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23

醉月 2011. 3. 20. 07:19

저주받은 화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새삼 이렇게 실화임을 재차 밝히는 것은 너무나 믿어지지 못할 사건의 내역 때문에 혹시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분들이 계실까해서이다. 최초 공개하는 이 사건의 전말은 내가 구명시식을 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영능력이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모 중견사업가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분의 사연인즉, 자신이 신촌의 한 대저택을 헐값으로 사들여 그 저택의 방 하나를 미대생이던 딸을 위해 화실로 꾸며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갑자기 딸에게 정신병적 발작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중증환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답답한 심정을 달래던 그 분은 고이 기른 딸이 대저택으로 이사온 후 갑자기 정신병을 앓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려, 그 집에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갑자기 딸에게 이런 날벼락이 떨어진 건지 알아야겠다며 무작정 나를 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당시 나는 영혼과 대화하는 것엔 ‘아마추어’인 상태라, 그 저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적기운’을 알아내는 일 말고는 없었기에 참으로 난감한 심정을 나고 그 괴이한 저택으로 끌려가게 된 셈이다.
그 집에 도착한 순간, 대문을 채 열기도 전에 아주 괴이한 기운이 내 목을 조이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씀에는 건성으로 답하고 조용히 집의 담벼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괴이한 기운은 점점 더 강하게 내 온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살기는 마침내 어느 한 지점에 이르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힘으로 나를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히 힘의 정체인 ‘영적기운’의 내력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까닭없이 죽었다는 저택 전 주인의 아들 영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뜻하지 않게 저택의 전 주인, 즉 영가의 아버지까지 연루되어 있었다.
살아생전 그 영가는 참으로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매일같이 밤 12시를 넘겨 집에 오기 일쑤였고 그에겐 담을 타고 넘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놀기 좋아하는 아들의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는 생각에 평소 밤늦게 집에 들어올 때 애용하던 담벼락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를 몰랐던 아들이 몰래 담을 타넘으려는 순간, 들려오는 아버지의 호통소리에 놀라, 그만 무게중심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쳐 그 자리에서 뇌진탕으로 급사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의뢰인의 딸이 화실로 쓰고 있다는 그 방이 전 주인의 아들이 썼던 방이었다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채근했다. 하지만 나 역시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유명한 고승이나 무속인을 초청해서 천도해 주시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린 뒤 그 집을 떠났다.
그로부터 2년 후 그 의뢰인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나 때문에 딸이 목을 매 자살했다면서 말이다. 그는 “차 법사 말대로 유명한 무속인을 불러 굿도 해보고 이름 있는 고승께도 부탁해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게 했는데 왜 딸이 자살했느냐.”며 “차라리 그때 집을 팔라고 말했더라면 그대로 했을 겁니다.”라고 나를 원망하는 게 아닌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만약 그때 내가 영을 천도하는 능력이 있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의뢰인의 딸을 살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그녀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억울하게 죽은 남자 영가처럼 한 사람의 운명을 나쁘게 몰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영가들도 간혹 있다. 그런 영가들을 볼 때면 나는 영매로서 그들을 제도하고, 그들의 마음에 변하를 일게 할 책임을 느낀다. 그녀의 자살로 괴로움의 세월을 보낸 뒤 깨닫게 된 영매자로서의 책임. 지금도 그 책임감으로 괴로워할 때면 나는 조용히 그녀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그 기도가 한 생명을 구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영적으로 밝혀지는 미제사건들

90년대 초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한의사인 K씨와 아내, 그리고 약제사 등 세 명이 처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억측만 남긴 채 아직도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유가족이 구명시식을 청해 왔다. 살인범을 알아내 복수하겠다는 한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구명시식은 한 맺힌 영혼들을 달래주고 극락왕생을 돕는 것. 개인의 복수 수단이 된다면 또 다른 업을 짓는 일일 뿐이다.
구명시식에 들어가자 억울한 혼령 셋이 나타났다.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영혼이 둘 더 출현했다. 돈 때문에 그들 셋을 죽인 범인과 그의 아내 영가였다. 원인불명 교통사고. 사실은 억울한 영혼 셋의 울부짖음으로 숨진 혼령들이었다.
