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17

醉月 2011. 2. 28. 08:51

효성 지극한 청년과 구명시식

잠실의 법당에 하루는 키가 훤칠하게 큰 청년이 찾아왔다. 젊음이 발산되는 모습은 역시 그 나이가 좋기는 좋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찾아온 청년의 용건은 바로 어머니의 구명시식이었다.
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구명시식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당신 어머님 성함이 무어무어지?”하고 나와 버린 것이었다.
글쎄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나는 내가 그 청년의 어머니 이름을 떠올린 것도 아닌데 자동으로 이름이 나와 버려, 말을 한 나도 놀라고 그 청년도 눈을 동그랗게 떴던 기억이 난다(이러한 능력은 사실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8남매 중의 7번째인 그는 유독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 그래서 어머님이 교통 사고로 타계하신 후로 어머니의 모습을 지울수 없어 괴로워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구명시식을 위해 준비한 돈이라면서 상당한 금액을 제사상 차리는 값으로 내놓았다. 직업이 무어냐고 물어봤더니 건축 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어머님의 구명시식을 위해 돈을 모으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구명시식을 하기로 결정하고 보니, 나에게 그 동안 구명시식 집전을 부탁하신 분들 중에서 가장 연소한 신청자임을 알게 됐다.

청년과 함께 구명시식을 하면서 나타나신 어머님은 자신 외에도 무려 5명의 영가를 데리고 나타나셨다.
지금 기억이 나는 바로는 영험 엄마, 철수 엄마, 그리고 거사 영가들로서 정영수 영가, 영희 오빠, 그리고 이소정(이름은 사정상 가명임) 아버지 영가 등 영가가 함께 나타나신 것이다(청년의 어머님 영가가 이름을 모두 가르쳐 줌).
청년이 말한 바로는 어머님이 생전에 살아 계실 때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셨다고 한다.
구명시식에서 나타난 청년 어머님은 아들의 뜻을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나에게 했다.
내가 처음 청년을 봤을 때부터 내 아들인 현석이 생각나고, 그리고 그가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는 마음을 기특하게 여긴 내 마음을 먼저 그 어머니가 아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어머님 영가에게 청년을 새로운 아들처럼, 그리고 제자처럼 잘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했다. 구명시식에 나타나신 어머님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구명시식은 그렇게 백 퍼센트 낙관적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청년의 어머님 영가와 함께 나타난 친구 영가 중의 한분이 나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름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타나신 여러분 영가 중의 한 분이 하시는 말씀이 ‘카바레에서 만난 사람에 의해 아주 잔인하게, 그것도 다리 밑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구명시식을 할 때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영가를 만나게 되는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영가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면 그들은 모두 인생을 살면서 한두가지씩의 바람과, 작든 크든 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영가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나서서 이러한 영가들의 소원을 들어줄 만한 입장도 아니다.
그러한 도인으로서의 능력도 없을뿐더러, 나는 살아 있는 자가 나서서 죽은 자의 바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나는 그러한 행동이 천기를 거역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다.

죽은 자들보다는 살아 있는 자들이 가치가 있다. 이것이 생명의 원리이다.
그리고 죽은 영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력을 자신의 조건에 맞는 사람들에게 선한 기운을 행사함으로써만 자신의 원한과 바람을 해결할 수가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한을 가지고 죽은 영혼들의 경우 살아 있는 자들과 직접 교통을 하기보다는 영적인 파워, 곧 영력을 현상계에 투사함으로써(이것도 물론 뇌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의 사이클이 비슷한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유발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혼의 질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한을 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생을 알고 후생을 아는 것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인간이 가져야 하는 능력은 아니다.
전생을 알면 살인이 있을 것이요, 또 후생을 알게 되면 생을 누리고 살 사람은 없어지고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생의 과보가 있으면 반드시 화를 받고, 그리고 현생의 적선과 적덕이 있으면 내세에 반드시 그 복을 받는 것이 생명의 기본 율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러한 생명의 원리를 관통하는 열쇠가 바로 마음이란 것이다. 마음 하나 잘 먹고 못 먹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불행은 물론 세상사 모든 것, 심지어는 성현들이 살아 계시는 저 영혼의 세계까지도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봄이면 생각나는 사람

