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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方化 시대, 대전의 울림

醉月 2009. 4. 18. 12:11

金容三 편집장/부장  (dragon03@chosun.com)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도가 본격화된 것은 1995년이었다. 이 해에 처음으로 民選(민선) 기초·광역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그동안 중앙정부가 임명해 오던 군수, 시장, 구청장, 도지사를 지역 주민이 투표로 선출하고 지방의회도 구성하게 된다.
 
  이제 지방자치 노하우가 15년을 아우르면서 지방이 꿈틀대고 있다. 우리 유권자들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특이한 투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대학교수나 판검사, 정치꾼들을 주로 택하는 반면 단체장들은 행정 현장에서 계단과 절차를 밟아 커리어를 쌓아온 정통 행정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방은 중앙에 예속된 하위 개념이 아니라 지역의 경쟁력을 극대화하여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의 경쟁 상대는 경기도나 제주도가 아니라 도쿄나 베이징, 뉴욕이고, 부산의 경쟁 상대는 대전이나 강원도가 아니라 상하이와 싱가포르다. 이름하여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가 한몸이 된 世方化(세방화·Glocalization)의 시대가 본격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月刊朝鮮(월간조선)이 창간 29주년 기념 별책부록의 주제로 ‘대전’을 선정한 것은 대전이야말로 ‘세방화’의 본질에 가장 적나라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국민들의 피와 땀의 결집으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이뤄냈다.
 
  우리 시대에 이뤄야 할 절박한 과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인데, 그 도약의 단서를 쥐고 있는 곳이 대전이요, 대전이 품고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다.
 
  6·25 때 도심 대부분이 전란으로 파괴돼 판잣집이 즐비했고, 북에서 흘러온 피란민들이 목척교를 중심으로 한 시장에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하던 곳이 대전이다. 연초제조창과 조폐공사가 有二(유이)한 산업시설이었던 산업 不在(부재), 공장 부재의 도시. 오로지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매개로 한 도매상권에서 지역 살림의 부가가치가 생성되던 척박한 땅이었다.
 
 
  글로벌 혁신 세계 2위
 
  대전에 약진의 용광로가 펄펄 끓기 시작한 기폭제는 1970년대 중반 대덕연구단지의 출범이었다. 아울러 무속이 판치던 계룡산 자락에 3군 본부가 들어서고, 옛 공군기교단과 활주로 자리에 신시가지와 정부대전청사가 낙점되면서 대전의 위상이 미래를 향해 뛰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맞게 된다.
 
  아직은 흡족함보다는 미흡함을 지적하는 관전평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과학 한국’의 의지와 열정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에 결정적인 계기였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미국의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110개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국내 기업이 활발한 혁신활동으로 신기술 개발과 생산성 증대 등의 성과를 낸 덕이다.
 
  이런 혁신의 기운, 신기술 개발의 진앙지는 대덕특구다. 대덕특구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국책연구기관과 민간기업연구소가 집적되어 있는 국가 R&D 허브요, 대한민국의 ‘상상력 天國(천국)’인 동시에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다. 대덕에서 자동차는 만들지 못하지만 인공위성은 만들 수 있다. 석유는 생산하지 못하지만 인공태양을 통한 핵융합 발전은 몇 년 뒤면 가능하다.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시대인 1970년대에 훗날을 내다보고 거국적인 투자를 감행하여 소득 2만 달러라는 성과를 내놓은 기폭제가 된 곳이 대덕이다. 대덕의 바이오벤처기업 연구실에서는 지금도 생면부지의 신약 물질이 창조되고 있고, 고질병 치료제를 비롯하여 IT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대덕의 어느 연구실에서 탄생되리란 것이 중론이다.
 
  이런 의지와 열정이 거대한 다발로 엮여 미래를 선도하는 융·복합 신기술로 승화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선배세대가 물려준 대덕특구보다 더 가치 높은 대덕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이라는 도시공간이 창조하는 가치는 크고 넓고 깊다

 

대한민국 첨단과학의 희망
 지식강국의 英才로 훌륭하게 키워야 할 때
 
李祥羲 前 과학기술처 장관
⊙ 1938년 부산 출생.
⊙ 서울대 약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약학박사.
⊙ 제11·12·15·16대 국회의원, 과학기술처 장관 등 역임.
⊙ <꼴찌 과학 대통령> <남다른 발상이 성공을 부른다> <10년이 이룬 100년의 꿈>
    <과학원 괴짜들> <어머니를 위한 영재뇌 자연발육법> <이제 미래를 이야기합시다>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두뇌가 희망이다> 등.
⊙ 1990년 청조근정훈장, 2003년 우수국감위원상, 2004년 장영실과학문화상 대상 등.
著者無 저자없음
<불이 꺼지지 않는 KAIST의 응용과학棟 건물. 과학기술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대한민국의 新(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대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좋은 연구,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인데, 어느 국가기관도 관심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는 어느 대덕 벤처기업인의 하소연이다. 대덕연구단지의 生母(생모)인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면서, 과학기술의 미래문제는 교육이라는 현실문제에 밀려났다. 생모가 사라졌으니 그 자식 격인 대덕연구단지도 출생 당시의 취지와 의지가 퇴색되면서, 어쩔 수 없이 미약한 존재가 된 셈이다.
 
  이제 과학기술의 상징인 대덕연구단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과거의 출생환경과 미래의 가능성을 재조명하는 것 자체가 경제위기 극복의 한 가지 처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면 한다.
 
 
  대덕연구단지 재조명해야
 
  세계 금융은 지식기반 금융체제로, 세계 경제전쟁은 영토전쟁에서 특허전쟁으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 우리 정부조직은 이 같은 세계적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면 저개발 빈곤국가에서, 우리의 유일한 자원은 우리 국민의 뛰어난 머리라는 인식하에 과학기술처를 만들고, 기술입국의 기치하에 수출 10위국의 위상까지 발전하게 됐다.
 
  또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 두뇌자원의 전문적 활용을 위해 정보통신부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IT 강국에 진입하게 됐다. 오늘날 더욱 가열되는 지식기반사회의 특허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 내의 두뇌부서는 더욱 강화하고 몸통부서는 슬림화해 전체적으로 지능형 정부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가지도부는 오히려 미래지향형 두뇌부서를 현재지향형 몸통부서에 통합하는 시대역행적 愚(우)를 범하게 됐다. 우리 기업조차 오늘의 경제위기 속에서 연구조직과 예산은 축소하고, 우수 연구인력을 해외로 빠져나가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경제에 관한 문제의 기본은 지식기반 경제의 국가경쟁력, 좀 더 좁게 표현하면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덕연구단지의 재조명이 절실한 話頭(화두)가 되어야 한다.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 대통령’을 선출했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점이 우리 경제 대통령의 강점이라고 판단했을까?
 
  급변하는 실물경제의 국제경쟁 현장에서 갈고 닦은 노하우일 것이다. 그 핵심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 현장에 대한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확고한 행동력이다. 이제 대통령으로서의 현장경험 1년을 바탕으로 인수위원회의 잘못된 결정, 일부 스태프의 잘못된 조언을 급변하는 세계경제 현장의 관점에서 확고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의 자질을,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능형 정부조직 개편, 지식기반 금융체제 확립, 지식기반사회 구축, 이 3대 개혁을 위한 경제 대통령의 진면목을 우리 국민은 확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덕연구단지의 운명도 무엇보다 경제위기 극복 차원에서 경제 대통령의 판단과 결단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대한민국주식회사의 중앙연구소, 대덕연구단지
 
  이제 좀 더 소박한 관점에서,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필자의 과거를 예시했으면 한다. 당시 매출액 최상위 그룹의 회사에서 15년간 연구개발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회사에 중앙연구소라는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은 신기술·신제품 도입을 위해 많은 선진국들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중앙연구소 설치 제안에 대해 이사회는 “당장 쓸 돈도 넉넉지 않은데 현실적으로 아무런 보장도 없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중앙연구소를 왜 만들어야 하느냐”면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세 번째의 건의가 외면되고 네 번째 이사회에 제출을 했더니 “그렇게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우리 이사들이 우려하는 그런 부분은 현실경영 면에서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조금 더 미래지향적 창의적 경영 면에서 생각한다면, 중앙연구소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인즉, 우선 중앙연구소라는 조직 자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기술·신제품 도입과정에서 외국 기업이 턱없는 덤터기를 씌우는 것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 기업과의 파트너로서의 신뢰성을 줄 수가 있고, 국내적으로는 소비자에 대한 제품의 신뢰성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는 중앙연구소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그 덕을 엄청나게 많이 보고 있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 부분은 오늘의 대한민국주식회사는 물론 대덕연구단지에도 해당되는 부분이 아닐까.
 
  본인이 정치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政治(정치)라는 한자의 의미가, 政(정)은 머릿속의 지혜를 그 시대에 올바르게 쓰라는 뜻이고, 治(치)는 개울을 파서 물의 흐름이 넘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바로 그런 점에서 우수인력과 돈을 물줄기처럼, 농업사회에서는 농업이라는 방향으로, 산업사회는 산업이라는 방향으로, 오늘의 지식기반사회는 지식창조업이라는 방향으로, 즉 그 시대의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해양개발기본법,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유전공학육성법을 의원 입법해 해양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대덕연구단지는 본인의 이 같은 정치철학의 꿈이자 현장이기도 하다.
 
 
  기술인력 공급의 진원지
 
  이제 대덕연구단지를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간추려 보자. 과거에는 기술입국의 요람이었고, IT강국의 산실이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인력과 기술을 우리 사회에 공급했던 진원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덕연구단지의 구성원과 조직은 활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지식경제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결국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는 집안의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이 어린아이는 가정에서는 부모의 몫이고, 큰 가정인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를 기술입국의 영재로 출산했다면, 이제는 지식강국의 영재로 훌륭하게 육성하는 것이 우리 경제 대통령의 몫이 아닐까.
 
  이 같은 시점에 月刊朝鮮이 대덕연구단지를 재조명하는 것은 잊혀진 부분을 대통령께 재조명하도록 건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대전은 어떤 도시인가
 더불어 사는 心性 가진 선비의 고장
 
韓基範 한남大 철학과 교수
⊙ 1950년 경남 남해 출생.
⊙ 충남大 사학과 졸업, 同 대학원 국사학 석·박사.
⊙ 現 한남大 중앙박물관 관장.
⊙ 저서: <한국사 신강(공저)>.
著者無 저자없음
<설을 앞두고 대전 중구 자원봉사자들이 이웃에게 나눠주기 위해 썰어 놓은 가래떡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올해는 대전시 창립 60주년, 대전광역시 승격 20주년이 되는 해다. 대전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행정구역의 역사로 보면 대전시가 올해 回甲(회갑)을 맞는 셈이고, 대전시의 외형이 10배 이상으로 커진 광역시의 역사(직할시 포함)로 보면 올해가 20주년 되는 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李重煥(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대전의 지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주)고을의 동쪽에서 금강 남쪽 언덕을 따라가다가, 계룡산 뒤가 되는 곳에서 큰 고개를 넘으면 儒城(유성)의 큰 평야가 나타나니 곧 계룡산의 동북방이다. 계룡산 남쪽 마을은 조선 건국 초기에 도읍으로 정하려 하였던 곳이나 실행되지 않았다.
 
  이 골짜기의 물이 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진산(유등천 상류)과 옥계(대전천 상류)의 물과 만나고, 북쪽으로 흘러 금강에 들어가니, 이 냇물의 이름이 甲川(갑천)이다. 갑천 동편이 곧 懷德縣(회덕현)이고 서쪽이 儒城村(유성촌)과 鎭岑縣(진잠현)이다. 동서 양편의 산이 남쪽으로 들판을 감싸고 북쪽에 이르러서는 서로 교차되면서 사방을 고리처럼 둘러막았다. 들 가운데는 평평한 언덕이 굽이굽이 뻗었고, 산기슭이 깨끗하게 빼어났다.>
 
  이중환은 널따란 유성평야와 대전의 세 하천(대전천·유등천·갑천), 그리고 여기에 형성된 조선시대의 대전지역(회덕·유성·진잠), 盆地(분지)로서의 대전 경관을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듯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중환이 바라본 조선시대의 대전지역은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갖고 있는 고을이었다. 이것은 그가 “구봉산과 보문산은 남쪽에 우뚝 솟아 청명한 기상이 한양의 東郊(동교: 동대문 밖)보다 나은 듯하다”라고 한 것이나, “갑천은 들이 넓고 사방의 산이 맑고 수려하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공주는 경계가 매우 넓어서 금강의 남쪽과 북쪽에 걸쳐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성이 가장 살 만한 곳”이라며 대전지역이 사람살기에 가장 적합한 고장임을 강조한다.
 
 
  대전은 ‘신흥 근대도시’인가
 
  대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담론을 할 때 흔히 “대전은 신흥 근대도시여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것은 ‘대전은 역사가 짧고 문화전통이 빈약하다’는 선입견이 배어 있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전은 결코 역사가 짧거나 문화전통이 빈약한 고장이 아니다. 오히려 대전은 유구한 역사와 출중한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고장, 문화의 고장이다.
 
  세간에서 대전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과소평가하는 말들이 나오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생각이 작용하는 것 같다. 하나는 대전은 舊韓末(구한말)과 국권 상실기에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새롭게 개발된 ‘신흥 근대도시’라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 이전에는 ‘대전’이라는 지역명, 또는 행정구역명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사실상 대전은 1905년의 경부철도 부설, 그리고 1914년의 호남철도 부설과 함께 그 중간 경유지 또는 분기점으로서 전국적인 교통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다.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됨에 따라 신흥 행정도시로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전이 신흥 근대도시적 성향을 지니고 있고, 근대 이전에는 ‘대전’이라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이 없었다 해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대전은 역사가 짧고 문화전통이 빈약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영역에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이후 몇 개 이름의 행정구역을 형성하면서 연면히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시대에 지금의 대전지역에는 세 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懷德縣(회덕현)과 鎭岑縣(진잠현)과 公州儒城(공주유성)이 그것이다.
 
  회덕현은 대전천과 갑천의 동쪽지역이고, 진잠현은 서부 갑천의 서쪽지역이며, 공주 유성은 공주목의 직할령으로서 지금의 유성 일원과 산내까지의 유등천 양안지역(‘공주 한밭’이라고도 칭해짐)을 아우르는 명칭이었다.
 
  회덕과 진잠은 고려 초부터 사용하던 이름이고, 유성은 통일신라로부터의 이름이다. 물론 이 지역들은 그 이전 삼국시대에도 각기 다른 이름들로 존재해 왔었다. 이 세 지역의 역사가 바로 지금 대전의 뿌리이고 대전의 역사인 것이다.
 

100년 만에 한국철도의 심장부로 거듭나는 대전역.

 
  대전이라는 이름의 역사
 
  대전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초기의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1486)이다. 이 책의 충청도 공주목 ‘산천조’를 보면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大田川(대전천)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또 대전이라는 지명은 閔鎭綱(민진강)의 <楚山日記(초산일기)>(1689)에서도 확인된다. <초산일기>는 그 유해가 정읍으로부터 葬地(장지)인 수원까지 운구되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수록한 장례기록이다.
 
  이때 송시열의 유해를 운구해 갈 상여꾼은 각 동네의 社倉契(사창계)에서 조달했는데, 그 고을의 이름들 중에는 주산·마산·배달촌(白達村: 지금의 송촌의 옛 이름) 등의 이름과 함께 ‘大田(대전)’이라는 동네 이름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대전이라는 이름은 전통시장인 ‘5일장’의 이름으로도 쓰였다. 徐有(서유구)의 <임원경제지>(1827년)나 <호서읍지> 등에 수록된 ‘大田場(대전장)’이 그것이다. 이 기사에 의하면 당시의 대전장은 2·7일장이었다. 현재 대전에는 대전장이 없어졌지만, 유성장(4·9일장)과 신탄진장(3·8일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당시 대전장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후 대전이 행정구역명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95년 지방관제의 개정 때부터다. 이때 대전은 회덕군 산내면 大田里(대전리)로 나타난다. 이후 대전은 대전군 대전면(1914)→대전읍(1931) →대전부(1935)를 거쳐 대전시(1949) →대전직할시(1989) →대전광역시(1995)로 발전해 왔다. 올해가 바로 대전시 역사의 60주년이 되는 해다.
 
  대전이라는 지명의 역사는 이런 문헌적 기록보다 훨씬 더 소급될 수 있는 단서를 가지고 있다. 대전이라는 한자식 표현의 어원인 ‘한밭’이라는 한글식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大邱(대구)가 달구벌에서, 扶餘(부여)가 소부리에서 淵源(연원)된 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시대에는 대전의 일부가 공주 직할령이었고, 그것을 ‘공주 한밭’ 또는 ‘공주 유성’이라고 불렀다. 비록 공주목의 직할지였지만, 대전의 역사에서 보면 그것은 ‘유성’이고 ‘한밭’이었던 것이다.
 
  한밭이라는 명칭의 역사는 실로 유구하고 그 뿌리가 깊어 대전이라는 이름이 점점 더 큰 독자적 행정구역명으로 성장해 갔음에도 본래의 이름으로, 또는 애칭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 왔다. 오늘날 대전인들은 ‘한밭’이라는 이름을 여러 분야에서 널리 애용하고 있다. 예컨대 한밭중학교, 한밭고등학교, 한밭대학교, 한밭인물지 등과 같이 校名(교명)이나 공공도서의 이름으로 쓰기도 하고 한밭대교, 한밭운동장, 한밭도서관 등과 같이 공공시설의 이름으로도 널리 애용하고 있다. 한밭은 대전의 옛 이름이면서, 동시에 현대인들도 즐겨 애용하는 대전의 대명사인 것이다.
 
 
  선비의 고장 대전
 
  유림사회에서 대전은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 이 고장에서 朴彭年(박팽년), 宋時烈(송시열), 宋浚吉(송준길)을 비롯한 출중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고, 그 영향이 문중과 학맥을 통해 연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는 雙淸(쌍청·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정신으로 청정하게 살다 간 雙淸堂 宋愉(쌍청당 송유)의 隱德不仕(은덕불사)의 삶이 있었다. 오늘날 충청인의 기질을 말할 때 흔히 淸風明月(청풍명월)이라 하는데, 박팽년이 쓴 記文(기문)에 의하면 회덕의 송유의 쌍청정신은 청풍명월의 한 원류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대전의 역사에서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정신을 보인 대표적인 사례로는 회덕 황씨家(가)의 ‘미륵원 봉사’와 은진 송씨가의 ‘기민구제’를 들 수 있다.
 
  彌勒院(미륵원)은 지금의 동구 마산동에 있었던 私設(사설) 여관이다. 이미 폐허가 된 것을 고려말의 인물 황연기(?~1352)가 다시 복구했다. 황연기는 회덕 황씨의 시조인 懷川君(회천군) 황윤보의 아들이다. 그는 이곳에 미륵원을 중건해 겨울마다 삼남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해 20년간을 봉사했고, 후손에게 사업을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이 사업은 그의 아들 黃粹(황수)의 4형제와 손자 黃自厚(황자후)에 이르기까지 무려 3대 100여 년간이나 꾸준히 계속됐다.
 
  이러한 전통시대 대전의 봉사정신은 현대의 대전사회에서도 지자체의 활동을 통해 그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전광역시가 전개해 온 ‘복지 만두레’ 사업이나 ‘무지개 프로젝트’ 사업이 곧 그것이다.
 
  다각적인 협동체계를 구축해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면서 주민의 힘으로 도우며 살게 하자는 것이 ‘복지 만두레’라고 한다면, 어려운 동네의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주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해 동네 차원에서 빈곤을 극복하고 재생의 의지를 키워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자는 운동이 ‘무지개 프로젝트’ 사업이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현재 대전에는 각종 사회사업 자원봉사자가 12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대전광역시 인구 150만명의 8%에 달하는 숫자다. 남에게 베풀고자 하고, 또 남과 더불어 살고자 한 대전의 옛 정신을 잇는 사례일 것이다.
 
 
  과학도시의 盟主 도시
 
1973년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

  대덕연구단지 조성계획이 이루어진 것은 1973년, 표준과학연구소를 필두로 연구소의 단지 입주가 시작된 것은 1978년부터였다. 대덕연구단지가 대전시에 편입된 것은 1983년의 일이다. 이후 1992년에 연구단지 조성 준공식이 이루어졌고, 이듬해에 세계과학박람회인 ‘93 대전엑스포’가 개최돼 대전이 과학도시로서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0년에는 ‘대덕밸리 선포식’이 있었다. 대덕밸리란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제3, 4산업단지, 대덕테크노밸리, 자운대와 계룡대, 유성관광특구, 둔산행정타운, 원도심의 산업을 잇는 성장축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대덕밸리는 보다 넓은 의미로 벤처기업의 요람인 대전을 중심으로 천안·아산 테크노파크, 청주·오창의 과학산업단지, 전주·익산의 신벤처육성지구를 포괄하는 중부권 삼각지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덕연구단지에는 첨단 연구소와 벤처기업들이 밀집돼 있고, 대덕과학산업단지나 대전 3, 4산업단지 등 산업기반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특히 2004년에는 대덕연구단지 일원이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지정돼 연구기능과 생산기능이 결합된 세계적 과학도시로 성장할 제도적 준비를 갖추게 됐다.
 
  앞으로 대덕개발특구 사업이 완성되면 대덕연구단지와 대덕밸리는 미래 한국을 개척해 갈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며, 대전시는 활력이 넘치고 경쟁력 있는 경제과학도시로서 한국경제 성장을 이끄는 새로운 중심축이 될 것이다.
 
  대전은 1993년의 세계과학박람회 이후 그 여세를 몰아 세계과학도시연합(WAT)을 결성하고 그 盟主(맹주) 도시가 됐다. 2009년은 그 10주년을 맞는 해다. 또한 대전은 올 10월에 대덕연구단지 일원에서 국제우주대회(IAC)를 개최한다. 대전이 첨단 과학도시임을 세계에 알리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통계로 보는 대전의 힘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은 도시
 
張時城 대전시 정책기획관
著者無 저자없음
<엑스포다리의 야경.>

2008년 말 현재 대전광역시의 인구는 149만5048명(전국 인구의 3.1%)으로 국내 5대 도시 규모다. 광주광역시보다 7만5000여 명이 많다. 市(시)로 출범한 1949년 12만7000명에서 10.7배 증가했다.
 
  대전시는 중부권 최대도시로 발전을 거듭,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1989년 광역시가 됐다. 대전은 시 설립 후 도매상권 위주의 도시에서 계룡대, 자운대, 정부대전청사 등 군사·행정도시로 성장했고,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연구소·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전시의 면적은 539.84㎢로 남한 전체 면적의 0.5%를 차지한다. 면적으로 따지면 6대 광역시 가운데 다섯 번째 규모로, 광주시보다 38㎢ 정도 넓다. 이를 자산으로 환산하면 67조원으로 우리나라 전체(3325조원)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6대 광역시 중에는 광주(49조원), 울산(47조원)보다 높은 4위 수준이다.
 
  대전의 인구가 전국의 3.1% 수준인 데 반해 경제규모는 2.3%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역내총생산액(GRDP) 20조5852억원(2007년 기준)은 전국 16개 시·도 지자체 중 14위, 6대 광역시 중에서는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국 최하위 수준인 광주보다 5000억원 많다.
 
  대전의 지역내총생산액은 1968년 214억원에서 광역시로 승격한 1989년 3조7419억원에 이어, 지난해 2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산업단지 입주업체는 2005년 말 555개에서 지난해 말 714개로 크게 늘었다. 대전의 5개 산업단지 생산액은 5조2269억원에서 6조9618억원으로 증가했다.
 


 
  연초류 전체 수출물량의 14.7% 차지
 
  산업별로 보면 서비스업이 13조5247억원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서비스업 분야만 놓고 보면 전국 9위 규모다. 대전의 지역내총생산액 규모가 전국적으로 2.3%인 데 비해 서비스업은 2.9%인 것을 볼 때 서비스업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대전의 산업구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2.1%에 달한다.
 
  이어 제조업이 3조2888억원으로 전국 14위, 건설업이 1조5204억원으로 전국 15위 수준이다. 민선 4기 출범 이후 기업유치에 속도가 붙으면서 대전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 대비 0.6%가 증가한 것이 눈에 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액은 전국 15위(1384만6800원)로 광주(1389만9300원)보다는 약간 적고, 대구(1195만3600원)보다는 다소 많다.
 
  대전의 경제활동인구는 1968년 10만명이던 것이 1989년 37만3000명, 지난해에는 72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대전의 수출규모는 29억8951만 달러로 전국 15위 수준이다. 하지만 전국 평균(13.6%)보다 높은 15.8%의 수출증가율을 보였다. 수입량은 전년 대비 2.1% 감소한 27억5430만 달러로 전국 14위를 기록, 2억3520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을 통해 국가경제 기여도는 전국 10위 수준이다.
 
  수출품목으로는 KT&G로 상징되는 연초류가 4억3919만 달러로 전체 수출물량의 14.7%를 차지했으며, 축전지 3억4419만 달러(11.5%), 인쇄용지 3억4165만 달러(11.4%), 인쇄회로 2억1486만 달러(7.2%), 냉방기 2억1425만 달러(7.2%) 순이었다.
 
  이들 5대 품목이 차지하는 수출비중이 전체 수출물량의 절반을 넘는 52%나 됐다. 이 밖에 개별소자 반도체, 화장지, 기타 정밀화학원료, 안경렌즈, VCR 등 10대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6%였다.
 
  수출대상 국가는 중국(16.2%), 일본(8.6%) 등 아시아 국가가 전체 수출의 4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17.8%), 중동(14.4%), 북미(12.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전은 제조업이 취약해 수출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나 민선 4기 들어 新(신)재생에너지, 첨단국방, 바이오 기업 등이 속속 대덕연구개발특구로 몰려오면서 수출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개발역량과 시민 교육수준 높아
 
  대전시의 예산 현황은 3조5311억원(2008년 9월 30일 기준)으로 시세가 엇비슷한 광주(3조4180억원)보다 약간 많은 편이다.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보여 주는 재정자립도는 63.7%로 인천(71.2%)을 뺀 지방 광역시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방세 규모는 1조563억원으로, 시민 1인당 69만2763원(2007년도 결산기준)을 부담하는 셈이다. 이는 서울(116만6111원)보다 47만3348원, 울산보다 25만2791원, 인천보다 13만5593원의 세금을 각각 덜 내는 것이다.
 
  대전은 타 지자체보다 제조업 기반은 취약하지만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R&D) 역량과 시민의 교육수준 등을 볼 때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과 미국 벅넬(Bucknell)대학교 등이 공동 작성한 ‘2008년 세계 도시경쟁력 보고서’가 지난해 7월 중국 양저우(揚州)에서 열린 제5회 도시경쟁력 국제 포럼에서 공개됐다.
 
  이날 포럼에서 대전은 세계 주요 선진국 도시보다는 저평가됐지만, 국내 도시 중에는 서울(12위), 울산(162위)에 이어 203위를 기록했다. 국내 대도시 중에는 인천(221위), 부산(242위), 대구(287위), 광주(295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지역국내총생산(GDP), 취업률, 노동생산율 등 ‘현시성 지표’와 평균수명·소득수준·교육보급률 등 ‘인재 경쟁력’, 다국적기업 사업본부 수 등 ‘글로벌 기업경쟁력’, 기후환경·도시민 만족도·도시생활비용 등 ‘생활환경 경쟁력’ 등이 평가지표로 활용됐다.
 
  지난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세계 30대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경쟁력을 평가한 결과에서도 서울(19위)에 이어 국내에서는 가장 높은 25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은 도시라는 지표가 있다. 지난 2006년 산업정책연구원이 국내 75개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대전이 서울(2위)을 제치고 미래경쟁력 최고도시라는 평가를 얻었다.
 
  미래경쟁력은 ▲정치·행정 관료의 리더십·추진력, 지역주민과 기업의 발전의지 등 ‘주체’ 부문 ▲기업경영기반, 도시민 기초생활여건, 교육·문화시설 등 ‘환경’ 부문 ▲부존자원, 재정·인적자원 등 ‘자원’ 부문 ▲도시 발전전략과 도시를 둘러싼 환경 등 ‘메커니즘’ 부문 등 4개 분야에 걸쳐 85개 지표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평가 결과, 대전시는 796.92점을 얻어 서울(748.94점), 울산(727.33점) 등을 가뿐히 제쳤다. 광역시 중 가장 낮은 대구(656.54점)보다 무려 140.38점이나 높았다. 대전은 주체 부문과 주체·환경·자원을 효율적으로 결합해 경쟁력 강화전략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가장 미래경쟁력이 높은 도시로 선정됐다.
 

 
  녹색뉴딜 산업단지 조성
 
  대전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7년 기준으로 대전의 대학·출연연·기업의 연구비 규모는 단연 전국 최고수준이다.
 
  대전이 투자하는 연구개발비는 2조2452억원으로 서울(1조7057억원), 경기(1조1096억원), 인천(3151억원) 등 수도권을 압도한다. 수도권과 대전을 뺀 지방 전체의 연구비를 합한 것(2조1668억원)보다 많다.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ST(우주항공기술), ET(환경·에너지기술), CT(문화기술) 등을 미래유망 신기술, 즉 6T(6Technology)라고 한다. 이 6T에 대한 연구비도 대전은 1조4827억원으로 서울(1조1637억원), 경기(8432억원), 인천(1670억원) 등 수도권보다 많고, 12개 지자체(1조4587억원)를 합한 것보다 많다.
 
  대전이 우리나라의 미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연구성과물을 비즈니스로 연계해 대한민국의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하려는 대전시의 노력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 3월 대덕특구 1단계 산업용지(50만8000㎡)를 공급한 데 이어 올 연말 대덕특구 2단계 산업용지(178만5000㎡)와 신탄진 무공해산업단지(25만㎡) 분양에 나선다.
 
  또 내년까지 대덕특구에 포함된 금강변 310만㎡의 개발제한구역과 자연녹지지역에 ‘녹색뉴딜 산업단지’를 조성, 특구의 첨단기술과 국가 핵심산업 기술의 산업화에 나설 방침이다.
 
  이와 함께 선도산업 육성 등 35개 시책을 추진, 대덕특구를 과학기술비즈니스 메카로 키워나가는 한편, 투자펀드 800억원을 조성해 R&D(연구개발) 사업화 지원에 나서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나노융합기술센터가 본격 가동돼 관련 기업 100개를 유치하고, 오는 2012년까지 신재생에너지 R&BD허브센터를 구축해 녹색산업의 선도도시로 부상하려는 구상도 본격화됐다.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첨단의료, 나노, 신재생에너지, 문화산업 등의 허브를 구축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
대전과 자매결연 도시 호주 브리즈번 市長
 대덕특구는 대전을 세계지도에 우뚝 서게 만들어
 
캠벨 뉴먼 브리즈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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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도시들은 경제와 생태학적 발전을 위한 지속적 비전을 공유한다. 대전의 자매도시인 호주 브리즈번은 대전의 지속적인 경제적, 생태학적 발전을 위한 굳건한 의지를 높이 평가해 왔다. 특히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두 도시가 더욱 번영하고 지속적인 미래를 위한 비전을 공유한 좋은 사례다.
 
  브리즈번과 대전은 앞으로 다가올 기회들에 큰 자극을 받는 도시들이지만, 자신들의 낙관주의와 미래지향적인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덕특구는 대덕사이언스타운과 함께 혁신에 대한 확실한 비전, 첨단기술 및 환경을 통해 대전을 세계지도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이미 첨단산업 부문에서 세계의 유수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대덕특구의 감탄할 만한 점은 사업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산업·환경·오락·주거 공간들이 번성하고 自足(자족)하는 지역으로 짜여 있다는 데 있다. 또 최근 대전시의 발전양상을 보면 최첨단 시설들이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전과 브리즈번 간 공유된 교류의 가치는 지속성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이는 미래세대의 자기충족 능력과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발전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자연환경이 재산이란 인식 공유
 
  대전은 브리즈번처럼, 3000만 그루의 나무심기운동을 통해 자연환경이 하나의 재산이라는 인식을 공유해 왔다. 브리즈번의 환경공원 및 지속성위원회 위원장인 피터 매틱은 “대전의 3000만 그루 나무심기는 더 푸른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朴城孝(박성효) 시장과 대전시민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극찬했다.
 
  피터 매틱에 따르면 대전의 3000만 그루 나무심기는 브리즈번의 ‘그린 하트 시티 스마트(Green Heart City Smart)’ 운동과 큰 유사점이 발견된다.
 
  ‘시티 스마트’ 운동은 수백만 그루의 나무심기와 에너지 태스크포스팀 구성, 가정 에너지 온실배출가스 감축, 지속적인 교통대안 마련 등을 통해 2026년까지 도시를 탄소로부터 자유로운(저탄소) 도시로 만드는 목표를 갖고 있다.
 
  대전은 브리즈번처럼 도시의 숲이 환경과 지역사회에 가져다줄 어마어마한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무를 심음으로써 동·식물, 더 깨끗한 공기, 그리고 더 건강한 水路(수로)를 위한 보호막을 제공할 수 있다. 환경적 혜택 외에도 주민들은 더욱 푸르고, 더욱 깨끗하며 더욱 신선한 도시를 누릴 수 있으며 후손들에게 중요한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브리즈번과 대전은 2002년 두 도시가 공식적인 자매결연을 체결한 이후 지속적이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브리즈번이 대전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두 도시가 공유하고 있는 특별한 유대관계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지속발전 가능한 미래를 계획하려는 대전의 의지는 우리 두 도시가 공유하고 있는 많은 가치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 기술, 교육, 스포츠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증진을 위해 서로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양 도시의 더 나은 미래건설을 위해 서로를 배워가고 있다.⊙
 



  ▣ 호주 브리즈번市 개요
 
  브리즈번은 퀸즐랜드州(주)의 州都(주도)이며 호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다. 원주민어로 ‘미안진(Mian-Jin)’이라고도 하며, 뿔 모양의 뾰족한 장소라는 뜻이다. 브리즈번이라는 이름은 뉴사우스웨일스의 주지사였던 토머스 브리즈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면적은 5904㎢, 인구는 185만명(2007년), 인구밀도는 315명/㎢이다.
 
  18세기 유럽인들의 탐험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호주 내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따뜻하고 토양이 비옥해(특히 브리즈번 강 주변) 농업이 발달했고, 19세기부터 영국으로부터 대량이주가 시작됐다. 19세기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인구급증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상공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 요충지였으며, 현재는 호주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퀸즐랜드大와 퀸즐랜드공과大 등이 위치해 있고,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요 교역지이며, 한국인 유학생들도 많다. 2007년 현재 대한항공이 서울(인천)과 직통으로 주3회 연결하고 있다
‘글로벌 대전’의 미래
 ‘강한 지역’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한다
 
에버하드 베커 前 독일 도르트문트大 총장
⊙ 1943년 독일 맥클렌부르크 출생.
⊙ 1979년부터 도르트문트대 수학과 교수 재직, 2002~2008년 도르트문트대 총장 역임.
⊙ 유럽지역 혁신대학연합회장(ECIU), 세계대학총장연합(IAUP) 집행이사, 막스플랑크 연구
    재단 집행이사, 現 대전시가 운영하고 있는 국제기구인 세계과학도시연합(WTA) 대학총장
    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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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전략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마이클 포터는 근본적이고 폭넓은 조사연구를 통해 경제적 성공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의 지속적인 경쟁력은 지역적인 것들, 즉 지식·상호관계성·동기유발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경쟁자들이 갖출 수 없는 것이다.”
 
  즉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자체적인 힘과 내발적인 잠재요소를 활용해 상호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세계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연구를 통해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이 어느 지역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을 땐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지방화의 개념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상호의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한 지역(strong region)’이야말로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으며, 경제발전을 주도할 것입니다. 성장지향적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주체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도시, 대전
 
  이와 같이 지역의 경제력 강화와 더불어 성공적인 지역발전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학문과 지식은 지역의 성장과 번영을 이루기 위한 기초적인 토대를 제공합니다. 지식은 현대 경제체제에서 기초적인 공급원에 해당하며, 학문은 이러한 지식들을 결합시켜주는 일종의 기초적인 과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학문과 지식이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조건에서 공급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체계가 요구됩니다.
 
