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가끔씩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차안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고 기분전환을 하곤 하는데, 심야방송이라서 그런지 “오늘도 혼자서 밤을 지새려니까, 외로움이 밀려오네요.”라는 식의 상투적인 말들이 자주 방송을 타곤 한다. 그럴 때마다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혼자라니, 한 방 쓰는 영가들이 들으면 섭섭하겠군’이라고.
사실 우리는 영혼과 몇 만년 동안 한 방을 써왔다. 그러니 영혼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룸메이트’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이 룸메이트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너무도 많기에, 괜스레 미안해질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영혼 만큼 좋은 룸메이트도 없는 듯 싶다. 그저 우리 모르게 방을 지켜주기도 하고, 너무 지쳐 집에 돌아올 때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기도 하는 등 최고의 마니또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나야 영혼이 보이니 마니또 영혼은 꿈도 꿀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천사표 룸메이트도 화를 낼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룸메이트의 허락도 없이 다른 영가들을 초대할 때 발생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과거엔 여주에 있는 목아불교박물관에서 종종 구명시식을 올리곤 했었는데, 그날은 조금 특별한 자리로, 지장보살을 모시며 위패에 올려져 있는 영가들을 상대로 구명시식을 하는 대규모의 의식이 올려질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에는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을 포함해 150명 가량이 함께 했고, 구명시식에 모실 영가의 수도 엄청나 128명의 위패를 모시는 대기록까지 수립하게 되었다.
드디어 대규모 합동 구명시식이 시작되자 구명시식을 올리는 지하실에는 촛불 몇 개만 남겨놓은 채 순식간에 정적이 사위를 지배하게 되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숨소리를 고르며 온몸의 기를 다해, 128명의 위패 중 가장 첫 번째 위패의 주인인 영가를 불러내려는데 갑자기 법단쪽으로 돌이 날라 오는 게 아닌가!
구르르르릉! 돌 구르는 요란한 소리에 구명시식을 보러 온 사람들도 놀랐는지 일제히 법단쪽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 역시 놀라 눈을 번쩍 떠 보니 내 앞에는 하얀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를 째려보며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영가시여, 지금 이 구명시식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게 역정을 내시는지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이곳은 내 땅이오.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단 말이요.” 울분을 터뜨리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사연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그 해 을축년 대홍수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폭우 속에서 발버둥치며 세 아이와 함께 익사하고 만 것이었다. 유달리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그녀는 원통함을 풀 길이 없어 70여 년을 구천을 떠도는 중음신으로 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신통력까지 갖춘 강력한 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애타는 사연을 다 듣고 난 뒤 나는 그녀에게 법문을 한 구절 들려주었고 이에 감동 받은 그녀는 이내 화를 풀었다. “영가이시여, 내 그대를 반드시 기쁘게 할 터이니 오늘 구명시식을 제발 성공리에 끝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자 구명시식은 다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영가의 도움으로 큰 사고없이 잘 끝나게 되었다. 나 역시 영가에게 약속드린 대로 박물관장에게 부탁, 그녀를 위한 모자수자상을 제작해 늘 법단에 모시도록 당부했다.
그날 그곳에 함께 했던 150여 명의 눈과 귀를 놀라게 했던 사건. “촛불이 흔들리고 지하실에서는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는데 분명 사람이 아닌 기척이 느껴졌어요. 통곡하는 울음소리도 들렸고, 싸우는 소리도 들렸어요. 그런데 법사님께선 정말 괜찮으셨어요?”
오늘 혼자서 밤을 지새야 하는 분이 계신다면 소주라도 한 병 사가는 게 어떨까. 한 잔은 여러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두 번째 잔은 오랜 룸메이트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세 번째 잔은 서로간의 우정을 위해 건배한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는가.
마약중독 영가의 절규
IMF는 은근슬쩍 졸업한 것도 같은데 왜 아직도 서민경제는 힘든지 모르겠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범죄율은 상승한다고 했던가. 그래서일까, 요즘엔 신종 마약이 국내에 유입되어 중산층을 주고객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한다. 마약의 주고객도 옛날과는 크게 달라져 주부와 대학생, 중소기업 사장 등 한 마디로 특정한 대상 없이 국민 누구라도 마약사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기사들이 신문이나 TV에 보도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마약의 진짜 부작용(?)은 현생이 아닌, 다음 생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것도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전생에서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환생할 시엔 전생처럼 ‘정상인’으로 환생하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렇기에 전생에서 마약 때문에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도 안될 큰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마약이 하고 싶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도 마약을 찾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젠 영가가 된 사람을 말이다.