매년 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신도 한분이 날 찾아왔다. 백혈병으로 회생(回生)의 가망성이 없는 자기 조카를 위로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따라 병실을 방문했을 때 착잡한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핏기가 없어 핼쓱한 모습이었지만 조카는 웃음으로 애써 반기는 모습이었다. 몹시 가슴 아팠다.
그 순간 남들이 보기에는 한창 꽃필 나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명은 약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법사님, 저도 제 병이 불치의 병인 줄 알고 있어요. 집안 식구들은 제가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다만 고통없이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망연자실해 있는 나에게 그녀는 오히려 차분함을 안겨 주었다.
문득 손에 쥐고 있던 단주(염주)를 그녀의 야윈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나쁜 사람에게 쫓기는 흉몽을 꾸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 고통 없을 거예요. 안심하세요.”“법사님, 감사합니다.”
그녀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법사님, 저는 아직 결혼을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죽은 뒤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세요.”
영혼 결혼식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흔쾌히 약속했다.
그녀는 짐작했던 대로 보름 후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가족들로부터 아무런 고통없이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또 다른 신도의 아들이 그녀가 죽기 2주 전에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침착했던 그녀를 떠올리며 이미 저 세상 사람들이 된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을 주선했다. 양가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선 그들의 사진만을 법당에 모셔두고 날짜를 잡기로 했다.
아마도그 영가들은 벌써 뜻이 맞았는지, 사람들이 있든 없든간에 속닥거리는 바람에 한동안 아무도 법당에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알고 난 뒤 결혼식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재촉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식을 올리던 도중 그들을 위해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직접 불러 주었다. 식에 참석했던 양가 친지들은 엄숙하게만 느껴왔던 불교 의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노랫소리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끝난 뒤에는 모두 좋았다며 입을 모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날 밤 꿈속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꿈에 나타난 그 부부는 계속 고맙다며 행복하다고 전해 주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결혼식 때 내가 불러 주었던 노래는 둘 다 살아 생전에 무척 좋아하던 곡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고 인연이라고 하던가.
죽어서 맺어지긴 했지만 영적으로 보았을 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우연찮게 불러 주었던 노래를 똑같이 좋아했다니…….
죽어서 관 속에 안치될 때도 내가 건네 주었던 단주를 꼭 쥐고 영면(永眠)했다는 그녀.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던 남편.
그들은 나에게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법칙이 얼마나 강한지…….
해마다 3월이 되면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죽어서지만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 부부의 멀어지는 뒷모습과 함께…….

 

불효자는 웁니다

B씨를 편지로 만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마지막 희망과 각오로써 나에게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B는 부산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시골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와 5살된 딸을 하나 두고, 외형상으로는 건강하게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잘 될 것 같은 생각에 일이 시작되곤 하지만, 모든 일이 용두사미로 실패만 하는 것이었다.
남에게 대우 받지 못하는 현실을 여러 번 겪고 보니 그는 이젠 정말 살고 잎은 용기마저 사라지고, 아내의 명예와 딸의 행복에 고통만 안겨주고 주위에 피해만 주는 못나고 나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절에도 찾아가서 기도도 하고 점쟁이 집에도 수없이 찾아가니 ‘귀신이 붙었다’ ‘조상이 어떻다’ ‘산소가 잘못되었다’하며 ‘굿을 하라’ ‘부적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몸부림은 다 해보았다.
그렇지만 신통한 효험을 보기는커녕 경제적으로 피해만 더할 뿐으로 점점 고통만 눈덩이처럼 가중되었다. 이젠 무엇을 물어본다는 자체가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B가 6년 전 만혼으로 결혼할 당시 그의 아내는 천주교 신자였으나 남편의 종교를 따라 불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남편의 사업과 딸의 건강을 빌면서 전축을 켜고 《천수경》을 열심히 듣고 있단다.
그러나 이젠 아내 보기가 부끄럽고 4월 초파일 절에 가서 등을 다는 행위자체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책을 보게 되었단다.
그는 때론 황당한 마음과 때론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B를 만나보니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님의 구명시식을 부탁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5년전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불효를 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B는 아버지가 무능하고 무심하다고 원망도 수없이 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고 하였다. 그렇게 철없던 지난 세월을 뉘우치고 후회하고 통곡도 해보았으나 이미 떠나 버리신 아버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삶에 지치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아버님께 달려가 의논하고 도움을 청하는 친구나 주위 사람을 볼 때마다 너무나 부러웠다. 그때마다 그의 등을 어루만져 주시던 아버님의 그 손이 너무나 그립다고도 하였다.
구명시식을 해본 결과 그의 아버지는 자손들이 자신의 제사를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하나 제사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큰아들은 가정도 깨어진 채 10년을 혼자 살고 있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미국에 이민 가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B의 어머니인들 마음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없는 살림살이에 늘그막에 고생이 심하니 남편의 제사를 제대로 챙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작은 아들인 B마저 이러고 있으니 아버님의 제사를 누구 하나 신경쓰겠는가.
그러니 B의 아버님 영가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 주위에서 천도를 못하고 떠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구명시식이 끝난 후 나는 아버님 기일(忌日)을 잘 챙겨서 정성껏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전화로 B의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 자신에게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조짐이 조금씩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아버님의 구명시식 후, 모든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그 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B의 전화를 끊고 나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조상을 잘 모시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불리하게 하는 것이다.
조상의 음덕을 받으려면 자신도 조상님들께 선한 업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50대인 C는 인생을 다 포기한 상태였다.
아내도 자식도 그를 떠나갔다. 그는 정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살아 생전 불효만 끼쳐 드린 아버님의 구명시식을 하고 싶어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벌썬 10년이 더 흘렀건만, 살아 계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새어머니와의 갈등만 쌓던 그때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는 몹시 괴로웠다.
C는 술만 마시면 새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갖은 욕을 해대었다. 그러나 그 새어머니가 아버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자리에 계셨던 분이라는 것을, 이제 나이를 먹으나 알 것 같았다.
그 두분이 다 돌아가신 뒤 C는 가정도 없어지고 직장도 포기하고, 바람에 낙엽 굴러가듯 살아온 것이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불효하는 모습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두분이 아마 돌아가시고도 자신을 원망하여 이렇게 하는 일마다 안되는 것 같았다.
C는 아직 세상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생을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파탄이나 인생이 다시 태어날 때에는 좀더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님의 용서를 받고 싶어했다.
C의 남은 인생의 무사함을 비는 마음으로, 아버님의 원망도 봄눈같이 녹아지리라는 바름으로, 그 구명시식의 분위기는 매우 숙연하였다.
구명시식을 하면서 C가 자살하려고 이제 생의 마지막 몸부림인 아버지의 구명시식을 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님의 영가는 아들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줄 것을 간청하였다.
죽은 자신보다도 비참하게 살아가는 자식이 안쓰러워 아버님의 영가는 계속 나를 붙들고 하소연하였다.
생전에 그토록 불효하여 자신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어버이의 마음은 죽어서도 따뜻한 마음이었다.
C의 아버님의 구명시식이 끝나자 나는 그에게 구도의 길로 들어설 것을 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잘 아는 모 스님께 부탁을 하였더니 그 스님께서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C는 아버지께 저지른 불효를 산중의 사람이 되어 남은 인생 봉사하며,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인과응보의 인생 진리를 탐독하기 위해 그곳을 떠나갔다.
나는 C를 내가 모시는 죽음을 관장하는 지장보살에게 선물로 드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와 똑같은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먼 훗날 구도의 노정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리라.
열심히 도를 닦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정말 영혼의 세계가 있군요

