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장진주사(將進酒辭)

醉月 2008. 4. 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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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술이라 하나 같은 술이 아니고,웬 세상에 귀밝이술도 있다.
귀밝이 술이라 하면,요새 젊은이 들은 무슨 귀밝이나물로 담근 술로 알 법하다.
그게 아니고 음력 정월 보름에 오곡밥을 들기 전에 마시는 청주를 말한다.

이 술을 마셔야 일년 내내 귀가 밝아진다는 백약지장(百藥之長)이다.
정월 보름날 마시는 한 잔 술을 치롱주(治聾酒)라고 하는데,

귀가 밝아지려면 귀에 탈이 없어야 한다.

이명주(耳明酒)를 마셔야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소리없는 마음의 소리도 알아듣고,

삼라만상 우주의 진리를 깨치게 된다고 하겠다.

 

공자님도 귀밝이술을 드셨드라면,

육십이 아니라 삼십에 이순(耳順)을 하셨을 것이다.

이땅에 우리 조상님네들이 터를 잡고,

언제부턴가 새해 설을 맞고 보름날을 쇠기도 하였는데,

골백번 정월 열닷세에 어느 분이 귀밝이술을 가장 많이 마셨는지 알 길이 없다.

[동국세시기]에도 그런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삼국시대에는 기네스북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귀밝이술을 몽땅 마시지 않았으나,짐작컨대,
이술을 두주불사(斗酒不辭)로 마셔댄 분이 조선조 대문장가 송강 정철(鄭澈)이 아닌가 한다.

 

송강은 좌해 진문장가(左海 眞文章家).

세파에 휩쓸려 서인(西人)의 우두머리로 당쟁을 치르면서,

부지런히 귀양살이도 해야 했으니,

망우주(忘憂酒) 한두잔이 아니라 말술로 심사를 다스리기도 하였을 시 분명하다.

 

정 송강이 으슥한 달밤에 북망산을 거닐게 되었다.

숲 속에서 부엉이 슬피 울고 풀벌레 소리 요란 하였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땅 속에서 새어 나오는 망자(亡者)의 말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사방의 무덤 봉오리에서 껄껄소리가 연이여 나더니, 이내 떼지어 울려 퍼졌다.

껄껄후렴은 같은 소리나,

앞의 사설이 제가끔 이었다.

 여기서는 '어버이를 잘 섬기고 올껄껄' 하고 ,

저기서는'우리임자 구리반지라도 하나 구해 줄껄껄' 하기도 하고,
어디서 들릴락 말락 탄식성이 나는데,

'입이라도 한번 더 맞추고 올 껄껄'하고,
또 모기소리 같이 '한 잔 더 마시고 올 껄껄'하는 한숨소리도 들렸다.


송강은 주성(酒聖)이라,

맨 나중 지하성을 듣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하였다.
술꾼만이 주태배기 마음을 안다.

저 불후의 명문 장진주사(將進酒辭)는 귀밝이 술을 마신 송강의 한림산행(寒林山行)에서 탄생하였다.


사설시조 '장진주사'의 초장은 한도 끝도 없이 술을 마시고 또 마시자는 사설로 운을 뗀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하나님은 물을 만들었으나, 사람들은 물로 술을 만들었다.

우리 인생 우리가 빚은 술,

한 잔 부어라,

또 한 잔 부어라.

김삿갓이 맞돈 내고 술 마셨다던,
반 잔 술에 눈물 나고,
한 잔 술에 웃음 난다.

죽어서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만 못하도다.
주거니 받거니 날이 새는데, 얼마를 마셨는지 인사불성이다.
마침 술상 옆에 피어 있는 꽃잎을 따서 마신 잔 수를 셈하면서 마시자고 하였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독에 빠져 죽은 고주망태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렇듯 원수 악수로 마시는 까닭이 중장으로 이어진다.

 

**이 몸 죽은 후면,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여 매여 가나,**

 

가엾은 죽음이다.

널을 마련할 처지가 못 되는데,

꽃 상여는 턱도 없다.
거적에 말려서 지게 위에 얹혀와서 땅속에 묻힌 주검이다.
평생 서럽게 산 인생,
죽어서도 처량하다.

고대광실 호의호식 부귀영화 누린 귀인(貴人),

북망산 가는길이 대구(對句)로 이어 있다.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어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숲에 가기곳 가면,**

 

울긋불긋 호화롭게 꾸민 상여 뒤에 구름처럼 조객이 따르고,만장이 하늘을 덮는다 하더라도,

억세풀 속새풀 떡갈나무 은버드나무 욱어진 유택(幽宅)에 가면
상하귀천 남녀노소 따로 없고 만인이 한결 같다.

이승에서 그만큼 떠들었으면,

저승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한다.

사후 세상에서조차 술타령을 하다가는 염라대왕의 노여움을 산다.
그렇달지라도 술 한 모금이 간절한 시와 때가 따로 있다.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서산에 누런 해는 지고,

흰 달이 떳는데,

청승맞게 비는 내리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이는데,

무덤 속 망인은 천지간 혼자뿐이다.
그 귀한 아들을 두고,

백년 해로 하자던 부인을 떼어두고,문전옥답 그대로 두고 금은보화 다 버리고,
외롭게 어둔 땅에 누워 있으나,

한 잔 술을 권하는 벗이 없다.

동아줄에 매여서 칠성판에 누운 망자를 위로해 줄 이웃은 이제 아무도 없다.

생사가 다르다.
인간의 오욕칠정을 잊어야한다.
그런데,생판 원숭이가 나타나서 가슴팍 위에서 서성되지 않는가.

이글의 종장은 비통한 감정의 극치글 이룬다.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 뉘우친들 어떠리**

 

애달픈 달빛,

스산한 빗소리도 견딜 수 있다.

적막강산 오밤중에 망자의 머리 위에 원숭이가 앉아 있어도 오장육부가 찢어지거늘,

무슨 심사로 원숭이는 휘파람을 불어 대는가.
잔나비 구적성(口笛聲)이 울려 퍼지니,

산천초목이 눈물을 짓는데,

지하의 영령들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바야흐로 여기저기 묘혈(墓穴)에서 껄껄소리 처량하다.


친구가 건넨 술 잔을 퇴 하지 말 껄,

몸 생각한다고,

좋은 술을 참지 말 껄,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진창 마시고 올 껄,

남의 술에 오십 리라도 좇아 갈 껄 하는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헛일,

뉘우쳐 보았자 말짱,소용이 없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술 한 잔을 들 힘이 남아 있으면,

한모금 이라도 더 들이켜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말은 무덤에서 들리는 껄껄타령이 아닌가 한다.

술을 즐긴 자, 어디 하나 둘이랴.

달밤에 묘지를 거닐어 본 자, 헬 수 없이 많다.
인생무상을 노래한 시인 묵객이 밤하늘의 별보다 많다.

동서고금의 술 노래가 모래알 보다 많다.
그러나 묻힌 영혼의 술노래를 송강처럼 읊은 시인은 없을것이다.
'장진주'를 지은 이태백이 송강의 시를 보았더라면,

아마 병풍 뒤에 숨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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