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시원 태백산 밤풍경]
문수봉 산줄기 걷다 보면 벅차오르는 감동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깊은 밤 천제단에는 신의 시간이 흐른다. 천제단에서 별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신년에는 민족 시원이 흐르는 태백산이 좋다. 예부터 태백산은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구한말 민족 수난기에 접어들자 하늘과 산신에게 지내던 태백산 제사의 대상이 단군으로 바뀐다. 어둑새벽 길을 나서 천제단 일출에 도전해보자. 찬란하고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무당할미처럼 간절하게 소원을 빌어보자.
겨울 태백산을 찾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펄펄 눈 내리는 밤, 태백행 막차에 몸을 싣는다. 펑펑 내리는 눈 맞으며 천제단에 오르면 시나브로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해가 뜬다. 따스운 햇살 받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눈부신 무주공산 설원에 눕는다. 깔깔 웃는다….
밤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맛
12월 중순, 시나리오와 비슷한 일기예보가 나왔다. 설레는 마음에 동행을 구했지만 실패. 여러 가지 걸리는 일이 많아 패스. 그리고 다시 때를 기다렸다. 1월 초순, 지른 동계침낭이 도착하는 날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떠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배낭에 침낭을 쑤셔 넣고 밤 11시 25분 태백행 막차에 몸을 싣는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막차 타는 심정은 자못 비장하다. 강원도에 내린 눈은 밤에 그쳤다. 비록 눈은 없지만, 기차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 어느새 태백역이다. 역을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매서운 추위가 덮친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유일사 입구에 내린다.
딸각! 헤드랜턴을 켜자 눈길이 빛난다. 뽀득, 아이젠이 눈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미 한 무리 사람이 지나가 신설을 밟는 행운은 놓쳤다. 갈림길을 지나면 낙엽송 지대를 통과하고 널찍한 임도가 이어진다. 산길에는 뽀득빠득, 눈 밟는 소리와 허연 입김 내뿜는 자기 숨소리로 가득하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마다 랜턴을 켠 별들이 운행하면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유일사를 지나면 산등성이에 올라붙는다. 한동안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면 주목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장군봉 아래 주목 군락지에 들어선다. 좋은 자리를 잡고 헤드랜턴을 끈다. 어둠과 별빛이 동시에 밀려온다. 주목과 눈, 어둠과 별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신성하면서도 환상적이다.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주목 아래 아예 드러눕는다.
주목들이 하늘을 향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켠다. 온몸을 벌린다. 몸을 부르르 떨면 가지마다 별꽃이 핀다. 별꽃은 주목이 하늘과 내통하는 신호다. 태백산을 떠도는 무당할미와 순례자의 간절한 염원, 천제단에 올랐던 수많은 ‘산꾼’의 소원이 주목을 타고 하늘로 전해진다. 한 가지 소원을 접수할 때마다 반짝, 별은 빛난다.
팔 벌려 하늘과 내통하는 주목
주목 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이 장군봉이다. 태백산은 1566.7m 장군봉이 최고봉이지만, 그 옆 1560.6m 천제단이 주봉 구실을 한다. 조망이 좋고 태백산 성역인 천제단이 있기 때문이다. 한밤 천제단 일대는 신의 시간이 흐르듯 고요하다. UFO(미확인비행물체)처럼 생긴 제단 위로 유독 별이 총총하다. 마치 제단에서 수많은 별을 쏘아올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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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동쪽 하늘 어둠이 허물어진다. 천제단은 이미 무당할미와 순례자가 진을 쳤고 산꾼도 제법 자리 잡았다. 태백산 일출은 유명하지만, 유명한 만큼 드라마틱한 장면이 펼쳐지는 건 아니다. 해는 문수봉 뒤 살짝 낀 구름 위로 다소 밋밋하게 떠올랐다. 일출을 기다리던 사람 모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해가 두둥실 떠오르자 복장이 부실한 한 무리 선남선녀가 천제단 앞에서 노래와 율동을 한다. 투명한 해를 받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태백 청년들. 그들 덕분에 태백산 일출이 맑게 느껴진다.
해가 뜨면 깨어나는 산하를 감상할 차례. 찬란한 빛을 받으며 첩첩 산줄기가 꿈틀거린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노라면 사방에서 산맥이 나를 향해 말 달려오는 듯하다. 우리 땅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동, 선인은 이것을 호연지기라 불렀다.
대부분 사람은 천제단에서 망경사를 거쳐 당골로 하산한다. 하지만 문수봉까지 자박자박 설원 산등성이를 밟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앞쪽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문수봉으로, 자세히 보면 정상 돌탑이 보인다. 문수봉 이정표를 따라 산등성이를 따르면 천제단 하단(下壇)으로 내려선다. 태백산 제단은 상단 격인 장군봉 제단과 천제단, 하단으로 이뤄졌다. 하단 주변은 주목이 무성하고 지형적으로 바람이 없는 평온한 공간이다.
