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는 어느 때보다 더 장엄하게 마주해야 옳을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새해를 맞는 우리의 희망이 뜨거운 탓이겠지요. 동해안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일출명소를 두고 경북 포항에서 경주를 거쳐 울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찾아갔던 건 그곳에 용광로처럼 아우성으로 끓는 격렬한 파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항의 영일만에서 출발해 호미곶을 지나고 한반도의 동쪽 땅끝인 구룡포를 거쳐 울산까지 31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따라갔습니다. 전국의 해안 중에서 가장 바다와 가깝고, 파도가 가장 거친 곳은 여기입니다. 거친 바람과 파도 속을 유연하게 나는 갈매기의 무리가 가장 많은 곳도 이곳이지요. 장엄하고 뜨거운 바다가, 그 거친 바다에서 갯것들을 캐는 아낙네들이, 그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떼의 군무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격랑의 바다는 그 뒤에 오고야 말 거울같이 고요한 시간을 예고합니다. 바람과 파도가 거칠수록 희망은 자라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도 더 소중해집니다. 화려하고 감동적인 일출을 보지 못한다 해도 어떻습니까.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러 떠나는 건 깊고 시퍼렇게 일렁거리는 바다를 마주하고서 한 해 동안 품고 가야 할 소중한 희망을 꺼내보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커다란 소망도 좋지만, 사실 희망은 사소한 것일수록 더 소중합니다. 늘 어려울 때가 돼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요. 가족과 함께 차가운 겨울 새벽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날의 일출을 함께 맞이하고 둥글게 모여앉아 뜨끈한 떡국 한 그릇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 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오르는 해를 기원과 탄성으로 함께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새해를 맞는 보람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바람과 파도를 따라가는 이 길의 출발지점을 포항 호미곶의 땅끝인 구만리의 ‘까꾸리계(鉤浦溪)’로 잡는다. 호랑이 꼬리의 끝인 이곳이야말로 포항 일대에서 가장 바람과 파도가 거친 곳이다. 오죽했으면 풍파가 일 때 청어떼가 해안까지 떠밀려 나와 갈고리로 찍어 잡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까꾸리계는 ‘구포계’라는 한자어 지명으로도 부르는데 이것도 ‘갈고리 구(鉤)’자를 써서 지은 것이다. 이곳에는 마치 이정표처럼 해안가에 날개를 접고 앉은 독수리 형상의 기묘한 바위가 서 있다. 까꾸리계 앞바다에 암초 지대인 ‘교석초’가 있다. 교석초 일대의 거친 바람과 높은 파도는 오래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능지처참하면서 시신에서 잘라낸 왼쪽 팔을 여기에다 수장한 것도 성난 짐승 같은 파도 때문이었으리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쯤 이 바다에서는 137t급 일본 도쿄 수산강습소 실습선이 높은 파도에 휘말려 좌초하면서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 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까꾸리계에 서 있는 실습선 조난 기념비는 1926년 세워진 뒤 해방 후 훼손됐다가 1971년 재일교포가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두고 국적을 가려가며 추모할 일은 아니었다. 까꾸리계 해안은 온통 갈매기들 차지다. 겹겹이 몰려오는 너울을 뒤로하고 찬 바다에 발목을 담근 해안의 갈매기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갈매기들이 해안가에 내려앉은 모습도 그렇지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위로 일제히 날아오를 때면 격정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까꾸리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이내 호미곶 등대다. 등대가 세워져 처음 불을 밝힌 날이 1908년 12월 20일이니 새해에 99세가 된다. 호미곶 등대는 높이로 당당하다. 울산의 화암추등대(32m)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26.4m)로 높다. 일제가 호미곶에다 높은 등대를 세우자 당시 주민들은 “호미곶 등대에 불을 켜면,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 때 등댓불이 넘어져 불바다가 된다”며 두려워했다. 공교롭게 호미곶 등대로 발령 난 일본인 등대수는 본국에서 사람을 죽였으나 무죄 방면된 뒤 이곳으로 부임했다가 한국까지 찾아온 피살자의 아들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이 참극을 두고 주민들은 ‘호랑이 꼬리에 불을 매다는 불경을 저질러 천벌을 받았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호미곶 등대의 명물은 등대가 아니라 조형물 ‘상생의 손’이다. 육지에 왼손, 바다에 오른손 조각 작품을 마주 세워 인류의 화합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바다에 있는 오른손의 높이가 8.5m로 5.5m의 왼손보다 더 높다. 이른 아침, 바다 위의 손 앞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이 지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건, 이 조형물이 상징하는 ‘화합’이 혼돈 속에 세밑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절실하게 바라는 일일 것이어서 그렇다. 호미곶을 찾았다면 호미곶 남쪽 대보 1리와 강사 2리를 잇는 해안도로를 빼놓지 말자. 해안도로는 짧지만 갖가지 형상의 갯바위가 송림숲과 어우러져 제법 운치 있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막다른 길 끝에서는 나무 덱을 딛고 갯바위로 올라설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선비의 관 모양을 한 바위 섬인 관암이며 온통 검은 빛의 흑암, 노란빛을 띠는 황암 등을 볼 수 있다. 