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악기행 (4) | 북악 항산]
중원의 북쪽 관문…도교 두 신선이 머물러 글 사진 박정원 부장대우
절벽 사이 곳곳 아찔한 도관 들어서…만인벽립에 절새명산으로 불려
중국에서 오악을 평가하는 말이 현재까지 전한다.
“东岳泰山之雄(동악태산지웅),西岳华山之险(서악화산지험),中岳嵩山之峻(중악숭산지준),北岳恒山之幽(북악항산지유),南岳衡山之秀(남악형산지수)”
‘동악 태산은 남성같이 웅장하고, 서악 화산은 위태롭게 험하고, 중악 숭산은 높고 길고, 항산은 깊어 아득하고, 형산은 매우 빼어나다’는 의미 정도 되겠다.
북송 때 화가인 곽희(郭熙)는 그의 산수화론서인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嵩山多好溪(숭산다호계·숭산은 아름다운 계곡이 많다), 華山多好峰(화산다호봉·화산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많다), 衡山多好別岫(형산다호별수·형산은 아름답고 특이한 암봉이 많다), 恒山多好列岫(항산다호별수·항산은 아름답게 늘어선 암봉이 많다), 泰山特好主峰(태산특호주봉·태산은 특히 주봉이 좋다)’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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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인벽립으로 상징되는 중국 북악 항산에 절벽 곳곳에 도관이 들어서 있다.
- 청나라 문인 위원(魏源)도 오악에 대해 “恒山如行, 泰山如坐, 华山如立, 嵩山如臥, 唯有南岳獨如飛(항산여행, 태산여좌, 화산여립, 숭산여와, 유유남악독여비)”라고 했다. 항산은 걷는 것과 같고, 태산은 앉은 듯하고, 태산은 서있는 듯하고, 숭산은 누운 듯하다. 오직 남악이 홀로 나는 듯하다. 마치 신선이 노는 듯한 표현으로 오악을 노래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천지에 오악이 있거늘 항악이 북쪽에 위치해 있도다. 바위가 중첩만장(重疊萬丈)이고 괴이함을 알 수 없구나”라고 읊어 항산의 웅장한 기세를 잘 대변하고 있다.
중국의 오악 중 북악 항산(2,016.1m). 태항산, 원악, 상산이라고도 부른다. 역사적으로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송태조 등 황제들이 항산을 순시한 것으로 전한다. 이백, 가도, 원호문, 서하객 등 역대 시인묵객들이 항산을 유람하고 시와 글을 남겼다.
항산 바로 아래는 항산보다 1,000m나 더 높은 중국 불교의 최고 성지 오대산(3,061m)이 있다. 그런데 항산을 북악으로 지정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항산은 웅장하고 험난한 산세가 잇달아 기복을 이루며 동서로 250km나 산맥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108봉으로 알려져 있는 수백여 봉우리가 연봉을 이뤄 항산산맥이라고도 한다. 더욱이 그 형세가 험악해서 예로부터 군사상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중국 고대국가들은 일찌감치 암반 위에 보루와 진지를 구축해 놓고 군대를 배치해서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았다. 그 유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중국 기록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20여 명의 황제가 전쟁 때문에 항산 일대에 왔었고, 13명의 황제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항산에서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흉노와의 전쟁에 나선 조나라 이목, 진나라 목념, 양한시기의 곽거병, 돌궐 몰아내기에 나선 당나라 설인귀, 송나라 양연소, 몽골과 대항한 명나라 상우춘 등은 모두 항산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장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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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꼽히는 현공사가 취병산 절벽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밑에 이태백이 썼다고 전하는 ‘壯觀’이란 글자가 단연 눈에 띈다.
- 항산이 북악으로 지정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악은 알려지다시피 국경은 아니지만 영토를 확장하고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일종의 군사·정치적 영역이었던 셈이다. 중국의 황제들이 오악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이 땅은 내 땅이고, 내가 다스리는 영역”이라고 하늘과 만천하에 공표하는 의례행사를 치렀다. 이것이 바로 역대 왕조의 황제들이 오악을 찾은 배경이다.
