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_순리열전

醉月 2009. 9. 21. 08:55

순리열전
공직자가 단순한 원칙만 지켜도 세상이 달라진다 순리(循吏)는 청관(淸官)이다. 일을 투명하게 처리한다.

불의에 따르지 않고 이권을 탐하지 않는다. 오직 국민과 공익의 편에 선다. 이들의 언행은 복잡하지 않다.


언제였던가, 장마가 져서 서울 시내 하수구가 범람한 적이 있다. 하수구 범람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해에는 수해 피해가 커서인지 서울시의 상하수도 관리가 새삼스럽게 못마땅했다. 술자리에서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책임자’들의 안이함을 성토했고, 조용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선배가 이웃나라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 하수도 관리 책임자가 있었다. 그는 매우 강직한 관리였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도쿄의 하수도가 조금 넘쳤는데, 그 사실을 안 그 관리가 할복자살을 해버렸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죗값을 스스로 치른 것이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수도가 조금 넘쳤다고 자살까지 하는 그 관리의 이야기는 극단적이었지만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이야기의 진위는 파악하지 못했다. 순리열전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 그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선배는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적어도 관리로서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해.”

 

5명의 청관

정직한 관리들이 다스리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편하게 산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옛 시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학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참고 참다가 드디어 봉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에 혁명이나 폭동은 관리들 탓이기도 하다. 우리의 근현대사만 둘러보아도 이러한 탐관오리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은 관리들도 있다. 사마천의 ‘순리열전’이 각별한 것은 정직한 정치인, 관리들이 우리 곁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일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순리를 청관(淸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맑을 청’을 쓰니 일을 맑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관리를 뜻한다. 검소하고 단순해야 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사마천이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한 고대 중국 주대의 봉건국가에서 일한 순리들의 이름을 따로 노트에 적어두었다. 손숙오, 자산, 공의휴, 석사, 이리 모두 5명이다. 사마천은 이 다섯 명의 청관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시대에 과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국가의 절대 권력으로서 왕을 모시고 백성을 보살핀 관리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마천은 미리 말한다.

 

“법령이란 백성을 교화시키고 선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형벌이란 간사하고 악한 짓을 금지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문(법령)과 무(형벌)가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 선량한 백성들이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품행을 단정히 하는 것은 관리가 법 집행을 혼란스럽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분을 다하고 법을 지키면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데, 어찌 위엄이 필요하겠는가?”

 

백성을 억누르기 위한 위엄이나 공권력은 법령과 형벌이 올바로 집행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정치가 올바르게 되지 않는 나라에는 반드시 탐관오리가 있다. 공자는 힘없는 백성에게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야기했다. 올바르지 못한 정치란 굶주린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예기(禮記)’에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태산 곁을 지나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의 횡목을 잡고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 다음 연유를 물었다.

“부인이 곡하시는 모양이 분명 큰 슬픔이 겹친 듯합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옛날 저의 시아버님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습니다. 또 제 남편도 범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아들마저 범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답하였다.

“여기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돌아보며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하거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더 사나우니라!’”

 

조선조를 대표하는 영의정으로 꼽히는 황희. 조선시대 500여 년을 지탱했던 선비의 청렴 강직과 여유를 현대 지식인은 거울로 삼아야 한다.

관리들이 탐관오리가 되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의 살림살이는 빈곤해진다. 굶주린 선량한 백성들이 도둑이 되어 사방에 돌아다닌다. 밖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집안 걱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나라에 법질서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집안의 기둥 같은 사내 3명을 모두 범에게 잃은 여인은 그래도 정치가 편안한 땅을 택하는 것이다. 범이야 산에서 돌아다니는 놈이니 덫이나 함정을 놓아 잡을 수 있지만, 그러나 가혹한 관리들은 ‘날개 달린 범’처럼 잡을 수가 없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이익 추구에만 급하고 어떻게 목민(牧民)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들어 구렁텅이에 줄을 이어 그득히 넘어졌는데도 목민관들은 아름다운 옷에, 기름진 옷에 혼자 살이 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금지법이 없는 나라

사마천은 우선 법령을 잘 지켜 나라를 편안하게 한 손숙오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초나라의 재상으로 재임하는 동안 관리와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졌으며 정치는 느슨하게 했지만 ‘금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기 힘든 나라는 금지법이 많은 나라다. 관리들 중에는 간사한 자가 없었고, 도둑도 생기지 않았다. 가을과 겨울 백성들에게 산에서 사냥을 하고 나무를 베도록 했고, 봄 여름에는 물고기를 잡도록 했다. 백성들은 저마다 편익을 얻게 되었고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안정되자 초나라 장왕은 화폐를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이 법령이 발표되자 백성들은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고 시장경제가 혼란스러워졌다. 이 소식을 들은 손숙오는 왕에게 말했다. “전날 화폐를 바꾼 것은 이전의 화폐가 가볍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령이 와서 ‘시장이 혼란해져 백성들은 편안히 있을 곳이 없고 장사를 계속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전대로 회복시켜주십시오.”

