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전투 승리를 위한 필수품, 웨폰라이트(Weapon Light)
아군과 적군의 식별이 불가능한 어둠 속에서 적과 전투를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다. 승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적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는 적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적은 나를 볼 수 없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뀔까? 가만히 숨죽이고 앉아 적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밀하게 적을 찾아다니며 먼저 공격할 것이다.
웨폰라이트를 사용해 사격훈련 중인 미군의 모습. LED 기술이 접목된 웨폰라이트는 RAS를 통해 보병화기와 결합해 일반 보병의 야간전투능력을 더욱 배가할 수 있다. 출처 : 미국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속속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광학장비들은 이처럼 야간전투에 대한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웨폰라이트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병사들의 야간전투능력을 배가시키고 궁극적으로 야간전투의 승리를 보장하는 장비로 인정받고 있다.
어둠은 승패의 중요한 변수
달빛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소수의 결사대가 은밀히 적진에 잠입한다. 잠시 후 적진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이를 신호로 미리 대기 중이던 아군이 적진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한다.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시작된 아군의 기습공격에 우왕좌왕하던 적군은 결국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지고 전투는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둠은 승패의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인간의 눈은 빛이 없으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고 여기에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간전투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정복자 혹은 군대는 아무리 강력한 무력을 자랑해도 결국 패배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군대에서는 ‘등화관제(燈火管制)’를 통해 아군의 존재를 숨기고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거나 반대로 적을 기만했다.
야간전투에서 충분한 시야 확보는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때문에 야간투시경과 같은 광학장비의 유무 못지않게 조명탄의 적절한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사진은 미군이 박격포를 사용해 조명탄을 발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 : 미국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형태의 광학장비가 등장한 오늘날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첨단무기로 무장한 선진국 군대일수록 어둠을 환영하고 어둠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광학장비가 등장해 어둠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적과의 전투력 격차를 극대화할 수 있고, 보다 유리한 전투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진행되는 현대전의 특징은 다양한 광학장비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더욱 배가 시키고 있다.
야간전투를 위한 인공조명기구
어둠 속에서 적과 싸우려면 인공적인 조명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횃불이, 시대 발전에 따라 조족등(照足燈), 방풍등(防風燈/Candela 또는 Lantern), 회중전등(懷中電燈), 손전등(手電燈/Flashlight 또는 Torch) 등이 차례로 등장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손전등 자체의 밝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넓은 지역을 밝히기 위한 조명탄(照明彈/Flares)과 먼 곳의 물체를 식별하기 위한 탐조등(探照燈/Searchlight)이 등장했다.
전투용 손전등을 보다 전투에 적합하게 개량한 것이 총기 장착이 가능한 웨폰라이트이며 자동소총에서 권총까지 다양한 형태로 실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슈어파이어 홈페이지(https://www.surefire.com/illumination/weaponlights/)
문제는 조명탄의 경우 주변을 밝게 비추어 아군은 물론 적군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며 탐조등은 아군의 정확한 위치가 노출되어 역으로 적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명탄이나 탐조등은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었고 결국 깜깜한 밤에 전투가 벌어지면 병사들은 자신의 손전등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병사들이 사용하는 손전등은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손전등 자체의 내구성이었다.
TL-122와 다양한 전술 조명장비의 등장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새로운 개념의, 튼튼한 군용 손전등을 개발해 TL-122라는 이름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했다. 현대식 전술 조명기구의 원조로 불리는 TL-122는 제식명칭 보다 ‘ㄱ’자 형태로 생긴 특이한 외형 때문에 거위목 손전등(Gooseneck Flashlight) 등으로 불렸다. 군장에 결속해 전투 중에도 사용할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 초록색 혹은 붉은색 필터를 끼워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았기 때문에 많은 병사들에게 사랑 받았고 보다 성능이 개량된 MX991은 베트남전쟁에서 제2차 걸프전까지 사용되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M1911A1 권총과 MX991 손전등(붉은 원으로 표시)을 들고 베트콩의 지하터널을 수색하는 미군 병사의 모습. 사실 최근까지도 손전등은 그 중요성이나 활용도에 비해 큰 변화 없이 사용되어 왔다. 사진 : 미국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이후 야간전투와 근접 실내전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보다 튼튼하고 강력한 전투용 손전등(Combat Flashlight)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에 호응하듯 제논(Xenon) 전구 혹은 HID(High Intensity Discharge) 램프를 사용하는 특수부대용 전술 조명장치(Tactical Lighting Device)가 등장하기도 했다.
