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돌이 믿음직하다
선비와 시인이 만났다. 마당에 괴석이 놓였고 나무에 참새가 앉았다. 선비가 입을 뗀다. “돌은 좋구나. 말을 안 해도 되니까.” 시인이 응수한다. “참새는 고맙구나. 적막을 깨뜨려 주니까.” 말은 내뱉을수록 탈, 참새는 짹짹댈수록 흥이다. 고수들의 대거리가 어금지금하다.
돌은 응어리진 단단함과 오래 가는 믿음성이 덕목이다. 게다가 침묵한다. 근신하는 선비의 벗이 되기에 족하다. 지금 보이는 돌은 할머니 뱃가죽처럼 주름투성이다. 울퉁불퉁하기는 굴 껍질 같고, 위는 넓고 아래가 좁아서 기우뚱하다.
생긴 꼴이 괴상해서 ‘괴석’이다. 산이나 동물 형상, 아니면 꽃무늬마냥 유별난 수석도 많은데 굳이 못난이 돌을 그린 까닭이 뭔가. 그림에 사연이 적혀있다. ‘정신이 뛰어나서 귀한데 하필 모양 닮은 것을 찾겠는가. 함께 좋아할 듯해서 보내니 벼루 놓인 곳에 두게나.’ 흙은 바스러지고 나무는 휜다. 돌은 생김새가 안 바뀐다.
하지만 찧고 갈고 다듬는 수석 애호가도 있다. 이리 되면 교언영색이다. 돌의 미쁨은 ‘성형수술’하지 않는 데 있다. 모름지기 돌의 마음을 새길 일이다.
그린 이는 순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황산 김유근이다. 그림 밑에 ‘겨울 밤 추사 자네를 위해 그렸네.’라고 썼다. 황산이 친구인 추사 김정희에게 선물했다. 친교를 담은 돌 하나가 설 앞두고 돌리는 굴비 두름보다 미덥다.
봉황을 붙잡아 두려면
넘실대는 파도 위로 흩어지는 구름,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돋이, 오래된 가지에 주렁주렁한 복숭아, 날개를 퍼덕거리며 우짖는 봉황…. 묵은 때 씻고 복된 꿈 얻는 설날 아침, 저 멀리 18세기에서 날아온 ‘연하장’이 온 누리를 상서로운 기운으로 채운다.
보낸 이는 조선 후기 화가 이방운. 그는 덕담을 보탠다. ‘빛살이 천만리에 뻗치니/ 황금빛 햇무리가 솟구치네.’ 그림은 동세(動勢)가 뚜렷하다. 소재마다 희망에 차 꿈틀거린다. 간소한 붓질과 조촐한 색감으로 문기 짙은 그림을 그려온 이방운이 모처럼 생심을 냈는지, 여백 하나 없는 짜임새로 완미한 정경을 뽐낸다.
이 그림은 곰살맞은 이야기를 품었다. 저 복숭아는 희귀한 반도(蟠桃)다. 꽃피는 데 삼천 년, 열매 맺는 데 삼천 년, 익는 데 삼천 년, 합쳐서 구천 년이 돼야 맛볼 수 있는 선식(仙食)이다. 모쪼록 오래 살아야 한다. 봉황은 새 가운데 으뜸이다. 봉황은 부리로 곤충을 쪼지 않고 살아있는 풀을 밟지 않는다. 대나무 순을 먹고 감로수를 마시며 오동나무에 앉는다. 웬일로 복숭아나무에 앉은 그림을 보는 우리, 올해 운수대통이다.
봉황은 성인이 태어나거나 도리와 명분이 바로선 나라에만 깃든다. 해 돋는 동해에 오래 머물게 하려면 나라는 잘 다스리고 사람은 앞가림 잘 해야 한다.
쑥 맛이 쓰다고?
우수가 지나야 강이 풀린다. 돋을볕 먼저 본 오리가 강물에 새 을(乙) 자를 그린다. 햇발 좋은 언덕에는 봄이 꼼지락거린다. 해토머리 헐거운 흙 사이로 어린 쑥이 올라온다. 물이랑 살랑대고 흙내 물큰하면 봄 자취 완연하다.
민둥산 너머로 제비 한 마리 강남에서 돌아왔다. 촌부들이 들판에서 쑥을 캔다. 홑겹 걸친 걸로 봐 비탈에 앉은 봄볕이 따사롭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네는 속바지가 드러나도록 치마를 끌어올려 앞 춤에 동여맸다. 무릎 굽혀 일하기에 편한 차림새다. 망태기 들고 손칼을 쥔 아낙은 발치에 돋아난 쑥 두어 낱을 막 캐려는 참이다. 고개를 돌린 아낙이 놓친 쑥 하나를 뒤늦게 보고 반색한다. 시골 풍정은 예나 지금이나 빼닮았다.
