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우주연구원 위성실험동에서 과학자들이 위성을 조립하고 있다.> |
| |
대전으로 삶의 터를 옮긴 지 어느덧 11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다. 그동안 대덕연구단지의 명칭이 세 번 바뀌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대덕밸리로, 그리고 지금은 대덕연구개발특구로. 내용은? 이름이 바뀐 만큼 일부 변화도 있으나 크게 보아서는 아직이다. 대덕은 한마디로 말하면 ‘기름진 땅’이다. 하지만 ‘버려진’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대덕에는 정말 한 국가는 물론이고, 인류에 영향을 줄 자원들이 즐비하다. 가장 큰 자원은 역시 사람. 얼마 전 來韓(내한)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한국은 석유는 없어도 두뇌란 자원이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중 한국 최고의 두뇌는 대덕에 모여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만명에 가까운 理工系(이공계) 두뇌가 이곳에 있다. 그중 박사만 5000여 명. 이 가운데는 한국 박사도 많지만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외국인 박사도 상당수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장비들이 갖춰져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태양이라는 한국형 핵융합로 K-STAR. 원자력에 이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인류가 연구하는 핵융합 연구 세계 프로젝트인 ITER의 일환으로 현재 세계 최고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K-STAR를 연구하는 핵융합연구소 바로 옆에는 항공우주연구소가 있다. 여기에도 풍동 등 여러 장비가 있지만 우주 환경에서 인공위성 실험을 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최고 규모의 실험장치가 있다. 원자력연구원의 ‘하나로 원자로’도 세계적 수준이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초고전압 전자현미경,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수퍼컴 등 수많은 시설이 있다. 국가 R&D 자금의 50%는 이곳에서 소요되고 있다. 버려진 沃土 그럼에도 왜 버려졌다는 표현이 나올까? 지닌 가치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 받은 만큼의 산출을 내지 못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비효율이 나올까? 다소 엉뚱한 진단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서울내기로 서울 생활만 37년을 하고, 대전 생활을 11년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중앙 집중’이 큰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전에 처음 내려와 만난 사람 가운데 서울 출신으로 대전 생활이 10년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 도중 나온 말이 “본인은 서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지역에 산 지 10년이 다 되는데 여전히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서상 서울이란 곳의 귀속감을 가져야 주류에 속해 있다는 의식이 한편을 차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전이란 지역이 새로 이곳에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지역이 갖고 있는 서울 대비 열악한 환경 내지는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열등감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앙집중이 대덕이란 옥토가 버려진 것과는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가장 큰 것은 관심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도 대전은 이미 수도권이라고 말한다. 특히 KTX가 개통돼 한 시간 거리가 되면서 분당이나 일산보다 출근거리가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와 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한국인에게 물리적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좋아하고, 지방보다는 서울을 위로 친다. 그런 심리적 요인으로 수도권 이외는 모두 시골이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지식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서울 선호는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病的(병적)이다. 지방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덜떨어진 것 같고, 열악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 사람들은 인식하기 어렵겠지만 정보의 90% 이상이 서울에서 나오는 현실에서, 서울에 눈이 오면 전국의 출근길이 미끄러운 것이고, 서울 일부에 홍수가 나면 전국에 물이 넘친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 많은데, 지방에서는 아무리 큰 일이 벌어져도 딴 나라의 일이 된다. 지방에서는 야심 차게 기획한 일이라도 서울에서는 단신으로 취급되거나 무시된다. 대통령 행사가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 장래와 관련된 일들이 있음에도 지방에서 벌어지면 중앙 뉴스에서는 庶子(서자)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지방을 기피한다. 우수 인력이 대덕에 근무하는 것을 꺼리고, 대덕에서 일어난 신기술 등은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분당에 있는 모 연구소와 대전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합격한 사람은 두 말 않고 분당으로 갔다. 연구소의 업적이나 규모 등은 후 순위이고, 서울 근처 여부가 우선 순위인 셈이다. 이는 대덕에 있는 한국 최고의 과학인재 교육기관이라는 카이스트(KAIST)도 예외는 아니다. 