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의 잦은 비로 충주호의 수위가 가득 차올랐습니다. 한 달 보름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드러내며 거북등처럼 갈라졌던 호수가 장마와 잦은 비로 수위를 회복한 것이지요. 5년여 만에 기록한 만수위입니다. 전국의 호수나 저수지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남과 경남 등 남부지방의 저수율은 아직 5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충주호와 소양호, 대청호는 물이 그득하게 담겼습니다. 지금 충주댐 안에 가둬진 물은 예년 평균보다 26.4%가 많은 19억1000만㎥. 이것도 지난 25일 홍수위를 넘어서자 충주댐 수문 두 개를 열고 초당 1500t의 물을 51시간 방류하고 난 뒤의 기록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충주호는 그동안 정강이가 껑충하게 드러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호안(湖岸) 사면의 황토가 그대로 드러난 호수는 흡사 공사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아름다운 물색과 초록의 숲이 만들어내는 정취를 도무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아늑한 풍경의 호수는 간 데 없고 저 아래까지 수위가 내려간 호수와 풀썩거리는 먼지는 황량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을을 앞두고 충주호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충주호의 만수위가 참 반가운 것은 지금 호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 충주호에서는 진한 단풍으로 물든 호안의 숲과 그 절정의 순간을 그림자로 찍어내는 물을 볼 수 있습니다. 호수의 수면은 뭉게구름 뜬 코발트빛 하늘을 담아내기도 하지요. 모두 물이 그득 담긴 만수위의 충주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만수위의 충주호가 올가을에 선사하게 될 매혹적인 풍경을 기대하면서 충주호 일대의 명소들을 둘러봤습니다. 비포장과 포장이 번갈아 나오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호반 드라이브 코스를 찾았고 충주호를 굽어보는 특급전망대를 찾아 암릉의 철제계단을 오르기도 했으며 이른 새벽 산중 외딴 마을의 숲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내친김에 충주호에 물을 담는 월악산 자락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스러진 절집의 흔적을 만나고 고즈넉한 숲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아직 단풍 물드는 계절은 멀었지만 충주호 주변에는 벌써 서늘한 대기와 붉게 익어가는 사과, 청량한 풀벌레 울음소리가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충주호 수면을 뒤덮던 자욱한 물안개도 이제 가을의 척후병들이 호수에 막 당도했음을 알렸습니다. 계절이 이렇게 또 건너갑니다.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바야흐로 이제 축복 같은 계절, 가을의 초입입니다.
# 충주호에 물이 가득 담기다 충주호를 흔히 ‘내륙의 바다’라고 부르는 건 호수의 크기 때문이다. 충북 충주와 제천, 단양에 걸쳐 있는 충주호는 소양호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저수량의 거대한 인공호수다. 충주호가 담을 수 있는 물을 무게로 계산하면 27억5000만t에 달한다. 2.5t 트럭으로 환산해보면 자그마치 11억 대 분량이다. 저수량이 이 정도니 비가 웬만큼 와서는 충주호의 수위를 끌어올리지 못한다. 한 해 중 가장 많은 물이 담기는 초가을에도 평균 저수량이 50%를 밑도는 게 예사다. 그런데 지금 충주호의 저수율이 70%에 육박한다. 그것도 홍수 대비를 위해 지난 25일부터 이틀 넘게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해 낮춘 것이 이 정도다. 충주댐 이 수문을 연 것은 5년 만이다. 그건 곧 충주호가 5년 만에 만수위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충주호 저수율 70%는 평년보다 26.4%가 높은 것이다. 저수율 70%를 만수위라고 표현하는 건 70%까지만 물을 담는 공간이고 남은 30%는 폭우와 홍수를 예비하기 위해 남겨둬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충주호가 만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이런 수치가 아니라 호숫가 풍경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가뭄으로 드러나 있던 숲과 물 사이의 시뻘건 흙의 경계는 수위가 오르면서 사라졌다. 호반에는 물에 몸을 반쯤 담근 나무들이 초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만수위의 호수는 일대의 풍경을 한층 여유 있고 낭만적으로 빚어낸다. 