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전통태교 전도사

醉月 2010. 7. 19. 10:40

전통태교 연구하는 물리학자 김수용 KAIST 교수
“태교 연구에 국비 지원하면 금세 선진국 된다”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생각보다 힘든 인터뷰였다. 인터뷰이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답이 20분 넘게 이어졌다. 한참을 지나고야 알았다. 그가 이 시간을 무척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걸.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에 귀 기울여주기를,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과학에 대해 소개할 순간이 오기를, 김수용 교수는 17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왔다.

“논어에 ‘생이지지자 상야, 학이지지자 차야, 곤이학지 우기차야(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이 최고요,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며, 막힘이 있어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라는 말이죠. 이게 태교의 비밀입니다. 주위를 보면 별로 노력하는 것도 없는데 일이 술술 되는 사람이 있죠. ‘생이지지자’, 부모가 태교에 성공한 사람이에요.”

김수용(57)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는 ‘논어’를 줄줄 읊었다. 조선 후기의 태교 지침서 ‘태교신기’ 중에서는 ‘사교십년 미약모시월지육(師敎十年 未若母十月之育)’ 즉 ‘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미가 배 속에서 열 달간 가르친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좋아한다고 했다. 막 첫인사를 나눈 참인데,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 교수는 전통태교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한문으로 기록된 옛 문헌을 뒤져 그 안에 담긴 ‘지혜’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을 한다. 태아의 뇌파를 검사해 모체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살핀다. 물리학 교수가 왜 태교를,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우주의 원리를 파헤치는 플라스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그렇다. 우주로 상징되는 첨단 과학의 세계와 먼지 더께가 하얗게 덮여 있을 것 같은 한문 고서 사이의 간격은 넓고 깊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뇌는 우주 못지않게 신비롭고 깊이 있는 탐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전통태교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하고 작동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교본입니다. 연구할 내용이 무궁무진해요.”

좋다. 거기까지는 인정하자. 그런데 그 연구를 왜 하필 물리학과 교수가 하느냐는 말이다.

 

生而知之

김 교수가 처음부터 태교에 관심을 뒀던 건 아니다. 그는 박사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한동안 무척 열심히 전공 분야를 연구했다. 1993년에는 국내 기술만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을 개발했다. 지금은 일반인도 널리 아는 일상적인 기술이지만, 당시는 언론에서 ‘위치측정시스템이란 인공위성으로부터 받은 신호를 처리해 현재의 위치와 속도, 그리고 시간 등을 알아내는 장치’라며 ‘자동차를 타고 낯선 지역을 갈 때나 지하에서 전기선 등의 공사를 할 때, 외진 곳 또는 산속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등 현재 위치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나 활용이 가능하다’고 상세히 소개할 만큼 첨단 기술이었다. 김 교수는 같은 해 역시 인공위성 신호를 받아 기상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과학기술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잘 나가던’ 시절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때 불쑥 뇌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는 아니었어요. 미국 유학 갔을 때부터 뇌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한국에서는 제가 아주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시간에 보니 서양 애들은 뭔가 다른 거예요. 아주 희한한 생각들을 하고, 재미있는 질문도 막 해요. 시험을 보면 성적은 저만 못한데,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보였죠. 쟤네의 뇌는 나랑 뭐가 다른 걸까. 그게 궁금했어요.”

궁금할 만하지만, 뜬금없기는 하다. 김 교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렵게 간 유학길에서 전공 공부를 미루고 친구들의 뇌를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고 생각했지만, 공부에 쫓겨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그런 호기심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귀국 후 한 번 더 ‘뇌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의 일이다. 그해 우리나라는 핀란드에서 열린 제23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 사상 최초로 학생들을 출전시켰다. 김 교수는 ‘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단’ 부단장을 맡아 전국에서 선발한 우수한 중·고등학생들의 대회 준비를 도왔다. 그런데 미국에서 본 ‘신기한 아이들’이 여기에도 있었다. 제대로 물리를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대학교, 대학원 수준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학생들이었다. 내용을 물어보면 정작 잘 몰랐다. 대신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얘네와 일반 아이들의 차이는 뭘까.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문득 미국에서의 궁금증이 되살아났다.