졸업생들 대부분이 대덕에 잔류하는 비율은 한자릿수도 안 된다. 90% 이상의 인력이 수도권으로 가거나 외국으로 나간다. “대덕에서는 키워서 남 좋은 일만 한다”는 것도 볼멘소리만은 아니다. ‘주사 행정’ 최근 몇 명의 일본 사람이 대덕을 방문했다. 매년 3월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아 이웃나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국을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40년 가량을 지켜 본 知韓派(지한파)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가 11번째 방문인데, 그동안은 서울에서만 사람들을 만났고, 이번에 처음으로 지방에 왔다고 말한다. 한국 하면 서울만 알았는데, 지방에서 활기가 넘치는 것을 보며 새롭게 한국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번에 대덕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이곳을 취재한 바 있는 일본경제신문의 스즈오키 기자의 추천으로 오게 됐다고 말한다. 중앙집중 사고는 과학행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과거 연구원장의 고백으로 ‘주사 행정’이란 말이 나온 바 있다. 주사나 사무관이 연구원장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보고 받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서울 살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중앙 관료의 말에 좌지우지된 연구원장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실이다. 과학분야 행정관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현장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연구비란 절대 무기를 갖고 연구책임자들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속박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정이란 것이 늘 급박하게 움직이기 마련인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루 이틀 말미를 주고 기안서를 내게 하고, 보고서를 요구한다. 연구원들의 상당수가 서류작업으로 연구에 방해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다. 이런 이유로 <대덕넷>에서는 ‘과기부 해체해야 과학계가 산다?’는 기획기사를 쓴 적도 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 들어 부처 통폐합에 따라 과학기술부는 해체되고, 교육부로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가 되었다. 연구현장의 바람은 물리적 통폐합이 아니라 체질 변화였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행태는 그대로여서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는 게 연구현장의 반응이다. 연구원장들은 예산확보와 각종 위원회, 토론회, 세미나 등의 참석을 위해 일주일에 반 이상은 서울에 가야 한다. 올해만 해도 정부출연연구소 운영 방안과 관련된 모든 토론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대덕이 과학현장임에도 연구현장으로만 존재하지, 행정이나 로비의 현장은 서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계 내에서도 대덕은 ‘only one’이 아니라 ‘one of them’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학 진흥 목적의 과학문화 예산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소비된다. 세계적인 과학집적지인 대덕이 과학 홍보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과학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언론에서는 소외계층에 준하는 대우를 대덕은 받고 있다. 국민들은 자연 바쁜 일상사 가운데 미래는 한가로운 소리로 여기며 대덕의 존재 자체를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수 인재들은 대덕을 2, 3차 취업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수 인재와 최고의 장비가 있는 윤기 흐르는 땅임에도 버려진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덕 과학계도 책임 있어 대덕이 불모지대가 된 데는 중앙집중에만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대덕에 있는 과학자들의 소속기관인 출연연구소와 과학자 본인들의 책임이다. 대덕에는 2만명 가량의 과학자가 있고, 전국 정부출연연구기관 27개 가운데 17개가 대덕에 있다. 朴正熙(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 창원 기계, 울산 석유화학 및 자동차, 거제 조선, 포항 제철 등등의 산업입지를 결정하면서 대덕에 연구단지를 설정한 이유는 이곳을 한국의 두뇌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주소는 어떠한가? 목표 대비 50%에도 못 미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연구소를 모아놓은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이다. 과학자들의 소통은 교류나 공동연구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는 물론이고 현 정부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별로 없다. 과학자들 가운데는 20, 30년 이곳에 있었음에도 길 하나 건너 있는 연구소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적잖다. 연구소 내의 벽도 높다고 스스로 고백하기도 한다. 중견 과학자들의 모임인 대덕클럽이 있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전지회가 있으나 활발하지는 않다. 과학기술노조도 있고, 연구원들의 지원단체인 연구원발전협의회도 있으나 연구소 대표자들 간의 모임에 머물 뿐 일반연구원들의 활동에까지는 영향을 못 미치고 있다. 대덕특구 기관장들의 모임인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연기협)란 것도 있으나 활동이 미미하다. 