하단을 지나면 갈림길. 문수봉과 백두대간이 갈린다. 문수봉 방향이 지름길이고, 백두대간 방향은 부쇠봉을 거쳐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조금 돌더라도 백두대간 방향으로 나아가면 앞쪽으로 첩첩 산줄기가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유독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하늘에 마루금을 그리는 것이 보인다. 그곳이 소백산이다. 예부터 소백산에서 태백산까지 구간을 양백지간이라 불렀다.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산세가 일품이다.
부쇠봉은 문수봉과 백두대간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부쇠봉 아래 널찍한 헬기장은 백패커에게는 야영장소로 널리 이용된다. 부쇠봉을 내려오면 문수봉까지는 걷기 좋은 산등성이가 이어진다. 여기에 자작나뭇과의 사스래나무가 군락으로 자란다. 강원도 추운 땅에만 자생하는 귀한 나무다. 햇빛에 반짝 빛나는 허연 나뭇가지들이 싱그럽다. 길섶 나무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문수봉으로 이어진 조붓한 눈길
문수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 잠시 배낭을 내려놓는다. 앉을 것도 없이 그대로 눈이불에 눕는다. 시퍼런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속이 후련해 깔깔 웃음이 터진다. 엉덩이 털고 일어나 끙끙거리며 비탈을 오르면 대망의 문수봉이다. 문수봉은 정상 일대가 검은 바위로 가득 차 신비롭다. 앞쪽으로 그동안 걸어온 장군봉~천제단~부쇠봉이 한눈에 잡힌다. 천제단과 장군봉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보이고, 두 봉우리에 쌓은 제단은 영락없이 젖꼭지다. 태백산은 두 가슴으로 배달민족을 길러냈다.
하염없이 겨울 태백산을 바라보다 하산 길에 든다. 문수봉을 내려오면 갈림길. 곧장 당골로 내려가는 길과 소문수봉을 거쳐 가는 길로 갈린다. 소문수봉을 거치는 길이 편하고 걷기도 수월하다. 소문수봉은 아담해 마음이 편하다. 마지막으로 함백산과 태백 시내 조망을 즐기다 하산한다. 산등성이를 계속 따르던 산길이 슬그머니 고도를 내린다. 구불구불 울창한 숲길을 걷는 맛이 괜찮다. 울창한 낙엽송 지대를 통과하면 눈꽃축제로 시끌벅적한 당골이다. 버스를 타고 태백역으로 돌아가는 길, 내 안에 가득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몸이 훈훈하다.
여행정보
● 태백산 산길 가이드
태백산은 유일사~주목 군락지~장군봉~천제단~문수봉~소문수봉~당골 코스가 좋다. 10.8km로 5시간쯤 걸린다. 아침 일찍 서둘러 천제단에서 일출을 맞는다.
● 교통
서울 청량리역→강원 태백역은 07:07~23:25, 1일 8회 운행.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태백시버스터미널은 06:00~23:00, 수시로 다닌다. 태백역→유일사는 07:00~22:15, 1일 10회 다닌다. 당골행은 07:38~22:15, 수시로 다닌다.
● 맛집
태백은 연탄불에 구워 먹는 한우가 별미다. 질 좋은 갈빗살과 주물럭을 연탄불에 구워 더 맛있다. 태성실비식당(033-552-5287)과 태백한우골(033-554-4599)이 유명하다.
● 숙소
태백시청에서 운영하는 당골 태백산민박촌(033-553-7440~1)이 저렴하고 시설도 좋다. 숲으로 둘러싸인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82-7440)은 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산 백운대 클래식 코스 바위美 자랑
북한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왼쪽 불암산 위로 분홍 띠가 펼쳐져 있다.
수도 서울에 사는 것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북한산이 있어서다. 마음만 먹으면 출근 전, 퇴근 후 아무 때나 훌쩍 다녀올 수 있다. 대도시에 솟은 큰 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래서 북한산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북한산은 우리 가까이 있어 오히려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 매력은 미끈하게 잘 빠진 화강암 봉우리에 있다. 836.5m 높이의 최고봉 백운대, 암벽 등반의 메카 인수봉, 무속인의 성지 보현봉,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순수비를 세운 비봉(碑峰) 등 총 32개 봉우리가 저마다 독특한 바위미를 자랑한다.
북한산은 서울 강북, 성북, 종로, 서대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걸쳐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서울의 수호신이자 상징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예부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치(추가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과 더불어 12종산(宗山) 가운데 하나로 숭배됐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삼각뿔
북한산은 조선시대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양이 수도로 결정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한양의 주변 산세는 남쪽 관악산이 경복궁을 덮칠 기세였다. 주산인 북악산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 뒤로 웅혼한 기상의 북한산이 북악산을 보호하면서 관악산 기운을 막아내는 형국이다. 결국 정도전, 하륜, 무악대사 등 풍수지리를 겸비한 당대 최고 학자와 승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북한산을 진산으로 지금의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서게 된다.
