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만설(漫說)

醉月 2008. 3. 24. 19:13

 

하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땅이 멎어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것 인가?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고,

누가 이를 붙잡아 다스리며,

어느 누가 하늘과 땅에 머물 며 항상 이를 밀어서 움직이게 하는가?

생각건대 그 곳에는 바탕이 되는 기운이 있어 마지 못해 그리되는 것인가,

그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 넓은 세계에 늘어서 있는 별자리를 바라보노라면 멀디멀고도 찬란하게 밝으니,

그 빛은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 크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천 길 높은 산마루에서 살펴보노라면 지 나다니는 사람은 마치 콩알만하고,

백리의 바닷길을 바라보노라면 돌아오는 돛단배가 마치 잎사귀 같은데,

9만리의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늘어선 별들은 마치 촛불과도 같으니,

그 크기는 얼마만한 것이며, 그 밝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항차 땅과 하늘과의 간격이 단지 9만 리 만 될 것인가?

 

사람들이 저자거리를 지나다니자면 어깨와 꽁무니가 맞닿이게 되고,

수레가 번화한 네거리 를 지나가노라면 곧 그 바퀴가 부딪치게 되는데,

늘어선 별들은 높고 푸른 하늘에서 빛을 발하면서 밝디밝게 반짝거리고 가지런히 질서가 있어

행여나 침범하는 일도 없으니,

누가 이를 이끄는 것이며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는 것인가?

해는 별보다 멀고 달은 별보다 가 까운 것인가,

아니면 별이 가장 멀리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의 크기는 별들과 비교하여 어떠 한가?

큰 화로의 불도 열 자 떨어져 불길을 쬐면 단지 따뜻할 뿐이요,

수레에 가득 실은 얼 음도 얼마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으면 단지 서늘할 뿐인데,

해와 달의 기운은 9만리의 먼 곳으로부터 오면서도 춥고 더움이 사람을 다그치니,

그 열기는 얼마만한 것이며, 그 냉기는 또한 얼마만한 것인가?

 

또한 산악의 웅장함과 강과 바다의 광대함 속에는 만 가지의 모습들이 늘어서 있고 억 가지 의 사물들이 갖추어 실려 있으며,

산마루의 한줌 돌과 골짜기의 한 뿌리 풀도 스스로 자리 하는 곳을 얻어

그 아름다움을 서로 뽐내고, 거름더미에서 꿈틀거리는 벌레와 늘 물가를 떠 다니는 풀들도 제각기 자기 자리에 깃들여 그 모양을 서로 희롱하고 있으니,

누가 이를 떠 받쳐서 무너지지 않게 하고 있으며,

누가 이를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는가?

누가 이를 지키고 있으며,

누가 이를 감싸안아 돌보고 있는 것인가?

생각건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참된 신이 있어 이를 주재하고 있 는 것인가?

동방의 사람들은 곧 '환인주신(桓因主神)'이라 하고,

한나라 땅의 사람들은 '상 제(上帝)'라 하며,

서역 사람들은 '불타(佛陀)'라 하고,

대진 사람들은 '천주(天主)'라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바로 우주를 주재하고 만물을 통치함을 말로서 드러낸 것이다.

 

그 조물 주의 성품은 백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인가,

바탕은 같으면서 드러남만이 다른 것인가,

이 도 저도 아니면 온전히 같으나 달리 볼뿐인가?

같은 우두머리를 두고 우리는 '임금'이라 하 고, 한나라는 '제왕'이라 하고,

왜는 '명' 혹은 '존'이라 하니,

모든 민족이 조물주를 이름하 는 것 또한 그와 같을 따름인가?

날아다니는 반딧불에도 빛이 있고, 썩은 나무에서도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감나무 배나무는 가지에 접을 붙이면 능히 과실이 무성해 지고,

오리나 닭 등은 알을 품어 능히 새끼를 낳아 기른다.

 

이것은 몸의 바탕 외에 따로 응결된 힘이 있어서 그러한가?

그러한 사물과 사물들 의 응결된 힘이 서로 교접하여 능히 생명을 낳게 되는 것인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정령(精靈)이 있어서 일관되게 흐르고 두루 감싸안으며

그 몸의 바탕을 밀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겠는가?

한나라 사람의 말에는 반고(盤古)와 삼황(三皇)이 세상을 처음으로 연 창시자라 하는데,

이것이 진실인가?

 동방 사람의 말에는 삼신(三神)이 세상을 처음으로 가른 창조자라 하는 데,

이것이 진실인가?

내가 감히 그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한 큰 정령(精靈)이 있어서,

이 세상 을 잡아 유지하고 이 세상을 주재하여 펼치며 능히 밀어 움직여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 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이 될 것이리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곧 몸은 따뜻하며 움직이게 되고 영혼은 능히 총명하고 밝지만,

사람이 죽으면 곧 몸덩이는 싸늘해져 뼈는 굳어지고 육체는 썩어 문드러져 흩어 없어지게 되니,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피부나 육체는 남아 있지 않고,

백년이 못 되어서 뼈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모이면 사물의 바탕이 되고, 흩어지면 다시금 공허로운 기운이 되 는 것인가?

영혼의 본질은 기운이 모습을 갖춘 다음에 그 곳으로부터 생겨나며,

그 기운의 모습이 흩어져 없어지면 영혼의 본질 또한 그에 따라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인가?

이도 저 도 아니면 하늘과 땅의 신령스럽고도 빼어난 본질이 모여 영혼이 되고,

곧고도 밝은 기운이 뭉쳐 몸이 되는 것이니,

몸은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 게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곧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유유히 천지 사방을 떠돈다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부처의 말처럼 운명에 따라 윤회의 괴로움에 떨어져 거듭되게 인 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인가?

살펴보건대,

무릇 한낱 벌레인 누에의 알이 어미인 나비가 낳음으로 해서 자신이 생겨난 것 임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알이 부화하여 벌레가 되어 꿈틀거리며 먹이를 찾으러 쫓 아다니면서 그 자신이 알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벌레가 자라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그 속에서 깊이 잠드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면 서도 즐거워하는데,

그 자신이 곧 잠을 잘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것이며,

 

여름날의 벌 레가 그 자신이 곧 고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고치가 잠에서 깨 어나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숲속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그 자신이 고 치에서 변화하였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은 멀찌감치 벗어나 그 밖에 있으면서 변화 하는 자취를 낱낱이 보게 되니 그 순서가 분명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다.

