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지리산서 만난 용의 전설… 새해 살아낼 기운이 솟다

醉月 2023. 12. 21. 12:46

과거 지리산 유람을 하던 선비들이 빼놓지 않고 들러갔던 명소 용유담. 

반야정사 안쪽의 계곡 상류의 천변으로 내려가야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옛사람들이 ‘용이 깃들였다’며 찬탄하던 곳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용의 해’ 맞이 탐방 용유담·구룡계곡

경남 함양 ‘용유담’

‘용이 노는 연못’뜻의 1㎞ 명소
물살 굽이치며 깎은 바위 즐비
상류 가야 진짜모습 볼 수 있어

‘움푹 파이고 불쑥 솟구치고…
형상이 천만 가지로 다르다’
수백년전 옛글 묘사와 똑같아


전북 남원 ‘구룡계곡’

‘음력 4월 초파일 용이 내려와
아홉폭포서 놀다가 승천’ 전설
용유담과 차로 40분 남짓 거리

육모정 학서암부터 3㎞ 탐방로
9景 ‘용호구곡’ 따라서 걷는 맛
위쪽 폭포만 가는 5분 코스도

함양·남원=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신년의 첫 여행으로 새해를 맞는 일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년 첫날부터 동해안 여행지마다 행락객들이 북적이는 이유입니다. 해맞이 행사에 참여해 일출을 보고 떠들썩하게 새해를 맞는 것도 즐겁지만, 한적한 여행지에서 묵상하듯 차분하게 새해를 맞는 조용한 설렘도 있습니다. 오는 새해는 그런 여정이 어떨까요. 용의 해를 앞두고, 지리산 자락에서 용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목적지 두 곳을 뽑아봤습니다. 새해가 시작돼도 12간지는 음력이 기준이니 ‘용(龍)띠 해’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압니다만, 용 이야기를 서둘러 꺼낸 건 오로지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이었습니다.


# 용이 노니는 못(潭)을 보는 자리

지리산 천왕봉의 정북 쪽, 그러니까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 아래 ‘용유담(龍遊潭)’이 있다. 용유담, 그러니까 ‘용(용·龍)이 노는(유·遊) 연못(담·潭)’이다. 용유담은 엄천강 물길이 고여 만들어진 소(沼)다. 지명으로 장소를 설명하면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엄천강은 또 어떤 강인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보자.

남원의 실상사 쪽으로 흘러드는 물과 지리산 백무동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경남 함양의 마천면 소재지에서 합류한다. 그 물이 엄천(嚴川), 또는 엄천강(嚴川江)이다. 나중에 남강으로 합류하는 물길인데 엄천이란 이름은, 근처에 ‘엄천사’란 신라 때 창건한 큰 절이 있어서 붙여졌다. 지금은 사라진 절집 엄천사는, 과거 지리산 백무동 일대를 유람하는 선비들이 꼭 들러간 명소였다. 절이긴 하지만 지리산을 유람하는 유림의 선비들에게는 종교적 의미보다 일종의 휴게소로 쓰였으리라.

엄천강 물길이 만든 용유담의 길이는 1㎞쯤 되는데 상류 쪽에 기이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물살이 굽이치며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바위를 두고 옛사람들은 조물주의 솜씨에 경탄했다.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듯한 바위의 형상을 두고 ‘용이 바위를 뚫고 지나가면서 만든 흔적’이라 믿었다.

용유담은 지리산 아래 있으니 산중의 다른 명소에 비해 접근성이 훨씬 좋아서 유독 들러간 이들이 많았다. 지리산 유람의 시작 지점인 백무동을 드나들던 선비들은 용유담 앞에 멈춰서 ‘거 참 기이하다’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었다. 수많은 찬탄의 문장이 남아있는 이유다. 선비들이 주목했던 건 깊고 맑은 물보다는, 신묘하고 기이한 천변의 바위와 지형이었다.

용유담을 적은 글은, 전적으로 묘사다. 용유담의 옛글은 현란한 묘사로 그득하다. 400여 년 전쯤 이곳을 찾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의 글을 읽어보자. “…돌이 사나운 물길에 깎여 움푹 파이기도 하고, 불쑥 솟구치기도 하고, 우뚝우뚝 솟아 틈이 벌어지기도 하고, 평탄하여 마당처럼 되기도 하였다. 높고 낮고 일어나고 엎드린 것이 수백 보나 펼쳐져 있어 형상이 천만 가지로 다르니, 다 형용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0년 뒤쯤 조선 정조 때 학자 이동항도 이런 글을 남겼다. “…시내에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있었다. 지붕의 용마루, 평평한 자리, 둥근 북, 큰 항아리, 큰 가마솥, 성난 호랑이, 내달리는 용, 서 있는 것, 기대 있는 것, 웅크리고 있는 것 등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계곡에 가득 차 있어 온갖 기괴한 형태의 이름을 붙였다.”

