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틀지 마라
내가 알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연출가 이윤택. 그는 시인 문학평론가 드라마 작가 극작가 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미증유의 문화현상’이다.
최근 그가 쓰거나 만든 몇 몇 연극들 즉 <길 떠나는 가족> <문제적 인간 연산> <오구> <어머니> <파우스트> <눈물의 여왕> <느낌, 극락 같은> 등은 모두 그 해의 화제작으로 꼽혔다. 천재적 광기와 열정으로 항상 관객들의 잠들어 있는 뇌파와 정서를 두드려온 이윤택. 그와의 만남은 이 땅이 아닌 이역만리 미국 뉴욕 땅에서였다.
이윤택은 그 때 현대극단을 이끌고 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을 공연하는 중이었다. 그 무렵 나는 뉴욕 후암정사 일로 그 곳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그와 극단 일원을 초대하는 파티를 마련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이역만리 타국에서 동포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나와 그는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우리는 다시 한국에서 정을 쌓을 수 있었다. 1995년 여름 이윤택은 <문제적 인간 연산>을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연극 연습 도중 이상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윤택 씨의 부탁으로 나는 급히 그 현장에서 구명시식을 올렸다. 그리고 구명시식이 끝난 후 극단 관계자들에게 에어컨을 켜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영가들이 전기장치 같은 물리적인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영가들은 에어컨 같은 찬바람이 나오는 것을 싫어했다. 하필이면 무더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극장안은 에어컨을 풀 가동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럴 때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니…. 그러나 이윤택은 내 말을 따라 주었다. 워낙 뛰어난 작품에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와 연출에 힘입어 <문제적 인간 연산>은 그해 성공작이 됐다. 찌는 듯한 복더위에 냉방도 안 된 극장에서 불평없이 연극을 관람해 준 관객들 또한 이 연극의 성공요인이었다.
나는 지금도 곰곰이 그 구명시식에서 에어컨을 켜지 말라고 당부하던 영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연극이란 영혼을 모아 한 판의 굿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마음을 모아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출연자들이 연출자(사제)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은 극본이 있는 굿판이고 그 맥락은 영혼과의 대화여야 멋진 마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에어컨과 같은 차디찬 공기는 뜨거워야 할 굿판을 식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나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인 그와의 인연은 만남이 무엇인가 새삼 되새기게 한다.
그 후 오랜 친분기간을 쌓은 우리는 작년, 3월 나의 작품 <눈물의 여왕>을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 또한 진정한 대중예술작품, 즉 대중가극으로서 또 하나의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사고 빈발지역에 가면 마치 호객행위라도 하듯 영가들이 사람을 부른다. 고속도로와 외딴 길 곳곳에 서린 영가들이 동반자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서 운전면허를 땄지만 운전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는 영혼이 나타나 운전을 방해할지 모르는 탓이다.
어느 TV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영혼의 실재 여부에 관해 인터뷰하자고 했을 때 출연을 거부했다. 영혼의 존재는 호기심이나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영혼 관련 방송출연 제의는 거절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는 프로 외에 ‘떠보려는’ 의도 자체를 거부한다.
영혼은 모든 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개인별 업장이나 운명에 따라 작용하는 것일 뿐 누구에게나 화를 당하게 하지는 않는다. 부처도 세 가지는 불가능하다 했다.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다. 인연 없는 중생, 정업(자신이 지은 업)을 면하게 하지는 못한다.’
예전에 천안 고속도로에는 비상 활주로가 있었다. 지금은 고속도로로 정리됐지만 과거 그 곳에 그런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촌형이 거기서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 부근을 잘 알고 있다. 사촌형은 승용차를 타고 가다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와 충돌, 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급히 가보니 과연 그곳에는 영가들의 한이 잔뜩 서려 있었다. 매해 사고가 발생하는 자리였다.
