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자 ‘전생 신드롬’으로 한반도 전체가 몸살을 앓았었던 적이 있다.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환생하면서 까지 이루려는 강인한 사랑과 끈질긴 윤회의 고리! 영화속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누구나 전생에 대한 환상을 품었을 것이고, 이러한 호기심이 ‘전생탐구족’을 탄생시키며 일명 철학관에서는 ‘전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생의 주인공인 우리는 왜! 그토록 알고 싶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전생의 습관과 욕망에 매달리지 않고 현생에 충실할 수 있게 배려하는 우주와 신의 자비인 것이다. 예를 든다면, 현생에서 유명한 선교사가 된 사람이 있는데, 불행히도 이 선교사의 전생이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하자. 만약 그가 전생을 기억한다면, 그는 술에 대한 집착과 술버릇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전생처럼 다시 알코올 중독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현생에서는 독실한 믿음으로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현생을 쉽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생을 기억한다면, 내세관을 믿게 되어 성실히 살아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음 생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서 괴로운 현생을 쉽게 끝내 버릴 수도 있다. 또,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태어나면 돼!’하고 쉽게 죽여버리는 등 생명이 경시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불확실한 내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질서가 유지되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 시대에 ‘수(數)가 만물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는 ‘전생을 기억하는’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전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영혼이 결코 죽지 않으며 단지 한 거처를 떠나면 다른 거처로 옮겨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나 자신도 트로이 전쟁 때 ‘판토스’라는 사람의 아들 ‘에우포루보스’였는데 전투시 네델라우스의 창에 맞아죽은 것을 기억한다. 최근에 아르고스 시에 있는 헤라의 신전에 가본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 당시 내가 사용하던 방패가 전리품과 함께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고 말았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변천할 따름이지 무엇하나 사멸하지는 않는다.”
지금 현재도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을 비롯한 의사, 심령학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 진행된 영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HOW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증명하고 있지만, WHY에 대해서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이렇듯 영혼의 흐름, 즉 환생에 대해서는 쉽게 증명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생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학의 공식처럼 풀어낼 수는 없으며 풀어내서도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전생에 대한 모든 것을 증명하게 된다면, 그것은 나쁜 일로 이용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류 역사상 선한 것으로 사용되어야만 할 것들이 악한 것으로 사용된 기록은 수없이 많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생 역시 그렇게 사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전생은 밝혀지지 않기에 신비롭고, 경외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전생을 태어나기 전의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매일매일이 전생이며, 매시매분이 전생이다. 지금 이 순간도 전생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잠자는 것으로 죽음을 겪고, 아침에 깨어나는 것으로 환생을 맛본다. 전생인 어제에 업이 있다면 현생인 오늘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윤회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달과 여인에 얽힌 이야기
달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은은한 그리움이 아닐까.
보름달 휘영청 밝은 날, 잠 못 드는 괴로움 씨름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봄직하리라. 그러기에 예로부터 차마 분출되지 못하는 규방 여인의 애절한 그리움의 정과 달에 얽힌 사연은 구구하고도 절절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왜, 달이 그처럼 우리 인간의 마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엮어오고 있는 것인가.
예로부터 우리네 조상들이 사용하던 달력은 음력이었다. 오늘날 우리네 삶도 양력보다는 음력, 즉 달 에너지의 차고 기우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지나칠 수 없다.
달 에너지가 거대한 바다를 밀고 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의 일부다. 보름달 뜨는 시기가 되면 물고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통통하게 살이 올라 보기가 좋다. 갯벌에 꿈틀대는 탐스러운 게의 속살 찐 모습에 유난히 기가 살아 있는 것도 보름달 에너지의 충만함이 주는 혜택이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인간 특히 여인의 신비와 달의 함수 관계는 더욱더 복잡 미묘한 메커니즘으로 얽혀 있으리라는 데에 충분히 생각이 미친다.
사람 몸의 70%가 물로 이루어졌고, 또한 바닷물과 같은 염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여자의 월경이 28일을 주기로 달 에너지의 변화에 따라 생성, 소멸의 원리를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녀의 감성 변화 또한 그렇다고 이야기된다.
그래서 강렬한 태양 에너지와 닿을 듯 말 듯, 은은한 빛으로 마치 인간의 영혼까지 비추는 듯한 달 에너지의 충만된 기운이 만나는 ‘보름달’의 상징은 절정, 환희, 생성 등과 같은 긍정의 극치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성의 메커니즘 역시 달 에너지의 변화에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에 짐작할 수 있다.
옛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남편이 거처하는 사랑방과 부인이 사용하는 안방이 엄연히 구분돼 있어 서로의 생활 공간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자손을 보기 위한 부부 합방의 예절 또한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척이나 거창했을 것이다.