절경이라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갯바위를 딛고 가며 파도 소리를 듣는 맛이 좋은 곳이다. 바다 위로 길게 놓인 교량의 모습도 독특하지만 암초 위에 근사하게 세운 유리로 마감된 건축물이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고 있다. 해가 떠오른 직후 구룡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장길리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온통 은빛 비늘로 반짝이는 바다 위로 교량과 바다 위의 집이 그려내는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보릿돌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맑고 짙은 푸른빛도 감동적이다. 다리를 건너거나 보릿돌섬을 들어가는 데 따로 입장료는 없다. 포항에서 또 한 곳을 꼽으라면 장기면 신창리의 해안가에 솟아있는 바위 ‘일출암’이다. 포항에서 울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 ‘일출’이란 이름은 흔하디흔하다. 도로명에도, 횟집 상호에도, 구멍가게 간판에도 ‘일출’이 있다. 해안도로 어디서나 일출을 볼 수 있으니 구태여 상호로 새겨넣을 것도 없을 텐데 그렇다. 바위섬 사이에 물이 나와 주민들 사이에서 ‘생수암’이라고 불렸던 신창리의 바위가 일출암으로 이름을 고쳐 단 것도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일출암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다. 바위섬에는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소나무들이 단단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가지를 뒤틀며 자란다. 내륙지역 사람들이 오래된 느티나무를 당산나무로 삼듯, 신창리 마을 주민들은 이 바위섬을 신령스러운 당산으로 여기고 섬긴다. 지금이야 다른 명소들에 가려 있지만 한때 일출암은 내로라하는 명성을 누렸던 모양이다. 육당 최남선은 이곳에서의 일출을 백두산 천지, 금강산 단풍, 제주의 망망대해와 함께 ‘조선 10경’ 중의 하나로 꼽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알려지지 않아 이곳에서는 호젓하게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다.
한때 수령 200년이 넘은 노송들이 즐비했다고 해서 ‘송대말’로 불렸던 등대 일대는 일제강점기 이름을 날리던 최고급 휴양지였다. 이곳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고관대작의 전용 별관인 영빈관이 들어서 있었다. 등대 뒤편에는 당시에는 귀하디귀했던 딸기밭도 있었고, 일본인이 사재를 투자해 만든 수족관까지 있었다. 한창때는 일본인들을 실어나르던 전속택시까지 상주했을 정도로 번성했다. 총독부 우정국에서 감포 송대 끝의 사진을 담은 우표까지 발행했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 고관대작들은 이곳 송대말에서 경관을 즐기다가 즉석에서 생선회를 떠서 먹었고, 오사카성을 본떠 지었다고 해서 당시 최고의 여관으로 꼽혔던 감포의 여관 산양관에 묵었다. 당시의 영화는 옛 등대의 시멘트 기초의 흔적으로만 남아있고 신라 석탑 모양으로 복원된 등대만 밤바다를 밝히고 있다. 등대 앞의 전망대에서는 갯바위와 바다 위의 무인등대 뒤쪽으로 해가 돋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갯바위로 밀려드는 파도와 파도 끝에서 자욱하게 번지는 물안개, 푸르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나는 갈매기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경관이다. 경주에서 해돋이와 함께 해안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두 곳 더 있다. 한 곳이 양남면 읍천리의 주상절리.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의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절리가 부챗살처럼 누워있는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어서 부챗살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지점의 출입을 막아놓았다. 대신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렴리의 군함바위가 있다. 군함이라기보다는 수면 위로 떠오른 잠수함 형상을 한 바위인데 독특한 형상도 형상이지만,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바위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밤늦도록 어시장의 불빛과 차량의 물결로 불야성을 이루는 정자항을 지나 고즈넉한 주전해변을 지나면 31번 국도는 바다를 버리고 울산의 내륙 쪽으로 휘어져 들어간다. 포항에서 시작한 31번 국도 해안구간은 여기가 끝이다. 이 도로가 해안에서 마지막으로 들러 가는 곳이 주전해변이다. 주전에는 몽돌이 뒹구는 자갈 해안이 있다. 몽돌이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 내려가며 구르는 소리가 운치 있다. 마침 바다 위로 흰 달이 뜬 고요한 밤이라면 더 좋겠다. 아침 해를 쫓아 거칠고 힘찬 바람과 파도를 따라온 여정을 마무리하는 저녁이 이렇듯 고요하고 적요하다. 까꾸리계 가는 길 = 포항에서 울산까지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길의 시점으로 잡은 까꾸리계는 포항공항 부근의 도구해수욕장에서 925번 지방도로를 따라 호미곶 방면으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에 ‘독수리 바위’로 입력하고 가면 된다. 이어서 남쪽 경주와 울산 방면으로 31번 국도를 따라가되 해안도로마다 들고 나면서 길을 잡으면 된다. 이즈음 포항에 간다면 과메기가 제철이다. 구룡포는 과메기로만 알려져 있지만 대게도 경북지역의 어획량의 절반 이상이 여기서 난다. 구룡포 어판장과 일대의 음식점 등에서 싱싱한 대게의 맛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횟집이 대게를 주문하면 과메기는 서비스로 내준다. 구룡포를 찾았다면 해안도로 뒤쪽에 일제강점기하 일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이 있다. 400m 정도의 골목에 적산가옥 30여 동이 늘어선 풍경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배경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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