H부장은 유명 잡지의 편집장이다.
평소에 글줄이나 여기저기 싣는답시고 다닌 나에게는 가깝게 지내는 언론인들이 여러분 계시다.
대부분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몇 분은 후학들의 존경이나 국민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훌륭한 분들도 계셨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신문과 방송에서 일하는 기자나 프로듀서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나라나 언론인들의 ‘공격성’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지난 수년간에 걸쳐 일어난 시청출입기자단의 뇌물 수수와 모 방송국 프로듀서들의 뇌물 수수, 더 나아가서는 매체의 영향력을 빌미로 버린 부정 행위 등은 한국 언론 낙후성의 현주소를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여전히 보통 사람들보다도 정의감에 넘치고 무엇인가 사회와 역사에 기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 부정과 부패가 뼛속까지 넘쳐나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그나마 언론이 이렇게라도 부정을 파헤치고 있으니 이 정도라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 개인적으로는 언론의 힘이 입법, 행정, 사법의 영향력보다 더 커야만 국가의 발전에 이익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기서 지방지들이나 잡지, 그리고 특수 목적의 매체들, 더 나아가서는 방송과 케이블 텔레비전, 그리고 전문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언론 관계 회사들이 생겨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근 수년 들어 우리 나라 언론의 영향력이 더욱 세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문과 방송끼리의 견제가 필수적이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논지와 주의,주장을 놓고 언론사끼리 쌈박질을 하는 것까지도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아는 H부장은 이러한 언론의 큰 사명보다는 비교적 자신의 현실을 충실하게 사는 분이다.
늘 분수를 지키고 자신의 앉고 서는 자리를 가려서 언론인치고는 무난한 사람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나에게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구명시식을 부탁한 것은 의외였다.
대부분 시니컬한 측면이 있는 언론인들은 구명시식의 의식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언론인들의 성격을 조금은 알고 있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H부장의 선택이 무조건 고마웠다.
그러나 H부장은 구명시식을 하면서도 일반의 눈과 가족들의 염려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단촐하고 편안하게 치러질 것을 원했다.
H부장의 소원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명시식을 하기로 작정은 하였으나 H부장은 구명시식이 시작되기까지도 과연 아버지의 영혼이 나타날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구명시식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현시하자 H부장은 크게 놀랐다.
H부장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하나는 지금 현재 구명시식을 하는 동안 H부장의 셋째 언니가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H부장은 자신이 구명시식하는 것을 다른 집안 식구들에게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셋째 언니에게만 이야기했으며 구명시식의 시간에 맞춰 기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는 나에게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선물하기 위해 셋째 딸이 선물을 만들어 놓았을 테니 그 선물을 받으라고 하였다.
H부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돌아가신 H부장의 아버님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분으로서, 평소에 부자로 사시면서도 주위 이웃에게 여러 가지 덕을 많이 베푸신 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세 번째는 며느리에 대해 원망하는 이야기로서
“제발 제사상 차릴 때는 궁시렁대면서 상 차리지 말라.”
는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H부장의 오빠의 부인, 곧 올케가 기독교 교회를 다니면서 ‘조상을 모시는 제사 행위는 죄악’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 곧 전도된 국가나 조직의 전통을 끊기 위해 초대 기독교 전도사들이 사용했던 의도적 가르침을 맹종하면서 부모님 제사 모시는 때만 되면 불평을 해왔던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네 번째는 그날 구명시식에 참석했던 H부장에 대한 것으로
“너는 왜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 사람하고 결혼했느냐.”
하는 꾸지람이었다.
H부장의 아버님 영가는 어릴 때부터 내 말을 잘 듣고 똑똑한 딸이, 평생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시기인 결혼 때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는 단호한 말씀을 하셨다.
구명시식이 끝났을 때 H부장은 내 얼굴을 보면서 상기된 채 말을 했다.
“정말 영혼의 세계가 있군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잘 몰랐을까요?”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특히 구명시식의 실체를 의심하던 H부장이 한 말이었다.

