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게(臨終偈)
緣會而來 緣散而去
撞倒須彌 虛空獨露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여 가네
수미산을 후려쳐 꺾어 버리니
허공만이 홀로 드러나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열당조은(悅堂祖誾, 1234~1308)
강서성에서 태어났다. 임제종의 선승. 13세에 출가하여 개석지붕(介石智朋)의 법을 이었다.
금경지(錦鏡池)
一鑒涵虛碧 萬象悉其中
重綠浮輕綠 深紅間淺紅
한 장의 거울 같은 수면에 허벽(虛碧)이 넘치는데
만상(萬象)은 모두 이 속에 있네
겹친 푸름 위에 엷은 푸름이 떠 있고
깊은 붉음에는 옅은 붉음이 섞여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승감(僧鑒, ?~1253?)
주로 명주(明州) 설두사(雪竇寺)에 머물렀다. 시집 《설두잡영(雪竇雜)》이 있다.
임종게(臨終偈)
甲子六十三 無法與人說
任運自去來 天上只一月
육십삼 년 동안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네
바람 따라 물 따라 왔다 가나니
하늘에는 다만 달이 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경당각원(鏡堂覺圓, 1244~1306)
경론(經論)에 정통했던 그는 오지(吳地)의 모든 선지식을 두루 찾아본 다음 천동산(天童山) 천동사(天童寺)의 환계성일(環溪性一)에게 심인(心印)을 받았다. 그 후 선흥사(禪興寺), 정지사(淨智寺), 흥덕사(興德寺) 등 여러 절에 머물다가 1306년(德治 元年) 9월 26일 63세에 입적했다.
임종게(臨終偈)
本無生滅 焉有去來
氷河發 鐵樹華開
나고 죽음이 없는데
어찌 가고 옴이 있으리
빙하에서 불길이 솟고
무쇠나무에서 꽃이 피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원수행단(元行端, 1255~1341)
1255년 절강성 임해(臨海)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어머니에게 《논어》와 《맹자》를 배우고 머지않아 절강성 화성원(化城阮)에 있던 숙부 무상인(茂上人)에게 출가하였다. 경산(徑山)의 장수선진(藏善珍)을 찾아가 그의 법을 이었다. 역대 황제들의 귀의를 받아 세 번이나 금란가사(金袈裟)를 받기도 했다. 1341년 8월 4일 88세에 입적했다.
산꽃(山花)
幾樹山花紅灼炸 一池淸水綠
衲僧若具超宗眼 不待無情爲發機
나무마다 가지마다 불타는 꽃들
물결은 잔물결은 끝없이 퍼져가네
그대 만일 마음의 눈 크게 떴다면
굳이 이런 풍경까지 기다릴 것 없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41)
1272년 강소성 상숙(常琡)에서 태어났다. 1292년 21세 때 소주(蘇州)와 흥교(興敎) 숭복사(崇福寺)에 출가했다. 고봉원묘(高峰原妙)의 문하에서 공부한 다음 급암종신(及菴宗信)의 법을 이었다. 이후 여러 곳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52년 7월 23일 81세에 입적했다. 그의 문하에 우리나라 고려 말의 태고보우(太古普愚) 등이 있다.
산의 달(山月)
歸來洗足上狀睡 困重不知山月移
隔林幽鳥忽喚醒 一團紅日掛松枝
돌아와서 발을 씻고 잠이 든 채로
달이 옮겨 가는 줄도 미처 알지 못했네
숲속의 새 우짖는 소리에 문득 눈 떠 보니
한 덩이 붉은 해가 솔가지에 걸렸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41)
1272년 강소성 상숙(常琡)에서 태어났다. 1292년 21세 때 소주(蘇州)와 흥교(興敎) 숭복사(崇福寺)에 출가했다. 고봉원묘(高峰原妙)의 문하에서 공부한 다음 급암종신(及菴宗信)의 법을 이었다. 이후 여러 곳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52년 7월 23일 81세에 입적했다. 그의 문하에 우리나라 고려 말의 태고보우(太古普愚) 등이 있다.
산거(山居)
閑居無事可評論 一炷淸香自得聞
睡起有茶飢有飯 行看流水坐看雲
한가로운 이 삶이여 시비에 오를 일 없거니
한 가지 향을 사르며 그 향기에 취하네
졸다 깨면 차가 있고 배고프면 밥 있나니
걸으면서 물을 보고 앉아선 구름을 보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요암청욕(了菴淸欲, 1272~1341)
절강성 임해(臨海)에서 태어났다. 9세에 출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고림청무(古林淸茂)에게서 법을 받았다.
저서 :《요암청욕선사어록(了菴淸欲禪師語錄)》
임종게(臨終偈)
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山日出
본래 마음 비고 밝아
나고 죽음이 없네
나무말이 밤에 울고
서쪽에서 해가 뜨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370
1296년(元貞 2) 6월 절강성 상산(象山)에서 태어났다. 1305년 10세에 절강성 천녕사(天寧寺)에 입산했다. 여러 선지식 문하에서 정진하다가 원수행단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의 법을 이었다. 이후 천녕(天寧) 영조사(永祖寺), 절강성 본각사(本覺寺) 등 여러 절에서 후학 지도와 수도에 힘쓰다가 홍무(洪武) 3년(1370)) 7월 26일 75세에 입적했다.