이름은 삼국시대 부아악(負兒岳)을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 1960~70년대까지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본래 한산(漢山)은 서울의 옛 지명이고 북한산은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되면서 북한산이란 이름으로 조금씩 불리다 83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북한산으로 굳어졌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혹은 노적봉) 세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삼각뿔 형상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추천하는 코스는 우이동 들머리로 정상을 오르는 길. 거미줄처럼 많은 북한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코스다. 이정표가 확실하고 중간에 경찰구조대와 백운산장이 자리한다. 야경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 코스이기도 하다. 출발점은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2.2㎞ 떨어진 도선사 광장. 이곳은 도선사와 등산로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광장 가운데서 미소석가불이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있다. 석가불 뒤편에 큰 화장실이 있고, 그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여기서 탄탄한 돌계단을 30분쯤 오르면 깔딱고개에 이른다. 이곳에 도착하면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고 해서 깔딱고개다. 깔딱고개는 인수봉과 인사를 나누는 장소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인수봉이 느닷없이 나타나고, 그 모습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공룡 어금니처럼 생긴 804m 높이의 화강암 덩어리가 참으로 경이롭다. 인수봉은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메카로, 많은 산악인이 이곳을 오르며 호연지기를 기른다.
인수봉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왼쪽으로 굽어진 길을 따라가면 인수야영장이다. 북한산의 유일한 야영장으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꾼’이 주로 이용한다. 인수야영장을 지나면 경찰구조대와 인수암이 마주보고 있다. 그늘져 미끄러운 계곡 길을 15분쯤 더 오르면 백운산장에 닿는다.
인수봉과 백운대가 올려다 보이는 백운산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장이다. 돌로 쌓은 외관이 제법 근사하고, ‘白雲山莊’ 현판이 예사롭지 않다. 현판 글씨는 산장 단골손님이던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작품이다. 산장은 현재 이현엽(84), 김금자(76) 부부가 지키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나 산장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산장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산에 들어가 기도하던 이해문 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뒤 방 한 칸짜리 작은 산장을 지었다. 산장지기 부부는 정이 참 많은 사람들이다. 수많은 조난자의 목숨을 구했다. 김씨가 말아준 뜨끈한 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故 손기정 선생의 ‘白雲山莊’ 현판
백운산장에서 다시 10분쯤 급경사를 오르면 북한산성 위문이다. 여기서 오른쪽 길이 백운대 방향이다. 계단이 끝나면 철재 난간을 잡고 오르는데, 여기서 바라본 백운대의 풍만한 바위미가 일품이다. 암벽을 기다시피 10분쯤 오르면 대망의 백운대 정상에 올라선다. 앞쪽으로 인수봉이 발아래 놓이고, 그 뒤로 도봉산 산등성이가 활짝 펼쳐진다. 서울에서 이처럼 역동적인 산악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오른쪽 건너편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펼쳐지고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일대 아파트가 빼곡히 눈에 들어온다.
정상 직전에는 펑퍼짐한 마당바위가 있어 주저앉아 쉬기 좋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배낭을 풀어놓고 점심을 먹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도심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시 위문으로 내려와 문을 통과하면 급경사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좀 내려가면 왼쪽으로 용암문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만경대를 우회하는 길로 산악인은 ‘낭만길’이라 부른다. 수려한 암봉인 만경대의 7~8부 산등성이를 타고 돌기에 풍광이 좋다. 길이 응달져 미끄러운 것이 흠. 철재 난간을 잡고 암릉을 이리저리 타고 넘으면 용암문에 이른다.
‘낭만길’ 거쳐 도선사로 하산
용암문에서 계속 산등성이를 따르면 대동문과 대남문을 거쳐 비봉까지 갈 수 있다. 도선사 쪽으로 하산하려면 용암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동안 급경사를 이루는 돌계단을 내려오면 길이 다시 순해진다. 사찰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왼쪽에 도선사를 끼고 빙 둘러 내려오면 사찰 안으로 들어간다.
도선사는 862년 신라 말기 도선이 창건한 고찰이다. 경내에서 볼만한 것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세음보살상. 도선이 조각했다고 전해지며 높이가 8.43m나 된다. 영험하다는 이야기가 내려와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도선사를 나와 출발했던 도선사 광장에 이르면서 산행이 마무리된다.
여행정보
● 북한산 산길 가이드
코스는 도선사 광장→깔딱고개→백운산장→백운대→위문→낭만길→용암문→도선사 광장의 원점회귀 코스. 거리는 5km로 3시간쯤 걸린다. 어둑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정상에서 야경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 교통
서울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로 나와 120번 또는 15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에서 내린다. 버스 종점에서 2.2km 떨어진 도선사 광장까지는 걷거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은 도선사 광장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 맛집
백운산장(02-993-3611)의 잔치국수, 두부김치, 동동주가 별미다. 산장지기 부부의 훈훈한 정은 덤이다. 우이동의 원석이네식당(02-906-4059)은 단골 ‘산꾼’이 많은 집이다. 생선조림이 들어간 푸짐한 밑반찬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전문 메뉴는 홍어와 찌개류다. 우리콩순두부(02-995-5918)는 우이동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파주 콩밭에서 직접 재배한 콩을 사용한다.
야생화 군락지와 북배 해안 경치 장관
꿩의바람꽃 군락지를 걷는 풍도 꽃길 탐방객들.