지난 겨울,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앉고 눈앞이 침침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증상을 앓고 있는 한 중년부인이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녀는 구명시식 당시에도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이른바 큰며느리 기질이 다분한 분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이런 증상을 심각하게 겪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한의원과 종합병원을 다 다녀봐도 원인불명인 그녀의 병. 나는 그녀에게 구명시식을 권했다. 그녀 역시 “사업 실패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방황하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화열이 옮아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영적인 병’인 듯 싶어 구명시식을 간절히 원했던 터라, 곧 구명시식이 올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명시식에는 뜻밖의 영가가 출현했다. 즉, 오실 것이라 예상했던 아버님의 영가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얼굴에 검은 눈 그림자가 뚜렷한 한 여자 영가가 출현한 것이다.
“영가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이 물음에 그녀는 “나는 백영숙이라고 합니다. 저 여자의 사촌 언니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구명시식을 청한 부인에게 ‘백영숙’이라는 친척 언니를 아느냐고 묻자, 그녀는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옆에 앉아 있던 친척의 도움으로 겨우 그녀를 기억해내고는, “아니, 저도 기억 못하는 사촌언니의 이름을 법사님께서 어떻게 아시죠?” 라고 묻는 게 아닌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촛불과 제기에서 딸칵딸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구명시식장은 한 차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영가를 달래고자, “왜 이곳에 오셨냐.”고 물었고, 그녀는 “수술 후유증이 너무 심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그것 때문에 죽고 말았어요.”라고 말하더니 그때부터는 끈질기게 “제발, 마약 한 대만 놔주세요. 네?”하며 천도조차 거부하고 내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안돼요! 아직까지도 마약을 끊지 못하다니! 어서 마약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오!” 장시간의 훈계에서도 영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딱 한 대만 놔주시면 돌아갈게요.”하면서 집착을 버리지 못해, 나는 마지막 처방으로 결국 제단에 걸려 있는 초령을 휘한 제물을 찢어 불에 태워버리고야 말았다.
영혼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밝힌 사건. 이는 영혼의 세계를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데이터가 되어주었지만 내 가슴은 마냥 아파 왔다. 마약중독자의 영가는 내 힘으로도 구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쾌락으로 손댄 마약. 이것으로 인해 다음 생까지도 고통받게 된다는 걸 아시는지…….
30년 만의 화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보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싸움을 즐겨하는 민족’이라면서 혀를 내두른다. 또 싸움 시 구경꾼이 많으면 많을수록 특유의 쇼맨십을 발휘, 화려하고 역동적인 전투모드가 작동되는 것 또한 한국인들에게서만 발견되는 ‘싸움’의 유형.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온갖 술책을 동원해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볼 때 한국인들의 ‘무대포식 전투모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우리만의 문화일 듯.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게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뒤끝 없는 ‘화해’.
북적이는 시장 통, 몇 십 명의 구경꾼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 온갖 욕설을 다 퍼부으면서 한바탕 난리블루스를 연출했던 싸움의 두 주인공이 그 다음날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 마주하고 수다떠는 게 우리네 일상이지 않은가.
다른 건 다 이해해도 그것만은 이해 못하겠다는 일본인들. 그러나 우리만의 이 ‘뒤끝 없는 화해문화’에도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그 노하우란, 싸움 뒤에 반드시 한 명의 중재자가 나타나 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곤 한다는 것이며, 또 싸움의 주인공들도 이에 비교적 순순히 응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먹거리 문화를 통해 쉽게 화해에 이르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 살아 있는 사람들 얘기. 만약 싸움의 두 주인공이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생과 사의 이별을 하게 될 때는 어찌해야 할까. 평생토록 가슴의 원망과 한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까닭에, 내가 행하는 구명시식은 언제나 화해를 그 목적으로 삼는다. 오직 구명시식을 통해서만 망자와 산 사람이 화해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회갑을 맞은 어떤 여자 분이 나를 찾아와 구명시식을 청한 일이 있었다. “법사님, 꼭 30년 동안 이 일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제 어머님의 영가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의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기에 30년간이나 가슴에 한이 되어 맺혀 있었던 것일까. 그 사연은 구명시식을 통해 밝혀졌다.
