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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보산과 보배산, 덕가산이 하늘우산(寶蓋)처럼 도량을 에워싸고 있는 각연사. 태양을 머금은 ‘숲의 강’ 위로 구름이 한가로운 절이다.
근심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허공으로 흐르는 강물에 몸 두기 좋은 절이다
여름 숲은 장마에 더 빛납니다. 빗발이 태양의 본성까지 지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빗줄기, 그것은 햇살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물레에서 갓 빠져나온 삼실 같은 그 ‘햇살의 올’은 나뭇잎의 지문을 더 선명히 합니다. 빗발은 잎맥을 따라 수만 수억의 동심원을 이루며 ‘숲의 강’으로 흘러듭니다. ‘우우―’거리는 바람결에 강물이 일렁입니다. 바위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출렁―’ 폭포가 되어 물기둥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각연사(覺淵寺)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비 내리는 여름 숲의 풍광입니다.
올 여름 첫 장마가 시작되는 날 각연사를 찾았습니다. 애당초 비가 오고 말고는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숲과 물과 바위’의 고장 괴산으로 가는 길에 딱 어울리는 정취여서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 귀부만 남은 비석. 과거 상당한 규모였을 각연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지만 지금은 망초만 무성하다. 비신과 머리는 없지만 거북등과 다리 조각은 상당히 섬세하다.(왼쪽), 대웅전 안의 스님상. 절에서는 창건주인 유일대사상이라 믿고 있다. (오른쪽)
중부내륙고속국도 괴산 나들목(연풍)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괴산읍쪽으로 가다 보면 칠성면 태성리에서 각연사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이곳에서부터 절 마당까지는 4.7km인데, 자동차 두 대가 비껴가기 힘든 다소곳한 찻길이 나 있습니다. 각연사계곡을 끼고 가는 길입니다. 또한 이 계곡은 태성리 사람들의 식수원이기 때문에 여름에도 행락객의 발걸음은 철저히 통제됩니다. 천연 그대로일수밖에 없는 계곡입니다. 각연사가 길손에 안기는 첫 번째 선물입니다.
산골마을의 정취가 그윽한 태성리를 지나 다랑이 논과 밭을 지나 다리를 하나 건너면 곧장 숲길입니다. 하늘을 가리는 압도적인 숲이 아니라, 깊지도 넓지도 않은 계곡과 도란거리는 숲입니다. 사람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이지도 도드라져 보이지도 않는, 어느 새 사람조차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런 숲길입니다.
▲ 삼성각 안의 독성상.(왼쪽), 삼성각 안의 산신상(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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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 안에서 바라본 대웅전 앞마당.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물결.
그런데 각연사는 왜 더 수려한 풍광의 쌍곡구곡을 마다하고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요. 창건 설화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절에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때 유일 스님이 창건했는데, 처음에는 쌍곡리의 절골(사동)에 터를 닦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더라는 것입니다. 기이하게 여겨 따라가 본즉 현재 비로전 앞의 연못에 대팻밥이 떨어져 있어 유심히 살펴보니 연못 속에 석불이 있고 그것으로부터 광채가 퍼져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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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전 안의 석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433호). 광배의 구름무늬와 불꽃무늬가 살아있는 듯하다.
한편 1768년(조선 영조 44)에 작성된 대웅전 상량문에는 918년(고려 태조 1)에서 975년(광종 26) 사이에 통일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금석고조선에 실린 비문에는 958년(광종 26) 통일대사의 제자인 석총훈, 석훈우 등이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록이 맞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지금도 큰물이 지나간 뒤에는 주초 같은 석재들이 계곡에 나뒹군다고 하니 과거 한때는 대단한 규모의 절이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서경 주지 스님의 말처럼 불타 허물어진 자리 위에 절을 짓고 다시 또 세월이 흘러 흙에 덮인 후 또 절을 짓고 하며 지금까지 법의 등불을 이어왔을 것입니다.
현재의 각연사는 작은 절입니다. 전각이라야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126호)과 비로전(도유형문화재 제125호), 삼성각, 종각, 요사(종무소와 공양간을 겸함)가 전부입니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인 대웅전은 1768년(영조 44년)에 건립되어 여러 차례 손을 봐왔는데, 현재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한 것입니다.
