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遊仙辭賦 연구
Ⅰ. 머리말
본 연구는 조선 전기 제가의 문집에 실려 전하는 遊仙辭賦 자료를 소개하고, 조선조 지식인 집단의 사고 속에 투영된 도교적 상상력의 실체와 의미를 살펴 보려는데 그 목표를 둔다. 유선문학은 여러 신선전설과 고사를 바탕으로 고대인의 상상력이 아로새겨진 낭만적 색채가 짙은 문학이다.1) 유선시에 비해 호흡이 긴 유선사부는 선계 묘사가 구체적일 뿐 아니라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작가 의식도 명료하게 드러나 있어, 이의 검토를 통해 우리는 유선문학이 갖는 문학사회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선사부는 兪好仁(1445-1494)‧南孝溫(1454-1492)‧朴祥(1474-1530)‧沈義(1475- ? )‧李荇(1478-1534)‧李珥(1536-1584)‧許筠(1569-1618)‧趙希逸(1575-1638) 등 주로 조선 전기 문인들이 남긴 15편 내외의 작품이 여러 문집에 실려 전한다. 편수는 많지 않으나, 이들 작품들은 조선 전기 屈原‧莊子風의 수용 양상과 도교 인식의 층위를 잘 보여준다. 유학의 이념이 절대적 권위를 지녔던 조선조 사회에서 이러한 작품의 존재는 자못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은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유선사부는 15C 후반에서 16C 전반에 걸쳐 주로 창작되었다. 16C 후반 이후 17C 초반에는 학당풍의 성행과 함께 여러 작가에 의해 500수가 넘는 유선시가 대량 창작되었다. 유선사부는 17세기 유선시의 성행에 선행하여 도교적 상상력의 한 모식을 제시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유선사부의 서사구조는 이른바 몽유록계 소설 양식과 동일하며, 성행 시기나 작자층 또한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한다.2)
유선사부에 담겨 있는 《초사》 계열의 慷慨之志의 표출이나 방외적 逸脫의 자취는 겉으로 표방하고 있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유선 행위와 표리의 관계를 형성한다.3) 말하자면 중세적 현실의 좌절과 갈등에서 빠져 나오려는 통로를 이들은 유선의 방식을 통해 발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유선사부의 작품 구조와 작품의 개별적 양상, 작가의식 등에 대한 집중적이고도 심도있는 분석은 중세 봉건 지식인 집단에 있어서 갈등 극복의 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 줄 것이다. 그간 사부문학은 연구가 극히 부진한 형편이었다. 문식에 치우친 양식적 특성 때문이었지만 전 시기에 걸쳐 활발히 창작된 문학 양식인만큼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4) 본고가 이런 면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Ⅱ. 자료 개관
본고에서 검토 대상으로 삼은 작가와 작품 및 경계는 다음과 같다.
兪好仁(1445-1494)
〈夢遊靑鶴洞辭〉: 객과 내가 廣寒殿에 올라 扶桑의 아침 햇살을 털고 沆瀣를 마시며 노닐다 崑崙山으로 건너 가니, 西王母가 맞이하여 瓊漿을 따라주며 환영하고, 다시 浮丘仙人의 方丈仙館에 들러 노닐다 天闕의 紫宸殿에 다달아 玉皇을 뵙는다. 융숭한 대접과 함께 仙訣을 받아 하례하고 물러나는데, 닭울음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이에 인생의 큰 뜻을 깨달아 是非를 잊고 物外에 노닐며 烏有子로 자임하였다. (《뇌溪集》 7:37b5))
南孝溫(1454-1492)
〈大椿賦〉: 꿈에 나비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 帝庭을 향하던 길에 九霄에서 大人先生을 만나 깨우침을 청하니, 大人先生은 《莊子》〈逍遙游〉에 나오는 大椿의 비유를 들어 일깨워 주었다. 이에 큰 깨달음을 얻어 사례하였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달빛만 휘헝하였다. (《秋江集》 1:4a)
〈藥壺賦〉: 客이 있어 세상의 어지러움을 겪은 뒤, 秘術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沆瀣를 마시고 正陽의 精液으로 양치하고 丹藥을 먹고 眞經을 외워 신선이 되었는데, 仙境을 노닐다가 藥翁과 만나 그의 인도에 따라 藥壺로 들어가니, 仙界의 황홀한 경치가 펼쳐지므로 크게 놀라 무릎을 꿇고 竗眞訣을 얻어 長生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藥翁은 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이 上帝의 신하였으나 《黃庭經》을 잘못 읽어 인간에 귀양하였음을 말하며, 金丹을 추구함의 허망함을 길게 설명하고, 無爲의 법으로써 鉛汞의 수련을 닦아 太初와 이웃하고 無極을 벗하는 內丹을 수련할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에 藥翁에게 사례하고 물러나왔다. (《秋江集》 1:7a)
〈得至樂賦〉: 내가 遠遊하며 至樂의 소재를 찾아 若華와 瓊實을 먹으며, 崆峒‧崦嵫‧月窟‧扶桑을 두루 다녔으나 至樂의 門을 알지 못해, 司命神을 찾아가 답답하고 울적한 심회를 하소연하였다. 이에 司命神은 一秘訣을 주는데, 至樂은 자기에게서 구할 것이지 어찌 몸 밖에서 구할 수 있겠느냐는 가르침이었다. 이에 활연히 깨달아 옛 고향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였고, 다만 내 자신 至樂의 비결을 깨달아 至樂의 즐거움을 누리며, 無極과 벗을 삼아 한 생을 살리라 다짐하였다. (《秋江集》 1:12b)
朴祥(1474-1530)
〈夢遊〉: 支城에서 죄를 기다리던 중, 낮잠을 자다가 滓溟洪濛의 땅에 들어가 神馬를 타고 氣母를 찾아가 雲將을 길잡이 삼아 三皇을 찾아가 마음의 의혹을 차례로 물었다. 이후 五帝 및 春秋 戰國의 인물들과 만나 治亂興亡의 자취를 엿보았다. 다시 崑崙山 瑤池로 가서 麻姑와 西王母의 대접을 받다가 《黃庭經》을 잘못 읽어 眞人의 무리에서 떨려나 下界로 내려와 中原에 이르니, 천하는 또 한번의 어지러운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천백년의 일을 잠깐 동안에 역람하고서 문득 잠에서 깨어나자 정신이 멍하여 허공을 향해 神君에게 물어보니, 神君은 달통한 뜻으로 일러주어 死生의 집착에서 벗어나 逍遙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이에 모든 집착을 덜어 버리고 《莊子》를 꺼내 읽으며 마음을 푸른 하늘 붕새의 등 위에서 노닐게 하였다. (《訥齋集》 別集 1:1a)
沈義(1475- ? )
〈廣寒殿賦〉: 무료하던 중 꿈에 仙都에 다달아 換骨脫胎 하여 仙界의 황홀경을 두루 섭렵하고, 인간 세상을 굽어보니 마치 하루살이와 같이 보잘 것 없이 보였다. 온갖 근심이 다 사라져 한 없는 기쁨에 잠겨 있는데, 白鸞의 안내로 仙娥의 이끎을 받아 성대한 白玉宴에 초대되어 紫霞觴을 마시고 춤추며 天上의 佳會에 노닐다가 문득 잠을 깨었다. (《大觀集》 1:8a)
〈山木自寇賦〉: 큰 뜻을 품은 선비가 帝鄕을 그리며 오동나무에 기대 쉬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異人의 안내로 山林의 사이를 逍遙自得 하였다. 異人은 선비에게 逃禍의 說을 일러주면서 《莊子》〈山木〉편의 비유를 끌어와 無用이 有用이 되고, 有用이 無用이 되는 이치를 깨우쳐 주었다. 사람 또한 나무와 마찬가지로 재주 있고 도덕 있는 자는 그로 인해 스스로를 해치니 지혜와 재능은 몸을 해치는 도끼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에 크게 깨달아 天地間의 一散人이 되어 광막한 벌판을 함께 헤매이다가 헤어져 이를 쫓으려다 깨어나니 한 바탕 꿈이었다. (《大觀集》 1:15a)