이듬해 연구자로서 한창 자신감이 치솟던 그가 이 연구에 뛰어들기로 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싶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김 교수의 연구실로 모여들고 있고, 국내 유수의 기업과 산학협력도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뇌 연구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마. 그런데 그 연구를 왜 하필 네가 하느냐.”

기자의 첫 의문과 비슷한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동료 교수들의 놀라움이 특히 컸다.

“김 교수, 왜 그래요?”

“내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뒤에서 수군수군 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죠. ‘김 교수, 왜 저러는 거예요?’ 같은. 사람의 뇌는 생물학, 의학, 약리학 혹은 심리학에서, 어쨌든 물리학은 아닌 학문의 틀로 연구할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제가 우리나라 물리학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뇌 연구 하겠다고 나섰을 겁니다. 그러니 다들 눈이 동그래졌죠.”

그는 자신 있었다. 그동안 배우고 실험해온 정통 물리학의 틀이 뇌를 연구하는 데 새롭지만 유용한 접근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1980년대 중반, 뇌파가 뇌의 작동 정보를 담은 카오스(chaos)적인 신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외 물리학자들이 하나둘 뇌 연구에 눈길을 돌리는 참이었다.

“뇌파는 대뇌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동할 때 머리 표면에 전위차가 생기면서 형성되는 파동이에요. 예전에는 뇌파가 아무 정보 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됐죠.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 파동을 분석하면 뇌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겁니다.”

뇌파는 이내 자연과학의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됐다. 의학, 생물학, 심리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뇌파 연구에 뛰어들었다. 물리학자들이 이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카오스 이론’이 바로 물리학계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카오스적인 신호란, 언뜻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일정한 질서가 있는 신호를 가리키는 말. 물리학자들은 카오스 이론을 통해 복잡한 시스템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왔다. 김 교수는 “인간의 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최신 카오스 이론을 이용해 뇌파를 분석하면 그 속에 감춰진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이건 생물학에서도, 의학에서도, 약리학에서도 할 수 없는 접근법이에요.”

그는 독학으로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저널에 관련 논문도 실었다. 지금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로 있는 정재승 박사는 그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첫 제자다. 하지만 연구를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세간의 무관심과 오해 때문이다. 그는 “정 박사만 해도 석사 끝내더니 다른 연구실로 가겠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너 물리학 하려고 대학원 간 애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한다는 것이었다. 미래가 불안한 눈치였다. ‘처음 시작하는 분야라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하면 길이 보일 거다’며 붙잡았다”고 털어놓았다.

   

통섭의 괴로움

학자로서 더 힘들었던 건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뇌를 자극해 기능 변화를 알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연구비 부족 등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연구비를 아예 못 받았어요. 이쪽 연구가 돈이 많이 들거든요. 어떻게든 길을 찾아보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는데, 융합적인 분야다 보니 물리학자들은 아예 심사를 못 하는 거예요. 제안서를 내면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검토해요. 아무래도 자기 쪽 사람에게 먼저 눈이 가겠죠. ‘물리학 하는 놈이 이런 걸 왜 내’ 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김 교수는 연구하고 싶었던 주제가 정확히 뭐였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다 포기해서…”하고 혀를 찼다. 그는 몇 가지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 처음 생각한 건 치매 환자의 뇌였다. 한창 왕성히 활동하는 성인의 뇌는 연구 대상으로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비정상(abnormal)적이고 단조로운 뇌를 통해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같은 관점에서 임종 직전의 뇌, 수면 상태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태아의 뇌도 좋은 연구 대상이 될 것 같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뇌 구조가 단조롭고, 거의 대부분 수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모든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는 ‘뇌파 분석을 통한, 깨어 있을 때와 깊이 잠들었을 때 개의 뇌 활동 연구(The Analysis of Brain Activity in Wakefulness and Deep Sleep States from a dog EEG, 1997)’ 등 다른 연구를 통해 뇌의 비밀을 찾아나갔지만, 맥이 풀리고 기가 꺾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96~97년 무렵,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연구비를 굉장히 많이 지원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하려는 연구가 외면당하니까 속상했죠. ‘이상한 연구를 한다’고 소문이 나서 한때는 몰려들던 대학원생도 오지 않았어요. 내가 뭐하고 있나 싶더군요.”