물이 가득 차올라 초록의 숲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지금도 좋지만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져 호반의 숲이 단풍으로 물들면 충주호는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리라. # 철계단에서 충주호를 굽어보다
제비봉은 빼어난 충주호 조망을 품고 있지만 그 조망은 산 정상이 아니라 오름길에 있다. 제비봉은 장회나루 쪽에서 올라 얼음골로 하산하는 게 보통인데 산행 들머리에서 정상을 향하는 구간에서 훌륭한 조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급경사에 통나무를 박아넣은 흙길을 오르면 10분 안쪽에 철제 계단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아기자기한 암릉과 계단이 교차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 구간 전체가 호수를 조망하는 거대한 전망대다. 계단을 붙잡고 오르다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거기 충주호가 보여주는 기가 막힌 절경이 있다. 등산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충주호의 경관을 보겠다면 굳이 제비봉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내키는 곳까지 올라서 경관을 즐기다가 내려오면 된다. 시야가 탁 트이는 계단 초입까지만 간다면 20분쯤이면 넉넉하다. 철계단을 붙잡고 고도를 높일수록 경관의 규모는 더 커지는데 가장 높은 시야를 누릴 수 있는 끝부분의 철계단까지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충주호를 찾은 관광객 대부분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지만 유람선을 타고 보는 경관보다 이곳 제비봉에서의 조망이 몇 배쯤 더 훌륭하다. # 빼어나지만 가지 못하는 곳 이제 미뤄둔 충주호에서 ‘첫 번째로 조망이 좋은 곳’ 이야기. 그곳은 다름 아닌 제천의 비봉산이다. 비봉산은 섬처럼 호수 안으로 밀고 들어간 땅에서 우뚝 솟은 봉우리다. 비봉산 정상에서 충주호 일대를 내려다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비봉산이 특별한 건 경관의 스케일 때문이다. 비봉산 정상은 충주호 일대에서 유일하게 360도로 경관이 펼쳐지는 자리다. 비봉산은 호수까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압도하기에 딱 적당한 거리쯤에 있다. 비봉산 정상의 기막힌 경관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이 나서 알려졌다.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관광객들이 활공장을 찾아들었다. 이에 제천시가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관광용 모노레일을 설치하면서 비봉산은 일약 명소가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비봉산 정상에는 발을 디딜 수 없다. 모노레일도 산 중턱까지만 운행하고 있고 등산로도 통제중이다.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을 잇는 국내에서는 가장 긴(2.3㎞) 케이블카 공사 때문이다. 이달 초 공사현장에서 철제기둥이 넘어져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인명사고까지 나면서 통제는 더 철저해졌다. 케이블카 완공은 내년 4월쯤으로 예정됐는데 사고 탓에 완공 시기는 좀 더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 속계와 선계의 경계를 지우다
자드락길 6코스는 ‘괴곡성벽길’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변의 산세가 성벽처럼 닫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괴곡성벽길의 들머리는 옥순대교 부근. 여기서 꼬박 1시간 30분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야 전망대가 있는 백봉에 닿는다. ‘경관 조망길’이라는 괴곡성벽길의 부제대로 대부분의 구간에서 충주호 일대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 걷는 것이 최선이지만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백봉의 팔분 능선쯤에는 다섯 가구가 사는 외딴 마을인 다불리 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농막을 개조해서 막걸리나 두부 따위를 파는 ‘백봉 산마루 주막’도 있다. 주막은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으니 여기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장회나루에서 수산중학교 뒤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다불리의 주막에 닿는다. 이 길은 포장은 돼 있지만 길이 워낙 좁고 교행이 불가능한 구간이 많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주막집 마당을 지나서 두 번쯤의 비탈을 걸어 오르면 이내 전망대가 있는 백봉 정상에 닿는다. 나무 덱으로 만든 원통형의 전망대 위에 올라서면 충주로를 가로지르는 옥순대교와 말목산, 제비봉 일대의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쪽의 충주호 구간에는 아침 안개가 짙은데 특히 일교차가 큰 가을날에는 수면 위로 피어나는 안개가 호수 위를 흘러다니며 주변의 산세와 어우러져 속계와 선계의 경계를 지운다. # 호젓하고 은밀한 호수길을 달린다