풍도는 경기 안산시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넓이 1.84km2, 해안선 길이 5km,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쯤 떨어져 있다. 이름은 바람섬(風島)을 떠올리기 쉽지만, 예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불렀다. 청일전쟁 때 이곳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승리한 일본이 이 섬 이름을 풍도(豊島)로 적고, 그 뒤 우리 문헌에도 그대로 표기돼 굳어졌다.
풍도는 수산자원이 풍부하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섬 주변에 갯벌이 없는 까닭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겨울 몇 달 동안 인근 섬으로 이주해 수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해야 했다. 풍도의 풍요로움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후망산(175m) 일대를 화려하게 수놓는 야생화가 그것이다.
풍도 야생화는 자생지가 넓고 개체수가 많아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오직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 2종이나 된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 그 주인공이다. 풍도 야생화 트레킹은 마을 뒤편의 은행나무에서 산길로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후망산 야생화 군락지를 감상하고, 군부대를 지나 풍도대극 군락지와 바위가 아름다운 북배를 거쳐 해안을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좋다.
아기곰처럼 귀여운 가지복수초
풍도에는 마을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남쪽 육지를 바라본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담벼락에 물고기, 문어, 조개 등이 그려져 있다. 그 안에 손바닥만한 건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여기가 대남초교 풍도분교다. 학교 역사가 무려 80년이다. 정문 옆 알림판에 아이가 그린 듯한 ‘입학 축하’ 그림이 붙어 있다. 알고 보니, 올해 3년 만에 입학식이 열렸다고 한다. 입학생은 1명. 그 덕에 풍도분교의 전교생은 2명이 됐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몹시 낡았다. 하지만 2012년 8월 ‘2012 경기도 서해 섬 관광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풍도에 물들다’ 프로젝트를 진행해 벽화, 조형물 등이 세워지면서 조금 밝아졌다. 물고기가 그려진 골목길을 휘돌아 산비탈을 오른다. 동무재에 올라서자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핥는다. 앞쪽으로 ‘인조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400년 묵은 이 은행나무는 이괄의 난을 피해 풍도로 피난 온 인조가 섬에 머문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어수거목(御手巨木)이라고 부르며 풍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지나는 배는 이 은행나무를 보고 풍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노란 은행잎이 절정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나무 아래 은행나무샘이 있다. 은행나무가 수맥을 끌어당겨 만든 특이한 샘으로, 주변 여러 섬 가운데 물맛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샘에서 넘친 물이 은행나무 앞을 늪처럼 만들었다. 그곳을 건너면 산길이 시작된다.
바람의 여신 아네모네
후망산에서 가장 먼저 만난 꽃은 복수초다. 우리나라에는 복수초가 4종 산다. 주로 제주에 자생하는 세복수초, 경기 일대 높은 산에서 자라는 애기복수초, 복수초속의 대표 식물 복수초, 가지가 여러 개로 분지되는 가지복수초 등이다. 풍도에서 유명한 복수초는 가지복수초로 꽃이 크고 색이 진하다. 특히 꽃 아래에 복슬복슬 자라난 진초록 잎과 가지가 노란 꽃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곳 복수초는 아기곰처럼 귀엽다. 복수초 다음은 노루귀다. 분홍색 노루귀와 흰색 노루귀가 번갈아가며 나타나 특유의 솜털을 자랑한다.
계속 산길을 따르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꽃사진을 찍기 위해서지만, 마치 경이로운 존재를 알현하려는 자세처럼 보인다. 꽃사진을 찍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꽃 주변에 있는 낙엽을 모두 치우는 경우가 많은데, 꽃에게 낙엽은 이불 같은 존재다. 이불을 치우면 꽃이 얼어 죽거나 피지 않을 수도 있다. 꽃사진보다 꽃 사랑이 먼저다.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면 풍도바람꽃을 볼 차례다. 철조망 안으로 들어서면 눈부시게 흰 바람꽃이 그득하다. 여리고 고운 바람꽃 일가에는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변산바람꽃, 풍도바람꽃이 있다. 학명은 아네모네(Anemone)이며, 바람꽃은 바람의 여신 아네모네에서 따온 이름이다.
풍도바람꽃은 예전에는 변산바람꽃으로 알았지만, 식물학자인 오병윤 교수가 다소 틀린 부분을 발견했다. 먼저 꽃이 변산바람꽃보다 크다. 결정적으로는 밀선(蜜腺·꿀샘) 크기에 차이가 있다. 변산바람꽃은 생존을 위한 진화로 꽃잎이 퇴화해 밀선이 2개로 갈라졌다. 반면 풍도바람꽃은 밀선이 변산바람꽃보다 넓은 깔때기 모양이다.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학계에 알려졌고, 2011년 1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에서 풍도바람꽃으로 정식 명명했다.
왜 풍도에는 예쁜 꽃들이 필까
철조망 지대에서 나와 좀 더 오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공터 곳곳에 바람꽃과 복수초 군락지가 자리 잡았다. 그곳을 자세히 보면 간혹 꽃이 눈처럼 흰 꿩의바람꽃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여기서 정상처럼 보이는 언덕에 올라 계속 산등성이를 타면 군부대를 만난다. 북배는 군부대 뒤쪽 산비탈로 내려서야 한다. 이 길에 풍도대극이 많다.