〈蟠桃賦〉: 生死의 부질 없음에 상심하여 上界의 仙府에 올라 瑤池를 지나는데, 西王母가 나를 인도하며 한 알의 神核을 주었다. 이를 먹으니 返眞하여 몸이 가볍게 떠올라 東溟과 海中을 두루 다니었다. 그 가운데 한 그루 異樹가 있는데 늙지도 않고 가지는 삼천리나 뻗어 있어 잠시 그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상쾌한 기운이 불어오더니 虙妃의 인도로 列仙의 淸班에 참예하여 蟠桃의 열매를 먹어 長生久視의 요체를 투득하였다. 이어 學仙의 비결을 듣고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니 九州는 毫末 같고, 東海는 一勺만 하였다. (《大觀集》 1:3a)
〈大觀賦〉: 天皇과 地皇이 無極翁과 더불어 드넓은 우주와 광막한 대지를 굽어보며 노닐다가, 天皇이 먼저 일어나 춤추며 노래하자, 地皇이 엎드려 이에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고, 無極翁이 이를 듣고 일어나 天地의 덕을 칭송하자, 天皇은 하늘로 올라가고, 地皇은 내려가며 無極翁에게 玄珠 九枚를 건네 주었다. (《大觀集》1:1a)
李 荇(1478-1534)
〈登瀛洲〉: 天風을 타고 中州를 굽어 보노라니, 丹丘의 羽人이 내게 樂土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곧 海上의 瀛洲였다. 봉황이 앞장 서고 神虯가 배를 호위하며 弱水를 건너 列仙에게 절하였으나, 그들은 내가 凡骨이므로 이곳에 잠시도 머물 수 없으니 빨리 나가라고 한다. 하여 仙界 群仙들의 놀이 장면과 仙境을 歷覽하고 돌아왔다.(《容齋集》 外集 26b)
李 珥(1536-1584)
〈空中樓閣賦〉: 어떤 사람이 超世高擧코자 하여 허공의 樓閣으로 올라가니 상하가 모두 아득하여 기댈 곳이 없었으나, 그 제도와 꾸밈은 참으로 황홀하였다. 이곳에서 노닐다 下界를 굽어 보니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이 어지러이 몰려다니며 다투고 있었다. 이에 정신을 차려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고 胸中의 太極을 희롱하고 彌天한 浩氣를 토해내며 自適하였다.(《栗谷全書》 拾遺 1:18b)
〈遊伽倻山賦〉: 仙界와 방불한 伽倻山 紅流洞에 들어가 황홀한 경관에 도취되어 노니는데, 날이 저물면서 정신이 어지러워 지더니 기운이 상쾌해지며 훨훨 날 것만 같았다. 객이 피리를 불자 山川과 鳥獸도 감동하여 흐느끼는듯 하더니, 설풋 든 꿈에 한 羽衣가 학을 타고 나타나 절하며 인간 세상의 수고로움을 위로하고 宿緣 있음을 말하므로, 내가 자세히 보니 新羅學士 崔孤雲인지라 아는 체 하자 羽衣는 단지 미소를 지으면서 거문고를 가져다가 絶世獨立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잠에서 홀연 깨어났다. (《栗谷全書》 拾遺 1:15b)
許筠(1569-1618)
〈夢遊練光亭賦〉: 赤虯가 끄는 수레를 타고 芝城에 가서 허공을 걸어 올라 珠宮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한가히 노닐며 沆瀣를 마시는데 紅鸞의 인도로 仙女가 마중 나와 瓊液을 올린다. 그리고는 三生의 묵은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함께 瑤京으로 가자고 하소연한다. 여러 신선들이 흥을 돋구는 가운데 流霞酒를 마시며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종소리에 놀라 깨었다. (《惺所覆瓿藁》 3:8a)
〈毁璧辭〉 : 불행했던 누이의 일생을 회고하고, 누이가 티끌 세상의 부질없는 인연을 마치고서 瑤鴨을 찾아 白玉樓를 逍遙하며 列仙과 함께 즐거이 노닐며, 구름을 타고 올라가 무지개로 깃발 삼고 난새로 수레 삼아 西王母와 瑤池에서 잔치할 때 三光은 그 아래에 벌리어 있으리니, 티끌 세상 굽어 보고 걱정을 누르면 어둡던 마음이 조화롭게 되리라는 願望을 담았다.(《惺所覆瓿藁》 3:13a)
趙希逸(1575-1638)
〈瑤池宴賦〉: 해가 저물어 가는 때에 周穆王의 잔치를 상상하자니 인간 세상의 일이 모두 시덥지 않아 三淸을 한번 가보아 九州의 塵態를 씻고자 하여 八龍이 끄는 수레를 몰아 千里를 지나 崐壤의 瑤池에 이르러 휘황한 경관에 도취되어 있노라니까 靑鳥가 와서 西王母의 도착을 알린다. 이윽고 온갖 神物의 호위를 받으며 王母가 나타나는데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西王母는 나에게 三生의 인연이 있어 먼 곳까지 귀하신 몸을 모시었다 하면서 龍脯와 鳳髓, 蟠桃와 杞漿 등의 진귀한 음식을 내왔다. 仙境을 앞에 두고 이를 즐기며 下界를 굽어 보니 이끼만 끼어 있고 티끌만 자옥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침이 다가오자 西王母는 서둘러 떠나고 瑤池의 잔치도 파하였다. (《竹陰集》 1:42b)
더 많은 자료가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일단 이들 8명의 작가가 남긴 15편의 작품만을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다.6) 작가별로는 沈義가 4편을 남겨 가장 많고, 南孝溫이 3편을 남겼다. 시기별로는 중종조에서 선조조에 이르는 시기에 주로 창작되었다. 각 작품은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유선사부 창작 주체들에게 이러한 구조가 이미 양식화 되어 수용되었음을 나타낸다.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入夢過程 |
仙界進入動機 |
遊仙處 |
仲介者 |
贈與物 |
下界俯瞰 모티프 |
謫仙 모티프 |
覺夢過程 |
夢遊靑鶴洞辭 |
無 |
無 |
廣寒殿 崑崙山方丈仙館 紫宸殿 |
西王母 浮丘仙人 玉皇 |
瓊漿 仙訣 |
無 |
無 |
有 |
大椿賦 |
有 |
無 |
九霄 |
大人先生 |
大椿之喩 |
無 |
無 |
有 |
藥壺賦 |
無 |
세상의 어지러움 을 겪은 뒤 秘術 을 배우 려고 |
仙境 壺中仙界 |
藥翁 |
竗眞訣 |
無 |
有 |
無 |
得至樂賦 |
無 |
至樂의 소재를 찾기위해 |
崆峒 崦嵫 月窟 扶桑 |
司命神 |
一秘訣 |
無 |
無 |
無 |
夢遊 |
有 |
無 |
滓溟洪濛 瑤池 |
氣母 三皇五帝 麻姑 西王母 |
達通之義 |
有 |
有 |
無 |
廣寒殿賦 |
有 |
無 |
仙都 白玉宴 |
仙娥 |
紫霞觴 |
無 |
無 |
有 |
山木 自寇賦 |
有 |
齊鄕을 그리워 하다가 |
山林間 |
異人 |
逃禍之說 |
無 |
無 |
有 |
蟠桃賦 |
無 |
生死의 부질없음을 상심타가 |
仙府瑤池 東溟海中 |
西王母 虙妃 |
學仙訣 |
有 |
無 |
有 |
大觀賦 |
無 |
無 |
宇宙 |
天皇 地皇 |
玄珠九枚 |
無 |
無 |
無 |
登瀛洲 |
無 |
無 |
瀛洲 |
丹邱羽人 |
無 |
無 |
無 |
無 |
空中 樓閣賦 |
無 |
超世高擧 하고자 |
虛空樓閣 |
無 |
無 |
有 |
無 |
無 |
遊 伽倻山賦 |
無 |
|
伽倻山 紅流洞 |
崔致遠 |
超世獨立 之歌 |
無 |
有 |
有 |
夢遊 練光亭賦 |
無 |
|
芝城珠宮 瑤京 |
仙女 |
瓊液 流霞酒 |
無 |
有 |
有 |
毁璧辭 |
無 |
죽은 누이의 넋을 위로하려고 |
白玉樓 瑤池 |
西王母 |
無 |
有 |
有 |
無 |
瑤池宴賦 |
無 |
인간세상의 일이 시덥지 않아 塵態를 씼으려고 |
崐壤 瑤池 |
西王母 |
龍脯 鳳髓 蟠桃 杞醬 |
有 |
有 |
無 |
Ⅲ. 遊仙辭賦의 서사구조
본절에서는 위 도표에 따라 유선사부의 서사구조를 일별해 보기로 한다.