달빛이 충만한 보름달 뜰때의 부부 합방은 남녀 결합의 극치임과 동시에 새로이 맞이할 후손을 위한 최고의 길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앞뒤가 있듯, 달에 얽힌 사연이 어디 그러한 기쁨의 측면만을 갖추고 있겠는가. 아무래도 여인의 역사는 그러하듯, 소망과 기원을 상징하는 달조차도 여인에게는 가슴 적시는 애절함을 담은 구슬픈 노래로 간직되어 온 예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에 의해 불리워져 오던 노래 가사 하나가 떠오른다.
“달아 노피곰 돋아사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고…….”
라고 시작되어 《정읍사(井邑詞)》라는 곡명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백제 가요로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불려져 왔다. 어느 행상인 아내가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하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이다. 달이 짐으로써 어둠이 내려와 남편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빛, 즉 사랑의 끈이 단절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 미묘한 정서의 작용이 단지 인간 세상에 국한되는 것만 아닌 것 같다.
최근 필자는 그 동안 10여 년에 걸쳐 행해 오고 있는 일종의 ‘망자를 위한 법회’랄 수 있는 구명시식을 무수히 집전해 오면서, 달의 형태는 이미 죽은 영가들의 출현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 여기서 초생달과 함께 만난 영가의 이야기를 일부 소개해 본다.
올해 정월 초, 그러니까 을해년 정월 초사흘 날 자정, 평소 필자와 막역한 사이였던 한 사회 후배가 법당에서 구명시식을 가졌다.
그는 준수한 용모에 실력 또한 뛰어나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엘리트 사원이었다. 그런 만큼 해외 출장도 잦은 편이었다.
그런데 왠지 그의 주변에는 뭔가 꼬이거나 편치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고, 평소 부상도 잦았다. 최근에도 그는 팔에 부상을 입었고, 부인은 발목이 부러지는 등 심상찮은 기색이 확연했다. 더구나 그의 눈에 서려 있는 살기가 꺼림직하게 느껴지는 터였다.
그 무렵 만난 후배의 모습이 유난히 어두운 것이 마음에 걸려 너무 낙심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던 끝에 구명시식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는 돌아가신 세 분의 고모님이 계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법단에 모셔진 영가들을 통해 그 세 분 모두 비명 횡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막내 고모의 애절하게 맺힌 한이 늘 이승의 후손들 주변을 헤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부잣집 외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신랑이 외아들이었던 관계로 시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까닭에 며느리에게 가해지는 시집살이가 매우 고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름달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며느리에 대한 일종의 성학대(?)랄 수 있는 간섭이 무척이나 매웠다.
그러던 중에 견디다 못한 그녀는 무작정 친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되라’고 호통치며 내쫓는 친정 부모를 야속하게여기며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몇 날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당시 학질에 특효약으로 알려진 금계랍이라는 약을 치사량 이상 복용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친정 어머니가 부리나케 찾아왔을 때는 이미 그녀의 몸에 온기가 빠진 뒤였다. 친정 어머니가 왔을 때 이미 죽은 시체의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임신중이었던 그녀 몸속의 태아도 미처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함께 생명을 잃고 말았다.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에는 반드시 한이 남기 마련이다. 때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이 결단력 있는 행위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못할 짓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후 그 후배가 다시 찾아왔다. 그의 사촌형, 즉 막내 고모가 낳은 첫아들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어느 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난 이후 그때까지 꼬이기만 하던 사업이 잘 풀려서 한시름 놓았다는 얘기였다.
그날의 제주였던 나의 후배 역시 구명시식에서 고모님의 영가를 만난 이후 예전과 달리 주변이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같은 날 있었던 또 다른 구명시식의 제주는 유명 방송인 O씨였다. 그녀의 부모형제가 모두 참석한 법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종 흐뭇해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새삼 구명시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날 법단에 나타난 O씨의 조상들 영가 중에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분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경우였다. 바로 자신의 손아래 친척에 의해 호되게 매를 맞아 몇 달을 앓아 누운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 알 수 없는 한 과부의 영혼이 나타나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려는 것이었다. 자신은 바로 그 제주의 할아버지를 살아 생전 남몰래 사모해 오던 같은 마을의 과부라는 것이다. 혼자 청상 과부로 살아가던 자신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 분이 돌아가시자 모든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청상 과부의 기나긴 밤, 희미하게 비치는 조각달은 그녀에게 더욱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 자신도 그를 따라 곧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름없는 과부의 죽음은 아무도 애도하는 이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줄 사람조차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내가 집전하는 구명시식에 염치 불구하고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제사를 잘 지내주겠다는 다짐을 해주자 과부 영가는 감사의 절을 하고는 사라졌다.
