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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론과 상황론이 부닥칠 때

醉月 2009. 4. 19. 14:30

 

金珽運 명지大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現 일본 와세다大 특별연구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열리자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하는 동서독 시민들. 독일 통일은 독일인들의 치밀함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뜻밖에 다가왔다.>

지난주, 아내와 독일에 다녀왔다. 뮌헨을 거쳐 베를린으로 가는 독일 비행기는 텅 비어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대학과 유아음악교육에 관한 협력과정을 개발한다고 나름 바쁜 아내는 같은 라인의 좌석 세 개를 접수(?)하고 온갖 서류를 펼쳐 놓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이내 눈을 감더니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비행시간 내내 취침상태다.
 
  이 호사스러움은 단지 가는 비행기에서뿐이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모든 일이 잘 끝나 흐뭇하게 비행기에 오르며 우리는 떠날 때의 넉넉한 좌석을 기대했다. 하나 이코노미 좌석은 단 한 곳도 빈 곳이 없었다. 좁게 가는 것은 참을 만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우리 바로 옆 좌석에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안고 타면서부터 시작됐다.
 
  두 살 미만의 아이는 좌석을 구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젊은 부부는 아이를 위한 좌석을 따로 구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승무원들이 알아서 맨 앞 좌석이나 공간이 여유로운 좌석으로 안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독일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스스로 그런 번거로움을 처리할 심리적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일단 전 좌석이 滿員(만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부터 아기는 울기 시작했다. 좁은 좌석이 답답한 듯, 몸을 뻗쳐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젊은 아기 엄마는 당황해서 얼굴이 벌개졌지만, 상황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승무원을 불러, 앞쪽의 좌석과 바꿔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독일 승무원은 잘라 말했다. “나인(Nein)”.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아내는 바로 열 받았다. 독일에 살면서 우리가 가장 질린 단어가 바로 이 ‘나인’이기 때문이다.
 
 
  융통성 없는 독일 승무원
 
  아내: 빈 자리가 없으면 최소한 앞 좌석의 사람들에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는가를 물어봐 주는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승무원: ‘나인’. 앞 좌석의 사람들도 그 자리를 사전에 예약한 고객이고, 이 아이의 부모나 그 앞 좌석의 사람들이나 자신에게 똑같은 고객이다. 아기를 위해 따로 좌석을 구입하지 않은 아이 엄마가 잘못이다.
 
  아내: 갓난아이를 위해 따로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도 다 찼느냐?
 
  승무원: ‘나인’.
 
  아내: 그럼 그 빈 비즈니스 좌석에 이 아이와 엄마를 앉게 하면 안 되나?
 
  승무원: ‘나인’. 비즈니스 좌석은 그만큼의 비싼 비용을 지불한 사람만 타는 좌석이지, 이코노미 클래스의 아기 엄마가 조금 불편하다고 옮겨 갈 수 있는 좌석은 아니다.
 
  아내: 그래도 이렇게 딱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승무원: ‘나인’. 나는 어쩔 수 없다. 내 권한 밖의 일이고 나는 승무원의 업무원칙에 따를 뿐이다.
 
  아내: 그럼 이 규정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누군가? 그 사람하고 이야기 좀 해야겠다!
 
  드디어 나왔다. 그저 ‘나인’만 연발할 뿐인 승무원에게 열 받을 대로 받은 아내는 결국 독일의 관공서에 가면 항상 꺼내던 그 무서운 단어, ‘책임자’를 꺼내고야 말았다. 이제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최소한 두 시간은 넘게 걸리게 되어 있다. 승무원은 바로 하얀 수염을 기른 잘생긴 팀장을 데려왔다. 잘생긴 팀장의 주장은 조금 길었지만 내용은 동일했다.
 
  잘생긴 팀장: 아기 엄마의 딱한 사정을 알겠다. 좌석을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좌석을 옮겨 주면, 앞으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아기를 안고 타면서 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으로 옮겨 달라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요금체계 및 고객 서비스의 원칙이 깨진다.
 
  아내: 일부러 그런 짓을 하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그런 근거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정말 독일사람에게만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전형적인 독일식 관료주의’라고 한다.
 
 
  ‘원칙’으로 불확실한 미래 대비
 
  아내는 민족주의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제 사건은 두 가지 세계관의 충돌로 발전한 것이다. ‘원칙은 어떠한 상황이든 지켜져야 한다’의 독일식 원칙론과 ‘상황에 따라 원칙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의 한국식 상황론의 대결이다.
 
  사실 독일의 저력은 바로 이 원칙론에 있다. 독일 자동차가 그렇게 튼튼한 이유는 바로 이 원칙 때문이다. 모든 자동차의 부품은 규격에 따라 생산된다. 한치의 오차도 없다. 심지어 집안의 유리창 크기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커튼을 따로 맞출 필요가 없다. 백화점에 가면 유리창의 크기에 정확히 일치하는 커튼이 다양하게 있다.
 
  독일인들에게 원칙을 어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원칙이 없는 미래의 낯선 상황을 독일인들은 매우 불안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상되는 미래의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원칙을 세운다. 그리고 그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법은 법이다’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정확한 원칙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독일에 살면서 나는 독일의 그 원칙론과 치밀함이 너무 부러웠다. 독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배운 독일학문의 개념화의 명료함은 오늘날 내 思考(사고)체계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그 독일식 원칙론과 치밀함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독일 역사의 한가운데서 나는 경험했다. 바로 독일 통일이다.
 
  독일 통일은 정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다. 독일 통일의 경과는 우리에겐 너무 중요한 이야기다. 정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독일이 아주 우연히(!) 통일됐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아무도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다.
 