30년 전,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그 여자 분은 그날도 저녁끼니를 걱정하며 집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찾아와 “얘야, 내가 내일 관광을 떠나는데 돈 가진 것 좀 있냐?” 라고 말해, 그 분은 찢어지는 가슴을 애써 감춘 채 “어머니, 제가 오늘은 진짜 돈이 없네요. 오늘만 용서해주시고 그냥 가시면 안될까요?” 그 말에 어머니는 부아가 치밀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딸의 집을 나섰는데, 그만 횡단 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여 그날로 돌아가시고 만 것이었다.
구명시식장에서 30년 만에 딸과 만난 친정어머니 영가는 딸의 염려대로 그날의 화가 아직도 안 풀린 채 그대로였다. “너, 그때 돈 있는데 나 주기 싫어서 안 준 거였지?”하며 따지는 어머니 영가 앞에서 딸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어머니 오시면 드리려고 돈을 모아놨었는데, 하필 땡전 한푼 없던 그날, 어머니께서 오실 줄이야…….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흑흑!”
진실을 알게 된 친정어머니는 그제야 화를 삼키곤 딸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30년 만의 화해였다. 영가가 되어 딸을 원망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빈자리를 눈물로 섬겼던 딸의 30년간의 오해는 이렇게 끝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구명시식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화해할 수 있었을까.
망자와 산 사람과의 화해. 이 아름다운 화해의 현장을 내가 주선했다는 사실에 언제나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영원한 숙제인 이승과 저승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작업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그것만이 역사의 질곡을 거쳐오면서 전쟁이라는 뼈아픈 시련을 겪어야했던 이 땅의 모든 오해를 종식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편이 되기에…….
행복의 비결
우리는 매일 행복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과연 행복하다는 것은 뭘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덴마크 국민들이란다. 작년 12월께 미국내 한 컨설팅회사의 마케팅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22개국 중 덴마크가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호주, 미국,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등이 따르고 있었다.
반면,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라는 러시아. 옛 소련이 붕괴된 뒤 경제적 빈곤으로 허덕여온 러시아 국민들은 이것이 ‘자기 만족도’와 직결,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한 마디로 ‘불행한 국민’이 된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것일까. 사람들은 신혼 무렵 가장 행복하다고들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는데, 그래서일까. 신혼부부들이 쓰는 말 중 유독 많은 것이 “자기야, 나 무척 행복해.”, “나, 자기 무척 사랑해.” 등인데, 바로 이 말 속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면?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무척’이라는 말. 이 말을 뜯어 보면 ‘척이 없다’는 뜻으로, 한 마디로 척을 짓지 않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척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남을 잘 살게 해주는 것, 남의 갈 길을 도와주는 것인데,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작은 미물과도 척을 짓지 않기 위해 ‘방생’ 행사를 가진 게 아닐까.
생명을 놓아주는 이 방생 행사. 작은 미물의 생명도 존중하고, 그 미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이 아름다운 행사의 속뜻은 결국 ‘척을 짓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되었으며, 나 역시 그런 바람으로 ‘영혼의 방생’인 구명시식을 행하고 있다.
얼마 전 일이다. 법당으로 노년기에 접어든 한 여인이 찾아와 “제 아버님께서 제 나이 아홉 살 때, 부역행위를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전 그것 말고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어요. 법사님, 아버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디에 묻히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하며 구명시식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나 역시 이데올로기로 인한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기에 그 여인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곧 구명시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명시식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영가 외에 30명은 족히 될 듯한 영가들이 한꺼번에 출현한 것이었다. 그 사연인즉, 그녀의 아버님은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되어 출감될 날만 기다리다가 결국 1.4후퇴가 시작되자 같은 죄목으로 끌려온 사람들과 함께 총살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얘야! 보고 싶었다.” 30명이 동료들과 함께 나타난 그녀의 아버지 영가는 그녀를 보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그녀 역시 아버님과의 상봉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겐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구명시식을 청한 이의 아버님만 천도를 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구명시식을 하던 중 모셔온 영가들 외에 다른 영가들이 함께 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이 분처럼 함께 총살을 당했다거나, 함께 사고를 당한 경우에, 그 사고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이 자신도 천도되길 바라며 동시에 나타나시곤 하는데 이럴 경우엔 그 분들도 함께 천도하는 것이 구명시식의 원칙이다.