나비는 스스로를 헤아린다 하더라도 한 생애를 다하도록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도 알지를 못하니,

네번이나 변하는 그 순서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조물주는 세상의 바깥에 벗어나 있으면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자취를 멀리서 두루 바라보면

그 또한 이와 같을 따름이 아니겠는가?

범신(范縝)이 한 말에 이르기를 [모습은 정신의 바탕이요 정신은 모습의 활용이다. 모습에 있어서 정신은 마치 칼에 있어서 날과도 같은 것이니,

칼이 없어지고 나서도 날이 남아 있 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어찌 모습이 없어지고 나서도 정신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 가]라 하였다.

이 말이 참된 것인가?

유가에서는 [혼(魂)은 오르고 백(魄)은 내린다] 하였고,

불가에서는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하여 열반·지옥·윤회·해탈 등의 말이 가장 많으며,

단군 임금은 이르기를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다] 하였으며, 또한 [모든 착한 것을 북돋우고 모든 악한 것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오르게 된다] 하였다.

불가의 말이 맞는가, 유가의 말이 충 실한 것인가,

단군 임금의 교훈이 진실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범진의 '정신 소멸론' 이 앞선 사람들이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새로운 것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사람은 어찌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사람은 어찌하여 죽는 것인가?

사람은 어디서부터 생겨 나는 것이며,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란 잠시 의지하는 것이요,

죽음이 곧 본질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 바로 본질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고,

죽음은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인가?

삶이란 것에는 끝이 있지만,

죽음에는 곧 끝이 없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역시 죽고 나서야 비로소 무한한 참된 선의 경계가 있게 되는 것인가?

 

마리의 참성단은 4천년이 지났지만 굳건히 남아 있고,

사막 남쪽의 만리장성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쭈삣하게 서 있으며,

경주의 첨성대는 1천 수백 년이 지 났는데도 아직까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즉, 사람이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긴 것은 능히 수천 년이 지나고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유독 그것을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겼던

사람의 생은 부패한 피와 썩은 살과 함께 모두 사라져서 누른 모래와 썩은 흙 사이로 영원히 없어져 버렸으니,

일찍이 정령(精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이미 하나의 큰 정령이 있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밀어 움직이는데,

곧 사람의 삶이란 것은 비단 피와 살과 뼈를 그 기운의 바탕에 따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정신과 혼백을 정령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나는 유가나 불가 및 단군 임금의 말에 대해 비록 증명할 만한 겨를이 없으나,

사람의 삶에는 없어지지 않 는 영(靈)이 있어서 착함을 북돋우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온전히 하면,

곧 신체는 굳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영령(英靈)은 없어지지 않고

능히 하늘에 올라 신 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예전에 영랑(永郞)이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고 앞선 성인들이 신이 되었음을 사모하다가 그 식솔을 버리고 향미산(向彌山)에 들어가 도를 닦더니,

나이 아흔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얼 굴 색을 하고서 백로의 깃으로 만든 관에 철죽(鐵竹) 지팡이를 짚고 호수와 산을 거닐었다.

신녀(神女) 보덕(寶德)이 하루살이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한탄하며 아침 이슬이 쉽게 사 라지는 것을 애석해 하더니,

이에 스승을 찾아가 도를 배우고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는 마치 영묘한 하늘의 옥퉁소 같았고 그 모습은 마치 가을 연못의 연꽃과도 같 았다.

이러한 것이 진실로 신선에 이른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우산(牛山)에 떨어지는 해를 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진나라의 시황제는 동남의 구름 기운을 보고 한탄하였으며,

한나라의 무제는 분수(汾水)의 가을 바람 결에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완적(阮籍)은 갈 길은 어려워지는데 해는 기울어 어둑어둑 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니,

이것이 인생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진시황에게 죽음이 없었더라도 동남에서 피어난 구름의 기운에

결국에는 그 영험스러움이 없었을 것인가?

한무제 가 신선을 만났더라도 새로운 문장(文章)을 만들어 내었던

백량대(柏梁臺)가 결국에 가서는 누런 먼지로 변함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완적이 순임금의 태평세대에 더불어 살았더라면

옥쟁반을 두드리며 온갖 짐승을 거느리고 춤을 추었겠는가?

사람으로서 삶을 좋아하는 것은 삶에 미혹되어서이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길을 잃은 어 린아이처럼 돌아 갈 곳을 몰라서인가?

한참 꿈을 꾸면서도 꿈인 줄을 모르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사람의 죽음이란 살아 있음을 참으로 한 스러워 하다가,

죽음으로서 비로소 참된 삶이 된다는 말인가?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이며 사람의 삶이란 것이 바로 고통의 바다에 추락한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아이가 뱃속을 나서 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진실로 세상에 대해 근심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저자거리를 살펴보노라면 거대한 누각은 층층이 겹쳐져 있고,

선비와 계집들은 북적북적 시 끄러우며,

살찐 말은 큰길가에서 꽃이 피는 아침에 길게 울음을 운다.

그러다 북망산천을 바라보노라면 옛 무덤들은 허물어 쓰러지고

해골은 버려져 흩날려 있으며, 을씨년스러운 까마 귀는 고목 위에서 가을 바람에 슬피 울고 있다.

이곳은 어찌 이리도 활기차며 저곳은 어찌 저리도 을씨년스러운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구름이 걷히 면 산은 텅 비게 되고,

조수가 밀려가면 바다는 허전해지며,

해와 달이 떨어지고 늘어선 별 들이 가려지면 천지는 꼼짝없이 어둠으로 닫혀지게 되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가릴 것도 변변찮은 굶주린 남녀를 보노라면,

새는 집에 창은 찢어지고, 장마에는 부엌이 물 로 잠기고 눈발은 집안으로 휘몰아치며,

남루하게 떨어진 옷에다 흐트러진 머리와 때가 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즐거움이 무슨 즐거움일 것이며 삶이 무슨 삶이겠는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다 공후(公侯)나 호걸(豪傑)의 권세와 고인(高人)과

열사(烈士)의 풍취를 어렵게 얻게 되는데,

추우면 옷을 입고 주리면 밥을 먹으며 전전긍긍 한 평생을 마치게 되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 버리는 것이 낳지 않겠는가?