중원의 문호, 화북의 요새로 비유
북악 항산은 오대산보다 지명도와 높이에서 떨어지지만 험준하고 지리적 위치는 절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항산 북쪽으로는 북방 유목민족의 집결지였고, 항산 남쪽으로는 한족이 생활하는 중원지역이었다. 다시 말해 북방 유목민족과 중원 농경민족의 천혜의 분수령이 되는 산맥이었다. 지금도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항산을 ‘중원의 문호, 화북의 요새’에 비유한다. 중원의 북쪽 관문으로서 수천 년 동안 국경을 지키는 천연요새 역할을 항산이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항산 안내문에도 ‘절새명산(絶塞名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항산이 북악으로 지정된 배경에 이어 항산이 어떤 산인가도 한 번 살펴보자. 중국에서 이런 말이 전한다. ‘도교는 몸을 다스리고,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고, 유교는 세상을 다스린다.’ 불교는 좌선이라는 수양을 통해 자성(自性)의 본래 성품을 깨닫는 반면 도교는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서 극한의 훈련을 통해 스스로 극기하는 과정을 거친다. 무협과 무림이 도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불교와 도교는 종교라는 본질은 비슷할지 모르나 접근하는 방식은 이와 같이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전통종교다.
불교가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왕족이나 귀족 중심적이라 하면, 도교는 서민중심적인 특징을 띤다. 중국의 서민들은 대개 도교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다. 다신론적 성격을 띤 우리의 샤머니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니다. 서민들이 도교의 도관에서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출세, 남편의 승진 등을 기원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의 웬만한 산에 도교의 도관이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민생활에 깊숙이 스며든 도교를 흔히 중국의 민족종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산은 도교의 제5 소동천(小洞天)에 해당한다. 도교의 핵심적인 산인 동시에 신선이 사는 장소인 것이다. 동천은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도교의 8신선 중 2신선의 근거지가 항산이다. 여동빈(呂洞賓)이 이곳에서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즐겼으며, 장과로(張果老)도 여기서 은거하며 수련을 쌓고 신선이 됐다고 전한다. 장과로의 신선상은 실제로 이곳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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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공사에서 현공사 앞에 있는 금룡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 여동빈·장과로 머무른 도교 제5 소동천
항산에 들어서면 ‘만인벽립(萬仞壁立)’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절벽에 새겨져 있다. ‘만 길 낭떠러지가 벽처럼 서있다’는 의미다. 그 만인벽립 사이에 도교의 도관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건물도 절묘하다. 도저히 사람이 사는 장소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절벽에 건물을 지어 수련하고 있다. 쳐다만 봐도 아찔하다. 도교는 이를 통해서 수양과 훈련을 쌓고 있는 것이다.
항산 바로 아래 있는 중국 불교 최고 성지인 오대산은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띤다. 도교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담하면서 안기고 싶은 그런 포근한 산이다. 오대산 외 불교 4대 성지에 속하는 아미산, 구화산, 보타산 등도 오대산 정도는 아니지만 비교적 육산에 가까운 산세다. 한마디로 도교의 산이 만인벽립이라 한다면 불교의 산은 우리의 지리산과 같이 부드러운 심산유곡이다.
오악은 또한 오행(五行)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북악 항산은 오행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산 모양을 오행과 연관시켜 수, 화, 목, 금, 토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수체(水體)의 산은 봉우리들이 물결처럼 밋밋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모양을 가리킨다. 화체(火體)는 불꽃처럼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바위산이다. 합천 가야산이나, 영암 월출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목체(木體)는 붓의 끝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산이다. 보통 문필봉(文筆峰)으로 부르는 산이다. 금체(金體)는 바가지나 철모처럼 둥그렇게 생긴 모습이다. 토체(土體)는 테이블이나 두부처럼 평평한 모습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있는 ‘테이블 마운틴’이 토체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미 답사를 끝낸 중악 숭산은 전형적인 토체의 산, 즉 테이블마운틴이었다. 숭산은 봉우리라기보다는 평평한 평지가 끝없이 이어져 중원을 에워싼 모습을 보여 줬다. 어떻게 산봉우리가 저렇게 평평할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반면 서악 화산과 남악 형산은 전형적인 화체의 산 형세를 띠었다. 우뚝 솟은 정도가 아니고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난립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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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항산 회선루 올라가는 길에 아찔한 절벽에 도관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을 어떻게 건립했는지가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는지가 궁금할 정도다./ 항산 항종전에 신선들이 놀다가 갔다는 회선부가 있다. 동천복지도 눈에 띈다.
