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정민_꽃밭 속의 생각_07

醉月 2011. 5. 8. 10:58

네 계절 변함없이 푸른 치자(梔子)

치자는 꽃으로는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향기는 아주 강열하여 여러 꽃 가운데 특별히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꽃은 인도나 중국과 일본에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꽃 기르는 사람이 재배하여 관상용으로 내놓을 뿐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운치를 취하는 사람은 이 꽃을 사랑하였다. 세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천하의 문인을 모아 놓고 예술로 즐거움을 삼던 안평대군이 이름난 꽃과 기이한 풀을 노래하면서 고아(高雅)하기로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염려(艶麗)하기로는 모란과 해당을, 청초(淸楚)한 것으로는 옥잠(玉簪)과 목련을 꼽았는데, 이 가운데 이 치자화가 들어 있다. 이로 보면 치자가 일찍부터 명화(名花)로 꼽힌 것을 알 수 있다.
증단백(曾端伯)의 지은 열 가지 벗삼을만한 꽃 중에, 매화는 청우(淸友), 국화(菊花)는 가우(佳友), 작약(芍藥)은 염우(艶友), 해당(海棠)은 명우(名友), 하화(荷花)는 정우(淨友), 말리(茉莉) 즉 재스민은 아우(雅友), 엄주(嚴柱)는 선우(仙友), 서향(瑞香)은 수우(殊友), 치자(梔子)는 선우(禪友), 도미(荼蘼)는 운우(韻友)로 꼽았으니, 이로 보더라도 치자가 명화(名花)의 하나로 꼽힌 지는 이미 오래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치자에게는 네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꽃 빛이 흰 것이 그 한가지이고, 향기가 맑은 것이 한가지이며, 겨울철에 잎이 지지 않는 것이 한가지이고, 또 열매를 노란색 물감으로 쓰는 것이 그 한가지이니, 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식물학 상 구분으로 치자는 상록(常綠) 관목(灌木)에 속한다. 네 계절 변함없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이 꽃과 향기 외에 사랑을 받게 된 한 요인이다. 이는 강희안 뿐 아니라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도 특히 이 점을 특별히 일컬은 바 있다. 그 시는 이렇다.

치자는 명품은 아니지만은
엄동설한 오히려 견딜 수 있네.
가지마다 푸른 빛 가득하더니
주렁주렁 신단(神丹)이 찬연하여라.
梔子非名品 猶能傲嚴寒
枝枝森宿翠 顆顆粲神丹

치자가 꽃도 꽃이지만 겨울까지 잎 지지 않고 늘 푸른 것을 찬미하였다. 김시습도 《유호남록(遊湖南錄)》에서 “겨울 치자와 난초가 또한 한 가지 볼 거리(冬梔猗蘭, 亦一勝觀)”이라고 한 것을 보면, 호남의 따뜻한 지역에는 분재 외에 땅에 심은 것과 자연생의 치자도 있는 모양이다.
치자는 달리 목단(木丹)․임란(林蘭)․월도(越桃)․선지(鮮支)․첨복(簷蔔) 등의 별칭이 있다. 《군방보(群芳譜)》를 보면 “치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키가 7,8척이 되고, 잎은 토끼 귀 같이 생겼는데 두텁고 파랗다. 여름철에 하얀 꽃이 피어 크기가 술잔만하다. 화판(花瓣)은 여섯 잎으로 이루어지는데, 맑은 향기가 아주 강렬하다. 치자의 변종 중에는 복건(福建)에서 온 왜수(矮樹)치자란 것이 있다. 키는 1척도 안 되지만 사랑스럽다”고 하였다.

 

일편단심의 충성, 해바라기

*실제 여기에 나오는 황규(黃葵)는 해바라기가 아닌 접시꽃의 일종이다. 해바라기는 19세기 후반 이후에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왜래종 식물이다. 흔히 향일규라 하는 것은 실제로는 대부분 해바라기가 아닌 접시꽃을 가리킨다. 접시꽃도 잎 또는 꽃이 해를 따라 도는 습성이 있다.

(풀어쓴 이)


울밑에 난 해바라기
씨 뿌린 이 없다는데,
절로 나고 절로 자라
내 키보다 더 컸어요.
동근 얼굴 얽었건만
해만 뜨면 들고 웃고,
시집가는 색시처럼
해만 지면 수그려요.