그날 역시 뜻하지 않게 나타난 30명의 영가들을 모두 정성껏 천도해, 갑작스레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영가들을 모두 하늘로 ‘방생’해 드렸다. 그 천도로 인해, 그녀에게 좋은 일이 있기만을 기도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6.25에 관련된 억울한 죽음들. 오늘도 나는 그 죽음들을 정성껏 달래고 ‘방생’한다. 이것만이 이 땅 한국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구명시식과 죽음
올 겨울,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에 나가 보았더니 베스트셀러 1위를 일본 소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소설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잦지만,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제목이라 의아한 마음에 나도 한 권 집어 들었다. 제목은 <철도원>. 이미 읽으신 분들도 꽤 될 듯 싶다. 책은 몇 개의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으로, <철도원>이라는 소설이 그 중 서두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야기인즉, 철도원으로 정년퇴직을 앞둔 시골역사 역장인 주인공이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죽은 딸의 영혼과 행복한 만남을 가진 후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딸의 영혼은 그의 딸임을 감추고 나타나 어린아이부터 여고생의 모습까지 하룻밤 사이에 보여주지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자아이가 자신의 딸임을 알지 못하다, 그녀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던 도중 죽은 아내가 끓인 된장국과 똑같은 맛을 내는 된장국을 먹어본 뒤, 그 여자아이가 죽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영혼의 세계를 이렇게도 평범하고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책을 다 읽은 뒤 나의 생각은 이랬다. 한편으론 영혼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마냥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의 직업은 영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일 영혼을 만나는 나로서는 영혼과의 만남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영혼과의 만남만큼이나 아름다운 만남이 몇이나 될까’하는 짧은 회의도 들었던 것이다. 엄연히 소설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 않은가. 소설만큼이나 아름다운 영혼체험담만 줄줄이 있다면야 영매를 하는 나는 최고의 럭키맨일 터.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정하다고 했던가.
때론 목숨을 담보로 구명시식에 임해야 할 때가 있고, 또 그렇게까지 비장한 각오로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임박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영혼세계의 현실이다.
물론, 영혼을 불러내는 의식은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까운 예로 무당굿 등의 형태로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의식을 올리곤 한다. 그렇지만 구명시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초혼을 한다는 것에서는 일맥상통하나, 구명시식이 그 의식들보다 더 특별한 의식이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바로 이 차길진이 목숨을 걸고 임한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남영호 침몰사건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영가를 천도해달라는 어떤 분의 청에 어려운 구명시식이 되리라는 예감에도 불구하고 구명시식에 임했다. 갑자기 수백 명의 영가 출현에 법당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워낙에 많은 수의 영가 출현에 법당으로 모인 분들조차 직감적으로 영가 출현을 느끼곤 동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 역시 뜻밖의 영가 출현에 당황해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치명적인 쇼크가 나를 강타하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수백 명의 물귀신 영가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순간, 검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나의 영혼을 나조차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다 죽게 되면? 내 머릿속은 그 동안의 일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갔고, 나는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는 생각에 목이 터져라, ‘아버지! 저 좀 살려주십시오 아버지!’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외쳐댔다.
그러자 아주 짧은 찰나, 나의 영혼은 죽음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물귀신 영가들에 둘러싸인 채 구명시식에 임하는 영매로 돌아오게 되었고, 목숨을 걸었던 구명시식이어서 그랬는지 구명시식은 그렇게 조용히 끝날 수 있었으며, 그때 구명시식을 청했던 분의 회사는 현재 8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는 등 좋은 결과들이 이어졌다.
산 사나이는 산에서 죽고, 바다 사나이는 바다에서 죽는다고 하던가. 나 역시 언젠가 구명시식 도중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변함없이 구명시식에 임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조연히 받아들일 줄 아는 대장부의 길임을 알기에…….