구명시식은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을 위한일동의 합동위령제로 바뀌었다. 이제 악연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라는 기도에 두 가족간 한의 매듭은 풀렸다. 법적으로는 지금도 미제이나 영적으로는 해결된 사건이다.
일가족 집단살해 사건은 또 있었다. 기업체를 경영하는 S씨가 그 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S씨 부인이 범인인 이 살인사건은 부인이 정신이상 상태에서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어 일단락되긴 했지만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S씨 부인이 자녀 둘을 칼로 살해하고 스스로도 동맥을 끊어 자살한 사건으로 경찰은 남편인 S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집중 추궁했다. 다행히 필사적으로 알리바이를 찾아낸 S씨는 결국 증거부족으로 풀려났다. 그는 억울함과 결백을 증명하고자 구명시식을 청했다. 구명시식 결과 S씨는 범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것은 바로 그였다. 범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S씨 가족은 화목했다. 사업도 순조로웠고 부부금실도 좋았다. 그런데 부인이 운전학원에 등록하면서 액운이 들기 시작했다. 부인은 운전강사와 불륜을 저질렀고 강사는 부인에게 돈을 요구했다. 견디다 못한 부인은 S씨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다. S씨는 겉으로는 부인을 용서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부인을 학대했다.
급기야 부인은 자녀들과의 동반자살을 택했다. 아이 둘을 양팔에 껴안은 채 구명시식에 나타난 부인 영혼은 흐느껴 울었다. 돌아갈 때까지 법당에 앉은 S씨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선대의 악업이 만든 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말은 옳다. 서리는 물론 눈이 펑펑 내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여인의 한이다. 한 만큼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업 만큼 큰 것도 없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한 맺히게 만들 경우, 그 업보가 자신 또는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져 무고한 후손이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사자(후손)는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사인 Y씨가 바로 그랬다. 약대 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약국을 운영해온 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그에게 선도 숱하게 들어왔지만 마음이 끌리는 자리가 없었다.
이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맞선자리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Y씨는 ‘인연이 조금 늦게 나타나려나보다’고 마음을 느긋이 먹은 터였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을 분이었다. 교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얼굴을 익힌 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무려 2억원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한 채 끙끙 앓던 그는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필자의 책을 잃게 됐고 자기 집안에 자살, 사고사, 비명횡사한 친척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한 것이다.
구명시식 현장에서 Y씨 집안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갑부로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다. 풍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던 할아버지는 삼례 근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됐고 그녀와 함께 춤과 노래와 사랑에 취해 몇 달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삼례 여인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녀를 문전 박대했다. 피눈물을 흘리고 돌아선 그녀는 거리를 떠돌다 할아버지 집안을 저주하면서 굶어 죽었다.
물론 9개월 된 태아도 함께 죽었다. 바로 그 삼례 여인이 원혼이 돼, 할아버지 집안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집안의 마지막 남은 남자인 Y씨까지도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애증의 한이 모두 밝혀질 즈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구명시식 제단 위의 촛불이 꺼졌다. 몇 대를 거쳐 한을 뿌린 여인이 구명시식 영단에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몇 명을 죽음으로 이끌고 몇 억원을 사기 당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안의 대마저 끊으려 드는 여인의 무서운 집념.
그러나 후손 Y씨의 지극정성 천도제는 그녀의 한을 녹일 수 있었다. 후손의 정성이 선대의 악업을 푼 것이다. Y씨는 일생을 모은 거액을 떼었지만 밝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안 악연이 고리를 매듭지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선행 뒤안길의 두 죽음

H씨는 매우 당찬 성격의 여성사업가다. 부모 생전에 효심 또한 극진했는데 양친이 별세한 후에도 천도제를 여러 번 올렸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양로원을 찾아가 잔치를 해드렸다. 18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부모의 음덕과 남모를 선업이 쌓인 결과인지 그녀가 하는 일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를 위한 구명시식 분위기는 훈훈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부모 혼령들은 “딸이 그동안 천도제를 자주 올려 줘 고맙다.”고 말한 뒤 곧 사라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느닷없이 할아버지 영가 둘이 출현했다. 그녀가 18년간 다니던 양로원에서 타계한 노인들의 영가였다.
