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의 영지 기행_04

醉月 2012. 4. 25. 13:08

해풍의 水氣와 금산의 火氣가 뭉쳐 있는 불교 관음성지 남해 보리암

 

섬은 물을 건너야 갈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물을 건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커다란 자연의 장애였다. 물은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저승에 가려면 삼도천(三途川)이라 하는 강물을 건너야 한다. 이 삼도천을 건너면 저승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승에 되돌아 올 수 없다. ‘물 건너갔다’가 이 뜻이다. 삼도천을 건너가다가 중간에 돌아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오면 이승에서 살아나는 수가 있다. 임사(臨死) 체험자들의 이야기이다.

물이 등장한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그 강물이다. 은하수를 건너야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지상의 나일강이 하늘의 은하수와 같다고 생각했다. 나일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 차안에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속에 배를 만들어 사자의 미라와 함께 보관했던 것이다.

주역의 괘(卦)에 보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큰 강을 건너기가 어려웠다. 큰 강을 건넌다는 것은 상당한 고비를 겪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번 고생을 해야만 일이 성취된다는 암시가 있었다. 인생의 고비가 바로 물을 건너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섭대천’ 말고 물 건너는 일에 대하여 또 하나의 메시지가 주역에 있는데, 그것은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수(水)가 위에 있고, 화(火)가 밑에 있는 형상을 상징한다. 머리는 차고 아랫배는 따뜻하다. 이렇게 되면 건강하다. 반대로 머리는 뜨겁고, 아랫배는 차면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된다. 미제(未濟) 사건이 되는 것이다. 기제는 물을 건너는 상황이고, 미제는 물을 못 건너는 상황이다. 


▲ 금산 관음봉 정상에서 보리암과 남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물을 건너 섬에 간다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그리고 이섭대천이요, 수화기제에 해당되는 것이다. 물을 건너면 차원의 변화가 수반된다. 고대사회에서 육지에 살다가 섬에 간다는 것은 삶이 혁명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된다. 즉 종교적 구원을 성취하려면 섬에 가야 했던 것이다. 섬에 가야 도를 통한다고 보았던 셈이다.

육지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번뇌를 다 털고 바다를 건너 섬에 들어가면 완전히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귀신은 물을 건널 수 없다. 번뇌도 물을 건널 수 없다. 실타래 같은 인연들도 물을 건너면 털어 버릴 수 있다. 귀신, 번뇌, 인연 이 3가지를 모두 끊어 버리려면 섬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교에서는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이 모두 바다에 있는 섬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3개의 섬을 중시했다. 강화도, 남해(島), 그리고 제주도이다. 제주도에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이 있었다. 바로 한라산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너무 멀었다. 배를 타고 접근하기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위험부담이 적었던 섬이 바로 강화도와 남해(도)였다. 이 두 섬은 육지와 아주 가깝다. 더군다나 고려시대에는 이 두 섬에서 팔만대장경을 찍어 냈다. 남해에는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이라는 팔만경 제조 분점이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가 팔만대장경 제조 본점이라면 남해는 분점이었던 셈이다. 팔만대장경은 시간이 많고 심심해서 만들었던 게 아니다. 세계 최강국인 몽골이 쳐들어왔으니 어떻게 이 고비를 넘는단 말인가. 고려가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몸부림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구원의 신물(神物)이 바로 팔만대장경이었던 것이다. 이 대장경을 만든 장소가 ‘강화도’와 ‘남해’라는 2개의 섬이었으니, 그 의미가 심장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 금산 보리암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스님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고, 바로 그 옆에 삼층석탑이 있다.

홍련암·보문사와 더불어 영험 도량

강화도(江華島)는 이름 그대로 ‘강의 꽃’이다. 임진강, 예성강, 한강의 물이 서해로 빠지면서 강화도를 거쳐 나간다. 이 세 강의 기운이 강화도에 모인다. 육지에서 뗏목을 띄워도 결국 강화도로 모이게 되어 있다. 바닷물과 육지의 강물이 서로 섞이는 곳이니만큼 묘용이 일어나게 된다.

