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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만세루. 이 누각의 아래를 지나야 봉정사의 가운데 마당으로 들 수 있다. 누각에 올라 대웅전을 바라보면 '덕휘루'라는 또 다른 당호를 새긴 편액을 볼 수 있다. '덕(德)'의 광휘는 '색(色)'을 감춤으로 말미암는다.
그 모습의 내력인즉, 자유당 정권 시절 굶어죽게 생긴 동리 사람들이 송기를 얻기 위해 아름드리 잘 생긴 소나무들을 쓰러뜨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을 내준 소나무도(감히 소나무 입장에 섰습니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들도.
산다는 일은 본시 빚지는 일입니다. 봉정사 굽은 소나무 숲길에서 새삼 그것을 느낍니다. 늙은 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젖가슴이 떠오릅니다. 갚을 도리 없는 ‘묵은 빚’이 거기에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김장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김치를 버무리던 아주머니(신도니 보살이니 하는 호칭은 이 경우 적절치 않습니다) 한 분이 선뜻 한 입 떼어줍니다. 봉정사의 휘어진 소나무가 지켜낸 사람의 손맛이었습니다.
봉정사의 그 소나무. 사람을 지켜냈습니다. 모질게 살아남은 그 사람들. 절을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절은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를 중재합니다. 결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게 아닙니다. 자연화된 인간과 인간화된 자연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김치 쪽을 건네주는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그것을 봅니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면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에서부터는 늙은 갈참나무 숲길이 열립니다. 참나무 우듬지에 온 하늘이 걸려 있습니다. 늙은 참나무는 온몸을 하늘에 걸어 두고 있습니다. 한 겨울 그렇게 나려나 봅니다. 지난 여름 맹렬하게 푸르렀던 잎사귀들은 바위틈에서 겨울잠을 자며 새근새근 물을 풀어놓을 테지요.
▲ 봉정사의 밤. 별빛 밟으며 산사를 거닐어 보라. 털끝만큼이라도 누굴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그 빛을 밟을 수 없다.
봉정사의 창건은 682년(신문왕 2)의 일로 의상 스님에 의해서입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 스님이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린 다음 그 봉이 머무른 곳(停)에 세운 절이라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으로 불렸는데, 의상 스님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이 산의 바위굴에서 치열하게 수도하는 모습을 보고 감복한 천녀(天女)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히 밝혔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합니다. 지금 천등굴엔 산신이 모셔져 있고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천등굴에서 5분 남짓이면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 서쪽으로 학가산이 어깨에 닿을 듯하고 남동쪽으로 낙동강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한편 안동시에서 정상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 따르면 개목산(開目山)으로도 불리었다 합니다. 조선 초 지리에 밝았던 재상 맹사성이 안동에 소경이 많은 것은 천등산의 기운 때문이라며 개목(開目)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산은 우리네 삶의 흔적을 지문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등산의 지세는 후덕합니다. 그래도 산은 산. 봉정사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에는 가파른 상승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휘돌아 계단으로 오르는 길모퉁이에 선 와송(臥松) 한 그루가 석축에서부터의 기울기를 시각적 수평으로 누그러뜨립니다. 최대한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편안한 터를 얻을 줄 아는 선인들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약간의 손질만 곁들인 돌계단에 몸을 세우고 고개를 들면 만세루의 지붕선이 봉황의 날개인양 우아하게 깃을 펴고 있습니다. 만세루 기단까지는 12m 정도이지만 그보다 훨씬 길어 보입니다. 자연석 돌계단과 누마루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깊이감 때문일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스며들듯 계단을 올라 만세루에 이르면 새로운 공간이 펼쳐집니다. 누하(樓下) 기둥 사이로 홀연히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세루 아래를 통과하면 3.6m 높이의 석축 위에 중정(中庭)이 펼쳐집니다. 정면에 대웅전(보물 제55호), 왼쪽으로 화엄강당(華嚴講堂, 보물 제448호), 오른쪽으로 승방으로 쓰이는 무량해회(無量海會)가 만들어내는 바른네모꼴의 마당입니다.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앞마당 석축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몸을 옮기면 또 하나의 네모꼴 마당이 열려 있습니다. 정면으로 극락전(국보 제15호), 왼쪽으로 고금당(古今堂, 보물 제449호), 오른쪽으로 화엄강당이 만들어 내는 공간입니다. 화엄강당은 두 영역의 매개체이자 각각의 영역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구실을 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1972년 해체 수리 때 나온 상량문의 기록으로 봤을 때 12~13세기에 창건된 건물로 추정된다.