 

구명시식과 새옹지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등산하다 죽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영하다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게 사람의 운명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의 품에서 목숨을 다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결코 슬픈 일이 아닐 듯 싶다. 물론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전제로 말이다.
필자는 스스로가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남들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고, 또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스스로도 놀라고 비관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능력이 필자를 더 큰 전법(傳法)의 도구로 쓰기 위한 신불(神佛)의 가피이며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 겸허하게 주위를 위해 작으나마 내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 그 또한 묘한 재미와 스릴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문득 내가 이러다 구명시식 도중에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만큼 구명시식에 대해 재미를 느끼고 열과 성을 다한다는 말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분이 있다.
성이 박씨인 그 분은 중장비 기술자로 중동 경기가 한창일 때 그곳에 가서 열심히 일했던 분이다.
그는 그곳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서울의 부인 앞으로 송금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집도 사고 자신의 자동차도 한 대 살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남편 못지 않게 생활력이 강하고 알뜰한 박씨의 부인이 남편이 보내준 돈을 조금 더 불려 보겠다고 했다가 큰 낭패를 당해야 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전재산인 5천만원을 이잣돈으로 빌려줬는데 빌려간 사람이 부도를 내고 형무소에까지 들어가는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때 돈 5천만원이면 엄청난 돈이었다. 중동에서 돌아온 박씨는 이 사실을 알고 너무도 큰 시름과 좌절에 빠져야 했다. 자연 부인에게 원망을 하면서 짜증을 내게 됐고 급기야 부인은 음독 자살까지 기도하게 됐다.
부인이 치사량이 넘는 수면제를 먹고 병원에서 며칠째 혼수 상태에 있을 때 박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의 얼굴은 수심과 시름에 잠겨 있었지만 눈 속에 희망의 빛이 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박 선생, 세상에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또 기회가 다시 올 때 벌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이 자식들은 엄청나게 잘 둔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디 용기를 가지십시오. 기회는 또 옵니다. 부인도 소생하십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때 내가 그에게 들려줬던 말이다.
그의 이런 저런 사정을 들은 뒤 나는 비명에 간 박씨의 처남, 즉 부인의 큰 오빠의 구명시식을 권유했고 그도 이에 따랐다.
그 뒤 부인은 소생했고 박씨도 기운을 차려 용달차 운전사로 취직을 했고 몇 년 뒤에는 그 회사를 인수해 사장이 되었다. 가끔 나를 찾아오는 박씨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구명시식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해주는 게 아니더군요. 바로 나의 영혼을 구하는 의식 아닙니까? 그때 법사님께서 해주신 의식은 바로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의식이었습니다.”
맞는 말이다.
구명시식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인 것이다.
이번에 그의 둘째 아들도 형에 이어 서울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기뻐하는 박씨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장남이 대학에 합격했던 무렵 박씨 부인은,
“우리가 그때 그 돈을 잃고 그 난리를 겪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 모를 뻔 했습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
인생 만사는 바로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이다.

헤어지는 연습

문득 인생 자체가 헤어지는 연습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인간의 목숨이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영원한 것인 양 집착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갈까 봐 마음을 졸이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떠나가게 되어 있음을 어찌할 것인가.
필자 주위에 금슬이 좋았던 어느 노부부가 있었다. 고락을 같이 하면서 인생을 헤쳐온 지 60년 가까이 되는 해, 바로 지난해 연말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애통해 하는 늙은 남편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매우 딱할 지경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편의 비통함은 가시지 않았다.
며칠 전 침통한 모습으로 법당을 찾아온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연 화제는 부인에 관한 얘기로 쏠렸다.
“먼저 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인생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모두 허망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그 동안 못해 줬던 기억만 새록새록 나는지 너무도 후회가 되는군요.”
“노처사님처럼 부인에게 각별하셨던 분도 그럴진대 다른 보통의 남편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엇하나 잘해 준 게 없어요. 죽도록 고생만 시켰지. 재산, 자식, 다 소용 없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만나 새로 시작한다면 이번엔 정말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사님께서 간절히 그렇게 원하시면 내생에 다시 만나시게 됩니다. 인생은 다 인연과 윤회의 굴레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달리 들려줄 말이 없었다.
“정말입니까, 법사님?”
노인의 눈이 반짝이며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럼요.”
“그렇게만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그 사람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다급히 다음 말을 던졌다.
“인연에 따라 주어진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는 것도 커다란 악업을 짓는 일입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다면 현재의 삶에서 좋은 업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지요. 아시겠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생은 헤어짐의 연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우리네 삶은 헤어짐과 떠나감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물론 만남이 있었으니까 헤어짐도 있었지만 어쩐지 헤어짐이 만남보다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것들, 사람을 포함해 재물, 직업, 물건, 동산, 부동산, 그리고 많은 사건과 일들이 우리 곁에 왔다가는 떠나가지 않았는가.
꽤 오랫동안 내 곁에 부모님이며 가족 친지들이 있지만 결국 그 분들과도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종국에는 목숨이라 불리우는 현세의 내 생명과 헤어짐으로써 우리는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만남의 기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인생에서 헤어짐은 필연이다. 특히 사랑하는 것과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그 헤어짐은 더 아프고 쓰리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가장 바르게 헤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자성(自性)은 어떤 헤어짐이 바른 헤어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게 마련이다.
이제 또 헤어지는 연습 속에서 자성과 만나자.