18년 전이었다. 그녀가 양로원에서 첫 번째 잔치를 열었을 때 한 노인이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 떡을 더 먹으려다가 그만 인절미가 목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물론 잔치 때문에 운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한 할아버지는 꽤 학식 있는 분이었다. 그녀가 처음 양로원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모두 천사가 나타났다며 좋아했다. 30대 초반 미모의 여성이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선행을 베푸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이 노인은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인텔리였다. 노인은 그녀를 지켜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하다, 아흔다섯 고령임에도 건강한 자신이 몸을 실험용으로 제공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목을 매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지닌 지식과 판단으로 택한 ‘자살’은 가장 비참한 죽음이다. 자연사가 아닌 상태에서 의학실습용으로 갈기갈기 잘려나간 시신이 편한 상태일 리도 없다. 영혼도 편치 못하다. 자신이 죽을 때의 고통스런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한 노인의 행위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큰 업을 지은 결과를 낳았다.
필자는 구명시식에 나타난 할아버지 영가에게 “자살은 인간으로서 몇 겁의 업을 짓는 행위입니다.”라고 일렀다. 자살한 영혼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한을 지닌 채 떠돌게 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듯 목숨 또한 다할 때까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목숨이 영가가 된 사실을 알게 된 H씨는 통곡했다. 두 분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과 회한이 뒤섞인 통곡이었다. 그러나 누가그녀를 탓할 수 있으랴. 세상은 이처럼 숨어 있는 선업 덕분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남편의 청부살인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은 탓에 한국인 중에는 한을 품고 죽은 이들이 많다.
얼마 전 너무도 힘든 구명시식을 집전했다. T신도의 죽은 가족을 위한 자리였는데, 의식 도중 T의 여동생 영가가 나타나면서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T의 여동생은 1년 전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 죽음의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동생의 죽음에 이어 여동생의 남편도 곧바로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여동생 영가가 출현했으니 T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여동생은 한을 지니고 죽은 비참한 모습으로 제단에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관해 얘기했다. 자신은 남편의 청부살인으로 죽음을 당했으며 남편은 그녀 명의로 된 막대한 재산을 노린 것이라 했다. 당시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와중에 본부인과 날마다 벌이는 부부싸움과 갈등으로 극도의 불신과 증오가 쌓이더니, 결국 청부살인까지 기도한 것이었다.
그 부부 사이에 얽힌 원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남편 영혼도 불러야 했다. 남편 영혼도 한을 가지고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내를 죽인 것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자살한 영혼은 그 어떤 영혼보다 업이 많은 영혼이다. 하늘에서 내린 목숨을 스스로 끊었으니 그 업을 어찌 감당하랴. 게다가 자신 뿐 아니라 가장 사랑해야 할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가 버린 셈이니, 그의 영혼 모습은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부는 결혼 후 10여 년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다. 연애할 때도 주위의 시샘어린 부러움을 살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런데 죽어서 이렇듯 악연의 고리로 엮어지다니…….
남편과 부인의 한을 풀어 두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함께 있게 했다. 그러자 여동생 영가는 남자에 대한 증오를 풀지 않고 현상세계에서처럼 남편에게 욕하고 대들면서 한풀이를 했다. 남편 영혼은 “잘못을 뉘우치고 죽음을 택한 것이니 이제 옛날과 같이 사이좋게 지내자.”고 애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각고의 집중력과 새벽이 될 때까지 이어진 독경 기도 끝에 영혼들을 달래 천도했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필자가 겪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는 너무도 컸다. 인간이 현생에서 큰 원한을 가지고 살다 죽으면 그 영혼도 좋은 영계에 자리잡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현생을 선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의 비밀 못 밝히는 이유

살아가면서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비밀을 만들며 살고, 비밀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비밀이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일 깨지면서도 또 매일 만들어지는 이 묘한 비밀의 성분은 딱 두 가지뿐이란 것이다. 나를 위한 비밀과 남을 위한 비밀. 하지만 남 얘기하길 밥먹듯 즐기는 한국에서 남을 위한 비밀이 지켜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약점이나 치명적인 과오가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나같은 사람은 또 얼마나 살아가기가 힘들겠는가. 작은 약점도 눈에 보여 외면하곤 하는데, 구명시식을 올리는 현장에서 이따금 기가 막힐 정도의 큰 사건들(살인사건이나 깊은 원한을 산 영가가 나타날 때)을 대할 때가 있다. 그러면 또 한 번 비밀의 미궁 속에서 괴로워하곤 하는데…….