연구소에서 신기술이 개발되고 발표되기도 하나 오직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 물리적 거리로는 한동네임에도 이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월례 신기술 발표회 같은 것도 없다. 발표회를 갖자고 해도 아이디어가 공개되고, 그로 인해 연구과제 수주에 있어 경쟁이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며 꺼린다. 한동네지만 공동체임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과학동네의 현주소다. 대덕의 큰 구성원 가운데 하나인 KAIST가 ‘과학발전’과 ‘국가발전’에는 큰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과학동네’ 발전에는 별다른 역할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KAIST로서는 대덕특구에 소재한 연구소들이 협력대상, 혹은 취업장소로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KAIST의 행동을 보면 지역경시를 넘어 무시의 상태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KAIST의 역대 총장을 비롯해 교수들의 대부분은 KAIST의 역할과 관련해 지역보다는 국가를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 명문대의 대부분은 지역과의 유대 속에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해왔다.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연구 환경을 만들고, 그곳에 졸업생들이 정착하며 지역이 발전되고, 그것이 대학의 발전으로 선순환되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학이다. 우수한 졸업생들이 동부로 가야 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터만 교수의 후원으로 휴렛과 팩커드란 졸업생이 사업을 시작한 데서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시작된다. 실리콘밸리가 발전하면서 스탠퍼드대학은 세계 명문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KAIST의 교과과정에는 지역을 둘러보고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KAIST 구내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학위를 따면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대덕을 떠나 서울로, 외국으로 나간다. 일부의 학생이 대덕의 연구소에 취업하지만 학교와의 교류에 대한 현황은 잘 안 알려지고 있다. 미개척분야에 도전하는 일류 인재가 많아야 대덕단지 내 벤처기업인들 가운데는 KAIST 출신이 꽤 많다. 하지만 KAIST가 이들 졸업생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어 협력방안을 이야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연구원들도 본인이 졸업한 연구실과의 교류는 있겠으나 기관 차원에서의 협력은 어느 정도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徐南杓(서남표) 총장이 들어와서도 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본인이 MIT의 사례를 들며, 90%의 학생이 외부에서 오지만 졸업 후 보스턴 잔류율이 45% 가량 된다고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KAIST 학생들의 대덕 잔류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보다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다. 이미 많은 졸업생들이 대기업으로, 대학으로 대우가 좋은 직장을 찾아갔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행복도를 높였고, 도전정신을 고취시켰는가에 대해 지금은 한번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KAIST가 과학기술계에서는 명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인의 시각에서도 명문인지는 의심스럽다. KAIST 졸업생이 2009년 2월 현재 3만5000명에 달한다. 30년 역사에 적잖은 숫자이고, 게다가 실력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학생들이다. 그럼에도 명문으로 인정하기에 석연찮은 것은 과학기술계의 리더는 있지만, 한국의 리더는 없기 때문이다.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그 많은 졸업생 가운데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장관은 세 손가락 정도 있는 듯하지만 선출직인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국가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한 자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KAIST에서 이런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괴짜’를 인정하는 풍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도제식 이공계 교육에서는 ‘일탈’이 어지간해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학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학생 전형에서는 성적과 무관하게 개성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추세지만 이것이 교육과정에도 이어져 ‘괴짜’들이 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안정된 조직에서 여유로운 조건을 취업의 우선 조건으로 삼는 2류 인재가 다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미개척 분야에서 도전하는 1류 인재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덕의 발전에도, 한국의 발전에도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대전시민들의 대덕특구 인식 대전시민들도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는 한계를 보여왔다. 중앙집중에 따른 결과 가운데 하나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주체적 역할보다는 행정의 대상이 되는데 익숙해져 왔다. 