이것은 요새 학동들이 부르는 해바라기 노래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가는 특성이 있다. 중국 명칭은 향일규(向日葵)다. 예로부터 이 꽃을 일편단심을 가진 충신에게 견주었다. 이를테면 《화편(花編)》 첫머리에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규는 충신이로다.” 한 것이 곧 그 일례다.
해바라기는 일년생 꽃 중에서 키가 가장 크다. 10척 이상인 것도 있다. 우뚝 솟은 가지 끝에 핀 대접 같은 황색 꽃은 누구의 눈에든지 가장 먼저 띈다. 이 꽃의 다른 이름은 황규(黃葵)다. 《고려사》를 보면 이상야릇한 이야기가 있다. 고려 인종이 꿈에 황규(黃葵)씨 3승(升)을 얻었다. 인종이 이 꿈을 신하인 척준경(拓俊京)에게 이야기 했다. 이에 척준경이 해몽하기를, 황은 황왕(皇王)의 황과 같고, 규(葵)는 도규(道揆)의 규와 같으니, 황규(黃葵)는 요컨대 임금이 법도를 잡아 나라에 임하실 상서로운 조짐이오며, 그 수가 세 되인 것은 셋째 아들이 등극하실 조짐이라고 아뢰었다. 뒤에 마침내 이 말대로 되었다. 이로 보면 해바라기는 벌써 7,8백 년 전에 궁궐 정원에 심었던 모양이다.


해바라기에 관한 이야기로 민간에 전해오는 재미난 전설도 있다. 옛날 어느 젊은 과부가 죽은 남편이 너무나 그리워서 하루는 무녀에게 어떻게 하면 죽은 님을 한 번 볼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하도 간절히 청하므로 무녀는 그녀에게 죽은 남편 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해바라기 씨로 기름을 짜서 불을 켜고 베개에다 망건과 갓을 씌우고 옷을 입혀서 남편처럼 만들어 놓고 밤새도록 마주 앉아 있으면 반드시 남편이 보일 것이니 그리하라고 하였다. 과부는 집에 돌아가서 무녀의 말대로 해바라기 씨를 구하여 기름을 짜서 불을 켜고 베개에 의관을 씌워서 남편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밤마다 자지 않고 베개와 마주 앉아 눈이 뚫어지게 보았다. 이런 지 사흘 째 되던 날 밤에 의관을 씌운 베개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청어청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크게 놀라 기절해 버렸다. 이후 죽은 남편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하의 한 구경거리, 수선화 (水仙花)

사계절 늘 봄의 느낌이 있는 남국의 따뜻한 지방인 제주도는 수선화로 이름난 고장이다. 조선에는 수선화가 없다고 하나, 오직 제주에는 수선화가 많다. 《예원지(藝畹志)》에 인용된 서유구의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는 이렇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수선화가 없다. 근래 들어서야 비로소 중국 시장에서 구입해 온 것이 있다. 호사가들이 이따금 뿌리를 나누어 화분에 얹어 서안(書案)에 놓아두고 기이한 감상거리로 뽐낸다. 하지만 값이 비싸서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능히 할 수가 없다.

생각건대, 아마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를 지은 서유구가 일찌기 중국에서 사온 수선화만 보고, 제주에 고유한 수선화는 보지 못해,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본래 수선화가 없었다는 속단을 내리게 된 듯 하다. 몇 달 전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전》의 이봉학편을 보니, 제주도에는 산과 들에 온통 가득한 것이 수선화라고 한 대목이 있었다. 이제 다시 《추사집(秋史集)》을 읽다가, 제주도에 과연 수선화가 많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추사는 지금부터 90여년 전에 제주도에서 10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더군요. 중국의 강남 지역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주도에는 모든 마을마다 조그만 남는 땅만 있으면 이 수선화를 심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수선화는 1월말 2월초에 피기 시작한다. 3월이 되어 산과 들, 논둑 밭둑 할 것 없이 온통 가득히 피어난 수선화는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기도 하다고 추사는 찬탄하였다. 수선화가 하도 흔하다 보니, 제주도 사람들은 이 꽃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쇠풀이나 말꼴로 베어내고, 아무리 베어내도 보리밭 같은 데서 다시 돋아나기 때문에 시골 아이들과 농부들은 수선화를 원수처럼 여긴다고 하였다. 나는 추사의 이 글을 읽고서 비로소 수선화가 우리나라 고유의 꽃임을 알게 되었다.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수선화 시에 이런 것이 있다.

나래 쳐 닭이 울어 첫 홰 소리 들릴 적에
샛별은 반짝반짝 저 달도 기울었네.
수선화 베게 머리 가까이 친하다면
깨끗하고 아리따워 꿈조차 못 이루리.
鼓翼鷄鳴第一聲 明星晢晢月西傾
水仙枕畔如相狎 芳潔令人夢不成

백옥의 비녀 같은 옥잠화(玉簪花)