만수위의 충주호를 만나는 최고의 코스는 바로 532번 지방도로다. 우선 이 길에 오르기 전에 알아둬야 할 몇 가지 주의사항. 첫 번째는 이 길의 적잖은 구간이 비포장이라는 점. 비포장 흙길이지만 길이 그리 거칠지 않아 승용차로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포장도로의 속도와 안락함을 생각한다면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 두 번째는 호수를 끼고 달리는 이 길이 내내 비슷비슷한 풍경을 지나게 된다는 것. 호수 물빛의 색깔과 도로변에 핀 꽃의 종류를 가려내지 못하거나 굽은 길 너머의 풍경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이 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니 아예 들어서지 않는 게 낫겠다. 하지만 호수의 숨겨진 속살을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두어 시간의 드라이브 도중 마주치는 차량이 다섯 대를 넘지 않을 정도로 호젓한 길을 달리고 싶다면, 굽이를 돌 때마다 펼쳐질 경관을 떠올리며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길이야말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일 게 틀림없다. 이 길을 찾아가려면 중앙 고속도로 남제천 IC로 나와 금성면사무소를 찾으면 쉽다. 면사무소 못미처 금성파출소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두 길 중 오른쪽 길이 충주호를 끼고 이어지는 532번 지방도로다. 제천의 월굴리 쪽에서 시작하는 532번 지방도로는 충주의 동량리까지 40㎞ 남짓이다. 충주호를 구불구불 끼고 도는 이 길은 남해안 어디쯤의 해안도로 같은 느낌이다. 길은 호젓하다 못해 ‘비워져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느릿느릿 달리다 보면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들을 수시로 만난다. 황석리, 사오리, 부산리, 단돈리, 오산리…. 마을이라고 해야 집 몇 채가 고작인데, 대부분 충주호 건설로 수몰된 마을 주민들이 터를 잡고 산다. 수몰된 지 10여 년이 지난 뒤 고향을 떠났던 이들이 다시 모여 이룬 마을도 있다. 이 길에서 만나는 건 손대지 않은 청량한 자연과 호젓한 고향 풍경이다. 이름 좀 났다는 호수들은 죄다 음식점과 모텔에 포위되고 말았지만 아직 이쪽에는 소박한 사람들이 자연 속에 깃들어 산다. 충주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532번 지방도로를 찾아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로 나와 82번 지방도를 타고 금성 쪽으로 가다 골말에서 월굴리 쪽으로 빠져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호수를 따라 외길이 이어진다. 532번 지방도로는 충주 동량면사무소까지 40㎞ 남짓이다. 면사무소에서 계명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잡고 531번 지방도로로 고갯길 제오개를 넘어 36번 국도로 갈아탄 뒤 옥순봉과 구담봉을 둘러보는 긴 코스를 택해도 좋겠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대명리조트 단양이 일대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대명리조트 단양은 워낙 객실 수가 많아서 주말에도 방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충주호의 접근성은 장회나루에서 가까운 단양이 가장 좋은 편이다. 제천이나 충주에서 충주호를 끼고 있는 쪽에는 이렇다 할 숙소가 없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간 충주호 골짜기에는 민박과 펜션이 어쩌다 하나씩 드문드문 있다. 펜션과 음식점들이 수변을 장악한 다른 곳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적요한 하룻밤을 보내면서 밤하늘의 별빛과 이른 아침의 물안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숙소를 단양으로 잡았다면 장다리식당(043-423-3960)을 추천한다. 마늘한정식을 내는 집으로 정식의 종류만 7가지다. 1인분에 1만3000원짜리부터 있다. 저렴한 것일수록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충주 수안보에 숙소를 잡았다면 수안보온천지구 내 ‘해성정’(043-846-0495)을 찾아가 볼 만하다. 충주시 음식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집이다. |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록도 (0) | 2017.09.20 |
---|---|
경북 청도 가을의 길목 (0) | 2017.09.07 |
논산&강경 빛바랜 역사속으로 (0) | 2017.08.26 |
무주의 또다른 여행 '건축기행' (0) | 2017.08.16 |
소백산 그늘 경북 영주 (0) | 2017.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