벌과 개미를 보라! 앞선 놈과 따르는 놈,

지키는 놈과 싸우는 놈, 일하는 놈과 새끼 낳는 놈 들이 사이좋게 윙윙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꽃의 꿀을 따 옮기고 죽어 버려진 것을 찾아 모으며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생각건대 미물에게도 먼 앞날을 생각하는 큰 계획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삶이니 오로지 그 생존만을 갈구하여 스스로 그치지를 못할 뿐인가?

사람이 삶에 대한 것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인가?

세상이 마치 고통의 바다와 같다면 요절하 는 자는 복이 되고 장수하는 자는 재앙이 되며,

요절하면 억울한 것이 없기 쉽고 장수하면 착함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되니,

사람마다 모두 바다로 달려나가 죽음으로서 생명을 단축 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역시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그 삶을 늘 이고 선을 쌓아 이로 열반에 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가?

내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감히 망령되게 단언하지는 못하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분이 세상을 주재하며,

진실을 북돋우고 선을 기르며 흉 악함을 소멸시키고자 하면서 만물을 통솔하고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도리를 좋아하고 분수를 지키며 괴로움과 고통을 참 고 견디어 힘써 일하면서 함부로 원망을 하지 않는다면 곧 착하다 할 것이며,

 

품성을 보존 하고 뜻을 기르며 착한 일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아서 하늘을 우르러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 끄러움이 없기에 비록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다면 역시 족할 것이다.

내가 그러한 까닭에 우리 성인들의 가르침이 없어지고 드물어진 것은 한탄스럽지만,

우리 진역(震域)의 장수와 복록은 능히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장자》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만물이 다스려지게 되는 것이고, 제왕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천하가 돌아와 의지하게 되 는 것이며,

성인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나라 안이 모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물의 본 모습에 의지하는 까닭에 막히는 바가 없 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제왕의 덕은 천지를 근본으로 삼고 도덕을 으뜸으로 삼으며,

만민 을 통솔하고 만사를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쓰임으로 삼는다.

 

예전에 신시씨가 세계를 열고 만물을 비롯하게 하여 모든 무리에게 본보기를 드리우고,

하늘의 도를 체득하여 사물의 본 모습을 계도하였다. 단군 임금의 시대에 이르러 다시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지방을 나누어 제후를 두니, 순수한 정성은 하나로 뭉쳐 곧 하늘 모 범이 되었으며, 천심을 잡아 지켜 이로써 민심에 미치게 하고, 모든 선을 북돋우고 모든 악 을 없앴다.

모든 백성이 이로써 교화되고 천하가 이로써 편안히 다스려 지니, 그 맡은 바를 다함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밝디밝게 하늘을 오르 내리며 우리의 백성들을 아들과 같이 품으니 성인의 은택과 신인의 법도는 만세에 미치게 되는지라, 오호라 그 융성함이여!

부루가 그 전통을 이어서 더욱 덕스러운 정치를 닦으며,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널리 가려 뽑아 학문을 계도하고 널리 가르치니 명성이 자자하였다.

 

가륵이 임금의 자리를 이어 능히 부왕과 조부의 도를 계승하였는데,

서방의 하나라가 덕을 잃음에 좋은 것은 권장하고 나쁜 것은 정벌하여 없애니,

그 위세가 천하에 미치고 만백성이 모두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쟁쟁한 신인의 후손들이 1천2백년을 면면히 그 보위를 이어가니,

나라에는 임금을 시해하고 보위를 찬탈하는 변고가 없었으며,

백성에게는 무참히 짓밟히는 재난이 없었다. 남 이를 다스리고 설유를 평정하였으며,

하나라를 토벌하고 은나라를 정벌한 뒤에 제후를 중원 땅에 두었다.

또한 앙숙을 쫓아내고 아질을 평정하였으며,

 

비록 앙골의 방자한 해독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제왕의 덕에 복종하였으며,

가난한 백성이 죄를 저지르기는 하였으나 마침내 신인의 운치에 교화되고 말았으니,

진역(震域)의 1만년에 이르는 커다란 기초가 이미 여기에 서 시작된 것이다.

바깥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군자의 나라'라 이름하고,

그 풍속을 일컬어 [의복에 관을 쓰고 검을 차고 다녔으며,

양보를 좋아하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하였다.

곽박은 찬탄하여 이르기 를 [동방에 기운이 어진 나라에는 군자가 있고 훈화(薰華)가 있으니, 우아하면서도 예절과 사양함을 좋아하고 예의로서 이치를 논한다] 하였다.

 

서여(胥餘)는 주나라를 피해 물러나와 임금의 교화를 사모하여 귀의하고

나라의 한쪽 편에 편안히 머무르니, 면면히 1천년 동안을 그 후예들이 항상 번창하였다.

 

《왕제(王制)》에 기록되어 이르기를 [어질고도 기르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그 땅에 뿌리를 두고서 나온다] 하였으며, 중니는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여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땅에

머물고 싶다 하였으니, 이는 군자가 거처하는 곳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허신이《설문(說文)》에서 말하기를 [오직 동이만이 큰 것을 좇으니 대인이다.

동이의 풍속 은 어질며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리니 '군자의 나라'·'불사의 나라'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하였으니,

이로서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고 싶어하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동방삭이 《신이경(神異經)》을 지으며 [공손히 앉아 서로를 거스러지 않고

서로 칭찬할 뿐 서로를 헐뜯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보면 목숨을 바쳐 이를 구해 준다]는 것을 일컬어 '선 인(善人)'이라 이름하였다.

이는 곧 어질고도 또한 용감하며, 공손하고도 또한 굳세며, 아름 다움을 공경하면서도 망령된 말은 하지 않으며, 참된 사람으로서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강 인함과 유순함의 좋은 점을 두루 겸비하였음을 말한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동이인이 됨을 자랑하는 것이다.

 

《상서》의 <요전(堯典)>에 이르기를 [따로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 夷)의 땅에 머물 며 다스리게 하니, 그 곳이 바로 양곡(暘谷)이다]라 하였으며,

<우공(禹貢)>에 이르기를 [해 대(海岱)는 바로 청주(靑州)인데, 우이( 夷)가 이미 그 곳을 다스렸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동방의 사람들이 해대 사이의 땅을 차지하여 살았다는 것이다.