현장에서 사촌형의 구명시식을 했다. 법관이 죄수의 형량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듯, 영가들이 지은 업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형편에 처할 때가 있다. 사촌형 구명시식도 그랬다. 숱한 다른 영가들에게도 구명시식을 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 것이다. 사촌형이 생전에 그 영가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밝히지는 않겠다. 악연이든 좋은 인연이든 그 영가들은 모두 사촌형과 관련 있는 죽음들이었기에 정성껏 구명시식을 했을 따름이다. 생전의 얼굴을 모르는 영가 수십을 구명시식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혼 존재증명은 무의미하다. 인간 자체가 영혼인 까닭이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의 집합체이다. 영혼의 존재는 굳이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유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는 말처럼 구태여 얘기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영혼이다.
계룡산 여산신
필자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1년에도 몇 차례씩 전국의 산을 찾는다. 이렇듯 산을 좋아하다 보니 갖가지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갑자기 나빠진 기후 때문에 조난의 위험도 여러 번 겪었고, 산 속에서 혼자 야영을 하다가 맹수를 만났던 아찔한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악천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쭐한 마음에 이리저리 산 속을 헤매다 길을 잃어 엄청난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산은 나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주었다.
산에서 만난 대덕 은사님들로부터, 야영천막을 찾아온 많은 영혼들에게서도 계속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만 산이라는 자연 속에서 얻은 가르침도 그에 못지 않았다.
산은 계절마다 각각의 형색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봄의 북한산은, 마음을 풋풋하게 돋워 주곤 한다.
여름의 치악산은, 청량감 그 자체이다.
가을의 설악산은, 그대로 불붙는 정열이었다.
겨울의 지리산은, 내 영혼의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의 오늘이 있기까지 지리산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요 영혼을 만나게 한 시원(始原)이기도 한 인연 깊은 산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계룡산의 신비로움이 으뜸이다.
계룡산은 주봉(主峰)을 향해 모든 봉우리가 읖조리듯 서 있는 모습부터 영험한 기(氣)를 상징한다. 그래서 필자는 늘 계룡산을 경외감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몇 년 후 필자는 그곳 계룡산 자락에 유성 후암정사를 만들었다. 매월 음력 16일 산신법회에는 많은 이들이 모인다. 얼마전의 법회때에는 전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신도들이 좋은 인연을 맺고 갔다. 발도 디딜 틈 없이 모인 많은 이들을 위해 필자는 짧은 법문을 들려주었다. 필자의 생각에 인간의 집중력은 25분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한다고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법문하는 동안 나를 향한 눈빛은 많은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일일이 인사드리고 손을 잡아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정겹게 건네는 눈길 하나에는 오랜 인연으로 다져간 깊은 정이 흘렀다.
계룡산의 정기를 머금은 산자락에 들어선 유성 후암정사 이곳에 모신 여산신님은 원래 미국으로 모실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꿈에 나타난 여산신은 이국땅에서 벽안의 이국인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이 싫으셨는지 미국행을 마다하고 유성으로 모셔지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유성으로 여산신을 모시고 매월 음력 16일을 산신날로 정해 법회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곳 유성 후암정사가 정자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정자나무는 사람들이 잠깐씩 쉬었다 가는 휴식처요 영원히 머무르는 곳이 아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잠깐씩 기도하는 곳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잠깐잠깐 눈길만 맞춰도 나는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되도록 다 이루도록 기원해 준다.
옛날 할머니가 아들 손자 잘 되라고 장독대에 깨끗한 물을 떠놓고 간절하게 기도하여 소원을 이루었듯이, 이곳 후암정사도 여산신의 기를 잘 받아가기를 빌어본다.
산의 정기를 받아 오늘도 그 신비롭고 오묘한 미소 가득한 여산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음달의 모임 역시 소박한 만남이 되길 빌어본다.
너무나 인간적인 영의 세계
구명시식을 집전하다 보면 말 그대로 별의별 영혼을 다 만난다.
회사원 K씨. 그날 K씨의 장모의 구명시식은 순서상 3번째였다. 하지만 첫 번째로 모셔 식을 이끌었다. 생전의 그의 장모가 영능력자였기 때문이다. 수사관 계통에서 해당 수사관의 위신을 세워주고자 잘 모시는 관행과 마찬가지다.
