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배 속 아기도, 어르신도 즐겁다… 에메랄드빛 ‘南國 여행의 정석’

醉月 2024. 1. 5. 12:11

괌에서 가장 많은 호텔이 모여 있는 투몬 비치는 낙조 풍경이 근사하다.

호텔에서 산호초의 바다 너머로 해 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롯데호텔 괌의 수영장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한국인이 사랑한 여행지 괌

괌 방문객 5명 중 3명 한국인

4시간 비행으로 거리 가깝고
‘미국 문화’ 즐길 수 있는 섬

허니문·효도관광지로 인기끌다
최근엔 ‘태교여행’ 성지 급부상
의료서비스 좋고 자유여행 편리
유아용품 저렴해 쇼핑에도 딱

볼거리보단 즐길거리가 많아

포토스폿 ‘에메랄드밸리’유명
남부 명소는 ‘솔레다드 요새’
해양 액티비티·스카이다이빙
디너 크루즈 등 다양하게 체험

유일한 한국 소유‘롯데호텔 괌’
가성비 뷔페·바비큐 등 인기

괌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신혼여행에서 태교 여행으로

1988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행되자마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간 여행지가 괌과 사이판이었다. 미주와 유럽은 멀고 비쌌고, 동남아는 젊은이들이 값싸게 배낭 여행이나 가는 ‘싸구려 여행지’로 인식됐다. 거기에 비하면 괌, 사이판은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이국적인 정취도 가득한 훌륭한 여행지였다. 비행시간이 4시간 남짓이라 만만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선망해 마지않던 ‘미국 문화’를 맛볼 수도 있었다. 낭만적인 해변에는 다국적 체인 호텔이 즐비했고, 밤마다 리조트 공연장과 관광객 가득한 극장에서 차모로 원주민의 불 쇼와 극장식 마술쇼가 펼쳐졌다.

그 시절 ‘신혼여행의 단골 목적지’였다는 건, 당시 괌이 최고 여행지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혼여행의 목적지는 당대 최고 여행지다. 그 시절의 훈장이라고 남아 있는 게, 괌의 해변호텔이라면 하나씩 있는 ‘채플’이다. 채플은 교회를 뜻하지만, 괌 호텔의 부대시설인 채플은 예배 공간이라기보다 낭만적인 결혼사진을 찍는 이국적 배경이었다.

괌의 인기가 시들해진 건 내로라하는 동남아시아 휴양지가 뜨면서부터다. 동남아 휴양지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여행상품이 속속 만들어졌고, 다양한 여행지가 개발되면서 괌과 사이판은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뚜렷해진 건 여행자층의 변화다. 초기에는 신혼부부를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의 여행자들이 고루 괌을 찾았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자녀를 동반한 가족여행이나 효도관광 여행의 비중이 확 늘었다. 남국의 바다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고, 섬 안에서 이동이 짧아 체력 부담이 적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는 ‘태교 여행’이란 새로운 부류의 여행을 즐기러 오는 젊은 부부들이 늘었다. 태교 여행이란 임신한 아내가 남편과 함께하는 여행을 뜻한다. 엄마의 즐거운 여행 경험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태교에 좋다는 게 명분이었다. 특이한 건 태교 여행이 여행사나 관광지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라, 개별 여행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용어이자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괌이 태교 여행에 적합한 목적지로 꼽힌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의료서비스가 잘돼 있고 위생 환경이 좋다는 것. 자유여행을 하기 편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렌터카를 빌릴 수 있다거나, 유아나 어린이용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돌이켜 보면 한국인 여행자들은 스스로 여행 목적을 바꿔가면서 괌에서의 여행을 즐겨왔다. 괌 여행의 가장 ‘큰손’인 한국인 관광객이 ‘좀 더 즐거운 여행’을 추구하며 괌의 변화를 줄곧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겨울의 한복판에 따뜻한 남국의 여행지 괌에 다녀온 얘기를 시작한다.

괌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사랑의 절벽.



