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동이의 슬픈 새타령
통영동이의 슬픈 새타령팔도를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기 위해 부른 노래가 민중의 흥겨운 가락으로 전해져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추재기이>에 등장하는 70여 명의 인물 가운데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주어진 정보가 너무 부족해 제대로 알기 어려운 존재가 적지 않다.
저자가 얼개만 대충 소개하는 데 그쳤고 그렇다고 동시대 다른 기록에 등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사람과 그의 행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방해를 받는다. 그런 인물 가운데 필자는 ‘통영동이’와 그에 얽힌 사연에 무척 애착이 간다.
그를 소개한 글은 겨우 수십 자에 불과하지만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사연이 있고, 그가 만들어 불렀다는 노래는 더더욱 흥미를 끈다.
온갖 새를 부른 <백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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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삼이 소개한 그의 사연은 이렇다. 한양의 시장통에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흘러들어와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그자는 스스로를 통영동이라고 불렀기에 사람들도 그렇게 불러주었다. 삼도수군통제사영이 있는 경상도 통영 출신이라는 의미였다. 통영동이는 다리 하나를 저는 장애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장님이었다. 통영동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열 살 때 동생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동생을 잃은 그는 밤낮으로 울어서 두 눈이 모두 어두워졌다. 양친이 모두 돌아가신 뒤로는 실종된 동생을 찾으러 나섰다. 다리 하나를 절뚝거리고 지팡이로 더듬으면서 구걸했다. 혹시라도 동생을 만날까 희망하며 팔도를 안 간 곳 없이 두루 돌아다녔다.
그런 통영동이를 사람들은 불쌍하게 여겼다. 그런데 통영동이가 그런 용모와 사연으로만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온갖 새가 등장하는 노래였다. 그 일부를 들어보면 이랬다.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첩을 삼기 제격이요
제비란 놈은 말을 잘하니 종년 삼기 제격이요
참새란 놈은 때때옷 입어 금군(禁軍)이 제격이요
황새란 놈은 목이 길어 포교가 제격이라.”
이런 투의 노래로서 통영동이가 직접 지어서 불렀다. 조수삼은 이 노래를 온갖 새를 부른 <백조요>(百鳥謠)라고 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처음 듣는 특이한 노래였다. 시장 바닥에 나타난 불쌍한 걸인의 노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널리 퍼졌다.
통영동이의 사연은 이것이 전부다. 얼개만 보면 더 풍부한 사연과 내력이 잡힐 듯도 하건마는 조수삼은 그 이상은 전해주지 않는다. 내 나름대로 다른 자료를 뒤져봤으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책을 등사본으로 만들어 대학 강의에 사용한 서울대 교수 이명선은 통영동이의 사연이 다른 서적에도 나온다고 언급했으나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필자는 더 많은 사실을 전해줄 텍스트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한 떠돌이 걸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시시콜콜 기록해줄 텍스트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불렀다는 노래 <백조요>를 통해 이 특이하고 불쌍한 인생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옳은 방법일 것이다.
<추재기이>에 관심을 기울인 현대의 연구자들 대부분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민요 연구자를 비롯한 시가 연구자도 이 노래에는 무관심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 <백조요>에 관심을 가지고 종적을 찾았다. 추적해본 결과, 이 노래가 19세기 이래 현대까지 널리 불린 중요한 민요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짐승의 특성을 인간과 연결
통영동이의 사연을 민요와 관련지어 이해한 선배 학자는 김태준과 이명선 두 분이 있다. 일제 때의 저명한 국문학자인 두 분은 통영동이가 불렀다는 노래가 당시에도 불리는 것임을 확인하고서 채보해두었다. 그 가운데 김태준이 야담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문인 ‘야담의 기원에 대하여’에서 소개한 채보 내용을 보자.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평양 기생으로 돌려라 댕그랑 땅 댕그랑 땅
제비란 놈은 사설을 잘하니 종년으로 돌리소 댕그랑 땅 댕그랑 땅
까치란 놈은 물색이 좋으니 사령청으로 돌리소 댕그랑 땅 댕그랑 땅
황새란 놈은 모가지가 길으니 월천군(越川軍)으로 돌려라 댕그랑 땅 댕그랑 땅.”
이명선은 등사한 책의 뒷부분에 넣은 주에서 김태준의 채보와 거의 비슷한 노래를 밝혀놓았다. 다만 후렴구인 “댕그랑 땅 댕그랑 땅”이 앞으로 와서 “똥그랑 뗑 똥그랑 뗑”으로 불린다고 했고, 까치의 ‘사령청’이 ‘수청기생’(守廳妓生)으로 되어 있다.
채보된 민요가 한문으로 번역된 것보다 훨씬 우리 민요다운 생명과 생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노래가 <백조요>라고 했으므로 그 내용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다시 일제 때부터 최근까지 전국 각지에서 채보한 민요 자료를 조사했다. 조사해보니, 의외로 이 민요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민요의 특징은 바로 후렴구에 있고, 지역이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대충만 정리해보면, “똥그랑 뗑 똥그랑 뗑” “동그랑 뗑 동그랑 뗑” “동구랑뎅 동구랑뎅 얼사절사 잘 넘어간다” “동구랑테 동구랑테” “다이나제 다이나제 쿵쿵울려라 단다제” “돌려라 돌려라 동굴동굴 돌려라” 따위로 변화를 보였다. 이 후렴구 때문에 온갖 새를 묘사한 이 <백조요>는 보통은 ‘둥구렁뎅 노래’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있다. 또 ‘돌려라’라는 끝말이 나오기에 ‘돌려라 노래’로도 불린다.