천도가 어렵다는 자살한 영혼이 되어, 죽어서도 그 고통을 벗지 못하고 중음신(中陰神)으로 떠돌던 여인의 영가가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구명시식은 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이로써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 흐뭇했다. 구명시식의 진정한 의미는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고 싶어하는 자손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면서,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 인생을 보다 뜻깊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며, 매사에 감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에 보다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한스럽게 죽은 여인의 영가에게 있어 초생달은 간절한 가슴 졸임도 매서운 시어머니에 대한 삭지 않은 분노도,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이승에의 미련도 아닐 것이다. 초생달 뜨는 새벽에 만나 후손들과 더불어 회포를 풀었으니 말이다.
그 영가의 앞날에 보름달 같은 환한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간의 마음으로 흩뿌리고 모으는 것이 어찌 달 하나 뿐이랴.
자연과 우주의 닿을 수 없는 신비와 조화의 세계는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빠징꼬 영가
내가 K사장을 만난 것은 정말로 기연 중에 기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K사장은 C시에서 큰 관광호텔을 경영하는 부자다. 그의 용모는 마치 부처님 같은 후덕한 모습이고 신심도 매우 깊은 신자다. 그는 오래전부터 나의 책을 읽고 나를 알고 있는 W씨와 함께 여러 번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지난 수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뉴욕의 후암정사에서 내내 있었고 한국에는 특별한 만남과 일이 있을 때만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 우연중의 우연이랄까.
내가 물리 치료 센터에서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반색을 하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K사장이었다. 그렇게 나를 만나려고 했던 K사장이 우연히 서울에 와서 물리 치료를 받던 중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K사장은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는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면서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K사장이 나를 그토록 만나고자 하는 이유를 들어본즉슨 도대체 요즘 들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되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날리고, 뜯기고 손해보고 하는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들을 착수하게 될 때에는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결정도 해버린다는 것이다.
K사장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뭔가 액이 끼여 있는 것 같아, 구명시식을 통해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는 무엇인가의 이상한 기운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구명시식에서는 상하노소나 천귀부빈이 없는 바라 나는 K사장의 바람대로 구명시식을 하게 됐다.
결국 구명시식 중 K사장의 느낌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판명됐다. K사장의 뒤에는 웬 청년의 한이 서릿발처럼 내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명시식을 통해 나타난 청년 영가는 ‘그가 빠찡꼬로 벌어들인 돈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벌어들인 것이므로 한푼도 그를 위해 쓸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피를 흘리며 나타난 청년 영가는 K사장에 대한 끝없는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청년 영가의 현시에 대해 K사장은 가슴 아픈 일을 생각해 냈다.
최근 얼마 전에 K사장이 경영하는 관광호텔 빠찡꼬에서 사고가 났는데 소란을 부리던 한 청년이 과실 치사로 죽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청년은 빠찡꼬를 하다 시비가 붙어 소란을 피운 것이었는데, 빠찡꼬 종업원이 말리다가 잘못 넘어뜨려 그런 사고가 난 것이었다.
사망한 청년은 관광호텔의 빠찡꼬를 자주 드나들던 손님으로 자신이 그 동안 빠찡꼬를 하며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다 그 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K사장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청년의 이야기는 도박과 얽힌 문제점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한 청년의 무모한 사행심은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빠찡꼬에 돈을 다 탕진하고, 오기로 그것을 다시 긁어모으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청년의 정신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명시식을 통해 나타난 청년의 한은 단호한 것이었다.
자신을 죽인 종업원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이를 책임지고 있는 K사장의 사업과 가족들에게까지 저질렀던 행동의 보상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우연한 죽음이 결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이없이 수십억 원대의 돈을 나리고, 과실치사를 한 종업원과 K사장의 집안 가족들에게 액운이 그치지 않은 것은 모두가 죽은 청년의 원한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영가가 가지고 있는 원한을 가지지 못하게 하거나 없앨 수는 없다. 이것은 아마도 지구상에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어떤 종교인, 영능력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한을 가진 영가의 원한을 누그러뜨리는 일은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혼의 진무(鎭撫)도 또한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게 큰 진리의 법문과 사랑의 힘에 의한 설득을 통해,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영계에 가서도 원하고 있는 일들을 해줌으로써 그들의 원한을 달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업보는 반드시 받는다.