영가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매년 열리는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미스코리아 대회만 열리면 온 나라가 술렁대고 또 남자 분들은 그날만 되면 TV앞에서 연신 리모콘을 누르기 마련. 하지만 세상 여자들이 미스코리아 대회를 반기겠는가.
후보가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쏟아지는 말들은 왜 그리 많은지. “쟤는 얼굴이 너무 크다.”, “쟤는 다리가 너무 짧지 않니?” 등 좋은 말은 하나 없고 다들 흠잡기에 바쁜 듯 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지켜보며 후보들이 탈락할 때마다 “쟨 떨어질 줄 알았어.”하며 좋아하는 건 또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이는 비단 이 세계의 일만은 아닌 듯 싶다. 영계에서도 미인과 추녀의 경계는 명확한 듯 싶다. 어차피 죽어 육신이 없는데도 영가가 살아생전 미인이었으면 죽어서도 콧대가 높고, 또 그 반대이면 얼굴 가리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언젠가의 일이다. 어떤 집안의 구명시식을 해주는데 그 집에 서 일찍 죽은 딸의 영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의 영가는 계속해서 얼굴을 가리며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의아해 “아무리 영가지만 왜 얼굴은 가리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영가는 “얼굴에 곰보가 많아서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죽으면 소용없는 육체인데 살아생전에 곰보가 있었다고 죽어서도 얼굴을 가리다니. 하지만 그녀의 뜻은 완강했다. “저는 살아서도 제 얼굴을 남에게 보인 적이 없습니다. 곰보가 많아서지요. 그러니 법사님께서도 이해해주세요.”
알고 보니 그녀의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녀의 얼굴이 곰보로 뒤덮이자 그녀는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항상 불을 꺼놓고는 방에서 이불을 쓴 채 식구들조차 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식구들의 걱정은 날로 커졌고, 궁여지책으로 성형수술을 시도해보았으나 당시의 성형수술 기술이 지금보다 상당히 떨어졌던 터라 수술마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저는 더 이상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술에 실패한 제 얼굴은 그야말로 괴물이었지요. 그래서 전 방에만 있다가 결국엔 폐쇄증으로…….” 그녀는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흐느꼈다.
그런 그녀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똑같습니다. 영가께선 살아생전 추녀였다는 카르마를 안고 지금도 추녀라고 착각하고 계십니다. 착각을 깨는 순간, 영가님의 얼굴에서 곰보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럴까요? 제 작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엔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 손을 열어 보였다. 그때 그녀의 얼굴은 내 짧은 기억으론 분명, 곰보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이렇듯 외모 콤플렉스는 죽어서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러다 영가에겐 다리가 없는데도 살아생전 숏다리 콤플렉스가 있던 영가는 죽어서도 “다리가 짧아 고민이에요.”라고 말하는 건 아닌지.
누구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늙어가면서 변하지 않는가. 늙는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간다는 말. 이 과정에서도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 또한 업으로 남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착각은 불경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죽어서도 계속되는 외모에 대한 착각은 좀 바뀌어져야 할 듯 싶다. 지금 당장 자신을 냉정히 평가하도록! 죽어서도 외모 콤플렉스를 느끼거나 반대로 공주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이처럼 불쌍한 영가는 또 없을 테니 말이다.
몰래본 영혼
나는 가끔씩 재미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여고생들이 꺄악 소리지르며 귀신 얘기를 하는 그 뒤로 누군가가 따라 웃는 것. 문제는 그 누군가가 사람이 아닌 영혼이라는 것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여고생들에게 “너희들 뒤에 귀신 있다.”고 말해줄 수도 없는 일. 그저 이 장면은 나밖에 볼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여러분들도 나처럼 딱 1분 동안 영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영계에 대해 학구적으로 물어보는 분도 계실 테고, 나 몰라라 도망가는 분도 계실 테고, 미녀 영혼에게라면 그 짧은 시간에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는 엉뚱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영혼을 보게 되면 어쩌지’하고 미리부터 걱정하지는 말도록. 이 세계는 정상인들은 영혼을 볼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영혼과 우리는 진동수부터가 달라 영혼을 보기 위해선 보다 특별한 능력이 요구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간혹 이 맞지 않는 진동수를 넘어 영혼을 감지하는 분들이 있다.