# 사랑의 절벽과 에메랄드 밸리

괌을 두고 ‘손바닥만 한 섬이라 이렇다 할 명소가 없다’고들 한다. 해양레포츠나 액티비티, 쇼핑, 공연 관람 등 할 것은 넘쳐나는데 ‘볼거리’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괌의 풍경에 ‘강약’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다 견준대도 빠지지 않는 푸른 보석 같은 바다를 갖고 있는데, 문제는 괌에서는 어딜 가나 그런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에메랄드 색깔의 근사한 바다가 그저 그런 바다 풍경을 지나 비밀처럼 숨어 있다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질까. 무릇 풍경에는 강약의 리듬이 있어야 하는 법. 괌의 결정적인 약점이라면, 그림같이 근사한 남국의 바다가 온통 ‘흔전만전’하다는 것이다.

괌에서 다른 여행지의 관광 명소와 견줄 만한 곳이 있다면 딱 하나 ‘사랑의 절벽’이다. 호텔과 리조트가 모여 있는 투몬 비치에서 엎어지면 닿을 듯 가까운 데다, 이렇다 할 명소가 없는 괌에서 독보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괌에 갔다면 여기를 안 들렀을 리 없다.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하든 렌터카를 빌려 섬을 돌아보든 어떻게든 들르게 되니, 가보라고 권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는 얘기다.

사랑의 절벽은 수직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만들어놓은 전망대다. 다 듣지 않아도 결말을 아는 전형적인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런 얘기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원주민 차모로 여성이 부모의 강요로 스페인 병사와 결혼할 위기에 처한다. 결혼식 전날 밤 연인은 도망친다. 스페인 병사에게 쫓긴 연인이 절벽 끝에 이르고, 둘은 헤어지지 말자는 징표로 머리카락을 묶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남자의 머리카락을 묶는다고? 차모로족 남성들은 머리가 길었다. 너나없이 머리를 길러 상투를 틀듯 올렸다. 머리카락을 묶는다면 세 번은 족히 묶었을 듯하다.

투명한 형광색 같은 물빛이 인상적인 에메랄드 밸리.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인데,

실은 화력발전소의 냉각수가 드나드는 수로다.



‘근사한 사진 남기기’가 괌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관광객들이라면, 괌에서 꼭 가는 곳이 있다. ‘에메랄드 밸리’라 부르는 곳인데 관광지라기보다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티끌만 한 이야깃거리만 있어도 관광지 목록에 올려놓는 괌정부관광청 공식 가이드북에도 안 나오는 곳이지만, SNS에 진심이거나 ‘남는 건 사진’이라 생각하는 한국인 여행자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알려졌다.

‘에메랄드 밸리’는 이름처럼 바닥까지 환히 비치는 에메랄드색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관광객들은 여기서 투명한 물빛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파트너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느라 구박까지 받아가며 땀을 뻘뻘 흘리는 젊은 남성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에메랄드 밸리지 실제로는 허름하고 좁은 수로다. 바로 앞의 카브라스화력발전소의 냉각수가 여기로 드나든다. 발전소 냉각수 수로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셈이다. 그러나 평가는 엇갈리는데, ‘사진이 잘 나오니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이들이 더 많은 듯하다. 괌은 낭만적인 여행 사진의 명소이기도 하니까. 아, 참고로 카브라스화력발전소 3호기와 4호기 발전설비는 우리나라 기업 두산엔진이 만든 것이다.

