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셋
亦愚 亦小 空拳指上生實解
執指爲月枉施功 根境塵中虛捏怪
不見一法卽如來 方得名爲觀自在
了卽業障本來空 未了還須償宿債
어리석고 어리석은 소인배여
빈 손바닥 그 위에 실체 있다 착각하네
달 가리킨 손가락 보고 달이라 하는 가관이여
안과 밖 티끌 속 무엇 그리 찾고 있는가
한 모습에도 안 걸리면 비로소 부처를 보나니
그것을 이름하여 관자재(觀自在)라 함이여
꿈 깨 보면 죄업이란 원래 없는 것이지만
잠 못 깨면 이전의 업이 이자 붙어 되오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영가현각(永嘉玄覺, 675~713)
호(號)는 일숙각(一宿覺). 자(字)는 명도(明道). 속성(俗性)은 대(戴). 온주(溫州)의 영가현(永嘉縣) 사람으로 8세 때 출가. 경전에 통달했다. 특히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조예가 깊었다. 《유마경》을 보다가 깨침을 얻었다. 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을 만나 크게 깨달았다. 〈증도가(證道歌)〉는 그가 육조를 만나 대오(大悟)한 그 날 밤의 감격을 읊은 것이다. 당(唐) 개원(開元) 1년 10월 용흥사(龍興寺) 별원(別院)에서 39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시호(施號)는 무상대사(無相大師), 진각대사(眞覺大師).
저서 :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관심십문(觀心十門)》, 《증도가(證道歌)》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넷
飢逢王膳不能餐 病愚醫王爭得 在欲行禪知見力
火裏生蓮終不壞 勇施犯重悟無生 早是成佛於今在
허기진 자 음식 만나 먹을 줄 모름이여
의사 만난 중병인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진흙 속에 뻗치는 이 지혜의 빛이여
불 속에 핀 연꽃이라 시들지 않나니
용시(甬施)는 큰 죄 짓고도 깨달음을 얻어
보월여래(寶月如來)라는 부처가 되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다섯
師子吼無畏說 深嗟頑皮
只知犯重障菩提 不見如來開秘訣
사자의 울음소리 거침없는 말씀이여
어리석고 무지함을 깊이 탄식하나니
구름이 달을 가려 어둠만을 알 뿐이요
달에 걸린 실구름의 저 비밀은 모르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여섯
有二比丘犯殺 波離螢光增罪結
維摩大士頓除疑 還同赫日銷霜雪
간음하고 사람 죽인 두 젊은이 있었나니
존자 우파리의 반딧불만한 지식이 더욱 길만 막았네
거사 유마의 가르침을 듣고
비로소 그들의 의문점은 눈 녹듯 사라졌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일곱
不思議解脫力 妙用恒沙無極
四事供養敢辭勞 萬兩黃金亦銷得
粉骨碎身未足酬 一句了然超百億
생각조차 못 하겠네 치뻗는 이 빛줄기
이 누리 온갖 것에 종횡무진 끝없어라.