풍도대극은 붉은대극과 같은 속에 속하며 생김새도 똑같다. 차이점은 붉은대극은 총포(꽃대 끝에서 꽃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에 털이 많다는 것. 외형상 차이는 미비하지만, 과학자들은 동위효소분석에 따라 붉은대극과 분명히 구분되는 명확한 특징을 가진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국가표준식물목록에 풍도대극이 정식 명칭으로 등록돼 있다.
제법 가파른 길을 타고 내려오면 북배에 닿는다. 북배는 풍도 서쪽 해안을 이루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으로 붉은 바위를 뜻하는 ‘붉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인다. 북배의 붉은 바위는 그 색감이 오묘하며 푸른 바다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북배에서 왼쪽 해안길을 따라간다. 흉하게 파헤쳐 놓은 채석장이 폐허로 변해 풍도의 아픔을 전해준다. 상쾌한 파도소리 들으며 길을 따르면 풍도등대 앞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등대로 올라서면 시원하게 바다 조망이 열린다. 후망산 동쪽 정상에 위치한 풍도등대는 인천과 평택, 당진항을 드나드는 선박을 비롯해 인근 해역 여객선과 소형 어선의 안전 항해를 도우려고 1985년 8월 16일 점등했다.
등대에서 내려와 다시 해안을 따라가면, 큰여뿔 산책로를 지나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에서는 아낙들이 직접 캔 전호나물(사생이)과 달래를 판다. 풍도의 봄이 오롯이 담긴 귀한 나물들이다. 나물 한 봉지를 사들고 설렁설렁 선착장으로 걸어오는데, 새삼스럽게 ‘왜 풍도에는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후망산을 멀그니 바라보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봄의 여신이 풍도와 입맞춤했다고 할 수밖에!’
여행정보
● 풍도 꽃길 가이드
트레킹은 후망산 야생화 군락지와 서쪽 북배를 연결하면 된다. 선착장→풍도분교→풍도마을→은행나무→군부대→북배→풍도등대→선착장 코스로, 5.1km 2시간 30분쯤 걸린다. 꽃사진을 찍으려면 시간을 충분히 잡아야 한다. 3~4월 초에 볼 수 있는 꽃은 복수초, 노루귀, 풍도바람꽃, 풍도대극이다.
● 교통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오전 9시 30분 왕경호가 출발하며 풍도까지 2시간쯤 걸린다. 하루 전날 배편 운항을 확인한다(문의 032-885-0180). 배가 하루에 1회밖에 없기 때문에 섬에서 민박할 수밖에 없다. 영흥도항, 삼길포항에서 낚싯배를 빌리면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다.
● 숙식
풍도랜드(032-831-0596), 풍도민박(032-831-7637), 풍도횟집민박(032-843-2628) 등이 있다. 숙박비는 2인 기준 5만 원이다. 식사는 한 끼에 7000원쯤으로 다양한 나물 반찬이 잘 나온다. 풍도랜드의 꽃게탕백반이 괜찮다. 1인 7000원.
붉은 동백과 푸른 바다 절경 어우러져
당금마을전망대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풍경. 가운데 봉긋한 언덕이 해금강전망대고, 뒤로 어유도와 가왕도(맨 오른쪽)가 펼쳐진다.
경남 통영시 매물도는 대매물도를 가리키지만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을 통칭하기도 한다. 소매물도는 통영의 유인도 100여 개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다. 그래도 직접 섬을 방문하는 이는 가뭄에 콩 나듯 했는데,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든 ‘바다백리길’(통영 미륵도, 한산도, 비진도, 매물도, 소매물도, 연대도에 조성한 걷기길)에 매물도가 들어가면서 탐방객이 부쩍 늘었다.
매물도는 섬 곳곳에 동백나무가 울창하다. 다른 지역보다 발육 상태가 좋아 탐스러운 꽃이 주렁주렁 달린다. 3~4월 초 매물도를 찾으면 붉은 동백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 속을 원 없이 걸을 수 있다.
‘바다백리길’ 통해 섬의 속살 알려져
매물도는 넓이 2.4km2, 해안선 길이 약 8km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이다. 통영시 한산면에 속하며 통영항에서 남동쪽으로 25km쯤 떨어졌다. 반면 거제 저구항에서는 10km쯤 거리다. 그래서 서울 사람은 통영여객터미널을, 부산과 창원 사람은 거제 저구항을 이용한다. 통영에서 배를 타면,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한산도 앞바다를 지나 비진도 앞을 미끄러져 매물도에 이른다. 매물도 당금항에 내리면 방파제 뒤로 깎아지른 어유도가 펼쳐지고,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인 집이 정겹게 다가온다.
매물도라는 지명은 ‘매물’, 즉 메밀을 많이 경작한 데서 유래했다. 한편으로는 매물도가 전쟁터에서 개선한 장군이 군마 안장을 푼 뒤 쉬고 있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말 마(馬)’자와 ‘꼬리 미(尾)’자를 써서 ‘마미도’라고 부르던 것이 나중에 매미도를 거쳐 매물도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옛 문헌에는 매매도(每每島), 매미도(每味島) 등으로 적혀 있다.