업보를 받는 것이 자신이 될는지 아니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될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당대에 받지 못하면 자신의 아들딸 대에 가서도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업보는 그대로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슬픔과 불행으로 돌려받는 것이다.K사장에게 내리는 청년의 원한을 내가 모두 다 막아줄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하늘의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할 수가 없다. 남을 다치고 상처주고 슬프게 한 행동에 대한 업보는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종교와 사제들이 이것을 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K사장은 평소에 신앙심이 돈독한 신자였다. 그에게 이렇듯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이 안타까웠다.
구명시식이 끝난 후 K사장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그의 일도 앞으로 잘 풀려 나가리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제부터는 좀 더 좋은 사업으로 전환해 볼 것을 건의하였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베풀 수 있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유익한 사업,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K사장의 새 사업에 기대를 걸어 본다.
서당개의 예언
나의 부인인 능인각 보살은 평생의 반려자이면서, 또한 나의 도반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는 구명시식을 수백 번, 수천 번하는 나를 뒤에서 그림자처럼 뒷바라지하고 있다.
쉽게 하는 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구명시식과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며 사는 남편과 사느라고 그녀도 이제는 꽤 영혼의 안테나가 커진 것을 느낄 때도 있다.
능인각 보살이 나 대신 영적인 느낌을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견한 사실도 있었다.
몇 년 전 미국 뉴저지에 있는 후암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다급하게 능인각 보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운전을 하다가 경미한 정도이지만 접촉 사고를 냈다는 것이었다.
교통 질서가 세계에서 최고로 나쁜 우리 나라에서 운전하는 운전사들이 살기 위해(?) 조심해서 운전을 하고 있듯이, 능인각 보살도 평소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접촉 사고이기는 했지만 교통 사고라는 말에 나는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를 안심시키면서 한 능인각 보살의 말이 걸작이었다.
접촉사고를 내고 차 밖을 나와서 상대편 차와 운전한 사람을 보니까 즉시로
‘이 차가 얼마 후에 무슨 큰 사고를 내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능인각 보살은 영혼 공부를 하며 평생을 살아온 나와 함께 살면서 어느새 번뜩 스치는 예감으로 사람의 운명을 직시하는 ‘감’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도 또한 능인각 보살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마도 그 예언은 맞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번쩍 봤을 때 또는 갑자기 생각나는 영감(靈感)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능인각 보살이 접촉 사고시 앞으로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그 차는 3개월 후, 무지무지하게 큰 충돌사고를 당해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자동차만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그 차를 운전하던 운전사와 또 같이 타고 있던 승객이 한꺼번에 큰 치명상를 입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곡절인가.
능인각 보살과 접촉 사고를 일으킨 S씨는 바로 능인각 말을 믿고, 사고가 난 후부터 그 차를 타지 않아 다행하게도 사고를 면하게 된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크게 벌리던 S씨의 사업은 최근들어 몰락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S씨의 사업이 완전히 끝장이 난 상태라는 결론도 내리고 있었다.
구명시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S씨는 이러한 어려운 입장에서도, 그리고 능인각이 자신의 죽음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명시식하는 것을 꺼렸다.
부인을 비롯한 집안 사람 모두가 독실하게 불교를 신봉하고 있어 구명시식은 불교의 정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종교의 굴레에 얽혀 오히려 해탈할 것도 못하고 구원받을 것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불교 믿는 사람만 잘 살 것 같지만, 이 세상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잘 살고 있고 이슬람 교도도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가 아니고 조상과 자신의 인연을, 자신의 핏줄을 있게 한 근본 원인에 대한 예의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라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고개를 가로젓던 모씨는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기가 직접 구명시식을 해봐야겠다고 나섰으며, 여러 가지 의식을 집전하는데 필요한 것들까지 스스로 준비하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구명시식을 해보니 내가 모씨를 처음 봤을 때의 예감이 들어맞았다.
그의 부모님은 6.25 전쟁 당시 지방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잔인하게 학살을 당하셔서 여러 명의 다른 분들과 함께 버려진 시체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들을 위해 그 동안 한번도 제대로 된 제사를 모시지 못했으며 부모님 영혼에 대한 천도도 못했고, 후손으로서 아무런 책임없이 살아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명시식을 하면서 나타나신 부모님의 영혼을 뵙고 모씨가 느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완전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영혼을 뵌 감격과 함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위 어떤 것만이 정법이라는 관념이 깨진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모씨의 구명시식을 하면서 모씨의 부모님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신 1백 명에 가까운 다른 분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천도를 했다.
한 가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구명시식을 하면서 나타나는 영혼들의 경우 솔직히 말해 금강경, 지장경 염불외는 소리를 알아듣고 무슨 훌륭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영혼들은 한 분도 안 계시다는 것이다.