  둘째, 사회적 자산과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회적 자산이란 사람, 기관, 연계 네트워크, 총체적인 사회응집력 등의 상호작용을 좌우하는 표준규범과 가치들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자산과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협력 네트워크는 해당 지역이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셋째, 클러스터는 특정분야에 집중된 비즈니스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과학도시 차원에서는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대전시는 더 이상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도시’로서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과학도시는 과학기술을 활용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우수한 경제체제로 알려져 왔으며, 경제적 발전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대전시는 지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학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적절한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지역발전의 정책적 대안으로서 그 중요성 또한 매우 높아졌습니다.
 
  대전에는 우수한 대학과 고등학교는 물론, 수많은 정부출연연구소 및 민간연구소들이 밀집하고 있어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최적의 교육기반과 연구환경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73년에 설립된 대덕연구단지에서는 과학기술을 비즈니스로 연결해 주는 지식교류 및 기술사업화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대전시는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질 높은 생활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끝으로, 대전시는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맞서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서의 확고한 리더의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성공적인 도시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울분에 싸인 대전 시민들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다”
 
朴鍾明 中都日報 기업·연구단지 팀장〈cmpark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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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는 한국을 대표하는 R&D 허브(hub)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다. 그러나 李明博(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명성이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행정도시 예정지의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대전시는 새 정부 출범 후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을 건의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별 반응이 없다. 자칫하면 새로운 연구원 설립에 따른 대덕특구의 동반 하향 평준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복투자 우려
 
  정부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추진계획은 3000명 규모의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대형연구시설로 중이온가속기를 설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미 조성된 인프라를 연계한 벨트 조성보다는 과학도시를 신규로 조성하겠다는 것이어서 대덕특구 인프라와의 중복될 뿐만 아니라, 이미 구축된 대덕특구의 연구소·기업의 유출마저 예상되고 있는 상항이다.
 
  김영빈 대전시 과학협력 담당은 “정부의 공청회 및 각종 간담회에서 대덕특구 출연연구기관과의 중복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시했으나 뚜렷한 대응방안이 없는 상태”라며 “대덕특구의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를 설립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세종시 및 오송, 오창을 연계하는 것이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라는 실용정부 이념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지원이 지지부진한 것도 대덕특구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盧武鉉(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년 3월 제42회 국정과제 회의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 육성방침이 결정돼 2005년 7월 대덕연구개발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000여 억원씩 모두 6600억원을 들여 연구성과 사업화를 촉진하고, 벤처 생태계 조성 및 글로벌 환경 구축 등의 특구육성종합계획이 마련됐다. 하지만 2005년 100억, 2006년 250억, 2007년 500억, 2008년 615억, 2009년 580억원 등 모두 2045억원만이 투자돼 목표연도인 내년 1년을 앞두고 고작 31%만 투입됐을 뿐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특별법 제정에 참여했던 金宣根(김선근) 대전대 교수는 “특별법 제정 당시 연구활동, 기업활동, 외국인 거주여건 조성 등이 망라됐으나 관련 부처 간에 이견으로 상당부분 삭제되고 말았다”며 “우리나라 최고 연구자원 집적지인 대덕특구의 연구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새 정부가 지향하는 효율성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대전지역을 대상으로 내건 공약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李漢久(이한구) 정책위 의장이 2007년 11월 말 대전시당에서 발표한 공약은 모두 7가지. 이 중 ▲대덕 첨단기술 산업화단지 조성 ▲첨단 과학기술 테마벨트 조성 ▲로봇연구 및 생산 클러스터 구축 ▲자기부상열차 연구·생산 집적화단지 조성 ▲암전문 치료장비 개발 집적화단지 조성 등 대덕특구와 관련된 것이 모두 5가지에 이른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 중구 태평동에서 사업하는 시민 김남규(45)씨는 “이명박 정부가 대전에 공약한 내용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지역 차별을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며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예산을 많이 만들어 조기에 집행하겠다고 하는데 대전 경제를 살리고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은 대덕특구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두 번의 국책사업 유치 실패
 
  첨단의료복합단지, 한국뇌연구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주요 국책사업 입지가 올 상반기에 결정된다. 그러나 대덕특구엔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입지 여건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로봇랜드 유치 좌절 때와 같이 또다시 정치적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로봇랜드나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유치에 두 번이나 실패한 경험을 뼈아픈 교훈 삼아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해 2년 넘게 공을 들여왔다. 두 번에 걸친 국책사업 실패를 토대로 국책사업 유치 시스템을 가동하고 자체 역량도 정확히 진단해 정치인과 중앙부처 공무원의 네트워크도 강화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정부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혁신클러스터로 구축하기 위해 30년 동안 모두 5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에 전국의 10여 개 지자체가 저마다 자신의 지역이 최적지라는 논리를 펴며 지역 정치권과 공조 속에 치열한 유치전을 펴고 있다. 대전은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타 지역 조성 시 최소 20~30년 뒤 효과가 발생하는 데 반해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조기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계적 추세로나 전국에 산재한 38개 분야별 의료클러스터·센터와의 연계를 위해서도 풍부한 연구인력과 인프라가 구축된 대덕특구를 허브형으로 조성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가장 크게 한다는 판단에서다. 盧承武(노승무) 충남대 교수는 “대덕특구는 지난 30여 년간 30조원이 투자돼 첨단기술과 융합기술 등 기본이 잘 갖춰진 유일한 곳”이라며 “다른 곳에 조성해 성과를 얻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여건이 갖춰진 대덕특구에 첨복단지를 조성해 의료산업의 국가경쟁력을 조기에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2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과 타 지역에 비해 탁월한 입지 우위에도 입지 선정이 다가오면서 대한민국의 장래 먹을거리를 책임질 일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과학벨트는 충청권으로, 첨단복합의료단지는 타 지역으로’ 등의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李相珉(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은 지난 2월 25일 대전시청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토론회’를 가진 자리에서 “정부는 행정도시에 과학벨트를 자리 잡게 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지켰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행정도시는 축소, 변경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대덕특구가 별개로 추진될 경우 30여 년 30조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된 과학기술의 메카라는 국가자산이 유실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알맹이 없는 팻말만 걸어놓은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박성효(왼쪽에서 여섯번째) 대전시장, 양명승(다섯번째) 원자력연구원장, 이재도(일곱번째) 화학연구원장 등 참석자들이 첨단의료복합단지 대전 유치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대덕특구의 장점 살려야”
 
  시민들 사이에선 대전이 또다시 정치적 흥정의 희생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대전은 버려진 자식’이라는 자조마저 쏟아지고 있다. 시민 민장홍(50·중구 목동)씨는 “대덕특구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R&D 인프라가 있음에도 로봇랜드, 자기부상열차 때와 같이 첨복단지 입지 선정이 정치적 입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며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일을 정치적 이해득실로 판단하는 것은 나라 경영의 正道(정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대전을 대놓고 깔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사무처장은 “국책사업은 지역균형발전과 신성장동력의 확보 차원에서 지역의 여건이나 특성을 감안해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흔들리지 않고 추진돼야 마땅하다”며 “그렇지만 과거 자기부상열차나 로봇랜드 등의 국책사업은 심의절차 과정에서 수도권 인사에 의해 수도권 입지가 결정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평가했다. 금 처장은 이어 “국책사업에 대한 지역간 경쟁이 수도권규제 완화의 반발을 무마하거나 악용돼서는 곤란하다”며 “투명한 절차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과정 속에서 입지 선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은 지금 30여 년 동안 30조원 넘는 엄청난 재원을 들여 키워낸 대덕특구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그 위상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정치적 판단의 결과로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느냐 그 갈림길 앞에 서 있다

기록의 도시 대전
 세계 최고·국내 최고가 줄줄이 이곳에
 
李宅九 대전시 경제과학국장
⊙ 1966년 대전 출생.
⊙ 대성고·충남대 행정학과 졸업, 영국 셰필드대 도시계획학 박사.
⊙ 대전시 미래산업본부장, 現 경제과학국장.
著者無 저자없음
<이응노 미술관>

대전에는 우리 국민들이 잘 모르는 ‘세계 최고’, ‘한국 최고’가 대거 숨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5년간 30조원의 R&D(연구개발) 예산이 투자돼 100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우리나라의 대표 과학브랜드 대덕연구개발특구가 대전에 있기 때문이다. 대덕특구의 최고들은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대전에는 또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주변의 최고도 많다. 세계 최고, 한국 최고가 모여 있는 대전의 숨겨진 모습을 추적해봤다.
 
  대전 유성구 어은동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실에 9.6m, 직경 9.4m, 무게 100t의 거대한 금속구조물이 버티고 있다. ‘한국의 태양’으로 불리는 ‘K-STAR’다. 대덕특구의 자랑인 K-STAR는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핵융합 연구장치다.
 

세계 최초의 핵융합연구장치 ‘K-STAR’

  이것은 태양에너지의 원리인 핵융합반응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미래 청정에너지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일종의 ‘인공태양’이다. 이를 위해 지난 1995년부터 3090억원이 투입됐다. 2007년 9월 장치가 완공된 후 지난해 6월 최초로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는 1초에 1조 차례 연산능력이 가능한 수퍼컴퓨터가 가동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빠르고 큰 이 컴퓨터의 가격은 600억원에 달한다. 수퍼컴퓨터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로 국방, 우주, 재난예방, 에너지, 자동차, 항공, 전자, 신소재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높이 14.5m, 무게가 340t에 달하는 초대형 현미경도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 HVEM (High Voltage Electron Microscope)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다양한 각도에서 원자 분해가 가능해 물질의 원자구조를 3차원으로 관찰할 수 있다. 단백질이나 뇌 신경세포의 구조를 3차원으로 분석·관찰할 수 있어 생명과학분야에서 자주 활용된다.
 
  100% 국내기술로 개발된 대한민국 표준시계 KRISS-1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있다. 1998년부터 2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지난해 완성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표준과학연구원이 해외에서 수입한 4대의 수소메이저와 5대의 세슘원자시계를 이용해 대한민국 표준시를 생성하고 국제 비교를 통해 국제표준(세계협정시)과 일치하도록 유지해왔다.
 
장태산 자연 휴양림

  한국해양연구원이 국내 최초, 세계 4번째로 개발한 심해 무인잠수정 ‘해미래’도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닷속 6000m까지 내려가 심해 冷水(냉수) 및 熱水(열수) 분출구 환경탐사, 생태계조사, 자원조사 등의 작업을 한다.
 
  대전 혜천대학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78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혜천타워’가 보인다. 이 탑 안에는 최고 10t에서 9㎏까지 78개의 청동종으로 만들어진 카리용(carillon)이 설치돼 있다. 지난 2004년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 최대의 카리용이다. 카리용은 크기가 다른 많은 종으로 구성되고 각 종의 종추에 연결된 레버와 페달을 눌러서 연주하는 고전악기로, 혜천타워에 설치된 카리용은 78개의 종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6.5옥타브형 카리용이다.
 
  대전동물원에는 지난 2006년 4월 세계 최초로 자연 번식에 성공한 흰꼬리수리(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243호)가 살고 있고, 사실상 한반도에서 멸종한 한국늑대(학명 Canis lupus coreanus)도 볼 수 있다. 한국늑대는 지난해 7월 생후 5개월 때 들어와 현재 성체로 자랐으며 오는 5월 플라워랜드 개장에 맞춰 문을 여는 통합테마공원의 한국늑대 사파리에 입주한다

대덕연구단지 이렇게 만들어졌다
 최초 구상에서 기반시설 준공식까지 20년 걸린 大役事
 
裵振榮 月刊朝鮮 기자  (ironheel@chosun.com)

대덕단지요? 崔亨燮(최형섭) 장관과 吳源哲(오원철) 수석, 安京模(안경모) 사장이 만들었어요.”
 
  ‘대덕단지는 누가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金正濂(김정렴) 前(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대답이었다.
 
  최형섭 前(전) 과학기술처 장관(1971~1978년 재임·作故). 初代(초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소장으로, 最長壽(최장수) 과기처 장관으로 과학기술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족적을 남겼던 그는 1973년 1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과기처 연두순시 때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건의해 대덕전문연구단지 건설의 단초를 열었다.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제2수석비서관(1971~1979년).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 및 방위산업 건설을 총지휘했던 그는 1976년 대덕단지 관련 업무를 넘겨받아 당초 대덕단지의 개념을 연구학원도시에서 전문연구단지로 조정하는 한편, 정부出捐(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들의 대덕단지 입주업무를 수행했다.
 
  안경모 전 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 제16대 교통부 장관(1964~1967년)을 지냈고, 1967~1968년 국가기간고속도로계획조사단장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던 그는 1974~1983년 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대덕단지 조성을 담당했다.
 
  이 세 사람은 과학기술자(최형섭) 아니면 엔지니어(오원철, 안경모)였다. 지금은 정부에서 멸종되다시피 한 理工系(이공계) 출신 엘리트들이 대덕전문연구단지, 오늘날의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만든 것이다.
 
 
  대덕 前史
 

1979년 2월 2일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를 둘러보는 朴正熙 대통령.

  대덕단지 건설논의는 과기처 발족 직후인 1968년에 나온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1967~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계획에서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을 분산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 집합시켜 연구·학원단지를 조성할 때 연구시설의 공동활용, 연구자료의 공동이용, 다수 분야와 관련된 종합적 연구의 추진 등 연구능률을 최대화하며, 대학교육과 연구를 연계시킴으로써 인재양성 면에서도 그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1980년대를 지향한 과학한국의 구상으로서 연구·학원도시 조성을 추진할 것을 연구검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구상은 ‘서울연구개발단지’(홍릉단지) 조성으로 이어졌다. 1970년 金善吉(김선길·후일 해양수산부 장관 역임·作故) 과기처 진흥국장 등은 그동안 서울 홍릉을 중심으로 이미 건설되어 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및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와 장차 들어설 한국과학원(KAIS·과학기술인재양성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을 유기적으로 묶어 ‘知的(지적)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구상을 했다. 1971년 4월 한국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착공되면서 이 구상은 현실화됐다.
 
  과기처는 이와 함께 홍릉단지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경우에 대비해 제2연구단지 조성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과기처는 1971년 초 李德善(이덕선·에너지연구소 원자력연수원장 역임) 경제과학심의회 과학기술분석관(공업技正, 서기관급)에게 제2연구단지 건설 타당성 조사연구를 의뢰했다.
 
 
  최초 후보지는 삼성 에버랜드 자리
 
  이덕선 분석관은 1971년 7월 15일 <연구교육단지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연구단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주장했다. 그가 연구단지의 立地(입지)로 지목한 곳은 오늘날 삼성에버랜드가 있는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일대(당시 행정구역 기준). 그는 이곳에 10년에 걸쳐 10만명의 인구가 들어갈 700㏊(210만평) 규모의 연구학원도시를 조성하고 22개 국·공립 시험연구기관 등을 입주시키자고 제안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새로운 연구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다. 종합과학기술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로는 이러한 수요에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여긴 정부는 선박연구소·해양개발연구소·기계기술연구소·석유화학연구소·전자기술연구소 등 5대 전략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1973년 12월 ‘특정연구기관육성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서울에는 이 연구소들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1970년 현재 70개 국·공립 시험연구기관 중 35개가 수도권에, 그중 22개가 서울시내에 있었다. 국립공업연구소는 동숭동 대학로에, 중앙전매연구소(現 KT&G중앙연구원)는 종로 4가, 국립지질조사소(現 한국지질자원연구원)는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식이었다.
 
  이들 서울시내에 있는 시험연구기관들의 경우 소음, 진동, 대기오염 등 도시공해 때문에 연구환경이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덕연구단지 30년사>에 의하면 동숭동에 있던 국립공업연구소의 경우, 연구소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에 인근에 있던 서울대 법과대학생들이 연구소 철거 등을 요구하는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 홍릉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그나마 나은 환경이었지만, 홍릉단지도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들어서면 조만간 포화상태가 될 상황이었다. 때문에 서울시내에 散在(산재)한 기존의 연구기관들과 신설되는 연구기관들을 이전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단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73년 연두순시에서 ‘제2연구단지’ 건의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朴正熙 대통령에게 건의한 故 崔亨燮 과기처 장관.

  10월 維新(유신) 이듬해인 1973년 1월 12일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은 年頭(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 선언’과 ‘全(전)국민 과학화 선언’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공업 시대’에 들어갔다”면서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공업 육성’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공업 정책’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의 발달 없이는 우리는 절대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80년대에 가서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공업의 육성’ 등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汎(범)국민적인 ‘과학기술의 개발’에 총력을 집중해야 되겠다”면서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제창했다.
 
  이후 한 시절을 풍미했던 ‘10월 유신, 100억 달러 수출, 1000달러 국민소득’이라는 구호도,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성장동력들도 이날의 기자회견에서 탄생했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이 있은 지 닷새 후인 그해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과기처를 연두순시했다. 당시 대통령 연두순시는 공직사회의 가장 큰 행사였다. 각 부처의 長(장)들은 전년도 11월부터 자기 부처의 총력을 기울여 연두순시 브리핑 준비에 들어갔다. 연두순시에서 대통령의 눈에 든 관료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당시 과기처 장관은 최형섭 박사였다. 1966년부터 5년간 初代 KIST 소장으로 있다가 1971년 제2대 과기처 장관에 임명된 그는 장관으로 부임한 직후 <연구교육단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던 이덕선 경제과학심의회 분석관을 과기처로 불러 종합계획관(2급)으로 임명했다.
 
  최형섭 장관은 이날 연두순시에서 선박·기계·석유화학·전자 등 전략산업 기술연구기관의 단계적 설립 ▲서울에 산재되어 있는 국·공립 시험연구기관들 이전의 긴급성 등을 강조한 후, 서울 홍릉단지에 이은 ‘제2연구단지 건설試案(시안)’을 건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 장관에게 “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을 구체화해 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대덕·용인·청원 등 검토
 
대덕연구단지 실무책임을 맡았던 全相根 前 과기처 종합기획실장.

  최형섭 장관이 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 수립을 맡긴 사람은 全相根(전상근) 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이었다.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을 지낸 그는 KIST 설립 당시 실무책임자였고, 과기처 창설의 産婆役(산파역)을 맡았던 과학기술행정가였다. 최형섭 장관은 그해 3월 과기처에 종합기획실을 신설하면서 전상근 국립중앙과학관장을 실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종합기획실은 1급 실장 아래 각각 10명의 1, 2급 심의관을 둔 매머드 부서였다.
 
  종합기획실장이 된 후 그에게 떨어진 첫 번째 지시가 연구학원도시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덕선 계획관의 <연구학원도시 마스터플랜>을 검토하는 한편, 호주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金炯萬(김형만) 박사, 權原基(권원기·과기처차관 역임) 종합계획관, 徐正萬(서정만) 과장 등에게 실무작업을 맡겼다.
 
  이들은 입지선정 기준으로 ▲서울의 기존 대학 및 연구기관과 지방의 중화학공업기지가 유기적으로 연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전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할 것 ▲계획면적 350~500만평의 충분한 부지조성이 가능한 위치일 것 ▲교통·用水(용수)·電力(전력) 등 도시기반조성 비용이 적게 들며 地價(지가)가 저렴할 것 등 세 가지를 제기하면서, 연구학원도시 후보지로 충남 대덕, 경기 화성, 충북 청원 등 세 군데를 선정했다.
 
  전상근 실장은 “여러 가지 조건상 우리들의 의견은 충남 대덕으로 모아졌다. 과기처를 관장하고 있던 鄭韶永(정소영·농수산부 장관 역임) 경제제1수석비서관도 ‘대덕으로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윗분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3군데 모두 후보지로 올렸다”고 述懷(술회)했다.
 
  1973년 5월 18일 청와대에서 ‘제2연구단지 건설계획(안) 보고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金鐘泌(김종필) 국무총리, 太完善(태완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南悳祐(남덕우) 재무부 장관, 金玄玉(김현옥) 내무부 장관, 閔寬植(민관식) 문교부 장관, 李洛善(이낙선) 상공부 장관, 張禮準(장예준) 건설부 장관, 崔亨燮(최형섭) 과기처 장관, 金正濂 대통령비서실장, 鄭韶永 경제제1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김종필 총리가 대덕 주장
 
  브리핑은 전상근 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이 맡았다. 그는 39매 분량의 브리핑을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브리핑이 끝나자 박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할 때는 어떻게 했지요?”
 
  장예준 건설부 장관이 “경제기획원에서 구상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여 추진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최형섭 과기처 장관이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경주관광종합개발의 예를 따라 청와대를 중심으로 기획단을 구성하고 건설은 건설부에서 주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태완선 부총리는 “청와대도 일이 많은데 모든 것을 청와대에만 미루면 곤란하다”면서 “이번 계획은 과기처나 총리실에서 수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반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태완선 부총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청와대도 일이 많으니 서울대 건설본부와 같이 과기처에서 건설본부를 만들어 추진 감독하되, 계획은 총리실이나 관계기관에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수립하라”고 한 것이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박 대통령의 말을 받아서 “연구학원도시의 계획수립과 건설은 과기처에서 주관하고 관계부처 간의 업무 조정은 총리가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입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김정렴 비서실장이 의견을 냈다.
 
  “부지 확보를 위해 우선 100만평만 구입한다면 낙동강 유역 매립지에도 적당한 후보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형섭 과기처 장관이 반대했다.
 
  “우수한 두뇌를 용이하게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연구학원도시를 대전 以南(이남)에 건설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또 공업용지나 농업용지는 연구학원도시 건설에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때 김종필 국무총리가 “3개 후보지 가운데 대덕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면서 대덕을 지지하고 나섰다. “경기 화성은 방송시설 관계로 곤란하고, 청원 또한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항공사진을 보니 대덕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관식 문교부 장관은 “연구학원도시가 대덕으로 결정되면 충남대를 이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3개 후보지 가운데 충남 대덕이 연구학원도시 후보지로 결정됐다.
 
 
  왜 대덕이 선택됐나?
 
  일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최형섭 과기처 장관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후보지를 돌아보고 난 후 대덕으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전상근 당시 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은 “그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마 박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후보지를 돌아보고 난 후 대덕으로 결정했다는 얘기는 회의석상에서 박 대통령이 “항공사진을 보니 대덕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訛傳(와전)된 것인 듯하다.
 
  1973년 5월 28일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에 대한 대통령 裁可(재가)가 떨어졌다. 과기처는 김형만 박사의 국민환경문제연구소에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 용역을 맡겼다. 김형만 박사 등이 제출한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은 “대덕연구학원도시의 기본이념은 연구소와 學園(학원)이 共存(공존)하는 知的(지적)공동체를 형성하여 지적 교류의 촉진과 시설 및 인력활용의 극대화를 도모함으로써 국가산업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효율적 개발과 이의 전국적 확대를 기하는데 있다”고 선언하면서 대덕을 후보지로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同 지역(당시 충남 대덕군 일원)은 우리나라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을 母(모)도시로 하는 지역일 뿐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및 철도 幹線(간선)이 分岐交叉(분기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우수두뇌들의 집결이 용이하며 전국의 各(각) 산업기지와의 연결이 편리하여 각 공업단지에 대한 기술지원이 용이하고, 錦江(금강)을 옆에 끼고 있어 用水(용수)의 공급과 처리 등 연구활동환경의 조성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은, ‘대덕연구학원도시는 약 810만평(26.7㎢)의 敷地(부지)에 약 5만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게 될 것’이라면서, 1974년에서 1981년까지 ▲도로·상하수도·교량· 인터체인지 등 도시하부구조 건설 ▲5대 전략산업연구기관 신설 ▲12개 국립연구기관 이전 ▲1개 대학 설립 ▲공동 이용시설 및 관리기구 설치 등을 추진하기로 예정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서정만 과기처 과장은 <대덕연구단지 30년사>에서 연구단지 예정 구역 내에 있던 11가구의 나환자촌 주민들을 설득해 이전토록 한 것과 閔復基(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의 一族(일족)인 驪興 閔氏(여흥 민씨) 가문의 묘소 20여 기를 옮기도록 한 것을 큰 보람으로 꼽았다. 그는 “두 경우 모두 큰 어려움 없이 해결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최고통치권자의 강한 의지와 관심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국민들도 국가계획사업을 위해서는 私益(사익)도 양보하게 만든 것이 근본요소였다”면서 “요사이 개발계획과 관련된 각종 시위를 지켜볼 때마다 나는 퍽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진노
 
대덕연구학원도시를 대덕연구단지로 조정한 吳源哲 前 경제제2수석비서관.

  당초 ‘연구학원도시’개념으로 출발했던 대덕단지는 1976년 4월에 이르러 주관 부서가 과기처에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로 바뀌면서 ‘대덕전문연구단지’로 조정됐다. 당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은 김종필 국무총리였지만, 실제로 이를 움직이는 것은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이었다. 따라서 대덕단지 건설업무를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에서 맡게 됐다는 것은 청와대가 직접 이 사업을 챙기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3년 5월 18일 청와대 보고회의 당시 “청와대도 일이 많으니 과기처에서 건설본부를 만들어 추진 감독하도록 하되, 계획은 총리실이나 관계 기관에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수립하라”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일까?
 
  전상근 당시 과기처 종합기획실장 등 당시 과기처 관계자들에 의하면, 1976년 3월 말 박정희 대통령의 대덕 시찰 때 있었던 과기처의 브리핑이 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 브리핑은 그해 2월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마침 최형섭 과기처 장관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전상근 종합기획실장은 공무원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李昌錫(이창석·作故) 과기처 차관은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 차관은 실무진을 진두지휘하면서 그때까지 진척되어 온 상황을 보고하는 것은 물론 이 사업의 전체 투자계획을 다시 조정하는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 전 실장은 “대통령이 현장을 시찰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정부가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유도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덕시찰과 브리핑은 계속 연기되다가 3월 말에 이르러 갑자기 성사됐다. 최형섭 장관은 전상근 실장에게 브리핑을 맡게 했다.
 
  브리핑 준비에 참여하지 않았던 전 실장은 ‘내가 모르는 내용을 어떻게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그는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추진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보고했지만, 앞으로의 사업의 윤곽과 투자계획에 관한 데에 이르자 막히고 말았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고를 듣던 박 대통령은 급기야 브리핑을 중단시키고 “지금 말한 투자계획의 숫자와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따졌다. 전 실장이 우물거리자 박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브리핑 봉을 잡고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主客(주객)이 顚倒(전도)되어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하는 형국이 되자, 배석했던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韓基益(한기익·표준과학연구원 기술부문 회장 역임) 당시 과기처 종합계획관실 연구단기건설추진담당 사무관은 <대덕연구단지 30년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박 대통령은 ‘과기처의 방향은 이상적이지만,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형편을 감안하여 도로건설의 단계적 확대, 상수도 引入(인입)예정지 변경, 연구소 건설은 기술개발의 성과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어떠냐. 자원연구소와 해양연구소의 해양광물 탐사기능의 중복성 및 핵연료공단 예산 500억원의 과다 책정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으며, 계획기간 중 기반시설과 연구소 건설비 1100억원은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에 브리핑을 한 전상근 실장은 기술적인 답변이 부족했고, 최형섭 장관도 汎(범)부처적 차원의 문제점에 대한 소신 있는 답변이 부족했다.”
 
  자리에 앉은 박정희 대통령은 차가운 눈으로 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을 찾더니 이렇게 지시했다.
 
  “앞으로 이 사업은 과기처에만 맡겨두지 말고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 재정규모를 감안해서 투자계획을 再(재)조정하시오. 사업별로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 형편에 따라 연차적으로 무리 없게 사업을 추진하시오.”
 
 
  연구학원도시에서 연구단지로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덕단지 관련 업무를 맡게 된 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은 1976년 4월 14일 제1차 수정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국가적·연구소 차원에서 경제성과 연구소 운영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수정계획 기본방향의 제1항에 따르면 “대덕연구단지는 단계별로 예산 범위 내에서 추진한다”는 전제 아래 ▲연구소는 산업이 요구하는 연구소부터 순위에 따라 건설하고 (국가적 경제성) ▲연구소별로 하나씩 완성하며 ▲연구소 자체도 단계적으로 건설한다(연구소 경제성)고 되어 있다.
 
  “연구소는 自立(자립)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 제2항도 눈길을 끈다. ▲정부투자는 최대한으로 줄이고 민간자본을 가능한 한 참여시키며 ▲연구소 운영에 있어 정부 보조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않고, 負債(부채) 및 借款(차관)도 자체적으로 상환하며, 연구과제별로 예산을 계상하며 책임을 완수케 하는 방안을 취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SOC 건설 등에서 많이 도입된 民資(민자)유치, 1980년대 영국 등에서 정부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책임행정기관 운영방식과 유사한 방식이 이때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기본계획 제3항에서는 “입지계획은 현재의 案(안)을 가능한 한 살리되, 공업단지 조성계획과 같은 개념하에서 조성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아래에 ▲도로·용수 및 전기공급 간선 건설은 정부지원공사로 하고 ▲지원시설에 대한 투자와 활용도를 고려하여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집중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이어진다.
 
  오원철 수석은 “연구소 등을 단지 내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집중화함으로써 연구단지 내에 연구소들이 散在(산재)할 경우 불필요한 도로 건설 등으로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단지 내 도심지 건설계획은 일단 유보한다”면서, 주택문제는 대전에 아파트를 건설해 해결하도록 했다. 종합공대 건설도 유보됐다.
 
  결국 이 제1차 수정기본계획을 통해 대덕은 ‘연구학원도시’에서 산업공단 개념에 준하는 ‘연구단지’로 개념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전상근 실장은 회고록 <한국의 과학기술정책-한 정책입안자의 증언>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청와대의 오원철 수석비서관은 예리하게 날이 선 칼을 휘둘러 당초의 대덕연구학원도시계획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연구학원도시는 연구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시퍼런 칼날에 과학자들이 안주할 주택계획도 여지없이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최형섭 장관이 구상한 ‘연구하는 푸른 공원도시’의 꿈은 한여름 구름처럼 날아가 버렸다.”
 
  연구학원도시의 최초 발의자인 이덕선 전 원자력연수원장도 “중화학공업추진기획단에서 예산절감을 내세워 연구단지건설기본계획을 대폭 조정한 결과, 연구협동체제를 지향한 연구기관의 계열별 배치가 무시됐으며, 연구소 입지와 연결성이 부족한 주거형태가 됐다”고 비판했다.
 
 
  산업단지 개발 개념으로 접근
 
吳源哲 경제제2수석비서관이 작성한 제1차 수정기본계획의 일부. 도로개설, 수도·전기 설치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연구소를 단지 내 幹線도로변에 짓도록 요구하고 있다.

  오원철 수석도 과학기술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모르지 않는 듯했다. 그의 말이다.
 
  “내가 대덕단지 업무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당시 나는 중화학공업 건설 업무만으로도 바빴다. 과기처에 일을 맡겨 놓았더니, 상하수도 끌어오는 것이나 도로 닦는 것 하나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때문에 대덕연구단지를 하나의 공업단지로 생각하고 산업기지개발 방식을 도입해서 관련법에 따라 단지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대덕단지 30년사>에서는 이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때의 건설추진 방식은 기반시설 건설은 국가에서 시행하고, 연구소 건설은 해당 연구소가 시행함으로써 토지 보상에 따른 민원의 발생과 개발업무의 미숙으로 인하여 건설사업 추진에 많은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기반조성공사 및 연구소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토지매입 및 개발의 효율적 수행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77년 12월 8일 대덕연구단지 지역을 산업기지개발촉진법(현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대덕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1979년 1월부터는 중부 주거지 개발사업자로 산업기지개발공사를 지정하여 공영개발 방식에 의한 최초의 개발을 시작하였다.>
 
  산업기지개발공사가 대덕단지 건설에 나서게 된 것도 이러한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덕단지를 만든 사람의 하나로 안경모 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78년 3월 18일, 한국표준연구소(現 한국표준과학연구원)가 대덕단지에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선박연구소·한국화학연구소·한국핵연료공단·충남대 공업교육대학 등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
 
 
  대덕단지, 그 후
 
  1978년 제10대 총선이 끝난 후 改閣(개각)이 단행됐다.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을 꿈꾸었던 최형섭 과기처 장관이 7년6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 사망했다. 박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그가 ‘國寶(국보)’라며 아꼈던 오원철 수석의 시대도 끝났다. 방위산업 건설과 관련해 軍部(군부)와 마찰을 빚었던 그는 1980년 5·17 계엄확대조치 이후 고초를 겪었다. 그의 지휘 아래 건설된 중화학공업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산업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조정됐고, 방위산업도 많은 부분이 포기됐다. 대덕단지의 연구소들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한국과학원(KAIS)과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이 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통폐합되거나 관리주체가 바뀌는 惡習(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대덕단지 건설은 계속됐다. 1984년 8월 정부는 대덕산업기지개발기본계획을 변경했다. 첨단산업분야의 시범적인 기술연구단지로 건설해 정부 및 민간연구소와 고급인력양성기관의 集合(집합)단지로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단지 전체의 계획적 균형개발과 복합기능의 新(신)도시 건설 차원에서 단지조성사업은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담당하도록 했다. 1985년 11월에는 서남부 미개발지역 일원에 대한 1단계 개발사업이, 1987년 6월에는 동북부 미개발 지역 일원에 대한 2단계 개발사업이 시작됐다.
 
  1992년 11월 27일, 盧泰愚(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연구단지 기반시설 준공식이 대덕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렸다.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이 나온 지 24년, 1971년 <연구교육단지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이 나온지 21년, 1973년 1월 17일 대통령 연두순시에서 최형섭 과기처 장관이 ‘제2연구단지 건설 시안’을 보고한 지 19년 만에 대덕단지 건설의 大役事(대역사)가 일단락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곳
 30년간 106조원 가치 창조
 
金南成 月刊朝鮮 기자  (sulsul@chosun.com)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폰의 광고 모습.>

대덕연구단지.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 말이 주는 의미는 명확했다.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대덕연구단지 하면 ‘과학과 기술’을 떠올렸다. 대덕연구단지는 지난 2005년 관련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32년간 사용해 왔던 이름을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로 변경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이 용어에 익숙지 않아 여전히 ‘대덕연구단지’라고 부른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金富謙(김부겸·51겚믄?교육과학기술위원장) 의원은 <위클리 조선>과 인터뷰에서 현재의 대덕특구를 방문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지도자가 국민소득이 300달러밖에 되지 않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과학기술연구에 투자했을까 하는 안목에 고개가 숙여졌다. 당장 눈앞에 이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중략) 돌아와서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선배들에게 그 충격을 고백했다. 그때 그분들은 30~40년 후를 준비하고 내다본 것이었다.”
 
  김부겸 의원의 얘기처럼, 대덕연구단지와 박정희 대통령은 떼어놓을 수 없다. 趙甲濟(조갑제) 前(전) 月刊朝鮮(월간조선) 대표의 저서 <박정희>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부터 한국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바뀌자 고급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연구소들을 서울 홍릉 일대 연구단지에 설립하려 했으나, 건설 용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대덕이다.
 
  1978년부터 약 30년간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엄청난 기술들이 탄생했고, 그 기술들은 대한민국에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했다. 대덕특구로 改名한 이곳에서는 여전히 그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덕특구의 대표적 특산품과 현재 만들고 있는 특산품을 소개한다.
 
 
  반도체 강국 코리아, 신화의 시작 - 64M DRAM
 
  삼성전자는 지난 1992년 11월 전 세계 최초로 64M DRAM 시제품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반도체 강국 코리아의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 신화를 작성한 筆者(필자)는 삼성전자 혼자가 아니다. 대덕특구에 있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이 신화의 숨어 있는 저자다. ETRI는 국책 연구기관으로 컴퓨터와 반도체 등의 전자 부문과 통신 부문의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곳이다.
 