반야정사의 용 조형물.



# 용유담을 잘 찾아가는 방법

지금 용유담을 찾는 이들은 옛 문장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용유담’을 입력하고 찾아가면 그리 대단찮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넋이 나갈 지경’에 이르렀으며 용유담을 보곤 ‘금강산 만폭동에 버금간다’고 경탄했던 조선 중기 시인이자 의병인 양대박의 문장을 읽다가, “웬 호들갑?”이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전적으로 오해이자 착각이다. 이런 오해는 ‘진짜 용유담을 보는 자리’를 찾지 못해서 빚어진다.

용유담을 찾는 이들은 십중팔구, 아니 열이면 열 모두 엄천강 물길 위에 걸쳐진 다리 용유교에 올라서서 거기가 용유담인 줄 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용유담은 시시하기 짝이 없다. 이 정도의 풍경이라면 뭐 어디에나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서 금강산 만폭동을 떠올린다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랬던 적이 있다면 분명하다. 용유담을 잘못 찾아간 거다.

용유담의 진면목은 상류 쪽 천변에 있다. 용유교를 건너면 다리 너머 오른쪽에 ‘반야정사’란 이름을 내건 작은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앞마당을 지나 천변으로 내려간 뒤 상류 쪽으로 좀 더 올라가야 용유담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빚어내는 용유담의 모습은 옛글에 등장하는 묘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곳에 가면 이 비범한 경관을 글로 남기고 싶어 했던 이들의 마음이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용유담의 빼어난 경관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위력적’이다. 1984년부터 거의 30여 년 동안 수많은 갈등과 논란을 빚었던 ‘지리산댐’ 건설을 무산시킨 주인공이 용유담이었다. 댐 건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용유담이 물에 잠긴다’는 것이었다. 댐 건설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용유담이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뜻밖인 건 용유담이 아직도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명승’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 바위에 깊이 새겨진 풍류와 자랑

용유담에는 바위 곳곳 옛사람들이 남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용유동천(龍遊洞天)’ ‘세신대(洗新臺)’ ‘독조대(獨釣臺)’ ‘경화대(庚和臺)’…. 저마다 돌에 새겨 걸어놓은 찬사다. ‘나 여기 왔다 간다’는 식의 이름 각자(刻字)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게 천변의 큰 바위 하나에 가득 새긴 글씨다. 글로 꽉 차 있어 마치 큰 책의 한 페이지처럼 보인다. 붉은 칠을 해 도드라진 글씨를 읽어 보면 이렇다. ‘인묘은사혜평강공현지지(仁廟恩思惠平姜公顯之地·인종이 강현에게 하사한 땅)’. 왕이 전직 형조판서 강현에게 용유담을 하사한 사실을 적어놓았다. 강의 굽이를 왕이 하사하는 건, 당나라 현종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당 현종이 벼슬을 마친 당나라의 한 시인에게 ‘물길의 한 굽이’를 하사했다는 얘기. 이 고사처럼 강현이 인조에게 용유담을 하사받았는데, 후손들이 그 사실을 만천하에 자랑하고자 바위에 새긴 것이다. 말하자면 돌에다 새긴 ‘땅문서’인 셈이다.

인조가 땅을 줬던 건 별 관심은 없는데, 눈길을 붙잡는 건 그 글씨 양쪽에 새겨진 지리산에 드나들었던 4명의 이름이다. 점필재 김종직,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남명 조식. 다들 지리산과 깊은 인연을 가진, 내로라하는 존재감 넘치는 인물이다. 이 중 함양 군수를 지낸 김종직 얘기는 뒤에서 다시.

용유담에는 신라 때 여기다 절을 짓고 수도했다는 ‘마적도사’ 전설이 깃들어 있다. 용유담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얘기는 이 전설에 나온다. 이야기인즉 이렇다. 신라 무열왕 때 용유담에 와서 마적사를 짓고 은거했던 마적도사가 있었다. 도사는 식량이 떨어지면 쪽지를 쓴 뒤 나귀를 장에 보냈고, 상인들이 그 쪽지를 보곤 나귀에 주문한 물건을 실어 돌려보냈다. 나귀가 돌아와 울면 마적도사는 쇠지팡이로 엄천강에 다리를 놓아 나귀를 건너오게 했다. 나귀가 도착했는데도 마적도사는 지리산 천왕 할매와 장기를 두느라 정신이 팔린 데다, 때마침 용유담의 용까지 서로 승천하려 싸우며 소란스럽게 하는 바람에 나귀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울다 지친 나귀는 그만 죽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적도사는 장기판을 던져 버렸고, 용유담의 아홉 마리 용 가운데 눈먼 용 한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여덟 마리 용을 쫓아버렸다는 얘기다.