향기 그윽한 C의 영가

영혼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가치를 알고 있는 C라는 나의 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C는 소위 한국의 명문가 출신의 젊은 주부였다. 편안하게 성장하여 명문대학을 나왔으면 미술 분야의 박사 학위까지 땄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남편을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한창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그만 C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C의 남편 되는 분의 사연이다.
C의 남편은 C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정을 끊지 못해) 수많은 날들을 괴로워하면서 지냈다. 그만큼 자신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깊었으며 젊어서 세상을 뜬 부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랑과 정은 삶과 죽음의 벽을 뛰어넘는다고 하던가 결국 그녀의 남편은 저 세상에 있는 C와 대화를 나누는 데까지 접근하게 됐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서울 뚝배기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겠지만 연속극에 나오는 식당 주인 아저씨는 세상을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날그날 방 안에 모셔둔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그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었다.
영혼의 세계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C의 남편이 세상을 뜬 부인과 대화를 하는 것도 이러한 서울 뚝배기 곰탕집 주인 아저씨의 예와 비슷한 것이다.

C의 남편과 나는 만나자마자 서로 동병상린, 유유상종이라고 서로의 입장을 아주 잘 이해해 주는 친한 친구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나의 입장을 이해했으며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자의 고통’과 죽음과 삶 사이에 걸쳐져 있는 깊은 사이를 건너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공감했다.
타계한 C에 대한 구명시식은 바로 이러한 남편과 나를 깊은 친근감과 유대 속에 있게 대G다.
아마도 내가 여러 번 구명시식을 해본 이래 C의 구명시식처럼 화기애애한 구명시식은 해본 적이 그렇게 많이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생일 파티 같았으며 구명시식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나 느낌도 대단히 편안했다.
C의 남편은 나에게 구명시식을 할 때 부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유심초가 부른 <사랑이여>라는 노래를 들려줄 것과, 그리고 생전에 즐기던 담배 켄트와 마주앙이라는 술을 올릴 수 있도록 부탁했다.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에서 담배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C가 평소에 좋아하는 담배를 영전에 올리는 것을 허락하고 <사랑이여> 라는 노래를 3변이나 들려주게 했다. 그리고 술도 한잔 따라 올리게 했다.
그러자 구명시식을 거행하는 식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향기가 짙은 향수를 바가지로 퍼다 뿌린 것과 같은 향기가 온 방안을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명시식을 하는 법당에는 C의 남편이외에도 구명시식을 돕는 법당 식구들, 그리고 한국 심령과학협회의 관계자들 몇 분이 나와서 함께 계셨지만 모두들 진동하는 향기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영혼이 현상계에 현시할 때 C의 경우와 같이 향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의 구명시식을 할 때에는 요란한 군화 소리가 들렸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영혼이 나타나기 전에 경호원들 영혼이 나타나 위세를 부리며 안전 점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장소에 가서 이상한 느낌이 든다거나 불쾌한 감정이 나오게 되면 그 장소에서 일을 도모하지 않는게 좋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영감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영적인 능력을 개발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일지라도 민감하게 느끼는 기본적인 영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기분 문제’라고 간단히 넘겨 버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실제로 인간 누구나가 훈련을 하기만 하면 높은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C의 영가는 바로 이런 높은 영적 수준에 도달한 영가였다. 살아 생전에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랑을 베푼, 향기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죽어서 다시 만날 때에도 모든 사람들의 기분을 편안하고 좋게 해주었던 것이리라.