  지난 1991년 4월 ETRI는 차세대 DRAM 핵심 단위 소자를 발명했다. 이 소자는 통상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소비전력을 극소화하는 동시에, 동작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ETRI는 이 기반 위에서 1992년 11월 선폭 0.4㎛, 칩 크기 210㎟ 수준의 64M DRAM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16M DRAM 개발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우리나라는, 64M DRAM의 개발로 일본을 넘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
 
  ETRI 김희철 홍보팀장은 “64M DRAM을 개발하면서 향후 256M DRAM 이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한 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ETRI는 56M DRAM 개발부터는 선행 연구만 담당하고 기업이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988년 4M DRAM, 1991년 16M DRAM, 1992년 64M DRAM, 그리고 1994년 256M DRAM 개발까지, ETRI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기술력을 1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ETRI는 지난 1995년 9월 세계 최초로 아르곤 레이저광학계를 개발해 국내 반도체 기술을 메가(M) 시대에서 기가(G) 시대로 진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국내 DRAM 산업부문 예상 매출액은 약 289조원이다. 반도체라는 대한민국의 특산품은 대전특구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수확된 것이다.
 
 
  휴대폰 강국의 비밀 - CDMA 상용화
 
  지난 2008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억9700만대를 팔아 세계 2위에 올랐다. LG전자는 1억70만대를 팔아 2007년 5위에서 두 계단 뛰어올라 3위로 올라섰다. 1위 핀란드 업체 노키아를 제외하면, 3强(강) 가운데 두 곳이 한국 기업이다. 한국이 휴대폰 강국이 된 배경에도 역시 ETRI가 있다.
 
  지난 1991년 당시 미국의 TDMA, 유럽의 GSM, 일본의 PDC 방식이 세계 표준방식으로 채택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ETRI는 이때 미국 퀄컴社(사)로부터 CDMA 기술 개발 제안을 받았다. 퀄컴은 이 기술의 원천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를 발전시켜 실제 휴대폰 시스템으로 채택하는 상용화 기술이 없었다.
 
  ETRI 측에 따르면, 당시 양승택 ETRI 소장과 안병성 단장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CDMA 기술 개발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ETRI 김희철 홍보팀장은 “당시 미국에서도 TDMA 방식이 표준화되어 있었다”며 “이 상황에서 또 다른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높았다”고 말했다.
 
  또 수천억에서 수조 원을 들이는 선진국과 달리 불과 670억원에 불과한 예산도 큰 장애가 됐다. 하지만 ETRI는 CDMA 기술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선진국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만의 휴대폰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ETRI와 퀄컴은 지난 1991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체신부는 CDMA 상용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이동통신 기술개발사업관리단을 설치하고 당시 徐廷旭(서정욱·75·후에 과학기술부장관) KIST 단장에게 단장직을 맡겼다.
 
  ETRI는 주간 보고제, 기술분석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철저히 관리했다. 이런 과정 덕분에 개발기간을 크게 단축하여 최초로 KCS(Korean Cellular System)-1이 개발됐다. 이 시스템을 토대로 기능을 추가하고 재설계를 시도해 시제품인 KCS-2를 제작했고, 1994년 4월 KCS-2 첫 통화 시험에 성공했다.
 
  이후 1995년 6월 9일 서울 코엑스 무역센터에서 CDMA 상용 시험통화 시연회가 개최됐다. 시연회에서 CDMA 시스템이 장착된 휴대폰이 우렁차게 벨이 울리면서 휴대폰 강국 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ETRI는 CDMA 상용화 성공으로 지난 10년간 미국 퀄컴사로부터 300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받았다. 기술 개발비 670억원의 약 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대전특구지원본부에 따르면, CDMA 상용화로 인한 경제적 가치는 지금까지 약 56조4000억원에 달한다.
 
 
  IT 혁명의 밑거름 - TDX(全전자교환기) 개발
 
  한국이 휴대폰 강국이 된 배경에는 CDMA 기술 상용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CDMA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유선전화 시스템의 핵심인 TDX(전전자교환기) 개발이 그 원천이었다. 국내 기술진은 TDX를 개발한 노하우를 통해 한 차원 더 높은 기술인 CDMA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환기는 이용자가 건 전화번호로 통화를 연결해 준다. 이는 유선전화 시스템의 핵심장비다. 전화가 처음 상용화됐을 때, 교환 작업을 사람이 직접 했다. 과거 우체국에 있던 전화교환원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후 교환기는 기계식을 거쳐 半(반)전자교환기, 全(전)전자교환기로 진화했다. TDX는 유선전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다.
 
  TDX 국산화 논의는 1976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화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전화 수요는 폭증했지만 교환기 등 인프라의 미비로 직장이나 가정에서 전화 한 대 놓으려면 몇 년씩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고 값비싼 외국 기종의 전자교환기를 수입하는 것은 생고생을 해 가며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를 유출시키는 행위였다. 때문에 정부와 산업계의 지상명령은 ‘전전자교환기의 국산화’였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1982년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인 240억원이 TDX 개발에 배정됐다. KTRI(ETRI의 前身)의 1981년 연구개발비 예산이 24억원이었다. 吳明(오명·70) 前(전) 정통부 장관은 “정치권에서는 TDX 개발을 ‘무모한 국책사업’이라고 질타하면서 ‘이처럼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사업에 돈을 쏟아 붓느니, 차라리 한강다리를 하나 더 놔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82년 초 KTRI 崔順達(최순달·78) 소장은 이른바 ‘TDX 血書(혈서)’라 불리는 한 장의 각서를 崔侊洙(최광수·74) 체신부장관에게 전달한다. 각서의 내용은 이랬다.
 
  “연구원 일동은 TDX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
 
  KTRI 연구원들과 당시 국내 통신기기 메이커인 삼성, LG, 대우 등에서 파견된 기술진은 5년간 선진 각국의 전전자교환기를 해체하여 국산화 작업에 돌입했고, 관련 논문 수백 편을 분석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에 돌입한 결과, 1985년 3월 한국은 세계 열 번째로 TDX 개발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전전자교환기 국산화에 돌입, 음성은 물론 각종 데이터, 화상까지 전송해 주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IT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ETRI의 2001년 집계 결과에 따르면, 1982년부터 2001년까지 TDX 연구개발비로 모두 1500억원을 투자했다. 초기 투자비는 240억원이지만, 상위 버전을 만들기 위해 추가 비용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TDX 국산화 성공으로 수입대체 효과 4조3406억원, 수출 1조458억원 등 모두 5조3864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특히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와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세계 첫 상용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상용화 등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TDX 개발의 경제적 부가가치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신약 개발 강국의 시작 - 에이즈 치료 후보물질 개발
 
  에이즈(AIDS)는 ‘20세기의 흑사병’이라 불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전 세계 인구 가운데 5600만명이 HIV에 감염, 28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완전한 치료제는 없지만, 다양한 에이즈 치료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관련 시장도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에이즈 치료약 시장은 91억 달러. 최근 5년간 매년 13%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수치로 가면 2009년 121억 달러(18조원), 2012년에 160억 달러(24조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에이즈 치료제 시장은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제약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이제 도전장을 내밀었다. 첫 도전치고는 꽤 당차다.
 
  지난 2008년 7월 대덕특구에 있는 화학연구원의 孫鍾贊(손종찬·57) 박사팀이 기존 약품보다 부작용이 적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화학연구원은 에이즈 치료제 시장점유율 1위인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인 길리아드社(사)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화학연구원은 길리아드로부터 1차 기술료 10억원을 포함한 정액기술료 85억원과 2028년까지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러닝 로열티)를 받는다. 전체 로열티 규모가 약 4500억원이 넘는다. 화학연구원 오헌승 원장의 설명이다.
 
  “길리아드는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을 신청했습니다. 약 5년 뒤면 상용화가 가능해 길리아드로부터 2013년부터 2028년까지 매년 300억원(15년간 4500억원) 규모의 러닝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손종찬 박사팀이 만든 후보물질의 효능은 어떨까. 손종찬 박사의 이야기다.
 
  “기존 치료제의 신경계통 부작용과 유전적 독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하루 한 번 투여하는 편리성과 약효 덕분에 기존 치료제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손박사 팀은 1998년부터 지식경제부를 포함한 정부 지원금 22억원과 2006년부터 길리아드와의 공동연구비 5억4000만원 등 모두 27억4000만원을 들여, 이번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했다. 손 박사는 10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 실패를 거듭했다. 연구를 중도에 포기하려고도 했다. 손 박사의 얘기다.
 
  “국내는 아직 신약개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기 힘든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에이즈 치료제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당초 목표를 유보했습니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억울해서, 논문이라도 남기기 위해 벨기에 ‘레가연구소’에 그간 연구해온 화합물에 대한 테스트를 의뢰했어요.”
 
  그런데 테스트 결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결과에 고무된 ‘레가 연구소’의 주선으로 타미플루(경구용 독감 치료제) 개발의 주역인 길리아드社(사)의 金正恩(김정은) 부사장과연결돼 공동작업 끝에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했다.
 
 
  우주를 여는 기술 - 인공위성
 

통신해양기상위성 상상도.

  지난해 우리나라는 첫 우주인을 배출했고, 올해는 전남 고흥의 외나로도에서 소형 인공위성 발사체인 KSLV-I을 발사한다. 自國(자국) 위성을 자국의 발사체로 쏘아 올리는 것은 우주개발에 있어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李柱鎭(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의 이야기다.
 
  “2009년 2월 말 현재, 자국에서 위성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최근 위성발사에 성공한 이란을 포함하여 9개국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위성발사에 성공할 경우, 사실상 세계 10위권의 우주강국에 진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역사는 선진국에 비하면 일천하다. 1992년 8월 실험용 소형 과학위성인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면서 비로소 자국 인공위성을 소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듬해인 1993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는 우리별 1호 개발 중에 획득한 기술을 활용해 우리별 2호를 국내에서 개발하여 발사에 성공했다. 1999년 5월 26일 성공적으로 발사된 우리별 3호는 기존의 우리별 1호 및 2호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설계한 최초의 국내 고유 위성모델이다.
 
  기상, 통신 등에 사용되는 상업위성의 발사는 1999년에 이르러 처음 성공했다. 1999년 12월 21일 아리랑위성 1호를 발사했고, 2006년 7월 28일에 아리랑위성 2호를 발사하여 운용하고 있다. 현재 2010년 발사 예정의 아리랑위성 5호와 2011년 발사 예정의 아리랑위성 3호를 개발 중에 있다. 이들 실용위성은 대규모 자연재해 감시, 각종 자원의 이용실태, 지리정보시스템 구축, 지도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올해 말 또 하나의 위성이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정지궤도 위성인 통신해양기상위성이다. 현재 항공우주연구원과 프랑스 업체가 공동으로 제작해 발사체에 탑재한 상황에서 다양한 시험을 진행 중이다. 정지궤도 위성 제작 발사는 우주산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항공우주연구원 崔聖奉(최성봉·50) 통신해양기상위성사업단장의 설명이다.
 
  “저궤도 위성은 지상 약 600~800㎞ 상공에 떠 있습니다. 반면 정지궤도 위성은 지상에 약 3만6500㎞ 상공에서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 함께 움직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위치에 정지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정지궤도 위성이에요. 현재 해상관측, 기상관측을 위해서는 일본의 정지궤도 위성에서 보내준 자료를 받아서 활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본과 관계가 틀어 질 경우, 이 자료를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정지궤도 위성을 보유하면 이런 위험이 줄어들고, 현재 40분 간격으로 받는 자료를 15분 간격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최성봉 통신해양기상위성사업단장.

  최 단장은 정지궤도 위성을 보유해야 하는 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지궤도 위성에서 내려다보면 지구가 완전한 구가 됩니다. 이는 全(전)지구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상관측, 각종 해양관측, 지도 제작을 위한 관측 때 거시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어요. 저궤도 위성에서 찍은 미시적인 자료와 합치면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는 겁니다.”
 
  최 단장은 “정지궤도까지 위성을 올리려면 매우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상 250㎞에서 발사체와 분리돼, 지상 약 600㎞에서 타원형을 그리며 세 번 추진하여 3만6500㎞에 도달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체 추진기술이 발달해야 합니다. 또 그 높은 곳에서 지상과 통신을 해야 하니 통신기술이 매우 정교해야 하죠. 마지막으로 전력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지기술이 우수해야 합니다. 때문에 정지궤도 위성을 제작하는 동안 각 분야의 기술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우리나라가 정지궤도 위성을 독자적으로 보유해야 앞으로 인공위성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국책연구기관 베스트 10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  (eaglebsk@chosun.com)
<대덕특구 전경.>

고속도로 북대전 IC에서 빠져 나오자 왼편으로 광활한 ‘한밭’ 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단지인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위치해 있었다. 7000만㎡(2100만평) 부지에 정부출연기관 28개, 국공립기관 15개, 공공기관 7개, 기타 비영리 기관 23개, 교육기관 6개, 일반 기업연구소 819개 등 총 1000여 개의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이곳에서 1만9000여 명의 연구원과 2만1000여 명의 생산직·관리직 인력이 ‘과학 한국’의 미래를 위해 뛰고 있다.
 
  月刊朝鮮은 ‘대덕연구개발특구 지원본부’의 협조를 얻어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 베스트 10을 소개한다. 베스트 10은 연구기관의 규모와 인력, 연구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 융합기술의 산실-경제 파급효과 104조5725억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스마트창.

  1976년 설립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崔文基)은 국내 최대의 전자정보통신 연구기관이다. ETRI는 지난 33년 동안 과학한국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중추기능을 해왔다. 全(전)전자교환기·초고집적 반도체·행정전산망용 主(주)전산기·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ATM(비동기 전송방식) 교환기·光(광)전송시스템·지상파 DMB(방송과 통신이 결합된 멀티미디어 방송 서비스)·와이브로(무선 휴대 인터넷)·4세대 무선전송시스템 등 정보통신의 핵심기술을 개발했다.
 
  지식경제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ETRI는 정보통신·전자 분야의 기술개발, 전문인력 양성 등을 목적으로 한다. 정규직원이 1900여 명으로 석·박사 연구인력이 전체 인력의 97%를 차지한다. 연구원 1명이 연간 사용하는 연구비는 1억8000만원에 달한다.
 
  ETRI는 지난 5년간(2003~2007년) 연구비 2조1654억원을 들여 1424개의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ETRI의 특허출원은 연간 2500건이 넘는다. ETRI가 지난 5년간(2003~2007년) 획득한 기술료 수입은 2187억원(1683건 민간업체 이전)이다. 이 수치는 국내 전체 공공연구기관이 한 해 동안 거둬들이는 기술료 수입의 75%에 해당한다.
 
  기술평가 전문기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ETRI가 개발한 CDMA(디지털이동통신 시스템)의 경제효과는 66조36억원이다. 이 액수는 CDMA를 개발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의 300배에 해당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ETRI가 개발한 전체 기술의 경제효과는 총 104조5725억원이다. 박상년 ETRI 연구원은 “ETRI의 실질적 파급효과는 투입 연구비와 비교할 때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박 연구원의 얘기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결국 사람이 기술을 만드는 가장 큰 재산이죠. 오늘의 ETRI가 있기까지는 대한민국 1% 전문가 그룹의 맨 파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ETRI는 기술 상용화를 위해 ‘ETRI 창업기업’과 ‘연구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ETRI가 설립한 창업기업 수는 현재 280여 개에 달한다. 1개 회사에 근무하는 평균 종사자 수는 33명이고, 연평균 매출액은 181억원이다. 상용화를 통해 5조3764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거뒀고, 4만860여 명의 고용창출 효과도 가져왔다. 창업기업 중 코스닥에 등록된 업체는 (주)핸디소프트, (주)서두인칩, (주)하이퍼정보통신 등 14개 회사다.
 
  연구소기업은 2007년 8월 2개 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2008년 10개를 설립했고, 2010년까지 총 35개의 연구소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다. 연구소기업이란 국책연구기관이 보유한 연구성과를 민간기업이 보유한 자본과 경영 노하우를 결합해 설립한 기업을 말한다. ETRI의 연구소기업으로는 오투스·매크로그래프·테스트마이다스·비티웍스·지토피아·넥스프라임 등이 대표적이다.
 
  ETRI는 2008년 2월 IT기반의 원천·핵심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관련 조직을 융합형 조직체계로 바꿨다. 또 R&D 실용화를 위해 기술전략연구본부와 기술사업화본부를 설치했다. 2008년 7월에는 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 산하에 차세대 태양광연구본부를 신설했다.
 
  ETRI가 2008년에 달성한 연구성과 중 대표적인 기술로는 와이브로 에볼루션, 유연성 염료감응 태양전지 기술, 투명 스마트창 기술 등이 있다.
 
  와이브로 에볼루션이란 시속 350㎞로 이동 중에도 무선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술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속 이동환경용 무선전송 기술이다. 현재 이 기술과 관련해 170여 건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으며, 학계에 60건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 와이브로 시장에서 국내기업이 33%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12년까지 31조원의 파급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유연성 염료감응 태양전지 기술이란 고효율 태양전지를 유연성 금속기판에 적용한 전원장치 기술을 일컫는다. 쉽게 말해 종이처럼 휘는 금속기판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장치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산업의 대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2015년까지 6조원의 경제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투명 스마트창 기술은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기반의 전자소자를 투명한 전자소자로 대체해 투명 단말기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투명한 유리를 컴퓨터 단말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기술은 장난감에서 기능성 자동차 유리, 지능형 쇼 윈도까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박상년 연구원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어 나가는 데 핵심적인 원동력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ETRI”라며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연구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後孫을 위한 원자력-34조4000억원 부가가치 창출
 
한국원자력발전소가 개발한 열수력 종합효과실험장치인 아틀라스.

  북대전 IC 출구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야트막한 野山(야산) 꼭대기에 ‘후손을 위한 원자력’이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광고판을 볼 수 있다. 그 뒤로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산실인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하 원자력硏·원장 梁明承)이 자리 잡고 있다.
 
  부지 142만㎡(43만평) 규모에 관련 건물 54개 棟(동)이 들어서 있다. 면적을 기준으로 대덕특구 단지에 입주해 있는 국책연구기관 중 최대 규모다. 원자로 연구시설, 핵연료주기 연구시설, 기초·기반 연구시설, 방사선이용 연구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 전북에 있는 정읍분원(부지 33만㎡)에는 방사선과학연구소 등 13개 시설이 입주해 있다.
 
  원자력硏은 전체 직원 1119명 중 석·박사급 연구기술직이 872명으로 전체 인력의 80%를 넘는다. ‘박사 後(후)’ 과정을 밟는 인력도 상당수다.
 
  원자력硏은 1959년 한국전쟁 이후 폐허 수준인 국내 과학·산업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첫 조치로 설립됐다. 이후 산업발전의 動力(동력)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6대 원자력 발전국으로 성장했다. 원자력硏 홍보실의 이종민씨는 “원자력연구원이 걸어온 길이 바로 한국경제 성장의 역사”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원자력은 산소처럼 깨끗한 에너지입니다. 석유·석탄 등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값싼 에너지이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미래 청정에너지죠. 정부의 이산화탄소 감소정책에 따라 원자력硏은 향후 수소 생산기술과 첨단 원자로·핵연료 연구, 방사선 융합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원자력硏이 그동안 거둔 성과는 상당하다. 경수로용 핵연료 국산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설계 및 건조, 한국표준형 원전 ‘KSNP’ 개발, 일체형 원자로 ‘SMART’, 원전감시용 수중로봇, 방사성 동위원소인 홀뮴 166과 키토산의 착화합물을 이용한 간암치료제 ‘밀리칸주’ 개발, 열수력종합실험장치 ‘ATLAS’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원자력硏은 ‘사용후 핵연료’ 속의 각종 핵물질을 분리·정제하는 ‘파이로 프로세스’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사용후 핵연료’를 제4세대 원자로에서 再(재)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우라늄 자원의 활용률을 지금보다 최대 100배 증대시킬 수 있는 ‘꿈의 기술’로 불린다.
 
  한도희 환경친화성 원자로개발단장은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성 독성이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 약 30만년이 걸리는 반면 파이로 프로세싱으로 추출한 고방사성 물질들을 소듐냉각고속로에서 연소시키면 1000년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원자력연구원은 1997년부터 소듐냉각고속로 개발에 착수, 지난해 중형 소듐냉각고속로인 ‘칼리머-600’의 개념설계를 마쳤다. 칼리머-600은 제4세대 원자력시스템 국제공동개발연구 프로젝트의 참고 爐型(노형)으로 선정됐다. 우리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원자력硏 종합엔지니어링 실험동에는 높이가 30m나 되는 실험장치가 있다. 단일 실험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아틀라스’이다. 원전에서 방사선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원자로의 성능과 안전성을 실험하는 장치다. 아틀라스 內(내)에는 지하 3층, 지상 6층짜리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원자력硏은 2002년 아틀라스의 기본설계를 완료하고 2003년 장치 구축에 착수했다. 2005년 말 제작 및 설치를 완료하고 시운전을 마친 뒤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백원필 열수력안전연구센터장은 “아틀라스는 과거의 실험시설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시설”이라며 “주요 기기를 공급하는 국내 업체들의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원자력硏은 1995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도 운전해 오고 있다. 하나로는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다.
 
  원자력硏은 의료·공학·농학·생명과학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도 생산 중이다. 이를 이용해 난치성 질환 치료제 홀뮴과 갑상선 질환 치료용 요오드, 의료용 이리듐 등을 개발했다.
 
  원자력硏은 1990년대부터 2006년까지 177건(무상실시 77건 포함)의 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했다.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21개의 벤처기업도 만들었다. 정부출연기관 최초로 기술출자 방식으로 설립한 (주)선바이오텍은 2005년 과학기술부 지정 제1호 연구소기업으로 지정됐다.
 
  원자력硏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조6283억원을 투자해 34조4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 대비 21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원자력硏 측은 국내 산업 매출증대에 23조6000억원, 국민경제 분야에 9조2000억원,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 1조6000억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것으로 전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세계 수준의 名品무기 개발-국방과학기술력 세계 10위
 
국방과학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KT-1 기본훈련기.

  무내미. 국방과학연구소(ADD·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소장 朴昌奎)가 위치한 地名(지명)이다. 무내미는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10㎞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수십 동의 ADD 건물은 무내미 일대 야산 350만㎡에 꼭꼭 숨어 있다. ADD 정문 안내실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연구소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軍(군)기밀에 속한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ADD에는 석·박사급 연구원 2500여 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DD는 첨단연구개발 역량 提高(제고), 大軍(대군) 싱크탱크 역할 강화 등이 기본 목표라고 한다. 병기장비 및 물자에 관한 연구개발, 시험 등을 통해 세계 일류 국방과학연구소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현재 ADD는 정밀타격, 지휘통제·통신, 감시정찰·센서, 에너지, 지상·무인화, 수중·해양, 항공·무인기, 시험평가 등으로 나뉘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소장 산하에 전산정보센터, 합동모의분석센터, 편조 체계개발단 등의 기구도 있다. ADD 관계자는 “국방부를 비롯해 각 군, 합참, 방위사업청, 방산업체 등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ADD는 1970년 낙하산, 소총 등 기본병기조차 미국에 의존하던 시절에 창설됐다. “자주국방 없이는 국가 안위를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에 의해 설립됐다. ADD 해상무기체계 개발본부장을 지낸 宋埈泰(송준태) 박사에 따르면, ADD 설립은 혈맹국인 미국도 모르게 은밀히 추진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미국은 연구소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한국이 연구소를 설립할 경우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돼 對韓(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제3국과 군사기술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후부터 호의적으로 변했다.
 
  ADD 영문이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당초 ADD의 영문이름은 RADS(Research Agency for Defence Science)였다. 그런데 미국 측은 “Defence Science라는 용어가 군사기술 지원에 장애가 된다”며 改名(개명)을 제안한 것이다. 과학적 연구보다는 개발에 중점을 둬 현재의 ADD(Agency for Defence Development)로 변경했다.
 
  ADD는 창설 이후 항공사업본부(1974), 해상·수중사업본부(1976), 부설 국방품질검사소(1981), 창원 기동시험장·진해 해상시험장(1995), 국방정보체계연구소(1999), 국방기술품질원(2006), 전자시험장(2006), 항공시험장(2007) 등을 설립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ADD 산하 지상무기체계 본부는 화력·기동·탱크·화생 분야의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사격통제 시스템과 방호력 기술 등을 포함한 10개의 특성화된 연구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다.
 
  수중·해양무기체계 본부는 해군 무기체계를 연구개발한다. 수중무기·수중탐지·전투체계·해상 플랫폼과 9개의 함정 및 해양기술 전문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항공·유도 무기체계본부는 對空(대공)·對地(대지)·對艦(대함) 등의 첨단 유도무기체계를 개발한다. 첨단 복합무기체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항공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본부로 유도·항공분야 연구실험실과 항공시험장을 갖추고 있다.
 
  통신·정보·電子戰(전자전) 무기체계본부는 군의 현대화와 정보전·전자전 등에 필요한 통신전자·정보소프트웨어·지휘통제 전자전 체계 등을 개발한다. 전자전 실험실, 위성통신 실험실 등을 운영한다.
 
  ADD는 지난해 建軍(건군) 60주년을 기념해 자체 개발한 名品(명품)무기 10가지를 선정했다. 세계 무기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주요 무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K9 자주포 미래 戰場(전장) 환경을 고려한 K9 자주포는 사거리(40㎞), 반응성, 기동성 및 생존성이 우수한 자주포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력화된 52구경 자주포다.
 
  ● K21 보병전투장갑차 40㎜ 주무장과 對(대)전차 유도미사일이 탑재돼 敵(적) 장갑차와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 이 장갑차는 전차 수준의 기동력은 물론 에어백식 부양장치가 탑재돼 있어 水上(수상)운행이 가능하다.
 
  ● K2 전차 독자개발한 세계 최상급 전차다. 120㎜ 활강포, 표적 자동탐지 및 추적장치, 유기압 현수장치, 피아식별장치, C4I 체계와 연동된 차량 간 데이터 통신 시스템 등의 첨단기술이 탑재돼 있다.
 
  ● K11 복합형 소총 敵軍(적군)의 머리 위에서 폭발이 가능한 차세대 소총이다. 구경 5.56㎜ 기존 소총과 구경 20㎜ 공중폭발탄 발사기 등 두 가지 총열을 하나의 방아쇠로 사용할 수 있다. 열 추적기와 레이저 장치 등을 통해 야간에도 정밀사격이 가능하다.
 
  ● 신형 輕魚雷(경어뢰) 청상어 함정과 항공기에 탑재해 잠수함을 공격한다. 청상어는 표적 충돌에 의해 폭발하며 1.5m 철판을 관통할 수 있다. 저소음 추진·수중 음향탐지·탄두 위력 면에서 세계적 수준이다.
 
  ● 艦對艦(함대함) 유도무기 해성 구축함·호위함·초계함 등에 배치해 운용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艦對艦(함대함) 유도무기다. 對(대)전자전 능력을 보유한 레이더 탐색기·고착식 관성항법장치·위성항법 장치가 부착돼 있다.
 
  ● KT-1 기본훈련기 한국 공군의 T-37을 교체하기 위해 개발된 한국 고유의 최초 군용기다. 950마력 엔진을 장착한 KT-1은 편대비행, 야간비행, 계기 및 배면비행 등 기동비행이 가능하다.
 
  ● 휴대용 對空(대공) 유도무기 신궁 低(저)고도로 침투하는 항공기를 타격하는 휴대용 對空(대공) 유도무기다. 기동성과 파괴성능 면에서 세계 최상급이다.
 
  이 밖에 地對地(지대지) 유도탄인 현무와 광역전술통신체계인 URC-700K 軍위성통신체계도 있다. ADD 관계자는 “우리 연구소는 연구원 수준이나 해외 수출 규모, 무기과학기술 수준 등을 종합할 때 현재 세계 10위이며, 2015년에는 세계 7위로 올라서는 게 단기 목표”라고 설명했다. 박창규 ADD 소장은 최근 全(전) 직원들에게 “국방과학연구소는 국방과학기술 전문집단으로서 20~30년 후 한국과 한반도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올 여름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최초의 과학위성 발사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 최초 우주 발사체인 KSLV-l에 실려 발사되는 과학기술위성 2호 이미지.

  대덕연구개발특구 동남쪽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하 항우硏·원장 李柱鎭)은 1989년 한국기계연구소 부설 항공우주연구소로 출범했다. 1996년 재단법인 형태로 개편한 후 200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발전했다.
 
  항우硏의 조직은 항공연구본부와 위성연구본부, 발사체연구본부, 위성정보연구소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항우硏에는 500여 명의 연구인력을 비롯해 800여 명이 근무한다. 연간 예산은 2008년의 경우 3634억원이었다. 우주발사체 시험동, 위성시험 확장동, 위성 시험동, 항공 시험동, 위성 운영동, 안테나 타워동, 회전익기 시험동 등의 연구시설이 있다.
 
  항우硏은 다른 국책연구기관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그동안 이룬 성과는 작지 않다. 경항공기(1993), 쌍발 복합재료 항공기(1997), 중형 과학로켓 KSR-II(1998), 국내 최초의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2호(1999·2006), 한국 최초의 액체추진 과학로켓(2002), 과학기술위성(2003), 다목적 성층권 장기체공 무인비행선(2003)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항공기술은 정밀기계·전기·전자·재료 등 관련 기술을 총 망라하는 연구개발 집약형 기술이다. 이 때문에 他(타)산업에 전달하는 파급효과가 강하다.
 
  항우硏은 국가 大型(대형) 체계개발사업인 KHP(Korean Helicopter Program) 사업의 주관기관이다. 항우硏이 개발 중인 한국형 헬기의 핵심기술로는 엔진·보조동력장치·연료펌프·연료탱크·연료량측정장치·축압기·유압펌프·착륙장치 등이 있다. 2018년까지 독자적으로 헬기를 생산해 세계 7위권의 헬기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항우硏은 스마트 무인항공기와 先尾翼(선미익) 항공기의 개발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 무인항공기 사업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2012년까지 세계 5위권의 무인항공기 선진기술국으로 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율비행, 충돌감지·회피, 능동적 적응제어 등 핵심 스마트 기능과 수직 이·착륙 및 고속비행이 가능한 차세대 지능형 무인항공기 시스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항공시장 진입을 목표로 개발 중인 선미익기는 기동능력이 우수한 것이 특징. 선미익기는 수직꼬리날개와 수평꼬리날개를 기체의 앞쪽에 장치한 비행기를 말한다. 고속 항공기에 적용되는 비행기 형체로, 2001년 선미익기 시제품을 만들어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성능을 개량해 ‘반디호’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항우硏 홍보협력실 관계자는 “현재 개발 중인 선미익기는 4인승 소형 항공기로, 동체와 날개구조가 첨단 복합재료로 제작돼 비용이 저렴하고 비행훈련·레저스포츠용으로 적합하다”고 했다.
 
  항우硏은 지난해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해 주목을 받았다. 이 사업은 한국이 有人(유인) 우주기술 시대와 우주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첫 단계였다. 항우硏은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차세대 국가 항공교통체계 구축에 필요한 관련 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2009년 여름 항우硏은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100㎏급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우주발사체(KSLV-I)에 실어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린다. 과학위성 STSAT-2는 지구온도분포 및 대기 수분량을 측정하고 他(타)위성의 궤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임무를 맡는다.
 
  우주발사체 개발사업은 실용위성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항우硏 측은 “2015년까지 1.5m급 다목적 실용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기계연구원]
 
  세계 3大 자기부상열차 기술 보유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 중인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한국기계연구원(KIMM·이하 기계硏·원장 李相天)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지상 10m 높이의 기차레일이 설치돼 있다. 국가 연구사업의 하나인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개발을 위한 시설이다. 조상배 기계硏 지식경영홍보실장은 “2012년까지 시속 110㎞급 無人(무인) 자기부상열차를 완성하기 위해 차량과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 사업이 성공하면 일본, 중국과 더불어 세계 3大(대) 자기부상열차 보유국이 된다”고 했다.
 
  기계硏은 기계·금속 분야의 산업기술을 향상시키고 수입 기계류의 국산화와 품질의 국제화를 위해 1976년 기계금속시험연구소로 출범했다. 1992년 본원을 창원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한국기계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7년에는 창원 분원을 재료연구소로 특화했다. 현재 기계硏에는 300여 명의 정규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연구직은 230여 명(박사급 190명)이다. 연간 예산은 1000억원이 넘는다.
 
  기계硏은 미래원천기술과 국가전략기술 개발을 위해 나노융합기계·지능형 생산시스템·그린환경기계·에너지 플랜트·시스템엔지니어링 등 5개 전문분야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나노·마이크로 생산장비와 환경·에너지 플랜트 기계장비를 ‘2대 대표브랜드’로 선정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계硏은 국내 최초의 산업용 로봇 독자기술인 6축 다관절 로봇을 비롯, 레일 위를 떠서 달리는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생활폐기물을 연료로 재생해 사용할 수 있게 한 폐기물 고형연료화 플랜트를 개발했다. LPG를 연료로 출력과 연비를 디젤수준으로 향상시킨 저공해 LPGi 엔진, 적외선 탐지기의 핵심부품인 초소형 극저온 냉동기, 반도체 생산공정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나노 임프린트 공정장비, 디젤 차량의 매연저감을 위한 DPF 재생용 플라즈마 버너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계硏은 효율적인 産硏(산연)협력을 통해 國富(국부)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기계硏은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기관평가에서 6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기계硏은 지난해 특허등록 182건과 논문 269건의 결과물을 내놓았고 40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벌어들였다.
 
  기계硏은 대형 국가 연구개발 사업으로 자기부상열차 실용화사업(2006~2012·4500억원), 무·저공해 자동차사업(2004~2011·650억원), 나노 메카트로닉스 기술개발사업(2002~2012·1286억원), 부품·소재 신뢰성평가 기반구축사업(2000~2010·680억원)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 기술 선도-老化와 수명연장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에서 사육 중인 연구용 원숭이.

  생명공학은 인간이 질병, 기아,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희망의 과학’이다. 생명공학은 인간의 과학이며, 인간을 위한 과학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이하 생명硏·원장 朴英薰)은 국내 생명공학 기술개발의 중추기관이다. 1985년 KIST 부설 유전공학센터로 출발한 후 1995년 생명공학연구소로 독립했다가 2001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으로 확대됐다.
 
  이종우 생명硏 선임행정원은 “우리 연구원은 생명현상의 근본적 이해를 위한 기초연구를 비롯해 보건의료, 식량, 바이오신소재, 환경, 新(신)에너지 등 첨단 생명공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생명硏에는 180여 명의 연구인력을 포함해 300여 명이 일한다. 별정직 연수생까지 포함하면 전체 직원은 660여 명에 달한다. 대덕특구에 위치한 본원에는 바이오융합연구본부·의과학연구본부·바이오인프라사업본부가 있고, 오창총괄본부에는 바이오의학연구소가, 전북분원에는 분자생물공정연구센터와 생물산업기술연구센터가 있다.
 
  첨단 분야에 걸맞게 연구실적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외에서 획득한 특허건수는 2004년 223건이었다가 2007년부터 300건을 넘고 있다. 연구진이 국내외에 발표한 수준 높은 논문도 2005년부터 300건을 넘었다. 민간에 이전한 최첨단 기술은 지난 5년 동안 66건에 이른다.
 
  최진선 생명硏 홍보협력실장은 “2016년까지 세계의 바이오 기술을 선도하는 전문연구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생명硏은 BT·IT·NT를 융합해 생명공학의 최첨단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차세대 바이오신약 개발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포재생기술을 활용한 줄기세포와 유전체를 이용한 신기능 생물 개발도 이들의 주요 도전 대상이다.
 