# 괌과 사이판, 닮은 듯 다른 두 곳

이제 좀 더 가까이서 괌을 들여다보자. 어디든 그렇지만, 괌 여행도 ‘체험’과 ‘관광’으로 나뉜다. 괌에서는 관광보다는 체험이다. 그걸 다들 안다. 괌에서는 관광지에서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체험’이 있다. 돌고래를 보러 가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를 즐기고, 오프로드 ATV와 스카이다이빙까지 즐길 수 있다. 밤이면 극장에서는 쇼가 열리고, 해 저무는 바다에는 디너 크루즈가 뜨고, 호텔에서는 저녁 식사를 곁들인 공연이 펼쳐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해볼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해도 괌 여행에서 관광은 빼놓을 수 없는 일. 관광이라고 해봐야 반나절이면 더 갈 데가 없는 작은 섬이라서 그렇다. 여행사의 당일 투어 상품을 예약하든, 렌터카를 빌리든 딱 반나절만 시간을 내면 괌 관광을 할 수 있으니, 굳이 그걸 건너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괌에서 관광이라면 ‘남부 관광’을 뜻한다. 말이 남부 관광이지 현지 여행사의 여행상품도 그렇고, 가이드북이 안내하는 ‘남부 관광코스’도 호텔이 몰려 있는 투몬과 타무닝, 그리고 괌의 수도 하갓냐 등이 있는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을 함께 둘러보는 일정이다.

하갓냐는 4000년 전부터 괌의 주인이었던 차모로족의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괌 박물관이 있고, 라테스톤 공원이 있으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성당과 요새가 있다. 괌 얘기를 하다 보면 딸려 나오는 게 이웃인 사이판이다. 괌과 사이판은 이웃이지만, 웬만해서는 같이 묶이지 않는다. 사이판은 북마리아나 제도에 속하는데, 지척에 있는 괌은 거기에 끼지 않는다. 사이가 좋지 않아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괌 주민들이 사이판을 싫어한다. 괌과 사이판을 하나로 묶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것도 네 번이나. 1958년, 1961년, 1963년, 1969년. 몇 년 간격으로 통합의 의견에 관한 찬반 투표를 했는데, 투표할 때마다 괌 주민들이 거부했다.

기원전 500년 전쯤 괌 원주민 차모로족이 돌기둥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

절구처럼 생긴 돌기둥을 ‘라테스톤’이라 부른다.



# 괌과 사이판, 왜 사이가 좋지 않을까

괌과 사이판이 껄끄러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괌과 사이판의 역사는 닮은 듯 다르다. 두 곳 모두 마젤란에 의해 스페인 식민지가 된 것도, 지금 미국령인 것도 같다. 그런데 그 과정에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겨 괌을 차지했는데, 그때부터 괌은 줄곧 미국이 관리했다. 과도한 간섭이나 지배는 없었다. 이른바 ‘유익한 태만’의 통치였다.

미국은 사이판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페인은 미국이 가져가지 않은 사이판을 독일에 팔았는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걸 승전국인 일본이 전리품처럼 가져갔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사이판은 미국령이 됐다. 간단하게 간추려보면 괌은 오랫동안 미국이, 사이판은 일본이 지배했다는 차이가 있다.

괌 주민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괌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을 따라온 사이판 원주민이 괌에 있던 원주민을 못살게 굴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사이판 원주민들은 ‘일본 앞잡이’였던 셈이다. 2년 7개월간의 일본 점령 시절 강압적 통치의 기억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괌을 점령한 뒤 영어 수업을 금하고 일본어 수업을 강제했으며 라디오 미국 방송 청취를 금지했다. 또 협동농장을 만들어 군사시설 건설을 위한 노동력을 징발했다. 개인이 잘못하면 가족이나 공동체가 한꺼번에 벌을 받는 연좌제를 미국식 개인주의에 익숙한 괌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무료 가부키 공연’도 기괴하게 느꼈으리라. 괌과 사이판의 틈에 제국주의 일본이 끼어 있다는 얘기다.

어찌 됐든 한국인 여행자의 입장이라면 괌 여행이 좀 더 마음이 가볍다. 사이판에는 징용의 역사와 일본 지배 시절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자신들을 식민지배했던 일본에 극히 우호적인 사이판 주민들의 태도도 익숙하지 않다. 반면 괌에서는 그런 역사적 부채 의식이 없다. 떠올릴 비극이나 참상이 없으니 그저 이국적인 경관을 마음 편히 즐겨도 좋다.