이번엔 내가 만난 분들 중에 유난히 영혼에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분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영혼을 어떻게 느꼈나에 대한 것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k로 모두 여러분과 같이 평범한 보통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먼저 구명시식에서 창과 노래를 맡고 계신 김 보살님. 이 분의 노래 한 구절, 한 구절은 구명시식을 청한 가족들 뿐 아니라, 그날 오시는 영가들까지도 울리는 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김 보살님은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영가의 움직임을 지금은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쉬운 예로, 돈 때문에 한이 있는 영가의 경우, 어디선가 동전 소리가 땡그랑땡그랑하고 들리고, 배고픈 영가가 찾아오는 경우엔 제사상의 수저가 저절로 울린다는 것. 화가 난 영가가 등장한 경우엔 갑자기 촛불이 공중으로 치솟는 것도 보았다는 김 보살님은 이제는 조금이나마 영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되어 이를 적극적으로 춤과 노래에 반영한다나.
김 보살님 뿐 아니다. 나의 아내 능인각 보살은 지나가는 소리로 “영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가 얼마 뒤 영가를 직접 목격하곤 그 자리에서 기절까지 하고 말았다. 아마도 영가를 처음 본 분들 중엔 이렇게 기절하는 분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반드시 기절한 분만 계신 것은 아니다. 어떤 분은 영가와의 만남을 다소 즐기는 분도 계시다.
얼마 전 구명시식장에서 벌어진 일. 평소 내 말을 잘 듣고 따르던 한 여성분께서 구명시식을 하게 되었다. 그 분이 청한 영가는 자살해 죽은 여중생 영가. 그런데 구명시식장엔 그 영가뿐 아니라 영가의 친구들까지 한 패거리 몰려온 것이다.
영가는 죽기 직전의 정서를 안고 영계로 가는 것이기에, 그날 왔던 영가들은 몸만 없다 뿐이지 영가는 여중생이었던 그 모습 그대로인지라, 구명시식장에 우르르 몰려와 까르르 웃으며 요란하게 수다를 떨기도하고, 한바탕 신나게 장난까지 치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 눈에 밟히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구명시식을 청했던 그 여자 분께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
구명시식이 끝난 뒤, 나는 그녀에게 “영혼의 소리를 들으니 어떠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어떻게 그 소리가 제게 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으로 저는 영혼의 세계에 대해 믿음이 생겼어요.”라며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는 엄청난 위기를 영계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무사히 넘긴 ‘대가’였음을 그녀는 알기나 할런지…….
어떤 경우이든 생사를 달리한 저편의 세계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그 위험을 나만이 짊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영매의 운명이며, 영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봄바람
나는 유달리 봄에 약하다. 정확히 봄바람에 약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고교시절, 봄만 되면 수업이고 뭐고 점심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그 길로 곧장 장충단 공원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장충단 공원의 매력. 나는 그곳에서 고교시절 불같이 타오르는 봄바람 증후군을 애써 달래곤 했다. 영능력을 갖고 있는 고교생이 사랑을 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순수하게 좋아하는 여고생이 있어도 솟구치는 젊은 혈기 탓에, 본의 아니게 그녀의 속옷까지 훤히 보고 마니, 어찌 그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만 이런 혈기 왕성한 봄바람 증후군에 시달린 것은 아닐 터. 분명, 나같이 봄바람 증후군을 심하게 앓는 분들이 또 있을 것 같아, 바람난 사랑이 아닌 저주도 무릅쓴 참된 사랑으로 맺어진 한 부부의 애달픈 사연을 얘기해 볼까 한다.
잠실 후암정사로 한 중년의 부부가 찾아왔다. 언듯 보기에도 남편은 쉰 살이 넘어 보였고, 부인 역시 마흔은 족히 되어 보였다. 두 사람은 내 앞에 앉아 서로 먼저 말하라고 툭툭 치더니 이내 남편 분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법사님, 저희 부부에겐 오랜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흰 중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저나 아내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해서 기다린 게 벌써 20년째입니다. 죽기 전에 자식하나 보고 죽는 게 소원인 사람입니다. 제발 도와 주십시오.”