  생명硏은 최근 몇 년 동안 침팬지 유전체 연구에 매달려 침팬지의 22번 염색체와 인간의 21번 염색체를 비교분석해 인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해냈다. 오창총괄본부에 있는 국가영장류센터가 이 연구를 담당했다. 영장류센터는 영장류 연구를 위한 전문연구센터다. 연구용 영장류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인간의 난치성질환 연구와 신의약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생명硏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물을 얻었다. 2006년 암세포 증식 조절 단백질을 최초로 규명했으며, 2007년에는 동물복제의 실패 원인을 규명했고, 지난해에는 성장조절 기전을 밝혀내 노화와 수명연장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생명硏 산하 장수과학연구센터와 뇌신경연구센터가 이 분야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硏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사업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식물추출물로부터 천연 염증 치료물질을 개발해 국내 제약회사에 이전해 줬다(기술이전료 26억원). 또 자생식물에서 抗(항)인플루엔자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해 모 회사에 20억원의 이전료를 받고 넘겼다. 이밖에도 동식물조직 특이 신약 후보유전자 예측시스템(10억원), 종양 진단·치료용 항체개발(10억원), 위암진단 기술(6억원)을 일반기업에 전수했다.
 
  생명硏은 2008년 역대 최고수준의 기술이전 성과(92억원)를 이뤘으며, 연구소기업인 (주)메디셀을 설립해 관련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종우 생명硏 선임행정원은 “바이오 분야의 기술사업화 촉진을 통해 올해는 100억원 이상의 기술이전 계약을 달성할 것”이라며 “1호 연구소기업인 메디셀에 이어 제2, 제3의 연구소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했다.
 
  생명硏은 글로벌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28개국 103개 기관과 협력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기술 선진국과는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4대 권역별 거점(중국·코스타리카·인도네시아·남아공)을 중심으로 생물자원 공동활용 네크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허치슨암연구소,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 등과 공동연구협력센터를 운영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에이즈와 당뇨병 치료제 개발-세계 5大 화학강국이 목표
 
한국화학연구원이 개발한 에이즈치료제 후보물질.

  2008년 7월 李允鎬(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이 대덕특구에 위치한 한국화학연구원(KRICT·이하 화학硏·원장 오헌승)을 방문, 孫鍾贊(손종찬) 박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외국 회사가 열심히 물건을 팔면 우리 주머니로 돈이 들어옵니다. 기술수출국의 위상을 높인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기술개발을 위해 밤잠을 설쳤을 텐데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이윤호 장관은 손종찬 박사가 에이즈(AIDS)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해 세계적인 제약회사에 거액의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전을 한 데 대해 격려차 방문한 것이다. 손 박사의 공로로 화학硏은 1차 기술료 10억원을 포함해 정액기술료 85억원을 받게 됐다. 이와 함께 2028년까지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추가로 받는다. 상용화 時(시)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이 예상된다.
 
  손 박사가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은 부작용이 적고 1일 1회 투여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어 기존 치료제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종찬 박사가 소속된 화학硏 신물질연구단은 감염증 치료제, 심혈관질환 치료제, 당뇨·비만치료제와 같은 세계적 新藥(신약)을 개발하는 곳이다.
 
  화학硏에는 신물질연구단 외에도 그린화학연구단(친환경 석유대체 화학분야의 원천기술 개발)과 화학소재연구단(에너지소재와 화학소재 응용기술 개발)이 있다. 3개 연구단 산하에 13개 연구센터가 분야별로 나눠져 있다.
 
  화학硏은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신성장 산업 창출을 목표로 1976년 설립됐다. 첨단 화학기술을 개발해 국내 화학산업과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화학전문 연구기관이다.
 
  화학硏은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연구성과를 낳았다. ‘석유화학 원료 중질 나프타 접촉분해기술(2002~2008)’은 연간 60만 t의 이산화탄소를 줄여 1000억원 이상의 에너지 절감효과가 있다. (주)SK에너지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차세대 청정연료 DME 제조기술’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춰 에너지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천연가스로부터 합성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GTL 파일럿 플랜트 공정(2006~2008)’은 천연가스를 다양한 형태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태양전지용 다결정 실리콘 잉곳 양산기술(2005~2008)’은 세계 최고의 공정기술로,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잉곳이란 금속 또는 합금을 녹여 鑄型(주형)에 넣어 굳힌 덩어리를 말한다. 이 기술은 현재 (주)글로실이란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잉곳 기술을 개발한 文相珍(문상진) 화학硏 에너지소재연구센터장은 “태양전지의 경제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잉곳이 대형화하고 있다”며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6세대 잉곳(800㎏급)을 지금 당장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2004~2008)’은 기존 당뇨병 치료제의 부작용(저혈당·위장장애·체중증가 등)을 줄여 효능이 뛰어나다. 이 기술은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에 이전돼 현재 임상시험 중이다. 2012년 3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세계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320여 명으로 구성된 화학硏은 한국을 ‘세계 5대 화학강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손기정 화학硏 홍보팀장은 “5대 화학강국이 되기 위해 2011년까지 화학 원천기술 7건, 연구비 대비 기술료 수입 7% 실현을 경영목표로 뛰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신개념 온돌 장치 개발-그린에너지기술 연구기관
 
제주 신재생에너지기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장치.

  高油價(고유가)로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다. 기름값이 올라가는 이유는 화석연료가 有限(유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全(전) 세계는 자원확보 전쟁상태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세계 5대 원유수입국이자 10대 석유소비국이다. 에너지기술 개발은 제2의 에너지자원 확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이하 에너지硏·원장 韓文熙)은 1977년 한국열관리시험연구소로 출발했다. 태양광·풍력·바이오·연료전지·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에너지기술을 보급하는 데 노력해 왔다. 에너지硏은 국가의 에너지기술 정책 수립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350여 명(연구직 230명)으로 구성된 에너지硏은 최근들어 低(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그린에너지기술 중심 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에너지硏은 선임연구본부 산하에 신재생에너지연구본부(태양광·연료전지연구단), 기후변화기술연구본부(온실가스연구단), 효율소재융합본부, 기술지원실 등이 있다.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핵심기술센터를 만들어 연료전지·바이오에너지·실리콘태양전지·태양열 등을 연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는 21C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을 설립해 이산화탄소 저감 및 처리기술, 고효율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에너지硏은 지난해 물을 분해해 수소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시간당 3L의 수소를 만들어 낼 수 있어 효율 면에서 세계 최고다. 이 분야에서 기술이 가장 앞선다는 일본은 시간당 1L를 생산할 수 있다.
 
  에너지硏은 태양광발전모듈의 핵심소재인 ‘EVA 시트(sheet)’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EVA 시트는 습기침투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 태양전지를 보호하고 전지의 수명을 20~30년까지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재로 그동안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했다. EVA 시트의 국내 소요량은 2008년 한해 동안 120억원에 달했다. 우리 기술이 상용화되면 3300억원 규모의 세계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硏은 새로운 개념의 열저장 건자재 개발에도 성공했다. 열저장 미립자 캡슐을 건축자재에 혼합해 열저장률이 높은 자재를 생산한 것으로, 신개념 ‘온돌 장치’로 불린다. 연간 1800억원의 에너지 절감효과를 볼 수 있어 서민들의 주택연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硏 대외협력실의 황훈숙씨는 “에너지 전쟁이 치열한 국제상황에서 우리 연구원의 책임이 무겁다”며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이 상용화되면 상당한 국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에너지硏은 박막태양전지, 고분자연료전지용 장치, 이산화탄소 포집용 흡수공정 등을 3대 중점기술로 선정했다. 또한 태양광·청정연료·수소연료전지·친환경건물·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에너지素材(소재) 등을 6大(대) 중점연구분야로 지정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가스하이드레이트 발견-자원외교의 尖兵
 
동해 해저에서 추출한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노란 불꽃을 내며 타고 있다.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35분.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지진관측소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 함경도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지진파가 퍼져 나온 사실이 우리 관측소에 포착된 것이다. 지진파는 순차적으로 국내 여러 곳의 지진관측소에서 관측됐다.
 
  지진관측소는 곧바로 지진파(P파·S파)의 진폭을 비교, 파동이 자연지진이 아닌 핵실험에 따른 인공 발파에 의해 생성됐음을 확인했다. 발파량은 TNT 1000t 가량이며 지진규모는 3.9였다. 북한의 핵실험 감행 사실을 최초로 감지한 곳이 바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이하 지질자원硏·원장 張浩完) 지진연구센터였다.
 
  2007년 6월 19일 울릉도 남방 100㎞ 해상에 떠 있던 탐사용 선박 ‘탐해2호’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구단이 2000년부터 동해 海底(해저)를 샅샅이 뒤지며 그토록 苦待(고대)했던 가스하이드레이트(발화성 고체 연료에너지)를 채취하는 순간이었다. 수심 1800m 해저에 130m 깊이의 기둥모양의 가스하이드레이트 지층과 인근 2개 지점에서 또 다른 가스하이드레이트 지층도 발견했다. 매장량은 약 6억t으로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 2000만t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30년간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었다. 탐해2호에서 파도와 싸우며 가스하이드레이트 지층을 발견한 연구단은 지질자원硏 소속 연구원들이었다.
 
  지질자원硏은 광물자원·국토지질·석유해저·지구환경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420여 명으로 구성된 지질자원硏은 기후변화와 지질재해방지, 국토환경 보전, 新(신)에너지자원 확보, 지질자원정보 구축, 자원활용 및 소재 기술개발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구조를 4차원의 정밀영상으로 볼 수 있는 첨단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지형을 탐사하기 위해 원격조종 탐사시스템도 개발했다. 그 결과 지질자원硏은 2008년 정부 혁신평가 56개 연구기관 중 1위를 차지하는 등 정부가 주관하는 각종 평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지질자원硏은 1918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한반도의 광물자원을 캐내기 위해 설립한 ‘지질조사소’가 前身(전신)이다. 해방 후 중앙지질광산연구소, 국립중앙지질광물연구소, 국립지질조사소, 국립지질광물연구소, 자원개발연구소, 한국자원연구소 등을 거쳐 2001년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김문형 지질자원硏 전략홍보실장은 “국책연구기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며 “2000년 이후부터 해외로 나가 자원외교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질자원硏은 현재 30개국과 100여 건의 MOU를 체결해 해외자원 확보 및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에서 자동차 번호판 식별할 수 있는 망원경 개발
 
한국표준연구원은 살아 있는 세포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CARS바이오현미경을 개발했다.

  192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밀리컨(1896~1986). 물리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는 과학 발전의 핵심적 요소를 ‘실험에 쓰이는 장치를 개선하고 질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측정’은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토대이자 학문의 근거였다.
 
  측정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일어난다. 시계를 보고, 온도를 재고, 키를 재고, 자동차의 속도를 재는 일이 측정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절대적 기준, 즉 측정표준이 필요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하 표준硏·원장 金明壽)은 이 같은 측정의 표준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1975년 출범한 표준硏은 국가 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측정과학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표준’은 과학기술과 국가경제,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한국의 측정표준 수준은 세계 6위(국제도량형국이 실시한 국제비교 결과)다.
 
  표준硏의 최신 연구성과로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멀티플렉스 CARS 바이오현미경’을 들 수 있다. 살아 있는 세포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다. 바이오현미경에는 나노 단위의 측정제어기술이 들어있다. 이 현미경을 의료진단장비에 적용하면 암과 당뇨 등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또 동맥경화에 걸린 세포조직을 분자화학영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
 
  표준硏은 대한민국 표준시계인 ‘KRISS-1’을 100%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했다. 1초의 定義(정의)를 실현하는 진정한 시간 개념을 확보한 것이다.
 
  표준硏은 또 위성탑재용 직경 2m급 광학거울도 개발했다. 이 거울을 관찰용 인공위성에 장착할 경우 해상도 0.1m 이하(우주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초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대형 정밀 망원경을 국산화해 연간 수백억 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거울을 사용하면 천체 망원경도 만들 수 있다.
 
  김명수 표준硏 원장은 “2015년에는 동북아 시대를 이끄는 아시아 최고의 국가 측정표준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며 2020년에는 세계 5위권 안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민간연구기관들
權世珍 月刊朝鮮 기자  (sjkwon@chosun.com)

수만평, 수십만평 규모의 각종 연구소가 즐비한 대덕 연구단지를 돌아보면 즐비한 국책연구소들 사이로 LG화학, SK에너지, GS칼텍스 등 대기업의 연구소가 눈에 띈다. 대기업들이 1980~90년대에 걸쳐 앞다퉈 대덕에 연구소를 마련한 것이다. 대덕 연구단지가 국내 첨단의료와 녹색성장의 尖兵(첨병)을 자부하고 나선 가운데 이에 앞장서는 의약업체 LG생명과학과 삼양사(의약BU: Business Unit), 에너지기업 SK에너지 등 세 곳의 연구소를 돌아봤다.
 
 
  [국내 최초 신약 개발한 LG생명과학기술연구원]
 

LG생명과학 CTO(최고기술책임자) 김성천 상무는 “R&D와 해외시장 비중을 높이는 것이 국내기업의 과제”라고 말했다.

  대덕특구 내 유성구 문지동의 LG생명과학기술연구원은 LG화학 중앙연구원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LG화학의 한 부문이었다가 2001년 分社(분사)했다. 1979년 문을 연 LG화학 중앙연구원은 민간연구원 중 최초로 대덕에 자리잡은 곳이다.
 
  300여 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LG생명과학연구원은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R&D 지원팀 朴廣欽(박광흠) 부장은 “신약 개발은 최소 10~15년이 걸리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2~3개월 만에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전자나 IT 등 다른 연구소처럼 긴장감은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 출입을 위해서는 공항 검색대와 유사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LG생명과학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초 선보인 신약 ‘팩티브’ 덕분이다. 만성 기관지염과 폐렴 등 호흡기 질환자들에게 사용되는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는 2001년 뉴질랜드, 2002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았고, 2003년 국내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으로 승인 받은 제품이다. 국내 제약 110여 년 역사에서 미국에서 신약으로 승인 받은 제품은 팩티브가 유일하다. 이 제품은 기존에 널리 사용돼 온 페니실린계 항균제보다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원을 둘러보기 전에 CTO(최고기술책임자) 金聖天(김성천) 상무를 만났다. 1989년 LG화학에 입사한 김 상무는 연구원으로 입사했지만 연구소 근무경력 외에도 사업개발과 전략담당 임원을 맡았고 해외지사(美 샌디에이고) 수립에도 큰 역할을 하는 등 社內(사내)의 중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LG생명과학이 어떤 기업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일반 의약제품과 바이오의약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습니다. 건강보조식품과 동물약품 등도 생산하고요.”
 
  -LG생명과학의 지난해 매출은 제약업계 중 10위권 밖으로, 대기업 계열사치고는 순위가 높지 않은데요.
 
  “대부분의 국내 제약회사들은 역사가 오래돼서 제품 수가 많고, 제네릭(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약)의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우리보다 매출 규모가 큽니다. 우리 회사는 기존의 의약제품 판매보다는 R&D와 라이선스 수출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R&D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현재 R&D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600억원 정도로 매출의 20~25% 선입니다. 인원으로 볼 때는 전체 1100여 명 중 300여 명으로 30%가 조금 못 되고요.”
 
  -일반 대기업은 R&D 비중이 높다 해도 10%가 안되는데, 그 정도면 기업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사실 이 정도의 R&D 비중은 벤처기업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향후 15% 선으로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R&D 비용 자체를 줄이는 게 아니라 매출을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는 제네릭의 비중이 높은 일반 제약회사와 달리 신약과 바이오의약품(합성의약품이 아닌 세포에서 생산한 의약품으로 성장호르몬과 간염백신 등이 있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 개발 중인 신약 프로젝트가 16개 있고요. 라이선스 수출과 해외판매 등으로 매출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LG생명과학 연구소.

  -LG생명과학 하면 팩티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LG화학에서 分社(분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도 팩티브였죠. 팩티브 하나만으로도 이 회사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모두들 판단했으니까요. 그 정도로 미국에서 신약으로 승인 받았다는 의미는 큽니다. 팩티브는 개발비용만 3000억원이 들어가는 바람에 수익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 팩티브는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0여 개국에 등록됐고, 올해는 30여 개국에서 판매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시장을 공략하겠다고 했는데, 국내 의약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가 힘들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 회사의 매출 중 4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국내 제약업의 해외진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국내 제약 시장이 다 합쳐야 10조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 시장을 수백여 개의 제약업체가 나눠먹다 보니 내수시장을 바라보면 한계가 있죠.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의약업은 전 세계 제약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업체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입니다. 그래서 R&D와 해외영업의 중요성이 국내 업체들에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LG생명과학이 국내 제약업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죠. 선진국 시장과 제3세계 시장을 함께 공략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
 
  김 상무와 함께 연구소를 돌아봤다. 이 회사의 대덕연구소는 의약연구소와 바이오연구소, 제형/공정연구소 등 3개 연구소와 의약개발센터, 임상담당 등 32팀 29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4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인력의 25% 정도가 박사학위 소지자다.
 
LG생명과학의 한 연구원이 의약 연구를 하고 있다.

  각 연구실의 구조는 대부분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하늘색 가운을 입고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연구원들에게서는 열의가 느껴졌다. “약의 개발과 합성 및 분석, 동물실험까지 이 연구소 안에서 모두 이뤄진다”고 김 상무는 설명했다. 생체실험(in vivo)실에서는 독성팀의 연구원들이 미생물의 세포를 이용해 현재 개발중인 백신의 독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 상무의 설명이다.
 
  “개발중인 약은 시험관 실험(in vitro)과 생체실험을 거쳐야 동물이나 사람을 이용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약은 개발하고 만드는 것보다 검증하고 실험하는 데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험과 분석의 역할이 중요시됩니다.”
 
  지하에 위치한 동물 실험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김 상무의 설명.
 
  “쥐와 햄스터, 개까지 다양한 실험용 동물이 있습니다. 해당교육을 받은 관련 연구원만 출입할 수 있지요. 사람을 상대로 한 임상시험은 병원에서 이뤄지니까 안전성과 효과는 이 연구소에서 대부분 검증이 마무리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 상무는 “언뜻 보기엔 연구원이 기존의 프로젝트를 검증하는 곳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발하게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상·하반기에 전 연구원이 프로젝트 미팅을 갖고 신약개발 후보를 내놓습니다. 해마다 5건 정도는 새롭게 연구에 들어가고요. 수 년에 걸쳐 연구가 진행되다가 탈락되는 프로젝트도 많습니다. 조용한 듯 보이지만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곳이죠.”
 
  그는 “그동안의 연구결과가 서서히 윤곽을 보이고 있어 2011년부터는 ‘팩티브’ 수준의 획기적인 신약이 매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리더 SK에너지기술연구원]
 
SK기술원의 한 연구원이 석유공정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인근 원촌동에 위치한 SK에너지기술연구원(약칭 SK기술원)은 최근 SK그룹이 내놓은 ‘그린 오션’ 전략의 최전방부대다. 崔泰源(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2월 22일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에 따라 SK기술원을 중심으로 녹색기술 개발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그린 오션 전략에 대해 밝혔다.
 
  탄소에너지(석유) 업체인 SK에너지가 탄소연료를 배제하는 것이 기본인 녹색성장 분야에서 앞서나가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원촌동 널찍한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SK기술원은 에너지연구소와 화학연구소, CRD(Corporate R&D)연구소 등 3개의 연구소와 연구지원조직으로 구성돼 있었다.
 
  朴相勳(박상훈) 기술연구원장은 “SK기술원은 SK R&D의 중심으로 석유와 석유화학 등 기반사업 외에도 신에너지와 환경기술, 미래성장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SK기술원은 1985년 ‘울산 기술지원연구소’로 출발했다. 울산공장 현장에 대한 기술지원을 주 업무로 했던 기술지원연구소는 1995년 대덕으로 옮기면서 신제품과 신공정 등에 대한 독자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석유와 윤활유, 아스팔트 등 에너지 사업영역의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 고객 및 시장기술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에너지연구소에 먼저 들렀다.
 
SK기술원에 SK그룹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기술원을 방문해 수소연료를 주입하고 있는 SK그룹 신헌철 부회장.

  박 원장은 “최근 석유관련 연구분야의 주제는 고성능과 고급화, 淸淨(청정)”이라며 “지속적으로 석유제품을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에서 나온 제품이 고성능 휘발유 ‘솔룩스’와 프리미엄급 윤활유 ‘지크’다. 2005년 선보인 솔룩스는 청정제와 연비개선제를 추가로 주입해 엔진보호성능을 극대화하고, 엔진 내 이상연소(노킹)를 줄인 고성능 휘발유다. 박 원장은 “솔룩스는 성능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황 함량을 법적 기준치보다 크게 낮췄습니다.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거죠.”
 
  이 밖에도 박 원장이 소개한 것은 전 세계 고급 윤활기유(윤활유의 원료가 되는 오일)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제품 ‘유베이스’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미국석유협회(API) 분류기준으로 ‘그룹 3’(가장 품질이 좋은 그룹)에 속하는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서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에너지연구소를 돌아보는 동안 에너지·화학업체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먼지 한 점 없이 깔끔했고 불쾌한 기름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CRD연구소는 회사의 미래를 위한 신성장 동력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보유한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신촉매, 신재생 에너지, 정보전자소재, 환경기술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녹색성장과 관련, 가장 주목 받는 곳이다.
 
SK기술원.

  박 원장은 “최근 신에너지와 환경 분야에 그룹 전체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 선두주자가 기술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성장과 관련해 SK에너지기술연구원이 집중하고 있는 연구내용은 세 가지.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기술 개발과 수소에너지 개발, 친환경 플라스틱 기술이다. 이를 위해 연구원은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 확보, SK케미칼, SKC와 협력해 상업화 기술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또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자동차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수소에너지 기술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자체개발한 수소제조장치를 적용한 수소스테이션을 기술원에 완성한 것. 박 원장은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해 수소스테이션 관련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래에너지 개발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밖으로 나오자 사원들을 위한 시설인 축구장과 테니스장, 휘트니스센터와 주말농장이 눈에 띄었다. 홍보팀 오세진 과장은 “사원을 위한 복지시설과 혜택이 잘 갖춰져 있어 오히려 서울보다 대덕 근무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룹이 ‘그린 오션’의 주체로 SK기술원을 지목하면서 더욱 사내에서 주목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승부 삼양중앙연구소]
 
삼양사의 한 연구원이 의약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삼양중앙연구소는 대덕연구단지 내(화암동)에 있지만 앞서 방문한 연구소들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았다. 삼양사는 화학과 식품, 의약, 개별사업(사료와 무역 등) 등 4개의 사업분야(BU)로 구성돼 있다. 삼양사의 식품 부문은 설탕과 밀가루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삼양사의 브랜드가 ‘큐원’이다. 식품산업을 기초로 설립된 삼양사가 첨단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의약이다.
 
  삼양사의 R&D는 1979년 전주공장에 연구소를 마련한 것이 효시다. 식품과 화학 등 분야의 연구를 진행해오던 삼양사 연구소는 1993년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며 의약연구소를 신설했다. 현재 삼양사 중앙연구소는 의약과 의료용구, 화학, 산업용자재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李東昊(이동호) 연구소장(의약BU장, 부사장)은 “삼양사의 의약BU는 약물전달시스템(DDS)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며,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2004년 삼양사로 스카우트된 이 소장은 “삼양사는 그룹 내 축적돼 온 합성수지 및 정밀화학 분야의 경험과 기술력이 풍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의약분야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60여 명의 연구인력이 일하고 있는 이곳의 로비에는 삼양사가 선보인 각종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암 환자를 위한 통증관리 패치와 구토방지 패치, 금연보조 패치, 진통소염 패치, 경구용 대장염 치료제 등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제품이 있지만, 삼양사 의약BU가 주력하는 상품 중 하나는 흡수성 수술용 봉합絲(사)다. 일반적으로 ‘녹는 실’로 알려져 있는 흡수성 수술용 봉합사는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제품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국내의 많은 병원들이 삼양사의 봉합사 ‘트리소브’와 ‘써지소브’를 사용하고 있다.
 
  이 소장은 수술용 봉합사 연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흡수성 봉합사 시장은 1990년대 말까지 미국의 ‘에치콘’社(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특허로 인해 기술개방도 거의 없었고 병원에서만 사용되는 제품이라 진입장벽도 높았죠.”
 
삼양사의 수술용 봉합사.

  이 제품의 국산화 개발 과정에서 생체 내에서 봉합사의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삼양사는 연구인력을 강화해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연구 10여 년 만인 1997년 에치콘 제품과 동등한 수준의 ‘트리소브’를 출시했다. 삼양사는 이 기술력을 인정 받아 과학기술처로부터 KT(Korea Good Technology) 마크와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의 흡수성 봉합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곳은 미국의 에치콘과 삼양사 두 곳뿐이라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삼양사의 수술용 봉합사 사업은 이후 연 평균 5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소장의 설명이다.
 
  “연구개발에 집중한 것과 동시에 고객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마인드로 전사가 노력한 덕분에 놀라운 성장을 겪을 수 있었죠.”
 
  그는 삼양 의약BU의 대표제품 중 하나인 항암주사제 ‘제넥솔’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제넥솔은 삼양사가 세계 최초로 식물세포배양에 성공해 개발한 항암주사제. 삼양사는 1995년 원시림에서 자생하는 주목에서 추출한 항암물질 ‘파클리탁셀’을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고, 1997년 이를 이용한 제넥솔 주사제를 완성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徐閔孝(서민효) 박사는 “우리가 최초로 개발한 물질이었지만 회사규모상 품목허가 취득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제넥솔은 유방암과 폐암에 대한 임상시험을 거쳐 2007년 2월 출시됐다. 현재 삼양사는 제넥솔의 췌장암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며, 미국을 비롯해 해외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이 두 가지 제품을 중심으로 의약제품은 물론 의료용구까지 개발, 생산하는 곳이 삼양중앙연구소다. 연구활동은 해외로 확대돼 2004년에는 미국 유타주에 의약연구 개발법인(삼양 리서치 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특이한 것은 신기술 개발로 이익 창출에 기여한 직원들에게 최대 2억원까지 보상해 주는 인센티브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는 것. 이 소장은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해외 선진기업들과 제휴하는 한편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해외수출 기반을 견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소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최근 민간연구소의 트렌드는 R&D와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 전의 R&D가 실험실 중심이었다면, 근간의 R&D는 실험실 밖, 즉 市場(시장)으로 나왔다는 느낌이었다. 의약과 그린에너지 등 첨단산업을 연구하는 연구원들도 ‘시장과 고객의 수요’에 관심이 많았다.⊙

 

新에너지 개발 현장
 인공태양, 原電안전기술로 ‘그린 에너지’ 시대 앞당긴다
 
李根平 月刊朝鮮 인턴기자  (pubmonth@chosun.com)

녹색성장은 온실가스를 줄임으로써 환경오염 영향을 저감시키고,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이다. 즉 현재까지 인류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해 왔던 석유나 천연가스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 환경오염을 막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결단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녹색성장을 이끌고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이에 대한 총력투자를 다짐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밀집한 대덕특구에 쏠리는 관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바야흐로 과학의 융합기술 시대, 産學(산학)협동이 갖는 이점을 그 어떤 곳보다 잘 실현시킬 수 있는 대덕특구. 그곳의 연구원은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사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친환경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대체에너지 연구의 중심]
 
  에너지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찾으면서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친환경 에너지 혹은 녹색성장 에너지라 하면 원자력보다는 풍력, 조력, 태양열 등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 친환경과 원자력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견은 대부분 지금까지 있었던 굵직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이었다. 일례로 1979년 드리마일과 1986년 체르노빌에 있었던 原電(원전) 사고는 획기적인 대체에너지로 알려진 원자력에 대해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KINS의 윤철호 원장. 윤 원장은 원자력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대체에너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KINS에서 만난 尹喆浩(윤철호) 원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윤 원장의 설명이다.
 
  “두 사건은 역설적으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리마일 사고는 돔형 구조물 덕에 방사성 물질이 발전소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체르노빌 사고는 돔형 구조물이 없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돼 많은 피해를 냈던 것입니다.”
 
  격납 용기의 존재 유무에 따른 설계 차이가 원자력의 안전성을 좌우했다는 점에서 ‘원자력은 관리만 잘하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방증했다는 얘기다.
 
  KINS는 ‘원자력 이용 개발로부터 국민의 안전한 삶과 환경을 수호한다’는 구호를 걸고 설립된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실제 안전성과 정서적인 안전성을 동시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원자력이 널리 쓰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원자력은 안전성만 제대로 확보된다면 환경에 해가 없이 쓰일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원이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대체에너지다. 윤 원장의 말이다.
 
  “신재생에너지라고 해서 태양열, 풍력을 주목하지만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은 현실적 대안이 못됩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실질적인 대안 에너지로 원자력이 각광받고 있는 현상을 보세요.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그의 말처럼 원자력은 현재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가장 큰 비중인 약 39%를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은 2030년까지 60%로 확대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윤 원장은 “현재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 한국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들 국가가 원자력 후발 국가에 수출하는 것은 단순히 원전만은 아니다. 윤 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원자력 안전기술원. 필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국제원자력안전 석사프로그램’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날이었다.

  “원전을 파는 나라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요구에 따라 원자력 관련 인프라까지 팔아야 합니다. 잠재적인 원전 도입국에 안전기준, 법령, 규제 시스템, 규제인력 양성, 기술 등을 패키지로 파는 것이죠. 현재 우리 기관과 카이스트는 공동으로 국제원자력안전 석사과정을 개설해 후발 국가의 인재를 끌어들여 원자력 안전에 대한 각종 커리큘럼과 학위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원자력 안전규제 인프라가 한국화해 깔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이 원전을 팔 때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지 않을까요.”
 
  윤 원장은 “徐南杓(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 몇 분 전에 이와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왔다”며, “이것이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윤 원장의 말이다.
 
  “우리의 본업인 국제 원자력 안전성 향상에 기여하고, 동시에 우리나라 원전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와 함께 원자력 발전 부문의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top) 3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KINS의 金相鉉(김상현) 홍보팀장은 “우리 연구원이 녹색성장을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전거 출퇴근 서약식’ 정도지만, 원자력에 대한 안전규제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석연료의 실질적 대체에너지인 원자력 발전에 밑거름 역할을 하는 곳이 우리 기술원”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필요한 대체에너지를 충당하고 그것을 수출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녹색성장의 취지를 다시 음미해 보면, KINS야말로 이 사업의 숨은 공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윤 원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안전규제는 원자력 발전이 녹색성장으로 인식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만약 우리와 같은 연구기관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출 산업은 고사하고, 가장 현실적인 대체에너지원을 포기한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인공태양 개발의 주역]
 
  국가핵융합연구소(NFRI)를 방문하기 위해 대덕특구를 찾았다. NFRI는 꽤 까다로운 보안절차를 내세웠다. 방문 약속을 잡으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했고, 사진 촬영에 대한 서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개발한 연구 장치인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의 명성에 비하면 이 정도 보안은 차라리 간소해 보였다.
 
  실제 태양과 동일한 핵융합 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해 ‘인공태양’이라고 불리는 K-STAR는 NFRI의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로서 2007년 9월 완공된 후 종합 시운전을 마치고 이듬해 6월 최초의 플라즈마를 발생하는 데 성공했다. NFRI의 홍보협력팀 권은희씨는 “K-STAR는 순수 자체 기술로 개발됐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K-STAR 건설은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건설기간 동안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자석 제작기술 등 핵융합 관련 10대 원천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계가 지금껏 기초기술보다 응용기술을 발전시켜 가며 성공해 왔지만, K-STAR 개발을 통해 기초과학연구 분야에서도 곧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K-STAR로 핵융합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국제열핵융합 실험로)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ITER는 전 인류를 위한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목표로 국제협력하에 핵융합 발전 실험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우리나라, EU,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K-STAR는 바로 이 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인데, K-STAR에 사용된 신소재 초전도체 자석이 ITER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K-STAR가 ITER의 축소판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다.
 
완공된 K-STAR의 모습. K-STAR는 ITER의 축소판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핵융합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앞으로 최소한 2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불확실하면서도 먼 훗날의 얘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이 사업에 계속 투입되면서 과학계 내 몇몇 인사들은 ‘불투명한 연구에 지나치게 돈을 많이 쓴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NFRI의 李京洙(이경수)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20년 전에 한국에 왔는데 20년은 정말 금방 가는 시간이에요. 20년 후가 너무 멀다고 해서, 또 연구성과가 불투명하다 해서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건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서 방문했던 연구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지라 필자가 “다른 연구원에서도 비슷한 말로 자신들이 하는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고 하자, 이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핵융합발전 연구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원자력이 세계 에너지 총량으로 보면 10%대입니다. 원전을 아무리 지어봐야 총량이 25% 정도밖에 안 돼요. 신재생에너지라고 주목받고 있는 태양력 ·풍력·조력도 현재 약 2%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 분야에 열심히 투자해도 겨우 12%에 불과합니다. 이 두 분야를 더하면 약 40%입니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노력해서 50%에 도달해도, 나머지 50%는 결국 화석연료예요. 그럼 문제가 해결됐나요? 만약 50%에 해당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단이 핵융합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제발 저한테 알려 주세요.”
 
  핵융합 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효율성이다.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나오는 에너지가 더 많아야 하지만, 현재 기술로 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ITER이 완공되면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10배 정도 많은 에너지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 소장은 핵융합 에너지에는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더 큰 매력이 있다고 한다.
 
  “핵융합 에너지는 원자력 발전에서처럼 많은 고준위 폐기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핵융합 발전소는 다른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비해 넓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 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면적의 나라에서는 더 없이 좋은 에너지원입니다.”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화학연구단]
 
한국화학연구원 내 그린녹색단의 정순용 단장.

  한국화학연구원을 찾아 저탄소 녹색성장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그린화학연구단을 찾았다. 연구단은 작년 12월 천연가스를 원료로 석유를 얻는 기술을 개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린화학연구단 鄭舜溶(정순용) 단장은 이 기술이 사실은 녹색성장 화학기술의 일부라고 말한다.
 
  “석유가 고갈되고 있어 석유를 대체할 자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방법으로는, 첫째 목재 등을 뜻하는 바이오매스(biomass: 식물이나 미생물 등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생물체), 두 번째는 천연가스입니다. 바이오매스의 경우, 생화학적 전환반응(bio-chemical conversion)에 의해 친환경적인 화학물이나 연료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이것을 태우게 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바이오매스가 되는 식물이 다시 흡수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결되지 못하는 일부 이산화탄소는 자원화, 즉 고부가가치화를 시켜 새로운 화학물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돌고 도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제로 에미션 시스템(zero-emission system)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천연가스도 화학적 전환방법(chemical conversion)에 의해 친환경적인 연료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석유대체 에너지가 된다고 볼 수 있죠.”
 
  즉 필요 이상의 탄소배출을 막는 친환경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녹색성장 화학기술의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정 단장은 현재까지 이곳에서 이뤄진 연구 성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천연가스로부터 합성원유를 제조하는 기술, 둘째 이산화탄소로부터 메탄올을 생산하는 기술, 셋째 저급메탄올에서 DME(dimethyl ether, LNG, LPG, 디젤을 대체하는 연료)를 제조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희망으로 가득한 정 단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앞으로 얼마 정도 기다려야 사람들이 이 기술로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정 단장의 말이다.
 
  “천연가스를 예로 들자면, 현재 이것을 합성원유로 만드는 기술로는 하루에 0.1배럴(약 15.9L)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2년 후, 하루 10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실증 플랜트가 완공될 것이고, 다시 상용 플랜트를 만드는 데 2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 4년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죠.”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화학기술은 현재 7위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남아공, 영국, 독일,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5년 정도 앞서 있고, 일본은 우리보다 2년 정도 빠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미국의 DOE(Department of Energy)와 같은 세계적인 국립연구소입니다. 머지않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헌승 한국화학연구원장.

  그렇다면 이 사업은 얼마나 중요한 사업일까. 한국화학연구원 吳憲承(오헌승) 원장은 이 사업이 국민적 공감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국제적으로 탄소배출 규제를 받기 시작하는데, 이때 산업활동을 하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우리는 국제사회에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사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지만 기업들이 이 배출권을 사면서 제품을 만들게 되면, 결국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제품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가격경쟁력 저하로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낮아질 우려가 있어요.”
 
  오 원장은 저탄소 녹색성장은 일반 기업이 담당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 사업을 단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다.
 