사사공양을 내 어찌 마다하리
백만 냥의 금덩이조차 거침없이 써 버리네
뼈를 부숴 가루 내어도 스승의 은혜 못 갚나니
뚜렷한 이 한 글귀는 모든 것을 초월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여덟
法中王最高勝 河沙如來同共證
我今解此如意珠 信受之者皆相應
진리의 왕 최고의 자리여
깨달은 이들 모두 이 자리에 앉네
나 또한 이 여의주(마음)를 깨달았나니
믿는 이는 누구나가 서로 공감하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쉰아홉
了了見無一物 亦無人兮亦無佛
大千沙界海中 一切聖賢如電拂
假使鐵輪頂上族 定慧圓明終不失
여기 단 한 물건도 없음이여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것을
모래알같이 많은 은하계는 저 바다의 거품이요
저 모든 성인은 번개치듯 반짝했다 사라지네
설령 내 머리 위에 무쇠바퀴를 씌워 돌린다 해도
이 집중력과 이 지혜의 힘은 부서지지 않을 것이니.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깨달음의 노래(證道歌) -예순
日可冷月可熱 衆魔不能壤眞說
象駕漫進途 誰見螳能拒轍
大象不遊於兎徑 大悟不拘於小節
莫將管見謗蒼蒼 未了吾今爲君決
차가운 햇빛이여, 달빛 쨍쨍 무더위여
악마의 무리도 이 말만은 못 꺾나니
코끼리 등에 높이 앉아 여유롭게 가나니
버마재비 저 따위가 어찌 길을 막겠는가
코끼리는 토끼 다니는 샛길을 가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네
그대 그 비좁은 소견으로 함부로 비난하지 말지니
깨닫지 못한 그대 위하여 내 이제껏 지껄였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옛 절(古寺)
秋風落葉滿空山 古寺殘燈石壁間
昔日經行人去盡 寒雲夜夜自飛還
갈바람 낙엽은 빈 산에 가득한데
옛 절 등불은 돌벽 사이에 있네
지난날 예 거닐던 이들 다 가고
찬 구름만 밤마다 밤마다 날아오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교연(皎然, ?~799)
당(唐) 때의 승려 시인. 장성(長城)에서 태어났다. 성은 사씨(謝氏). 위응물(韋應物)과 절친하였다. 시집에는 《서산집 抒山集》전 10권이 있다.
구슬(翫珠吟)
般若靈珠妙難測 法性海中親認得
隱顯常遊五蘊中 內外光明大神力
此珠非大亦非小 書夜光明皆悉照
覓時無物又無 起坐相隨常了了
皇帝曾遊於赤水 爭聽爭求都不遂
罔象無心却得珠 能見能聞是虛僞.
吾師權指喩摩尼 采人無數溺春池
爭拈瓦礫將爲寶 智者安然而得之
森羅萬像光中現 體用如如轉非轉
萬機消遣寸心中 一切時中功方便
燒六賊 衆魔 能我山竭愛河
龍女靈山親獻佛 貧兒衣下幾蹉
亦名性 亦名心 非性非心超古今
全體明時明不得 權時題作翫珠吟
타는 불 이 구슬이 측량 길 끊겼기에
바다 저 깊이깊이 얻어 볼 수 있는 것
잠겼다 떴다가 이 육체 속에 노닐면서
안과 밖 그 차가운 빛이 눈부시게 뻗치네
이 구슬 적지도 크지도 않으면서
낮밤으로 빛을 놓아 온갖 것 밝혀내네
찾아보면 모습 없어 자취 또한 없거늘
언제나 나를 따라 그 작용 분명한 것
황제가 어느 날 적수에 배 띄울 제
잃은 구슬 찾은 자 그 누구도 없었으나
장님인 망상이 무심결에 찾았으니
보는 것 듣는 것이 알고 보면 허깨비라
옛 사람 임시 방편 구슬에다 비했지만
이 구슬 얻으려다 봄물에 빠지는 자 수도 없네
어째서 기왓장 주워 들고 구슬이라 하는가
잠 깬 이는 앉아서도 이 구슬 얻는 것을
삼라의 온갖 모습 구슬 속에 빛 어리네
그 바탕 그 몸짓 구름(轉) 없는 구름이라
온갖 것 이 가운데 녹아 버리고
어느 때는 나타나서 그 수준에 응하나니
감각을 불사르고 잔가짓길 꺾음이여
자만심을 꺾고 애욕의 바다를 여지없이 말려 버리네
용왕의 딸이 부처에게 이 구슬 바침이여
수행자는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헤맸는가
마음이다 성품이다 이름붙이나
성품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예와 지금을 초월했네
전체가 뚜렷하나 그 뚜렷함을 얻지 못해
임시로 이름붙여 ‘완주음(翫珠吟)’이라 하나니.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젊은 시절 과거를 보러 가다가 한 선승으로부터 “선관(選官)보다 선불(選佛)이 더 위대하다”는 말을 듣고 그 길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찾아가 입산하였다. 그는 마조(馬祖)와 석두(石頭)의 문하를 번갈아 가며 참선수행에 몰입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가풍은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느 겨울날 하남성(河南省) 혜림사(慧林寺)의 목불(木佛)을 태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824년(唐 穆宗 長慶 4) 6월에 86세로 입적하였다.