遊仙辭賦에서 仙界는 대개 꿈을 빌어 夢中에 이뤄지므로 入夢과 覺夢의 액자가 삽입된다. 다만 入夢이나 覺夢 처리는 명시되기보다 상징적으로 처리되는 예가 많다. 혹 결미에서 覺夢만 제시하여 앞서의 遊仙행위가 실은 夢中事였음을 나타내는 경우도 꽤 있다.7) 仙界로의 진입은 꿈의 幻想을 빌지 않고서는 애초에 무망한 것이므로, 遊仙이 꿈을 빌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시적 화자가 仙界 진입하게 되는 동기는 대부분 현세의 삶이 가져다 준 갈등과 좌절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 역시 드러나 있지 않은 작품이 많다. 〈藥壺賦〉에서 南孝溫은 “下土는 흉악하고 거칠어, 大道는 날로 쇠미해가니, 秦나라 二世는 미미해지고, 漢나라 兩都 또한 쇠미해졌네. 세상 道 이와 같음 개탄하면서, 날 알아주는 이 없음 슬퍼하노라. 한낱 낮은 관리로 괴로움 겪으며, 남은 인생을 부치어 사네. 아침엔 동쪽 저녁엔 서쪽, 취해 살다가 꿈 속에 죽네. 下土凶荒, 大道日衰. 秦二世而靡靡, 漢兩都而陵夷. 慨世道之如彼, 悲無人以我知, 一椽酸辛, 殘生如寄. 朝東暮西, 醉生夢死.”라 하여 고통 뿐인 인생에 대한 혐오를 말하였고, 趙希逸은 〈瑤池宴賦〉에서 “지난날의 얽매임도 신물이 나고, 떠돌이 하루살이 인생 마음 상하네. 술동이 위에 뜬 굼벙이 같은 삶 탄식하며, 한 봄에 잠깐 깸을 꿈꿔 보았네. 厭局束於疇曩, 傷蜉蝣於逆旅. 歎醢鷄於甕盎, 夢纔警於一春.”라 하여, 하루살이 같이 덧 없는 現世의 삶에 대한 회의와 이를 벗어나기 위해 낭만적 상상의 날개를 펼쳤음을 말하였다. 또 〈蟠桃賦〉에서는 “생사의 부질 없음을 슬퍼하다가, 悲生死之浮休兮” 티끌세상을 벗어나 上界의 神遊를 체험하고 있다.
이들의 遊仙處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遊伽倻山賦〉에서처럼 伽倻山 紅流洞과 같은 구체 공간을 설정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에 속하고, 白玉樓‧廣寒殿‧仙都‧九霄‧月窟과 같은 천상 선계 공간과, 崑崙山‧崆峒‧崦嵫‧東溟海中‧瀛洲‧芝城‧崑壤과 같은 지상 선계 공간으로 유선 공간은 크게 대별된다. 다만 천상이건 지상이건 그 지닌 바 의미는 같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西王母의 瑤池이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곤륜산 위에 있는 공간으로 설정되나 실제 작품에서는 천상 선계와 변별 없이 그려지고 있다. 〈藥壺賦〉와 〈山木自寇賦〉와 같은 작품에서는 遊仙 공간이 藥翁의 壺中之域과 山林之間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작품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선계 공간의 묘사는 단순한 제재적 차용을 넘어서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 도교 諸神의 다층적 위계와 공간 통어원리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담고 있어, 이들 작가들에게 道敎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이해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仙界의 묘사는 황홀하다 못해 자못 현란하기까지 하다. 이전의 온갖 神仙故事와 仙界묘사를 죄다 끌어와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것은 西王母의 瑤池이며, 많은 작품에서 瑤池宴의 광경이 등장한다. 한 예로 趙希逸의 〈瑤池宴賦〉의 묘사를 살펴 보자.
내 아침에 岐都를 출발하자니 朝余發於岐都
저녁에야 곤양에 이른다고 말을 하네. 夕云窮乎崐壤
요대라 불리우는 연못 있으니 瑤以名兮有池
건곤을 지도리 삼아 흘러 넘치네. 乾坤樞而瀰漲
아침엔 물가에서 옥룡타를 마시고 朝飮渚兮玉龍唾
저녁엔 금아탕에 목욕을 한다. 暮浴汀兮金鴉盪
...〈中略〉...
청조가 날아와 알려 주기를 靑鳥翼乎來報
왕모께서 이제 곧 납신다 한다. 曰王母之將枉
상서론 무지개가 백은 궁궐 걷어가자 祥霓霽兮白銀闕
서기 어린 햇빛은 황금방에 부서지네. 瑞日耀兮黃金牓
요대의 향그런 꿈 깨어나서는 破瑤臺之香夢
운모로 수 놓은 커튼 젖히고, 排雲母之綉帳
세모꼴로 머리 장식 잡아 매고서 綰三角之鳳䯻
칠보 꾸민 학창의를 갈아 입고는, 御七寶之鶴氅
얼룩 기린 수레 타고 바삐 달리니 斑獜駕兮蹄疾
머리 치든 채색 난새 곁에 탔구나. 彩鸞驂兮頭昻
빠른 수레 정돈하여 높이 내몰자 整颷車而高驅
나부끼는 운기는 근엄하구나. 儼雲旗之輕颺
갑자기 나부끼며 와서 멎더니 忽翩躚而戾止
옥수를 높이 들어 절을 하누나. 抗玉手而揖讓
살결은 얼음 눈과 견줄만 하고 肌氷雪之可比
그 모습 부용인양 수줍어 하네. 貌芙蕖之羞况
초승달 눈썹을 곱게 찌푸리고 月藏眉兮嬌顰
별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린다. 星入眸兮的朗
너무나도 곱구나 빼어난 자태 百嬋娟之秀態
아리따움 한데 모아 어여쁜 모양. 千窈窕之嫩樣
삼생의 묵은 인연이 있어 曰三生之有緣
만승도 수고로이 멀리 왔다고 勞萬乘兮遠訪
...〈中略〉...