  “20년, 30년 전에 대한민국에서 물을 사먹는 시대가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몇 년 후에 부가가치가 높은 자원이 되는 세상입니다. 국민들이 저탄소 녹색사업을 정치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는 핵심사업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러다임의 시대에 작은 것에 집착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 우리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우리 정부가 지난해 8월 새로운 비전의 축,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중장기적으로 녹색성장 구현을 위한 에너지 마스터 플랜인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경제사회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에너지안보를 위해 현재 5% 수준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중에 18%, 2050년에는 50% 이상 끌어올려 에너지 독립국의 꿈을 실현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도 획기적으로 제고(2030년 11% 이상, 2050년 20% 이상)하기 위해 녹색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임기 중 두 배 이상 확대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2020년에는 3000조원에 달할 녹색기술 시장 선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정부는 우선 에너지 저소비사회,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그린카 및 경차 보급 확대, 자동차 연비향상, 고효율기기 기술개발·보급 등을 적극 추진해 국가에너지 효율을 2030년까지 2006년 대비 47% 향상시킬 계획이다.

대덕에 사는 외국인들을 만나 보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도와줘”
 
이무늬 月刊朝鮮 인턴기자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박사는 350여 명. 카이스트, 충북대 등 대덕특구 내 6개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을 포함하면, 100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대덕특구에 입주해 있는 외국기업의 사업환경 조성, 외국인 생활여건 개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외국인 연구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이하 대덕특구지원본부) 홍보전략팀 서준석 팀장은 “지난 3년간 외국인 진료병원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2만명 규모의 외국인 주거단지를 조성했다”며 “올해 외국인학교를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덕특구지원본부는 외국인 연구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NGO 단체인 SEM(Scientists and Engineers Members, International: 회장 姜景仁)과 함께 매주 목요일 외국인 연구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무료로 열고 있다. 지난 3월 3일 대전시 대덕특구에 있는 한국어 교실에서 세 명의 외국인 연구자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대덕특구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국가핵융합연구소 미국인
  알란 잉글랜드(Alan C.England)
 
  “아토산이 뭔지 아세요?”
 
  미국인 알란 잉글랜드(77) 씨는 필자를 만나자 마자, 한국어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SEM에서 한국어 수업을 꾸준히 들은 덕분에 몇 마디 한국어가 가능했다. 그에게 “아토산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아! 토요이릉 사누로 가자(아! 토요일은 산으로 가자)”란다.
 
  잉글랜드 씨는 도보여행 마니아다. 그는 “대전은 도보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라며 “이것이 대전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10년 째인 잉글랜드 씨는 현재 대덕특구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미국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 덕분이다. 그는 미국의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1995년까지 약 35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현재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南宮垣(남궁원·66)씨를 만났다. 잉글랜드 씨의 이야기다.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남궁원씨에게 물리학을 가르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러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남궁원씨는 제게 ‘한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한국을 잘 몰랐지만, 남 박사 등 한국인 연구원들의 실력이 뛰어나 함께 일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10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10년이나 생활한 걸 보면 한국이 마음에 들었나 보죠?
 
  “물론이죠. 특히 대전이 좋습니다. 대전 사람들은, 항상 저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면 누군가는 꼭 나타나 길을 안내해주곤 합니다.”
 
  그는 대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이스(nice)’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대전의 자연환경이 외국인 연구자들을 잡아 끄는 매력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잉글랜드 씨는 “대전은 도시가 크지만 시끄럽지 않고 공원이 많아서 연구에 집중하기 좋다”며 “미국에 있는 대학 동료들에게 대전으로 오라고 설득하는 중”이라며 웃었다.
 
  -한국 과학자들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실성입니다. 저는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주말이나 저녁 때는 연구소 전체가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한국 과학자들은 낮 밤,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합니다. 대전에 와서 한국 과학자들을 보면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저런 자세 덕분에 이 나라가 단숨에 경제발전을 이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자력연구소의 중국인
  쑨 안(孫安 Xun an)
 
  쑨안(孫安·40) 씨는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蘭州)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9월부터 대덕특구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이전까지는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낯선 한국 생활이지만 함께 살고 있는 부인과 한 살배기 딸이 큰 힘이 된다. 미국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2002년부터 3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인터뷰 내내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쑨안 씨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그의 대답 역시, 앞서 만난 알란 잉글랜드 씨와 동일했다. 그는 ‘한국인의 성실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처음 대덕특구에 왔을 때가 저녁이었어요. 그런데 연구원 건물들이 하나같이 불이 켜져 있더군요. 중국이나 미국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에 퇴근을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집에 가기 싫어서 연구실에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 생활해 보니, 밤까지 연구하는 게 몸에 배어 있더군요. 한국 사람들, 정말 성실하고 일을 많이 합니다.”
 
  미국인인 알란 잉글랜드 씨와 함께 2년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그가 구사할 수 있는 한국어는 다섯 문장뿐이라고 한다. 쑨안 씨는 “연구원 활동이 너무 바빠서 제대로 복습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고 했다.
 
  “잉글랜드 씨는 서양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인 얼굴입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제게 와서 ‘어디어디가 어디예요?’라고 물어봐요. 그때마다 ‘쏘리. 항구거 멀라여(한국어 몰라요)’라고 답합니다.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죠.”
 
  쑨안 씨는 원자력연구소 내에서 ‘양성자 가속기 개발’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고 있다. 복합재료나 신소재 등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양성자 가속기는 생명공학기술, 우주기술, 신소재 개발분야 등에 활용된다.
 
  그는 여러 국가의 연구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점이 대덕특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쑨안 씨는 “우리나라 사람(중국 사람)들끼리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연구 목적이 한정된다”면서 “대덕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연구를 하면 우리 연구의 목적과 범위가 확장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충남대 박사과정 재학생 방글라데시인
  쿠루쉐드 알람(Khurshed Alam)
 
  쿠루쉐드 알람(35) 씨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사제랄대학(shahjelal univercity)을 졸업했다. 그는 지난 2007년 8월부터 원자력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충남대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함께 밟고 있다. 원자력연구소에서는 발전소를 세울 때 배관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재료의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알람 씨는 대학 재학 시절 한국인 친구를 한 명 만났다. 알람 씨는 그와 어울려 다니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국인 친구에게 들은 얘기 가운데,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관한 내용이 그를 사로잡았다. 알람 씨는 필자에게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알고 있느냐”고 물으며, 들뜬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리비아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들이는 공사에 처음 일본이 참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요. 같은 회교국인 말레이시아가 도전했다 실패했습니다. 물론 서방의 여러 회사들도 포기했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동아건설이 대수로 건설에 참여했고, 마침내 성공했어요. 리비아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지옥 같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더운 지방 사람들이 아닌 한국인이 高(고)난도 공사를 성공시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자’고 결심했어요.”
 
  알람 씨는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방법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지식, 일하는 자세와 방법을 조그만 것까지 배워서 고국인 방글라데시로 가져갈 생각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가지고, 자신의 고국이 발전하는데 돕는 게 삶의 목표라고 한다.
 
  그에게 “한국이 발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예상 외의 답변이 나왔다.
 
  “저는 한국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 아줌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특히 대전 아줌마들의 팬입니다. 시장에서 만나는 한국 아줌마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며 고생을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걸 보고 감동 받았어요. 이들은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요. 이들이 지난 수십 년간 희생하며 가정을 잘 지켰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이 리비아 같은 나라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한국에 김치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알람 씨지만,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점도 많다. 2주 전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두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딸들이 아직 어리지만 조금 더 자라면 국제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대덕은 좋은 곳이지만,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가 적어요. 학비도 비쌉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외국인 학부모들도 자녀교육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대덕은 좋지만, 아이들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덕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덕특구와 한국 정부가 이 점에 좀 더 신경을 써주세요.”⊙

대덕특구 연구원들이 말하는 대덕
 서울보다 만족도 높지만 문화·여가·육아 여건 부족
 
朴元植 자유기고가  (tititoto@hanmail.net)
<대전광역시 중구 장수마을에 자리한 뿌리공원. 빼어난 자연 환경 속에 각종 복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덕특구에는 2만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이 있다. 박사 학위 소지자만 해도 7000명쯤 된다. 국내 최대의 理工系(이공계) 엘리트들의 群落地(군락지)다. 농부가 일하는 곳은 들판이고, 복서는 링에서 뛴다. 연구원들의 일터는 연구실이다.
 
  해가 저물면 새들도 둥지로 귀환하듯이, 농부도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퇴근을 해도 서둘러 귀가하지 않는다. 가급적 연구실에 머물기를 일상의 習(습)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무엇보다 연구행위 자체에서 보람과 樂(낙)을 얻기 때문이다. 술꾼들이 좀 더 오래 술집에 붙어있고 싶어하듯이, 그들은 집 대신 연구실에 머물며 꿈을 향해 정진한다.
 
  그들이 스스로 연구실에 남는 이유는 첫째, 과학자는 고도의 전문성과 적성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밥벌이 대책 삼아 억지로 매달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자발적·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다른 이유 하나는 극심한 경쟁이다. 연구성과를 내기 위한 연구원 집단 내부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SK에너지 수석연구원 朴哲熙(박철희·46·공학) 박사의 얘기는 이렇다.
 
  “연구원들의 경우, 다른 직종과 달리 자기의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하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일 자체에 불만은 없을 거라는 얘기죠. 그러나 연구원의 수명은 짧습니다. 기술개발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죠. 끊임없는 자발적인 연구와 공부를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죽죽 처질 수 있거든요. 방심하다가 나이 50쯤 되면 밀릴 수도 있고요. 이렇게 되면 老後(노후)의 불확실성도 커지게 되죠. 부지런히 연구에 매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철희 박사는 바이오 연료 개발을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에서 기존의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액체 연료를 얻기 위한 연구다. 이는 석유 枯渴(고갈)에 대한 대응책이자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연구다. 미국은 내년부터 상용화를 앞두고 있지만, 국내 연구는 이제 초기 단계다.
 
  박철희 박사는 혼자 기숙사에 산다. 주말부부다. 그의 출근시각은 아침 8시30분, 퇴근시각은 5시30분이지만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의 동료들 모두가 그렇다. 밤 8시고 9시고 늦게까지 남아 연구활동을 계속한다. 업무 외에 자기역량 강화를 위해 시간을 빈틈없이 활용한다. 기숙사에까지 밀린 일거리를 들고 가는 날도 많다. 결국 그는 잠자는 시간 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와 자기계발에 투여한다. 그는 “이게 대덕단지 연구원들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술을 즐긴다”
 

박철희 SK에너지 수석연구원.

  한마디로 ‘일벌레’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여가 없는 삶이란 지속하기 어렵다. 마르크스도 말하길 “노동에만 매몰된 인간은 짐승처럼 가련하다” 하지 않았던가. 박철희 박사는 일에 몰입된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 한다.
 
  “일본의 쓰쿠바 연구단지에서 3년간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덕단지가 말하자면 쓰쿠바 연구단지를 모델로 했다 할 수 있는데, 쓰쿠바에 비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교통·문화·교육 환경 등 인프라가 잘돼 있거든요. 야산을 비롯한 녹지대가 많아 아주 쾌적합니다. 연구원들 중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한때 산을 타고 산책 같은 출퇴근을 했어요. 체육 시설도 잘돼 있어서 제가 주로 운동으로 여가를 즐깁니다. 술·담배는 안 하지만 탁구나 기계체조, 心身術(심신술) 같은 수련을 하면서 여가를 보냅니다.”
 
  연구원들의 흡연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술은 다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성과확산실장 鄭興采(정흥채·44세·공학) 박사는 “과학자들은 술을 많이 즐긴다”라고 말한다. 정 박사의 말이다.
 
  “연구원들은 실적에 대한 긴장감과 압박감을 심하게 받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외로움을 달랩니다. 과거의 연구는 혼자서 했지만 지금은 融合(융합)의 시대입니다. 술을 나누며 동료들과 마음을 털어놓거나 연구 관련 얘기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소중합니다. 조직의 몰입도를 높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까요.”
 
  그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허전함을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채운다. 골프를 친다. 주거지를 시골로 옮겨 거기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을 즐긴다. 와인과 커피도 마니아 수준이다.
 
  “대덕의 여건은 아주 괜찮습니다. 전국 어디에 가도 아마 이런 곳은 다시 없을 겁니다. 연구하기 좋고 생활하기 좋은 곳이죠. 대전시엔 ‘예술의전당’ 같은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어 수준 높은 공연이나 전시가 많이 펼쳐집니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문화를 누릴 수 있죠. KTX로 서울도 한나절 생활권에 들어 왔습니다. 특구 내 학교들의 교육 수준도 톱클래스예요.”
 
 
  “서울보다 만족도 높다”
 
한상영 정보통신연구진흥원 기술가치평가팀장.

  지난 날 대덕단지의 연구원들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여성 인력이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똑똑한 여자들이 참 많다”는 게 이곳 연구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여성적인 특질이 지닌 장점들이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특구에서는 실력으로 말할 뿐 남녀의 구분 같은 건 의미도 없으며, 따라서 성차별 같은 폐단도 없다고 한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의 전체 연구원 중 17%는 여성이다. 이곳의 한상영(여·42) 기술가치평가팀장은 여성 연구원들의 강점을 ‘꼼꼼함’에서 찾는다. 한 팀장과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김은정(35) 연구원은 “남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일반직이 아닌 전문직이라서 남녀 차이 같은 건 거의 부각되지 않습니다. 對人(대인) 관계에서 여성 연구원들이 남자들만의 세계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건 약점이겠지만, 친화력이라는 측면은 오히려 장점이겠죠. 여성 연구원들의 고민은 역시 육아 문제입니다. 제 경우 직장일이 힘들다고는 느껴보지 않았지만 아이 문제로는 고심이 있죠. 아이에게 투자할 것인가, 나에게 투자할 것인가, 그런 고민이 있습니다.”
 
  연령대로 본 여성 연구원들의 인력 구조는 전형적인 M자형이다. 30대 중반 연령층의 인원이 현저하게 적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의 대책을 찾지 못한 여성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대덕단지에 근무한 지 10년째인 한상영 팀장도 육아 때문에 심한 고충을 겪었다. 남편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통에 한 팀장 혼자서 세 자녀를 길러야 했다. 직장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다행히 친정부모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김은정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연구원.

  “아이들에게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를 세뇌시키곤 합니다(웃음). 그래도 늘 미안해요. 애들이 어릴 적엔 감당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팀에서 성과도 내야지, 육아에 시달리지, 이중고였죠. 여성 연구원들의 경우 ‘직장에서 집으로 출근한다’고 할 정도로 자녀 양육에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입니다. 이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소해야 할 부분이겠죠. 단지 내에 탁아시설이 있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한상영 팀장은 자녀들이 어지간히 자란 요즘에는 어느 정도 여가를 누린다. 그녀가 보기에 대덕의 문화환경은 상당히 좋다. 서울 같은 역동성은 떨어지지만 자연환경이나 체육시설이 만족스럽다고 한다.
 
  김은정 연구원도 ‘대덕에서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서울에서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소감을 피력한다. 그러나 불편도 많이 느낀다.
 
  “서울에서보다 같은 비용으로 더 높은 만족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유성쪽은 마치 외국처럼 많은 점들이 좋죠. 그러나 대전 전체를 놓고 보면 문화나 商圈(상권)이 열악합니다. 특히 볼 만한 공연이나 대형 서점이 없어 아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건 육아 부담 때문에 여가를 누릴 짬이 없다는 점이죠.”
 
 
  정권에 따라 연구의 유행이 바뀐다
 
배종욱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대덕연구단지는 국내 유수의 테크노폴리스다. 연구원들의 연구와 생활에 큰 불편이 없는 인프라를 구축한 지구다. 국가 출연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裵鍾昱(배종욱·40)공학박사는 “살기는 참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다만 문화공간이 부족하다고 본다. 맞벌이하는 아내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배 박사에겐 문화 향유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마땅히 즐길 만한 게 없다.
 
  의료시설이 좋지 않은 것도 아쉽다. 그는 팀 동료들과 가끔 탁구나 배드민턴을 치는 것으로 여가를 즐긴다. 1주일에 한번 정도 회식을 하며 소주를 가볍게 마신다. 그러나 업무가 많아 여유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보통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연구실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 잠을 잔다. 어떻게 보면 건조한 일상이다. 그러나 그는 일이 재미있다.
 
  “업무가 참 많습니다. 會議(회의)가 거듭되고 수행 과제도 많습니다. 과제 기획에, 감사에, 논문에, 실험까지, 일의 연속이지만 업무가 과중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당연한 일상이라 여깁니다. 연구원들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요. 제가 공학도가 된 것은 다른 쪽에 재능이 없어 그리 된 것인데, 공부를 해보니까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재미냐 하면, 몰랐던 것을 알아내는 재미, 의심스러운 것들을 풀어내는 흥미가 그것들이죠. 더구나 남들의 共感(공감)을 살 때는 더욱 보람을 느낍니다.”
 
  배 박사는 좋은 과학자라면 열정, 양심, 그리고 자신감, 이 셋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이런 기준에서 대덕단지에 유능한 과학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외국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그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약점으로 응용과학에 비해 기초과학이 부실하다는 점을 꼽는다. 아울러 막대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을 높이지 못하는 정책의 拙速(졸속) 역시 문제로 파악한다.
 
  “정부는 과학자들의 모든 과제가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화학프로젝트 1만 개가 시작되면 그 가운데 하나만 성공하는 게 과학입니다. 게다가 의미 없는 논문이란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논문들이 모여 커다란 하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풍토를 주문하는 연구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과거에 비해 투자도 많이 늘었고, 기반도 확충됐지만 과도한 실적주의 때문에 과학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鄭興采(정흥채) 박사는 “5년이고 10년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배려와 독려, 그리고 채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구원들이 잘하고서도 욕을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오 쪽만 보더라도 전 세계에 뒤질 게 없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요. 그러나 정부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나머지 성과가 없다거나 더디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연구원들은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비도 깎이게 되는데 이는 결국은 사기 저하로 이어지죠.”
 
  SK에너지의 박철희 박사는 기반은 잡혀 있지만 정치에 좌지우지되는 일부의 경향을 문제로 본다.“똑똑한 연구원들이 많지만 과연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인가를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적어도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와 경쟁한다는 소신을 갖고 연구에 임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의 가치관이나 철학은 없이 목소리 큰 일부 사람들이 뭔가를 독식하려는 풍조가 없지 않습니다. 立身揚名(입신양명)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죠. 정직하게 노력하는 인재들이 홀대 받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대전국제학교
 외국인투자 유치 위해 대덕테크노밸리로 캠퍼스 이전
 
張允曦 月刊朝鮮 인턴기자
<대덕실리콘밸리로 캠퍼스 이전을 준비 중인 대전국제학교는 대전시의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든든한 인프라다.>

무척 흥분됩니다.”
 
  토머스 펜랜드 대전국제학교 총감은 캠퍼스 이전 소감을 ‘설렘’과 ‘흥분’으로 표현했다.
 
  “半(반)세기 역사의 대전국제학교가 새로운 역사를 위해 내년 8월 대덕테크노밸리로 이전합니다. 그동안 캠퍼스의 주변 환경이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공부하는데 열악한 점이 많아 안타까웠는데, 이번 이전을 통해 아시아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국제학교로 비상하리라 기대해요.”
 
  대전국제학교는 1958년 ‘미국 南(남)장로재단’과 3개 미국 선교단체에 의해 설립됐다. 대전 대덕구 오정동에 위치한 학교엔 현재 초·중·고(12학년) 과정 6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5명 안팎, 재학생 대부분은 해외거주 경험 5년 이상의 한국인, 외국인 자녀, 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들이다.
 
  이 학교가 대덕테크노밸리로 캠퍼스를 이전하는 가장 큰 목적은 대전시의 외국인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서다. 외국인이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자녀교육 문제다. 대전국제학교가 대덕테크노밸리로 이전하게 되면 대덕연구단지 내의 연구소 및 대학들의 외국인 유치 및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문에 들어서니 開校(개교)기념 포스터와 학생들이 만든 파티 장식,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봄바람이 꽤 쌀쌀했지만, 지난해 개교 5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벌였던 뜨거운 열기가 교정 곳곳에 남아 있는 듯했다.
 
  현재 대전국제학교의 학생들은 기숙사에 입주하거나 스쿨버스로 통학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숙사를 가진 외국인 학교인데다 국내 최초로 국제인증 기숙사 프로그램을 운영해 他(타) 지역의 학생들까지 기숙사 시설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최초 全학년 국제학위인증과정 실시
 

학예회 장면. 대전국제학교는 교과수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전국제학교는 지난해 개교기념 첫 행사로 ‘국제학위(IB) 인증 교육 심포지엄’을 열었다. IB는 3~12세를 대상으로 한 초등 프로그램, 12~16세 대상의 중등 프로그램, 16~19세 진학반의 학위 취득 프로그램 등 3단계로 구성돼 있다.
 
  IB 프로그램은 세계 121개국, 1300여 개 학교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에선 대전국제학교와 서울외국인학교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康昞文(강병문) 대전국제학교 대외협력과장은 “우리 학교는 IB 프로그램 운영 면에서 국내 선두”라며 “자립형 사립고와 서울소재 학교에서 우리 학교의 IB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러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IB 프로그램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 학생은 해외 대학에 진학할 때 그 나라의 교육수준으로 평가되지 않고 IB라는 국제 인증 기준으로 평가 받는다. 외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인증해 주는 일종의 ‘국제인증 대학입학 자격증’인 셈이다.
 
  미국의 예일대, 프린스턴대, 뉴욕대,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대 등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IB 졸업장을 인정하고 있다.
 
 
  私교육이 필요 없는 학교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고 있다.

  대전국제학교는 ‘학생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점심식사 때 학생들이 먼저 식사를 마친 후 교직원이 식사를 시작한다. 학부모 간담회에서 “교내식당의 김치가 너무 매워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학생들이 먹기 힘들어 한다”는 건의가 나오자, 총감은 즉시 학교 김치를 맵지 않은 것으로 바꿨다.
 
  졸업생의 전화 한 통에 새 컴퓨터를 구입한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 한 졸업생이 “미국 대학교는 애플 컴퓨터와 애플 운영체제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PC와 윈도 중심으로 사용해온 한국 학생들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며 컴퓨터 교체를 제안했다. 학교는 곧바로 컴퓨터 140대를 애플 컴퓨터로 바꿨다. 강 과장의 말이다.
 
  “한국 학교는 이런 엄두를 내기 힘들지만 우리는 합니다. 우리 학생들의 목표가 국내 대학이라면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컴퓨터를 바꿀 필요가 없죠. 우리 학생들 중 일부의 꿈이 미국 유학이므로, 그들의 편의를 위해 컴퓨터 교체를 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국제학교는 졸업생들이 유수한 대학에 합격해도 일명 ‘명문대 진학’ 광고를 하지 않는다. 합격생 통계자료도 따로 내지 않는다. 대학진학 현황이 우수한 학교를 ‘명문 학교’라 부르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국의 여느 고교 풍토와는 다른 모습이다.
 
  교원평가제도 엄격히 시행되고 있다. 평가 성적이 낮은 교사는 재계약을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원평가 결과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교사들은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교사당 1인 학생 수가 적다는 이점을 살려 1 대 1 보충학습이 활발히 이뤄진다.
 
  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더라도 중도에 탈락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배경에는 이러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숨어 있다. 중학생 기준(6~8학년) 평균 1년 학비가 6440달러(한화 약 950만원)에 이르지만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도록 학교가 세심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두 학생의 학부모인 南秀美(남수미)씨는 “학원이나 과외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학교에서 잘 가르쳐준다”며 “학비가 비싸긴 하지만 교육프로그램이 좋고 별도의 사교육비가 필요하지 않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 대전국제학교 Taejeon Christian International School
 
  총감 토머스 펜랜드(Thomas J. Penland)
  설립년도 1958년, 1999년 3월 교육청 인가
  설립주체 미국 3개 선교재단 공동
  학생 수 615명
  교직원 현황 교사 140명, 교직원 59명
  위치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210-1번지
  특징 국내 유일의 기숙사 운영 외국인 학교
  1973년 WASC(미국 서부 태평양 지역 학교 및 학력 인증기관) 최초 인가, WASC 최고 등급
  2005년 국제학위인정 IB 도입, 국내 유일의 전 학년 IB 과정 학교
  2008년 3월 대덕 테크노밸리(DTV) 내 캠퍼스 확장 이전 확정
  2010년 8월 대전국제학교 뉴 캠퍼스 이전 완료 예정
노벨상 기대되는 대덕특구의 과학자들
 ‘금속절연체 전이’ 假說 입증한 金鉉卓 박사
나노 연구로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劉龍 박사
 
朴元植 자유기고가  (tititoto@hanmail.net)

金鉉卓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역사에 남는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
 
  자리에마주앉자 그가 묻는다.
 
  “사진은 안 찍나요?”
 
  촬영에 대비, 아침에 이발소를 다녀왔다는 얘기다. 치밀하고 적극적인 그의 성향 한 자락이 슬쩍 드러난다. 팀원들과 함께 쓰는 그의 사무실엔 책이 별로 없다. 과학자란 정보의 포식자 아닌가? 책을 이미 머리에 집어넣은 탓인가? 그가 말한다.
 
  “책이 왜 많이 필요하죠? 인터넷에 모든 정보들이 들어 있는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현탁 박사.

  實利(실리)와 實用(실용)을 중시하는 성향이 엿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金鉉卓(김현탁·51) 박사. 그는 이름 날리는 과학자다.
 
  ‘모트 假說(가설)’이란 게 있다. 1949년, 영국의 물리학자 네빌 모트 교수에 의해 제기된 설이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도 미세한 충격을 가하면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으로 이른바 ‘금속절연체 전이(MIT) 이론’이다. 이 가설은 이후 56년간 그 어느 물리학자도 증명하지 못했는데, 지난 2005년 김 박사가 세계 최초로 증명해 보였다.
 
  이로써 김 박사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萬有引力(만유인력) 발견 이후 최대의 발견”이라는 찬사까지 있었다. 그러나 성과 부풀리기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제기한 물리학회의 저항(?) 때문에 한동안 잡음이 일었다. 2007년, 김 박사의 해당 논문이 세계 최고권위의 미국 <사이언스>誌(지)에 게재됨으로써 논란은 그쳤다.
 
  김 박사팀은 전류가 통하지 않는 바나듐옥사이드라는 不導體(부도체)에 전압 충격을 가해 전류가 흐르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현재의 半導體(반도체) 소자의 절반은 도체이고, 절반은 부도체이다. 부도체 소자의 경우 열이 많이 난다. 그런데 ‘금속절연체 전이’를 적용해 열이 덜 나는 소자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엄청난 열로 인한 에너지 낭비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획기적인 연구 성과는 반도체보다 더 작으면서도 전기는 금속처럼 잘 흐르는 극소형 소자 개발에 적용돼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기기를 소형화할 수 있으며, 過(과)전압에 따른 각종 전기장치와 기기 고장을 원천적으로 막는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메모리, 光(광)소자, 열감지 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돼 약 1000억 달러(약 150조원)로 추정되는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노벨상에 갈증을 느낀다. 한국의 과학계에서도 노벨상 가망성이 있는 학자들을 손가락으로 꼽아보기도 하는데, 김 박사도 물망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노벨상에 별 관심이 없다.
 
  “국내 과학계도 이제 어느 정도의 기초는 됐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연구자 숫자가 적고 근성도 부족하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노벨상이 나올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벨상이야 어쨌건 ‘중요한 연구를 조금은 했구나’ 하는 자긍심을 가질 뿐이죠.”
 
 
  “과학자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 나라”
 
  그의 음성은 카랑카랑 공간을 울린다. 하나의 세계에 몰입된 자 특유의 맹렬함과 생동감이 완연하다. 그의 일상에 휴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생활 자체가 연구 활동”이라는 것이다. 연구 자료를 집에까지 끌고 가며, 기차에서도 논문을 본다. 모든 대화도 연구의 연장이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五體投地(오체투지)다.
 
  이 야무진 과학자에게 멍청한 질문을 한다. “대체 궁극의 그 무엇을 위해 성난 수말처럼 그토록 뛰느냐”고. 그가 말한다.
 
  “그거 간단해요. 역사에 남을 훌륭한 물리학자, 그게 꿈이었거든요.”
 
  그렇다면 과학자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무진장한 노력’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노력으로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의 한계라는 것도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 연구를 버리고 회사에 취직한 적이 있었다. 생계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려움 있으면 당해야 한다!” 이게 그의 소신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반드시 運(운)이 따라준다는 게 世事(세사)를 바라보는 그의 기본 관점이며, 그 견본이 바로 자신이라 자부한다. 이런 그가 보는 국내 과학계의 폐단은 무엇일까.
 
  “과학자에겐 자유와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라는 걸 주지 않습니다. 자유를 노는 걸로 오해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3년간 ‘꽃 중의 꽃’이라 부를 만한 졸병 교수 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충분한 자유를 주더군요. 국내 같으면 어림없죠.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에게 일본 같은 자유를 주는 대신 실적을 빨리 내라고 혹독하게 쥐어짜게 되어 있거든요.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꽃 중의 꽃’, 그런 위치를 누릴 수 있는 학문 풍토가 있기에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은 ‘꽃 중의 꽃’ 부분이 매우 취약합니다.”
 
 
  劉龍박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노벨상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국과학기술원특훈교수 유룡 박사.

  어려서부터 과학자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농민의 아들로 자라며, 그저 한시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호롱불 아래의 주경야독 덕분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등록금도 없고 병역특례 혜택도 받을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 과정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과학자의 포부를 품었다. 포부는 관철됐다. 이제 그는 ‘국보급 과학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과학기술원 특훈교수 劉龍(유룡·54) 박사다.
 
  유 박사는 2007년 11월, 국가과학자위원회로부터 ‘국가과학자’로 선정됐다. 국가과학자에게는 매년 15억원씩 최대 6년간 연구비가 지급된다. 파격적인 대우다. 유 박사는 나노 多孔性(다공성) 탄소물질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다. 그는 2∼50㎚(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해당하는 메조영역 크기의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메조다공성 탄소물질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산화규소 물질 속에 분자나 원자들을 조립시키는 새로운 합성법인 ‘나노주형합성법’을 개발, 누구나 손쉽게 나노 수준 크기의 다공성탄소물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 물질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때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쓰이는 연료전지와 수퍼축전기, 차세대 연료기체저장매체, 비료, 의료기기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유 박사는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나노 분야가 잠실운동장이라고 한다면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손바닥 크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과학자에게는 타고 난 적성이 있어야 합니다. 왕성한 知的(지적) 욕구와 호기심, 모험심 같은 게 필요한 것이죠. 창의성은 이런 것에서 나옵니다. 문학에서 창의성이 요구되듯이 과학도 똑같습니다. 창의적인 과학자는 기존의 인습이나 관행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사고의 자유는 중요한 거예요. 서양 과학이 발전한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의 결과입니다.”
 
 
  “논문 편수로 과학자 평가하는 것은 후진적”
 
  유 박사는 국내 과학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로 논문 편수로 과학자를 평가하는 풍조를 꼽는다. 그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과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야 반드시 좋은 과학자인가”라고 묻는다.
 
  “연간 발표되는 논문의 量(양)이 그 나라의 과학 수준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지만, 문제는 논문의 質(질)입니다. 소설가가 多作(다작)을 한다고 해서 그게 다 秀作(수작)인가요? 과학도 마찬가지죠. 국내에서 과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의 90%는 논문 숫자에 두고 있습니다. 매우 후진적인 평가 방식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국제학회에서의 활동상이나 업적을 평가해야 합니다. 둘째는, 논문의 彼引用(피인용) 빈도를 봐야 합니다. 셋째는 좋은 저널에 논문을 냈느냐의 문제, 그리고 넷째가 논문 편수입니다.”⊙

세계의 과학도시 비교
 대덕특구의 진정한 경쟁자는 대덕특구 자신뿐
 
金錫俊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 1952년 경북 의성 출생.
⊙ 서울대 공대 졸업. 美 캘리포니아대 LA대학원 정치학 박사.
⊙ 경북대 부교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장,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한국행정학회장, 제17대 국회의원 역임.
⊙ 저서: <한국산업화국가론> <거버넌스의 이해>(共著) <거버넌스의 정치학>(共著) 등.
著者無 저자없음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한 인간의 오랜 꿈이 만들어낸 첨단과학도시
 
  프랑스 남부의 유명 휴양지 코트다쥐르(일명 프렌치 리비에라)의 중심지인 니스 인근에 있는 연구학원 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한 인간의 오랜 꿈의 소산이다.
 
  국립 파리광산학교 교수이던 피에르 라피트는 1960년대 초 <르몽드>에 기고한 ‘들판의 라틴구’(라틴구는 프랑스 파리의 大學街)라는 글에서 ‘과학과 문화, 도시가 어우러진 새로운 개념의 삶과 일터’를 제창했다.
 
  그는 후일 상원의원이 되자 1969년 소피아앙티폴리스협회를 설립해 자신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라는 이름은 라피트가 직접 지었다.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이다(소피아는 라피트의 부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앙티폴리스는 이 연구단지가 들어선 지역 앙티베스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의 結合語(결합어)다.
 
  1972년 소피아 앙티폴리스 건설사업 추진기구인 SYMIVAL(발본느지구 개발시설혼합조합)이 설립됐다. SYMIVAL은 개발예정 부지의 3분의 1은 혁신기술연구시설 및 주택 지역으로 개발하고, 나머지는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1960년대부터 니스 인근에는 IBM,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등 미국의 IT기업들과 니스대학, 각종 시험연구기관들이 입주하여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첨단산업단지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1974년 이후 소피아 앙티폴리스에는 세계적인 특수화학 및 기능소재 회사인 스위스의 롬&하스(Rohm & Hass),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에어 프랑스의 예약센터,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디지털 이퀴프먼츠 유럽지사 등이 입주했다. 2003년까지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1200여 개의 업체 2만4500명의 종업원을 수용하는 세계적인 첨단산업단지로 성장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입주한 회사들 가운데 148개 회사가 외국 회사고, 이 지역에서 근무하는 종업원 가운데 4000명이 고급 연구인력이다.
 

프랑스 코트다쥐르에 있는 연구학원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전경.

  오늘날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 최고의 첨단산업단지가 됐다. 특히 사이언스 전자, 로봇, 전자통신 분야의 연구개발 활동이 활발하다. 생명 및 의료과학, 화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 소규모 스핀 오프(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회사 내 일부 사업부문을 떼어내 分社시키는 것) 기업들도 많이 입주해 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대 중반 단지조성이 완료되고 첨단산업 관련 기업도 유치했지만,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미흡하고 단지 내 혁신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 ‘첨단기술의 섬’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만든 피에르 라피트(왼쪽).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입주한 기업들이 프랑스가 갖는 국가적 이미지, 리비에라 해안이라는 지역의 이미지를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데만 관심이 쏟고 단지 내의 다른 기업이나 지역경제와의 관계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소피아 앙티폴리스에는 혁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INRIA(국립컴퓨터과학·제어연구소)·CNRS(국립중앙과학연구센터) 같은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分社(분사)한 스핀 오프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면서 단지 내 기업 간, 연구기관들 간에 역동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교류도 활발해졌다. ‘소피아 앙티폴리스재단’, ‘소피아스타트 업’, 하이테크 클럽, 텔레콤밸리 등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지원하는 각종 NGO(비정부단체) 및 NPO(비영리단체)의 역할도 컸다. 1982년 제정된 지방분산법은 지방의 道(도·데파르트망)에 힘을 실어 주어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첨단과학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지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기대했던 효과를 내고 있는 소피아 앙티폴리스의 경험은 첨단산업연구단지 조성사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 발전과정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라피트 상원의원의 존재는 첨단산업단지 조성에 있어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일본 쓰쿠바 연구학원도시]
 
  연구주체들의 비협조로 실패한 연구학원도시
 
  쓰쿠바 연구학원도시는 도쿄 대도시권의 인구과밀을 완화시키고, 기초연구 분야의 국가과학기술 활동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해 조성됐다. 도쿄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쓰쿠바 연구학원도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영국의 전원도시 개념을 접목해 만들어졌다.
 