아들을 살린 어머니의 기도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는가?
최근 보스니아 상공에서 격추됐다가 6일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미 공군 조종사 스콧 오그래디 대위와 닮은꼴의 사고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차량 통행이 뜸한 한밤중에 빈 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50m 언덕 아래 숲속으로 굴러 떨어진 20대 택시기사가 빗물로 목을 축이고 6일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구출된 것이다.
생환이 주인공은 S택시 소속 기사인 N씨. 그런데 그의 생환은 과학이란 잣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척추를 다친 상태에서의 6일간의 사투. 그것은 단지 그가 수색대 출신이란 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의학자들은 의학적으로 그 같은 상황에서 8시간 이상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그가 다행히 6일을 견뎠다고 하더라도 같은 지점에서 트럭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는 염라대왕을 알현하고 있을지 모른다.
N은 화물차 전복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부 고속도로순찰대 8지구대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416.8km 지점 언덕 아래 숲속에서 꺼져가는 목소리로 ‘살려주세요’하는 N을 발견, 병원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과학적으로라면 죽었어야 할 그의 몸은 분명히 살아 숨을 쉬고 있다. 우연의 연속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너무 많다.

그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N은 어떤 운명을 타고났길래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인가? 앞으로 그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신문에 난 N씨의 사진만으로 나는 그의 모든 상황을 파악해 내었다.
“N씨의 아버지는 안 계시며, 어머니는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닌 무속적인 종교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아직 결혼을 하기 전 상태이며 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효자인 것 같다. 현재 다친 허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개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내가 영사 투시로 말한 내용은 N의 어머니에 의해서 사실임이 확인됐다. 그런데 정작 N이 살아난 이유는 그의 어머니의 기도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자식간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탯줄로 맺어져 있다고 한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영력(靈力), 즉 텔레파시로 작용해 극한 상황에서 자식을 생존의 길로 인도한 것으로 보인다.
N은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어머니가 아침마다 불국사에서 떠오시던 약수와, 집에서 손수 만들어 주시던 식혜였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꼭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N씨의 어머니 역시 절도 자주 찾고 명산대천에서 자식의 복을 자주 빌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불국사에서 약수를 떠 올 때도 꼭 자식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밝혔다.
더욱이 N이 실종되고 나서는 매일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을 위해 빌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머니의 강렬한 기도가 자식을 살려낸 것이다.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십년이라도 죽고, 백년이라도 죽고, 거룩한 이도 죽고, 흉측한 자나 어리석은 자도 죽는 것이다.

살아서 요순(堯舜, 중국을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모범자들)이지만
죽어서는 썩은 뼈다귀요
살아서는 걸주(桀紂, 중국 폭군의 대표자들)이지만
죽어서는 썩은 뼈다귀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니
현세의 일이나 위할 따름이요
죽은 뒤의 일이야 이야기할 겨를이 있으리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너무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으며 내가 E라는 소녀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 무능력 때문에 나 자신을 한탄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바로 위에 쓰여진 시는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중 <양주편(楊朱扁)>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녀는 지난해 미국으로 떠나올 때 이 시를 나에게 보내었다.
나는 당시 그녀가 지닌 죽음의 그림자를 알고 있었으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를 빨리 이야기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 나라와 미국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녀의 죽음의 예감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던 순간,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에게 보내진 것은 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적힌 일기장이었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월 5일
펑펑 쏟아지는 눈물. 그는 갔다.
법사님이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기분이란 영영 다시 못 본다는 기약 없음, 그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참회, 나의 어리석음, 용서, 나의 무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며…….
결국 날 위해서였겠지.
꿈이 적중했다. 꿈에서도 떠난다는 사실이 싫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난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고 살아야 하나.
나의 영혼까지도 이해해 주고 넓게 포옹해 주었는데 난 철저히 혼자다.
혼자인 사람은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고 했는데 지금의 난 그와 반대다.

그리고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기 바로 하루 전인 1월 20일에는 지극히 간단한 한마디 말만 쓰여져 있었다.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교통 사고였다. 그것도 자신 혼자만의 죽음이 아닌 올케 언니와 그녀의 딸까지 한꺼번에 운명을 달리한 대형 교통사고였다.
어느 누구에게 호소할 수도 없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일기장 곳곳에서는 죽음을 예고하는 그녀의 꿈과 예감 등이 나타나고 있었다.
언니가 함께 나타나는 기이한 꿈 이야기가 쓰여져 있고 교통 사고가 나기 며칠전 꾼 꿈에서는 죽음이 올케 언니와 연관되어 있음도 느끼게 하고 있다.
어쨌든 그녀는 갔다. 그녀의 죽음이 몰고 온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소위 영능력이 있답시고 소문내고 다니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의와 정신적인 고통이 바로 그것이었다.
남의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고 화투장의 그림을 눈 감고도 알아맞히는 그러한 능력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하는 회한이 엄습했다.
큰 고통속에 그녀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일기장이 도착했을 때 이를 제단에 올리고 그녀의 천도를 위해 많은 기도를 올렸다.
젊고 아름다운 인생을 다 꽃도 피우지 못하고 가버린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울의 법당에 나오는 신도였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 첫째 제자인 영근과도 친하게 지냈고, 나의 집사람을 언니처럼 잘 따르는 얌전한 여자였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젊은 여자답지 않게 조금은 어두운 면이 있었으며, 이것이 남보다 다른 정신적인 고민의 심도를 깊게 만들었다. ‘젊음의 고통’이라는, 미화된 말로 설명되지 못할 그러한 것이었다.
주위에서 결혼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만들었으나, 본인 또한 이러한 정신적 안정과 생활의 정착만이 인생의 갖가지 고민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쉽게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이 보내온 일기를 보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속에 그녀가 젊은 날 겪었던 방황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 곁들여 쓰여져 있는 나에 대한 애모의 감정 등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이제 가고 없다.
서울의 법당에 내가 있을 때면 늘 나에게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인생 고민까지 털어 놓으며 때때로 환한 웃음까지 짓던 은경. 나를 그렇게 잘 따르고 나의 이야기에 심각한 모습으로 귀를 기울이던 그녀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갔다.
모두 나의 책임이라고 깊은 회한의 시간을 지냈다. 왜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죽음의 예감을 발견했으면서도 이를 막지 못했는가. 왜 나는 여러 가지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영매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위에 있는 젊은 청춘의 인생이 지려 하는 것을 미리 예시해 이를 붙들지 못했는가. 그녀가 지난번 미국에 부친 편지와 함께 보내진 카세트 테이프에는 이러한 노래가 실려 있었다.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미소를 띄워봐도
마음은 슬퍼져요
사랑에 빠진 나를 나를
건질 수 없나요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아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이 생명 다 바쳐서
좋아한 사람인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이룰 수 없나요.