장모 영혼은 ‘내 동생을 찾아 복돈을 전해달라’며 ‘그러면 K가 승진할 것’이라 했다. 승진 기회때마다 K는 누락됐고 올해 초 승진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다. 장모 영가의 말에 황당해 하던 그에게 영혼은 또 다른 말을 전했다.
‘생전에 내 권리(영능력)를 너무 남용했다’는 요지의 후회였다. 이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갔다. 이후 장모는 인천의 영능력자인 어느 보살의 몸으로 환생, 중생 제도에 힘쓰고 있다.
모 금융사 임원인 P씨의 어머니를 위한 구명시식도 K씨의 경우와 비슷했다. 식에 나타난 그의 어머니 혼령은 자신이 ‘영계를 팔았음’을 시인했다.
병으로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6개월 뒤 병석에서 고생하던 남편의 영혼은 데리고 갔다. 그 어머니의 영혼도 어느 저명 영능력자에 씌워져 그의 중생 구제에 힘을 더하고 있다. 다시 어머니를 위한 구명시식에는 숱한 영혼들이 함께 참석했었다.
‘몰래 구명시식’을 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위 공무원이던 N씨는 자신의 구명시식을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몹시 꺼렸다. 교장이 교사를 야단칠 때 교장실로 불러 야단쳐야지, 학생들 보는 앞에서 꾸짖을 수는 없는 것과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특수하거나 별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구명시식은 조금 번거롭다. 그들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살짝 불러낸다든가, 공개적인 장소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 탓에 비공개 구명시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N씨는 아들의 원인 모를 병이 문제였다. 몸의 열을 빼앗겨가며 한여름에도 몹시 추위를 타는 질병. 역시 영혼이 개입한 질환이었고, 구명시식 후 아들이 정상을 회복했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영혼은 존재한다
미국은 자유 국가다. 대통령의 사생활마저 낱낱이 들춰낼 만큼 비밀이란 있을 수 없는 언론자유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자유가 넘쳐흐르는 미국 언론이 유독 터부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계인의 존재에 관한 보도다. 미국은 기독교 중심나라다. 그래서 지구 밖 생명체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 물론 아는 이들은 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영혼의 존재를 금기시한다. 필자의 구명시식 풀 스토리가 TV로 방송되려다 사실 그대로의 내용을 애매모호하게 ‘순화’시켜 방영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영혼의 존재 거론에 대해 부정적임을 새삼 확인한 하나의 보기였다.
바다에서 배가 난파하면 탑승객 대부분은 물에 빠져 죽는다. 그렇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목이 말라 탈수해 죽기도 한다. 참으로 모순 아닌가. 온통 물에 둘러싸여 있는데 물이 부족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모순. 꽃이 피면 자연히 피어오르는 향기를 두 손으로 가리려 드는 어떤 이의 몸짓과도 같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이 많았다. 그 한은 편치 못한 죽음이 많은데서 기인됐다. 숱한 외침에 시달리는 과정서 원치 않은 억울한 죽음을 양상한 우리가 영혼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이처럼 “그래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 사람들이 있다. 명예와 돈을 누리는 인간부터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궂은 일을 해야하는 사람까지, 직업의 귀천을 떠나 다양한 이들이 존재한다. 시회의 일원으로서 모두가 소중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영혼을 다루는 필자같은 사람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영혼 탐구가’로서 필자에게는 소명이 있다. 그 노정에는 숱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살아 있을 때는 침묵이 있지만 죽을 때는 외침이 있는 것이 인간이다. 필자는 이 외침에 한이 맺히지 않도록 기도해 주고 정성들여 주는 사람이다. 한의 매듭을 풀어주는 영혼탐험가로서 계속 도전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환희로운 종합예술
의학박사 전모씨(C의대 교수)가 구명시식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는 구명시식 과정을 ‘훌륭한 종합예술’이라 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공간속에 어우러져 있고 과거 현재 미래가 순간에 용해돼 있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며칠 후 전박사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해왔다.