매물도 바다백리길의 이름은 ‘해품길’이다. 섬 곳곳에서 빼어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해품길은 매물도의 마을, 산, 해안을 거의 모두 둘러보게 돼 있다. 당금항 해품길 안내판 옆에는 배가 불룩한 ‘바다를 품은 여인’ 조형물이 서 있다. 매물도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보고 싶은 섬’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그 덕에 공공미술 작품들로 꾸며진 마을은 산뜻하다.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면 ‘고기 잡는 할아버지’‘해녀의 집’ 등 소박한 주민 이야기가 담긴 문패가 재미있다. 골목을 이리저리 휘돌면 발전소에 이른다. 발전소에서 왼쪽 언덕을 오르면 해금강전망대가 나온다. 날이 좋은 때는 거제 남부면과 해금강 일대가 잘 보이며, 일출 풍광도 빼어나다.
다시 발전소로 내려와 부드러운 초원을 따르면 옛 한산초교 매물도분교에 이른다. 이 분교는 섬에서 가장 평탄한 곳에 자리 잡았다. 섬 주민들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1963년 학교를 직접 지었다. 42년간 섬마을 아이들의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분교는 2005년 폐교했다. 지금은 민박집으로 사용한다. 분교 앞 몽돌해안은 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운동장을 뛰놀다 해안으로 달려가 몸을 던졌을 것이다.
장군봉은 소매물도 최고 전망대
분교를 지나면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동백터널을 지난다. 길섶에 떨어진 동백꽃이 붉은 등을 켠 듯 반짝반짝 빛난다. 대숲길을 내려오면 길 양편으로 다시 동백나무가 도열한다. 굵은 나무들은 짙은 붉은색 꽃을 가득 달고 있다. 일찍이 이렇게 꽃이 풍성한 동백나무들을 본 적이 없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꽃밭에 앉아 동백꽃 향기에 취한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언덕을 오르면 당금마을전망대다. 이곳은 사방이 툭 터진 바람의 길이다. 그늘막 아래 평상에 앉으면 분교와 해금강전망대, 어유도, 가왕도가 차례로 펼쳐지고 바다 건너편으로 거제도 망산과 여차·홍포 해안이 아스라하다. 동쪽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웅장한 장군봉이 우뚝하다. 이곳 전망대는 한참을 머물고 싶은 멋진 공간이다.
전망대를 출발하면 앞쪽으로 장군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장군봉은 210m 높이에 불과하지만, 우락부락한 생김새로 체감 높이는 500m를 훌쩍 넘긴다. 장군봉 산 사면은 온통 동백나무로 덮여 있다. 봉우리를 넘으면 급경사를 내려와야 한다. 두 봉우리 사이 안부에서 대항마을과 장군봉 가는 길이 갈린다. 섬을 둘러볼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은 여기서 대항마을로 내려가면 된다.
장군봉 오름길은 지그재그 임도다. 어유도전망대를 지나 모퉁이를 두어 번 돌면 장군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철탑이 우뚝하고, 그 앞에 너른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장군봉 이름은 장군이 군마를 탄 형상에서 나왔다. 장군봉에는 장군과 말을 형상화한 독특한 조형물이 있다. 누구나 말 등에 올라탈 수 있게 제작한 점이 마음에 든다. 말에 올라타면 장군이 된 듯 힘이 넘치고 기분도 좋아진다.
장군상 뒤 전망 데크에 서면 그동안 숨어 있던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나타난다. 소매물도는 꼭 거친 바다를 헤엄치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휘파람이 절로 나는 완만한 초원길이다. 가을에는 억새가 우거지고 구절초가 만발한다. 보는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소매물도 모습이 재미있다. 등대섬전망대를 지나면 길은 오른쪽으로 크게 꺾인다.
산비탈에서 이어진 편안한 길이 꼬돌개 오솔길이다. 꼬돌개는 경남 고성 등에서 온 초기 정착민이 흉년과 괴질로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름은 재미있지만 그 속에 매물도의 아픈 역사가 담겼다. 운치 있는 대숲을 지나면 대항마을이 코앞이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 매물도 당산나무인 후박나무(경남기념물 제214호)를 구경하자. 수령 300년이 된 이 후박나무는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주는 나무로 알려졌다.
아담한 대항마을은 사람들이 떠난 옛집과 신축 펜션이 뒤섞여 있다. 대항마을을 지나 낮은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시야가 열린다. 매물도 앞바다에 솟구친 바위기둥 서너 개는 가익도다. 크고 작은 바위 5개로 이뤄진 가익도는 주민 사이에서 ‘삼여’ 또는 ‘오륙도’로 불린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바위가 3개로, 5개로도 보인다.
고갯마루를 내려오기 전 당금마을을 유심히 바라본다. 방파제가 두 팔 벌려 앉은 항구, 작은 산처럼 솟은 어유도, 그리고 산비탈에 따개비처럼 붙은 집들이 어우러진 마을이 평화롭다.