수선화가 귀족의 풍모를 지녔다면 옥잠화는 평범하다. 그러나 귀골만이 좋고 범골은 좋지 못하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수선화가 아무리 귀골이라 하나, 제주같이 흔한 곳에 있어서는 사람에게 짓밟힘을 면하지 못한다. 옥잠이 범골이긴 해도 한 번 꽃 기르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귀골처럼 아껴 감상하게 된다. 이로 보면 꽃도 그 놓인 경우를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옥잠화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백학선(白鶴仙)이고 다른 하나는 백악(白萼)이라고 한다. 꽃이 하얗고 길이다 두 세 치쯤 된다. 꽃 모양은 밑둥이 적고 끝이 뾰족하다. 활짝 피기 전에는 마치 백옥으로 된 비녀처럼 생겼으므로 옥잠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옥잠화의 잎은 질경이와 비슷하다. 여러 잎사귀가 뻗은 밑둥에서 줄거리가 솟아나 오뉴월이 되면 줄거리에서 가는 잎이 돋아나고, 줄거리와 가는 잎 사이로 열 몇 개의 꽃떨기가 나온다. 꽃이 필 때는 먼저 꽃 머리의 사면이 조금씩 터지면서, 터진 곳으로 황색의 꽃술이 비죽 나와 아주 좋은 향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옥잠화는 꽃만 피고 열매는 맺지 않는 다년생의 풀꽃이다.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는 “꽃이 너무 곱고 붉고 열매는 맺히잖네. 花太嬌紅結子稀”라고 했다. 옥잠화는 꽃이 맑고 흰 데도 불구하고 열매가 전혀 맺히지 않으니 이것이 웬일인가?
《본초강목》을 보면 옥잠화는 흰 꽃이 보통이지만, 자줏빛 꽃도 있다고 한다. 다만 자줏빛 꽃은 잎사귀가 좁고 꽃도 작다. 그러나 옥잠화는 자주빛 꽃보다 흰 꽃이 한층 더 아름답고, 활짝 피었을 때보다 아직 피지 않았을 때 도리어 더 예쁘다. 세종 때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가 안평대군의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에 화답해 지은 〈옥잠〉시에도 흰 빛의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찬양한 바 있다.

풍겨오는 고운 향내 깁장막에 스며드니
흰 눈의 넋 얼음 혼이 흰 이슬에 젖었구나.
옥잠화의 진면목을 알고자 할진대
채 피지 않았을 때 그대여 와서 보오.
天香荏苒透羅帷 雪魄氷魂白露滋
欲識玉簪眞面目 請君看取未開時

 

낮에 피어 밤에 지는 금전화(金錢花)

옥잠화를 말했으니 금전화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옥잠화는 꽃빛이 희고, 모양이 비녀와 같아 옥잠화란 이름을 얻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금전화는 꽃빛이 누르고 그 모양이 돈과 같다 하여 금전화란 이름을 얻었다.
이름이란 것은 실제 사물을 부르는 명칭일 뿐이니, 이름이 좋고 나쁜 것이 실상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하지만 꽃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고운 꽃이라 해도 이름이 좋지 못하게 되면 실물의 아름다움을 손상할 수도 있다.
꽃의 이름을 음미해보면, 수선화는 과연 그 실물과 같이 이름도 아름답고, 옥잠화는 꽃과 같이 이름이 그럴 듯 하다. 다만 금전화에 이르러서는 비록 꽃 모양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는 하지만, 아주 속되다.


돈이란 것이 인간에게는 없지 못할 것으로 사랑을 받지만, 꽃 세계에 있어서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물건이다. 만일 이것으로써 꽃의 이름을 짓는다면 이는 꽃을 더럽히는 셈이다. 그러나 천하가 모두 아방궁이라 하는 격으로, 누구든 이 꽃을 모두 금전화라고 일컬고 있으므로, 이제 갑자기 바꿀 수도 없게 되고 보니, 우리는 그 이름을 떠나서 꽃만 감상하면 그뿐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군방보》에는 이 꽃이 가을에 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계속해서 핀다. 푸른 잎과 여린 가지에 피어난 돈 모양 같은 황색 꽃이 몹시 아름답다.


그러나 이 꽃의 특징은 겉모양의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이른바 ‘일개야락(日開夜落)’, 즉 낮에 피었다가 밤에 짐으로써 자오화(子午花)라는 별명이 있다. ‘자오’의 ‘자’는 자정이란 말이요, ‘오’는 정오란 말로 자오화라 함은 이 꽃이 낮에 피어서 밤에 짐을 뜻한다. .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삼추의 풍경을 능히 사겠네(能買三秋景)”고 한 구절이 있고, 소동파의 시에도 “금전화의 빛깔이 가을 곁일세(金錢色傍秋)”라고 한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꽃이 일찍부터 당송의 대시인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도 벌써 금전화란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꽃을 금전화라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선 초기 안평대군의 〈비해당사십팔영〉 중에 금전화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유래가 퍽 오랜 것을 알 수 있겠다. 신숙주가 안평대군에게 올린 〈금전화〉시는 다음과 같다.

동글동글 금동전이 가을바람 희롱하니
빚어 만듦 모두다 조화옹의 보람일세.
어이하면 온 천하에 두루 재배 하여서
네 힘 입어 하나하나 빈궁한 이 구제할까.
金錢箇箇弄秋風 鎔鑄都因造化功
安得栽培遍天下 憑渠一一濟貧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