<예술 소재들은 다양했다. 염불 게송 시, 영혼과의 대화, 고전 현대 무용, 고전 현대 동양 서양음악, 오디오를 통한 명상음악, 종교 악기와 조각, 영가를 상징하는 회화…. 온갖 소재들을 망라하면서 무대는 시공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시공을 초월한 미묘하고도 장엄한 분위기다. 그 날밤 나는 온통 환희로운 감동에 휩싸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어설프게나마 영적 진화를 목표로 하는 이런저런 코스를 거쳤다. 그리하여 순수의식의 편안함과 환희같은 것을 경험한 바 있다. 그 날 밤 느낌도 그 때와 일치했으며 높은 진동수의 큰 에너지 장(場) 속에 임재하는 것 같았다. 철야를 했어도 전혀 졸립거나 피곤하지 않고 의식은 매우 명쾌했다. 더욱이 청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민주인권 변호사인 C형까지 영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한 C형이 과거 암울하던 시절 분신, 투신으로 희생당한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오신 것이다. 이분들이 이승에서의 편치 못한 죽음의 한을 모두 풀고 영적으로 진화해 편암함을 얻으시기를 충심으로 축원했다.
그 동안 의사로 환자를 돌보면서 영적 작용이 분명한 질병과 사고를 여러 차례 봐 왔다. 그런 환자들을 도와줄 능력이 없으므로 그들을 종교 사제나 영매에게 보내고는 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환자 중 반 이상은 진찰 소견상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런 환자에게 의사는 대개 진정제를 투여하거나 “마음을 편히 가져라”며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 거의 모두는 영(靈)이 개입한 환자들이라 보고 있다. 그 환자들이 고대나 중세에 살았다면 아마도 샤먼을 통해 쉽게 치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난치병이 생긴 상당수의 최초 원인은 영적 반영이리라 여겨진다. 영적 세계, 의식 세계는 탐구자가 탐구대상과 분리됨 없이 오직 ‘그것이 돼 경험하기’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각으로 헤아리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구명시식은 과학 철학 심리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의식 탐구이자 생명에 대한 큰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1998년 10월 30일 필자의 구명시식 현장 등을 여과 없이 촬영했던 MBC-TV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 차길진의 영혼탐험> 방영이 유보되다 근 한 달여만인 11월 27일 밤, 50분 분량이던 것이 싹둑 잘려진 15분짜리 에피소드 달랑 하나로 방영되었다. 방영되지 않느니만 못한게 돼버리고 만 것이다.
방송에서 삭제된 내용은 뒤이어 얘기할 ‘뇌사자 김씨에 얽힌 이야기와 내가 구명시식중 영혼들과 교문(交文)하고 대화하는 장면, 그리고 연극인 이윤택씨가 나의 예언대로 자신의 전생을 일본에서 확인한 체험담 등 3개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초혼에 응한 혼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되는 법당 전장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려 하자 멀쩡했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멈춰버리는 장면도 방송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이 프로의 담당 PD는 “7시간에 걸쳐 구명시식을 촬영하는 도중 적외선 카메라가 특별한 이유없이 10분간 작동이 중단되는 등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장면이 있어 방영을 유보했다”고 불방이유를 밝혔지만 필자로서는 매우 씁쓸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영혼의 존재를 밝히겠다며 당당한 포부로 나를 설득했던 PD조차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장면이 있다, 내지는 구명시식으로 민심을 혼란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축소방영을 결정했다니….
이는 방송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을 취재했다는 것 자체가 화젯거리이며, 특종감인데 이를 ‘방영연기’까지 하면서 필름 가위질에 나섰다니, 이 사건은 영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타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불쾌한 해프닝으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는 조금이나마 영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넓히고, 이를 아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 프로그램 촬영에 응했던 것이지 그 외의 사심이 있거나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심있는 영매에게 찾아올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앞에서도 밝혔지만 필자의 구명시식은 영혼과 일반인들을 연결하는 선한 의도에서 행해지는 제의(祭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명시식을 본뜻과 달리 해석해 축소방영 조치를 내린 방송사의 의도에서 필자는 영계에 대해 비뚤어질 만큼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현실을 절실히 체감하고는 이 벽을 허물기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영력 이용한 돈벌이
미국 뉴욕 후암정사에 머물 때였다.