- 항산도 형산과 화산 정도는 아니지만 화체의 산에 가까우면서 목체의 형세도 띠고 있다. 한국의 산처럼 화강암으로 된 바위덩어리 산이 아니라 석회암으로 된 산봉우리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마치 장벽마냥 아주 웅장하게 다가왔다. 따라서 중국의 오악은 중악 숭산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화체의 산 형세를 띤 특징을 뚜렷이 보여 줬다.
구천궁·순양궁·항종전 등 들러
화체의 산이자 만인벽립의 산 북악 항산으로 올라가보자. 버스가 거의 1,500m 가까이 올라간다. 그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수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다. 어제까지는 날씨가 괜찮았으나 아침부터 흐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비까지 내린다. 낭패다. 도대체 주변을 살필 수 없을 정도로 조망이 엉망이다.
가이드는 30분 남짓 걸어가면 구천궁(九天宮)이 나온다고 한다. 기상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구천궁에서 회선부와 과로동까지 가서 하산하기로 했다. 구천궁은 도교의 신선인 여동빈과 장과로가 묵었던 곳이다. 청나라 때 민간신앙에서 가장 숭배한 3대신은 관제(관우)와 여동빈, 관세음(불상)이다. 그만큼 여동빈은 민간신앙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특히 여동빈은 항산이 있는 산서성 남부 지역 출신으로 더욱 숭배대상이었다.
여동빈의 호는 순양자(純陽子). 순양이라는 궁이나 전은 전부 여동빈을 모신 사당으로 보면 틀림없다. 순양은 양기를 완전 회복한 상태를 말한다. 이는 도교에서 신선이 되면 완전한 양의 상태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순양은 그 자체가 완전한 신선이라는 의미다. 도교나 불교에서 일출을 중요시하고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며 기도하는 행위는 수련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태양의 양기를 체내에 흡수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중국에서 동쪽을 최고로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악지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곳에도 당연히 도교 8신선 중의 한 명인 여동빈을 모신 순양궁(純陽宮)이 있다. 궁이나 전(殿), 묘(廟), 사(寺) 등과 같은 건물이 이름을 달리하며 여기저기 눈길을 끈다. 구천궁 옆에는 관우를 신으로 모신 관제묘도 있다. 장군 관우는 호국신으로 이미 신격화됐으며, 한국에서까지 산신으로 숭배되고 있을 정도다.
이윽고 항종전(恒宗殿)에 이르렀다. 성인 키의 절반쯤 되는 크기로 항종(恒宗)이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보자면 ‘항상 근본이 되라’는 뜻이겠지만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법하다. 가이드도 뭔 말인지 모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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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3대 석굴 중의 하나인 운강석굴이 1㎞가량 펼쳐져 있다.
- 도교의 도관에 머무는 도사들은 3~5년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표주(漂周)라고 한다. 표주는 불교에서 말하는 탁발과 비슷한 과정이다. 돈 한 푼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도교에서 표주를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의약에 관한 기술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사주팔자를 보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학문이 탁월해야 한다. 이를 갖춰야 굶어죽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도사들은 봇짐에 침과 약재 등을 항상 넣고 다닌다. 도교에서는 표주를 해야만 사람이 겸손해지며 세상사를 간파하게 된다고 한다. 세상물정을 모르면 엉터리도사라고 한다.
항종전에서의 앞쪽으로 확 트였다. 하지만 잔뜩 구름 낀 날씨에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조망이 영 시원찮다. 옆으로 만인벽립 절벽 사이에 있는 도관은 가히 기가 막힌다. 도관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 사이 도관 수만 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어떻게 저런 자리에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상상을 불허한다. 저런 곳에 도관이 있어야만 몸을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스친다. 일부 도관은 너무 위험해서 아예 접근금지다.
신선이 춤추며 모이던 회선부도 눈에 띄어
항종전이 북악대묘다. 이곳은 일종의 선유동(仙遊洞)이다.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벽곡, 즉 생식만을 하는 도사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정말 속세와는 담 쌓고 사는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다.
항종전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회선부(會僊府)가 있다. 신선이 춤추며 모이는 장소란 의미다. 옆에는 ‘會仙府’라고도 쓰여 있다. 바로 뒤 건물 입구 현판에는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적혀 있다. 신선들이 머무는 장소라는 말이다. 온통 신선들뿐이다. 나도 덩달아 신선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이다. 마침 구름도 잔뜩 끼고 비바람도 불어 더욱 묘하다.