 

기주(冀州)에는 가죽 옷을 입은 도이(島夷)가 있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발해 서북의 뭇 섬으로부터 기주 바 닷가의 땅으로 옮겨가서 거처한 것을 말한다.

양주(揚州)에는 풀 옷을 입은 도이(島夷)가 있 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양주 동쪽의 뭇 섬으로부터 강회 사이의 땅으로 옮겨가 거처한 것을 말한다.

또한 목축을 하는 래이(萊夷)와 진주나 비단 명주 등을 거래하는 회이 (淮夷)가 있었는데, 이는 또한 동방의 사람들이 양편 지역의 형세를 살펴 가며 편한 곳을 따 라 삶을 꾸려 가던 한 모습이다.

상고 시대에는 인심이 소박하여 비록 다른 종족이 이웃하여 있어도 비상시가 아니면 반드시 자기들의 생업을 지키며 서로 침범하지 않고 서로 그 형세를 보고 있다가,

만약 힘의 균형 이 두드러지게 차이나거나 정치가 어지러워 반목하게 되면 곧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흘달 임금이 군사를 빈·기로 보내고, 물리 임금이 은나라 땅에 제후를 세운 것 등이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상고 시대 우리 선민들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운은 치우침이 없고 재주는 독점되지 않는 까닭에 천하의 만물 가운데 홀로 편안함을 누리고

그 위세로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없다.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범이나 표범에게는 다행한 것이 되지만 소와 사슴에게는 불행한 것이며, 머 리의 뿔은 소나 사슴에게는 다행이지만 범이나 표범에게는 화근이 된다.

고양이나 족제비의 날랜 사냥 솜씨가 하나의 재주라면,

쥐나 참새의 민첩함 또한 하나의 재주이다.

매와 송골매 의 공격은 물론 피하기가 어렵지만,

우거진 수풀이나 깊은 구멍은 새와 쥐를 숨겨 주곤 한다.

 

기러기와 오리는 본디 날카로운 발톱이나 예리한 부리는 없으나,

혹은 높이 날갯짓하며 멀 리 날아올라 적을 피하고,

혹은 재빨리 날거나 연못 속에 잠기어 화를 벗어나곤 한다.

황새 와 학의 부리가 길고도 날카로움을 자랑한다면,

뱀은 굴에 숨고, 지렁이는 진흙 속에 잠기 며, 게는 구멍으로 들어가고, 조개는 갑옷으로 가린다.

 

이는 곧 매·송골매·황새·학 등의 무리에게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음이 행운이듯이,

새·쥐·기러기·오리·뱀·지렁이· 게·조개 등의 종류에게도 역시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어 행운인 것이다.

또한 뱀이 몸을 갑자기 돌리는 것에 둔한 것은 곧 개구리나 쥐에게는 행운이요,

승냥이나 이리에게 나무를 타는 능력이 없음은 원숭이에게 행운이 된다.

 

끊어지고도 능히 살 수 있는 것은 지렁이와 거머리의 행운이요,

온몸에 독이 있는 털을 지닌 것은 여름 벌레의 행운이다.

벌과 전갈이 침을 쏘고 두꺼비가 액을 토하는 것과,

거북이와 자라의 움츠린 머리와 도마뱀 의 무른 꼬리 등은 모두 먹이를 찾아다니면서

적의 해꼬지를 막고 도망하여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한 가지의 재주가 곧 한 가지의 행운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하기에 범과 표범이 강하기는 하지만 구르고 쫓는 수고와 주리고 목마른 고통을 면치 못하며,

소와 사슴 은 연약하지만 생명을 보존하여 번식하는 행운과 잠자고 먹는 즐거움을 얻은 것이다.

그 밖 에 고양이·족제비·매·송골매·황새·학 등의 강한 무리와

쥐·참새·기러기·오리 등의 약한 무리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늘 아래 어찌 수고하지 않고 얻는 공로와 어려 움이 없는 안락이 있을 수 있겠는가!

 

듣건대 천축에는 '사자'라는 놈이 있어 네발 달린 짐승 중에 독보적이라 하는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그 울부짖는 소리만 듣고도 두려워 놀라서,

고기는 깊은 연못 속으로 잠기고,

들짐승은 굴 속으로 숨어 버리며,

날짐승은 놀라 떨어지는 등 도망하여 숨지 않는 것이 없 으니, 무릇 뭇 짐승의 왕이라 하였다.

만약 사자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비늘을 붙여 주며 몸 을 줄였다 늘였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면,

날아다니며 새를 잡아먹고, 뛰어다니면서 짐 승을 잡아먹으며, 물에서는 고기를 삼키고,

구멍에 들어가 쥐와 참새를 삼키는 등

물과 뭍을 깔고 앉아 상하를 통하며 반드시 움직이는 물건이라고는 남기지 않을 것이니,

하늘 아래 목 숨을 보존하는 생물이 또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조물주의 뜻에는 본디 편벽됨이 없는데,

 어찌 한 세상의 생물을 모두 몰아 사자의 탐욕스런 욕심만 채워 주는 나쁜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다는 한치의 작은 물고기도 받아들이고, 산에는 손가락 만한 작은 참새도 있으며,

나무에는 이슬을 먹고사는 매미가 서 식하고, 진흙 속에는 눈이 없는 지렁이가 숨어 있으니,

꿈틀거리는 하잘것없는 벌레 또한 하 늘의 큰 은혜를 같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 어찌 권세를 도거리하고 부귀를 독점하는 집안과,

패권을 차지하여 외곬으로 강하기만 한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속담에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패하지 않는 집안은 없다' 하였으니,

내가 그리하여 백성 과 사물에게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가정과 나라의 흥망이 되풀이되어 무상 함을 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어찌 눈앞의 영고성쇠에 마음이 흔들리겠는가!

 

하늘은 사람에게 있어 감싸 기르는 조화가 위대함에 장황하게 말하지는 못할 바이다.