달리 말하면 지역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역할하기보다는 행정처분에 따라왔다는 것이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정말 자원이 많은 곳이다. 과학기술로 한국 최고의 입지를 갖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고, 계룡대와 자운대가 인접해 있는 국방도시이며, 정부대전청사는 물론이고 행정복합도시도 예정돼 있는 행정도시다. 여기에 국토의 중앙이란 이점으로 생긴 교통도시이고, 유성온천과 대청호, 백제 문화 유적지 등이 있는 관광도시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갖고도 소득수준은 높지 않다. 연구소와 공무원들이 많아 불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이들은 140만 시민 가운데 10%도 안 된다. 왜 이 많은 자원을 갖고도 대전은 세계적 도시는 물론 국내 최고 도시도 안 됐을까? 여기에도 상당부분은 중앙집중의 폐해에 책임이 있다. 과학기술이나 국방, 행정 등의 기능은 대전시민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왔다. 내가 아쉬워서 찾게 되면 내 것이지만, 나는 아쉬운 것이 없는데 좋다고 갖다 주면 쓸모 없는 장식물밖에 안 된다. 대전이 대덕에 관심 갖게 된 것은 길게 보아도 10년 정도다. 1998년 洪善基(홍선기) 대전시장이 처음으로 연구소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이후 廉弘喆(염홍철) 시장이 연구소와 벤처기업에 좀 더 관심을 가졌고, 특구법이 이 시기에 통과된다. 현재의 朴城孝(박성효) 시장은 대덕을 대전의 活路(활로)로 보고 본격적으로 施政(시정)의 중심에 놓았다. 그럼에도 대전시민들의 대덕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낮다. 택시 운전기사들 가운데는 대덕단지의 요소요소를 두루 아는 사람도 적잖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대덕에 오는 것을 골치 아파한다. 시민이나 시의원, 공무원도 대덕에 대한 호감보다는 그곳에 대한 투자를 豪奢(호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전시민들의 거부 반응 이면에는 이방인으로 대덕에 들어온 사람들의 지역 정착 노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10년을 살아도 지역사람이란 의식을 못 갖는 부분이 단적인 사례다. 연구소들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시민을 위한 과학강좌 같은 것을 열었음직도 한데, 그러지 못한 과학계의 책임도 크다. 동시에 외지인을 포용하려는 주민들의 손짓이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가방 끈 길고, 소득수준 높으며 잘난 체하는 사람들로 대덕사람들을 인지했다. 우리끼리 잘살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전입돼 왔다는 인식도 한때는 퍼졌고, 이것이 대전시민과 과학자란 두 집단의 화학적 결합을 방해했다. 우리보다는 ‘나’를 강조하는 과학계의 풍토와, 지역보다는 국가란 곳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KAIST, 공동체 의식 없는 과학자들은 쓸데없다고 배척한 대전시민. 이 3자의 愛憎(애증)이 똘똘한 아이를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로 만들었다면 과언일까? 버려진 땅에서 개척되는 처녀지로 그런 가운데 대덕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상징의 하나가 기관장 조찬 모임이다. 3월 두 번째 화요일인 지난 3월 10일 오전 7시 반. 대덕특구 지원본부 姜啓斗(강계두) 이사장을 비롯해 연합기술대학원 李世慶(이세경) 총장, 표준과학연구원 金明壽(김명수) 원장, ETRI 崔文基(최문기) 원장, 화학연구원 오헌승 원장, 나노팹센터 李熙哲(이희철) 소장, 핵융합연구소 李京洙(이경수) 소장, 연구개발인력연구원 文惟賢(문유현) 원장, 에이팩 宋奎燮(송규섭) 사장, 대전시 경제과학국 이택구 국장 등 지역의 기관장들이 이른 아침에 속속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논의가 시작된다. 이 자리에서는 대덕특구의 현안이 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한 기관 간 협조방안, 특구 내 공공미술 프로젝트,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를 주축으로 하고 産學(산학) 간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최고경영자 과정 운영, 특구 내 현안이 되고 있는 인턴들의 활용방안, 중앙과학관과 표준연 간의 뉴튼의 사과나무 4대손 기증, 지역 내 오폐수 저감을 위한 화학연의 역할, 나노팹과 기계연 간의 교류, 대전을 ETRI에서 개발한 와이브로(WiBRO) 테스트 베드로 하는 사업 등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대덕단지가 가동되고 그동안 모래알처럼 존재하던 기관들이 물과 시멘트가 섞여 콘크리트로 거듭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강계두 이사장은 “기관장들의 적극 참여로 대덕특구 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그동안 잠자고 있던 지역을 활성화시켜 대덕을 한국의 ‘상상력 천국’으로 만들고,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기적으로 대덕은 크게 세 번의 변신을 했다. 첫째는 대덕연구단지 시기. 1974년 개발이 시작되고, 1978년 표준과학연구원을 필두로 연구원 입주가 시작되며, 1992년 연구단지가 준공되고 그 다음해에 엑스포가 열린다. 말 그대로 연구소 중심 시대다. 둘째는 대덕밸리 시기. 19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연구원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이때를 전후해 연구원들의 창업이 봇물을 이룬다. 이른바 벤처시대다. 2000년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밸리 선포식이 거행된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한 지붕 두 가족 시대다. 출연연구소가 스핀 오프(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별도의 창업을 할 경우, 정부 보유의 기술을 사용한 데 따른 사용료를 면제하고 성공 후 신기술연구기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제도-편집자 주)된 벤처기업들을 포용하기보다는 소외시켰다. 