안제더러 과일 안주 올리게 하고 俾鴈帝而薦果
봉왕 시켜 먹을 것을 바치게 하네. 命蜂王而司餉
용고기 포 기이한 안주 받들어 오고 奉龍脯之奇膳
봉황 골수로 담근 술을 부어 따른다. 酌鳳髓之靈釀
천년 묵은 복숭아를 따서 내오고 摘千年之桃實
아홉번 쪄낸 기장을 들라 권한다. 進九蒸之杞醬
...〈下略〉...
곤륜산 요지로 찾아가 玉龍唾를 마시고 金鴉盪에 목욕하며 노닐 때, 靑鳥는 西王母의 등장을 알리고, 다시 黃金牓 휘황한 白銀闕에 자리한 그녀의 화려한 침실과 三角鳳䯻와 七寶鶴氅으로 꾸민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대한 몽환적 묘사가 이어진다. 그녀는 아리따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별빛 같은 눈동자로 고운 자태를 지으며 나와 자신이 삼생의 숙연이 있음을 말하며 龍脯膳과 鳳髓釀, 千年桃와 九蒸杞醬의 화려한 잔치 자리를 펼친다. 이 아니 황홀한가? 다시 〈夢遊〉의 한 단락을 보면,
열자의 산들바람 잡아 타고서, 御列子之泠風兮
곤륜산 요지의 산 마루에 멈춰 서니, 止瑤琨之抄巓
층층이 솟은 성을 곁에다 두고, 傍層城之嵯峨兮
살진 지초 먹여 수명 늘인다. 啖肉芝而引年
마고는 기린의 육포를 내놓고, 麻姑羞之麟脯兮
서왕모는 시원한 반도를 권하네. 金母薦其氷桃
거문고를 당기어 줄을 고르고, 援雲和以朝徽兮
옥호의 龍膏酒를 달게 마셨다. 甘玉壺之龍膏
라 하였다. 또 〈廣寒殿賦〉에서는 선계를
내 장차 나부끼며 둥실 떠 놀아 將飄翻以浮游
삼생의 범골을 바꾸었노라. 換三生之凡骨
마치도 나를 끌어 길을 열어 주는듯 若有鉥予以啓路兮
푸른 하늘 아득한 곳 가리키는데, 指帝靑之廖廓
그곳엔 반짝이는 궁전이 있어 爰有殿兮晶瑩
드넓은 땅 위에 우뚝 서 있다. 豁爽塏以儼凝
태미의 드넓음을 품어 안고서 襲太微之弘敞兮
하늘 문의 떨림을 누르고 있네. 挹閶闔之凌兢
백옥을 다듬어 기둥 만들고 揉白玉以棟柱兮
얼음을 새기어서 문설주 세워, 雕淸氷而店楔
성근 창은 이슬에 흐는히 젖고 濕沆瀣於踈櫳兮
각진 서까래엔 용봉이 난다. 飛龍鳳於稜桷
구슬은 반짝반짝 조개는 흰데 明璣兮素貝
푸른 옥과 더불어 섞이어 있네. 與靑琳兮錯落
섬돌에는 계수나무 휘 늘어졌고 香桂毶사於砌戺兮
계단에는 기수가 반짝거린다. 琪樹璀璨於軒척
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仙闕은 위 晶瑩‧白玉‧淸氷‧素貝‧靑琳 등의 비유에서도 보듯 옥 모티브가 자주 나타나고, 빛깔은 흰빛과 푸른 색이 빈출한다. 불변와 영원, 고결함과 지순함을 상징한다.
대개 遊仙辭賦에서의 仙界 묘사는 허황하게 여겨질 만큼 현란하다.8) 이는 현세의 일그러진 부정적 형상과 겹쳐지면서 더욱 선명한 느낌을 준다.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만한 仙界의 형상 속에서 인간은 티끌 세상의 질곡과 갈등에서 통쾌하게 벗어나는 해방의 기쁨을 맛본다. 이러한 仙界에서의 낭만적 遨遊는 현실에서의 억압이 역으로 투사된 결과이다. 遊仙의 꿈은 원초적 상징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상징들은 좌절된 본능적 충동을 실현시키려는 욕구의 투사이다.
遊仙의 주체들은 仙界에 진입하여 으례 仙人 또는 至人의 안내를 받게 되고, 또한 이들로부터 받은 증여물을 통해 換骨奪胎 하거나 生死의 迷妄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안내자는 玉皇이나 三皇五帝 또는 司命神이나 氣母와 같은 신적 존재이거나, 西王母·浮丘仙人·麻姑·宓妃·丹邱羽人과 같은 仙的 존재들로 나타나고, 大人先生이나 藥翁, 異人과 羽衣처럼 깨달음에 도달한 지상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지상적 존재가 안내자로 등장하는 경우는 대개 의논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도교적 제재를 차용하여 莊子風의 사유를 전달하는 작품들이 많아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뒷절에서 상론하겠다.
이들 안내자들이 주는 증여물은 秘訣類와 仙藥類로 나눌 수 있다. 안내자가 지상적 존재일 경우 예외 없이 비결류로 나타나며, 선적 존재일 때도 비결류의 증여가 간혹 보인다. 〈大椿賦〉의 ‘大椿之喩’와 〈藥壺賦〉의 ‘玅眞訣’, 〈得至樂賦〉의 ‘一秘訣’, 〈夢遊〉의 ‘達通之意’, 〈山木自寇賦〉의 ‘逃禍之說’, 〈蟠桃賦〉의 ‘學仙訣’, 〈遊伽倻山賦〉의 ‘超世獨立之歌’등이 비결류의 증여라면, 선약류의 증여는 〈廣寒殿賦〉의 ‘紫霞觴’과 〈大觀賦〉의 ‘玄珠九枚’, 〈夢遊練光亭賦〉의 ‘瓊液’과 ‘流霞酒’, 〈瑤池宴賦〉의 ‘龍脯‧鳳髓‧蟠桃‧杞醬’ 등이다. 〈夢遊靑鶴洞辭〉에서처럼 ‘瓊漿’과 ‘仙訣’이 같이 나오기도 한다.
沈義는 〈蟠桃賦〉에서 환골탈태의 과정을 이렇게 노래한다.
생사의 덧없음을 슬퍼하면서 悲生死之浮休兮
티끌 세상 벗어나 먼 길 떠났네. 超塵寰以遠徂
상계의 선부에 걸어 올라서 跆上界之仙府兮
하토에 쌓인 먼지 굽어 보았네. 俯下土之積蘇
요지를 지나선 돌아옴 잊었는데 過瑤池以悵忘歸兮
왕모는 나에게 길을 열어 보이네. 王母鉥余以啓途
한 알의 신령스런 복숭아를 주는데 贐一顆之神核兮
그 향기 너무나 짙었었다오. 芳酷烈其誾誾
가만히 입에 넣고 씹노라니까 漠虛靜以咀嚼兮
어느새 내 장차 진인으로 돌아가, 忽乎吾將返眞
사뿐히 날아올라 들리워져서 紛仙仙而抯撟兮
아득한 저편 동명 위를 넘놀았다네. 逴絶垠乎東溟
바다에는 약목이 빼곡 우거져 若木森蔚於海中兮
부상의 그늘을 어둡게 하네. 搏桑蔭其晦暝
라 하였다. 그는 생사의 덧없음에 절망하다가 마침내 티끌 세상을 떠나 선계로 오른다. 瑤池에서 서왕모를 만나 그녀가 준 한 알의 神核을 먹고 換骨返眞하여 두둥실 구름을 타고 東溟 위를 漫遊한다. 이러한 변환은 〈得至樂賦〉와 같은 작품에서는 의논적 성격을 띠고 다음과 같이 환치되어 수용된다.