항종전 주변 천봉령 자락 절벽에 온갖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만인벽립뿐만 아니라 ‘天下名山(천하명산), 絶山通天(절산통천)’ ‘雲中勝覽(운중승람)’ ‘天開神秀(천개신수)’ ‘瞻天仰聖(첨천앙성)’ 등이 눈에 띈다. 각석된 글자를 보더라도 예사롭지 않다. -
정상 천봉령으로 오르는 길에 도교의 신선인 장과로가 동굴에서 수련했다는 ‘果老洞(과로동)’, 여동빈이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즐겼다는 ‘금기대(琴棋臺)’ 등이 있으나 비바람 부는 날씨에 도저히 갈 수 없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30분 남짓 걸린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하산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변방 제일의 산’ 북악 항산. 이곳이 뚫리면 중원을 잃는다고 예로부터 전한다. 중국 역사에 ‘(항산) 안문관(雁門關)을 얻으면 중원을 얻고, 안문관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말이 있다. 또한 위나라 조조는 “중원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라고 했다. 중원을 얻고 항산 안문관을 잘 지키면 천하를 얻게 된다. 그 중심에 북악이 있다. 수 백리 구불구불 이어진 항산 산맥에 북악대묘가 있는 곳에서 ‘만인벽립’ 하나밖에 보지 못한 사실이 못내 아쉽지만 잔뜩 구름 낀 항산 절벽에 도교의 신선을 만난 듯한 묘한 감상은 그 나름의 수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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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운강석굴의 불상들.
-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 ‘현공사’
‘하늘에 걸려 있는 사찰’이란 뜻… 항산 자락 절벽 중앙에 1,500여 년 지탱
‘하늘에 걸려 있는 사찰’이란 뜻의 현공사(懸空寺). 항산의 남서쪽 자락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현공사는 북위(北魏)시대 요연(了然)스님이 서기 491년 건립했다. 전하는 설로는 북위의 도사 구겸지(寇謙之)는 “개소리나 닭소리 등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은 곳에 도관을 지으라는 꿈에서 본 터가 바로 이곳”이라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름이 현공사(玄空寺)였다. 이는 북악과 관련 있다. 오행에서 북쪽은 검은색을 상징하는 현무다. 검을 ‘玄’자를 그대로 사용해서 ‘玄空寺’라고 했다. 오악과 오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지금도 현공사 바로 아래 절벽에 ‘玄空庵’이란 각석이 희미하게 보인다.
현공사가 있는 항산 자락의 봉우리는 취병산이라고 한다. 마치 비취색 병풍같다고 해서 명명된 절벽이다. 취병산 절벽 중간 지면에서 약 50m 높이에 현공사가 이름 그대로 걸려 있다. 낭떠러지 암벽을 겨우 파고 들어가 건물을 지었다. 건물 칸수만 40개에 달한다. 3층 구조로 돼 있다. 이 3층 구조는 도교에서 말하는 천관, 지관, 수관을 의미한다. 천관은 복을 주고, 지관은 죄를 사면하고, 수관은 액을 없앤다고 한다. 또 도교, 불교, 유교 3교를 아우르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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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강석굴의 불상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멀리서 보면 현공사가 마치 21개의 나무기둥에 의지한 채 절벽에 매달린 것 같지만 사실은 바위 속에 대들보를 160도 각도로 박고 그 힘을 지탱해서 건물을 지었다. 지세를 이용한 역학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상단의 벼랑이 툭 튀어나와 우산처럼 현공사를 보호해 주고 있다. 벼랑의 틈에 위치해 태양의 직사광선을 적게 받는 것도 현공사가 1,500여 년 동안 보존된 이유이기도 하다.
조용헌 박사는 “도관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터”라고 칭송한다. “항산 자락이 빙 둘러싸고 맞은편 또 다른 자락이 태극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중간으로는 물이 흘러 완벽한 산태극 수태극 지형”이라는 것이다. 이는 절벽 중간에서 기운을 그대로 받고 앞에서 막아 주는 기운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공사는 처음에 도관이었으나 나중에 불교 사찰로 바뀌어 공중에 떠 있는 절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40여 개의 방을 가진 건물은 태을전, 관제묘, 관음전, 석가전, 삼관전 등 다양하게 있다. 유불선 3교를 아우르는 공자, 부처, 노자를 같이 모신 삼관전은 더욱 눈길을 끈다.