 

천주교 원로 정의채 신부.

재상을 신임하는 왕이 신하의 뜻을 허락하자 다시 시장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이후 왕이 또 수레의 높이를 높이는 법령을 내리자 손숙오는 이렇게 말했다. “법령을 자주 내리면 백성들은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되므로 좋지 않습니다. 왕께서 꼭 수레를 높이고자 하신다면, 청컨대 그 마을의 문지방을 높이도록 하십시오. 수레를 타는 사람은 모두 군자이고, 군자는 자주 수레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문지방을 높여 수레의 높이를 더 높이게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꼭 지켜야 하는 법령보다는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는 것, 이것이 손숙오가 통치하는 방법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이 문지방을 높인 뒤 반 년이 지나자 백성들 스스로 수레의 높이를 높였다. 높은 문지방에 낮은 수레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정치가 위대한 정치

손숙오는 백성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그 법령이 필요한 이유를 백성들이 스스로 알게 한다.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 움직이게 하니 불평불만이 쌓일 틈이 없는 것이다. 사마천은 그의 행적을 사실만 간단하게 적었다.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매우 단순하게 일을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바로 위대한 정치다.

우리 현대사에서 어려웠던 시절은 각종 특별법이 만연했던 시절이다. 문지방이 낮은 곳에 높은 수레를 만들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별한 원칙보다는 그때그때 권력을 악용하는 법을 만들어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매우 복잡하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이러한 세상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있다. 억압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조그마한 피해라도 보게 되면 비분강개하고 울분을 터뜨린다.

하지만 이미 사회의 법체계는 모든 사람의 숨통을 죄고 있다.

 

손숙오의 몇 자 안 되는 간단한 업적은 글로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았다. 그는 재상을 세 번이나 역임했는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재능을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 번 퇴임했는데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말은 그의 행적에 비유할 수 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을 우러러보아 한 점 부끄러운 일이 없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없는 것이 둘째의 즐거움이다.”

 

법령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이미 법체계가 견고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입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 손숙오의 시대에 법체계가 어둡고 무서웠다면 그 같은 재상은 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어 사마천은 정나라의 재상 자산을 이야기한다. 자산이 재상으로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전임자가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게 한 후였다. 그가 재상이 되자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1년이 지나 소인배들의 경박한 놀이가 없어졌고 반백의 늙은이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밭을 갈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 시장에서 값을 에누리하지 않았고 3년이 지나자 밤에 문을 잠그는 일이 없어졌다. 길에서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도 없었다. 4년이 지나자 밭갈이하는 농기구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5년이 지나자 척적(사방 1척 크기의 나무판으로 군령을 기록함)이 쓸모없게 되었고, 상복을 입는 기간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잘 지켜졌다.

자산은 26년간 공직에 몸담고 세상을 떠난다. 대장부로 태어나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여한 없이 삶을 마감한다. 명재상인 자산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자산이 우리를 버리고 죽다니,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인가”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생선을 좋아하기에 받지 않는다”

정치는 권력이고 권력은 돈과 연결되어 있어 온갖 추문이 난무하는 나라는 고대의 중국에도 여럿 있었다. 권력과 돈의 관계에서 완전히 투명한 정치인을 국민은 바란다. 세 번째 등장하는 노나라의 재상 공의휴가 그러한 면을 잘 보여준다.

공의휴는 재상이 된 후 공무원들이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게 했다. 많은 월급을 받는 고위공직자들은 머리핀 하나도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선물과 뇌물의 선이 어디인지를 놓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생선 한 마리도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받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진심 어린 선물이라 할지라도 받는 순간에 뇌물이 되어버리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재상으로서 백성보다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처리 문제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의원들.

어느 날, 공의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에 재상을 존경하던 사람이 생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공의휴는 생선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았소. 지금 나는 재상의 벼슬에 있으니 나 스스로 생선을 살 수 있소. 그런데 지금 생선을 받고 벼슬에서 쫓겨난다면 누가 다시 나에게 생선을 보내주겠소. 그래서 받지 않은 것이오.”

공직에 있을 때가 아니라면 그는 이 정도의 선물은 받았을 것이다. 때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굴비세트나 갈비세트가 전국적으로 돌아다니지 않는가? 하지만 공직자인 그는 원칙을 세워놓았다. 자신의 권력이 행여 백성에게 피해가 될 것을 염려해서다. 그가 원한다면 수산시장에서 날마다 제일 좋은 생선을 그에게 상납하고 장사에 필요한 이권을 가져갈 것이다. 세상 이치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법이다.