여행정보
● 매물도 해품길 가이드
코스는 당금항→해금강전망대→매물도분교→당금마을전망대→대항마을 갈림길→장군봉→등대섬전망대→꼬돌개→대항마을(대항항)→당금항으로, 거리는 6.8km이며 3시간 20분쯤 걸린다. 해품길 종착점은 대항항이지만, 당금항으로 돌아와 원점 회귀하는 것이 좋다. 대항항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여객선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교통
여객선은 통영과 거제에서 다닌다. 통영↔대·소매물도의 경우, 통영여객터미널에서 한솔해운(055-645-3717) 소속 한솔1호와 엔젤3호가 1일 3회(07:00, 11:00, 14:10) 운항한다. 주말에는 소매물도행 배편만 몇 번 더 다닌다. 1시간 30분쯤 걸리며, 오전 7시 배를 타면 소매물도와 대매물도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거제↔대·소매물도의 경우, 거제시 남부면 저구항에서 매물도해운(055-633-0051)의 매물도구경2, 3호가 1일 4회(08:30, 11:30, 13:00, 15:30) 출항한다. 매물도까지 40분쯤 걸린다. 배편은 왕복으로 끊어야 한다. 따라서 통영을 들머리로 매물도를 구경하고 거제로 나올 수는 없다.
● 맛집
매물도 당금마을 구판장 2층에 자리한 밥집(010-8929-0706)에서 자연산 활어회, 매운탕, 라면 등을 먹을 수 있다. 대항마을 구판장(010-7110-4066)에서 기본적인 생필품은 물론, 매물도 별미인 방풍나물도 살 수 있다. 봄철 별미인 도다리쑥국은 통영항에서 가까운 분소식당(055-644-0495)이 잘한다.
● 숙식
하나펜션(055-642-9852)과 매물도펜션(055-641-4783), 소라민박(055-643-4957) 등 숙박시설이 많다. 일출 보기 좋은 매물도분교 민박은 구판장에 문의한다. 캠핑족은 당금항 방파제 앞에 텐트를 칠 수 있다. 화장실은 구판장 옆 공용화장실을 이용한다.
대자연 경외감 만끽…
탑사 돌탑 120기 남다른 사연 간직
마이산 상징인 탑사. 이갑용 처사가 쌓은 돌탑이 마이산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마이산은 진안의 상징이다. 전주,무주, 장수, 임실, 금산 등지에서 진안으로 입성하려면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그것은 홀연히 나타난 마이산과 눈을 맞추는 일이다. 서로 마주한 수마이봉(667m)과 암마이봉(673m)은 바라보는 거리와 방향에 따라 하나로 보이다 둘로 바뀌고, 토끼귀가 말귀가 되며, 하늘로 치솟으려는 우주왕복선이거나 거대한 남근으로 변하고, 구름이 낀 날에는 나비처럼 나풀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모습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진안으로 들어가는 즐거운 의례인 셈이다.
진안팔경의 으뜸 ‘마이귀운’
진안팔경을 꼽은 ‘월랑팔경(越浪八景)’ 가운데 으뜸은 ‘마이귀운(馬耳歸雲)’이다. ‘월랑’은 백제시대에 부르던 월량(月良)이란 말에서 유래한 진안의 옛 이름이고, ‘마이귀운’은 마이산에서 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이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벚꽃 만발한 4월 말이다. 화사한 벚꽃 사이로 봉우리가 우뚝 솟구친 모습에서 대자연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날이 따뜻해 4월 중순 꽃이 만개했다. 진안군은 매년 개최하던 벚꽃축제는 따로 열지 않고, 벚꽃 개화에 맞춰 진안 홍삼축제를 4월 23~27일 연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갔다가는 벚꽃이 다 졌을 확률이 높다. 벚꽃을 보려면 늦어도 셋째 주에는 가야 한다.
마이산은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으로 불렀는데, 이는 ‘섯다’ ‘솟다’라는 말의 한자음 표기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용출봉(湧出峰)으로, 마찬가지로 ‘솟아나다’ ‘솟아오르다’는 뜻이 담겼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종이 남행해 이 산 아래를 지나다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고 산 모양이 말귀와 같다고 해서 마이산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마이산 벚꽃 트레킹 코스는 남부주차장에서 시작해 올라가면서 탑사, 은수사와 어우러진 마이산 절경을 둘러보고 북부주차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정석이다. 북부주차장에서 출발해 남부주차장으로 넘어오면, 내려가면서 산을 보기에 마이산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는다. 남부주차장 들머리는 오래전부터 산길이 나 있던 곳으로, 많은 식당이 자리 잡았다. 식당들은 진안 명물인 흑돼지를 구워 구수한 냄새로 손님을 유혹한다.
식당가를 지나면 금당사를 만난다. 금박을 입힌 대웅전 건물이 번쩍번쩍 빛난다. 금당사를 지나면 왼쪽에 탑영제 둑방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둑방에 서면 탄성이 터져 나온다. 탑영제 드넓은 호수 뒤로 마이산 두 암봉이 버티고 있다. 마침, 바람에 날린 벚꽃 잎이 호수로 날아든다.