봉정사에서 또 하나의 네모꼴 마당을 찾자면 ㄱ자 형 무량해회와 공양간이 만나 이루는 후원 공간입니다. 이렇게 보면 봉정사는 두 곳의 신앙 공간과 한 곳의 생활 공간으로 이루어진 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공간 구성으로 하여 봉정사는 좁은 터를 넓게 쓰고, 각각의 영역은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폐쇄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봉정사는 작은 암자 하나면 족할 것 같은 공간을 넓고 다양하게 쓰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위엄과 검박, 우아함과 아기자기함, 신앙공간으로서의 엄숙함과 생활공간으로서의 편리함을 조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봉정사가 기림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극락전 때문일 것입니다. 국보 제15호인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입니다. 1972년 9월 해체 수리할 때 종도리에 홈을 파서 보관한 한지에 기록된 상량문으로 그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인조 3년(1625)에 만든 상량문에는, 능인 스님(能仁大德)이 창건했고, 6대 조사(祖師)들이 중수했으며,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때를 지붕 수리 때보다 적어도 100~200년 앞선 12세기 말~13세기 초로 추정합니다.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쓴 기단에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지은 주심포 계열의 맞배지붕을 한 극락전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의 고식(古式)을 간직한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봉정사는 툇마루 절로도 유명했다 합니다. 대웅전 정면에 툇마루가 있는 경우는 이곳밖에 없습니다. 승방과 공양간으로 쓰이는 무량해회는 툇마루가 3면에 연이어져 있습니다. 안동 지방의 건축 문화와 관련이 있을 듯한데, 생활의 편의성을 살리면서 늘 자연을 완상할 수 있도록 한 건축적 고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특히 부속 암자인 영산암은 모든 건물이 툇마루를 달고 있는데, 우화루 옆 건물은 남쪽 면에 누마루까지 만들어 집안으로 자연을 들여 놓고 있습니다.
천등산의 동쪽 허리를 감싸며 흘러내리는 계곡 너머에 자리한 영산암은, 1987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여유롭게 퇴락을 즐기는, 곱게 늙어 가는 절집의 자연주의 미학에 세계인이 공감한 것입니다.
봉정사와 영산암으로 하여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청빈의 당당함을 봅니다. 대덕(大德)의 빛[輝]은 그러합니다. 만세루는 누각 안에 ‘덕휘루(德輝樓)’라는 또 하나의 당호(堂號)를 달고 다시 한번 은근히 그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우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인류는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시간에 마디를 지어 ‘새날’과 ‘새해’라는 이름을 붙여왔을 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아무리 골라도 더 이상 듣기 좋은 말은 찾지 못했습니다).
◈ 봉정사에서 숙식
봉정사에서는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 단, 한 달에 한 번 가족 단위나 15명 이하의 인원으로 단체 예약을 해야 한다. 고건축물의 품격을 간직한 영산암에서 잠을 자는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대표전화 054-853-4181).
절 아래 매표소(주차장) 옆에 휴게소와 식당을 겸한 민박집이 두 군데 있다. 천등산산장 휴게소(054-843-9616)는 안동간고등어, 안동한우, 안동된장찌게가 맛깔스럽다. 송정식당휴게소(054-857-1316)는 산채비빔밥이 무난하고, 송이 닭백숙을 특별 메뉴로 준비해 두고 있다. 안동 시내가 자동차로 20분 남짓이므로 먹고 자는 일은 문제가 없지만, 절 아래 식당 밥도 유원지 특유의 무성의함 같은 건 없고 맛있다.
천등산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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