얼마 전 사건이다. 8개월 동안 줄기차게 구명시식을 청했던 한 사업가의 구명시식이 올려지던 날이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진중하게 임하던 구명시식장에 “난 억울해!”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게 아닌가. 물론 그 소리는 내 귀에만 들리는 영가의 소리였다.
구명시식을 올리는 사업가의 고모부가 되는 사람이라며 등장부터 쇼킹했던 영가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나는 참다못해 구명시식을 청한 사업가에게 “도대체 고모부 되시는 분이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화장실에서 갑자기 혈압이 올라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라고 아주 태연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영가는 눈을 부릅뜨더니, “아니야, 난 그냥 죽은 게 아니라구!”하면서 이번엔 난동까지 부리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분명 사연이 있는 듯해, “혹시 돌아가신 분이 살아생전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아, 그 분은 모 수사기관 형사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그의 고모부, 즉 구명시식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거친 영가는 전직형사로 밖에서는 민간치안에 힘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는 매일같이 술을 먹어 부인이고 애들이고 닥치는 대로 패대던 가정파탄범이었다. 그가 죽은 그날 역시 술을 과하게 먹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의 부인을 심하게 구타하고서는, 갑자기 혈압이 올라 화장실에서 급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영가는 심하게 도리질을 해대며 “아니야! 날 죽인 건 내 자식이었다고! 내 자식이 날 때려 죽였단 말이야!” 그러나 나는 차마 영가의 말을 그 사업가에게 전할 수 없었다. 물론 영가의 말대로 그의 자식이 화장실에서 자기를 때려죽인 것일 수도 있고, 반면 사업가의 말대로 화장실에서 혈압이 올라 죽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 갑자기 짚이는 것이 있어 다시 한 번 사업가에게 물었다. “혹시 고인께서 형사 시절 어떤 일을 주로 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로 사상범들을 색출해 손가락 하나로 생사를 결정짓던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순간,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고 말았다. 그 영가가 만약에 자신의 말대로 자식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저지른 업보의 무서운 결과에 불과했던 것이다. “고모부께선 안녕하신지요?” 그 사업가의 멋모른 질문에, 나는 “네, 제가 잘 천도해드렸으니 걱정마십시오.”라고만 말했다. 그 이상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한 번의 비밀을 만들던 그날, 그 영가에게 칼같은 심판을 내린 대자연의 순리에 깊이 고개숙일 수밖에 없었다. 비밀 때문에 속이야 꺼멓게 타들어 갈지라도 비밀을 안고 사는 편이, 심판을 한다거나 영가의 무리한 청탁(예를 들어, 자신을 죽인 자를 밝혀달라는 등) 때문에 속병나는 것보다 백 배 낫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영매자로서의 한계에 감사드리는 것이다.

마지막 인사

광고 중의 광고는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약 선전이다. 내 또래쯤 되신 분들에겐 정말 특별한 기억을 안겨주는 약 선전. 장이 서는 날이면 으레 어머니를 졸라 장터까지 가서는 반나절을 약장수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현란한 말 솜씨에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그때가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이 되어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약장수들이 하는 짓을 보면, 누구나 똑같다. 그저 자기네 약이 만병통치약이며 복용 즉시 효과를 본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전하고는, 장이 끝날 때쯤 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약효란 정말 뻔한 게 아닌가. 그럼에도 그 만병통치약이 장날 히트상품으로 등극하는 까닭은 ‘빨리 효과를 본다’는 말에 혹하는 우중(愚衆)의 충동구매 덕분인 듯.