총기에 직접 장착하는 웨폰라이트는 물론 헬멧이나 전투장구에 결합해 사용하는 신호등, 눈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 비가시 조명장비 등도 특수부대의 요구로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야간투시경과 같은 새로운 광학장비의 등장과 보급에도 불구하고 일반 보병의 경우 새로운 전투용 손전등에 대한 필요성 혹은 중요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미군만 예로 들더라도 특수부대의 경우 베트남전쟁 이후 다양한 전투용 손전등을 도입해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총기에 직접 장착하는 웨폰라이트는 특수부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하지만 일반 보병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전투용 손전등을 별다른 개량 없이 제식 명칭만 TL-122에서 MX991로 바뀌어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
굳이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무겁고 고가의, 다종다양한 전투용 손전등을 일반 보병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손전등을 총기에 부착하려고 해도 마땅한 보조 장치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손전등의 내구성이 총기에 부착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다종다양한 광학장비는 특수부대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기점으로 이제 일반 보병도 다양한 광학장비를 지급받아 사용하게 되었으며 웨폰라이트 역시 그중 하나다. 사진은 다양한 광학장비를 사용하는 미군 병사의 모습이며 가까운 미래 워리어플랫폼으로 무장하게 될 국군 병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진 : 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대테러 전쟁과 RAS(Rail Accessory System) 그리고 LED(Light Emitting Diode)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은 웨폰라이트의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로 테러와의 전쟁, 레일 액세서리 시스템(Rail Accessory System, 이하 RAS) 그리고 발광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 이하 LED) 기술을 언급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실제로 지난 2001년 벌어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수많은 근접 전투와 실내 소탕작전은 다양한 전술장비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켰다. 특히 그중에서도 웨폰라이트는 야간전투뿐만 아니라 실내 전투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전술장비로 인정받게 된다.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하고 공격하는데 웨폰라이트만큼 효과적인 전술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웨폰라이트가 실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전쟁과는 양상 자체가 달랐던 테러와의 전쟁 특성과 RAS 및 LED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RAS는 1990년대 미군이 보병용 총기에 다양한 장비를 자유롭게 장착/탈착할 수 있는 표준화된 규격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다.
1995년 2월 제식 표준으로 채택되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M4A1 소총을 시작으로 다양한 보병 화기에 적용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당시 다양한 웨폰라이트가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RAS 덕분에 웨폰라이트를 총기에 단단하게 결합하고 상황에 따라 손쉬운 분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LED 전구를 사용하는 손전등은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매우 밝은 빛과 저렴한 가격으로 야간전투 및 근접 실내 전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사진은 헬멧 장착형 LED 전등을 활용해 수색 훈련 중인 미군의 모습.
사진 : 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한편 기초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화된 LED 손전등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작전 중인 병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기존 전구를 사용하는 손전등에 비해 LED 손전등은 더 작은 크기에 더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더 밝은 빛으로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 사용된 MX991이 최대 20루멘(lumen) 수준에 불과했다면 LED 손전등은 손가락 크기만 한 것도 100~350루멘 내외, 보온병 크기의 것은 탐조등 수준인 1000~2000루멘의 밝기를 자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수한 성능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특수부대를 넘어 일반 보병의 필수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긴 수명과 상상 이상의 밝기를 자랑하면서도 저렴한 LED 기술 덕분에 웨폰라이트의 활용 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적외선 발광이 가능한 비가시광선 LED까지 등장하면서 RAS로 총기에 장착 가능한 웨폰라이트는 야간전투 및 근접 실내 전투 승리를 위한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레이저 표적지시기와 웨폰라이트 등을 하나로 통합하면서도 크기는 더 작고 성능은 더 우수한 다목적 전술장비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가격 역시 점점 더 저렴해지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광학 조준경과 야간투시경, 웨폰라이트와 같은 다양한 광학기기로 무장한 현대 보병에게 야간전투 혹은 근접 실내 전투는 더 이상 피하고 싶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광학장비의 등장으로 일반 보병의 전투력 역시 배가되고 있다.
사진 : 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
총기에 직접 장착하는 웨폰라이트는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야간전투는 물론 근접 실내 전투에서의 승리를 보장한다. 가시광선으로 근접한 적의 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시킬 수도 있고 적외선 비가시광선으로 광증폭식 야간투시경의 성능을 보완하거나 밀폐된 공간에서도 야간투시경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특수부대를 넘어 일반 보병에게도 강력한 성능의 웨폰라이트를 지급하고 자유롭게 전투에서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이제 일반 보병도 강력한 웨폰라이트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새로운 개념의 전술장비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보병 전술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첨단 과학기술은 현대 보병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육군의 경우 웨폰라이트와 함께 위리어 플랫폼의 하나로 보급하는 레이저 표적지시기에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로 불리는 적외선 조사 기능을 더해 전투력을 배가한다는 계획이다.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지만 야간투시경으로는 대낮보다도 밝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 : 계동혁 군사전문가 <육군 블로그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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