영혼에는 비자가 없습니다.

일본 재일 교포 출신의 학도의용군을 위한 구명시식을 할 때였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산화해간 영령들을 위한 구명시식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도 한껏 숙연했고 의식을 집전하는 나도 어느 정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당황하게 하는 사건아닌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에 존경하던 한국심령학회 부회장인 P여사가 구명시식 현장에 참석하게 됐는데, 바로 그 분의 뒤에 한 일본 여인의 영가가 함께 와서 덤으로 구명시식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P여사에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의아하게 여기며 이것을 말씀드리니 그 분께서는 깜짝 놀라면서 외삼촌댁에 일본 여성이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돌아가신 일본 여성이 학도의용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며, 또한 돌아가실 때 비참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셨다는 것이다.
‘마사코’로 불렸던 그 일본 여성이 우리 나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리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이었다. P여사의 친척 한 분이 일본에 계실 때 이 마사코와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싹이 텄다.

재일 교포로서 구국의 정열에 불타던 P여사의 친척은 우리 나라에 머물면서 새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사코는 산도 설고 물도 설은 우리 나라에, 오직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서 건너오게 된다.
결국 국경을 뛰어넘은 두 청춘 남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 나라 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연인들의 사랑도 오래가지 않았다.
마사코가 사랑 하나만을 믿고 찾아온 남편이 오래지 않아 우리 나라 여자와 눈이 맞아 외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문화적 차이였고, 우리 나라 여자와의 사랑을 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마사코에게 다가온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마음을 주고, 사랑을 주고, 인생을 모두 주고 낯선 산천을 찾아온 마사코는 자신의 빼앗긴 사랑을 저주하며 낯선 땅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의 길을 택하게 된다. 음독 자살이라는 끔찍한 길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그렇듯 원한에 사무친 원혼이 어디를 갈 것인가.
결국 마사코의 영혼은 일본을 건너가지 못하고 우리 나라 땅을 떠돌다가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사코의 영가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살을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자살을 한 영가들은 영혼의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된다. 천지신명이 부여한 인간의 운명은 절대로 자살이라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천명을 어기고 자살을 한 경우 영혼은 억만 겁을 괴로워하면서 지내야 한다. 자살했던 순간의 고통이 죽어서 영혼이 된 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마사코의 영가는 바로 ‘죽으면 살아 있었을 때의 고통을 잊을 줄 알았는데 죽으니 더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영가는 자신의 친척들과 가족들이 살았었고, 지금도 일부 살아있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만약 일본에 가는 분이 계시면 그 분에게 자신을 의탁해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마사코의 영가가 이야기하는 지방은 도쿄의 북쪽에 있는 하코다테라는 곳이었다.

나는 마사코의 영가가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기 보다는 지금 구명시식 현장에서 그녀의 영가를 일본에 보내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녀의 한과 고통을 위로하면서 죽어서 구천에 자리를 잡지 못한 그녀의 영혼을 일본까지 천도하는 영능을 행사했다.
조금은 심각할 것 같지만 사실 ‘영혼의 세계는 비자가 필요 없고 세관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확실하게 들리는 계기였다.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면 모든 영혼들이 아무런 질서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혼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상계보다 더욱 엄격한 질서 체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현상 세계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질서라는 것이 본질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보다 앞서서 은혜를 가로챌 수도 있고 실력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눈치와 사기만 능해 남보다 잘 먹고 잘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는 사기꾼을 곧바로 사기꾼이라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영혼끼리는 속일 수가 없기 때문에 질서가 그대로 완전하게 유지되는 곳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보다 위대한 가치, 곧 국가와 민족,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가장 밝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위아래가 있을지 모르지만 영혼의 세계에는 위아래가 없다.
단지 세상 살면서 쌓은 덕과 선, 그리고 업적으로 빛나는 에너지만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높다’ ‘네가 낮다’는 우리 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권위나 감투 싸움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력대로, 정신의 에너지대로 빛을 발하는 자명등의 세계가 영혼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서 인연의 강도가 약하고 사기꾼 노릇을 했거나 천지신명이 주신 생명을 헛되이 쓴 사람은 빛이 나지 않아 자연히 어둠이 세계에 갇히게 되고, 훌륭하고 존경받고 사기꾼 노릇하지 않고 창조력을 발휘해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해서 선한 인연을 잘 맺은 영혼들은 자연히 광명의 에너지를 밝게 발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선한 업을 쌓는 현생의 삶이 벌써 천국인 것이며, 악한 인연을 맺는 현생의 삶이 벌써 지옥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부처님은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하셨으며, 예수님은 ‘네가 바로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리라.