그렇기에 나는 구명시식을 청하러 오시는 분들에겐 절대로 구명시식이 주는 효과에 대해 말하지 않을뿐더러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구명시식 좀 제발 올리게 해달라고 조르는 분들조차 굳이 할 필요가 없으면 안하셔도 좋다며 애써 설득하는 편이니, 약장수하면 굶어죽기 딱 알맞은 타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사건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구명시식은 본의 아니게 효과만점의 처방인 양 소문이 나게 되었는데…….
내가 미국 뉴저지 후암정사에 있을 때 일이다. ‘오늘은 산책이나 나가볼까’하는 마음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막 현관을 나서려던 찰나 나이가 마흔쯤 되어 보이는 미모의 중년여성이 미국인 남편이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더니, “저, 차길진 법사님이시죠?”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산책은 다 틀렸구나’ 싶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그녀와의 만남에 묘한 느낌이 들어 법당으로 그녀를 안내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롱아일랜드에 사는 상당히 부유한 상류층 여성으로 의사로서 명성을 떨치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 행복한 국제결혼 커플의 대표적 케이스. 그런 그녀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며, “3개월 전, 친정어머니께서 롱아일랜드 근처 해변에 재미삼아 조개와 전복 등을 캐러 나가셨다가 그만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셨어요. 어머니 시신을 찾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라도 올리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잘 가시란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 한이 된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며칠 후 구명시식을 올려보자는 말로 달래며 현관까지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의 미국인 남편은 서툰 한국말로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더니,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어머니를 그리워해 자기가 직접 구명시식을 권했다며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구명시식 현장. 정숙한 가운데 올려진 구명시식장에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그녀의 친정어머니 영가가 나타나 “얘야, 난 지금 바닷물 속에 있단다. 나도 네가 보고 싶어 미치겠구나. 아마도 1주일쯤 후에 롱아일랜드 해변가로 내 몸이 떠오를 테니 그때 다시 만나자꾸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내 말을 전해듣고는 자신의 어머니 말투와 똑같다며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당황하다, 그만 남편에게 안겨 통곡하고 말았다. 미국인 남편 역시 아내를 달래면서도 “과연 1주일 후에 시신이 떠오를까요?”라고 내게 물으며 감탄을 연발하길래, 나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1주일만 기다려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주일 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법사님, 어머니 시신이 떠올랐어요! 그것도 정확히 롱아일랜드 해변가에요!” 1주일 후 만나자는 죽은 어머니의 약속은 그렇게 지켜졌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와 딸과의 감격적인 마지막 만남을 주선한 나의 구명시식은 그 효과에 사람들의 상담이 그치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가벼운 산책’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손자로 환생한 아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BC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나, SBS <토요 미스터리 극장> 등을 통해 ‘귀신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런데 미신을 조장하느니,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은 방송될 수 없다는 등의 애매 모호한 이유로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방송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고 말았다.
미국이나 유럽 등 방송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오히려 그들은 영혼에 대해 쉬쉬하기는커녕 터놓고 영혼에 대해 대화하며 또 그것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 이미 그들에게 있어 영혼은 미신적 대상이 아닌, 학문적 대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즉, 그들 세계에서 영혼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꺼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아마도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영혼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해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한국을 세계 최고의 ‘영혼후진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과연 이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를…….
가까운 예를 들어, UFO만 해도 그렇다. 봤다 안 봤다, 맞다 아니다의 긍정과 부정을 오락가락하는 UFO가 요즘 유난히 대한민국 상공에서 자주 발견되곤 한다. 왜 대한민국이 UFO의 놀이터로 급부상한 것일까. 혹시 대한민국에 UFO가 관심을 끌만한 그 무엇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아닐까.