동포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를 둘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초행길이었지만 낯익은 동포들 사이에서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이들도 오직 조국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갑게 맞이해 줬다. 필자도 그분들에게 무엇이든지 도움을 주고픈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세계적인 레코드사인 RCA의 고위직인 K씨도 그곳에서 만났다. 프랑스계 미국인인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필자는 제의를 하나 받았다. LA에는 숫자를 맞히면 거금을 타는 복권이 있는데, 영력을 이용해 그 숫자를 알아내 반씩 나누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서는 어느 초능력자가 영과 교신, 증권시세를 귀신같이 알아맞혀 졸부가 된 일이 있었다. 경마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힘을 얻은 그는 친구들의 돈을 끌어모아 역시 같은 방법으로 거액을 증권에 투자했다. 그런데 도움을 주던 영력이 어찌된 일인지 거짓말처럼 듣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폭삭 망해 버렸다. 욕심과 불의가 마음에 고이자 신통력을 발휘하던 초능력자가 순식간에 무능력자로 추락한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욕심이나 사심이 앞설 때 진실과 진심은 힘을 잃는다. 이는 어떤 일에나 적용되는 하나의 진리이다.
K씨는 필자의 설명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몹시 섭섭하다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도 차츰 이해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영과의 교신은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평상심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또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능력 아닌 능력이라는 점도 K는 이해했다. 누구든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욕심을 앞세울 때 영원히 영혼의 미아가 된다는 사실도 더불어 일깨워 줬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고한 진리를 남용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어야 한다.
위기일발
구명시식(救命施食)은 불교에 없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구병시식(救病施食)이라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조상은 그냥 조상이고, 남의 조상은 귀신’이다. 바로 그 혼령들을 불러내 잘 먹여 보냄으로써 귀신병, 즉 귀신 씐 우환을 치유하는 의식이다.
영혼의 작용은 질병을 불러올 뿐 아니라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필자는 병(病) 대신 명(命)으로 의미를 한층 격상시킨 것이다. 구명시식을 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恨) 풀이와 동시에 조상 덕을 보겠다는 심리를 드러낸다. 그리고 만족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영혼의 실재만큼은 예외없이 인정하고야 만다.
아무나 구명시식의 수혜자가 될 수는 없다. 선대의 업은 우리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가, 우리가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에 관한 의문을 가져야만 비로소 구명시식에 임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구명시식 현장을 참관할 수 없나요?”라고 묻는다. 구명시식은 몹시 어려운 의식이다. 일반인은 재미 삼아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생명이 오가는 절체절명 순간이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할 때는 필자를 잘 알고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아내 능인각 보살과 어머니 무위심 보살, 창을 하는 김 보살, 염불 잘하는 최 법사, 옛 노래 잘 부르는 원 보살등 가까운 사람들이 필자를 지켜준다.
이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산소 공급기를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인물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구명시식도 마찬가지다. 오감(五感)으로 이뤄진 현상계를 벗어나 심연의 바다인 영혼세계를 여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집간 지 얼마 안 돼 폐질환으로 소박맞은 뒤 자살한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영혼은 ‘시집식구들이 믿었던 것처럼 폐결핵에 걸린 것이 아니라 단순한 폐렴이었다’고 밝혔다. 바로 그때 주위에 앉아 필자를 도와준다고 믿었던 조력자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여인의 영혼을 초령, 영기를 통하고 있는 도중 나타난 벌레 한 마리 탓이었다. 무위심 보살이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며 벌레를 잡으려 달려들었다. 벌레가 나타난 순간 보살에게 지박령이 빙의, 호들갑을 떨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필자에게는 가장 긴박한 찰나였다. 의식을 모으느냐 흐트러뜨리느냐에 따라 생명이 오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소란이 빚어지면서 필자는 곧바로 정신을 잃고 힘없이 검디검은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정신을 잃기 직전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필자는 서서히 죽음의 문턱으로 밀려갔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끝내 구명시식을 집행했다. 심하게 각혈했을 뿐 미치거나 죽지는 않았다.