내 인생의 어그러짐 탄식하면서 嗟余生之不時
수레를 남으로 몰아 은빛 물가 항해했지. 南余轅兮航銀渚
사명신께 나아가 여쭈옵기를 就司命而陳詞
“한 귀퉁이 태어나 마흔 해 동안 余生一隅垂四十年兮
어찌 뜻만 크고 계획 성글어, 何志大而計踈
비방하여 떠드는 소리 시끄러우니 聒簧口之嘈嘈兮
처음 먹은 그 뜻은 이미 글렀네. 志已改於余初
주림과 추위에 마음은 심란한데 飢寒亂我心曲兮
세상 일은 날마다 얽히고 설킨다네. 世故逐日而繽紛
단 하루 입을 열어 말함 없어도 無一日之開口兮
백년의 근심 수고 생겨난다오. 有百年之憂勤
마음에 맺혀 있어 풀리질 않고 心絓結而不解兮
가슴 속에 답답하게 근심하누나. 中憫瞀之忳忳
원컨데 신명께서 내게 오시어 願賴夫神明之結我兮
지락의 그 문을 보여 주소서.” 顧示至樂之門
사명신이 한 비결을 내게 주는데 司命留一訣兮
지극히 귀하여 비할 바 없다. 至貴而無偶
“근심과 즐거움은 일정치 않아 憂樂無方兮
곳에 따라 느닷없이 생겨난단다. 隨處而有
너의 한치 뿐인 마음으로도 方寸之間兮
하늘 위 노님이 어렵지 않다. 天游不苟
어찌 괴롭게 몸 밖에서 구하여 苦何求之身外兮
붉은 얼굴 시들도록 분주한게오.” 彫朱顔於奔走
그말 듣자 갑자기 환히 깨달아 聞言忽悟兮
술에 어리 취한듯 정신이 들어, 如醉而醒
별빛에 수레를 돌리어 와서 星言回駕兮
다시금 고향에 이르렀다오. 復夫故鄕
즉 앞서 〈蟠桃賦〉에서 서왕모가 건네 준 神核은 〈得至樂賦〉에서는 司命神이 일러준 ‘一訣’로 대치되고, 앞서 ‘返眞’의 神遊는 여기서는 迷妄을 깨치는 ‘忽悟’로 환치되었다. 이렇듯 유선사부에 있어, 丹藥 등 外物을 섭취하여 환골탈태함으로써 長生久視 할 수 있다는 사유는 道를 깨달아 생사의 번뇌를 훌훌 떨쳐 버리는 깨달음을 환기하는 상징일 뿐인 것이다.
또한 작품에는 선계 진입 동기에서 암시되었듯이 인간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下界俯瞰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 下界에 대한 인식을 보면, 李珥의 〈空中樓閣賦〉에서는 “下界를 굽어 보며 눈길을 주니, 어지러운 무리들로 가득하구나...위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자니 한 바탕 웃음거리도 되지 않누나. 俯下界而遊目, 紛衆流之積億. 諒在上而辨下, 曾不滿乎一哂.”라 하였고, 沈義의 〈廣寒殿賦〉에서는 太淸虛空에 올라 下界를 鳥瞰하는 감회를, “三神山은 자라 머리 보다 작고, 九州는 하루살이도곤 미세하구나. 三山渺於鰲頭兮, 九州微於蠛蠓.”라 하였으며, 〈蟠桃賦〉에서도 역시 生死의 부질 없음을 슬퍼하며 티끌 세상을 벗어나 멀리 떠나온 내가 下界를 굽어 보며, “三山은 자라 머리 위로 은은히 비치는데, 九州는 터럭 끝과 같도다. 雲將과 마주 보고 서로 웃으며, 東海를 굽어 보니 술잔만 하네. 三山隱映於鰲頭兮, 九州同於毫末. 雲將相視而笑兮, 俯東海如一勺.”라고 묘사하여 仙界에 대비되는 下界의 일그러지고 하잘 것 없는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또 許筠은 〈毁璧辭〉에서 “下界는 급류이고, 온갖 잡귀가 질주하는 곳. 下界汩漂兮萬鬼駓駓”라고 하여 극히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기도 하였다.9) 뿐만 아니라, 仙界에서는 인간 세상에서 중시하는 온갖 지식이나 제도 따위가 형편 없이 속화되고 戱畵化 되어 나타난다. 朴祥은 〈夢遊〉에서 한바탕의 꿈을 깨고 난 뒤, 아득한 마음에 神君을 향해 웨치니 神君은 그를 이렇게 달랜다.
혼돈이 처음 구멍 뚫릴 때부터, 曰自混沌之初竅兮
지금까지 그 몇 겁 세월 지났더뇨. 迄至今其幾劫
그 사이 흥망치란의 어지러움은, 其間興亡理亂之紛紛兮
한바탕 허깨비 꿈에 지나지 않네. 不過爲一場之幻夢
그런 즉 꿈 속의 뜨고 가라앉음은, 然則夢中之浮沈兮
모두 조화의 거짓된 장난이라. ‧盡歸造化之假弄
어찌하여 마음을 君牧에 매어 놓고, 胡攖心於君牧兮
쓸쓸히 병들도록 그치지 않는게오. 蕭然疲疫之不止
구구한 세상의 헐뜯고 기림은, 區區世上之毁譽兮
귓전을 지나가는 모기의 소릴래라. 驟若蚊雷之過耳
그대 마땅히 세월 따라 길을 삼아, 子宜緣時月而爲經兮
애오라지 길이길이 소요할진저. 聊須盡以逍遙
神君의 위로는 앞서 沈義의 〈得至樂賦〉에서 司命神이 들려준 깨달음의 비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비결류 증여 모티프에 나타나는 〈夢遊〉의 ‘達通之義’나 〈山木自寇賦〉의 ‘逃禍之說’, 또는 〈遊伽倻山賦〉의 ‘超世獨立之歌’ 등은 모두 현실 삶의 갈등과 좌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유선사부 일반의 주제를 일깨워 준다.