물론 엄숙한 분위기에서 깊은 뜻의 종교적 경문을 읽고 있구나하는 것은 대부분의 영혼들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속셀ㄹ 버리고 입산한 전문 프로 불교인들이 험한 행자 생활을 거쳐 득도를 하고 3년의 강원생활, 거기에다 경반 스님 2년,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5년, 10년씩 공부하고도 뜻을 통하지 못하는 깊은 경의 세계를 어떻게 밥 먹고 사느라고 바빴던 속세인들이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어려운 한문으로 쓰여진 경문이 과연 제대로 종교의 궁극적인 뜻을 찾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모두가 다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이 이야기하면서 두꺼운 옥편을 옆에 놓고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종교를 설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고 소크라테스도,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인생의 사는 이야기를 아주 간단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삶과 죽음의 큰 강을 건너는데 이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그 분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공자는 ‘내가 살아있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다음의 세계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결국 그 분들은 지극히 쉬운 ‘주어진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바른 생활 공부’를 말씀하신 것이다.
구명시식은 불교의 한 의식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스님들이 구명시식을 무당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물가에 한쪽이 떨어져 나가 볼품없는 바가지가 있으면 그렇게 썩 물맛이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나마 금이 간 바가지라도 없으면 물은 어떻게 마실 것인가.
불교, 기독교, 카톨릭이 이 세상을 모두 완전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 가능하며 그 종교의 사명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문제, 인연의 문제, 원한과 축복의 문제 등은 결코 지금의 종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구명시식이 일반인들에게는 지금 현재 무당이 하는 의식같이 생각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많은 과학의 박전이 있게 되면 오히려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종교 행위였다는 것이 밝혀질 때가 올 것으로 믿고 있다.
미완(未完)의 구명시식
S는 28세의 미혼 여성이었다.
지난 해 12월 3일, 교통 사고로 인해 그녀는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막내 남동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나의 책을 읽고 나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도 기막힌 그 현실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녀는 아는 스님의 권유로 100일 지장 기도를 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S의 식구는 어머니와 1남 3녀 등 5식구였다. 아버지는 S가 초등학교 3학년, 그녀의 동생이 7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갖은 고생 다 하시며 ‘나 하나 희생해 자식만 잘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어머니의 각오 덕분에 여태껏 살아왔던 것이다.
S의 큰 언니, 작은 언니는 시집가고 어머니와 남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산지 4~5년가량 되었다고 한다.
S는 밤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동생은 대학을 다니며 누나의 운전사 노릇을 해주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동생을 너무 사랑하여 다른 건 몰라도 ‘돈 많이 벌어 어머니 편안히 모시고 동생이 대학까지 잘 다니도록 해줘야지’하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또 동생도 그런 누나를 보며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데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못 간 누나가 안타깝다’며 항상 안스러워했다. 그래서 자기가 대학만 졸업하면 열심히 사업을 해서 큰 기업가가 되어 어머니와 누나들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단다.
대학 다니는 도중에도 기업가가 되려면 밑바닥부터 다 해보아야 한다며 막노동, 우유배달, 전기공 등 안 해 본 일이 없이 닥치는 대로 바쁘게 살면서 해외 여행도 다녀왔다.
방학 동안 새벽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일해 번 돈으로 해외에 나가 많은 것을 봐야 큰 일을 할 수 있다며 동남아, 유럽으로 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것이다.
그런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먹고 입는 것은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매일 라면을 사 먹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며 돈을 모아 주식에도 조금 투자해 놓았을 정도로 알뜰한 청년이었다.
이처럼 자기 자신한테 돈 쓰는 것은 너무 아까워 못하면서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한테는 돈을 모아 조그마한 것이라도 선물하는 등 선행을 해왔다.
그러던 작년 11월 28일이었다.
S는 속초에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먼 길이라 지리도 잘 모르고 하여, 그녀의 남자 친구가 같이 가려는데 동생이 시간을 내서 같이 따라가 준다고 했다.
여기서 그녀의 남자 친구 얘기를 좀 해야겠다.
2년 전쯤, S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고아원 등에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네 모임에 나오라고 하여 거기에 나가면서 알게 된 친구인데 시일이 지나면서 S에게 자꾸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집에서 이제 나이도 찼으니 시집갈 생각도 해야 된다고 하길래, 자신의 신랑감으로 점차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사람은 참 착하고 성실한데, 집안이 사업하다 망한지 얼마 안 되어 생활이 어렵고 아버지도 병환으로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S는 정도 들만큼 들었고 다른 것 때문이라면 모르지만 경제적인 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한다는 것은 너무 야속한 일이 아닌가 하여, 더 상황을 보며 그냥 친구로 지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들이 완강히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궁합을 봤더니 ‘둘이 사이가 좋으면 누구 하나가 죽는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S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 그리고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는 죽어도 그러게 못한다는 것이었다. 돈이야 벌 자신이 있고, 자기는 S를 너무 사랑하는데 며칠 살다 죽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다 죽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은 일단 보류해 놓고 친구처럼 지내자고 합의한 후 만나오던 중 그 속초 공연을 간 것이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S의 동생이 운전을 하고 오던 중이었다.
