 유폐되고 왕건에게 투항했다가 끝내 화병으로 세상을 마감한 견훤의 묘에 있고, 백제의 마지막 시간은 황산벌 전투에서 최후를 맞은 계백 장군의 유적지와 백제군사박물관에 있다. 한 번도 역사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지만 지나간 시간의 자취는 논산 땅 곳곳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이렇게 선명한 것은 논산이며 강경이 번성의 시간보다 더 오래 쇠락했기 때문이리라.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논산 연무읍 육군 훈련소 부근에 에버그린관광호텔(041-742-3344)이 있다. 연무읍에 펜션 그린힐(041-741-0788)이 있고, 벌곡면에는 대둔산빌리지펜션(010-6483-1331)이 있다. 양촌면의 양촌자연휴양림(041-746-6481)도 괜찮은 편이다. 강경에서는 젓갈 정식과 황복탕 등이 손꼽히는 먹거리다. 둘 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때가 제철이다. 연산면 화악리의 오계와 탑정호 매운탕도 논산에서 이름난 먹거리다. 황복탕은 황산옥(041-745-4836)이 최고로 꼽힌다. 강경에서 금강을 건너던 황산 나루의 주막집에서 출발했다는 주인의 주장에 미뤄보면 줄잡아 90년의 내력을 지닌 식당이다. 강경에 젓갈을 파는 가게는 흔전만전이지만 젓갈 백반을 파는 식당은 드물다. 달봉가든(041-745-5565)이 잘 알려진 집인데 명란, 창난, 낙지, 황석어, 꼴뚜기, 토하 등 15가지 젓갈에다 돼지고기 수육, 된장찌개 등을 상에 올린다. 젓갈정식은 어차피 젓갈이 중심이라 식당마다 별 차이가 없으니 굳이 맛집을 찾을 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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