 

공짜는 없다. 그는 한 마리의 생선도 받지 않고 월급을 타서 사 먹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집 채소밭에 난 채소가 맛이 좋으면 모조리 뽑아버렸다. 자기 집에서 짜는 베가 좋은 품질의 것이면 불살라버렸다. 그는 자신이 앉은 권력의 자리에서 생기는 온갖 이권을 눈에 보이는 대로 없애버렸다. 그것은 잡초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논에 생긴 잡초를 뽑아야 농사가 잘된다.

우리나라에도 청백리가 많이 있었다. 고려 출신의 정승 황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황희는 조선 태조 이성계 시절부터 고위관직을 역임한 뒤 세종 시절 최고위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영의정으로 지내면서 단벌의 관복을 입고 조정에 들었다. 어느 겨울밤 관복을 빨아 말리고 있는데 급히 입궐하라는 세종의 명이 전달됐다.

 

황희는 당황해 부인이 바지 솜과 저고리 솜을 실로 얼기설기 엮어준 여름 관복을 입고 입궐했다.

세종은 황희의 관복에 솜이 삐져나온 것을 보고 황희는 청렴한 관리인데, 무슨 돈으로 양털로 된 관복을 입나 싶어 물었다. 황희는 당황해 왕에게 양털이 아니라 솜바지에 넣은 솜이라고 아뢰고 자초지종을 밝혔다. 황희의 모습을 자세히 본 세종은 영의정의 품위 유지도 중요하다고 보고 비단 열 필을 당장 하사하라고 명했다. 황희는 어명을 거두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백성들은 계속된 흉년으로 인해 헐벗고 굶주리는데, 영의정이 비단 옷을 걸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결국 황희는 세종이 내린 비단을 받지 않았다.

 

법치와 효도의 모순 속에서…

순리, 청백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수신(修身)이다. 수신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 순리열전에 나오는 관리들은 수신을 한 사람들이다.

대학의 8조목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아직까지 우리의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다. 수신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심신을 닦음을 뜻하고, 제가는 집안을 잘 다스려 바로잡음을 말한다.

치국은 나라를 다스림을, 평천하는 온 천하를 편안하게 함을 뜻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세상사를 다스리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뜻이다. 세상사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수신은 선비가 행동하는 정신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대해 ‘악(惡)지식’이라고 비난했던 가톨릭 원로 정의채(84·사진) 신부는 현 정권에 직언을 하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한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부는 정말 심사숙고해서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정해야 한다. 왜 이렇게 민심이 떠났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심이 떠난다는 것은 나라가 어지럽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고소영 인사에 촛불시위,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이어지면서 민심, 특히 젊은 층의 이반이 두드러진 것은 걱정스럽다”며 “노 전 대통령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잘 되지 않았다면 이 대통령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즉, 당조차 화목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원로가 지적하는 어지러움의 근본 역시 수신이다.

 

고대엔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친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하지 못한다”고 했다. 수신과 치국은 다른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 이 둘은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 제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할 경우 순리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막중한 국사에 엄정한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청렴결백, 강직하게 행동해도 인간으로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사마천은 초나라 소왕의 재상이었던 석사의 예를 들었다.

 

그는 건실하고 정직하고 청렴해 아첨하거나 권세를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현을 순시하는 도중 살인사건을 접했다. 재상이 범인을 찾아가보니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재상은 아버지를 놓아주고 자진해서 옥에 갇힌 뒤, 사람을 시켜 왕에게 이렇게 아뢰도록 했다.

“살인자는 저의 아버집니다. 아버지를 처형하여 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불효이고 법을 무시하고 죄를 용서한 것은 불충입니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왕이 말했다. “범인을 뒤쫓아갔지만 잡지 못한 것이니 벌을 받는다는 것은 옳지 않소. 그대는 전과 다름없이 맡은 일에 힘쓰시오.”