중간 휴게실에서 야참을 먹고 S가 화장실에 갔다오니,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차 열쇠를 그녀의 남자친구가 들고 운전석으로 가는 것이었다.
동생은 뒷좌석에 누워 자겠다고 했고, S는 조수석에 앉아 서우로 거의 다 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덤프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것이 아닌가!
S가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그런데 동생과 S의 남자 친구는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S는 오른팔이 부러지고 전치 6주의 타박상을 입고, 멀쩡하던 건장한 청년 둘이 죽은 것이다.
한 순간에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기막히고 처량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자식들 때문에 목숨을 끊지 못하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또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여태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S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 친구가 자꾸 원망스럽게 생각되었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헤어졌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테고,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를 빨리 피했더라면 자신의 동생은 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궁합이 안 좋아 누구하나를 죽게 한다면 자신을 데려가야지 왜 하필 하나뿐인 어머니의 아들을, 그리고 하나뿐인 남동생을 데리고 가서 자신의 집안을 완전히 쑥대밭을 만드는 것인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고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면서도 자꾸 원망스러운 마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 어머니와 S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 동생이 좋아하던 절에 평생 명가를 해놓고 이 죄 많은 어리석은 누나를 용서해 달라고 100일 기도를 올리던 중 나의 얘기를 듣고 책을 읽었다고 했다.
동생이 간 세상이 이 세상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곳이라니 조금은 위로를 받고 있지만, 꼭 자기가 만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남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일 때문에 속초에 따라간 것이고, 그녀의 남자 친구가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S는 도저히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꿈 많고 야망이 큰, 건강한 동생을 자기가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100일 기도를 정성껏 드리면 현몽을 한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시기에, 퇴원한 후 30일째 기도를 드렸는데 아직 단 한 번도 어머니와 그녀의 꿈에 보이질 않았단다. 동생이 간 지 벌써 많은 달이 갔지만 S는 동생이 보고 싶어 죽겠다고 했다.
동생을 보고 ‘이 누나를 용서해 달라’는 한마디만 하면, 그래도 남은 삶을 동생 영혼을 달래가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에게 편지를 한 것이었다. 오른팔이 다 낫지 않아 글씨가 엉망인데도 불구하고 정성껏 석장에 걸쳐서 쓴 편지였다.
그 후 나는 법당으로 찾아온 S를 만날 수 있었다.
몹시 자책하는 그녀를 보니 내 가슴도 갈갈이 찢기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는 노래 부르지 않겠다’고 울부짖는 S를 잘 달래주었다. 그리고 이야기하였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도 그 물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사람이 불에 타 죽어도 그 불을 때지 않을 수 없으며, 자동차 사고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그 차를 우리는 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노래를 부르다가 그토록 사랑하던 동생을 잃어,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것은 죽은 동생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열심히 노래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자, 지금 당장 동생에게 노래를 한 곡 불러주세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그녀는 나의 간절한 소망에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거창한 구명시식보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동생에게 부르는 노래 한 곡조가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았다.
구명시식을 통해 그녀의 아픈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노래로 크게 성공한 후 동생을 향한 구명시식을 정성껏 하기로 S와 나는 다짐하였다.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얼굴이 한층 밝아진 듯했다.
서릿발같은 칼날 위에서 추는 춤
불교의 구명시식은 지극히 어려운 의식이다.
일반인들은 구명시식을 그저 재미로도 볼 수 있다. 무당이 굿을 하게 되면 동네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재미있게 구경하는 것과 같다. 보는 사람들은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
어떤 책임감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그러나 실제 굿을 하는 무당들은 정말 죽음과 삶의 간극(間隙)을 왔다갔다 한다.
사실 인간의 영혼을 부르고 이를 씻고 위로하는 불교의 구명시식도 이러한 심각성에 있어서 비슷한 면이 있다.
나는 구명시식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구명시식의 절대 절명의 순간들을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구명시식은 특히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보통 구명시식을 하게 될 때 나를 잘 알고, 또 나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한 사람은 나의 아내인 능인각 보살이고, 그리고 나의 어머님이신 무위심 보살, 또 다른 분은 누님이신 보덕궁 보살이시다.