이윽고 붉은 난새 날개 치면서 俄紅鸞之拊翼兮
노을 밖 패옥 소리 이끌며 오네. 引霞外之璜珩
오색 구름 어지러이 창 비추더니 五雲繚以爥欞兮
야단스레 무지개 깃발 앞장 세웠다. 紛前導以虹旌
좋은 자리 화려하게 펼치더니만 陳瑤席之旖旎兮
차고 단 경액을 가져 나오네. 薦瓊液之芳泠
흰 이를 드러내며 소매를 펼쳐 啓玉齒以敷衽兮
요경으로 내려가자 말을 하누나. 云余降乎瑤京
봉호의 옛 기약을 가리키면서 指蓬壺之舊期兮
삼생의 묵은 인연 남았노라고. 餘宿緣於三生
소요하며 노닐자 종용하면서 聊逍遙以慫涌兮
견우 직녀 이별 정을 하소하누나. 訴牛女之離情
許筠의 〈夢遊練光亭賦〉의 한 단락이다. 선계에 들었더니 瑤臺의 선녀가 三生의 宿緣을 말하고 이별의 원망을 하소연하며 길이 이곳에 머물며 함께 소요하자고 종용하더라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유선사부에서는 遊仙 주체가 선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三生之緣을 들먹이며 仙緣을 환기하는 대목이 자주 보인다. 스스로를 전생에 선계의 일원이었다고 관념하는 이른바 謫仙 모티프의 잉용이다.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익숙하게 만나게 되는 것으로, 고전소설에도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바, 이에 앞서 이미 유선사부에서 양식화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10)
서사구조의 종결부에 해당하는 각몽과정은 15편 가운데 7편에 나타난다. 각몽의 서사가 생략되었더라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각몽의 암시는 확인된다. 허균의 〈夢遊鍊光亭賦〉의 결미에서 “즐거운 모임 다하지 않아, 갑자기 종소리 울려 퍼지네. 놀라 일어나 길게 탄식하니, 기운 달은 서편 성에 반쯤 걸려 있네. 纔驩會之未央兮, 忽譙鍾之喤喤. 倏驚起以長嗟兮, 斜月半兮西城”라 한 것처럼 유선의 진진한 흥취가 채 다하기 전에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단순히 작품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각몽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선의 체험을 통해 티끌 세상에서의 갈등과 좌절을 훌훌 떨쳐 버리는 깨달음의 기쁨을 구가하고 있다. 유선사부의 중간이나 끝부분에 의론투의 내용이 삽입되어 이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Ⅳ. 遊仙辭賦의 의미구조
1. 屈原·莊子風의 수용과 그 의미
일찍이 曹植은 〈游仙〉에서 “사람 사는 것이 백년이 못되는데, 해마다 즐거운 일 줄어만 가네. 人生不滿百, 歲歲少歡娛”라 노래한 바 있다. 生老病死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는 현세의 삶은 長生久視의 道를 깨달아 延年不死 하는 仙人의 환상을 꿈꾸게 하였다. 저 《山海經》에서 말하고 있는 ‘不死之國’이거나 《呂氏春秋》의 ‘不死之鄕’, 《淮南子》가 말하는 ‘不死之野’는 모두 이러한 꿈의 소산이다.11) 이런 의미에서 유선문학은 말하자면 장생불사의 꿈을 노래하는 문학이다.
그런데 유선사부에서는 선계의 노님을 통해 장생불사의 꿈을 노래하는 유선문학의 관습적 주제를 확장시켜 莊子風의 도가적 깨달음의 세계를 논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 주목된다. 이러한 작품에서 특기할 점은 屈原의 ‘遠遊’에서 莊子의 ‘逍遙遊’의 경계로 넘어가는 통합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갈등에서 시작하여 화합으로 끝나는 구조로 실현된다. 흔히 道敎와 道家를 종교와 철학으로 구분지어 경계를 나누는데, 遊仙辭賦에서 道敎와 道家는 경계 없이 드나든다. 특히 유선사부의 작가들은 屈原의 〈遠遊〉나 〈離騷〉 등 《楚辭》계열의 작품과, 司馬相如의 〈子虛賦〉나 〈大人賦〉 등의 漢賦의 작품 구조를 그대로 끌어오고 있다.12) 여기에 《莊子》〈山木〉편 등에 보이는 논변이 첨가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南孝溫의 〈得至樂賦〉‧〈大椿賦〉와 沈義의 〈山木自寇賦〉, 朴祥의 〈夢遊〉이다. 〈藥壺賦〉와 〈夢遊靑鶴洞辭〉처럼 간접으로 도가적 사유의 일단을 피력하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得至樂賦〉에는 앞서도 보았듯이 司命神이 등장한다. 일찍이 屈原이 《楚辭》〈九歌〉 가운데서 ‘大司命’과 ‘小司命’을 노래한 바 있으니,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遠遊하여 至樂의 所在를 찾아 헤매던 중 司命神을 만나게 된 ‘나’는 그에게 자신이 ‘志大計疎’ 즉 뜻만 크고 꾀는 성글어 불우를 곱씹으며 세상에서 버림받게 된 사정을 털어 놓고, 至樂의 門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司命은 一訣을 내 놓으며, 근심과 즐거움은 어디에 간들 없는 곳이 없거늘 어찌 身外에서 이를 구하는가 하는 寸鐵의 깨우침으로 나를 일깨워 주었다. 이에 통쾌하게 깨달은 나는 다시금 故鄕, 즉 처음 떠나온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하나도 변한 것 없는,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버린 현실 안에서 至樂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며 無極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는 것이 전편의 줄거리이다. 이러한 결구는 屈原 〈遠遊〉에서, 남풍을 타고 가다 南巢에 이르러 선인 王子喬를 만나 ‘壹氣之和德’에 대해 묻자 왕자교는 道란 말로 전할 수 없다 하며 虛待와 無爲의 법으로 일러주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朴祥의 〈夢遊〉는 구조면에서 屈原의 〈遠遊〉와 가장 유사하다. 어느 겨울날 낮잠에 들었다가 문득 滓溟·洪濛의 땅으로 날아 올라간 나는 神馬를 타고 氣母의 도읍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는 三皇五帝와 夏·殷·周 三代의 聖君과 춘추전국의 시대로부터 唐宋元明에 이르기까지 치란흥망의 역사를 遊仙과 論辯을 섞어가며 장대하게 묘사하였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꿈에서 깨어나니 허망하고 기이하여 허공을 향해 외치다 神君을 찾아가 묻는다. 이에 神君은 逍遙의 뜻으로 미망에서 벗어날 것을 일깨워 주니, 나는 크게 깨달아 《莊子》 〈逍遙游〉를 외우며 티끌 세상을 훌훌 벗어나 鵬背 위의 靑天에 마음을 노닐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 〈大椿賦〉에서는, 꿈 속에 나비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 帝庭을 향하던 길에 ‘나’는 大人先生을 九霄에서 만나게 된다.13) 그는 가르침을 청하는 나의 요청에 《莊子》〈逍遙游〉에 나오는 8천년으로 봄을 삼고 다시 8천년으로 가을을 삼는다는 大椿이란 나무 이야기를 해 준다. 이 나무는 광막한 들에서 나고 자라 껍질은 서리 맞아 벗겨졌고, 줄기 또한 보잘 것 없다. 백 아름 되는 뿌리에는 개미가 온통 구멍을 뚫었고, 만 길 위의 잎새에는 난새가 깃들어 있다. 이 나무는 1만 6천년을 춘추로 삼고 842개월을 조석으로 삼는다. 그러니 봄에 났다가 여름에 죽는 蟪蛄나 저녁에 났다가 아침에 시드는 朝菌이 어찌 이 大椿의 경지를 헤일 것인가. 이러한 大人先生의 장광설에 내가 이의를 제기하자, 선생은 다시 예의 莊子의 논법을 빌어와 나를 일깨운다. 이에 활연히 깨우친 나는 大人先生께 두 번 절하며 사례하고 물러났다.
그런가 하면 〈山木自寇賦〉는 처음부터 遊仙의 공간이 천상 仙界가 아닌 山林之間으로 그려져 있다. 나를 그곳으로 인도한 異人은 내게 逃禍之說을 들려준다. 山木 또한 《莊子》〈山木〉에 나오는 소재를 轉化한 것이다. 옹이가 많아 재목으로는 아무 짝에도 쓸 수 없어 제 아무리 키가 크고 아름이 굵어도 나무꾼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나무가 바로 山木이다. 다른 모든 나무는 가늘면 가는대로 굵으면 굵은대로 그 쓸모를 인하여 사람들의 손을 타 꺾여지고 베어진다. 有用함을 지닌 다른 나무가 그로 인해 생명을 잃고 만데 반해, 산목은 그 無用함으로 해서 오히려 생명을 구가한다. 사람도 이와 같으니 忠義‧道德에 얽매여 스스로를 해치지 말고 광막한 들판을 방황하며 恍惚의 경계에 노닐고, 天地에 버려진 一散人이 되어 지낸다면 재앙과 근심이 미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논설들은 마치 《莊子》의 해당편을 확대 부연해 놓은듯한 느낌이 들만큼 친절하다.