그러자 석사가 말했다. “아버지에게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군주의 법을 지키고 받들지 않으면 충신이 아닙니다. 왕께서 저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임금의 은혜이지만 벌을 받아 죽는 것은 신하로서의 직분입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대에는 법보다 부모가 더 가까웠다. 효는 유가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관리들은 재직 중 부모가 돌아가면 조정에서 물러나 3년간 상복을 입고 지냈다. 국가에서도 이를 어쩔 수 없었다. 고대 사회에서 부자의 관계는 법보다 가까웠다. 순리로서 강직하게 행동하다 큰 걸림돌에 걸린다. 바로 아버지가 살인자라니 법을 따르자니 불충이 되고 법을 지켜 관리로서 행동을 하자니 불효가 된다. 이때 고대의 순리는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고대의 왕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정권이 탄생한다. 현대 정치사에서 순리를 찾으라면 누구를 꼽아야 할까. 무척 예민한 문제다. 강직하고 청렴하게 일한 공직자 중 일부는 이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너무 많아 걱정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항상 나오는 것이 도덕적인 문제들이다. 한두 가지 걸리지 않은 인물이 드물다. 정직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고대의 순리와 다른 점은 후안무치하다는 것이다. 각종 증거물을 들이대도 온갖 궤변으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들의 특징은 ‘일은 잘한다’고 자평한다는 점이다. 법령과 형벌만을 잘 지키는 자가 순리인가?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라면 과감하게 법대로 처리하고 자신의 가족이 비리를 저질렀으면 ‘법대로’ 처리해야 하는 것인가? 동양사상에서는 통합적인 사고를 했다. 석사의 죽음으로 초나라의 왕은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의 보신을 위해 명성을 위해,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감추려고만 한다. 어쩌다 발각 되면 그대로 패가망신한다. 고대 순리들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그 시절을 평화롭게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행위는 고대로부터 지금 이 시절까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하급자에게 떠넘길 수 없다”

순리열전의 다섯 번째 인물은 진나라 문공의 옥관인 이리다. 죄인을 판결하는 직책인 옥관은 그 엄정성이 칼날 같았다. 그는 하급 관리의 잘못된 판단을 믿고 판결해 죄 없는 사람을 사형시켰다. 이리는 스스로 옥에 들어가 처형을 기다렸다. 뛰어난 옥관인 이리의 인물됨을 알고 문공은 하급 관리의 잘못이니 그대의 죄가 아니라면서 달랬다. 문공에게 이리는 말했다.

“저는 장으로서 관직에 있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하급 관리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도 없고, 또 많은 봉록을 받았지만 하급 관리에게 그 이익을 나누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판결을 잘못 내려서 사람을 죽이고,

그 죄를 하급 관리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문공은 “그럼 그대의 상관인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고집불통의 이리에게 강한 충격요법을 쓴 것이다. 감히 군왕에게 죄를 묻지는 못할 것이기에 그쯤에서 물러날 것을 간절히 바랐다. 이리는 이렇게 말하고 그 자리에서 칼에 엎드려 죽었다.

“옥관에게는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형벌을 잘못 내렸으면 자기가 형벌을 받아야 하며, 사형을 잘못 내렸으면 자기가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군공께서는 제가 가려진 부분까지 심리하여 어려운 안건을 판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법관으로 임명하셨던 것입니다. (그 뜻을 받들지 못하고) 지금 잘못 받들어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순리열전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순리들은 혼란한 시국에 법과 원칙을 지키고 그 한계점에 이르면 과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버려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들이 살았던 시절에 공기는 맑고 투명했을 것이다. 환경오염이 심해지자 인간의 본성마저 점점 오염되는 것인가? 교육 방식이 달라 부끄러움이 사라진 것인가?

사마천 시절 중국의 정치인들은 요순시절을 그리워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편한 세상이 되었는데 우리 주위에는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너무 많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한탕주의가 만연해 있고, 도덕적인 부끄러움이 증발했다. 그러나 관리가 정직하다면 세상은 다시 편안해진다.

 

방송법 처리의 아수라장

사마천은 다섯 명의 순리를 이렇게 총평한다. “손숙오는 한마디의 말로 시장을 예전처럼 회복시켰고, 자산이 병으로 죽자 정나라의 백성들은 통곡했다. 공의휴는 좋은 베를 보고 베 짜는 여자를 돌려보냈고, 석사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죽음으로써 초나라 소왕의 명성을 날렸다. 이리는 판결을 잘못 내려 사람을 죽이자 스스로 죽어 진나라 문공으로 하여금 국법을 바로잡을 수 있게 했다.”

 

원재훈
1961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저서 :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불경이야기’ 등

세상의 원칙은 간단한 것이다. 불의를 용서하지 않고 이권을 탐하지 않고 백성의 편에서 행동하면 된다. 국회에서는 방송법 처리 문제를 놓고 난리법석이 났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아수라장이다. 그 화면을 보면서 두툼한 사기열전을 덮었다. 작업실 창문으로 나비 한 마리가 다가왔다 다시 날아간다. 그 나비가 사라지는 푸른 창공을 보았다. 고대의 영혼들은 저기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했다. 그 영혼을 가까이 느끼고 싶다. 답답하고 무더운 여름밤이다.

 

▼ 다음 회 예고

골계열전을 이야기합니다. 골계는 익살이라는 뜻이지요. 사마천은 골계열전을 통해 기지와 해악이 뛰어난 순우곤, 우맹, 우전 세 명을 말합니다. 이들이 입을 열면 포악한 군주라도 웃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유머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멋이 없지요. 골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혜와 혜안을 배울 수 있습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선 골계가 바로 비책이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사마천은 웃으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지혜로움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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