이분들은 내가 구명시식을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자리를 지키면서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신다. 그리고 또 창을 하는 김 보살과 염불을 잘 하는 최 법사 등이 의식을 도와주실 때가 많다.
내가 구명시식을 할 때 나의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주로 나의 혈육과 지기(知己) 등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것은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해물을 따고 작업을 하는 잠수부들이 산소공급기를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인물들에게 맡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명시식은 실제로 깊은 바다에 잠수하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오감(五感)을 가지고 사는 현상계를 벗어나서 깊은 심연을 가진 영혼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명시식을 집전하는 사제들이 한 순간 잘못하게 되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가 있다. 산소 호흡기를 작동하는 조수의 잘못이 잠수부의 생명을 앗아가듯, 구명시식을 돕는 조력자들의 한 순간 잘못으로 의식을 집전하는 사제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구명시식은 정말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위험한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구명시식을 하는 도중에 나는 큰일을 당할 뻔했다. 바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질환으로 소박을 맞아 시집에서 쫓겨났다가 자살한 어느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구명시식을 하는 중이었다.
구명시식을 하는 동안 집전하는 사제는 시작하는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언제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아니 실제는 구명시식을 한다고 날짜가 정해지게 되면 그때부터 몸이 먼저 알고 긴장을 하게 되며, 구명시식을 한 후에는 당분간 그러한 긴장의 후유증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 구명시식을 하는 도중, 내가 구명시식을 할 때 주위에 앉아서 나를 도와준다고 믿었던 조력자들이 먼저 큰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폐질환으로 소박을 맞고 쫓겨나서 자살의 길을 택한 그 여인의 영혼은 결코 시집 식구들이 믿는 것과 같이 폐결핵이 아니고 단순한 폐렴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그 여인의 영혼을 초령하고 영기를 통하고 있는 사이에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벌레가 나타난 것까지는 좋았다. 내가 구명시식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를 도와주는 조력자들은 그 벌레를 얌전히 쫓거나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설사 뱀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어머니인 무위심 보살이 갑작스럽게 안 하던 행동을 보이며 벌레를 잡으려고 와락 달려든 것이다. 벌레가 나타난 순간 무위심 보살에게 지박령이 빙의하여 호들갑을 떨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의식을 모으느냐 흐트러트리느냐에 따라 나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었다. 소란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으면서 힘없이 검디 검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 순간 입에서는 붉은 피가 ‘억’하고 쏟아져 나왔다(불을 꺼놓고 하기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나는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을 잃어버리면서 죽음의 문턱 끝까지 밀려가고 말았다.
나는 아주 쓰러질 뻔했으나 이를 악물고 끝내 간신히 구명시식을 하였다. 나의 생명이 허무하게 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심한 각혈을 했을 뿐 정신적인 무리는 가해지지 않았다. 미치거나 죽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구명시식이 끝난 후 나중에 살펴보니 무위심 보살의 옆구리에는 발길질로 심하게 채인 것과 같이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내가 피를 토하면서 원망의 영기를 발산하자 그것이 무위심 보살의 몸에 맞아 난 상처였다.
또한 나의 누님 보덕궁 보살의 멀쩡한 눈도 눈두덩이가 얻어맞은 듯이 부풀어 있었다. 당시 보덕궁 보살은 무위심 보살이 벌레를 잡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서릿발 같은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구명시식이 그렇게 믿었던 조력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생명이 영혼들의 영력에 의해 왔다갔다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때 만약 한 집만 구명시식을 했다면 당했을 것이다. 다른 여러 집이 같이 구명시식을 해서 다른 영가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은 불문율이다.
어떤 재벌이나 권력가들이 자신들 집안의 내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여 자신의 조상들 구명시식을 혼자서만 하자고 유혹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와 같이 한 집만 하다보면 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한 구명시식은 몇 푼의 돈 때문에 하는 의식도 아니다.
실제로는 구명시식을 하고 있는 나도 당장 내일 아침이면 일을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내가 왜 또 구명시식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바로 내가 그 구명시식을 통해 세상과 역사에 한 가닥 이바지를 하라고 하는 천지신명의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한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함이다.
빚쟁이는 죽어서도 쫓아다닌다
한국의 심령학회 관계자인 Y여사는 심령학회에서 흔치 않은 여성 인사 중의 한 분이다.
끈기가 있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접근할 수 없는 분야이기에 심령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성들이지만 Y여사의 활동은 결코 남성들 못지 않게 열심이다.