임종게(臨終偈)
生本不生 滅本不滅
擦手便行 一天明月
태어남은 본래 태어남이 아니요
죽음 또한 본래는 죽음 아니네
두 손을 뿌리치고 문득 돌아가노니
하늘엔 둥근 달만 외로이 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오석세우(烏石世愚, 1301~1370)
장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걸봉(傑峰). 어려서 출가하여 지암 보성(止巖普成)의 법을 이었다. 홍무(洪武) 3년(1370) 12월에 입적했다. 법랍(法臘) 50세
경지(境地)
雨洗淡紅桃嫩 風搖淺碧柳絲輕
白雲影裏怪石露 水光中古木淸
비에 씻긴 복사꽃잎, 그 연약한 볼이여
바람에 연둣빛 안개 흔들려 버들가지 가볍네
흰구름의 그림자 속에 괴석(怪石)이 드러나고
푸른 물빛 속엔 고목이 싱그럽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조천제(照闡提, ?~?)
부용도개(芙蓉道楷)의 법을 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십우도(十牛圖)
그를 만나서(尋牛)
茫茫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蟬吟
망망한 풀바다 헤치며 너를 찾아가노니
물굽이 멀고 산 첩첩하여 힘은 다했네.
두 눈빛 가물가물 꺼져갈 즈음
단풍나무엔 늦매미 울음이 물들고 있네.
발자취 있네(見跡)
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藏也
물가 나무 아래 발자취 많음이여
풀밭 가르며 가르며 가 보라 흔적 있는가
깊은 산 심심산골 그 깊이라도
하늘 덮는 콧구멍이라, 저를 어이 숨기리.
그를 보았네(見牛)
黃鶯枝上一聲聲 日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廻避處 森森頭角畵亂成
금꾀꼬리 가지 위에 한 소리 소리요
햇빛 바람 흐름이여 버들 언덕 푸르렀네
다만 이것이라 피해 갈 곳 없노라
삼삼한 자태여 어찌 이를 그릴까나.
그를 잡았네(得牛)
竭盡靜神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到高原上 又入煙雲深處居
몸과 마음 다 바쳐 그댈 잡았으나
사나운 그 마음 다스리기 어렵네
때로는 고원 위에 홀로 노닐다
구름밭 안개숲에 모습 감추네.
그를 키우네(牧牛)
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入埃塵
相將牧得純和也 無抱自逐人
채찍 치며 고삐 매어 그대를 지킴은
예 좇아 티끌에 물들까 두렵기 때문,
끄는 대로 내 따라 먹고 마시면
고삐 멍에 안 씌워도 종횡무진하리라.
그를 타고 집에 가네(騎牛歸家)
騎牛欲還家 羌笛聲聲送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唇牙
소 잔등에 구불구불 고향집 가네
흥겨운 피릿가락 저녁빛 뉘엿뉘엿
손짓 하나 눈짓 하나 끝없는 이 뜻
아는 이는 알고 있네, 어찌 말로 다하리.
그를 잊고 나만 있네(忘牛存人)
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그대와 함께 이미 고향집에 왔네
그대는 없고 나마저 한가롭네
해가 이마 위에 오도록 늦잠 자나니
채찍과 멍에 따위 곳간에 던져두네.
그와 나 모두 잊네(人牛俱忘)
鞭索人牛盡屬空 碧天遙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비고비고 텅 비어서 온갖 것 비었네
거울 푸른 저 하늘에 티끌 어이 묻겠는가
활활 타는 이 불 속에 흰 눈 어이 머물랴
예까지 왔다면 길은 이제 끝났네.
나에게로 돌아오네(返本還源)
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집에 간다, 짐 챙긴다, 날뛰는 것은
눈먼 듯 귀먹은 듯 그보다는 못하이
이 몸에 앉아 이 몸을 보지 않나니
물 절로 아득하고 꽃 절로 붉은 것을.
다시 이 삶의 파도 속으로(入廛垂手)
露胸跣足入廛來 抹土塗灰笑滿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맨발에 가슴 풀고 저자에 뛰어드네
흙먼지 쑥머릿단 두 뺨 가득 웃음바다
이것은 신선의 비결이 아니라
옛 나무에 꽃 피는 바로 그 소식이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확암사원(廓庵師遠, ?~?)
송대(宋代)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선승으로 십우도(十牛圖)의 저자. 나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몸은(元法詩)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遣有塵埃
이 몸은 보리수요
이 마음 밝은 거울이니
부지런히 갈고 닦아
티끌 묻지 않도록 하라.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대통신수(大通神秀, 606~706)
북종선(北宗禪)의 거장. 중국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25세에 낙양의 천궁사(天宮寺)에서 출가. 키가 팔 척이었고 미목이 수려하여 남다른 바가 있었으며 유학ㆍ노장학을 비롯하여 박학 다식하기 이를 데 없었다. 50세에 오조홍인(五祖弘忍)을 찾아가 그의 수제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으며 측천무후(則天武后), 중종(中宗), 예종(睿宗)의 국사(三帝國師)가 되었다. 706년 2월 28일 낙양 천보사(天寶寺)에서 101세로 입적했다. 저서 : 《관심론(觀心論)》,《대승무생방편문(大乘無生方便門》, 《妙理圓成觀(묘리원성관)》
본래 아무것도 없거니(示法詩)
身非菩提樹 心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假拂塵埃
이 몸은 보리수 아니요
마음 또한 거울 아니네
본래 아무것도 없거니
어디에 티끌이 묻겠는가.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남종선(南宗禪)의 거장. 중국 광동성(廣東省)에서 태어났다. 24세 때 호북성 황매현 동선원(東禪院)의 오조홍인(五祖弘忍) 문하에 들어가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岳懷讓), 하택신회(荷澤神會) 등 뛰어난 제자들이 많았는데 후세의 중국 선종을 이끌어 간 것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713년 8월 3일 76세로 입적했다.
저서 : 《육조단경(六祖壇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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