어떤 사람이(無題二)
人問寒山道 寒山路不通
夏天氷未釋 日出霧朦朧
似我他由屆 與君心不同
君心若似我 還得到其中
어떤 사람이 한산의 길을 묻네
그러나 한산에는 길이 없나니
여름에도 얼음은 녹지 않고
해는 떠올라도 안개만 자욱하네
나 같으면 어떻게고 갈 수 있지만
그대 마음 내 마음 같지 않은 걸
만일 그대 마음 내 마음과 같다면
어느덧 그 산속에 이르리라.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한산(寒山, 766?~779?)
당나라 때 사람. 천태산 시풍현(始縣) 서쪽 70리에 있는 한암(寒岩)의 굴에 살았다. 몸은 비쩍 마르고 더벅머리에 미치광이였다.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친구 습득(拾得)과 함께 찌꺼기밥을 얻어 가지고 박장대소하며 돌아갔다.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한산(寒山)을 찾아가 옷과 약을 주었다. 한산은 큰 소리로 “이 도적놈 빨리 꺼져라”하면서 굴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한산습득을 문수보현(文殊普賢)의 화신(化身)이라 하였다.
말을 채찍해 옛 성을 지나가네(無題三)
驅馬度荒城 荒城動客情
高低舊雉堞 大小古墳塋
自振孤蓬影 長凝拱木聲
所嘆皆俗骨 他史更無名
말을 채찍해 옛 성을 지나가나니
허물어진 저 모습 나그네 마음 흔드네
높고 낮은 성벽은 헐었는데
크고 작은 무덤은 누구누군고
외롭게 흔들리는 다북쑥 그림자
길게 우는 무덤 곁 바람 소리……
슬프다, 어찌 모두 이런 풍경뿐인가
오래 두고 남을 이름 하나 없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한산(寒山, 766?~779?)
당나라 때 사람. 천태산 시풍현(始縣) 서쪽 70리에 있는 한암(寒岩)의 굴에 살았다. 몸은 비쩍 마르고 더벅머리에 미치광이였다.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친구 습득(拾得)과 함께 찌꺼기밥을 얻어 가지고 박장대소하며 돌아갔다.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한산(寒山)을 찾아가 옷과 약을 주었다. 한산은 큰 소리로 “이 도적놈 빨리 꺼져라”하면서 굴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한산습득을 문수보현(文殊普賢)의 화신(化身)이라 하였다.
나는 어젯밤 꿈에(無題四)
昨夜夢還家 見婦機中織
駐梭如有思 擎梭似無力
呼之廻面視 復不相識
應是別多年 毛非舊色
나는 어젯밤 꿈에 집에 갔었네
아내는 베틀에서 베를 짜고 있었네
북을 멈출 때는 무슨 생각 있는 듯
북을 울릴 때는 맥이 없어 보였네
내가 부르매 돌아보긴 했으나
멍히 앉아서 나를 알아보지 못했네
아마 서로 나누인 지 오래 됐기 때문이리
귀밑 머리털도 옛 빛이 아니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한산(寒山, 766?~779?)
당나라 때 사람. 천태산 시풍현(始縣) 서쪽 70리에 있는 한암(寒岩)의 굴에 살았다. 몸은 비쩍 마르고 더벅머리에 미치광이였다.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친구 습득(拾得)과 함께 찌꺼기밥을 얻어 가지고 박장대소하며 돌아갔다.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한산(寒山)을 찾아가 옷과 약을 주었다. 한산은 큰 소리로 “이 도적놈 빨리 꺼져라”하면서 굴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한산습득을 문수보현(文殊普賢)의 화신(化身)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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