  1970년 쓰쿠바 연구학원도시 건설이 본격화됐지만 도쿄 소재 기업들은 이전을 기피했고, 쓰쿠바로 이전한 연구소나 기업체의 직원들도 쓰쿠바에 거주하기를 꺼렸다. 그러자 일본정부가 쓰쿠바로 이전하는 대학이나 국립연구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이전을 독려했다. 덕분에 1980년까지는 24개 국·공립 연구기관이 쓰쿠바로 이전했고, 9000여 명의 연구소 및 기업체 직원들이 쓰쿠바에서 근무하게 됐다.
 
  1980년대 중반 세계무역박람회 개최와 고속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에 힘입어 1998년까지 5개 대학, 36개 국립연구기관, 21개 공립연구기관, 그리고 243개의 민간회사가 쓰쿠바에 입주했다.
 
쓰쿠바연구학원도시는 혁신과학도시로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쓰쿠바는 약 2만5900명의 연구인력을 포함해 18만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과학기술연구 중심 신도시로 성장했으며, 2030년까지 인구 35만명을 수용하는 도시로 확장될 예정이다.
 
  하지만 쓰쿠바는 연구기관의 집중과 연구기관 간 교류협력의 강화를 통해 혁신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대형 국·공립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들이 입주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폐쇄적이고 산업계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기관들의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 지역 유지들은 이바라키 살롱, 쓰쿠바 講義(강의) 등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한편, TCI라는 창업보육센터와 쓰쿠바정보센터 등을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쿠바의 사례는 첨단산업연구단지에서 혁신활동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생산기능과의 연결이 필요하며, 연구단지 내 주체들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대만 신주과학산업단지]
 
  연구개발과 생산활동 결합, IT산업의 요람
 
  1980년 출범한 대만의 신주과학산업단지는 과학기술개발과 생산활동을 상호 집적·연계할 수 있는 첨단단지를 조성해 고급 기술인력과 첨단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80년대 실리콘밸리의 경기침체로 인해 해외 고급두뇌들이 신주단지로 유입되면서 형성된 신주과학산업단지는 1990년대 후반 IT분야에서 아시아 최고로 떠올랐다. 신주단지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노트북, 서버, CDT 모니터, LCD 모니터, 광학축적기억장치, 디지털 카메라 등은 신주단지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특히 중소기업으로 출발한 에이서(Acer)컴퓨터社(사)는 세계적인 컴퓨터 업체로 성장했다
 
대만 신주과학산업단지는 연구개발과 IT산업을 결합시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주단지 내 업체 수는 1990년 121개사에서 2004년 384개사로, 종업원 수는 1990년 2만2356명에서 2004년 11만3329명으로 증가했다. 신주단지 입주업체들은 대부분 IT관련 업체로 집적회로업체가 전체의 43.3%인 168개를 차지하며, 광전자, 컴퓨터 및 주변기기, 텔레커뮤니케이션 업체가 그 뒤를 잇는다.
 
  신주과학산업단지의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컴퓨터와 정보통신 관련 분야에 特化(특화)해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관련 업체 간 集積(집적)경제의 利點(이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둘째, 대만정부는 적극적인 공장부지 판촉활동과 입주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국내외 우수 인재와 기업들을 유치했다.
 
  셋째, ‘과학산업단지’라는 이름처럼 연구개발과 생산활동이 효과적으로 결합됐다. 연구중심 대학인 국립 지아오퉁대와 국립 칭화대가 인근에 입지해 단지 내 기업들에 우수인력과 첨단기술을 제공했다. 또 단지조성과 함께 공업기술연구원(ITRI), 국가고성능컴퓨터센터, 방사광가속기연구센터, 국가우주계획실, 정밀기기발전센터, 웨이퍼설계제조센터, 나노기기실험실과 같은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설립되어 활발한 産·學·硏(산·학·연)협력 연구를 수행해 왔다.
 
  특히 ITRI는 대만 IT업체들의 기술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신주과학산업단지 기업의 절반 이상이 ITRI와 공동개발 프로젝트, 기술이전 등의 관계를 맺어 왔다. ITRI는 대만 IT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스핀 오프 업체들도 다수 탄생시켰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신주단지는 대내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01년 전세계적인 IT산업 불황은 IT라는 단일 산업분야에 특화된 신주단지에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었다. 중국 중관춘의 성장, 한국 IT기업들의 약진, 유럽 IT기업들의 도전, 중국과의 무역확대와 중국으로의 산업시설 이전 등도 신주단지에는 새로운 도전이다.
 
  내부적으로는 포화상태에 이른 신주단지의 공간부족과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하부조직인 단지관리국(SIPA)의 통제를 받는 신주단지가 지역사회와 고립되어 지역민들과 갈등을 빚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도의 방갈로르]
 
  기업가 정신이 낳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요람
 
  인도의 방갈로르에는 이 도시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지가 되기 이전에 이미 많은 公共(공공)연구개발 기관과 산업체들이 있었다. 방갈로르에 있던 인도과학원(IISc)과 인도경영대학(IIM)이나 첸나이인도공과대학원, 뭄바이인도공과대학원 등 우수한 교육기관들은 이러한 연구개발 기관이나 산업체에 인재들을 공급해 왔다.
 
  방갈로르의 제1세대 기업가들은 기업체나 공공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면 과감하게 자신의 기업을 설립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방갈로르에서는 소프트웨어산업이 勃興(발흥)하기 시작했고, 이는 머지않아 수출산업으로 발전했다.
 
인도 방갈로르 기술단지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소프트웨어산업을 정부가 적절하게 지원하면서 발전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소프트웨어산업이 수출산업으로 떠오르자 인도정부는 州(주)정부와 협력해 소프트웨어 파크(STP)를 설립하고 이들을 지원했다. 인도정부는 1990년 방갈로르·푸네·부바네스와르 등 세 곳에 소프트웨어 파크를 설립했다. 이듬해까지 약 60개의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파크에 수출단위조직을 입주시켰다. 이와 함께 인도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자유화하는 한편,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절차들을 간소화했다. 소프트웨어 파크 정책은 1980년대 후반 이래 소프트웨어 수출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방갈로르가 속한 카르나타가주 정부는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의 수요증가에 따라 기술교육을 민영화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요구하는 컴퓨터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민간기술학원들이 대거 설립됐다.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첫째, 풍부한 고급 기술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매년 영어에 능숙하고 數理(수리)능력이 뛰어난 수십만 명의 과학기술 인력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진입하고 있다.
 
  둘째, 방갈로르를 중심으로 훌륭한 대학과 연구소, 연구소 내 기업조직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규모 첨단기업들이 생겨났다.
 
  셋째, 인도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즉 在外(재외) 인도인들을 매개로 한 마케팅 및 기업 간 전략적 제휴, 벤처캐피털 자금 공급 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은 인도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수출 대리인 역할과 함께, 미국의 벤처자본이 인도로 흘러가게 하는데 있어 중간자 혹은 직접 투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능성을 깨달은 인도정부가 소프트웨어 파크 설립 등 소프트웨어 산업 진흥정책을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방갈로르는 혁신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것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촉매역할에 그치는 것이 혁신클러스터 조성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정부는 스스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시장원리를 존중하면서 금융혜택, 고속통신망 제공 등 간접적인 지원에 그쳤다. 특히 해외기업들의 투자촉진을 위해 원스톱 창구까지 만들었다. 이는 인도의 기존 행정시스템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일이었다.
 
  방갈로르를 둘러싼 기존의 여건에 이런 노력들이 더해지면서 인도는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내가 체험한 대덕특구
 ‘상상력 天國’,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
 
李石鳳 대덕넷 대표
⊙ 1961년 서울 출생.
⊙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 기독교방송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역임. 일본 중앙大 경제학과 객원연구원.
⊙ 現 과학 및 산업 전문 인터넷 신문 <대덕넷> 대표.
⊙ 저서: <한국경제 설 땅이 없다>(공저).
著者無 저자없음
<항공우주연구원 위성실험동에서 과학자들이 위성을 조립하고 있다.>

대전으로 삶의 터를 옮긴 지 어느덧 11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다. 그동안 대덕연구단지의 명칭이 세 번 바뀌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대덕밸리로, 그리고 지금은 대덕연구개발특구로. 내용은? 이름이 바뀐 만큼 일부 변화도 있으나 크게 보아서는 아직이다.
 
  대덕은 한마디로 말하면 ‘기름진 땅’이다. 하지만 ‘버려진’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대덕에는 정말 한 국가는 물론이고, 인류에 영향을 줄 자원들이 즐비하다. 가장 큰 자원은 역시 사람. 얼마 전 來韓(내한)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한국은 석유는 없어도 두뇌란 자원이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중 한국 최고의 두뇌는 대덕에 모여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만명에 가까운 理工系(이공계) 두뇌가 이곳에 있다. 그중 박사만 5000여 명. 이 가운데는 한국 박사도 많지만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외국인 박사도 상당수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장비들이 갖춰져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태양이라는 한국형 핵융합로 K-STAR. 원자력에 이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인류가 연구하는 핵융합 연구 세계 프로젝트인 ITER의 일환으로 현재 세계 최고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K-STAR를 연구하는 핵융합연구소 바로 옆에는 항공우주연구소가 있다. 여기에도 풍동 등 여러 장비가 있지만 우주 환경에서 인공위성 실험을 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최고 규모의 실험장치가 있다. 원자력연구원의 ‘하나로 원자로’도 세계적 수준이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초고전압 전자현미경,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수퍼컴 등 수많은 시설이 있다. 국가 R&D 자금의 50%는 이곳에서 소요되고 있다.
 
 
  버려진 沃土
 
  그럼에도 왜 버려졌다는 표현이 나올까? 지닌 가치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 받은 만큼의 산출을 내지 못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비효율이 나올까? 다소 엉뚱한 진단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서울내기로 서울 생활만 37년을 하고, 대전 생활을 11년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중앙 집중’이 큰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전에 처음 내려와 만난 사람 가운데 서울 출신으로 대전 생활이 10년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 도중 나온 말이 “본인은 서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지역에 산 지 10년이 다 되는데 여전히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서상 서울이란 곳의 귀속감을 가져야 주류에 속해 있다는 의식이 한편을 차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전이란 지역이 새로 이곳에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지역이 갖고 있는 서울 대비 열악한 환경 내지는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열등감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앙집중이 대덕이란 옥토가 버려진 것과는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가장 큰 것은 관심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도 대전은 이미 수도권이라고 말한다. 특히 KTX가 개통돼 한 시간 거리가 되면서 분당이나 일산보다 출근거리가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와 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한국인에게 물리적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좋아하고, 지방보다는 서울을 위로 친다. 그런 심리적 요인으로 수도권 이외는 모두 시골이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지식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서울 선호는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病的(병적)이다. 지방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덜떨어진 것 같고, 열악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 사람들은 인식하기 어렵겠지만 정보의 90% 이상이 서울에서 나오는 현실에서, 서울에 눈이 오면 전국의 출근길이 미끄러운 것이고, 서울 일부에 홍수가 나면 전국에 물이 넘친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 많은데, 지방에서는 아무리 큰 일이 벌어져도 딴 나라의 일이 된다. 지방에서는 야심 차게 기획한 일이라도 서울에서는 단신으로 취급되거나 무시된다. 대통령 행사가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 장래와 관련된 일들이 있음에도 지방에서 벌어지면 중앙 뉴스에서는 庶子(서자)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지방을 기피한다. 우수 인력이 대덕에 근무하는 것을 꺼리고, 대덕에서 일어난 신기술 등은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분당에 있는 모 연구소와 대전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합격한 사람은 두 말 않고 분당으로 갔다. 연구소의 업적이나 규모 등은 후 순위이고, 서울 근처 여부가 우선 순위인 셈이다.
 
  이는 대덕에 있는 한국 최고의 과학인재 교육기관이라는 카이스트(KAIST)도 예외는 아니다. 졸업생들 대부분이 대덕에 잔류하는 비율은 한자릿수도 안 된다. 90% 이상의 인력이 수도권으로 가거나 외국으로 나간다. “대덕에서는 키워서 남 좋은 일만 한다”는 것도 볼멘소리만은 아니다.
 
 
  ‘주사 행정’
 
  최근 몇 명의 일본 사람이 대덕을 방문했다. 매년 3월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아 이웃나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국을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40년 가량을 지켜 본 知韓派(지한파)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가 11번째 방문인데, 그동안은 서울에서만 사람들을 만났고, 이번에 처음으로 지방에 왔다고 말한다. 한국 하면 서울만 알았는데, 지방에서 활기가 넘치는 것을 보며 새롭게 한국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번에 대덕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이곳을 취재한 바 있는 일본경제신문의 스즈오키 기자의 추천으로 오게 됐다고 말한다.
 
  중앙집중 사고는 과학행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과거 연구원장의 고백으로 ‘주사 행정’이란 말이 나온 바 있다. 주사나 사무관이 연구원장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보고 받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서울 살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중앙 관료의 말에 좌지우지된 연구원장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실이다. 과학분야 행정관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현장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연구비란 절대 무기를 갖고 연구책임자들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속박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정이란 것이 늘 급박하게 움직이기 마련인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루 이틀 말미를 주고 기안서를 내게 하고, 보고서를 요구한다. 연구원들의 상당수가 서류작업으로 연구에 방해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다. 이런 이유로 <대덕넷>에서는 ‘과기부 해체해야 과학계가 산다?’는 기획기사를 쓴 적도 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 들어 부처 통폐합에 따라 과학기술부는 해체되고, 교육부로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가 되었다. 연구현장의 바람은 물리적 통폐합이 아니라 체질 변화였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행태는 그대로여서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는 게 연구현장의 반응이다.
 
  연구원장들은 예산확보와 각종 위원회, 토론회, 세미나 등의 참석을 위해 일주일에 반 이상은 서울에 가야 한다. 올해만 해도 정부출연연구소 운영 방안과 관련된 모든 토론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대덕이 과학현장임에도 연구현장으로만 존재하지, 행정이나 로비의 현장은 서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계 내에서도 대덕은 ‘only one’이 아니라 ‘one of them’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학 진흥 목적의 과학문화 예산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소비된다. 세계적인 과학집적지인 대덕이 과학 홍보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과학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언론에서는 소외계층에 준하는 대우를 대덕은 받고 있다. 국민들은 자연 바쁜 일상사 가운데 미래는 한가로운 소리로 여기며 대덕의 존재 자체를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수 인재들은 대덕을 2, 3차 취업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수 인재와 최고의 장비가 있는 윤기 흐르는 땅임에도 버려진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덕 과학계도 책임 있어
 
  대덕이 불모지대가 된 데는 중앙집중에만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대덕에 있는 과학자들의 소속기관인 출연연구소와 과학자 본인들의 책임이다. 대덕에는 2만명 가량의 과학자가 있고, 전국 정부출연연구기관 27개 가운데 17개가 대덕에 있다.
 
  朴正熙(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 창원 기계, 울산 석유화학 및 자동차, 거제 조선, 포항 제철 등등의 산업입지를 결정하면서 대덕에 연구단지를 설정한 이유는 이곳을 한국의 두뇌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주소는 어떠한가? 목표 대비 50%에도 못 미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연구소를 모아놓은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이다. 과학자들의 소통은 교류나 공동연구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는 물론이고 현 정부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별로 없다. 과학자들 가운데는 20, 30년 이곳에 있었음에도 길 하나 건너 있는 연구소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적잖다. 연구소 내의 벽도 높다고 스스로 고백하기도 한다.
 
  중견 과학자들의 모임인 대덕클럽이 있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전지회가 있으나 활발하지는 않다. 과학기술노조도 있고, 연구원들의 지원단체인 연구원발전협의회도 있으나 연구소 대표자들 간의 모임에 머물 뿐 일반연구원들의 활동에까지는 영향을 못 미치고 있다. 대덕특구 기관장들의 모임인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연기협)란 것도 있으나 활동이 미미하다.
 
  연구소에서 신기술이 개발되고 발표되기도 하나 오직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 물리적 거리로는 한동네임에도 이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월례 신기술 발표회 같은 것도 없다. 발표회를 갖자고 해도 아이디어가 공개되고, 그로 인해 연구과제 수주에 있어 경쟁이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며 꺼린다.
 
  한동네지만 공동체임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과학동네의 현주소다. 대덕의 큰 구성원 가운데 하나인 KAIST가 ‘과학발전’과 ‘국가발전’에는 큰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과학동네’ 발전에는 별다른 역할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KAIST로서는 대덕특구에 소재한 연구소들이 협력대상, 혹은 취업장소로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KAIST의 행동을 보면 지역경시를 넘어 무시의 상태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KAIST의 역대 총장을 비롯해 교수들의 대부분은 KAIST의 역할과 관련해 지역보다는 국가를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 명문대의 대부분은 지역과의 유대 속에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해왔다.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연구 환경을 만들고, 그곳에 졸업생들이 정착하며 지역이 발전되고, 그것이 대학의 발전으로 선순환되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학이다. 우수한 졸업생들이 동부로 가야 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터만 교수의 후원으로 휴렛과 팩커드란 졸업생이 사업을 시작한 데서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시작된다. 실리콘밸리가 발전하면서 스탠퍼드대학은 세계 명문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KAIST의 교과과정에는 지역을 둘러보고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KAIST 구내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학위를 따면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대덕을 떠나 서울로, 외국으로 나간다. 일부의 학생이 대덕의 연구소에 취업하지만 학교와의 교류에 대한 현황은 잘 안 알려지고 있다.
 
 
  미개척분야에 도전하는 일류 인재가 많아야
 
  대덕단지 내 벤처기업인들 가운데는 KAIST 출신이 꽤 많다. 하지만 KAIST가 이들 졸업생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어 협력방안을 이야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연구원들도 본인이 졸업한 연구실과의 교류는 있겠으나 기관 차원에서의 협력은 어느 정도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徐南杓(서남표) 총장이 들어와서도 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본인이 MIT의 사례를 들며, 90%의 학생이 외부에서 오지만 졸업 후 보스턴 잔류율이 45% 가량 된다고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KAIST 학생들의 대덕 잔류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보다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에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다. 이미 많은 졸업생들이 대기업으로, 대학으로 대우가 좋은 직장을 찾아갔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행복도를 높였고, 도전정신을 고취시켰는가에 대해 지금은 한번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KAIST가 과학기술계에서는 명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인의 시각에서도 명문인지는 의심스럽다. KAIST 졸업생이 2009년 2월 현재 3만5000명에 달한다. 30년 역사에 적잖은 숫자이고, 게다가 실력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학생들이다.
 
  그럼에도 명문으로 인정하기에 석연찮은 것은 과학기술계의 리더는 있지만, 한국의 리더는 없기 때문이다.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그 많은 졸업생 가운데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장관은 세 손가락 정도 있는 듯하지만 선출직인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국가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한 자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KAIST에서 이런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괴짜’를 인정하는 풍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도제식 이공계 교육에서는 ‘일탈’이 어지간해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학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학생 전형에서는 성적과 무관하게 개성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추세지만 이것이 교육과정에도 이어져 ‘괴짜’들이 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안정된 조직에서 여유로운 조건을 취업의 우선 조건으로 삼는 2류 인재가 다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미개척 분야에서 도전하는 1류 인재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덕의 발전에도, 한국의 발전에도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대전시민들의 대덕특구 인식
 
  대전시민들도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는 한계를 보여왔다. 중앙집중에 따른 결과 가운데 하나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주체적 역할보다는 행정의 대상이 되는데 익숙해져 왔다. 달리 말하면 지역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역할하기보다는 행정처분에 따라왔다는 것이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정말 자원이 많은 곳이다. 과학기술로 한국 최고의 입지를 갖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고, 계룡대와 자운대가 인접해 있는 국방도시이며, 정부대전청사는 물론이고 행정복합도시도 예정돼 있는 행정도시다. 여기에 국토의 중앙이란 이점으로 생긴 교통도시이고, 유성온천과 대청호, 백제 문화 유적지 등이 있는 관광도시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갖고도 소득수준은 높지 않다. 연구소와 공무원들이 많아 불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이들은 140만 시민 가운데 10%도 안 된다.
 
  왜 이 많은 자원을 갖고도 대전은 세계적 도시는 물론 국내 최고 도시도 안 됐을까? 여기에도 상당부분은 중앙집중의 폐해에 책임이 있다. 과학기술이나 국방, 행정 등의 기능은 대전시민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왔다. 내가 아쉬워서 찾게 되면 내 것이지만, 나는 아쉬운 것이 없는데 좋다고 갖다 주면 쓸모 없는 장식물밖에 안 된다.
 
  대전이 대덕에 관심 갖게 된 것은 길게 보아도 10년 정도다. 1998년 洪善基(홍선기) 대전시장이 처음으로 연구소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이후 廉弘喆(염홍철) 시장이 연구소와 벤처기업에 좀 더 관심을 가졌고, 특구법이 이 시기에 통과된다. 현재의 朴城孝(박성효) 시장은 대덕을 대전의 活路(활로)로 보고 본격적으로 施政(시정)의 중심에 놓았다. 그럼에도 대전시민들의 대덕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낮다.
 
  택시 운전기사들 가운데는 대덕단지의 요소요소를 두루 아는 사람도 적잖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대덕에 오는 것을 골치 아파한다. 시민이나 시의원, 공무원도 대덕에 대한 호감보다는 그곳에 대한 투자를 豪奢(호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전시민들의 거부 반응 이면에는 이방인으로 대덕에 들어온 사람들의 지역 정착 노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10년을 살아도 지역사람이란 의식을 못 갖는 부분이 단적인 사례다. 연구소들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시민을 위한 과학강좌 같은 것을 열었음직도 한데, 그러지 못한 과학계의 책임도 크다.
 
  동시에 외지인을 포용하려는 주민들의 손짓이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가방 끈 길고, 소득수준 높으며 잘난 체하는 사람들로 대덕사람들을 인지했다. 우리끼리 잘살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전입돼 왔다는 인식도 한때는 퍼졌고, 이것이 대전시민과 과학자란 두 집단의 화학적 결합을 방해했다.
 
  우리보다는 ‘나’를 강조하는 과학계의 풍토와, 지역보다는 국가란 곳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KAIST, 공동체 의식 없는 과학자들은 쓸데없다고 배척한 대전시민. 이 3자의 愛憎(애증)이 똘똘한 아이를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로 만들었다면 과언일까?
 
 
  버려진 땅에서 개척되는 처녀지로
 
  그런 가운데 대덕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상징의 하나가 기관장 조찬 모임이다. 3월 두 번째 화요일인 지난 3월 10일 오전 7시 반. 대덕특구 지원본부 姜啓斗(강계두) 이사장을 비롯해 연합기술대학원 李世慶(이세경) 총장, 표준과학연구원 金明壽(김명수) 원장, ETRI 崔文基(최문기) 원장, 화학연구원 오헌승 원장, 나노팹센터 李熙哲(이희철) 소장, 핵융합연구소 李京洙(이경수) 소장, 연구개발인력연구원 文惟賢(문유현) 원장, 에이팩 宋奎燮(송규섭) 사장, 대전시 경제과학국 이택구 국장 등 지역의 기관장들이 이른 아침에 속속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논의가 시작된다. 이 자리에서는 대덕특구의 현안이 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한 기관 간 협조방안, 특구 내 공공미술 프로젝트,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를 주축으로 하고 産學(산학) 간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최고경영자 과정 운영, 특구 내 현안이 되고 있는 인턴들의 활용방안, 중앙과학관과 표준연 간의 뉴튼의 사과나무 4대손 기증, 지역 내 오폐수 저감을 위한 화학연의 역할, 나노팹과 기계연 간의 교류, 대전을 ETRI에서 개발한 와이브로(WiBRO) 테스트 베드로 하는 사업 등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대덕단지가 가동되고 그동안 모래알처럼 존재하던 기관들이 물과 시멘트가 섞여 콘크리트로 거듭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강계두 이사장은 “기관장들의 적극 참여로 대덕특구 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그동안 잠자고 있던 지역을 활성화시켜 대덕을 한국의 ‘상상력 천국’으로 만들고,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기적으로 대덕은 크게 세 번의 변신을 했다. 첫째는 대덕연구단지 시기. 1974년 개발이 시작되고, 1978년 표준과학연구원을 필두로 연구원 입주가 시작되며, 1992년 연구단지가 준공되고 그 다음해에 엑스포가 열린다. 말 그대로 연구소 중심 시대다.
 
  둘째는 대덕밸리 시기. 19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연구원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이때를 전후해 연구원들의 창업이 봇물을 이룬다. 이른바 벤처시대다. 2000년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밸리 선포식이 거행된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한 지붕 두 가족 시대다.
 
  출연연구소가 스핀 오프(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별도의 창업을 할 경우, 정부 보유의 기술을 사용한 데 따른 사용료를 면제하고 성공 후 신기술연구기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제도-편집자 주)된 벤처기업들을 포용하기보다는 소외시켰다. 큰 이유는 창업자들이 연구계의 관료적 풍토에 답답함을 느껴 뛰쳐나온 경우가 많은 만큼 한식구로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한동네에 있지만 딴 살림을 차린 듯 물과 기름의 시대였다. 그런 가운데 이 시기에 창업한 벤처기업들은 한국 사회에 ‘박사 사장’ 시대를 열었다.
 
  그때까지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고, 사업이란 것 자체가 배운 사람들로서는 할 만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됐다. 자연 고학력자들은 창업보다는 대기업 등에 취업이 일반 유형이었는데, 박사들이 창업하며 전문성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셋째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시기다.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에 대한 특별법이 발효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는 한 지붕 한 가족 시대가 됐다. 연구소 기업 등이 장려되기도 했지만 정부출연연구소들과 대덕단지에 대해 “지금까지 뭐했느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연구소나 벤처기업 등 지역 내 두 주체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전시에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덕특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방의 활성화와 관련해 자치단체의 역할이 강조되며, 대덕특구를 대전시 발전의 중심 자원으로 인지하게 된 데 따른 변화다.
 
 
  대덕 인프라를 활용 않는 것은 국가적 損失
 
  대전시도 특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나온 기술들이 대전시를 저절로 홍보함은 물론 많은 국제행사가 대전에서 열리는 계기가 되고, 지역민들의 고용과 납세 증대에 특구가 기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성효 시장은 특히 본인이 경제과학국장이던 10여 년 전부터 대덕을 대전시를 먹여 살릴 곳으로 인식해 벤처기업들의 모임인 ‘대덕 21세기’ 결성을 주도하는 등 과학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시장으로 취임하고 특히 대덕특구 개발에 보조를 맞춰왔다. 업무의 상당 시간을 연구 및 기업 현장 방문에 할애하며 지원방안을 찾고 있고, 지역발전의 전진기지로 대덕을 인식하고 국책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盧武鉉(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단군이래 최대 과학관련 국책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한국 사람들의 삶의 질을 몇 단계 높임은 물론 차세대 한국을 먹여 살릴 의료기술의 확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연구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지역의 역량이다.
 
  대덕은 생명공학연구소는 물론 KAIST의 의과학센터, 한의학연구원, 신약 개발 대기업으로 대표적인 LG화학 및 LG생명과학과 SK기술원, 아시아 최대의 바이오 기업 집적지라는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처럼 바이오 관련 연구 및 산업 기능 외에도 치료보다 센싱 기능이 차세대 바이오의 주력이라는 점에서 한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IT전문의 ETRI, 의료장치 개발이 가능한 기계연구원, 모든 신약의 출발점인 화학연구원 등이 한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의료는 종합학문이라는 점에서 대덕의 이러한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연합(AU)의 출발점
 
  대덕은 한국의 미래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투자가 그랬고, 특히 과실을 생각함에 있어 미래지향적일 필요가 있다.
 
  대덕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 시대인 1970년대에 시작됐다. 연구단지 개발 계획이 확정된 1973년은 건국 25주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집이 앞날을 내다보고 자녀교육에 올인하듯이 국가 차원에서 미래를 대비해 투자한 것이 대덕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부의 의사소통 등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경제에 미친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ETRI가 개발한 CDMA가 대표적 사례로 4조 투자가 100조 수입이란 경제적 효과를 낳았다. 신기술들은 지금도 계속 개발 중에 있다.
 
  대한민국은 2009년 건국 61주년을 맞았다. 현재의 지도자들은 선배들이 건국 25주년이 되는 해에 미래를 보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열정을 바쳤듯이, 40년 뒤인 건국 100주년을 내다보며 비전을 세우고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다.
 
  吳源哲(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2007년 대덕을 30년 만에 찾고 “꿈을 이뤘다”는 글을 방명록을 남겼다. 하드웨어적으로, 또 실적으로 그의 꿈은 분명 이뤄졌다. 후배들은 여기에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8년에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우뚝 서고, 인류에 기여하는 새로운 꿈을 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KAIST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란 새 화두를 제시했는데 이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대덕특구의 미래 역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특구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아시아 연합(AU) 결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EU 결성은 갈등보다는 평화가 더욱 지역의 번영을 보장하고 인간의 생활에도 기여하며 친환경적이라는 판단 아래 진행된 인간들의 위대한 결단이다.
 
  아시아 지역에도 EU와 같은 지역연합이 필요하다. 한국·중국·일본이 서로의 反目(반목)을 접고 함께 손을 잡고 협력할 때 그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아시아인도 서양인들처럼 인간답게 문화를 향유하고 일상의 생활을 평화롭고 여유롭게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U의 결성 초기에 기여한 것 중의 하나가 공동의 미래를 개척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이었다. 스위스에 자리잡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그 사례다. 이념과 국가를 초월해 서로 합의할 수 있고,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과학이 지역연합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대덕특구 및 앞으로 진행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이러한 목표를 갖고 진행될 필요가 있다. 우수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할 때 지역의 평화는 앞당겨져 정착될 수 있다.
 
 
  한국이 원천기술을 갖는 ‘창조적 혁신’ 필요
 
  대덕은 동시에 한국판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캐치업 전략에 의해 외국에서 개발된 기술과 제품을 기반으로 경쟁자들보다 싸고 좋게 만들어 한국은 100달러 국가에서 1만 달러 국가로 급속히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2만 달러의 길목에서 10년이 넘게 머물면서 새로운 성장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에서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세계적 제품을 만드는 것을 ‘창조적 혁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창조적 혁신이란 한마디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이다. 구글의 서비스는 세상에 없던 것이다. 수요자들의 니즈를 앞서서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 자신의 힘 아니면 국제 협업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처럼 출연연 독자 플레이가 아니라 산학연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시스템 플레이가 되어야 한다. 또 과학기술만으로는 안되고 인문학적 기반이 접목돼야 한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화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창의성은 다양한 입력에서 시작된다. 교류가 중시되는 이유다. 대덕특구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인문학 및 예술과의 접목과 국제화를 통해 세계적 과학기술의 발신지로 거듭날 때 한국판 르네상스는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칸 영화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칸. 세계 유수의 인공위성 제작사인 탈레스아레나스社(사)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2008년 9월 이 회사가 동시 제작하고 있는 인공위성은 모두 11기. 한국의 통신 위성을 비롯해 독일·노르웨이·이탈리아·파키스탄 등지로부터 주문 받은 위성들이다. 이해에만 제작하는 위성 수는 20여 기. 1년 365일 24시간 풀가동해야 한다. 우리의 위성 제작이 1~2년에 1기이고, 그나마 카메라 등 핵심 부품은 외주란 점과는 대조적이다.
 
  유럽에서는 최근 한국 자동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 기아의 마크를 달고 벤츠·아우디 등 유럽 차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차 한 대의 값은 대략 2000만원대.위성 1기의 제작비용은 성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잡아 200억원대. 자동차 1000대를 팔아야 살 수 있는 액수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다.
 

프랑스 칸느에 있는 탈레스 아레나스 스페이스社 의 위성 제작 모습. 위성 한 대 값은 작게 잡아도 소형차 1만대 가격. 고부가가치산업이다.

 
  대덕특구의 미션, ‘지식의 사업화’
 
  대덕특구는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공위성은 만든다. 칸에도 자동차 산업은 없다. 하지만 탈레스아레나스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전망은 더욱 밝다. 우주시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업 기반이 취약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증거다.
 
  대덕특구에 주어진 미션은 ‘지식의 사업화’이고, 비전은 이를 통해 5만 달러 소득을 올리자는 것이다. 대덕이 한국경제 제3의 성장엔진이 되고 5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가 되며, 40년 뒤인 건국 100주년에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大(대)발명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인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또한 우수한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연합(AU)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대덕은 상상력의 천국이 되고, 한국은 물론 아시아 첨단산업의 발전소가 돼 한국인들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아시아 평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고, 한국이 그동안 인류의 지혜로부터 받아만 온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류에 기여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대덕이란 옥토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국민들의 관심이다. 아무쪼록 국민들이 대덕에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실 것을 대덕인들은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 오늘 이 순간도 치열하게 뛰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適地 (金始中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10년 내 가시적 성과 가능한 곳은 대덕특구뿐”
 
金始中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 1932년 충남 논산 출생.
⊙ 대전고·서울대 화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무기화학 박사.
⊙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장, 21세기 국가발전 연구원장 역임.
著者無 저자없음
<대덕특구에는 첨단의료복합단지 기반시설과 연구기관이 잘 갖춰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 시대,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도 중요하지만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앞날에 대비한 국가차원의 전략적, 그리고 실질적인 ‘먹을거리’ 창출이 중요하다. 선진국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미래의 ‘먹을거리’ 창출을 위해 치밀한 계획하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설과 전자, 자동차 등 과거에 이룩한 제조산업의 발전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앞날의 인류사회 환경은 생명연장을 희망하고, 또 연장된 생애 동안 더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바라는 복지를 갈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 부응하는 의료복지 산업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대두하게 됐다.
 
  이와 같은 국제환경 속에서 정부는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국가로 선도할 수 있는 국가 신성장동력 사업, 즉 장래의 ‘먹을거리’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해 육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복합단지 조성 방향
 
  정부는 첨단의료산업 분야에서 적어도 아시아에서 최고 역량을 갖춘 글로벌 연구개발(R&D) 허브를 조성한다는 비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첨단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글로벌 수준의 종합적인 연구공간이 제공돼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초·임상연구 중심의 기존 단지에 가장 취약한 응용·개발분야 R&D 역량을 보강하고 신약개발, 첨단의료기기 개발, 그리고 첨단임상시험센터 등을 중점 육성 분야로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코어(core, 핵심) 인프라 구역에는 3개 연구센터가 설치된다. 첫째, 신약품질평가·최적화를 위한 産·學·硏(산·학·연) 공동연구가 이루어지는 신약개발 지원센터, 둘째는 첨단의료기기설계·시제품제작·성능평가 등을 위한 첨단의료기기개발 지원센터, 셋째는 후보물질·시제품의 인재 안정성·효과성을 검증하는 첨단임상시험센터다.
 
  또 단지 내에 바이오자원센터, 실험동물센터로 이뤄지는 연구시설 구역, 국내외 우수연구기관 및 벤처기업 등이 입주하는 연구기관 입주지역, 그리고 편리한 정주여건 제공을 위한 편의시설 구역 등 3가지 구역을 조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규모는 약 100만㎡로, 그중 33만㎡에는 핵심인프라인 3개의 연구센터가 설립되고, 나머지 단지에는 실험동물센터, 세포 유전자 은행, 임상시험신약 생산센터, 국내외 우수연구소 등이 설립된다.
 
  이를 위해 2009년에서 2038년까지 30년간 시설·운영비 1조8000억원과 R&D 투자 3조8000억원 등 총 5조6000억원이 책정됐고 그 조달은 중앙정부 2조원과 지자체 3000억원, 민간 3조3000억원으로 충당되며,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단지조성은 국비 3000억원, 지자체 2000억원, 민간 7000억원 등 총 1조2000억원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업과 투자로 의료산업 효과 45조원과 여타산업 파급효과 37조2000억원 등 82조2000억원의 총생산증가가 기대된다. 또 의료산업계 20만4000명, 여타산업 파급효과 17만8000명 등 총 고용창출 38만2000명, 상주인력 약 4500명의 기대효과를 보이고 향후 10년 이내에 글로벌 첨단제품으로 신약 16개, 첨단의료기기 18개 생산을 목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추진하기 위해 2008년 3월 28일 첨단의료복합단지 특별법안이 국회심의를 거쳐 정부에서 공표됐고, 2008년 6월 29일 특별법 시행령이 발표됐다. 현재 3개의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으며, 2008년 12월 4일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1차 첨단의료복합단지 위원회가 구성됐다. 사업추진은 보건복지가족부가 주무부처가 되고, 국토연구원에 입지선정 평가방안 연구용역이 발주됐으며, 2009년 상반기에 최종적으로 입지선정을 결정하게 되어 있다. 2009년 하반기에 첨단복합단지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2010년 세부시설 공사에 착수하여 2012년에 준공할 계획이다.
 