쓰디쓴 쑥이 꽃보다 정겨운 이 그림은 선비화가로 이름 높은 윤두서가 그렸다. 과거에 붙고도 벼슬을 마다한 그는 시서화로 날렸고 실학에 밝았다. 민촌에 정을 붙여 아랫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자주 그렸다. 시골 물정을 살갑게 살핀 도량은 집안 내림이었다. 그는 ‘어부사시사’를 노래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다.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이 외증손이다.
농사는 농군에게 묻고 봄나물은 아낙에게 물으랬다. 모름지기 시골을 알아야 쑥 맛이 달다.
서있기만 해도 ‘짱’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단정학(丹頂鶴), 참 늘씬하다. 보름달 둥두렷이 떠오르자 혓바닥 굴리며 한 곡조 뽑는다.
자태는 얼마나 고혹적인가. 부리에서 꼬리에 이르는 몸체가 아찔한 S라인이다. 한 발은 똑바로 딛고 한 발은 들어 살짝 굽힌 저 포즈, 요즘 모델의 ‘캣 워크’ 저리 가라다.
천년 사는 학이 백년 사는 소나무에 앉았다. 학은 일품이요, 소나무는 정월이란 뜻을 지녔으니 얼추 이 그림 그린 날은 정월 대보름이렷다. 오래 살면서 고고한 품성 잃지 말라는 기원이 담긴 서상도인데, 황새나 백로와 달리 학은 소나무에 오르는 법이 없어 실경은 아니다. 옛 그림은 뜻에 따라 꿰맞춘 짜깁기가 많다.
짝짓기를 앞둔 학은 몸짓이 요란해진다. 머리를 위 아래로 흔들고 빙빙 돌면서 활개를 친다. 그 우아한 사위를 본떠 학춤을 만들었을 터. 허나 대대로 학은 선비와 유자(儒者)의 본보기였다. 오죽하면 선비가 입는 옷을 학의 깃털로 지었다 해서 ‘학창의’라 불렀을까. 그런 선비가 채신머리없이 덩실 춤을 춘다? 아무래도 모양 같잖다.
당나라 백거이가 ‘학’이란 시에서 지적했다. ‘누가 너더러 춤 잘 춘다 했나/ 고요히 서있는 것보다 못한데’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서 안 되지만 학의 날개가 크다고 춤판에 부를 건가. 그냥 서있어도 학은 본새가 난다. 너무 요염하게 그린 게 흠이지만.
봄이 오면 서러운 노인
봄이 오면 꽃이 앓는다. 이것이 꽃몸살이다. 몸살 끝에 꽃이 핀다. 봄이 오면 노인도 앓는다. 이것이 춘수(春瘦)다. 춘수는 약이 없다. 겉은 파리하고 속은 시름겨운데, 꽃 보면 눈물짓고 입 열면 탄식이다. 두보가 하소연한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그리 흩날리는고/ 늙어감에 바라기는 봄이 더디 가는 것’ 노경이 이토록 애절하다.
산 아래 푸르른 이내가 깔려 몽롱한 초봄의 한갓진 언덕. 오가는 이 뵈지 않고 복건을 쓴 도포자락의 노인이 혼자 노란 꽃, 붉은 꽃 앞에 두고 휘청거린다. 술병과 술잔과 잔대가 발밑에 어지럽다. 춘풍이 코끝을 간질이는데, 낮술에 취한 노인은 눈이 반이나 감겼다. 꽃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꽃잎은 옷 위에 떨어진다.
권커니 잡거니 짝이 없어 노인은 꽃과 더불어 대작했다. 술병 쓰러진 그 자리, 꺾어놓은 꽃가지 서너 개가 보인다. 상춘곡 한 대목이 절로 나온다. ‘곳나모 가지 것거 수(數) 노코 먹으리라’ 흥을 돋워보려 하나 꽃피는 이 봄을 몇 번이나 더 볼는지, 마음 한 구석으로 수심이 파고든다. 꽃 꺾어 곁에 둔들 가는 봄을 잡아두랴.
청년은 봄맞이가 즐겁고 노년은 봄앓이가 힘겹다. 하여도 젊은이들아, 우쭐대지 말거라. 봄나들이 길에 꽃 아래 취해 쓰러진 노인을 보거들랑 뒷날의 날인가도 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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