땅은 사람에게 있어 실어 편안케하는 공덕이 두터우니,

인재를 기르고 교화에 물들게 하는 공적 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도읍을 선택하고 백성들이 동리를 고르는 것 을 감히 소흘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릇 도읍을 택하고 동리를 고른다는 것은 땅의 이치 와 바람의 기운이 적합하고 좋은 곳을 고르고자 하는 것이니,

대저 도읍을 정하고 살 곳을 결정하는 것은 진실로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온 나라와 온 가족과 같은 경우에 는

땅의 이치와 바람의 기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의 연루됨이 매우 심하니,

이를 감히 가벼 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릇 하늘이 사물에 대해서는 두텁고 엷음이 없을 수 없으나,

땅을 살펴보면 곧 억조 만물 가운데 어진 하늘의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땅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만물이 얻어 가지는 땅에는 비옥하고 메마르고,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고, 광활하고 좁음의 차이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물은 남북으로 다르고, 사람은 동서로 틀리니,

그 영고성쇠(榮古 盛衰)와 무잔번몰(茂殘繁沒)의 형세는 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대저 탐라 땅의 귤이 북으로 건너가면 탱자가 되고,

우산(于山)의 복 숭아가 바다를 건너오면 열매가 작아지며,

호남의 대나무와 영남의 감나무는 관북 지방에 심으면 휘어지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함흥의 배와 함종의 밤을 한산(漢山)으로 옮겨 심으 면 맛이 변한다.

 

또한 성벽 위의 고사리는 그 잎이 집의 처마를 덮고,

시렁 위의 쥐는 그 몸 이 소 등 보다 높게 있으며,

쑥이 삼밭 속에서 자라면 북돋우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올라가고,

칡이 소나무 밭에서 나면 천길을 솟아오른다.

도회(渡淮)의 귤과 주원(周原)의 바곳이나 씀바귀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사물이 얻어 가지는 땅의 비옥하고 메마 르며,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으며, 광활하고 좁은 것 등이 그 사물에 적합한지 아니한지 혹 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에 연유하는 것이기에 그 얻어지는 바탕이 각기 틀리게 되는 것이다.

 

옛날 속진의 땅은 매우 추워 오곡을 심기에 적당치 않아서 백성들이 모두 칼을 차고 활 을 메고 어울려 일하며 사냥을 하니,

그 백성의 생활은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도 검소하며,

거칠고도 매우 굳세어 무사의 기풍이 빼어났으나 학문을 닦는 일은 소흘히 하였다.

남후(藍 侯)의 땅은 광활하고 너른 벌판으로 경작과 목축을 아울러 베풀고 무술도 함께 익히니,

그 백성들은 굳셈과 부드러움을 겸비하고 문무를 아울러 갖추게 되어,

우리나라가 공격하여 나 아갈 때는 항상 선구가 되었다.

청구(靑丘)의 땅은 바람의 기운이 온화하여 오곡이 풍성하니,

그 백성들은 모두 가볍고도 따뜻한 옷을 입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갓을 쓰 고 띠를 두르고, 옷을 갖춰 입고 신을 갖춰 신는 등 자못 천하의 풍치가 있었으나,

마침내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의 폐단에 빠졌다.

 

또한 옹주(雍州)의 땅은 흙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산악은 거칠고 장엄함에 속속들이 울창하 고 바람 기운 또한 매우 사납다.

그러기에 진나라 사람들이 그 곳에 거처하면서 풍속이 굳 세어졌으며,

여덟 주(州)의 제후들을 불러들여 같은 반열에서 조문을 받는 기상을 지니게 되 었다.

융적(戎狄)과 근접해 있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여 닦고 익히며 활 쏘고 사냥하는 것으로 기력을 높이니,

용맹한 장군과 굳센 군졸이 그 곳에서 배출되게 되었다.

이에 오랜 적들과 여러 나라가 연이어 망하고 북쪽으로 쫓겨가자

그 유리한 틈을 타고 천하를 나누어 다스렸다.

 

결국에는 진시황의 치세에 이르러 오랜 책략을 떨치며, 천하로 말을 몰아

종주(宗周)와 성주(成周)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키고는

육종(六縱)의 연합을 제압하여 천하를 채찍질 하게 되었다.

남으로 백월(百越)의 땅에 군(郡)을 설치하고, 북으로는 흉노를 쫓아내니,

오랑 캐들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목축하려 하지 않았고,

병사는 감히 활을 당겨 보복하려 하지 못하였다.

 

반고(班固)는 천하가 항상 매몰차짐을 한탄하더니,

회암(晦庵)이 부강의 기초가 되는 위업을 추진하여 장강 이남의 땅을 변화시키고 부흥시킴에,

 낮고도 너른 들판에 장강과 한수가 나 누어 넘쳐흐르고,

바람의 기운도 매섭지 않아 천연 산물이 풍부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백성 들은 강택과 산림의 풍요를 바탕으로 물고기와 벼며 나무와 풀의 열매와 함께

고둥과 조개 등의 맛깔스러운 것을 먹었으니,

음식과 물자가 항상 풍족하여 춥고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삶은 어려움 없이 한가로이 만족해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나태하게 인생을 즐김에,

쌓아 두고 모아 둔 것은 모두 없어지고 무당과 도깨비만 믿으며 부정한 사당만을 중하게 여겼다.

이로서 사람들은 모두 약빠르고 방자하며,

용감하나 굳세지는 못하였 다. 한나라 사적에,

남방에서 일어나 천하를 제패한 자가 일찍이 한 명도 없음을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땅의 이치와 바람 기운으로 인해 능히 인재가 길러지고 교화에 물드 는 까닭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남방의 습기와 무더위, 북방의 건조와 추위, 태백과 곤륜의 거대함,

장강과 황하 및 호수와 못 등 물줄기의 머무르고 흐름을 그 누가 어찌 바꾸거나 옮길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늘 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는 감히 길게 말하지 못할 바이며,

내가 땅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단정지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음은 한스러우나,

무릇 천하의 불행 가운데 지리적인 이득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천하의 사물 가운데 표리(表裏)나 본말(本末)의 두 모습을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며,

천하의 일 가운데 이해나 득실의 번거러움을 두루 겸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사물을 관찰하는 자는 겉과 끝에 얽매여 그 속과 밑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일을 시작하는 자는 이득에 얽매여 그 해악과 손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함에 성인은 하늘의 도리에 밝음으로 해서 백성의 일을 살피게 된다.

그러기에 시기에 따라 변화를 관찰하고 편안함을 쫓아 마땅함을 행하니,

비로소 천하의 일은 그 이득이 온전히 되고 해악과 손실은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옛 법에 집착하여 지킬 뿐이니,

 

그 변화와 융통을 모르기에 구애되고 막히게 됨에 이르므로, 집안과 나라는 이로서 쇠망하게 된다.