김 교수가 ‘태교’를 만난 건 이렇게 학자로서 바닥을 쳤을 때다. 1998년, 그는 뇌 과학에 대한 열정을 접고 정통 물리학으로 복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 흥이 나지 않아 마음을 잡을 겸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논어’‘맹자’‘대학’…. 사서삼경을 읽으며 성현들의 말씀을 암송했다. 그때부터 10여 년간 꾸준히 한문을 공부해왔다니, ‘논어’를 줄줄 외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한창 한문 공부에 빠져있을 때 지인이 ‘태교신기(胎敎新記)’라는 책을 권했다.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태교 방법을 담은 책이다.

“제가 태아의 뇌에 대해 연구하려 한 걸 알았던 거지요.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책이 있나’ 했습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현대과학이 조금씩 알아내려 하는 비밀의 영역을 그 시대에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태교신기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태교신기’에는 ‘임신부는 항상 마음을 맑게 하고 조용하게 거처하며 정신을 통일한다’는 구절이 있다.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아에게 영향이 미친다는 걸 적시한 부분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부의 심장박동이 분당 60~70회인 반면 태아는 평균 140회에 달한다.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박동이 10회쯤 빨라지면, 태아의 심장은 20회나 더 많이 뛸 만큼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 사실이 수백 년 전 문헌에 이미 기록돼 있는 것이다.

‘마음에서 허욕이 생기지 않게 하며 몸에서 사기(邪氣)가 생기지 않게 해 자식을 낳는 것은 아버지의 도(道)’라는 구절도 눈에 들어왔다. 태아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서구에서 최근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김 교수는 “성리학을 숭상하던 조선 시대에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건 ‘태교신기’가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태교는 임산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온 가족이 항상 공경하고 삼가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미국 플로리다의대 연구팀은 1992년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임신부 8명의 자궁 안에 특수 수중마이크를 부착한 뒤, 안에서 들리는 음량을 측정한 것. 남자와 여자가 각각 90db로 말할 때 자궁 안에서 들리는 크기는 남자 목소리의 경우 87.9db, 여자 목소리는 86.8db인 것으로 나타났다. 8명의 임신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 결과를 통해 태내에서는 엄마 목소리보다 아빠 목소리가 훨씬 잘 들린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태교는 임신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온 가족이 참여하라’는 메시지의 과학성이 확인되는 셈이다.

‘태교신기’는 궁극적으로 “부모가 태교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자식이 재주가 없을 뿐 아니라 형체도 온전치 못하며 질병이 많고 태어나도 요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태교가 인간의 뇌와 신체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다. 김 교수는 이 내용을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다면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가 되겠다고 무릎을 쳤다.

1997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은 자궁 내 영양 상태, 산소의 공급 정도, 그리고 산모의 정서와 같은 외적 환경이 태아의 지능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태교신기’의 저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논문의 형태로 입증한 이 연구 결과에 세계는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태교는 태중교육(胎中敎育) 또는 태내교육(胎內敎育)의 약자인데, 외국에는 이런 단어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네이처’에 실린 논문도 당시 큰 화제를 모았죠. 한국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태어나기 전의 생명에 대해 연구했고, 그 결과 의미 있는 규범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이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 과학 연구 좌절로 우울하던 가슴이 다시 뛰었다. 뇌 과학에서 전통태교 연구로 김 교수의 관심 분야가 바뀐 계기다.

 