큰 이유는 창업자들이 연구계의 관료적 풍토에 답답함을 느껴 뛰쳐나온 경우가 많은 만큼 한식구로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한동네에 있지만 딴 살림을 차린 듯 물과 기름의 시대였다. 그런 가운데 이 시기에 창업한 벤처기업들은 한국 사회에 ‘박사 사장’ 시대를 열었다. 그때까지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고, 사업이란 것 자체가 배운 사람들로서는 할 만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됐다. 자연 고학력자들은 창업보다는 대기업 등에 취업이 일반 유형이었는데, 박사들이 창업하며 전문성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셋째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시기다.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에 대한 특별법이 발효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는 한 지붕 한 가족 시대가 됐다. 연구소 기업 등이 장려되기도 했지만 정부출연연구소들과 대덕단지에 대해 “지금까지 뭐했느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연구소나 벤처기업 등 지역 내 두 주체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전시에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덕특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방의 활성화와 관련해 자치단체의 역할이 강조되며, 대덕특구를 대전시 발전의 중심 자원으로 인지하게 된 데 따른 변화다. 대덕 인프라를 활용 않는 것은 국가적 損失 대전시도 특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나온 기술들이 대전시를 저절로 홍보함은 물론 많은 국제행사가 대전에서 열리는 계기가 되고, 지역민들의 고용과 납세 증대에 특구가 기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성효 시장은 특히 본인이 경제과학국장이던 10여 년 전부터 대덕을 대전시를 먹여 살릴 곳으로 인식해 벤처기업들의 모임인 ‘대덕 21세기’ 결성을 주도하는 등 과학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시장으로 취임하고 특히 대덕특구 개발에 보조를 맞춰왔다. 업무의 상당 시간을 연구 및 기업 현장 방문에 할애하며 지원방안을 찾고 있고, 지역발전의 전진기지로 대덕을 인식하고 국책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盧武鉉(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단군이래 최대 과학관련 국책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한국 사람들의 삶의 질을 몇 단계 높임은 물론 차세대 한국을 먹여 살릴 의료기술의 확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연구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지역의 역량이다. 대덕은 생명공학연구소는 물론 KAIST의 의과학센터, 한의학연구원, 신약 개발 대기업으로 대표적인 LG화학 및 LG생명과학과 SK기술원, 아시아 최대의 바이오 기업 집적지라는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처럼 바이오 관련 연구 및 산업 기능 외에도 치료보다 센싱 기능이 차세대 바이오의 주력이라는 점에서 한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IT전문의 ETRI, 의료장치 개발이 가능한 기계연구원, 모든 신약의 출발점인 화학연구원 등이 한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의료는 종합학문이라는 점에서 대덕의 이러한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연합(AU)의 출발점 대덕은 한국의 미래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투자가 그랬고, 특히 과실을 생각함에 있어 미래지향적일 필요가 있다. 대덕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 시대인 1970년대에 시작됐다. 연구단지 개발 계획이 확정된 1973년은 건국 25주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집이 앞날을 내다보고 자녀교육에 올인하듯이 국가 차원에서 미래를 대비해 투자한 것이 대덕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부의 의사소통 등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경제에 미친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ETRI가 개발한 CDMA가 대표적 사례로 4조 투자가 100조 수입이란 경제적 효과를 낳았다. 신기술들은 지금도 계속 개발 중에 있다. 대한민국은 2009년 건국 61주년을 맞았다. 현재의 지도자들은 선배들이 건국 25주년이 되는 해에 미래를 보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열정을 바쳤듯이, 40년 뒤인 건국 100주년을 내다보며 비전을 세우고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다. 吳源哲(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2007년 대덕을 30년 만에 찾고 “꿈을 이뤘다”는 글을 방명록을 남겼다. 하드웨어적으로, 또 실적으로 그의 꿈은 분명 이뤄졌다. 후배들은 여기에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8년에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우뚝 서고, 인류에 기여하는 새로운 꿈을 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KAIST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란 새 화두를 제시했는데 이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대덕특구의 미래 역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특구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아시아 연합(AU) 결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EU 결성은 갈등보다는 평화가 더욱 지역의 번영을 보장하고 인간의 생활에도 기여하며 친환경적이라는 판단 아래 진행된 인간들의 위대한 결단이다. 아시아 지역에도 EU와 같은 지역연합이 필요하다. 