옹졸한 자는 몸과 마음을 기울여 힘쓰 지만 장점은 버리고 단점만 취하므로,

스스로 살핀다고 하면서 도리어 그 재앙에 이르게 되 니, 이는 천하의 만대에 걸친 폐단이다.

무릇 때의 변화에 순응하며 하늘의 도리에 밝고 사물의 본바탕에 의지하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천하에 어찌 성인 의 어짐을 도거리하고서 그렇게 만세에 걸쳐 무궁무진한 자가 있겠는가?

 

옛날에 태공이 처음 피봉될 때 주공이 [제나라를 어찌 다스릴 것인가]하고 물으니

태공이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공덕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말하자,

주공이 이르기를 [후세에 반드시 임금을 죽이는 신하가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그 29세(世) 후에 제나라는 그 땅의 신하인 전화(田和)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주공이 처음 피봉될 때 태공이 [노나라를 어찌 다스릴 것 인가]하고 물으니

주공이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고 가까이할 사람은 가까이하겠다]고 말하자,

태공이 이르기를 [후세에는 침체되어 약해질 것이다] 하였는데,

그 후에 노나라는 문공(文公) 이후로 녹봉은 공후(公侯)의 집에서 떠나고 정치는 대부(大夫)의 손에 들어가니, 점차 미약해져서 마침내 초나라에 멸망하게 되었다.

 

무릇 태공과 주공은 세간에서 성자(聖者)라 말하는데,

위업을 세우고 법률을 드리움에 한치 의 오차도 없었으나 끝에 이르러 그 폐단은 오히려 그와 같았다.

하물며 땅은 그 자리해 있 는 곳이 틀리고,

사람은 각기 그 족속이 다르며, 서로 대치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자웅을 다 툼에 그 끝을 모르는데,

펼쳐 놓은 옛 법을 어리석게 움켜쥐고

그것에 얽매여 변화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능히 세상에 나아가 이기기를 바라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자기의 장점을 보 호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워 겸비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고,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다 른 사람의 장점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약해 지며,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폐단 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망하게 된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옛날에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이 유여(由余)에게 묻기를 [중국은 《시(詩)》.《서(書)》와 법도(法度)로서 나라를 다스리지만 오히려 때때로 어지러운데,

지금 의 융이(戎夷)는 이러한 것도 없이 어떻게 나라가 다스려 지는가?]

하니, 유여가 웃으며 이 르기를 [이는 중국에 있어서 어지러운 이유가 융이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까닭입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은 충성된 믿음을 품고 윗사람을 섬기니,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몸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까닭이므로,

다스리는 이유를 모르 는 이것이 진실된 성인의 다스림입니다] 하였다.

무릇 순박하고 후덕함을 높이고, 간단하고 소박함을 숭상하는 것은 융이가 강자가 되는 이유이다.

 

이를 이용하고 중국의 복잡하고 번 거로움을 극복한다면 곧 승리할 것이요,

이를 이용하면서 다시 중국의 복잡하고 번거로움을 배운다면 곧 수고스러울 것이며,

만약 이를 버리고 오로지 중국의 복잡하고 번거로움만 배 운다면 곧 망할 것이다.

이는 진실로 그러한 형세일 것이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옛날에 흉노가 사람의 숫자로는 한(漢)나라 한 개의 군(郡)에도 미 치지 못하였지만

능히 그 강함을 잃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하고 그 단점을 꺾은 때문이다.

무릇 흉노의 땅은 거대한 들판과 평탄한 사막으로서, 바람의 기운은 싸늘하여

오곡은 익지 않고 풀과 잡초만이 너른 들에 무성하다.

백성들은 모두 털 담요로 장막을 쳐서 집을 삼고,

말안장에 걸터앉아 말을 몰아 목축을 하며 물과 풀을 쫓아 옮겨 다녔다.

그러다 가 중국 땅에 틈이 생기면, 곧 일시에 벌떼와 개미떼 같이 모여서

활과 창을 비껴 들고는 추운 곳을 등지고

따뜻한 곳을 향하여 변방의 요새들을 사납게 공략하였으며,

만약 형세가 여의치 않으면 곧 장막과 솥을 걷어 뽑고 처자를 거느리고

말을 몰아 마음대로 돌아가 버린 뒤 다시 돌아보는 미련은 두지 않았으니,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의 커다란 해독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두머리(單于)가 중국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한나라의 비(妃)를 아내로 맞 기에 이르자 고유한 풍속은 변질되고 한나라의 물건만을 즐기게 되었으니,

털옷의 견고하고 좋은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비단솜을 얻어 입고는

초원의 가시나무 사이로 질주하였으며,

진한 젓의 편리하고 맛있는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음식물을 얻어먹었으며,

그들의 간략하고 소박한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복잡하고 번거러움만을 물려받게 되었다.

무릇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명예를 얻기 어렵고,

흐르는 물을 긷는 자는 그 자투리 물결만을 퍼내게 되는 것이다.

천하에서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배우는 자로서

한단 (邯鄲)의 걸음걸이가 되지 않는 자는 드물기 마련이니, 어찌 흉노의 패망이 없을 것인가?

 

비록 그렇지만 어찌 비단 흉노뿐이겠는가!

옛날 탁발씨(拓拔氏)는 호갈(胡?)의 종족으로 유 연(幽燕)에 들어와 자리하며

부건(符健)이 세웠던 전진(前秦)의 뒤를 이어 중원의 패자로 일 컬어졌다.

태무제 때에 비로소 반역·살인·간음·도적에 관한 법을 제정하니,

호령이 명백 하고 정사가 맑고 간략하였다.

이에 남쪽으로 송(宋)을 치고 북쪽으로 유연(柔然)을 쫓아내 었으며,

 

서쪽으로 압돌과 월씨 및 파사 등 뭇 나라들을 정벌하여 위세와 명성을 당대에 떨 쳤다.

진(晋)나라 오호(五胡)의 난리 때 중원에 나라를 세운 자가 열 여섯이었으며,

남북조 때 열국(列國)의 흥망성쇠도 적지 않았으나, 후위(後魏)와 같은 부강함은 없었다.