구명시식을 요청하는 자세에도 여러 가지 영적인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의 예절이 있었으며, 또한 이러한 구명시식을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영적 곡절을 풀어보려는 투명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Y여사의 구명시식을 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Y여사가 만나고자 하는 아버님의 영가는 아니었다.
바로 Y여사 아버님의 친구 되시는 분께서 먼저 나타나신 것이었다. 그 영가는 자신은 Y여사 아버님과 사업 관계상 친구로서 함께 충무 인근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시(顯示)하신 영가 분은 나타나시자마자 다음과 같이 심각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3백만원 정도의 사업 자금을 빌렸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이 돈을 정리하지 못했으니 네가 대신 갚아 달라.”
구명시식에 참석했던 Y여사님과 관계자들은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 분의 영가로서는 자못 심각한 문제였다.
한마디로 빌려준 돈을 정확히 탕감하지 못한다면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구명시식에 참석한 Y여사로서는 사실 여부를 알아보고, 만약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집안 식구나 친척들을 통해 이 돈을 변상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Y여사님을 모시고한 구명시식에서 청하지 않은 영가가 불현듯 나타나 당혹감을 겪었으나, 결국 이것은 현상계의 모든 것이 영혼의 세계에까지 정확히 투영되어있다는 것을 확증적으로 밝혀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현생을 살되, 남에게 진 악한 인연과 선한 인연이 그대로 영혼의 세계에도 투영되는 것과 동시에 남에게 부채를 진 것까지도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까지 쫓아다니는 빚쟁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와 영혼의 세계와의 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영혼의 세계에까지 빚쟁이가 쫓아다니는 예를 또 하나 들어 보자.
얼마 전에 사업을 하시는 K씨를 모시고 구명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K씨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솔직히 말해 ‘무지무지하게 장사가 안되는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K씨는 규모가 큰 가구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최근들어 주위에 공사장이 생겨서인지 모르지만, 손님도 끊기고 특히 물건을 가져간 사람들이 일단 물건을 가져가기만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물건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헛돈 버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케이스였다. 이러한 K사장의 난감한 문제는 결국 구명시식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알고 보니 K사장의 아버지는 옛날에 고향 마을주변에서 알아주는 노름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손가락 자르면 발가락으로 화투장 잡는다’고 노름으로 빚을 지고도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도박판에 끼여들곤 했다.
집 날리고 논밭 다 날려도 못 말리는 것이 노름이라고 결국 K사장의 아버지는 온 집안 다 날리고 남에게 빌린 돈을 갚지도 않고 한밤중에 도망을 쳐 버린 것이다.
K사장의 아버지가 벌려 놓고 해결하지 못한 좋지 않은 인연의 업이 자신의 후손을 통해 현생에 남아 반드시 탕감을 시키고야 마는 것이다. 더구나 구명시식을 하는 동안 K씨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K씨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준 빚쟁이들이 떼거리로 몰려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K씨의 아버지가 빌려가 갚지 않은 돈에 대해 한을 가지고 있었다.
K씨의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해서 돈을 빌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아까운 법이다. 더구나 노름하느라고 빌린 돈이 실제 돈을 꿔준 집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상급학교 진학 등록금인지 생명줄인 전답 마련 자금인지 그것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게 영혼의 세계에서까지 잊지 않고 쫓아다니는 것을 보면 빌려준 돈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노름에 미친 사람들은 돈을 계산하는 기준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노름을 하게 되면 돈이 얼마나 귀중하고 또 벌려면 얼마나 노력을 들여야 하고 애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념이 없어진다.
또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름에 미친 사람은 마누라까지 팔아먹으려고 하며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다’ ‘누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노름자금을 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친구의 신용 카드를 훔쳐 돈을 빼내 쓰거나 아니면 남의 집 담을 넘어 금고를 털게 되는 등 막판까지 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름에 미친 사람들이 간단한 ‘0’자가 몇 개라는 식으로 계산하는 돈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생명과도 같이 귀중한 돈’일 수도 있다.
K사장의 아버님을 구명시식하는 도중에 나타난 영가들은 바로 그러한 분노를 가지고 계셨다.
K사장이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하고 장사를 해도 돈을 벌지 못하고 매일 남에게 뜯기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좋지 않은 인연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혼의 세계는 절대로 작용․반작용의 가감이 없다. 바로 있는 그대로를 반영할 따름이다.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면 누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누가 그리 못 지내고 있는 것을 본다면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현세에서 자신이 ‘유리같이 맑은 사람’이라고 자신하던 사람들이 어두움 속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그 놀라운 장면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역전의 오르내림을 심하게 겪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예가 나와 같은 성직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생에서와 달리 영혼의 세계에서 밝은 광명속에서 사는 영가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역사를 위해 정정당당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영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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