탑영제를 지나면 마이산 봉우리 사이를 휘돌아 탑사에 닿는다. 탑사는 마이산만큼 유명한 사찰로 이갑용(1860~1957) 처사가 세운 돌탑이 일품이다. 이갑용 처사는 1885년 은수사에서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돌탑을 쌓기 시작, 10년 동안 120기를 세웠다. 신기한 것은 오로지 두 손만으로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렸다는 점. 돌탑은 오늘까지 무너지지 않고 마이산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청실배나무 꽃등 켠 은수사
탑사 왼쪽으로 솟구친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암마이봉을 자세히 살펴보면 윗부분에 구멍이 뚫린 듯 크고 작은 홈을 볼 수 있다. 이를 타포니(Taphony)라 한다.
마이산 바위는 거대한 역암덩어리다. 역암이란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인 퇴적암을 말한다. 약 1억 년 전 이 일대가 거대한 호수였을 때 상류에서 자갈이 흘러들어 차곡차곡 쌓였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흙, 모래와 뒤섞여 퇴적됐다. 거대한 퇴적덩어리는 수천 년에 걸친 지층의 융기 현상, 단층 현상으로 지금 같은 암봉을 이뤘다.
마이산 역암덩어리의 두께는 지하에 잠긴 부분까지 합치면 1500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마이산에서 시작한 역암층이 멀리 임실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는데, 이를 지질학계에서는 ‘마이산 역암층’이라 부른다. 마이산 남쪽 사면에 발달한 타포니는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우는 물질인 메트릭스가 자갈보다 빨리 풍화하는 침식 작용으로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구멍이다. 마이산 타포니는 그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큰 편에 든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마이산의 지질학적 가치와 독특한 아름다움을 인정해 문화재청에서는 2003년 마이산을 명승(제12호)으로 지정했다.
탑사를 구경하고 오른쪽 언덕에 올라서면 은수사다. 은수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가 내려온다. 이성계가 사찰에서 물을 마시고 물이 은처럼 맑다고 해서 은수라란 이름을 내렸고, 꿈에서 마이산 신령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라는 금척을 받았다는 전설도 전한다. 꿈 이야기를 그린 ‘몽금척도’가 태극전에 걸려 있다.
은수사 경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수백 년 묵은 청실배나무가 환한 꽃등을 켜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높이 18m, 지름 3m 크기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열매가 푸른 배나무’란 뜻이다. 겨울철 청실배나무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하면 물그릇 속 물이 얼면서 하늘을 향해 고드름 같은 게 솟는다. 학자들은 일종의 대류 현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이곳에 상승하는 기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은수사에 이르면 비로소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의 전모가 드러난다. 왼쪽 펑퍼짐한 암마이봉은 생김새가 푸근하고, 오른쪽 우뚝한 수마이봉은 옹골차면서도 힘이 넘친다. 수마이봉을 자세히 보면, 한쪽 눈을 감은 할아버지 얼굴이 드러난다. 예부터 그 얼굴을 마이산 산신이라고 했다.
은수사를 꼼꼼하게 구경했으면 북부주차장으로 넘어간다. 산길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로 나 있다.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고갯마루에 이르는데, 이곳을 천황문(天皇門)이라 부른다. 천황문은 물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암마이봉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 수마이봉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의 원류가 된다.
암마이봉 자연휴식년제 출입 통제
천황문에서 바라보는 수마이봉은 우람한 남근처럼 보이며 바위 표면에 자리한 나무들은 마치 털 같다. 천황문에서 왼쪽 길을 따라 암마이봉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천황문 오른쪽으로 좀 오르면 화엄굴 속 맛좋은 약수가 샘솟는다. 이 물을 마시고 산신령에게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지만 지금은 낙석 때문에 출입을 금한다. 천황문에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 북부주차창에 닿으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여행정보
● 마이산 트레킹 가이드
마이산은 늦게까지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들머리는 북부주차장이나 남부주차장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데, 꼭 남부주차장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코스는 남부주차장 → 탑사 → 은수사 → 북부주차장이며 거리는 3.5km, 2시간쯤 걸린다. 산길은 비교적 순탄하고 크게 어려운 코스가 없다.
● 교통
익산포항고속도로 진안IC로 나오면 마이산 북부주차장이 지척이다. 남부주차장은 백운면 방향으로 10분쯤 가야 한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 → 진안행 버스가 10:10, 15:10에 있으며 3시간쯤 걸린다.
● 맛집
진안은 제주와 더불어 흑돼지가 맛있는 고장이다. 시내 우체국 옆에 자리한 열린갈비(063-433-1202)는 지역 주민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고기가 부드러워 아이들이 좋아한다. 돼지갈비 1인 1만 원. 흑삼겹살 1인 1만2000원. 마이산 남부주차장 위쪽에 있는 식당가에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중 초가정담(063-432-8840)과 벚꽃마을(063-432-2007)이 유명하다. 산채비빔밥, 등갈비, 목살, 도토리묵이 모두 나오는 2인 세트 3만 원 선.
● 숙식
홍삼스파빌(1588-7597)은 진안이 자랑하는 홍삼스파의 숙박시설로 스파를 체험하며 머무르기 좋다. 데미샘자연휴양림(063-290-6991)은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 아래 자리한 쾌적한 휴양림으로 최근 개장해 시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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