또 遊仙辭賦 가운데 특이하게 外丹과 內丹修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작품으로 南孝溫의 〈藥壺賦〉가 있다. 한나라 때 費長房이 저자에서 약을 파는 늙은이가 장사를 마치면 문득 가게 머리에 놓아 둔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老翁에게 간청하여 호리병 속에 함께 들어갔는데, 그 속에서 仙界의 화려한 경관을 보고 나왔다는 故事를 인용하여 부연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처음 費長房은 東都의 風雨, 즉 현실의 고초를 실컷 겪고 秘術을 배우려는 뜻을 품어, 沆瀣를 마시고 正陽의 精液으로 양치하며 丹藥을 먹고 眞經을 외워 장차 신선의 반열에 들만 하였는데, 우연히 藥翁을 만나 壺裏乾坤에 안내되어 가니 황홀한 경관이 바로 羽人의 丹丘였다. 이에 놀라 엎드려 가르침을 청하자, 藥翁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天帝의 신하로 帝를 곁에서 모시다가 《黃庭經》을 一字 誤讀 하여 下界로 귀양온 신세임을 말하고, 세상 선비들이 五石을 鍊造하여 神仙을 얻으려 하나, 玉屑과 朱砂는 뼈에 독이 되고 鼎器는 닳아지고 藥物은 말라버려 마침내 夭死에 이르게 할 뿐이니, 金丹에 종사하다가 谷神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어 道의 참됨은 마음에 있을 뿐으로 四肢를 괴롭히지 말고 無爲로 안정시켜, 鉛汞이 체내에 交結하여 六氣를 三田에 돌림으로써 자연으로 돌아 간다면 太初와 이웃하고 無極과 벗을 하여 인간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이에 몸이 곧 화로와 솥이며 마음이 丹藥인줄을 크게 깨달아 內丹의 秘方을 깨우쳤다는 내용이다.14)
司命의 秘訣이나 神君의 達通之義, 大人先生의 가르침, 또 異人의 逃禍之說과 藥翁의 秘方은 모두 ‘나’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주어 나의 본질적 변화와 각성을 촉구한다. 이는 앞서 본 西王母가 주는 千年蟠桃를 먹고 凡骨을 換骨하여 仙班에 오르는 遊仙辭賦 일반 模式의 한 변용일 뿐이다. 즉 西王母의 神核을 통한 換骨成仙이 도교적 상상을 통한 外丹的 발상이라면, 大人先生 또는 異人과 藥翁의 秘訣을 통한 返本爲眞은 도가적 사유를 빌은 內丹的 전환인 셈이다.
이와 같이 遊仙辭賦에 있어 道敎와 道家의 인식 세계는 뚜렷한 경계가 없이 넘나들고 있다. 이들을 매개하는 공통점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월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추구’이다. 이러한 추구는 현실의 질곡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仙界를 향한 꿈은 그러므로 ‘깨달음’, ‘초월’을 향한 꿈이다. 혹 遊仙文學이 현실의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여 퇴영 도피의 문학으로 배격하기도 하지만, 실용이나 실현의 유무만으로 인간의 초월을 향한 꿈을 배격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2. 賢人失志의 문학 전통과 작가의식
유선사부는 의미 지향이나 제재, 수사적 측면에서 낭만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문학 양식이다. 유선사부의 작가는 士禍와 黨爭이 빈발하던 15,6세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먼저 金宗直의 문하로 사림의 일원이었던 兪好仁이나 南孝溫, 〈大觀齋夢遊錄〉을 비롯하여 당나라 때 女道士인 謝自然과의 몽중 만남을 서술한 〈夢謝自然志〉, 〈續何敬祖遊仙詩〉등 유선 제재의 작품을 유난히 많이 남긴 沈義, 신진 사류로 훈구파 南袞 등의 指斥을 입었던 朴祥 등은 대개 훈구벌열이 득세하던 현실에서 士林으로서 방외적 위치에 놓여 있던 인물들이라는 공통 자질을 갖고 있다. 또 세대를 달리하여, 선조조 낭만풍의 점고와 더불어 李珥를 비롯하여, 유난히 도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 道流들과 활발히 교유하였고 그 체험을 살려 〈南宮先生傳〉과 같은 도교 수련소설을 지었으며, 여러 편의 유선시를 남긴 바 있는 許筠과, 뒷날 그 허균의 옥사에 연루되어 벼슬에서 쫓겨났던 趙希逸 등은 方外的 逸脫보다는 문예적 취향이 강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15) 특히 앞 시기 작가의 작품에서 도가적 사유나 屈原·莊子風의 逸脫이 시도되고 있는데 반해, 선조조 작가의 작품에는 심각한 주제의식보다 낭만성에의 傾斜가 강한 것은 작가 의식의 차별성에 말미암는 것으로 보인다.
유선사부의 작가들은 극도의 상상을 발휘하여 異域奇人의 神仙故事나 현란하고 심오한 내용이 寓言 양식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또한〈藥壺賦〉의 費長房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西王母·浮丘仙人·丹邱羽人·宓妃·崔致遠의 예에서 보듯 다양한 신선전설 제재들을 작품 곳곳에 원용하고 있다. 즉 유선사부는 《楚辭》와 《莊子》의 문학 전통과 漢賦의 초현실적 이상 추구를 결합한 낭만적 지향으로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의경을 창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들의 상상력은 매우 풍부하고, 표현은 화려하다. 敍事의 次第가 정연하고, 詠物의 묘사는 영롱하고 현란하다. 환상의 遊歷인데도 마치 눈 앞에 역력히 펼쳐 보이듯 섬세한 필치를 뽐내었다.