현공사 입구엔 ‘壯觀(장관)’이란 두 각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태백이 놀러왔다 현공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해 글자를 남겼다는 말도 전하고, 이태백이 너무 놀라 그냥 있을 수 없어 ‘壯’자 옆에 콤마를 찍었다는 설도 전한다.
타임지 선정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인 현공사는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완벽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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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공사 삼관전에 노자, 부처, 공자의 상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중국 3대 석굴 ‘운강석굴’
고대 불교미술의 화려함의 극치 보여 줘
중국 3대 석굴은 운강석굴(雲崗石窟)과 용문석굴, 그리고 돈황석굴이다. 여기에 중국 전통 불교미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석굴들은 대개 4, 5세기에 조성되기 시작, 짧게는 60여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다. 몇 세기 동안 석굴의 불상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왕조에서 대를 이어 조성했다. 따라서 양식의 차이도 조금씩 나타난다.
항산 인근에 있는 운강석굴이 가장 먼저 조성되기 시작했다. 북위 시대인 서기 460년 즈음이다. 이어 용문석굴이 역시 북위시대인 서기 490여 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중국 고대 불교문화의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 돈황석굴은 당나라 시대인 서기 7, 8세기쯤 조성됐다. 이 석굴들은 쳐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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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병산 절벽 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현공사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다.
- 그중 최대 석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운강석굴이다. 중국 산서성 대동에 있는 운강석굴은 252개 석굴과 5만1,000여 개의 석상이 5~6세기 중국 불교석굴의 위업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운강석굴은 중국 황실의 후원 아래 조성되면서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진 불교의 종교적 상징예술이 중국 전통문화와 성공적으로 융합되었다.
운강석굴의 석상들은 460년부터 525년까지 약 60년에 걸쳐 완성됐다. 이 기간은 북위 왕조의 불교 석굴예술 발전의 절정기로 기록된다.
운강석굴의 조성기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눠진다. 460~465년까지 초기, 471~494년까지 중기, 494~525년까지 말기로 나눌 수 있다. 494년 효문제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양식이 바뀐다. 이후엔 민간 주도로 불상이 자유롭게 제작됐다.
조용헌 박사는 이를 두고 “국립박물관에서 민속박물관으로 바뀌는 단계”라고 말하며 “운강석굴은 야외 캔버스에 자연갤러리”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초기에 만들어진 석굴은 5개의 주 동굴로 이뤄져 있다. 장엄하면서도 단순한 이 석굴들은 승려 담요의 지휘 아래 만들어져, 그의 이름을 따서 ‘담요오굴’이라 한다. 담요스님이 석굴의 효시가 되는 셈이다. 고대 인도풍의 초가를 본떠 만든 아치형 지붕이 있다. 또한 각각의 굴마다 문과 창문이 있다. 석굴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불상이 석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외벽에는 1,000여 개의 불상이 조각돼 있다.
중기에 이르러 운강석굴은 한나라 양식으로 발전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 왕조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자 조각상의 모습도 조금 변화한다. 석굴들은 일반적으로 네모지게 설계됐고, 정면과 후면에 방이 있는 형태가 많다.
말기의 석굴들은 석굴 지역 서쪽인 용왕사 계곡에 있다. 이 시기에는 모두 200개가 넘는 석굴과 벽감들이 만들어졌다. 조각들은 내용이 단순해지고 형태도 양식화돼 보이는 반면, 섬세함과 우아함이 더해졌다.
- 전체 길이는 약 1㎞에 달하며, 석굴의 총수는 42개다. 제20동의 노좌대불은 높이가 무려 14m이고, 제19동의 대불은 약 17m에 이른다. 석굴의 융성기는 486년 전후. 이 무렵의 불상은 중국 고대의 복제(服制)를 모방했다. 신체보다는 복제 표현에 유의했고, 얼굴은 길며 매우 신비롭다.
이 석굴들은 북위의 문화사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인도·중앙아시아와의 문화적 교류 및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생성의 자취를 입증하는 중요한 문화적 유적이다.
찾아가는 길
항산은 산서성 훈원에 있다. 인근에 공항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북경공항을 이용하는 편이 가장 가깝고 빠르다. 대체적으로 북경에서 대동으로 가서 항산을 방문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항산 주변 오대산과 운강석굴 등도 함께 가볼 만한 코스로 꼽힌다. 계절은 4~10월, 즉 여름과 가을에 방문하는 게 일반적이다.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려 오대산은 아예 방문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여름엔 최고 40℃, 겨울엔 최하 영하 40℃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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