한국·중국·일본이 서로의 反目(반목)을 접고 함께 손을 잡고 협력할 때 그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아시아인도 서양인들처럼 인간답게 문화를 향유하고 일상의 생활을 평화롭고 여유롭게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U의 결성 초기에 기여한 것 중의 하나가 공동의 미래를 개척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이었다. 스위스에 자리잡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그 사례다. 이념과 국가를 초월해 서로 합의할 수 있고,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과학이 지역연합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대덕특구 및 앞으로 진행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이러한 목표를 갖고 진행될 필요가 있다. 우수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할 때 지역의 평화는 앞당겨져 정착될 수 있다. 한국이 원천기술을 갖는 ‘창조적 혁신’ 필요 대덕은 동시에 한국판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캐치업 전략에 의해 외국에서 개발된 기술과 제품을 기반으로 경쟁자들보다 싸고 좋게 만들어 한국은 100달러 국가에서 1만 달러 국가로 급속히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2만 달러의 길목에서 10년이 넘게 머물면서 새로운 성장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에서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세계적 제품을 만드는 것을 ‘창조적 혁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창조적 혁신이란 한마디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이다. 구글의 서비스는 세상에 없던 것이다. 수요자들의 니즈를 앞서서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 자신의 힘 아니면 국제 협업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처럼 출연연 독자 플레이가 아니라 산학연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시스템 플레이가 되어야 한다. 또 과학기술만으로는 안되고 인문학적 기반이 접목돼야 한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화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창의성은 다양한 입력에서 시작된다. 교류가 중시되는 이유다. 대덕특구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인문학 및 예술과의 접목과 국제화를 통해 세계적 과학기술의 발신지로 거듭날 때 한국판 르네상스는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칸 영화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칸. 세계 유수의 인공위성 제작사인 탈레스아레나스社(사)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2008년 9월 이 회사가 동시 제작하고 있는 인공위성은 모두 11기. 한국의 통신 위성을 비롯해 독일·노르웨이·이탈리아·파키스탄 등지로부터 주문 받은 위성들이다. 이해에만 제작하는 위성 수는 20여 기. 1년 365일 24시간 풀가동해야 한다. 우리의 위성 제작이 1~2년에 1기이고, 그나마 카메라 등 핵심 부품은 외주란 점과는 대조적이다. 유럽에서는 최근 한국 자동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 기아의 마크를 달고 벤츠·아우디 등 유럽 차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차 한 대의 값은 대략 2000만원대.위성 1기의 제작비용은 성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잡아 200억원대. 자동차 1000대를 팔아야 살 수 있는 액수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다.
|
프랑스 칸느에 있는 탈레스 아레나스 스페이스社 의 위성 제작 모습. 위성 한 대 값은 작게 잡아도 소형차 1만대 가격. 고부가가치산업이다. | 대덕특구의 미션, ‘지식의 사업화’ 대덕특구는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공위성은 만든다. 칸에도 자동차 산업은 없다. 하지만 탈레스아레나스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전망은 더욱 밝다. 우주시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업 기반이 취약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증거다. 대덕특구에 주어진 미션은 ‘지식의 사업화’이고, 비전은 이를 통해 5만 달러 소득을 올리자는 것이다. 대덕이 한국경제 제3의 성장엔진이 되고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가 되며, 40년 뒤인 건국 100주년에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大(대)발명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인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또한 우수한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연합(AU)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대덕은 상상력의 천국이 되고, 한국은 물론 아시아 첨단산업의 발전소가 돼 한국인들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아시아 평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고, 한국이 그동안 인류의 지혜로부터 받아만 온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류에 기여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대덕이란 옥토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국민들의 관심이다. 아무쪼록 국민들이 대덕에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실 것을 대덕인들은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 오늘 이 순간도 치열하게 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