남해도 마찬가지이다. 섬진강의 강물이 남해를 거치게 되어 있다. 섬진강은 바로 지리산을 아래쪽에서 감아 돌아 나가는 강이 아니던가. 지리산의 기운이 남해에 모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섬진강에 뗏목을 띄우면 광양을 거쳐 결국 남해에 도착한다. 그러면서도 육지와 가깝다. 지금은 남해대교가 있어서 육지가 되었지만, 다리가 없던 시절에도 남해는 하동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건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남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물을 건너야 도달하는 종교적 이점, 그리고 금산(錦山)이라 하는 영발이 강한 산이 있는 영지였다. 강화도에 마니산이 있다면 남해에 금산이 있다. 마니산에는 단군이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이 있다면, 금산에는 보리암이 있다.


금산 보리암은 불교의 관음 성지이기도 하다. 동해안에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에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에는 금산 보리암이다. 그만큼 영험한 도량이다. 왜 영험이냐? 바위에서 온다. 바위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이 광물질은 지자기(地磁氣)를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사람이 이러한 바위에 앉아 있거나 잠을 자면 지자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기(地氣)를 받는 것이다. 인체에는 혈액 속에 광물질인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다. 미네랄 가운데 중요한 성분이 바로 철분이다. 철분이 부족하면 빈혈이 온다. 피가 부족하면 보혈제를 먹는데, 철분을 보충하는 보약이다. 인체 내에는 철분이 있기 때문에 바위에 앉아 있으면 지자기가 피 속으로 들어온다. 지기가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 기암절벽 위에 보리암이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를 많이 받으면 일단 몸이 건강해지고, 그 다음에는 영성(靈性)이 개발된다. 지기가 뇌세포를 통해 뇌신경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면 종교체험이 온다.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거나, 산신이 나타나거나 하느님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세계 어디를 가거나 바위산에는 수도원이나 종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1,000년 넘는 영험한 수도원들은 하나같이 바위산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커다란 바위산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영험한 기도처가 있다. 더군다나 커다란 바위산이 주변에 호수나 바다가 있으면 더욱 영험해진다. 바위에서 분출되는 화기와 물에서 나오는 수기가 서로 어우러져 영기(靈氣)를 조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이며, 남해 금산은 이러한 수화기제의 전형적인 도량이다.

남해는 전라도의 진도와 크기가 비슷하다. 넓은 섬이다. 상당수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섬이다. 그런데 이 남해에는 금산(錦山)이라는 명산이 우뚝 솟아 있는 점이 아주 이채롭다. 산의 높이가 701m이다. 강원도 같은 산간 지역에서 면 높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바다 해수면의 높이에서 701m는 아주 높은 산이다. 그런데다가 온통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바위의 크기도 큼직큼직하다.


보리암이 자리 잡고 있는 뒤편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바닥도 암반이고, 뒤편도 암반이고,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영지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터인 것이다.

고려가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이 남해에서 만들어 낸 이유도 좁혀 들어가면 이 금산의 영험함과 관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성계도 조선조 개국을 위해 이 금산에서 기도했을 것이다. 이성계가 기도할 때는 고려 말이다. 고려 말에 이미 기도객들 사이에서는 남해섬과 금산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거대한 해골처럼 보이는 기이한 동굴이 보리암 올라가는 자락에 있다. 이 쌍홍문이 있음으로 보리암 터는 동천의 자격을 갖추었다.
보리암 종각(鐘閣) 옆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던 자리가 있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눈앞에 두고 살았던 무장 이성계는 종교적 영험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죽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야만 신비를 인정하는 법이다.

아무튼 이성계가 어떻게 남해 보리암에까지 가서 기도할 생각을 했을까. 짐작컨대 왜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서 이 지역에 자주 왔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남해 보리암이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성계는 전북의 마이산 은수사(銀水寺), 임실의 상이암(上耳庵), 그리고 회문산의 만일사(萬日寺)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일대는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이 전개되었던 남원 운봉 지역과 가깝다. 이 세 절도 역시 왜구와 격전을 치르면서 지형지물을 살피는 과정에서 알았을 것이고, 역시 영험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불교 유적지지만 仙家 유적지이기도