 
  대덕특구의 우수성
 
  의료복합단지는 우리나라의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최적의 입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법 시행령에는 다음과 같은 6개 항목이 입지선정 기준으로 마련돼 있다.
 
  첫째, 국내외 우수 연구인력과 연구개발기관 유치 및 정주 가능성
 
  둘째, 우수 의료연구개발기관 및 우수 의료기관의 수를 포함한 집적 정도
 
  셋째, 국내외 의료 연구개발 기관간 협력 및 교류를 위한 연계 정도
 
  넷째, 의료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한 지자체의 재정·세제지원 정도
 
  다섯째, 부지확보 용이성과 효율적인 부지의 확보 가능성
 
  여섯째, 국토 균형발전의 기여도
 
  이 같은 대형 국가발전사업에 여러 지역이 경쟁적으로 단지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품고 있는 대전을 비롯하여 충북 오성·오창, 대구 수성, 인천 송도, 경남 양산, 강원 춘천·원주 등 제각기 단지유치 조건의 장점을 내세워 경합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지난 35년간 30조원의 투자가 집중되어 왔고 연간 1400억원 규모로 의료기술 분야의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투입되고 있어 첨단의료복합단지 기반시설과 제도적 정비가 갖추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74개의 과학기술 연구기관과 4만명이 넘는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단지는 의료기기산업 또는 임상병원만이 현존한다 해서 연구기능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단지에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과학기술적·사회적 인프라, 즉 연구개발경쟁력, 가치사슬 성숙도, 생활문화 교통환경, 글로벌 브랜드, 혁신거점기관 역량 등이 충족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프라 면에서 대덕특구와 타지역을 비교분석한 결과 대덕특구가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다. 또 대덕특구는 앞에 제시한 입지선정 기준에도 상당히 충족된다. 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는 3조원을 투자하면 20~30년 후에 효과가 발생하지만 대덕특구는 9000억원 투자로 10년 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지역으로 단시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종합적인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대덕특구 입지선정은 국가적, 과학기술적, 의료산업적으로 가장 타당하며, 앞날의 우리나라 ‘먹을거리’가 대덕특구에서 창출될 것으로 확신한다.⊙
 



  ▣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추진위원회
 
  김시중 전 과기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추진위는 대전시가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유치하기 위해 지난 2006년 8월 17일 출범한 조직이다. 위원회는 朴城孝(박성효) 대전시장과 대전지역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이 고문으로 활동하고 대전 내 대학 총·학장과 연구원장, 지역병원장, 언론사와 기업체 대표 등 지역 내 각계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부위원장으로는 梁鉉洙(양현수) 충남대 총장, 宋寅燮(송인섭)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이 활동 중이다.
 
  위원회는 출범 후 현재까지 50회 이상 회의를 열어 대전이 국토의 중심부라는 지리적 특성과 대덕특구의 30여 년 축적된 R&D 인프라를 내세우며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대덕 유치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適地 (徐經薰 배재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연간 2233억 원의 R&D 자금 투입되는 대덕이 정답이다
 
徐經薰 배재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 1958년 전남 목포 출생.
⊙ 美 일리노이대 대학원 신경생화학 전공 박사.
⊙ 現 대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실무위원회 총괄기획팀장, 바이오진단융합 기술센터장,
    지경부 지원 분자세포진단제 개발사업단장.
著者無 저자없음
<미래 첨단의료의 주제는 맞춤형 의료시스템과 재생의료 서비스가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시급하다.>

미래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첨단보건의료 서비스에서는 바이오기술(BT), 정보통신기술(IT), 나노기술(NT), 미세기계조정기술(메카트로닉스, MT), 방사선기술(RT) 등이 상호 접목되고 연계되어 지금과는 다른 의료제품 및 서비스가 등장해 다양한 첨단의료서비스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세계 보건의료산업 4조5000억 달러 규모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현실적 응용으로 보건의료산업계의 발전과 시장 규모는 놀랍도록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 보건의료산업 시장규모는 2006년 기준으로 4조50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약 12.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분야별로 의약품 시장은 2005년 6020억 달러에서 2010년 9900억 달러로 성장하며 연평균 8%의 증가율을 보일 것이며 의료기기의 경우 2005년 1562억 달러에서 2010년 2016억 달러(성장률 5.2%)에 이를 전망이다.
 
  이같은 미래 첨단보건의료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보건의료 관련 산업체, 대학 및 연구소를 집적해 지원하고 육성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메디컬센터를 중심으로 한 의료복합단지에는 M.D. 앤더슨 재단의 ‘의료도시’라는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13개의 병원을 포함한 43개 의료 관련 기관이 집적돼 있다. 이들 의료기관은 현재 지역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보스턴 지역의 하버드의대와 매사추세츠병원을 중심으로는 7개의 연구기관이 모여 미국 국립보건성으로부터 14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 받고 있다. 이곳은 지난 6년 동안 19억 달러 이상을 바이오의료벤처 기업에 투자해 첨단 보건의료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2004년 매사추세츠병원의 연구결과를 상업화한 실적은 제품화 17건, 기술료 수입은 총 6300만 달러 규모였으며 관절염 치료제의 세계적인 신약인 ‘엔브렐’ 개발을 주도했다.
 
  또한 샌디에이고 지역에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교, 솔크(Salk)연구소, 스크립스(Scripps)연구소 등이 주축이 돼 보건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6년간 바이오벤처 기업 투자가 15억 달러에 달해 포브스誌(지)는 이곳을 ‘창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2000년부터 ‘바이오폴리스’라는 의료기술혁신 클러스터를 조성, 6개 국책연구기관을 설립해 아시아 지역에서 의료보건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2005년에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37만여 명으로 2012년 1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일본의 고베도 대지진 후 도시 재건을 위한 비전을 의료산업도시로 정하고 2000년부터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밖에 치료와 휴양을 접목해 수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태국의 의료관광 산업, 질 높은 의료기술과 저렴한 비용 그리고 영어 사용으로 인한 의사소통 환경을 내세워 외국인 환자가 몰려드는 인도의 의료서비스 산업은 각 해당 국가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 보건의료산업의 문제점과 첨단의료복합단지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보건의료비용은 GDP의 2.8% 정도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의약품, 의료기기 및 의료서비스 세계시장 점유율은 각각 1.3%, 1%, 8.6%로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내 의약품 산업의 경우 제네릭(특허기간이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제품) 의약품 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매출액 대비 낮은 연구개발투자로 국제시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신약개발 성공 경험이 부재하고 의약품 개발을 위한 중개연구 기능이 취약해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를 임상연구 단계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산업 생산액은 2007년의 경우 1990년에 비하여 9배 가까이 성장하는 높은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미래 의료산업이 첨단 생명공학기술과 다양한 이종기술의 연계와 융합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첨단 기술개발 전문 고급인력이 자산인 우리나라로서는 분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첨단 보건의료산업의 세계적 발전 추세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우리나라도 최근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를 임상단계 제품으로 연계시키기 위한 응용·개발연구 중심단지다. 혁신신약 개발을 위한 신약개발지원센터, 성장 가능성이 크고 이머징 시장 단계에 있는 로봇, 휴대형 체내진단기 등과 같은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세계시장 진입용 신약과 첨단의료기기의 효능검증과 임상시험을 위한 첨단임상시험센터(병원)가 핵심 인프라로 조성될 것이다.
 
  핵심 인프라 외에도 첨단보건의료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바이오 리소스 센터, 실험동물센터, 임상시험신약생산센터 등과 같은 연구지원 시설과 기업과 대학의 연구소, 전임상시험기관, 원-스톱 비즈니스 센터, 벤처연구타운 등과 같은 연구기관 입주 시설과 다양한 편의·복지 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4500여 명의 상주 인원이 근무하는 약 30만평 수준으로 조성되며 이를 위하여 향후 30년간 약 5조60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될 계획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을 통해 향후 글로벌 신약 16개와 첨단의료기기 18개가 개발될 것이고, 생산 증가액은 82조2000억원에 이르고 38만2000명의 고용이 창출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세계 보건의료산업은 날로 급성장하고 있는데, 투자액의 대부분이 연구개발에 사용된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공요인 풍부한 대전
 
  이미 국제적인 인정을 얻고 있는 선진국의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성공을 위한 몇 가지 공통된 요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 우수한 연구기관과 세계적 명성의 연구 리더들이 소재하고 있어 연구개발 자금과 바이오 의료기업을 모이게 하는 구심력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중개임상연구 인프라, 계약연구기관(CRO), 기술사업화 금융과 같은 연구개발에서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기술혁신 가치사슬이 잘 발달되어 있다. 셋째, 기존의 대부분 의료기술혁신 집적단지는 교육과 문화생활 환경이 잘 발달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
 
  넷째, 최소 10년에서 20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서 단지가 조성되고 실제 사업이 성공에 이르는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보장돼 있다. 다섯째, 첨단보건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산학 연관 병원들이 기술혁신 집적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여섯째,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글로벌화를 통하여 세계적인 기술혁신 집적단지로서의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면에서 볼 때 대전 지역은 보건의료 R&D 인프라, 보건의료산업 인프라, 관련 전문인력 양성 인프라 등 첨단의료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반이 잘 구축돼 있다. 연구 인프라의 경우는 국가 R&D투자액이 연간 2233억원으로 투자집적도가 국내 1위를 점하고 있다. 신약개발을 위해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국책 연구원과 20여 개 국가연구센터가 소재하고 있다.
 
  첨단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표준연구원, 한국기초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이 있으며 허친슨 암연구소, 프로메가 연구소, ISIS, NeuroSky 등과 같은 국제적 연구기관도 소재해 글로벌 보건의료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한 기반도 조성되어 있다.
 
  보건의료산업 인프라로는 안전성평가연구소, 지역임상시험센터, KISTI와 같은 임상시험 인프라가 있으며 대덕특구지원본부와 kGMP, bGMP 같은 사업화 인프라도 조성되어 있다. 지역 내에는 바이오벤처타운 같은 벤처기업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으며 140여 개에 이르는 바이오의료 벤처기업이 소재하고 있고 LG생명과학, SK기술원, 한화, 삼양제넥스, 애경종합기술원 등 보건의약 관련 대기업이 소재하고 있어 사업화 연결 인프라가 우수하다.
 
  첨단보건의료산업 발전에는 관련 전문인력 양성이 필수적인데 대전 지역 내에는 한국과학기술원, KAIST 의과학대학원, 충남대를 비롯한 13개 고등교육기관에서 보건의료 산업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R&D 인력양성 프로그램 제공 등으로 융합형 첨단의료 전문인력 육성 기반이 구축되어 있다.
 
  지역별 의료관련 국가 R&D프로젝트 연구책임자 수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제외하면 대전지역이 380명으로 나머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으며 의료관련 국가 R&D프로젝트 연구비 점유율도 43%로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보다 역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연구개발예산에서 대전에 투입되는 보건의료 R&D 예산은 1757억원 규모로 전체의 약 20%를 점유하고 있다.
 
  보건의료 및 바이오 분야 관련 2005년 특허출원 현황은 바이오 분야 642건, 의료 분야 491건, 의약 분야 834건으로서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출원 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2005년도 분야별 연구개발투자 현황을 보면 의료기기 분야는 96건, 약 300억원, 바이오의약 분야는 114건, 328억원, 헬스케어 분야는 17건 41억원, 기초연구 및 기반사업 분야는 110건으로 485억원에 달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기술사업화 환경 관점에서 보면 대전의 벤처캐피털 2005년 신규투자 규모가 179억원으로 지방 최고수준이며 의료 및 바이오 특화 창업보육센터 수와 입주기업의 수에 있어서도 역시 지역 간 최고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중요한데, 대전 지역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및 공항이 인접해 있어서 전국 어디에서나 2시간 정도에 접근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중부권의 최대 전원도시로서 교육, 문화와 생활환경이 우수하다.
 
 
  대전에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들어와야 하는 이유
 
  대전지역은 첨단의약, 첨단의료기기 및 융합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초연구에서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를 위한 임상시험을 위해 국제수준의 인프라도 활발히 운용 중에 있다. 지역 내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약과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도 구축되어 있고 사업화를 위한 대기업,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소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총괄적인 지원기관과 금융시스템도 조성되어 있다.
 
  대전은 이렇게 구축된 첨단의료산업 기반시설을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단 시간 내에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구축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특정분야에서 대전보다 월등히 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지역이 있는 경우는 해당 분야의 기술적 허브를 그곳에 두고 대전시는 기능적으로 연계되는 다중 허브 구조로 조성될 수 있다. 국내 어느 지역과도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조성되는 것이다.
 
  그간 여러 국책사업들이 선정되고 수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적 안배와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국가의 균형적 운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점도 있다. 그러나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사업은 그간의 사업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전 국민이 보건의료적, 경제적 혜택을 입게 되는 거시적이며 미래적 차원의 사업이다. 그렇다면 향후 수십 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세계시장을 리드해 나아갈 수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어디에 조성되어야 하는가? 대전이다.⊙

대전바이오벤처타운 입주 기업들
 기상천외한 신물질, 항생제 속속 개발
 
金良洙 대덕넷 기자
著者無 저자없음
<바이오벤처 기업의 집결지로 급부상한 바이오벤처타운. 이곳에는 16개의 바이오 업체가 모여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에 자리한 대전바이오벤처타운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바이오 산업의 메카로 급부상했다. 2002년 대전시가 500억원을 투입, 2005년 문을 연 이곳은 최대 24개 기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77.28㎡(23평형)가 6개, 154.56㎡(47평형) 18개다.
 
  1만1563㎡의 부지에 지어진 건물은 벤처 전용관동과 파일롯-프랜트동으로 구분된다. 지상 5층 규모의 벤처전용관에는 연구개발기기실, 공동실험실, 동물사육실, 세포배양실, 생산지원실, 정온실, 입주지원실이 갖추어져 있고, 파일롯-프랜트동에는 최신식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시설과 액제바이알생산라인, 프리필드시린지생산라인, 동결건조기, 품질관리장비 등이 잘 구비돼 있다.
 
  바이오벤처타운의 핵심은 연구개발기기실과 GMP 시설. 연구개발기기실은 NMR(핵자기공명)실과 원심분리기실, 크로마토그래프실, 생체반응분석실, 단백체분석실, 유전체분석실, 저온실, 암실, 질량분석실 등으로 나눠져 있으며, 현재 47종 51대의 첨단 연구장비(80억원 상당)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연구에 필요한 각종 최첨단 실험기기를 빌려 쓸 수 있다. 새로 출범하는 신약 개발 벤처기업의 가장 큰 부담인 高價(고가)의 장비 문제가 입주와 동시에 해결되는 셈이다. 수출 기업의 경우 해외 마케팅이나 진출 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입주 대상은 바이오 벤처기업에 한하며, 입주 기간은 3년. 그러나 만기가 된 후에도 1년 단위로 2회까지 연장할 수 있어 총 5년 간 입주가 가능하다.
 
  金河東(김하동) 센터장은 “이곳은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들의 정보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을 뛰어넘는 바이오 허브 센터를 구축하는 데 있다”며 “이를 위해 사무실 임대는 물론 고가의 최첨단 장비와 의약품 생산시설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바이오벤처타운에는 현재 1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벌집에서 천연항생제 추출 서울프로폴리스]
 

서울프로폴리스는 생활용품부터 의약품, 화장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프로폴리스(대표 李承琓)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장어 양식용 천연항생제 개발에 성공했다. 덕분에 이 회사는 250억원 규모의 국내 양식장용 사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게 됐고, 소비자들은 앞으로 장어는 물론 다른 양식 물고기도 항생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됐다.
 
  기존의 가두리 양식장용 사료에는 인공 항생제가 들어가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耐性(내성)이 생길 뿐만 아니라 인체에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부터 동물 사료에 인공 항생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2003년 원자력연구원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서울프로폴리스는 프로폴리스를 주력 분야로 취급하는 기업.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갖가지 식물에서 추출한 樹脂(수지)에 침과 효소를 섞어 벌집 벽에 바르는 천연항생 물질로, 유기물과 미네랄이 풍부해 면역 증강 및 항염·항산화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건강식품은 물론 의약품과 화장품 등에 활용하려는 기업이 많았으나 향이 강하고, 체내에 흡수되기 어려운 지용성 에탄올 성분 때문에 상품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서울프로폴리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에 매달린 끝에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공동으로 물에 잘 녹는 無(무)알코올 프로폴리스 원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난해 이 원료를 활용해 장어 양식용 천연항생제를 개발했다.
 
  장어를 즐겨 먹는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서울프로폴리스는 오사카에 대리점을 열었고, 말레이시아와는 기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동물 사료용 항생제 시장 규모는 1000억원(양식 어류 250억원, 가축 750억원)대. 이 대표는 이 중 1% 시장을 점유한다는 목표로 올해 매출을 11억원으로 잡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현재 단국대 레이저의학연구센터와 공동으로 레이저 시술 후 피부에 바르는 천연항생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승완 대표는 “프로폴리스 분야로만 연 1000억원(2006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일본의 야마다 양봉장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프로폴리스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수퍼 박테리아 잡는 항생제 개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2006년 바이오벤처타운에 둥지를 튼 합성신약 개발 전문 기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는 최근 3년 사이 항생제, 항응혈제, 항암제와 관련된 특허를 7개나 출원했다. 이 중 항생제와 항응혈제는 후보물질이 동물실험 단계에 와 있어 국내외 유수의 제약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협의 중이다. 이 회사 朴世珍(박세진) 상무는 “기술이전 계약이 성사되면 건당 최소 2000만~3000만 달러의 기술이전료를 받고, 임상시험에 성공해 제품으로 출시될 경우 판매액의 7%를 로열티로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레고켐이 개발한 신규 항생제는 내성이 생겨 기존 항생제는 듣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를 퇴치하는 데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수퍼 박테리아는 감염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강력한 세균으로, 미국에서는 에이즈보다 수퍼 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을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다. 최근에는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이 성형수술 도중 수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주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레고켐이 개발한 신규 항생제를 2008년 5월 혁신신약 국책과제로 선정, 이 회사에 2년 동안 1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레고켐은 지난 2월 국내 굴지의 제약사인 한미약품과 항응혈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3월에는 미국 MIT대와 공동 연구한 항암제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임상연구 전문지 에 게재돼 경사가 겹쳤다.
 
  업계에서는 레고켐의 이 같은 성과에 대해 “예상한 결과”라는 듯 과히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이 회사의 주축 연구원 대부분이 대기업 연구소에서 신약 개발 노하우를 오랜 기간 쌓은 사람들인 데다 연 20억원의 회사 운영비 중 95%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레고켐은 2006년 LG생명과학 출신 10여 명이 주축이 돼 설립한 합성신약 개발 전문기업. 金容柱(김용주) 대표를 비롯한 핵심 연구원들은 LG생명과학에 재직 당시 국내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은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2003년 출시)를 개발한 멤버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이 회사의 구성원 25명은 관리직 몇 명을 제외하곤 거의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연구 인력이다.
 
 
  [신약 후보물질의 약효 판독 기술 보유 메디스커브]
 
  메디스커브(前 CGK)는 신약 후보물질이 생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판독하는 기술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이 기술 관련 논문을 지난해 11월 미국 학회지에 발표함과 동시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金珍煥(김진환) 대표는 이 기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식물 추출물이든 약품이든 동물 실험을 했을 때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판독해내는 기술입니다. 신약 후보 물질은 물론 기존 약품의 약효와 부작용이 무엇인지 밝혀낼 수 있는 솔루션이죠.”
 
  메디스커브의 판독 기술을 활용하면 임상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부작용 원인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신약 개발에 유리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매년 세계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투여하는 비용이 140조원인데, 우리 기술을 활용하면 개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아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하나 둘 메디스커브와 공동으로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손을 내밀고 있다. 세계 제약사 서열 20위권의 에보트와는 이미 비밀유지 조건으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계약했고, 화이자와 머크, 노바티스, 길리아드사이언스 등과는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 메디스커브 관계자는 “프로젝트 1건당 기술 사용료로 1억~3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00여 건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신약 개발은 속도가 경쟁력이고 생명이라는 점에서 메디스커브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04년에 설립된 메디스커브는 바이오 전문 벤처기업으로 현재 11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밖의 기업들]
 
  카이로드와 바이오프로젠, 과학기술분석센터, 제노포커스, 이큐스팜, 젠닥스, 알테오젠, 프로테인웍스 등도 바이오벤처타운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술로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에는 펩트론과 지노믹트리, 한올제약 등 창업 초기 바이오벤처타운에서 기반을 잡아 성공한 기업들이 졸업하고, 대신 4개의 신규 바이오 벤처가 입주했다. 의약품 전문 벤처회사인 파멥신, 아리사이언스, SH제약, 나노헬릭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柳珍山(유진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설립에 공동참여,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파멥신은 ‘환자 맞춤형 항체 개발’을 모토로 단일클론항체 생산에 주력하는 바이오 벤처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뒤 노바티스(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의 바이오 기술 글로벌사업화 프로젝트(GATE) 일환으로 벤처펀드 투자 대상에 선정돼 100만 달러를 유치하는 등 이미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에서 개발 중인 항암항체 치료제는 암 신생 혈관 형성 억제뿐만 아니라 암세포 제거도 가능해 고형암이나 혈액암 등 모든 종류의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동물실험 단계를 거치고 있는 항암항체 치료제는 2010년쯤 임상1상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리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바이오 업체인 미국 암젠(Amgen) 출신의 한국 연구원들이 모여 만든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구성원들의 경력이 화려해 출범 전부터 국내외 관련 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표이사인 金台成(김태성) 박사는 암젠이 인정하는 신약 개발 전문가. 서울대 화학과를 거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그는 10년 동안 암젠에서 근무하며 경구용 신약 후보물질을 임상 단계까지 성공시키는 등 이미 대내외적으로 의약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아리사이언스의 주 생산품은 항암제와 당뇨병 치료제로 현재 동물실험 중이며 올해 상반기 내에 국내외 굴지의 제약사에 기술 이전할 계획으로 협의 중이다. 이 회사의 빠른 성장과 놀라운 기술력, 개발 상품 등은 국내외 대기업들의 주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매출 상승이 기대된다.
 
  SH제약은 이미 중견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회사로 서울에 있던 연구소를 지난해 이곳 바이오벤처타운으로 이전했다. SH제약은 바이오 장비 공동 활용과 유사 업종 간의 네트워크 구축으로 연구 활동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생산품은 요화학분석기와 미생물배양용기, 뇌질환치료제 등이며 2005년 6월 설립된 뒤 1년6개월 만에 연 매출 32억원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나노헬릭스(대표 高旻秀)는 지난해 12월 문을 연 새내기 벤처회사다. 바이오벤처타운에서 탄생해 의약품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이 회사는 휴대용 유전자감지기에 활용되는 유전자증폭시스템, PCR(중합효소 연쇄 반응)효소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제약·의료기기 개발의 Hub
 과학도시를 빛내는 의료 强小기업들
 
崔善姬 자유기고가  (giongia@hanmail.net)

대덕연구개발특구에는 규모는 작지만 기술력 하나로 세계시장을 누비는 이른바 ‘强小(강소)기업’들이 많다. 특히 제약, 의료기기 업체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인공 DNA인 PNA(Peptide Nucleic Acid) 제조기술의 세계 독점 생산권을 가지고 있는 파나진, 태국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제약기술을 수출하게 된 바이오큐어팜, 의료용 레이저기기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는 원테크놀로지 등을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새 급속히 늘고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의료수출 사례를 소개한다.
 
 
  [세계 1위의 PNA 생산업체 파나진]
 

김성기 파나진 사장.

  대전시 유성구 대덕테크노밸리에 자리 잡고 있는 파나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회사다. PNA의 세계 독점 생산권을 가지고 있어 전 세계 연구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PNA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PNA는 DNA의 생화학적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인공 DNA로 암, 백혈병, 류머티즘, 당뇨, 알츠하이머, 간염 등 유전자 치료가 가능한 질병들과 박테리아 등 세균성 질병들을 유전자 수준에서 억제하고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1991년 덴마크 학자들이 발명해 세상에 알려졌고, 파나진이 독점 생산권을 따내기 이전까지는 미국 회사가 생산 공급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어렵고 가격이 비싸 소규모 연구용으로만 사용될 뿐 산업화되지는 못했다. 金成基(김성기) 사장은 이 점에 착안, 회사를 설립하여 PNA의 대량생산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DNA는 생체에 있는 것이라 생화학적으로 불안정해 이것을 산업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공 DNA인 PNA입니다. PNA는 DNA에 비해 유전자 결합력이 높고 핵산 분해효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유전자 질병 진단과 치료 면에서 DNA보다 더 정확한 물질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도 양산이 되지 않아 널리 쓰이지 않는 게 안타까웠고, 생산과정에서의 문제만 해결하면 PNA 시장은 얼마든지 넓힐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게 창업을 결심한 동기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나온 그는 새 캠퍼스로 이전해 비어 있던 舊(구) 한밭대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자본금 1억원에 직원은 달랑 두 명이었다. 철거를 앞두고 있어 난방도, 냉방도 되지 않는 건물에서 그는 PNA 생산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3년간 계속된 연구 끝에 마침내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고, 양산 시스템도 성공적으로 갖추었다. 2006년에는 미국 회사가 가지고 있던 PNA의 독점 생산권도 넘겨 받았다.
 
파나진 생산제품.

  현재 파나진에서 생산된 제품은 30개국 200여 기관에 공급된다. 수요처는 주로 대학 연구실, 기업 부설 연구원, 병원 등이다. 미국과 유럽에 나가는 물량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출의 90%를 수출을 통해 얻는다. 국내에서는 연구를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상 제공하기도 한다.
 
  창업 이후 해마다 두 배 이상의 매출증가를 보이며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려 온 파나진은 최근 PNA 합성기술과 PNA의 장점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PNA 유전자 칩’을 개발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DNA 바이오칩의 한계인 재현도와 정확도를 대폭 개선한 것으로 자궁경부암, B형 간염, 약물대사 효소유전자 진단 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김 사장은 “PNA 기반기술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며 “인공 DNA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에 오를 때까지 끝없이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태국에 의약품 제조기술 수출 바이오큐어팜]
 
이상목 사장과 연구원들.

  지난 2005년 설립된 바이오큐어팜은 신생 벤처기업으로 지난해 태국 진출에 성공했다. 태국의 한 제약유통 회사와 수백억 달러 규모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MOU를 체결하여 해외 현지에 공장과 판매망을 구축하게 된 것. 태국 측에서는 약 2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현지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확보, 각종 인허가 업무, 해외 마케팅 등을 담당하고 바이오큐어팜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빈혈치료제, 간염치료제 등 5개 품목에 대한 생산기술 제공 및 공장설계, 운영 등을 책임지게 된다.
 
  李尙穆(이상목) 사장은 ‘태국 현지에서 5개 의약품에 대한 본격 생산이 시작되면 3년 내에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인근 국가로 판매망을 확대하여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지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이 인근 국가에 수출될 경우 동남아 시장 확보와 해외 조인트벤처 회사 설립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바이오큐어팜이 거둔 성과는 창업 초기부터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 공략에 주력한 결과다. 이 사장은 “창업 때부터 다국적 제약회사나 국내 제약사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던 시장을 노렸다”고 한다.
 
  “제네릭은 흔히 카피약이라고 부르는데, 특허가 만료된 약들을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일반 제네릭과 바이오 제네릭은 완전히 달라요. 일반 의약품은 구조식만 보면 어지간한 제약사들이 다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바이오 제네릭은 똑같은 효능을 가진 약을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지금 저희가 생산하고 있는 간염치료제, 항암제, 건선염·관절염 치료제, 빈혈치료제, 항암보조제 등이 바이오 제네릭에 속하는 것들이에요. 그만큼 기술 수준이 높고 까다롭습니다. 우리나라에 약 300개의 제약회사가 있는데 바이오 제네릭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4개에 불과합니다. 그건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술적인 노하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전 세계에서 바이오 제네릭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1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동남아, 중동 등 바이오 제네릭을 전량 수입하면서 자체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나라들에 눈을 돌리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창업 1년 만인 2006년에 1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데 이어 2007년에는 그 네 배가 넘는 450만 달러를 수출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완제품 수출 위주였지만 태국 조인트 벤처 설립을 계기로 이런 형태의 해외 진출을 늘릴 계획”이라며 “얼마 전에는 이집트 시장 진출을 위해 이집트에도 지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4월에는 바이오벤처센터에 입주해 있는 다른 7개 회사들과 함께 이집트 지사에 나가 설명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저는 이것이 비슷한 업종들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바이오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외톨이 같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대덕특구에는 바이오 회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외로움이나 어려움은 전혀 느낄 수 없거든요. 바이오 관련 연구나 사업을 하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대덕특구만한 환경이 없다고 봅니다.”
 
 
  [의료용 레이저기기 수출 전문기업 원테크놀로지]
 
김종원 원테크놀로지 사장.

  통신 전문업체로 출발해 의료용 레이저기기로 업종을 넓힌 원테크놀로지는 지난 1999년 産學(산학)협력에 의한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개척 분야에 가까웠던 국내 레이저 의료시장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金鍾元(김종원) 사장은 러시아 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레이저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非(비)절개 수술방식의 암 치료기를 개발했지만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그동안 쏟아 부은 연구비로 인해 회사가 苦戰(고전)을 면치 못하자 김 사장이 또 한번 승부수를 던진 것이 미용·성형용 레이저기기였다.
 
  원테크놀로지는 기미, 주근깨, 문신 제거 등에 큰 효과가 있는 치료용 레이저와 흉터 재생, 주름 제거, 제모 등의 시술이 가능한 피부미용종합재생 레이저 등 다양한 기기를 개발하여 레이저 기술 국산화에 앞장섰다. 지금은 동남아를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23개국에서 원테크놀로지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김 사장은 “기술력이 있다 해도 해외시장 진출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았다”며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와 중소기업청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원테크놀로지의 레이저 발모기. 대덕연구개발특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산업디자인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이노 디자인’이 디자인을 맡았다.

  “재작년에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에서 미국 진출을 제안하더라고요. 관련 학회가 열릴 때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고, 전시에 필요한 비용을 상당 부분 지원해 주었어요. 덕분에 그해 미국에서 1260만 달러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그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 후 두바이, 독일 등에도 나가 소소한 성과들을 많이 거두었습니다. 작년에는 중국에 진출해 13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원테크놀로지가 선보인 가정용 레이저 발모기의 디자인도 특구본부의 주선으로 ‘이노디자인’에서 맡았다. 특구본부가 이노디자인과 매칭펀드 방식으로 총 20억원을 투입, 10개사의 10개 제품 디자인을 상용화하는 프로젝트에 원테크놀로지가 선정된 덕분이다. 이 발모기는 착용하면 헬멧을 쓴 것 같은 모양이지만 케이스에 장착된 모습은 장식용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감각적이다.
 
  “이걸 머리에 쓰고 있으면 레이저가 두피를 자극해 발모를 돕는 원리입니다. 하루 한 번, 50일 이상 사용하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나기 시작해요. 임상시험을 거쳐 유럽에서 특허를 받았고, 국내에서는 현재 식약청 인증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회사의 효자 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의 해외 마케팅 지원 사업
 
  원테크놀로지의 사례에서 보듯,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에서는 특구 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가진 코트라(KOTRA)와 함께 수출전략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당 기업의 제품력과 기술력, 적극적인 의지, 수출 타당성 등을 검토해 대상 업체를 선정한다.
 
  徐準錫(서준석) 특구본부 홍보팀장은 “어느 전시회에 참여해도 3년 정도는 지속해야 바이어들에게 인지도가 생긴다”며 “단발성 지원으로는 수출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3~4년간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을 통해 그동안 특구 내 21개 업체가 지원을 받았고, 지난 한 해 동안 3650만 달러의 수출계약 실적을 달성했다. 원테크놀로지 외에도 레이저혈당측정기 회사인 아이소텍이 중국에 진출했고, 화학소재 생산업체인 라이온캠택은 미국 시장에서 10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따냈다. 총 30여 개국에 243개의 신규 바이어를 발굴 지원했는데, 앞으로 더 큰 성과가 기대된다.
 
  서 팀장은 ‘앞으로 해외 전문 전시회를 유망상품 해외 마케팅 사업으로 확대 통합할 것’이라며, ‘반응이 좋아 지원대상 업체도 늘리고 지원금액도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AIDS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 낸 孫鐘贊 박사
 “오기를 가지고 한 우물을 깊게 파라”
 
孫鐘贊
⊙ 1952년 출생.
⊙ 서강대 화학과, 同 대학원 유기화학 석·박사.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後 과정.
⊙ 국방과학연구소 유기합성 선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소(現 한국화학연구원) 유기 제2부 4실
    책임연구원 역임.
⊙ 現 한국화학연구원 생명의약연구부 화학물질생산연구팀 책임연구원.
⊙ 저서: 논문 26편, 특허 16건.
崔善姬 자유기고가  (giongia@hanmail.net)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매달린지 10여 년, 마침내 결실을 맺은 손종찬 박사.>

지난해 여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책임연구원인 孫鐘贊(손종찬) 박사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 미국 대형 제약회사인 길리어드社(Gilead Sciences)에 거액의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전을 한 것. 10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 끝에 맺은 결실로 우리나라 과학계의 위상을 드높인 값진 성취였다.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난 손종찬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가 자꾸 기사화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신약과 후보물질의 개념을 혼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첫 단추를 뀄을 뿐입니다. 외국의 유명 제약회사들은 세 번에 걸친 임상시험 중 거의 마지막 단계쯤 가야 신약 성공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그 전에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후보물질이란 말 그대로 신약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을 통과했다는 뜻이지, 이게 곧바로 약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임상시험과 미국 FDA 승인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손 박사에게 “길리어드 정도 되는 세계적인 회사에서 이 후보물질의 최종 연구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해 2년간 지원했고, 거액의 로열티를 주고 구입했다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묻자 그는 “워낙 좋은 약을 만들기로 유명한 회사이기 때문에 그런 믿음은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후보물질 개발로 길리어드사가 화학연구원 측에 지급한 로열티는 1차 기술료 10억원을 포함한 정액기술료 85억원, 여기에 2028년까지 ‘러닝 로열티’로 불리는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별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신약이 개발될 경우 현재 예상되는 러닝 로열티는 15년간 매년 300억원 규모다.
 
 
  포기할 시점에 만난 행운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과 그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방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박사後(후) 과정을 떠났다.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현재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병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젊은 화학자인 그의 관심을 끌었고,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한 후보물질 연구를 한 번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도교수의 조언을 듣고 연구 분야를 결정했다.
 
  본격적인 연구를 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와 화학연구원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였다. 10년 이상을 한 가지 연구만 붙들고 있는 동안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성과를 우선으로 하는 평가시스템은 큰 스트레스였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이 있었지만 연구 기간이 길어지면서 끊겼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연구 결과에 절망한 그는 마침내 연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연구기관에서, 아무 성과도 없이 무작정 연구에만 매달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컸다.
 
  손 박사는 상업적인 가치는 없지만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벨기에로 갔다. 논문을 평가 받기 위해 찾은 벨기에의 한 연구소에서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사업성이 충분하니, 적당한 회사를 연결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개 받은 곳이 미국의 길리어드였다.
 
  “제 연구를 검토해 본 길리어드 쪽에서 후속 연구를 지원해줄 테니 계속 진행하라며 공동연구를 제안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연구를 진행했고, 2년 후에 후보물질을 찾아낸 겁니다.”
 