세진대(洗塵臺)와 소나무.

엄천강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마음의 티끌(塵)을 씻는(洗) 자리’에

400년 된 노송이 힘차게 활개 치며 자라고 있다.



# 차밭을 만든 마음과 두 개의 비석

용유담 주변 곳곳에는 마적도사 전설이 지명으로 남아있다. 큰 바위에 말발굽 형상이 새겨져 붙여졌다는 ‘마적동’이라는 지명도 그렇고, 눈먼 용이 굴 안에 잠들어 있어 늘 거품이 떠오른다는 ‘거품소’도 그렇다. 지금은 태풍으로 쓰러져 터만 남았지만, 마적도사가 심었다는 ‘도사 배나무’가 있었고, 마적도사가 물을 마신 ‘도사 우물’도 있다. 마적도사가 던진 장기판의 깨진 반쪽이라는 ‘장기판 바위’, 마적도사 이름을 딴 소나무 ‘마적송’까지 있다.

용유담 주변에는 마적도사의 전설을 따라 걷는 길이 있다. 이름하여 ‘마적도사 전설탐방로’다. 마적도사 전설은 흥미롭고 창의적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전설일 따름. 탐방로를 추천하는 이유는 사실 전설보다는 경관이다. 용유담 협곡 이쪽의 지리산 정강이쯤에서 엄천강과 협곡 저쪽 법화산 자락의 산간마을 경치가 훌륭하다.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맞은편 산중 마을의 기막힌 설경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설탐방로를 걷지 않는다 해도 여기만을 들러 보고 갔으면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세진대(洗塵臺)’다. 산길 옆의 거대한 너럭바위가 있고 그 옆에 수령 400년의 소나무가 자라는데, 마음껏 활개 치듯 가지를 펼친 기상이 시원하다. 소나무를 등지고서 용유담 쪽을 바라보고 서면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보았으면 하는 곳이 몇 곳 더 있다. 그중 하나가 함양 휴천면 동호마을의 ‘점필재 김종직 관영 차밭’이다.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용유담 오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작은 공원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인 김종직. 그가 조선 성종 때 함양군수로 있으면서 여기다 차밭을 만들었다. 함양에 차가 나지 않는데도 조정에서 차를 세금으로 부과해 주민들이 고통받자 관에서 차 씨앗을 구해 만든 ‘관이 운영하는 차밭’이다. 근래 재현한 차밭은 초라하지만, 그 앞에 서면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던 어진 목민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관영 차밭 주위에 근래 세운 몇 개의 비석이 있다. 과거의 비석은 은근한 압력이나 가문 과시용으로 세운 ‘가짜’가 적잖지만, 근래 세운 비석이라면 틀림없이 ‘그럴 만한 공적’이 있다고 믿어도 된다. 가장 최근에 세운 비석은 지난 5월에 세운 ‘박정석 효자비’다. 생업까지 포기하고 낙향해 아픈 모친을 효성을 다해 보살폈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마을 사람들이 ‘동호마을 주민 일동’의 이름을 걸고 비석까지 세웠을까.

2004년 세운 ‘김석록 선생 송덕비’도 눈길을 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지리산 아래 함양 땅에서는 빨치산 출몰과 토벌군의 학살로 수많은 비극이 벌어졌다. 1951년 2월 8일 군부대가 주민들을 집합시켜놓고 학살하려 했는데, 김석록은 군 부대장을 가로막고 ‘죄 없는 주민을 죽이려면 나 먼저 죽이라’고 항의해 결국 죽을 뻔했던 6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구해냈다. 그는 1993년에 일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2004년에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슬쩍 누워서 흐르는 와폭(臥瀑)인 구룡폭포.

물이 고인 소와 소를 넘치며 커튼처럼 흐르는

폭포가 마치 몸을 뒤틀며 용틀임하는 용처럼 보인다.



# 아홉 마리 용이 폭포에 깃들이다

지리산에 용의 전설이 깃든 또 한 곳이 전북 남원의 구룡계곡이다. 구룡계곡은 지리산국립공원 서북쪽 끝에 있다. 지리산 서북능선인 만복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굽이치는 계곡인데, 해마다 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자리 잡고 노닐다가 다시 승천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용유담은 경남 함양이고 여기 구룡계곡은 전북 남원.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차로 40분 남짓 거리라 두 곳을 한 번의 여정으로 둘러보는 데 그리 무리가 없다.