꽃집 뚱보 아가씨와 스패니쉬 영혼

뉴욕시 맨하탄 브로드웨이는 한국 교포들이 많이 가게를 내고 있는 곳이다.
소위 도매상이라고 해서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필요한 물건을 사가고 있다. 여기에 우리 나라 교포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 중에는 성공한 교포들도 꽤 있어 건물도 몇 채씩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것은 맨하탄의 한인 도매 상가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그 브로드웨이 부근에서 꽃집을 경영하고 있는 우리 나라 교포 아가씨와 관계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 아가씨는 자신의 언니와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꽃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서로가 열심히 일하고 게다가 머리도 어느 정도 좋아서 사업은 계속 성장세를 구가했다.
손님도 늘어나고 매상도 올라갔으며 미래에는 남부 지방에서 어느 정도의 땅을 사서 화원을 꾸미고 직판 체제를 갖출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고 있는 단계였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사업이 잘되는 것은 좋으나 지난해부터 갑자기 자매 중 언니 아가씨가 무지막지하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보기에도 불안할 정도의 뚱보가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비만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비만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언니 아가씨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쉴새없이 먹어대면서도 그것도 먹으면 곧바로 살찌는 음식만 골라서 먹는 것이었다.
특히 그녀는 미국에서도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라고 해서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햄과 피자, 햄버거, 소시지, 콜라 등만을 골라서 먹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살찌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살찌는 것도 무서웠지만, 실제로 그녀를 두렵게 만든 것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식성 때문이었다.
그녀가 살이 찐 뚱보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때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상상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할 지 모른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는 그 아가씨와 같이 무지막지하게 살찐 사람들이 그렇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꽃집 아가씨가 어느 정도로 살이 쪘느냐는 것을 상상해 보려면 어디 외국 잡지 표지에 나오는 이상할 정도로 살이 찐 사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것은 바로 이러한 때였다.
물론 자신이 살찌는 것에 대해 그리고 살찌는 음식만을 골라먹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나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꽃집 아가씨가 어떤 스패니쉬 영혼의 힘에 의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의 입을 통해 알아보니 바로 그 자매들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꽃집의 지하실에 수년전에 스페인 아줌마가 살고 있었는데 그 스페인 아줌마가 평소에 피자나 햄버거, 그리고 소시지, 콜라를 즐겨 먹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 꽃집 아가씨에게는 그 집 지하실에 있다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은 스페인 아줌마의 영혼이 빙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구명시식을 할 때 나타나는 영가들의 바람을 들어줄 때가 있고 아니면 거절할 때도 있다. 영혼들 중에도 많은 수가 살아 있는 사람들 같이 요구가 많을 경우도 보통이다.
아편으로 죽은 사람은 아편을 찾고, 담배나 술을 좋아하다 죽은 영가들은 죽어서 영혼이 되어도 이러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산 사람보다도 더 요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영혼의 바람이 조금은 지나친 경우, 어린이가 진짜 총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나 아니면 진짜 칼을 사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을 요구할 때가 많은 것이다.
여기서는 설득도 필요하고 삶의 지고한 진리인 불경의 대자대비의 원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꽃집 아가씨와 같은 경우에 나는 그 스페인 아줌마 영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왜 그랬는지 모른다. 다만 느낌에 따랐을 분이다. 나는 그 자매에게 가능하면 매일 피자 한 쪽과 콜라 한 컵씩을 그 스페인 아줌마가 살던 지하실 입구에 갖다 둘 것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 방법이 굶주렸던 스페인 아줌마의 영가를 만족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처방전 아닌 처방전을 제시한지 한달이 지난 후에 찾아온 그 언니 아가씨는 다행히도(?)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예전에 왕성했던 주체할 수 없는 식욕, 아니 굶주림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이제는 스스로 음식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살찐 사람들 모두가 뚱뚱한 사람이나 굶주리다 죽은 영혼이 빙의된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체질적인 것도 있고 아니면 유전적인 것, 그리고 심지어는 심리적인 이유까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고견(高見)이다.
대부분의 뚱보 환자들은 다이어트를 통해, 아니면 운동을 통해, 또는 심리적인 욕구 불만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영혼의 빙의에 의한 비만도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내가 알고 있는 한 확실하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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