그의 소망은 간절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의 아내는 이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20년이 넘도록 얼마나 속이 탔겠는가. 자식 못 갖는 서러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 터. 그들은 오랜 설움 끝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혹시 두 분께서 결혼하실 때 집안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남편 분이 놀라며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것은 구명시식에서 다 밝혀질 것입니다. 조금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주일 후, 그들의 구명시식은 예상대로 험난했다. “이 놈, 네가 원수 집안의 여식과 혼인을 해? 우리 가문이 네 처의 가문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을 몰랐더냐? 내가 저 집안의 여식과 혼인을 금하라 했거늘, 네 이놈! 조상의 피를 헛되이 하다니.”
먼저 등장한 것은 남편 가문의 조상어른 영가. 그러자 이에 지지않는 우렁찬 목소리가 구명시식장에 울려퍼지는 게 아닌가.
“네 이 년! 네 년은 죽어 마땅하다. 우리 가문의 3족을 멸하게 한 저 원수 놈의 자식과 혼인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부인 가문의 조상 영가까지 나타난 구명시식장은 그야말로 폭풍전야가 따로 없었다.
영가들의 얘기는 이러했다. 조선시대 남편의 가문과 부인의 가문은 당파가 다른 명문가문이었는데 당쟁으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고, 결국 두 집안은 멸문지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말 그대로 원수가 된 것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의 결혼도 순탄치 못했을 터. 100여 년 전부터 금한 두 집안의 혼인이 이 두 사람으로 인해 깨지자, 억울하게 죽은 두 집안의 조상 영가들이 이 부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저주를 내려 중년이 넘어서까지 아기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두 집안 영가들을 달래드렸다. 100년의 세월 동안 쌓인 원한을 풀어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지금도 열심히 불임클리닉에 다닌다는 부부. 돌아오는 봄엔 포근하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좋은 소식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시어머니의 복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 아마도 그만큼 여자는 독하다는 게 아닐까.
사실 너무 착한 여자보단 조금은 못된 여자를 선호하는 게 남자들의 야릇한 습성이듯 독한 내력도 무시 못할 매력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독한 매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연애시절엔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결혼해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이번에 등장하는 문제의 이 여인이 여자 특유의 독기(毒氣)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치명적인 마이너스 점수를 받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 독한 여인을 만난 것은 몇 년 전. 잠실 후암정사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그 여인을 처음 본 순간, 중년의 부인답지 않은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싶어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여인은 “저에게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 하나가 있는데 얘가 너무 말썽을 피우네요. 학교에 무단결석하질 않나, 커닝을 하지 않나, 아무래도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법사님,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며칠 뒤 구명시식이 올려지는 날, 그녀는 “법사님, 얘가 제 딸입니다.”라며 중3짜리 딸을 내게 소개했다. 정신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 딸은 나를 보자마자 뭔가 호소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은 나에게 보낸 눈빛과는 180도 달랐다. 너무나 공격적인 그 눈빛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했던 것. 순간, ‘왜 딸이 엄마를 노려볼까?’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구명시식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졌다.
“내가 너에게 시집살이를 조금 시켰다고 네가 나를 굶겨 죽여? 이 독한 것 같으니라고.” 피를 토하듯 강한 음성이 내 귀에 꽂혔다. 물론 그녀와 그녀의 어린 딸은 듣지 못하는 영가의 음성이었다. 그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의 돌아가신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 영가는 자신의 며느리인 그녀를 향해 “그래, 네가 우리 집 며느리가 될 때부터 걱정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늙어 힘이 없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밥을 굶겨? 이 못된 년 같으니라고.”