구룡계곡 탐방로 들머리는 육모정을 겨눠 찾아가면 된다. 남원 시내에서 주천면 소재지를 지나 60번 지방도로에 오르면 금세 육모정에 닿는다. 육모정은 400여 년 전 지역의 선비들이 지은 육각 지붕의 정자. 본래 계곡 건너편에 있었는데 1960년 큰 비로 유실돼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했다. 육모정은 시내와 가까워 남원 시민들의 청량한 숨구멍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상의 짧은 틈에 가볍게 찾아가 계곡에서 지리산 물소리를 듣거나, 쏟아지는 밤별을 보고 오는 것이다. 육모정에서 구룡폭포까지가 구룡계곡이다. 겨울 눈이 내리고 나면 육모정 너머 호랑골까지 이어지는 까마득한 벼랑의 굽이굽이 고갯길은 통제된다. 육모정까지는 차로 갈 수 있지만 계곡 위로는 차로 오를 수 없다는 얘기다. 육모정 아래 송력동폭포부터 구룡폭포까지 계곡의 전체 길이는 5㎞ 남짓. 이 중 학서암에서 구룡폭포까지 3.1㎞ 구간에다 구룡계곡 탐방로를 놓았다. 탐방로는 편도 3.1㎞ 거리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길이 멀지도 않고, 그다지 거칠지도 않아서 눈 내린 날 설경을 보러 가기에도 좋다.

# 지리산에서 새해의 기운을…

구룡계곡 트레킹이 지루하지 않은 건 아홉 가지 계곡의 경치를 가려 뽑은 ‘용호구곡’이 있어서다. 세월이 흘러 자취가 희미해진 탓인지 다 찾을 수는 없었지만, 3곡 학서암과 4곡 구시소, 5곡 유선대 그리고 8곡 경천벽과 마지막 9곡 구룡폭포만큼은 뚜렷하다. 바위에 구멍을 뚫거나 금이 그어져 있어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선대와 힘찬 물길이 암반을 마치 말구유처럼 깎아낸 구시소 그리고 깎인 암반을 휘감으며 네 번을 담겼다가 떨어지는 구룡폭포가 그중에서 돋보인다.

구룡계곡을 힘들여 걷지 않고서 요령을 피워 계곡 경관의 정점인 구룡폭포만 짧게 보고 오는 방법이 있다. 구룡계곡의 물길을 따라 오르는 도로는 아슬아슬 계곡을 끼고 있는 비탈길인데, 어찌 된 게 구룡계곡 위쪽은 거짓말처럼 평탄한 분지다. 굽이굽이 산을 올라 해발고도를 500m까지 높였는데, 느닷없이 너른 평지의 논과 마을이 나온다. 가파른 산중 도로를 한참을 타고 올라왔음에도 고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마을풍경이 펼쳐져 있으니 착시 같기도 하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지형이라 계곡 위쪽 구룡폭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구룡폭포만 보고 오겠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차량 내비게이션에 ‘구룡폭포 주차장’을 입력해 찾아간 뒤 거기서 15분쯤 목제 덱을 걸어 내려가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천룡암’을 검색해 구룡폭포 바로 위쪽의 기도터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천룡암으로 가서 목제 덱으로 5분쯤 가면 구룡폭포에 닿는다. 두 길이 중간에서 만나니 어떤 길을 택하든 만나는 폭포의 경관은 똑같다. ‘좀 더 걷겠다’는 뜻이 있다면 15분 코스를,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 5분 코스를 택하면 된다.

구룡폭포는 슬쩍 누운 ‘와폭(臥瀑)’이다. 구룡폭포를 두고 ‘교룡담(交龍潭)’이라고도 했는데, 와폭이 흘러내리며 이룬 소에 두 마리 용이 깃들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구룡폭포의 용은 아홉 마리이기도 하고, 때론 두 마리이기도 하다. 전설 속의 구룡계곡의 용이, 그리고 용유담의 용이 몇 마리인들 그게 무슨 상관일까. 많다고 좋은 것도, 적다고 아쉬운 일도 아니다. 그게 용이 아닌들 또 어떨까. 모든 것을 쩡쩡 얼려버린 겨울의 지리산에 들러 새해를 살아낼 좋은 기운 하나 받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 반야정사의 용(龍)

용유담 옆 절집 ‘반야정사’는 시멘트 건물을 법당으로 쓰는데, 옥상에 용 조형물 두 개가 있다. 용유담 전설에 맞춰 만든 건가 했는데 아니다. 반야정사를 지키는 구순에 가까운 혜원스님은 젊어서 일본인 관광객에게 파는 목조각 깎는 일을 했다. 나중에는 원가절감을 위해 본을 떠서 틀을 만든 뒤 수지를 부어 찍어내는 ‘주조’ 방식으로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옥상의 용은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사로부터 주문받은 용 조형물을 만들면서 더 찍어낸 것이다. 부산 해동용궁사에도 똑같은 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