  역사가들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부터 헬무트 콜의 실용적인 정치노선에 이르기까지 독일 통일이 마치 정치가들의 치밀한 외교력과 수십년에 걸친 집요한 노력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나 가능한 ‘事後(사후) 예측’, 즉 뒷궁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순전히 ‘구라’란 이야기다.
 
  내가 처음 유학 갔을 당시에는 베를린 장벽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당시에 독일이 통일될 것이라고 예견한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막무가내 식 민족주의자가 아니고서야 “독일 통일은 수십년 내에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독일 통일 연구를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이 투입되고, 셀 수 없이 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1989년 봄까지 독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통일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이 지난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은 맥없이 무너진다.
 
 
  코미디처럼 이뤄진 독일 통일
 
  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뤄졌다. 1989년 봄, 고르바초프가 東獨(동독) 공산당 창건 행사에 맞춰 방문하여 동독 서기장 호네커에게 “개혁·개방 원칙이 東歐(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적용된다”고 역설했다. 폼 나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 내용은 “소비에트 스스로도 먹고살기 힘드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먹고살라”는 이야기였다.
 
  고르바초프가 떠나자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바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했다. 여름 휴가철, 동독 사람들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선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탈출했다.
 
  동독 정부가 급히 이를 저지하자, 동독 주민들은 여행자유화, 언론자유 등을 외치며 매주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이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까지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시위가 지속되던 11월 9일 새벽, 동독 정부는 여행자유화에 대한 정책을 수정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전에 비해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특별한 내용이라고는 여권발급 기간을 단축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날 오전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샤보브스키는 그 내용을 결정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아, 자신이 무슨 내용을 발표하는지도 몰랐다.
 
  새로운 여행자유화 정책을 읽어 나가던 그에게 한 이탈리아 기자가 “그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가”라고 물었다. 새 정책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던 그는 멀뚱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대부분의 독일 기자들은 별 내용 없는 여행자유화 정책에 시큰둥해했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오버하여 본국으로 急電(급전)을 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미국 기자들도 덩달아 “내일부터 당장 東(동)베를린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밤 西獨(서독) TV는 外信(외신)을 짜깁기해서 “동독이 드디어 국경을 개방했다”는 애매한 보도를 했다.
 
  서독 뉴스를 시청한 동독 주민들은 대책 없이 베를린 장벽으로 갔다. 정말 당장에 서독 여행이 가능해졌는지를 알아보려는 호기심에서 나가본 것이다. 국경수비대가 저지했지만 동독 주민들은 “뉴스를 듣지도 못했냐”고 오히려 따졌다.
 
  황당해진 국경수비대는 밀려오는 주민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길을 터줬고, 일부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을 올라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흥분한 일부 주민들은 도끼·망치 등을 들고 나와 아예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반대편의 西(서)베를린의 젊은이들도 망치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원칙론자’와 ‘상황론자’
 
  독일 통일이라는 그 엄청난 사건은 실제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이뤄졌다. 정치가들이 그 과정에서 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독일의 미래예측 능력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그날 새벽, 정신 나간 동독 대변인이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이탈리아 기자가 제멋대로의 기사만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독일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뤄졌더라도 훨씬 이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세운 원칙과 예상을 뛰어넘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독일 정부가 독일 통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세워놓은 원칙과 치밀함은 독일 통일이라는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 앞에 지극히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실제 통일의 과정은 우연한 일련의 사건들과 그때마다의 상황론적 판단에 따라 일어났을 따름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란 것들은 그 본질에 있어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화하는 事後(사후) 예측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사후 예측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의미부여와 정당화 없이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처하는 자세로 원칙론보다는 상황론이 훨씬 더 유연하고 편안한 방식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칙론자는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해서 완벽하게 준비한 후에 비로소 행동에 옮긴다. 상황론자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면 곧바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쇼핑을 할 때도 그렇다. 인터넷으로 며칠에 걸쳐 검색하고, 시장에 나가 실물을 확인하고, 가격 대비까지 끝낸 이후에 행동하는 사람과, 자기가 원하는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 있다.
 
 
  ‘맥시마이저’와 ‘새티스파이저’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앞뒤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행동하는 원칙론자를 심리학에서는 ‘맥시마이저(maximizer)’라고 부른다. 무질서한 현상을 어떤 원칙에 따라 정리하여 무언가를 극대화하려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상황론자들은 ‘새티스파이저(satisfiser)’라고 부른다. 웬만하면 만족하려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둘을 비교해 보니 ‘새티스파이저’ 쪽이 주관적 행복감을 더 느끼며 편안한 삶을 산다고 보고됐다. 반대로 ‘맥시마이저’는 완벽주의, 자책감에 빠져 삶의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이 섞여 살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상황론자들이 일을 저지르며 치고 나가고, 원칙론자들은 쫓아다니며 정리하는 방식으로 함께 산다.
 
  ‘죽어도 아기와 아기 엄마를 비즈니스 클래스의 빈 좌석에 앉게 할 수 없다’는 독일 비행기의 잘생긴 팀장과 ‘뭐 그따위 원칙이 있느냐’고 따지던 내 아내는 한 시간에 가까운 토론 끝에 이렇게 합의했다. 아기와 아기 엄마가 승무원들을 위한 특별 좌석에 앉아 가기로.
 
  잘생긴 팀장의 원칙론을 훼손하지도 않고, 아기와 아기 엄마가 편하게 가야 한다는 아내의 상황론도 만족시키는 훌륭한 합의였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매번 이렇게 저지르고 보는 아내와 평생 살아야 하는 내 實存(실존)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