내가 이 말을 그녀에게 전하자 그녀는 갑자기 시어머니 영가를 향해 넙죽 엎드리며 “어머니, 그때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단지, 어머니께서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 밥의 양을 조금 줄였을 뿐이에요. 고의로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 화를 푸세요.”라고 말하며 눈물로 하소연했지만, 시어머니 영가는 그녀를 비웃으며 “이미 늦었다. 네가 나한테 복수를 했듯이 나도 너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미 인간으로 환생한지 오래다.”라고 말하며, “네 딸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이성을 잃고 통곡하는 그녀에게 “죄 값은 받으셔야 합니다. 모든 죄를 기꺼이 받으신다면 언젠가는 영각께서 당신을 용서해주실 날이 올 겁니다.”라고 말하고 정성껏 영가께 그녀의 선처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다시 잠실 후암정사를 찾았다. 보기에도 몰라보게 좋아진 딸을 데리고 말이다. “시어머니께 못했던 효도 만큼 딸한테는 최선을 다 할겁니다.”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는 이미 독한 여자의 모습이 사라진 부드러운 어머니 그 자체였다.
영혼의 신청곡
영혼이 좋아하는 노래 BEST 10은 뭘까. 영혼도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어, 살아서나 죽어서나 좋아하는 노래는 매한 가지. 그 중 압도적으로 영가들의 지지를 받는 노래는 아마도 트로트가 아닐까.
그러나 언제나 트로트만 청하는 것은 분명 아닐 터. 언제 어떤 영가가 찾아올 지 모르기에 구명시식에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총괄하는 공연 팀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민요부터 테크노까지 두루 겸비해야만 영가들의 신청곡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신청곡이 없을 시엔 그에 맞는 다른 노래라도 준비해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영가가 노래를 신청하는 데에는 분명 간절한 속사정이 숨어있어서이다. 바로 그런 비밀스런 속사정에 얽힌 영가의 신청곡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마흔이 갓 넘은 아줌마 자매가 잠실로 찾아와 구명시식을 청한 일이 있었다.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를 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아줌마가 된 우릴 알아 보실까요? 뚱뚱해진 모습에 그냥 가시는 것은 아니에요?”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동생은 “오늘부터 구명시식 날까지 다이어트 해야겠어요. 나이 먹은 건 어쩔 수 없으니 살이라도 빼야하잖아요.”하며 두 아줌마 자매는 법당이 떠나가도록 까르르 웃으며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녀들의 웃음에는 말못할 슬픈 과거가 숨어있었는데…….
구명시식 당일.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매의 아버지 영가를 법당으로 불러들였는데, 들려온 목소리는 아버지 영가가 아닌 웬 할머니 영가의 컬컬한 목소리가 아닌가. “얘들아, 사랑스런 내 외손주들.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줌마 자매의 외할머니 영가였다. 나는 그녀들을 성급히 불러 외할머니 영가가 왔음을 알렸더니,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외할머니, 나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부모님께 버림받은 우릴 친어머니 이상으로 정성껏 키워주셨잖아요. 외할머니 아니었음, 저흰 벌써 어디서 굶어 죽었을 거예요.”
그러자 외할머니 영가는 “나도 그때가 그립다. 그때 너희들을 칠갑산 밑에서 키웠는데……. 오늘따라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참 듣고 싶구나.” 하더니, 내게 “법사님, 이 노인네 소원이니 <칠갑산> 좀 듣게 해주소. 애들하고 같이 살던 때가 그리워 그렇다오.”라며 노래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순간, DJ가 된 내가 “<칠갑산> 부탁해요.”하자, 노래하시는 분이 나와 <칠갑산>을 불러드리려는데 갑자기 어떤 영가가 나타나 “부르는 김에 내 신청곡도 불러주십시오. 나 쟤들 애비입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버지 영가가 왔다는 말에 놀란 자매는 아버지 영가에게 절을 올리고는 “아버지도 어머니의 배신으로 상처받으셨죠? 저희들 이제는 아버지 이해해요.”라며 울었고, 아버지 영가도 “미안하다. 그래도 너희들은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하며 눈물을 삼키는 것이었다.
외할머니 영가의 신청곡 <칠갑산>이 끝나자 이번에는 아버지의 신청곡이 뒤를 이었다. 처음 신청한 곡은 노래방에도 없는 생소한 곡이었기에 양해를 구해 <애수의 소야곡>을 불러드렸더니 아주 흡족해하신 것이었다.
구명시식이 끝나자 밝은 표정으로 “아버지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효도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라고 말하고는 <애수의 소야곡>을 흥얼거리던 아줌마 자매. 지금도 그녀들이 생각날 때면 나도 모르게 <칠갑산>을 흥얼거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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