그러나 효 문제가 즉위함에 이르러 이내 평성(平城)을 떠나 낙양(洛陽)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성씨를 고치고 복식을 바꾸며,

북쪽 풍속의 언어를 금지시키면서 명당(明堂)을 세우고 벽옹(酸雍)을 건설하였으며,

악장(樂章)을 정하여 화려하게 꾸미고는 요·순·우·주공·공자의 사당을 세 우니,

그 나라는 졸지에 패망하게 되었다.

 

무릇 이런 몇 가지 일들이 어찌 나라를 패망시키는 근본이 되겠는가 마는,

아무래도 배울 만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일찍이 그렇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자신 들의 장점은 이미 버렸기에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단지 그 말단의 병폐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옛 풍속은 이미 다 없어지고 그 해독만이 바야흐로 새로워지니,

무릇 어느 겨를에 패몰하여 흩어진 것 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여진(女眞)은 숙신(肅愼)의 후예이다.

그 옛 기풍은 다하여 없어지고 비록 글도 알지 못하지 만,

여전히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친척을 공경하며 노인을 존경하고 손님을 맞고 벗을 믿는 등

예의바른 마음에 다정하고 성의가 있음은,

모두 옛 성제(聖帝)께서 펼친 교훈과 어진 제 후들이 세운 교화에서 나온 것이다.

 

바야흐로 흑수의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한 갈래의 군사만으로 요동과 만주를 석권하였으며,

장성을 넘어 변경( 京)을 도륙한 뒤 휘종과 흠종을 사로잡아 북쪽으로 보내고

고주(孤主)를 꾸짖어 남쪽으로 귀양을 보냈으며,

유연(幽燕)을 넘 어 중원의 선비들을 매질하였다.

그러자 조가(趙家)의 군신들 가운데 정성과 성의를 보내며 신하를 자칭하고 조카라고 스스로를 일컬어 남아 있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회(秦檜)와 한윤(韓胤)의 무리는 모두 엉금엉금 기면서 아첨을 떨었으니,

이는 진실로 천 고의 쾌사이며 동방 제후의 자랑이다.

 

비록 그렇지만 그 폐단은 한 때의 이익에 급급하여 오랜 폐악을 답습한데 있었으니,

그 중 엽에 이르러 요(遼)의 검소하고 소박함을 깔보고 송(宋)의 복잡하고 번거로운 글을 따랐으 며,

송(宋)의 너그럽고 부드러움은 제재하고 요(遼)의 엄격한 정치만을 더하게 되었다.

이는 두 나라의 장점을 버리고 그 단점들을 아울러 쓴 격이다.

 

그러한 까닭에 복잡하고 번거로움 이 기승을 부리니 재정은 바닥이 나고,

엄격한 정치가 기승을 부리니 백성들은 피해를 입었다.

무릇 나라의 살림이 고갈되고 백성의 마음이 떠났는데 금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오호라! 하늘은 모습이 다르고 땅은 형세가 틀리며,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사람마다 기술 이 제각각 인데,

자기의 능함을 버리고 어찌 위태롭지 않은 자가 있겠으며,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고 그 본 바탕이 바뀌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그러한 까닭에 조물주가 사물에 대해 두텁고 얇음이 없을 수 없고,

임금이 정치를 행함에 세 번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됨을 찬탄하는 것이다.

 

지금에 무릇 애친씨(愛親氏)는 혁도아라(赫圖阿羅) 사람이다.

그 선조는 멀리 속진의 후예에 서 나왔고,

그 백성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무리 중에서 많이 이어받았으니,

이들이 남아 있는 단군의 후예가 됨을 거의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스 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뽐내고 있으니,

만주가 우리와 친척됨을 긍정하고 인정하려 하 겠는가?

저들이 여진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미 오랑캐로 여기고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니,

우리가 만주를 대하며 욕하고 배척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만 하겠는가!

또한 저들이 조선 과 더불어 대립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뭇 오랑캐와 더불어 서로 섞인지가 오래이니,

그 형 세가 어찌 능히 다시 합치고서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음을 후회할 수 있겠는가!

이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태조 누루하치에 이르러 궐연히 건주(建州)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팔기병(八旗兵)을 거느 리고 만주를 석권하였고,

금한국(金汗國)을 세우고는 동서를 호시탐탐 살피다가 명 왕조가 쇠퇴해진 틈을 타고

요동을 탈취하였으며,

도처의 도적들로 어지러운 틈을 타고 유연(幽燕) 을 점거하여 버렸다.

이에 변발령을 내리고 국사관(國史?)을 세웠으며,

영명(永明)을 사로잡 아 나라안을 깨끗이 한 뒤에 뭇 우두머리들을 굴복시켜 막북(漠北)을 아울렀다.

그 명령이 나아가고 팔기병이 향하는 곳에는 견고하고 강한 성벽이 없었기에,

곳곳에서 벌때 같이 명 (明)의 부활에 뜻이 있는 선비가 일어났으나

다시 어찌할 수 없이 꺾이고 패하였다.

아마도 유사이래 변방 밖의 뭇 종족 가운데 황제가 다스리는 한나라 땅에 들어온 것 중에서 이처럼 강하고도 번성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비록 밤낮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에 대해 이빨을 갈면서,

임진년에 신통 치 않게 도움을 받은 의리로 명나라에 대해 보답하려고 한다.

그러나 1백년 안에는, 내가 보 장하건데, 기필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무릇 변변치 못하게 압록강 이남의 수천 리 땅에서 적은 숫자의 무리로

이미 스스로가 절박함에 매달려 있으며,

또한 스스로 여진을 오랑캐 로 여겨 물리치고 만주를 호로(胡虜)로 여겨 배척하며,

동쪽으로는 왜놈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 서쪽으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자 하니,

백성들이 다시 어느 겨를에 능히 힘을 기를 것인가!

 

청(淸)의 위세는 가히 맹렬하다 할 것이지만,

만약 그 후손들이 한나라 풍속을 사모하여 자 신들의 근본을 버리고,

한나라 말로서 글을 짓고 오나라 계집과 월나라 계집을 황후와 비빈 으로 앉히며,

팔기병을 몰아 밭에서 사냥하고 요순의 도를 이어 그 말을 치장하며,

고량진미 를 배불리 먹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에 만족한다면,

곧 앵앵거리던 한나라 땅의 말하기 좋아하는 선비들이 모두 시끌벅적하게

스스로를 거만히 스승이라 여기고 이적(夷狄)을 천하 게 여기며 무리 지어 일어나

만주의 오랑캐들을 도륙할 것이니,

누가 다시 그들을 능히 제 압할 수 있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반드시 떠들기 잘하는 선비에게 망할 것이다.