많은 채보 가운데 시기가 앞서는 것이 김소운이 편찬한 <조선구전민요집>(1933)에 실려 있다. 서울의 누상동에 사는 김지연씨가 김소운에게 제보한 노래인데 황새와 제비 등을 읊은 부분을 빼면 이렇다.
“동구랑테 동구랑테
솔개란 놈은 눈치가 좋다고
보초군사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까마귀란 놈은 복색이 없다고
도감포수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딱따구리란 놈은 파기를 잘한다고
나막신쟁이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거미란 놈은 엮기를 잘 쳐서
석쇠쟁이로 돌려라.”
이 노래까지 보면 ‘둥구렁뎅 노래’는 아주 흥미롭다. 각종 날짐승의 대표적인 특성을 포착하고 그 특성을 인간 세상에 있는 어떤 특정한 직업이나 인간과 맞추는 것이다. 새와 인간이 하는 일이 본시 어울릴 리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 잘 맞춰서 노래하면 아주 그럴듯하다. 그냥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노래할 때 재미가 있고 흥겨웠으리라. 꾀꼬리-노래-평양 기생, 황새-긴 목-월천꾼, 솔개-눈치 빠름-보초군사, 딱따구리-나무 파기-나막신쟁이와 같이 연결된다. 그러면 수십 종이 아니라 수백 종의 새를 이렇게 짝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가락은 단조롭지만 후렴구를 넣어서 흥겹게 부를 수 있다.
가장 많은 새가 등장하는 <동굴타령>
각종 민요집에는 한두 종에서 대여섯 종씩을 이어서 부르는 ‘둥구렁뎅 노래’가 빠짐없이 실려 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새를 묘사하고 있을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가장 많은 새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악부>(樂府)란 가집(歌集)에 실린 <동굴타령>이란 노래다. 이 책은 1933년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용기(李用基)란 분이 편집한 가집이다. 그는 서울 토박이로서 장안의 기생과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알려졌다. 이 <동굴타령>에는 23종의 새가 등장한다. 노래의 구조는 “돌려라 돌려라 동굴동굴 돌려라. 장끼란 놈은 복색이 좋으니 별군직으로 돌려라. 돌려라 돌려라 동굴동굴 또동굴 돌려라”이다. 앞에서 중복된 새를 제외하고 본사만 정리하면 이렇다.
“장끼란 놈은 복색이 좋으니 별군직으로 돌려라.
두루미란 놈은 대가리가 붉으니 함한님으로 돌려라.
따오기란 놈은 나무를 잘 파니 목방편수로 돌려라.
솔개미란 놈은 눈치가 빠르니 포도부장으로 돌려라.
참새란 놈은 까기를 잘하니 군밤장사로 돌려라.
까치란 놈은 복색이 이상하니 금부나장이로 돌려라.
땟저구리란 놈은 낭글 잘 후비니 나막신 우비료 장사로 돌려라.
앵무새란 놈은 말을 잘하니 연설쟁이로 돌려라.
명매기란 놈은 성품이 우악하니 불한당 괴수로 돌려라.
매란 놈은 차기를 잘하니 초남태(初男胎) 집는 재리로 돌려라.
원앙새란 놈은 둘이 다니기를 좋아하니 쌍둥중매로 돌려라.
부엉이란 놈은 팔자가 사나우니 단독 홀아비로 돌려라.
올빼미란 놈은 밤눈이 밝으니 승야월장(乘夜越牆)하는 놈으로 돌려라.
비둘기란 놈은 의가 좋으니 판관사령으로 돌려라.
뻐꾸기란 놈은 피눈물이 잘 나니 유복자 잃은 청년 과부로 돌려라.
짐새란 놈은 사람을 잘 죽이니 색기장 망나니로 돌려라.
할미새란 놈은 깝쭉대기를 잘하니 동경 깍쟁이로 돌려라.
기러기란 놈은 편지를 잘 전한다니 우편 사령으로 돌려라.”
이 정도쯤 되면 그야말로 <백조요>라고 부를 만하다. 앵무새와 명매기를 연설쟁이와 불한당 괴수로 맞춘 것이나 부엉이와 뻐꾸기를 홀아비와 유복자 잃은 청년 과부로 맞춘 것이 그럴싸하다.
이제 이 흥미로운 민요가 200여 년 전의 두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통영동이라는 장애인이 만들어 불러서 전국적으로 유행시킨 노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지은 사람이 분명하지 않은 노래가 대다수인 것이 민요의 특징이지만, 이처럼 작자가 밝혀지는 민요도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널리 불려
여기서 통영동이의 삶으로 되돌아가보면, 그가 이 ‘둥구렁뎅 노래’를 부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른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기회를 이용해 실종된 아우를 찾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남들의 시선을 끌고자 한 의도는 성공을 했으나 그가 아우를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숱한 미아가 발생하고 그들을 찾으려고 가족들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을 보는데, 이 통영동이의 사연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와 같은 실종인을 찾으려는 눈물겨운 가족애를 증거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둥구렁뎅 노래’는 민중의 아픈 가슴에서 만들어져 민중의 입으로 불린, 그야말로 민중의 노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로부터 100~200년 동안 통영동이의 가슴 아픈 사연은 잊혀진 채 이 노래는 민중의 흥겨운 가락으로 전국적으로 불렸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노래는 사람들에게 널리 불렸다.
<추재기이>의 기록을 더듬어 민중의 아픔이 서린 한 민요의 태생과 그 아픈 추억을 되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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