영매자인 내가 보기에 UFO의 한국상공 출몰은 심상치 않은 징조임에 분명한데도, UFO 자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UFO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오히려 사비를 털어 UFO를 연구하는 몇 안 되는 과학자들을 격려하기는커녕,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런 비아냥거림은 UFO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을 연구하는 영매자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도대체 영혼이 어디 있다는 거야? 이거 순 사기 아냐?” 한두 번 들어본 말이 아니다. 그들이야 영혼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고 싶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있는 게 없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말씀드려도 초자연적인, 비과학적인 사실은 믿지 않겠다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제부터 내 얘기에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아래의 얘기는 실화임을 다시 한번 밝혀두는 바이다.
1996년 10월의 일이다. 잠실 법당으로 노년의 한 여인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법사님,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큰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발 구명시식을 하게 해주세요.” 나 역시 아들이 있는 부모라, 그 말을 듣곤 마음이 약해져 구명시식을 정성껏 준비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며칠 후, 법당에서는 예정대로 그녀의 큰아들을 위한 구명시식이 올려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녀의 큰아들이 단순 사고사로 사망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얽힌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은 큰아들 영가는 구명시식 자리에서 “어머니,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3년 후, 7월 31일에 제 동생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구명시식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던 어느 날, 노부인은 둘째아들에게서 손자를 보게 되었는데, 손자의 생일은 정확히 7월 31일로 구명시식 후 3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이 얘기를 다 읽고도 영혼은 없다고 단정짓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줄 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쇼킹했던 사건들이 이어지니, 영혼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심했던 분들이라면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영혼에게서 받은 선물

내가 영혼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어떻게 영혼이 선물을 줄 수 있지? 하고 의아해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도 죽은 남자친구 샘(패트릭 스웨이지)이 사랑하는 여자 몰리(데미 무어)에게 주는 선물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동전.
과연 영혼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약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문 케이스라면 나는 참 운 좋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보니, 영혼에게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미국 뉴저지 후암정사로 한 중년부인이 찾아온 일이 있다. 보기에도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듯,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그 부인은 나를 보더니 큰 한숨부터 내쉬며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이 요즘 계속 꿈에 나타나, 애타는 목소리로 저를 부르다 사라지곤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국 그녀의 아들을 위한 구명시식을 올리기로 한 뒤, 그녀를 돌려보냈다.
며칠 뒤 구명시식 당일이 되었다. 나는 유난히 젊어 죽은 영가가 마음에 걸려 다른 날보다도 일찍 법당에 들어와 구명시식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꺄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분명 부엌 정원에서 난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평소 영안(靈眼: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자주 열려 곧잘 영혼의 모습을 보던 보살 한 분이 그곳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침착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분은 “저기 정원 쪽에 얼굴이 흰 젊은 청년이 모자를 눌러쓰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알고 보니 그는 그날 치러질 구명시식이 주인공인 중년부인의 죽은 아들로 밝혀졌다. 그 영가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자신을 위한 구명시식이 치러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곳에서 구명시식이 올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격적인 구명시식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영가는 구명시식이 올려지자, 누구보다 먼저 구명시식장에 들어와 흐느끼며 “법사님, 전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에요. 같이 타고 있던 친구녀석이 절 흉기로 때려 살해한 뒤, 일부러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아 완벽한 교통사고로 위장한거라구요.” “그 친구가 왜 널 죽였는데?” 그러자, 그는 분노를 터뜨리며 “2만 달러 때문이에요. 제가 그 친구에게 2만 달러를 꿔줬는데, 갚으라고 하자 그 친구가 저를…….”
그러나 가족들이 영가가 말한 내용을 믿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아드님이 갖고 있던 8만 달러의 돈 중에 2만 5천 달러는 노래방에, 1만 8천 달러는 비디오가게에 꿔줬다니 확인해 보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모든 것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나는 그제야 “아드님께서 아드님 방 책상 서랍 어디에 쓰지 않는 벨트가 있으니 그것을 저에게 주라고 하는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벨트라뇨?”하며 전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바로 다음날 그들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바로 문제의 벨트를 내게 주러 온 것이었다. “제가 아들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사준 선물이었는데, 서랍 구석에 박혀 있을 줄은……. 흑흑흑!”