 

만약 하늘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수백 년 뒤로 놓아두기만 한다면,

곧 나는 우리나라 옷을 입고 청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앉아 청나라 황제를 설 복하여 우리가 같은 조상의 후손임을 얘기하고

그 이해 득실을 나열할 것이니, 조선과 더불 어 요만(遼滿)과 유영(幽營)의 땅에 나란히 웅거하여,

 

북으로는 야인(野人)을 꾀어 선봉으로 삼고,

동으로는 왜(倭)와 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남쪽의 천한 종족들을 휘어잡게 하자고 할 것이다.

무릇 그러한 후에야 조선의 강성함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한나라의 거만함은 좌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조선의 형세가 저무는 해를 따라가듯 하기에

단지 허약함 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다시 패망할 것이니,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능히 지탱하겠는가!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그 첫번째가 땅이 넓 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 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 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 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 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려우며,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 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만리에 뻗친 철옹성 같은 땅에 자리잡고 살면서 수많은 종족을 포용하여

이들로 그 무리를 삼고, 베와 곡식을 축적하고 1백만의 군대를 훈련시켜 이로서 부강함을 삼으며,

항상 들을 건너고 바다를 뛰어 넘어서 서쪽의 먼 변방까지 침략하여 들어갔다.

때때 로 뛰어나게 강인하고도 굳세어 굴하지 않는 자가 나타나 북방에서 떨치고 일어나면,

곧 뒷 날의 우환을 염려하여 반드시 와서 으르고 공격하였다.

왜(倭)는 바다 1만리의 크고 작은 섬 에 제각기 살면서,

유사시에는 쉽사리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무사하면 곧 순풍에 배를 몰아 마음대로 와서 노략질을 하니, 마치 마루 아래의 등에가 항상 골치인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 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 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곧 바로 적의 병사가 멀리 로부터 말을 몰고 와서

온 나라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고을을 불사를 것이니,

이 것이 소위 지리적인 이익은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치우씨는 탁록에서 제위에 올랐고,

흘달 임금은 빈·기에 병사를 주둔시켰으며, 남후 는 은나라 땅에 네 제후를 세웠고,

엄박고왕(奄薄姑王)은 삼감(三監)을 꾀고 무경(武庚)을 부추켜 주나라 왕실을 거의 휘어잡았으며,

서언왕(徐偃王)은 종주(宗周)를 누르고 황지(潢 池)의 동쪽을 다스려

서른 여섯 나라로부터 조회를 받았다.

 

그 뒤에 요(遼)와 금(金) 및 청 (淸) 등이 모두 옛 조선의 땅에서 일어나 중원 땅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막 번성하였을 때 는 강병이 1백만으로서,

남방의 오와 월을 치고 북방의 유연(幽燕) 및 제(齊)·노(魯)등

과 싸움을 일으키는 등 항상 한나라 땅에 위엄을 세웠다.

백제는 발해를 뛰어넘어 요서와 진평 을 공략하였고, 초해를 건너 월주를 점령하였다.

 

신라는 1만리 길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 명 석(明石)에 뛰어난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백마를 잡아 적관(赤關)의 맹세를 받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강하면 저들을 공략하기 쉬운 것이니 이것이 지리적인 이익이다.

 

무릇 단군의 치세 때는 설유의 노략질이 있었고,

열국시대에는 기씨(箕氏)가 동호의 침략을 입어 환도성이 깡그리 불타고 후비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평양이 패망하여 몰락하니

공후 (公候)와 세족(世族) 및 선비와 백성 등을 노략질해 간 숫자가 28만이었다.

황산벌에서 장군 이 운명하고 사비성이 함락되자,

백마강 머리에서 오랑캐 말들이 다투어 울고 낙화암의 물 가에는 꽃다운 넋들이 어지러이 떨어졌다.

홀한(忽汗)의 멸망으로 발해의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비록 부흥을 도모하기를 수백여 년이었으나,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여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무릇 고려조 이후 수백년 간의 일을 그 누가 기꺼이 나서서 얼굴을 붉히며 물어 오 겠는가?

아래로 임진왜란의 어려움에 이르러서는 팔도가 진창이 되었으며,

병자호란의 재앙 을 만나서는 고을들이 쓸쓸하였다.

더욱이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헛된 글에 빠져 하릴없이 쇠약해지고,

자신의 도는 버리고 송나라 유생이 뱉은 침을 곱씹으며,

자신들의 임금을 깎아 말하여 외국 신하의 몸종에 비기고 있다.

 

대저 근세의 지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지금 세대의 추세를 그 곁에서 관찰해 보면,

큰 계책은 버리고 작은 욕심만을 꾀하며,

공동을 위한 싸움은 내팽개치고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며,

조정을 좀먹어 이로써 가문을 다독거리며, 가난한 백성들을 약탈하여 이로써 자신 들의 배를 살찌우며, 자질구레한 일들을 가져다 희믈그레한 눈매로 취중에 꿈 얘기하듯 하 면서

쓸데없는 승부나 다투고 있다.


이처럼 세상의 흘러가는 형세가 마치 저무는 해와 같아 서 떨치고 일어서지 못하고,

이미 스스로의 힘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하고 있으 니,

그 형세는 이미 나어린 고아가 아울러 그 본 바탕 마저 잃은 꼴이라 할 것이다.

후세에 만약 강한 이웃이 있어 청나라를 이어서 일어난다면,

곧 반드시 우리의 임금을 협박 하고 그 신하를 꼬여 이 땅에 군림하며 이 백성들을 노예로 부릴 것이다.

오늘날 안일함에 빠져서 우두커니 아무일 없이 있는 것이 어찌 뒷날에 주리고 춥다고 울부짖는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패하고 말 것이라고

내가 일컬은 것이 어찌 지나치게 과격한 말이라고만 하겠는가. 오호라 슬프도다!

옛날에 단군 임금이 나라의 기초를 열어 위업을 세움에,

 

무위의 도로서 고요히 행하며, 선을 북돋우고 악을 멸하며,

들어서면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고 나서면 나라에 충성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만세에 걸친 성인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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