비로전은 1975년 중수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648년(인조 26) 이후 1926년까지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합니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은 대웅전과 비로전밖에 없지만 그래도 보물은 셋이나 됩니다. 비로전에 모신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 비문은 마멸되어 판독이 불가능하지만 완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통일대사탑비(보물 제1295호), 통일대사의 것으로 추정하는 부도(보물 제1370호)가 그것입니다. 이중 탑비와 부도는 칠보산과 덕가산이 만나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산중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석조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마당 가의 큰 보리수가 절의 오랜 역사를 대변한다. (왼쪽), 종각에 걸린 목어.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늘 깨어있기를 당부하는 눈빛.(오른쪽)
각연사는 바람처럼 다녀와야 길 떠난 목적에 어울릴 절입니다만, 찬찬히 만나야 할 대상도 몇 있습니다. 첫째, 대웅전 안 불단 옆에 모신 흙으로 빚은 스님상입니다. 절에서는 유일대사상이라 하지만 달마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두건을 쓰고 있는데다 눈이 워낙 커서 달마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무섭게도 인자하게도 보입니다.
비로전의 비로자나불좌상도 오랫동안 눈길을 묶어 둡니다. 9세기의 전형적인 화강석 비로자나불 형식을 따랐지만, 얼굴이나 옷주름 같은 세부 묘사는 10세기 불상 양식을 보인다고 합니다. 얼굴 모습은 근엄하다기보다는 인간적인데, 아홉 분의 화불이 새겨진 광배의 구름무늬와 불꽃 무늬는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비로자나불을 만난 다음에도 휑하고 돌아서서는 안 됩니다. 비로전의 초석을 찬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자연석 그대로의 덤벙주초 같지만 기둥 자리는 도톰하게 올려 둥글게 다듬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둥근 것이 아니라 옆으로 귀가 달려 있습니다. 이런 형식을 고멕이초석이라 하는데, 기둥 아래를 가로로 연결하는 하방과 기단 사이의 공간을 막는 화방벽을 초석과 연결할 때 마감을 깔끔하게 하기 위한 형식입니다. 감은사지나 법천사지에서 발견된 고맥이초석보다는 정교하지 못하지만 이 절의 초창 연대를 통일신라로 믿게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절에서도 기록으로 전해지는 고려시대 통일대사 창건설보다는 구전에 의한 통일신라 말의 유일대사 창건설을 신뢰하는 듯합니다.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조금 난감한 것이 보개산의 존재입니다. 대동여지도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괴산 지역에는 ‘보개(寶蓋)’라는 산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내책자는 물론이고 괴산군에서 만든 <괴산의 명산 35>라는 책에도 보개산은 없습니다. 절 앞의 보배산을 보개산이라 한 일부 자료는 있지만, 그 산은 계곡 건너에 있습니다. ‘보개산 각연사’라고 말할 근거가 없는 셈입니다.
▲ 비로전 옆의 삼색병꽃나무.(왼쪽) 종각에 걸린 법고.(가운데) 도량 가 풀숲에서 만난 두꺼비. 원시의 자연이 너무 좋아서 세세생생 두꺼비로 환생하기를 소망할지도 모르겠다.(오른쪽)
그렇다면 해결책은 다음과 같은 이해 방식이 가장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세 산 즉 칠보산, 보배산, 덕가산이 절을 감싼 모습이 보개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보개란 다른 말로 ‘천개(天蓋)’ 즉 부처님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 일산(日傘)인 바, 세 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실제로 보개라 할 만합니다.
각연사는 속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습니다. 최북단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입니다. 그렇지만 국립공원 안이라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그만큼 각연사는 깊은 산속 절입니다. 그렇지만 세간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각연사에서 만난 여름 숲은 하늘과 땅 사이로 흐르는 또 다른 강물이었습니다. 해를 머금은 그 물결을 따라 흔들렸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온전히 자연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물과 불을 상극이라 하는 것은 현상만을 두고 말할 때나 옳습니다. 물과 불은 한몸으로 하늘과 대지를 순환합니다. 만물은 땅(地)·물(水)·불(火)·바람(風)에서 와서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통찰은 옳습니다.
허공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흔들리다 보개산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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