# 괌 관광은 눈높이를 낮추고 느리게…

사실 괌 남부에는 크게 볼 건 없다. 번쩍번쩍하게 관광지로 만들어 놓은 곳도 없다. 괌정부관광청이나 가이드북이 추천하는 관광지도 죄다 ‘지나다가 잠깐 들러 가는’ 정도지, 구태여 그걸 보러 찾아갈 이유는 없어 보이는 곳들이다. 그나마 그래도 남부가 낫다. 괌 북부는 미군 공군기지가 차지하고 있어 그 정도의 볼거리도 없으니까.

괌 관광을 하려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마음을 열고 허들을 낮추면 괌의 새로운 매력이 느껴진다. 괌 남부 지역의 풍경은 대부분 밋밋하지만, 관광객을 끌어모으려고 혈안이 돼서 잔뜩 치장하거나 입장권을 찍고 광고판을 걸고 호객하는 곳과는 또 다른 소박한 맛이 있다. 모자란 경관을 벌충하는 건 여유 있는 시간이다. 그래 봐야 반나절 코스에 불과하니 때때로 차를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느릿느릿 걸어서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게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는 요령이다.

괌 남부 관광의 대표적인 명소가 우마탁 마을이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 3월 6일, 처음 상륙한 곳이 바로 여기다. 이를 기념해서 마을 입구에 4m 높이의 마젤란 상륙 기념비를 세웠다. 마젤란 기념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도 작고 소박하다. 오히려 눈길을 붙잡는 건 기념비 양옆에서 활개 치듯 자라고 있는 두 그루의 노거수다. 역사적 장소를 홀대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원주민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싶다.

우마탁 마을에는 식민지 시대 스페인 총독의 여름 별장인 카사 레알이 있었다. 해마다 5∼6월 무렵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출발해 필리핀으로 향하던 무장 화물선이 여기 우마탁 마을로 들어와서 식수를 싣고, 인력이나 보급품, 은화 등을 내려주고 갔다. 8월이나 9월쯤에는 마닐라에서 밀가루와 동물, 씨앗과 같은 필수품을 운반하는 소형 공급선이 들어오기도 했다. 총독이 내려와 있는 동안, 무역선이 들고 났는데 그때 여기 우마탁은 수도나 다름없었다.

메리조 마을의 종탑과 조형물, 주민들이 코코넛 껍질에 원색을 칠해 만든 탑 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



# 괌 남부 대표 명소, 솔레다드 요새

우마탁 마을 남쪽 언덕 위에 괌 남부에서 가장 근사한 경치가 펼쳐지는 솔레다드 요새가 있다. 요새에 올라가 보면 우마탁 마을과 항구 일대, 그리고 너른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보자마자 거기에 초소를 만든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작은 공원이 된 요새 한쪽에는 돌로 지은 작은 초소가 있다. 요새 위에 돌로 지은 스페인 양식의 작은 초소 하나가 이곳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1800년대와 똑같은 석재 절단 공법을 사용해서 1994년에 복원한 것이란다. 부러 거칠게 지은 초소는 ‘화룡점정’과 같다. 관광객은 누구나 초소 앞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돌로 지은 초소가 없었다면 이곳이 이렇게 근사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솔레다드 요새는 ‘남부 관광’의 대표적인 목적지여서 가족이며 연인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사진을 찍는 가족과 연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초소 이름 ‘솔레다드(Soledad)’는 스페인어로 고독감이나 쓸쓸함, 우울함 등을 뜻한다. 딱 맞는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역선이 들어오는 시기를 빼고 솔레다드 요새에서 볼 수 있었던 건 망망한 바다와 침묵뿐이었을 테니까.

이 밖에 갯바위가 거친 파도를 막으면서 만들어진 천연 수영장이 있는 이나라한 마을과 1910년에 지었다는 종탑이 있는 메리조 마을, 괌에서 가장 높은 산인 람람산 중턱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전망대가 있는 세티 만, 동부 해안에서 가장 근사한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파고만 등이 남부 관광을 하면서 거쳐 가게 되는 곳들이다.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도 좋지만, 수영을 하거나 바비큐를 하는 현지 주민들을 격의 없이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롯데호텔 괌의 전경. 괌에서 유일하게 한국 호텔이 위탁 운영하는,

한국 자본 소유의 호텔이다. 한국식 서비스가 괌 호텔 서비스의 표준이 되고 있다.