수사면에서 遊仙辭賦는 과장법를 즐겨 쓰고 있다. 百·千·萬·億·巨·大·高·遠·深·廣·宏·闊·多·無·滿 등의 표현은 이루 예거하기 힘들 정도이며, 공간의 광대함을 표현키 위해 無極·無窮·無限 등의 과장이나, 시간의 장구함을 표현하는 萬歲·萬代·億年 등의 표현이 빈번하게 쓰인다. 또한 〈廣寒殿賦〉에서 보듯 白玉으로 기둥을 만들고 얼음으로 문설주를 세우며, 구슬과 조개로 장식한 서까래, 푸른 옥으로 꾸민 장식, 黃金과 白銀으로 만든 궁전의 화려한 묘사나, 〈瑤池宴賦〉등에 보이는 기린이나 용의 육포로 만든 안주,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 한 알만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蟠桃, 安期生의 대추, 아홉번 쪄낸 杞醬 등의 묘사는 상상력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계의 여러 儀軌와 온갖 종류의 仙禽仙獸의 화려한 치장, 神仙들의 화려한 服飾 등에 대한 묘사 또한 단순한 상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정연한 질서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어, 이들 유선사부의 작가들이 상식 수준을 넘어 도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遊仙辭賦 작가들은 烏有子·大人先生·藥翁·異人·神君 등 가공의 인물을 통해 도가적 철리를 피력케 하여 虛로써 實을 드러내는 漢賦의 문학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였다. 〈大椿賦〉의 大人先生은 司馬相如의 〈大人賦〉에 바탕을 두고 있고, 〈夢遊靑鶴洞辭〉에서 스스로 烏有子로 일컬었다 함 또한 司馬相如의 〈子虛賦〉에 나오는 烏有先生에게서 명명을 취한 것이다. 이들 작품의 주제가 당대 현실에 대한 암유의 의미를 지닌다 할 때 가공적 인물을 통해 주제를 드러냄은 낭만주의에 현실주의를 결합시키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리라 본다. 한나라 張衡이 〈髑髏賦〉에서 천지간을 소요하다가 莊子의 해골과 만나 상호 문답하며 世道를 논하고 있음을 보는데, 이러한 漢賦의 구성 방식은 〈大椿賦〉나 〈藥壺賦〉, 〈山木自寇賦〉 등에서 수용하고 있다.16)
유선사부의 작가들은 엄혹한 현실의 좌절 앞에서 절망하는 대신 遊仙의 모식을 빌어, 현실을 초탈하는 낙관적 전망을 획득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최면적 도피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들은 현실의 갈등과 좌절 앞에 분노하는 대신 초월의 공간 속에 몸과 정신을 맡김으로써 일종의 淡泊無欲의 경지를 발견해냈다. 또 그들은 외물의 구속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유를 만끽하는 無爲齊物의 자유 정신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無爲齊物은 喪我物化의 虛妄에 빠지는 대신 存性體道 하는 安貧樂道의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이들이 유자이면서도 도교를 끌어 오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漢나라 때 성행한 ‘賢人失志之賦’와의 정신사적 연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17)
遊仙辭賦의 작가들이 도교적 상상세계를 꿈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儒者로서의 자의식을 완전히 놓지 않았던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儒者로서의 자의식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아의 존재 의의를 확인시켜 주고, 凌空成仙의 초월 의지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자아 완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지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들은 낭만적 초월을 꿈꾸면서도 자의식의 한켠에서 자신이 엄연히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儒者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一場의 환상 여행은 언제나 覺夢과 함께 끝나게 마련이고, 눈 앞의 현실은 늘 갈등과 좌절을 강요한다. 갈등이 없고 좌절이 없었더라면 仙界로의 여행은 애초에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南孝溫이 〈大椿賦〉에서 “方外의 說을 물었다가 학문하는 큰 方法을 얻어 들었네. 작은 것을 들었고 큰 것을 들었으며, 또 성인이 보통 사람과 다름을 들었도다. 問以方外之說, 得聞爲學之方. 聞小聞大, 又聞聖人之異於尋常也.”라 하여, 方外를 기웃거리다가도 어느새 爲學하는 본래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나, 沈義가 〈廣寒殿賦〉의 끝에서 “어찌하면 人間의 廣寒을 얻어, 이 꿈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할거나. 安得登人間之廣寒, 遂此夢之非虛也.”라 하여 軒冕에의 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遊仙의 心理가 반드시 儒者로서의 삶의 길을 등지는데서 나타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18)
Ⅵ.맺음말
遊仙辭賦의 작가들은 儒敎의 권위가 절대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던 조선 전기와 중기에 활동했던 문인들이다. 그들은 왜 이같은 작품들을 남겼을까? 이를 창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왜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양식화 되어 반복 창작되었을까? 왜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만 주로 나타나는 것일까? 이것은 창작 주체들의 세계관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본고의 작성 과정에서 계속 지녔던 의문들이다.
遊仙辭賦는 ‘중세적 꿈꾸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꿈꾸기’는 허망한 夢想이나 幻想이 아니다.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꿀 수가 있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 버린다. 꿈이 없을 때 사회개조는 있을 수가 없다.” 김현의 이 말은 바로 遊仙辭賦에서의 ‘중세적 꿈꾸기’가 갖는 의미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遊仙辭賦 작가들의 내면의식과 사회적 실현과의 관계는 앞으로 계속 관심있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이다. 또한 유선사부에 대한 관심은 그간 활발히 연구된 몽유록계 소설의 미학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유선사부는 유선문학의 구도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고전소설사를 에워싼 주변적 양식으로서도 그 가치를 새롭게 천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 이 논문은 1993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공모과제 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1) 필자는 그간 유선문학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일련의 작업을 지속해 왔다.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韓國道敎思想의 理解》(亞細亞文化社, 1990), pp. 99-132.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韓國道敎와 道家思想》(亞細亞文化社, 1991), pp. 193-218.
鄭珉,〈失樂園의 悲歌, 遊仙詩〉, 《現代詩學》(현대시학사, 1995년 3월호), pp.258-273.
鄭珉, 〈遊仙辭賦의 道敎的 想像力〉, 《韓國學論集》第 26輯(한양대 한국학연구소, 1995.2), PP.195-208
李鍾殷·鄭珉 외, 〈한국문학에 나타난 유토피아 의식 연구〉, 《韓國學論集》第 28輯(한양대 한국학연구소, 1996.2), PP.7-226.
이 가운데 〈遊仙辭賦의 道敎的 想像力〉은 본 논문의 중간 보고서의 성격으로 작성된 것으로, 본고는 이를 토대로 논의를 심화 확대한 것임을 밝혀 둔다.
2) 南孝溫은 〈六臣傳〉을, 沈義는 〈大觀齋記夢〉을 남겼다. 또 許筠은 〈酒吃翁夢記〉를 남긴 바 있다. 3) 尹柱弼, 〈楚辭收用의 문학적 전개와 비판적 역사의식〉, 《韓國漢文學硏究》 第 9‧10 合輯(韓國漢文學硏究會, 1987), pp.423-475.
5) 이하 본문에서 작품을 인용할 경우 원출전은 따로 밝히지 않는다.
7) 〈夢遊靑鶴洞辭〉‧〈蟠桃賦〉‧〈遊伽倻山賦〉‧〈夢遊練光亭賦〉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9) 유선시에서도 服藥 모티프와 下界鳥瞰 모티프는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 구체적 양상과 작품 예는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 앞의 책, PP.207-212를 참조할 것.
10) 謫仙意識은 遊仙詩에서도 관습적으로 차용된다. 그 양상과 의미에 대해서는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 앞의 책, pp.196-201을 참조할 것.
11) 李乃龍, 〈論仙與游仙詩〉, ≪西北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第25卷(1995.2), pp.3-8 참조.
12) 이들 작품의 그려 보이는 서사공간이 지닌 바 방외적 공간의 의미는 尹柱弼, 〈방외인 문학의 전통(2)〉, 《淵民學志》 第4輯(淵民學會, 1996), pp.101-114 참조.
13) 大人先生은 司馬相如의 〈大人賦〉에서 따온 것으로, 《周易》乾卦에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이라 한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大椿賦〉에서는 깨달은 사람의 의미로 쓰였다. 李山海의 〈滿招損賦〉에도 大人先生이 작중 화자에게 탐욕에서 벗어나는 이치를 깨우쳐 주는 존재로 등장함을 볼 수 있다.
15) 許筠과 許蘭雪軒 등 許氏 一門의 道敎에 대한 관심과 許筠의 道流와의 교류 등 자세한 내용은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앞의 책을 참조할 것.
16) 章滄授, 〈漢賦的浪漫主義特色〉, ≪文史哲≫ 1987年 第2期, pp.47-52 참조.
17) 李生龍, 〈論兩漢的“賢人失志之賦”〉, ≪中國文學硏究≫ 1987年 第3期, pp.98-104 를 참조할 것. 조선 전기 辭賦文學 가운데 賢人失志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尹柱弼, 〈楚辭收用의 문학적 전개와 비판적 역사의식〉과, 金星洙, 《韓國辭賦의 理解》, pp.118-202를 참조할 것.
18) 遊仙辭賦 뿐 아니라 遊仙詩에서도 이러한 자의식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 구체적 내용은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 앞의 책, p.200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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