남해 보리암은 불교의 유적지이지만, 그에 앞서 선가(仙家)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보리암 암반 사이에 존재하는 해상사호(海上四皓)의 전설이 그것이다. 임진왜란 무렵에 남해에는 4명의 신선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바닷가의 섬에서 노닐었던 모양이다. 해상에서 주로 머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해상사호’이다. 해상사호의 본거지가 남해도였고, 금산 보리암 일대의 바위동굴이었던 모양이다. 남해에는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통달했던 이 해상사호의 가르침을 받은 3명의 비구니가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는 전설이 있다. 선가(仙家)는 잡배들이 접근할 수 없고, 약간의 먹을 것이 있고, 기운이 강한 섬을 좋아한다. 남해는 선가에서 좋아할 만한 섬이고, 금산은 그 전형이다. 금산은 1년 중에 반절은 항상 운무에 싸여 있으니까 신선들이 종적을 감출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보리암이 선가의 유적지였다는 단서 하나는 절 안에 있는 ‘간성각’(看星閣)이라는 이름이다. ‘별을 바라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왜 별을 바라보는가? 도가(선가)에서는 별을 중시한다. 별에서 에너지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가는 인체의 기경팔맥(奇經八脈)에서 돌아가는 운기(雲氣)를 중시한다. 운기가 잘 되어야만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고 나아가서는 도를 통해서 신선이 된다고 여겼다. 운기가 안 되면 꽝이다.

그런데 이 인체의 운기는 미세한 경지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는다. 바위와 물도 그렇지만, 더 나아가면 별이다. 대표적으로는 태양과 달이다. 특히 달이 그렇다. 보름달이냐 반달이냐, 초승달이냐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자장(磁場)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여성들의 월경도 달의 움직임과 관련되지 않던가! 보름달이 뜨면 강하게 달 기운이 들어오므로 이때는 호흡법도 바뀐다. 달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호흡법을 도가에서는 월체납갑법(月體納甲法)이라고 부른다. 영화 ‘씨받이’에서 보면 강수연이 밤에 마당에 나가 달 정기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달의 정기를 깊이 호흡을 해서 받아들여야만 좋은 자식을 잉태한다고 믿었던 우리 선조들의 민속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달보다 더 나아가면 별인데,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28숙(宿)도 여기에 해당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1년은 28수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7개의 별이 칠성인데, 이 칠성이 춘하추동으로 4번 돌면 28개의 별을 회전하는 셈이다. 28수와 북두칠성 다음으로 특별한 별이 삼태성(三台星)과 노인성(老人星)이다. 노인성은 겨울에 남쪽 하늘에 뜨는 별이다. 일생동안 노인성을 세 번만 보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노인성은 장수를 상징하는 별이었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선가에서는 이 노인성을 유난히 사랑했다. 옛 그림에도 보면 이 노인성은 머리 위쪽이 불룩 올라온 노인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노인성은 여간해서 보기 어려웠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별이었다. 금산의 보리암도 노인성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이다.

‘간성각’ 이란 명칭은 필자가 생각건대 이 노인성을 보는 선가의 풍습을 담고 있는 이름 같다. 보리암에서 노인성을 보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보리암을 올라가는 길이 새로 나서 자동차로 상부까지 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걸어가는 코스에서 보리암에 접근하다 보면 사람의 두개골같이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는 이 바위에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구멍이 뚫린 두 개의 바위굴이 있다. 흡사 사람의 두 눈같이 생겼다. 보리암에 들어가려면 이 바위굴을 통과해야만 한다. 밑에서 이 구멍 뚫린 바위를 보면 거대한 해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바위굴을 쌍홍문(雙虹門)이라고 부른다. 비범한 장소, 신성한 장소에 진입하려면 이처럼 기이한 동굴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쌍홍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보리암이 보통 영지가 아님을 말해 준다. 신선들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고 하는데, 이 쌍홍문이 있음으로 해서 보리암 터는 동천의 자격을 갖추었다.

보리암은 ‘독만권서’(讀萬卷書)를 하고 나서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나섰을 때 우선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르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한국의 4대 관음성지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 그리고 남해의 보리암이다. 불교도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기도터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도가적인 취향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다.

영발이 있는 기도객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현재 보리암의 석조 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지점이 가장 기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금산에서 내려오는 바위기운이 뭉쳐 있는 지점이다. 1년이면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소문난 기도터이면서도, 기운이 크게 오염되지 않는 이유는 해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그 해풍에서 오는 수기와 금산의 화기가 뭉쳐 있는 지점이 바로 이 관음상 앞이라고 하니까,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