# 휴양의 성패 좌우하는 리조트 선택

휴양지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건 ‘리조트 선택’이다. 한국인이 휴양지 리조트를 고르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한국인이 없는’ 호텔을 원하는 쪽이다. 서비스가 익숙하지 않다거나 불편한 건 흠이지만,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익명의 즐거움에다 해외에 왔다는 이국적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식 서비스를 하는 우리나라 호텔을 우선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이국적인 느낌은 좀 덜하지만 음식도 입에 맞고 서비스도 편하다. 둘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이다. 다만 최근 들어 뚜렷해지는 건 해외여행에서 ‘우리나라 호텔’을 찾는 여행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괌에는 롯데호텔 괌이 있다. 롯데호텔 괌의 전신은 일본의 오쿠라 그룹이 1972년 개관한 오쿠라 괌 리조트였다. 오쿠라 그룹은 이걸 2005년에 대만계 자본인 투몬베이리조트&스파LLC에 팔았다. 주인이 바뀌고 나서 호텔은 2008년 ‘오로라 리조트&스파’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6년쯤 지난 뒤 2014년 6월부터 롯데호텔이 대만계 자본과 손을 잡아 ‘롯데호텔 괌’의 이름을 앞세워 재개관하고 위탁 운영을 시작했다.

오쿠라 리조트가 오로라 리조트가 됐고, 오로라 리조트가 다시 환골탈태 수준의 리모델링을 거쳐 롯데호텔 괌이 된 것이다. 그리고 4년 뒤쯤, 우리나라의 KB증권이 대만계 자본으로부터 롯데호텔 괌 지분 100%를 사들였다. 모르긴 해도 롯데호텔의 안정적인 운영이, 한국 자본의 호텔 인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이로써 롯데호텔 괌은 소유도 한국 자본이고, 운영도 한국 기업이 하는 유일한 리조트가 됐다.

괌정부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괌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52만2000여 명. 이 중 한국인이 30만 명이다. 이 숫자를 보면 최근 다시 불고 있는 괌 여행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2010년 11%였던 괌의 한국 여행 시장 점유율이 2017년 45%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57%까지 올라간 것이다. 지난해 5월 괌을 강타한 태풍 ‘마와르’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롯데호텔은 빠르게 피해 복구를 마쳐 작년 8월부터 연말까지 예약률이 줄곧 70∼80%대를 유지했다.

롯데호텔 괌의 인기 비결 중의 하나가 음식이다. 맥주와 와인이 무제한에다 바닷가재와 스테이크, 완도산 전복구이 등을 내는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는 국내 호텔 뷔페 가격의 절반쯤이다. 워낙 ‘가성비’가 좋아서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호텔 투숙 관광객들도 첫손으로 꼽는 곳이다. 뷔페 시작 전에 레스토랑 앞에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다. 야외 수영장에서 진행하는 풀사이드 선셋 바비큐도 인기다.

롯데호텔 괌은 220실 규모. 바다 전망이 훌륭한 ‘오션 프런트 디럭스 룸’과 수영장이 바로 연결되는 ‘풀 액세스 스위트 룸’, 2개의 룸과 거실, 주방이 있는 ‘패밀리 스위트 룸’, 아이 동반 가족을 위한 ‘캐릭터 풀사이드 클럽 룸’ 등 객실 종류가 다양하다.



■ 또 다른 즐거움, 쇼핑

투몬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쇼핑시설이 몰려 있다. GPO로 불리는 ‘괌 프리미어 아울렛’과 마이크로네시아몰은 괌의 ‘양대 쇼핑몰’로 꼽히는 곳.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의류와 신발부터 가정용품까지 망라하는 창고형 할인매장인 ‘로스’다. 미국 본토에서 이른바 ‘마지막 땡처리’ 상품을 컨테이너로 받아다가 파는 곳이라는데, 잘만 고르면 횡재에 가까운 행운을 누릴 수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K마트’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가정상비약과 유아용품을 쇼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