영혼에게서 ‘벨트’를 받은 사건. 나는 아직도 이 ‘벨트’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과연 죽은 영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벨트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이래도 영혼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몇 해 전 신문을 읽고 있는데 신문 귀퉁이에 제법 심각한 글씨로 ‘신혼여행 이혼 급증’이라고 써 있는게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 자세히 읽어 보니, 신혼여행을 갔다 온 뒤 곧바로 법정으로 달려가는 커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쯤엔 ‘공항 이혼’, 즉 공항까지 갔다가 비행기도 타지 않고 이혼하는 사례들이 나타나더니, 요즘엔 아예 예식장에서 결혼과 이혼을 다 해결하는 커플들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가는 이혼이 유행처럼 번져, 이혼 안한 사람은 오히려 왕따가 되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혼에 관련된 씁쓸한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나에겐 생각나는 노부부가 있다. ‘늙으면 이들처럼’이라고까지 감히 얘기하고 싶은 노부부. 오늘은 그 분들의 독특한 한국식 사랑법을 특별 공개해 가벼운 이성교제의 시대에 경종을 울려볼까 한다.
그러니까 그 노부인이 우리 법당을 찾은 것은 몇 년 전 당시 여든두 살이었던 그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여의사로 명망이 높은 분이었다. “몇 해 전 먼저 보낸 남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저렇게까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다니…….’란 생각에 내심 부럽단 생각까지 스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구명시식에 임해서였다. 어렵사리 정신을 집중시켜 그녀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의학박사였던 남편의 영가를 부르는 데 성공했는데, 갑자기 남편 영가는 나를 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왜 딸애 이름으로 나를 불렀소? 큰 아이도 있고 집사람도 있는데 말이오!”라고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살아생전 명문가 자손으로 유교 가풍 속에 살았던 남편 영가인 J박사다운 말이었다. 영가가 원하는 대로 부인의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 다시 박사와 대면하려니까, 이번엔 부인에게 “왜 내 수의에 끈을 매지 않았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말에 화들짝 놀란 노부인은 “수의에 끈을 매지 않았어요? 그럼 그때 그 끈이 당신 수의 끈이었단 말이에요?”
알고 보니, 박사가 운영하던 병원에서 염을 한 다음 관 뚜껑을 덮고 마무리를 하고 보니 수의 끈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마 수의에 끈을 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관을 다시 열 상황도 아니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그것이 남편 영가를 화나게 했을 줄이야.
“살아생전엔 넥타이 때문에 종종 화나게 만들더니, 죽어선 수의 끈이오? 나 저승 가는 길, 그 수의 끈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쯧쯧! 남편 영가의 호통은 꽤 오래 지속됐지만, 오히려 노부인은 그 호통을 듣는 내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해 “남편께서 이렇게 호통치시는데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노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그 분은 그런 분이에요. 오히려 죽어서도 저한테 호령하는 남편의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살아 생전의 영감을 보는 기분입니다.”
남편 영가와 함께 나타난 30여 명의 친구 영가들이 노부인을 향해 서로 안부를 묻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의식을 마무리짓게 될 때쯤, 노부인은 손수 쓴 편지를 남편의 영전에 올리고 딸이 그 편지를 읽어 내렸다. 구구절절 남편을 향한 애틋한 연모의 정이 배어 있는 글이었다.
아내의 사람이 듬뿍 담긴 사랑의 편지를 듣고 난 남편 영가는 이내 행복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깍듯하게 인사한 뒤 그 자리를 떠났지만, 노부인은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앉아 남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아무래도 수의 끈을 매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수의 끈을 매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로지 한 사람, 관의 주인만이 아는 법.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내가 알게 된 것일까. 물론 영가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철주_오늘본 옛그림_02  (0) 2011.03.22
윤제학_조계산 송광사   (0) 2011.03.21
선시(禪詩)감상_17  (0) 2011.03.19
손철주_오늘본 옛그림_01  (0) 2011.03.18
윤제학_칠현산 칠장사   (0) 2011.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