전통태교 전도사

물론 뇌 과학을 연구하는 것도 ‘외도’로 여겨진 환경에서, ‘전통태교의 과학성 연구’로 연구비를 받겠다는 건 꿈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돈이 모이기는커녕, 있던 대학원생마저 짐을 싸서 나갈 판이었다. 김 교수는 학문적으로는 정통 물리학 분야를 연구하면서 ‘뇌 과학 연구자’라는 이력을 활용해 전통태교의 과학성을 외부에 알리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안에 전통태교 아카데미를 열고 ‘뇌과학으로 본 전통태교의 우수성’ 같은 대중 강연을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태교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대전대 한의대 수업을 청강하며 전통의학을 배웠다. 태교라는 대중적인 주제가 ‘과학’의 영역으로 수렴되자 언론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구 MBC의 한 PD가 찾아와 국악이 태교에 효과적인지 알아보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PD 덕분에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했어요. 방송사에서 산모들을 다 섭외해주고 실험 환경도 만들어준 덕분에 산모와 태아의 뇌파 측정을 통해 국악이 태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그는 산모를 세 그룹을 나누어 한 그룹은 국악, 다른 그룹은 모차르트 음악을 듣도록 했다. 원래 음악을 즐기지 않는 임신부들로 구성한 나머지 한 그룹의 산모는 임신 기간 중 아무 음악도 듣지 않았다. 출산 후 세 그룹의 태아가 음악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음악 태교를 받은 뒤 태어난 아이는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울음을 그쳤고, 낯선 음악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특히 국악을 들은 그룹의 아이들은 알고 있는 음악이 나오면 감았던 눈을 뜨고 엄마와 시선을 맞추는 등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임신 중 음악 감상이 태어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실험 결과에 감동을 받은 김 교수는 아들 부부가 임신했을 때 연구 당시 사용한 국악을 CD에 모아 선물했다. 배 속에서부터 그 음악을 들으며 자란 손자는 여전히 전통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는 SBS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 출산 과정에서 태아가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한 실험도 진행했다.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태어난 아이와 자연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뇌파를 시간대별로 측정한 것. 이에 따르면 생후 2시간 시점에서 자연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뇌파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보인 반면 제왕절개수술을 거친 아이의 뇌파는 매우 불안정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제왕절개를 위한 마취제 투입 순간 아이의 뇌 기능에 일시적인 마비가 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출산 24시간 후의 뇌파는 양쪽 태아 다 안정적이었다.

태교를 태권도로

태교 연구를 디딤돌 삼아 그는 오랜 꿈이던 뇌파 연구까지 진행하게 됐다. 이런 연구를 모아 2003년 해외 학술지(‘Early Human Development’)에 신생아의 뇌파에 관한 논문(‘Delivery Modes and Neonatal EEG: Spatial Pattern Analysis’)을 발표하는 등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물리학자가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짓만 한다’고 여기는 시선은 여전했지만, 그는 새롭게 자신감을 얻었다. 김 교수의 목표는 분명하다. 전통태교를 ‘태교학’이라는 과학적인 학문 분야로 완성하는 것. 그래서 이 학문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만의 것이기에 세계적으로 성공했어요. 태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경탄할 만한 최첨단 과학이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이지요.”

그는 요즘 MBC 드라마 ‘동이’를 보며 태교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비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제왕이 탄생하기까지, ‘동이’가 기울였을 노력을 태교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콘텐츠가 나온다면 외국인 눈에 얼마나 신비롭겠느냐는 얘기다.

김 교수는 “모양이 상한 과일은 먹지 말라, 바르고 고운 말만 써라 같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태교 상식조차 외국인들은 신비롭게 여긴다. 나쁜 말을 쓸 때 임신부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어떻게 전이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자료화하고, 이런 것을 해외에 나가 가르치는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면 태교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태교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뻗어나갈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학이 세계 어디에 있겠습니까. 해외에서 벌써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가 많아지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장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괴짜’ 얘기를 들어도 ‘선구자’ 노릇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태교신기’가 강조하는 태교 10계명
01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머니의 배 속 교육 10개월만 못하고, 어머니의 10개월 교육이 아버지가 잉태일 하루를 조심하는 것만 못하다.
02 마음에서 허욕이 생기지 않게 하며 몸에서 사기(邪氣)가 생기지 않게 해 자식을 낳는 것은 아버지의 도이다.
03 마음과 몸을 순정(順正)하게 하여 자식을 기르는 것은 어머니의 도이다.
04 태교는 임신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온 가족이 항상 공경하고 삼가라.
05 임신부는 시끄러운 소리, 주정하는 소리를 삼가며 시를 외우고 좋은 음악을 들어 성정을 순화시킨다.
06 항상 마음을 맑게 하고 조용하게 거처하며 정신을 통일한다.
07 분해도 사나운 소리를 하지 말며 화나도 악한 말을 하지 말며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는 말을 하지 않는다.
08 엎드리거나 구부리거나 배불리 먹은 뒤 잠자지 말라. 몸을 덮지 않거나 한더위 한추위에 낮잠을 자지 말라.
09 태교는 보고 듣고 앉고 일어서고 잠자고 먹는 것을 삼가는 데서 시작한다.
10 부모가 태교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자식이 재주가 없을 뿐 아니라 형체도 온전치 못하며 질병이 많고 비록 태어나도 요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