구명시식을 마치고 주변을 살피니 무위심 보살의 옆구리가 발길로 심하게 차인 듯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필자가 피를 토하면서 원망의 영기를 발산하자 그것이 보살의 몸에 맞아 난 상처였다. 그날 구명시식을 한 집만 했더라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여러집 영가들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명시식은 여러 집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혼자서만 구명시식을 하려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거절한다. 일반인이 구명시식을 참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각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또 잠간 잘못으로 목숨이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순간이 오가기 때문이다
구명시식을 돌아보며
어떤 동물학자가 있었다. 그는 여러 동물들 가운데서 특히 거북을 사랑하였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은 그 투박한 모습으로 동물학자에게 생명의 신비와 경외감을 가져다주었다.
거북은 모래속에 알을 낳는다. 이 알을 까고 나온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달린다. 몇천 마리, 아니 몇만 마리의 새끼거북들이 필사적으로 바다로 달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리하여 바다에 도착한 거북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디나 훼방꾼들은 있게 마련. 많은 거북 새끼들은 바다로 향해 달리는 도중, 무수한 갈매기들의 습격을 받는다. 그야말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생존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새끼거북들의 생명의 몸부림. 그 동물학자는 이러한 새끼 거북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새끼거북앞에 펼쳐지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너무나 잔혹하다고 느낀 동물학자는 갈매기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새끼거북의 생존을 위한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태세였다. 갈매기들은 슬금슬금 멀리 달아나 버렸다.
한편 방해꾼이 없어진 틈을 타서 새끼거북들은 거의 동시에 몰려나와 바다로 향했다. 일시에 새끼거북들이 빽빽이 모래사장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이 멀리 있던 갈매기들의 눈에 띄었다. 그 전에는 새끼거북들에게 무관심했던 갈매기들까지 예전에 쫓겨났던 갈매기들과 합세하여 더 많은 갈매기들이 와~하고 몰려들었다. 그리고 새끼거북들을 남김없이 쪼아먹기 시작하였다. 거북들은 머지않아 갈매기들에게 거의 다 먹히고 만 것이다.
결국 동물학자의 거북을 살리려는 쓸데없는 인정 때문에 새끼들이 전멸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응보를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거북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바닷가에 도달하는 새끼거북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수만이 거북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필자도 그 동물학자도 비슷한 착각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수많은 구명시식을 해오면서 나는 이러한 의문에 휩싸이곤 하였다.
구명시식을 받는 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처지에 처한 이들이 많다. 어떤 이는 병이 들어 목숨이 오락가락 하질 않나, 또 어떤 이들은 사업이 파산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술 때문에 20년간 고생하다가 구명시식 후에 정말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란 한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병이 낫기만을 바라다가 그 병이 나으면 당장은 고맙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병이 든 동안 소홀히 하고 만 가족의 일상생활은 어쩌란 말인가. 병이 나음과 동시에 그에게는 가족을 어떻게든 부양하고 살아나가야 할 가장으로서의 또 다른 의무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병 하나만 낫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병이 나음과 동시에 또 다른 압박감이 또다시 그를 짓누르게 되는 법이다. 구명시식을 받는 이들이 일이 잘되어 병이 낫거나 사업이 잘 돌아가거나 고맙다고 하는 이들을 보며, 어쩌면 필자도 이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매년 절에서는 물고기들을 방생한다. 그런데 ‘놓아준다’는 이 의미가 어쩌면 물고기들을 죽음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고기는 자유를 얻는 대신 또다시 수많은 천적들을(인간을 포함한) 만나게 된다. 자유와 동시에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물고기에게 얹어진 것이다.
이제 필자는 구명시식에 대해 한번 되돌아보려 한다.
필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노정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하여 구명시식에 대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그 동안 필자를 찾고 좋은 인연을 맺게 된 모든 이들에게 너무나 감사한다. 또다시 어떤 다른 모습으로 어느 곳에서 만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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