孫박사가 찾아낸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은 미국의 길리어드 社에 기술이전되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열렸던 기술이전 성과 발표회 장면.

 
  신약 연구는 조급해서는 안 돼
 
  지난 2년, 그는 길리어드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보여주었다. 영문으로 씌어 있는 종이에는 항목별로 번호가 빽빽하게 매겨져 있었다.
 
  “다시 연구를 시작하게 됐을 때, 길리어드에서 이걸 보내 왔어요. 후보물질이 되려면 이 항목들을 다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고 시작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걸 다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대로 폐기처분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물질로 다시 시작하는 거죠. 500~600개까지는 숫자를 세면서 연구를 했는데 그 뒤부터는 안 셌어요. 한 1000개는 넘었을 겁니다. 그렇게 숱한 실험을 거쳐 겨우 하나를 찾아낸 것이죠. 이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고, 실제 진행하고 있는 테스트는 위의 몇 가지 항목뿐이에요. 그러니 길리어드가 아니었으면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조차 가지고 있질 않으니까요.”
 
  게다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리어드에서는 한 번도 그의 연구를 채근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화학실험은 본질적으로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과 내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야
 
  소탈한 성품의 그는 넥타이를 매는 것도 싫어하고, 책임연구원이라고 폼 잡고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늘 작업복 차림으로 연구실을 지키고, 결과를 체크한다. 요즘도 그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연구실에서 똑같은 연구를 진행한다. 어떤 연구인지 묻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후속 연구”라며 “그래서 과학은 끝이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기술이전이 목표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목표를 이루고 나니 더 큰 꿈이 생겼다”면서 “우리가 신약개발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며 후배 연구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 우물을 파는 게 중요해요. 깊이 파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값진 성과를 거두게 될 겁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도 많고, 연구환경도 좋고, 시스템도 잘 갖춰진 곳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일하는 외국 연구원들’입니다. 그들과 비교하며 우리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개발에 임한다면 우리도 신약 개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과학계 전체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선진국은 첨단의료산업을 어떻게 육성했나
 비전과 리더십으로 의료·바이오기업 결집시켜
 
李在昊 충남대 의대 교수
⊙ 1950년 인천 출생.
⊙ 서울대 의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 충남대 기획처장·의과대 학장 역임.
⊙ 現 충남대 의과대 소아과 교수, 충남대부속병원 소아과 의사, 첨단의료복합단지 추진
    실무위원회 위원장.
著者無 저자없음
<싱가포르의 바이오메디컬 산업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세워진 바이오폴리스 연구단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바이오 의료산업을 국가의 주요 추진 산업으로 선정, 바이오 신약개발, 줄기세포 연구, 의료보험제도 개혁, 국민보건 증진 등 해당 분야에 대한 예산지원을 증가시키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지금까지 종교적 이유로 일부 제한적이었던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 각국에서 점차 활성화되는 가운데, 조만간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연구결과들이 나타나는 무한경쟁 시대로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는 1900년대 전반에는 전동차·화학·전기·항공 산업이, 후반에는 전자·통신 산업이 主流(주류)가 됐다. 21세기 초가 되면서 세계경제 시장에 두 가지 이슈가 등장했다. 첫째 인구구조와 환경 이슈, 둘째 기술 컨버전스 이슈다. 환경오염 및 에너지와 물 부족 현상으로 대체에너지 시장과 친환경제품 시장이 유망해질 것이고, 핵가족화와 인구고령화로 건강과 의료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인간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융·복합기술과 연계된 건강, 질병 및 환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발전과 국민복지 및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BT산업이 IT산업을 능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들이 최근 의료산업을 차세대 주요 첨단산업으로 선정하면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를 年(연)평균 10% 발전시킬 수 있고, 국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어 국민복지와 경제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
 
  샌디에이고 지역은 성공한 의료산업 지역이다. 샌디에이고대학과 생명과학 관련 연구기관의 바이오 연구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결집한 이곳은 바이오 벤처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바이오산업 클러스터다.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의 발전과정은 곧 바이오클러스터 산업의 興亡盛衰(흥망성쇠)를 그대로 보여준다.
 
  1956년 스크립스(Scripps)연구소가 설립된 후, 1964년 샌디에이고대학이 설립돼 바이오 연구 기반이 구축됐다. 1978년엔 지역 최초로 바이오 벤처기업인 하이브리테크(Hybritech)가 설립됐다. 이후 53개 벤처기업이 창업해 1970~80년대 바이오분야 기초연구 성과의 사업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85년 샌디에이고대학의 커넥트(CONNECT)가 설립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호사, 기술자, 경영자 등이 참여하는 혁신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벤처기업의 창업과 다국적 기업이 집적돼 혁신클러스터로 성장, 바이오클러스터로의 역동적인 발전을 이뤘다.
 
  최근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샌디에이고대학의 연구성과를 활용하거나 M&A를 위해 샌디에이고 지역으로 밀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이자, 릴리, 존슨앤존슨, 머크,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기업을 포함해 500여 개의 생명과학 기업이 모여들었다. 또 대학과 연구기관들의 기초 연구성과에 대한 사업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요인
  ● 우수한 연구기관과 대학의 존재. 솔크(Salk), 스크립스 연구소 등 세계적 수준의 생명과학 기초연구기관과 샌디에이고대학 등 연구중심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 기초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추진하는 ‘커넥트’ 프로그램의 활성화.
  ● 세계적인 석학 연구자를 유치해 생명과학 연구의 리더십을 확보.
  ● 1970년대 바이오벤처 창업의 성공사례들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유입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
 
  미국 보스턴에는 MIT, 하버드, 보스턴대학 등 전통적으로 유수한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집적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하버드 의대, 연구 지향적 병원인 MGH(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를 중심으로 이뤄진 대규모 병원은 미국 전체 병원 가운데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이를 바탕으로 발전한 의료서비스는 의료기술 확산과 산업화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연구중심 클러스터의 연구개발 결과물들이 상업화에 성공, 바이오클러스터 내에는 300여 개의 바이오테크 기업과 150여 개의 의료기기 업체들이 입주해 기업 수 기준으로 바이오산업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창업도 활발하게 이뤄져 1985년부터 2000년까지 152개의 신규 바이오기업이 생겨났다. 2004년엔 MGH 연구결과 중 17개 품목이 제품화돼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중 대표적 사례가 관절염 치료제인 엔브렐(Enbrel)이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의 핵심주체로 1990년대 중반 존 패리시(John A. Parrish)와 론 뉴바우어(Ron Newbower)에 의해 설립된 CIMIT(Center for Integration of Medical and Innovative Technology)다. CIMIT은 보스턴 지역의 주요 연구기관과 의료기관들로 구성된 컨소시엄 형태로, 다양한 연구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건의료 기술의 이전과 산업화를 돕고 있다.
 
  CIMIT는 바이오클러스터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네트워킹 환경을 이용해 MGH, MIT, 하버드 의대 등 세계적인 대학, 병원, 연구소, 금융기관 등을 연계하는 중개연구의 촉진자적 역할을 담당한다. 임상의사, 기술자, 기업가, 과학자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임상 중심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의료기술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현케 하는 교량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 요인
  ● 1811년에 설립된 미국 내 3위 규모의 MGH와 보스턴 지역 내 전통 있는 병원들에 의해 확보된 전통적인 의료서비스 인프라.
  ● 하버드, MIT, 보스턴대학 등 교육·연구기관들의 우수한 의료인력.
  ● 의료기술의 사업화 기반 조성. 지역의 풍부한 금융 인프라를 통해 사업자금을 조성할 수 있고, 비영리기관인 CIMIT를 통한 기초연구 성과의 산업화가 용이하다.
 
 
  [휴스턴 텍사스메디컬센터]
 
  미국 텍사스 휴스턴 지역의 텍사스 메디컬센터는 연구중심 병원과 의과대학을 중심축으로 교육훈련과 국제적인 의료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한 의료서비스 단지다. 단지 내에는 13개의 병원(6300병상)과 11개의 교육기관이 있다. 관련 종사자 수만 6만5300여 명(2004년)으로, 휴스턴 지역경제의 25%를 점유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텍사스메디컬센터 시작은 M.D. 앤더슨이 1936년에 건강, 과학 및 교육분야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설립한 앤더슨 재단이다. 2년 뒤 그가 기부한 1900만 달러의 유산과 텍사스주 정부가 기증한 토지를 제공 받았다.
 
  재단 설립 60년 후, 320만m² 규모의 공간에 암과 심혈관 질환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핵심 연구기관인 M.D. 앤더슨 암센터와 텍사스심장연구소를 비롯한 43개의 병원, 연구소, 의과대학, 지원기관들이 들어섰고, 의료서비스와 보건의료 연구 교육훈련 기능을 갖춘 ‘의료서비스 교육·연구 복합단지’로서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춘 ‘메디컬 도시’로 발전했다.
 

미국 텍사스 MD 앤더슨 암센터 전경.

  텍사스메디컬센터의 성공요인
  ● ‘메디컬 도시(City of Medicine)’란 비전의 공유.
  ● 의과대학, 의료기관, 병원 등 연관성이 높은 의료 관련 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상호협력 시스템을 구축.
  ● M.D. 앤더슨 재단이 특화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 기관으로 활약. 휴스턴시를 비롯한 주정부, 연방정부, 병원, 대학 등으로부터 지원을 유치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
  ●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 병원 설립을 통한 외국환자 유치.
  ● 교육 및 숙박시설과 각종 회의를 위한 컨벤션센터 등을 구축. 국제공항 교통체계, 외국환자를 위한 통역 등의 서비스.
 
 
  [고베 의료산업도시]
 
  일본 고베(神戶) 의료산업도시는 1995년 大(대)지진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市(시)가 직접 의료산업 발전을 주도한 결과다. 의료산업을 지역경제 발전의 성장동력 산업으로 지정해 국내외 의료관련 연구기관과 기업들을 집적시켜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 및 재생의학 등 첨단 의료기술 산업이 발전했다.
 
  고베 의료산업도시의 설립은 고베시와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및 문부과학성 등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추진됐다. 1998년 10월 고베 의료산업도시에 대한 기본구상이 발표됐고, 이듬해 8월 구상을 조기에 구체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산·학·연의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고베 의료산업도시 구상 연구회가 설립됐다.
 
  오늘날 국내외 70여 개 의료관련 기업체가 참여하고 있어 첨단 의료산업도시 형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의료산업도시로서의 성공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일본 고베 의료산업도시.

  고베 첨단 의료산업도시 성공요인
  ● 정부와 지역사회의 일관된 계획과 추진력.
  ● 뚜렷한 비전을 가진 선도자의 리더십. 前(전) 교토(京都)대 총장이자 당시 고베시립병원장이었던 히로 이무라(裕夫井村) 박사의 헌신적인 리더십과 의료산업도시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 필요한 원동력의 근원이 됐다.
  ● 인근지역의 우수한 교육 및 연구기관과의 효율적인 네트워크 구성. 고베시는 고베대학,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등 부근의 연구소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인근 지역의 바이오산업 단지와 연계했다.
  ● ‘선택과 집중’이란 목표로 연구분야 선정.
 
 
  [싱가포르 바이오사이언스 허브]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의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중심지’와 ‘아시아 최고의 의료서비스 허브’를 목표로 바이오메디컬 사이언스 동력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바이오메디컬 산업 발전을 선도하기 위한 연구단지인 바이오폴리스(Biopolis)와 5개의 핵심거점 연구기관이 설립돼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 2005년 9.8%의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아보트, 글락소스미스크라인, 론자, 머크, 노바티스, 화이자, 사노피 아벤티스, 박스터 등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연구시설을 설립했고, 백톤 디킨슨, 바이오센서, 시바 비전, 에실로, 올림포스, 필립 메디컬 등과 같은 글로벌 의료기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또 벤처창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의 의료 허브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기술 산업을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바이오메디컬 사이언스 프로젝트를 1999년부터 5년간 추진했다. 그 결과 의료기술 부문이 국가 총생산액의 9.1%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 섹터로 성장했다.
 
  선진국의 의료기술혁신 클러스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6가지로 요약된다. ▲지역 의료산업 발전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리더십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공감대 형성을 통한 외부 연구·개발자금과 바이오 기업들을 결집 ▲교육·문화·생활 환경이 잘 발달한 대도시에 위치한 의료기술혁신 클러스터 ▲연구개발 기능, 교육훈련 기능, R&D 지원서비스 기능, 중개 임상연구 기능 등의 기술혁신 가치 사슬이 효율적으로 잘 발달한 시스템 ▲‘혁신촉매기관’의 존재 ▲세계적인 혁신클러스터로서의 명성과 브랜드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환경과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식생활과 생활양식이 나날이 서구화되고 있다. 질병 양상이 변화하고 노인 인구의 증가로 세계 1위의 고령화 속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30년엔 국민의 25%가 65세 이상인 超(초)고령화 사회에 진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 창출 ▲삶의 질 향상 ▲선진 복지사회 구현 등을 위한 첨단의료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료산업의 현실은 취약한 수익성과 자본구조, 전후방 산업 간 연계성 부족 등으로 경쟁력이 저하된 상태다. 국내 종합병원 중 연구개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14%밖에 되지 않고, 제약사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다국적 제약사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취약하다.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낙후되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첨단의료복합단지를 활성화해 외국 선진국들의 틈새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현실에 적합한 의료산업을 선택해 21세기 성장동력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또 의료산업 활성화를 통해 급격하게 증가하는 암, 당뇨, 심·뇌혈관 등 질환과 난치병의 치료법들이 개발돼야 하며, ‘U-Health’와 같은 의료서비스 수준을 향상시켜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의료산업 수준이 미미한 우리나라에서 의료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냉정한 판단과 엄격한 기준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조성되는 지역이 선정돼야 한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지역이 정치적이거나 지역적인 이유 등으로 잘못 선정된다면 국가의 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은 물론, 중복투자로 인한 국가재정 파탄까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
 
  의료산업은 기계, 전자, 재료, 표준, 바이오, 통신, 임상 등의 융·복합 과학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다. ‘대덕R&D특구’는 35년간의 지속적 투자를 통해 시설, 기술, 인적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특구본부를 비롯해 KAIST, ETRI, 생명·한의학·화학 등 의료기술 개발을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구축됐고, 바이오벤처기업 및 대기업 연구기관들이 집적돼 있다.
 
  차세대 의료기술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의료서비스 수준 향상과 의료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첩경이다. 대덕R&D특구 내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조성되면 특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싱가포르 바이오메디컬 허브 프로젝트의 성공요인
  ● 국가 브랜드 가치를 최대한 활용, 글로벌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업체들 적극 유치.
  ● 글로벌 스탠더드 접근방식을 통해 선진 주요국의 선도 연구기관 연구원과 바이오 분야 석학들을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운영.
  ● 산업육성 정책과 바이오메디컬 사이언스 정책의 적절한 조화.
  ● 바이오기술의 분야와 발전단계에 따라 투자펀드와 R&D 보조금 등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

姜啓斗 대덕특구지원본부 이사장
 “시장친화형 연구개발 유도하겠다”
 
姜啓斗
⊙ 1954년 광주 출생.
⊙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日 히도쓰바시대 대학원 석사.
⊙ 기획예산처 과학환경예산과장, 同 경제예산심의관, 행정재정기획단장,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역임.
裵振榮 月刊朝鮮 기자  (ironheel@chosun.com)

姜啓斗(강계두) 대덕특구지원본부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대전의 대덕특구를 찾았다.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KTX로 50분. 대전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KTX 개통 이후 대전은 시간적으로는 웬만한 서울 인근 도시들보다 가까운 도시가 됐다.
 
  대전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특구본부로 가자”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택시기사는 특구지원본부를 한참 지나 한국과학재단 앞에서 차를 세웠다가 특구본부 관계자와 통화를 한 후에야 황급히 차를 돌렸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走馬看山(주마간산)격으로나마 특구를 돌아볼 수 있었다. 대덕특구는 단순히 연구소들의 集積地(집적지)인 ‘연구단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약국과 병원, 補習(보습)학원, 옷가게, 전자제품 대리점, 초등학교 등이 모여 있는 ‘사람 사는 도시’였다.
 
  이 대덕특구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강계두 이사장은 작년 12월 제2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기획예산처 경제예산심의관, 同 행정재정기획단장,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답게 강 이사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鎭重(진중)했다.
 
  -대덕전문연구단지로 출발한 대덕특구는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로 탈바꿈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아직도 兩者(양자)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연구 ‘단지’에서 연구개발 ‘특구’로 바뀐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1978년 연구소가 입주하기 시작한 이래 대덕특구에는 지금까지 47조원이 투자됐습니다. 그동안 대덕단지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 한국과 미국의 휴대폰 표준기술) 상용화를 비롯해 많은 성과를 냈지만, 상품화를 위한 투자가 미비해 연구개발 성과와 산업을 연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지난 30년간 축적된 대덕의 연구개발 역량에 비즈니스 기능을 접목하여 국가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기존의 대덕연구단지를 연구개발특구로 개편한 것입니다.”
 
 
  연구와 산업의 접목
 
  -연구단지에서 특구로 바뀐 후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작년 말 현재 특구 내 기업은 900여 개, 매출액은 9조원, 연간 연구개발비는 4조7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특구 출범 전과 비교하면 모두 30%씩 증가한 것입니다. 대덕특구 내 기술이전은 2005년 577건에서 2007년 815건으로 늘었고, R&D생산성은 같은 기간 동안 2.9%에서 3.6%로 늘었습니다.
 
  15개 해외 연구단지와 MOU를 체결했고, 세계과학단지올림픽인 2010년 세계과학단지협회(IASP) 세계 총회를 유치했습니다. 12개 연구소기업이 설립됐고, 800억원의 대덕펀드가 조성됐습니다.”
 
  -대덕연구단지가 대덕연구개발특구로 바뀌면서 종전의 대덕전문연구단지관리본부 대신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가 출범했습니다. 양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지원본부는 단순한 관리기능을 넘어서 특구 내 연구 인력과 기업인들을 위한 복지 지원업무와 함께 기업, 특히 벤처기업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특구본부는 기술사업화 강화, 고객중심적-시장친화형 사업지원에 힘쓸 것입니다.”
 
  던지는 질문이 무엇이건, 강계두 이사장의 대답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다. 대덕특구의 연구개발 역량을 산업부문(기업)과 연결시켜 돈을 벌겠다는 얘기였다. 연구개발과 산업의 접목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강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매년 국가예산에서 연구개발투자비 상승률은 13%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低(저)성장 기조가 고착되면 이 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가 이루어지려면 ‘연구개발→상품화→수익의 연구개발 再(재)투자’라는 善(선)순환구조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강 이사장은 “외국에서도 이미 R&D(Research & Development)를 넘어서 R&B&D(Research & Business & Development)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구 내 주체들 간에 벽이 많았다”
 
  연구개발 성과와 기업의 요구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멀리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KIST의 初代(초대) 소장에 취임한 崔亨燮(최형섭·과학기술처 장관 역임) 박사는 KIST의 연구개발 성과를 당시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한국 공업과 접목시키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았다.
 
  1970년대 중반 대덕연구단지 조성과 연구소 입주를 지휘했던 吳源哲(오원철) 청와대 경제제2수석비서관은 대덕단지에 정부출연연구소들은 물론 민간기업연구소들을 유치하는 한편 연구소들의 재정적 자립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 연구’를 하라는 얘기였다. 그 이후에도 産學(산학)협동이라는 말은 수없이 강조되어 왔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얘기가 이제 와서 새삼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강계두 이사장의 말이다.
 
  “한마디로 벽이 많았습니다. 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 대학, 기업 간에 유기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지 못했습니다. 출연연구기관들은 기술개발과 관련해서 시장의 요구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해 왔습니다. 연구소의 폐쇄성으로 인해 기업이 연구소의 연구개발 성과물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은 특구 내 다른 주체들과 융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MIT나 스탠퍼드 등 외국의 유명 대학들이 지역사회나 다른 연구기관들과 활발한 연계활동을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대덕단지 내 기업들은 인프라 및 인력기반이 약하고, 기업 간 연계가 미흡했습니다. 일례로 특구 내에 부품기업이 10개社(사)가 있지만 대전에 있는 한라공조에 납품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는 형편입니다. 물론 특구본부도 각 주체들을 효율적으로 연계해 기술사업화를 도모하는 것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해 왔습니다.”
 
  강 이사장의 말은 대덕특구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자아비판이었다. 그의 자아비판은 계속됐다.
 
  “이제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연구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기업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제공해야 하고, 産·學·硏(산·학·연), 아니 더 나아가 産·學·硏·官(대전시·중소기업청)·言(언) 간의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강계두 이사장은 “특구본부는 이러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매개체 역할, 기술의 공급자(연구소)와 수요자(기업) 간의 중개자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800억원 규모의 대덕펀드 운용
 
  강 이사장은 그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로 특구 내 벤처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800억원 규모의 대덕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고 있는 것을 꼽았다.
 
  “대덕펀드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산업은행, 대전시 등에서 출연한 자금으로 조성되었으며 7년간 운영된 후 청산될 예정입니다. 공공펀드지만 운용은 민간에 맡겼습니다. 이미 362억원이 투자됐고, 금년 중으로 3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투자한 벤처기업에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으로 다른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는 것이죠.”
 
  강 이사장은 “올 10월 새로운 특구본부 건물이 완공되면, 비즈니스 허브센터를 만들어 벤처창업자들을 위한 원 스톱(One-stop)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덕특구가 해외 15개 연구단지(클러스터)와 MOU를 체결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양해각서 체결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교류협력 사례가 있습니까?
 
  “3월 4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핀란드국립기술센터(VTT) 공동연구센터 개소식이 있었습니다. VTT는 2700여 명의 연구인력과 3억3000만 달러의 연구비(2006년 기준)를 가진 세계적인 연구기관입니다. ETRI-VTT공동연구센터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요구되는 첨단 IT연구에 주력할 것입니다.”
 
  문득 특구본부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떠올랐다.
 
  -게스트하우스는 무엇 때문에 만들었습니까.
 
  “개발도상국에서 대덕특구 운영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옵니다. 개도국들 가운데는 ‘한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하게 된 것은 대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집트·튀니지 등에서 온 연구단지 관계자들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대덕특구 모델에 대해 배우고 갔습니다.”
 

지난 3월4일 ETRI-VTT공동연구센터 개소식. 강계두이사장(앞줄 왼쪽에서 4번째)이 에리키 레파보리 VTT대표(앞줄 왼쪽에서 5번째), 김채규 ETRI 연구전략부문장과 함께 연구센터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태양광에너지와 자전거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近作(근작)인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지구온난화, 세계화, 인구증가 및 경제발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을 ‘에너지 기후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국가의 成敗(성패)가 달라지고, 녹색기술이 미래의 국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산 자동차의 연비효율 향상을 강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도 작년 8·15 경축사에서 ‘低(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했다. 바야흐로 ‘그린(녹색)’은 우리 시대의 트렌드가 됐다.
 
  -대덕특구 내 연구소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녹색기술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S에너지 등에서는 태양광에너지와 관련해 상당한 기술을 축적해 놓고 있습니다. 대림산업 대덕연구소에서는 실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에너지 절약형 벽체나 창호 등을 개발해 놓고 있는데 이것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한국기계연구원에서는 수소연료차 및 청정에너지, 에너지기술연구원과 화학연구원에서는 풍력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강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태양광에너지”라면서 태양광에너지와 태양열에너지, 태양전지 등에 대해 한동안 열심히 설명했다. 꽤 기술적인 설명도 곁들이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것 같았다.
 
  녹색기술과 관련해 강계두 이사장이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가 또 있다. 바로 자전거다. 자전거산업 육성을 위해 대덕특구지원본부는 지난 2월 23일 자전거 관련 산·학·연 전문가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특구 국산자전거산업 육성협의회’까지 열었다.
 
  솔직히 강 이사장이 자전거 얘기를 꺼냈을 때는 ‘大(대)대덕특구본부 이사장이 고작 자전거에 매달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자전거’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산업은 지난 2월 16일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발표한 저탄소 녹색산업의 핵심이자, 지식경제부 선정 17개 신성장동력산업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전 세계 자전거 시장의 규모는 연 600억 달러 규모. 중국·미국·일본·독일 등에서 전세계 생산량의 90%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 중 중국이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전거 수요는 2005년 202만대에서 2007년 257만대로 늘어났지만, 국내 생산량은 2만대에 불과한 형편이다. 과거 삼천리자전거 등이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강계두 이사장의 말이다.
 
  “자전거산업은 高(고)부가가치 녹색산업입니다. 소요되는 부품이 300여 개로 중소 부품기업의 일거리 창출 효과가 큽니다. 게다가 자전거에 IT기술이나 BT기술 등 대덕특구의 첨단기술을 융·복합해 운동량이나 건강상태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들거나 하이브리드 자전거(전기 모터를 장착한 자전거) 등 세계 일류 제품 생산이 가능합니다. 우선 2012년 런던올림픽 사이클 경기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산 사이클을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작년 11월3일~11월14일 대덕에서 열린 한국형과학단지 모델전수사업에는 이집트 등 13개 개도국에서 온 18명이 참가했다.

 
  “과학기술인들의 사기진작 위해 노력”
 
  대덕특구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은 역시 과학기술인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불황이 오면 노조의 그늘 아래 있는 생산직 근로자들은 살아남는 반면, 연구개발 인력들은 제일 먼저 減員(감원)대상이 된다. 정부 내에서 기술직 공무원들은 행정직 공무원들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理工系(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강계두 이사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공계 기피현상 등으로 대덕특구의 과학기술인들도 사기가 많이 저하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노력한 만큼 사회적인 존경은 물론 경제적인 보상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대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앞장설 생각입니다. 연구개발과 산업을 연계시키는 기술사업화를 강조하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을 강조하는 강계두 이사장 자신도 전문 과학기술인 출신이 아니라 재경부 관료 출신이다. 朴寅哲(박인철) 초대 대덕특구 이사장도 기획예산처 재정기획실장 등을 지낸 경제관료였다. 대덕특구 이사장 자리는 옛 재경부나 기획예산처(현재는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들이 퇴직 후 가는 자리로 굳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학기술인들의 소외감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들과 接點(접점)에 있는 대덕특구 이사장부터 과학기술인 출신이 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해 강계두 이사장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엔지니어적 지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덕특구가 지향하는 기술사업화와 관련해 과학전문가가 아닌 점이 큰 장애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덕의 기술사업화가 잘되지 않았던 것은 기술개발이 미흡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대덕의 잠재기술과 외부산업, 관리역량을 한데 꿰는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죠. 저의 30여 년 동안의 공직 경험과 이를 통해 형성된 중앙의 다양한 네트워크는 이런 점에서 대덕특구에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과학기술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우선 저부터 대덕특구의 과학기술인들과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덕특구 내 40여 개 출연연구기관, 벤처기업 대표 등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에 만난다고 해서 ‘이화회’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利和會(이화회)’라고 씁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화합하는 모임’이라고 할까요. 특구본부 직원들에게는 누구나 대덕특구 내의 한 개 이상의 커뮤니티나 포럼, 협의체에 참가해 특구 내 연구원, 기업인들과 의사소통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구본부에 네트워크팀을 신설했습니다.”
 
  -대덕특구 내 연구원, 기업인들과 접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자녀들을 위한 교육시설이나 연구원들의 여가활동과 관련된 운동시설 확충에 대한 요구가 많더군요.”
 
  -대덕특구 내 외국인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녀가 많은 경우, 자녀들을 모두 특구 내 국제학교에 보내기에는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영어 등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의료시설을 확충해 달라는 요구도 많고요.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특구본부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강 이사장에게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이것만은 꼭 해결하고 나가겠다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첫째는 자전거산업 육성, 둘째는 태양광에너지 사업화, 셋째는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연계한 民-軍(민-군) 기술개발 활성화였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강조되는 시대에 그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말한 ‘코드 그린’이라는 話頭(화두)를 꽉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대전의 뜨는 기업
 대덕 벤처 중 매출 1000억 원 돌파 기업 탄생
 
李相欣 月刊朝鮮 기자  (hanal@chosun.com)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에서 처음으로 연간 매출 1000억원대의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반도체 전문 기업인 ‘실리콘웍스’(대표 韓大根)와 국내 최대 스크린골프 업체인 ‘골프존’(대표 金榮贊)이 그 주인공들이다. 1999년 설립된 실리콘웍스는 2008년 말 매출 1200억원을 돌파했고, 2000년 설립된 골프존은 1009억원을 기록했다. 두 기업을 탐방했다.
 
 
  [반도체 전문 회사 실리콘웍스]
 

실리콘웍스 한대근 대표.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3층짜리 실리콘웍스 본사 건물에는 반도체 회사를 연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연구원들의 책상에는 컴퓨터가 하나씩 놓여 있었고, 건물 2층 다른 사무실에 설계한 반도체와 최종 생산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테스트룸을 갖춘 게 전부였다.
 
  이 회사 한대근 대표는 “우리는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기타 생산과 가공 등은 모두 외주업체가 담당하기 때문에 회사 건물이 특별히 커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리콘웍스처럼 반도체 자체 생산공장이 없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팹리스 회사’라고 한다. 팹리스 회사는 설계한 반도체 도면을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외의 협력 업체를 통해 실제 제품으로 생산한 후 대기업에 납품한다.
 
  실리콘웍스가 생산하는 반도체 부품은 모두 LCD(액정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IT 器機(기기)인 노트북, 모니터, TV 등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내 LCD 모듈(LCD패널, 백라이트, 구동칩 등으로 구성) 생산업체에 납품된다. 또한 이들 업체를 통해 해외 유명 IT 세트 업체(완성제품)인 애플, 델, HP 등에도 공급되고 있다.
 
  실리콘웍스의 직원은 현재 120명이다. 그 가운데 105명이 반도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다. 엔지니어 가운데는 석·박사급이 60% 정도를 차지하며, 나머지 인력은 반도체 관련학과를 졸업한 학사 출신들이라고 한다.
 
  실리콘웍스는 1999년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 되어 하이닉스반도체가 되었을 때, LG반도체에 있던 일부 연구인력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다. 실리콘웍스의 한대근 대표도 LG반도체의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실리콘웍스 설립에 합류했다. 2000년부터 이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실리콘웍스가 主力(주력)으로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은 디지털 TV의 핵심 부품인 평판디스플레이(FPD)에 들어가는 드라이버 IC(화상구동칩), 타이밍컨트롤러(Tcon), PMIC(전력관리칩) 등 세 가지다. 현재 시판중인 대부분의 TV와 컴퓨터에는 LCD 모니터가 사용된다. 실리콘웍스가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은 LCD 모니터를 구동하기 위한 핵심 반도체 부품들이다.
 
  ‘드라이버 IC’는 LCD를 구동하는 반도체로 화면데이터를 디지털로 받아서 사람 눈에 보이기 쉽게 아날로그 신호로 전환해 주는 부품이다. ‘타이밍컨트롤러’는 각종 디스플레이어에 필요한 신호를 제어하는 장치로 LCD 화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다. 마지막으로 ‘PMIC’는 시스템에서 필요한 여러 종류의 전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파워를 생성해주는 IC다. 이 제품은 다양한 종류의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핵심 반도체 제품이다.
 
  한대근 대표는 “이런 부품들은 IT 기기의 LCD 표시장치 제품의 두께와 화질, 전력소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요자가 원하는 성능과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실리콘웍스는 2008년 한 해에만 10여 종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디스플레이어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의 전력 소모를 경쟁사 제품에 비해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들이었다. 노트북 사용자는 베터리 전력소모에 민감한데, 실리콘웍스는 타이밍 컨트롤러가 소모하는 전력을 일본의 경쟁사에 비해 50% 이상 줄였다고 한다. 현재 실리콘웍스는 국내외에서 22개의 기술특허를 가지고 있다.
 
  한 대표는 “고객의 요구조건에 맞추면서도 기술을 선도해 가기 위해서는 선행연구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며 “자체에서도 선행연구를 하고 있지만, 우리 회사가 대덕특구에 있기 때문에 기초연구 분야의 산학협동도 활발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7년 상반기의 매출액은 600억원이었는데, 2008년 연말에 가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매출신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비록 올해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지만, 평판디스플레이 관련 제품 개발에 주력해 20~30%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해온 산업분야라면 대기업에서는 왜 직접 설계회사를 운영하지 않고 실리콘웍스 같은 반도체 전문 회사를 통해 제품을 공급 받는 것일까? 한 대표의 대답이다.
 
  “반도체 설계는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종합반도체 회사는 민감한 경기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쉽지가 않고, 회사의 유지비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팹리스 반도체 회사는 최종 시장에 적합한 특정 반도체의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 대표는 “종합반도체 회사인 국내의 삼성전자 및 일본의 NEC 등은 대기업이지만 규모가 작은 실리콘웍스로서는 기술력 측면에서 이들과 대등한 수준에 있다”말했다.
 
 
  전자종이 사업에도 진출
 
  실리콘웍스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전자종이 분야의 진출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나노마켓의 발표에 의하면 전자종이 시장규모는 2008년 1억7000만 달러에서 2012년 16억 달러, 2015년 48억 달러로 연평균 480%의 폭발적인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사업분야다. 회사 측은 대덕특구 지원본부가 주관하는 전자종이 기술 사업에 참여하여 구동회로의 핵심기술을 이미 완성한 상태라고 밝혔다.
 
  실리콘웍스는 전자종이 분야뿐 아니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OLED는 유기화합물을 사용해 자체 발광시키는 디스플레이로, 화질의 반응속도가 LCD에 비해 1000배 이상 빠른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다.
 
  한 대표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전방위 기업(LCD 표시장치 제품 생산기업)들은 세계 1위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 같은 후방 부품 산업도 당연히 세계 1등 수준을 유지해야 전방위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디스플레이 분야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관건인데 아무래도 중소기업이다 보니 인력 유치가 대기업만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스크린골프 업계의 지존 골프존]
 
골프존 김영찬 대표.

  스크린골프 업계의 선두 주자인 ‘골프존’은 대덕테크노밸리 산업단지 내에 있다. 2000년 설립된 골프존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첫 제품을 내놓은 2002년에 매출 10억원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314억원을, 2008년에는 100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골프존 본사 사옥에 들어서자 1층 전체를 갤러리형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1층 미술전시관에서는 도예가 홍승일씨와 한지공예가 이종국씨의 작품이 전시중이었다. 골프존은 지난해부터 대전·충청 지역의 전통 공예 名匠(명장) 5명을 선정해 후원해 오고 있는데, 회사 갤러리에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후원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골프존은 현재 국내 스크린골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골프존이 지난해 한국갤럽과 공동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난 한해 동안 스크린골프장을 방문한 사람은 67만여 명, 연인원 기준으로는 환산할 때 2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2008년 한해 실제로 골프 필드를 찾은 사람은 연인원 2400만명으로 나타났다. 스크린골프 산업이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전국의 스크린골프장은 3000여 곳이 영업 중이다. 이 가운데 골프존 제품이 들어간 영업소는 2000여 곳이며, 이들 업소에 6000여 개의 골프존 시스템이 깔려 있다(골프존은 개별영업소를 ‘사이트’, 스크린골프 기계를 ‘시스템’이라고 부름-편집자 주).
 
  김영찬 골프존 대표는 “스크린골프 산업의 급속성장 배경에는 국내 골프인구는 증가하는데 골프장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며 “우리나라 골프인구는 350만명(성인층의 10%)에 달하지만, 골프장은 300개도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골프장 한 개당 이용자 수는 평균 1만여 명이라고 한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스크린골프는 18홀 한 라운드 게임을 하는데 비용이 2만~3만원 정도 듭니다. 실제 골프장에 가면 30만원은 기본으로 드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경제적이죠. 특히 주말에는 골프장 부킹이 힘들고, 바쁜 직장인들이 골프장에 한번 나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 대표는 골프존을 창업하기 전 삼성전자의 시스템사업부 부장으로 근무했다. 1993년 직장을 그만둔 그는 PC 통신과 전화정보사업 등의 부가통신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업체의 난립으로 큰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나이 40세에 골프에 입문한 김 대표는 어느 날 미국산 골프스윙 분석기를 보고, 여기에 게임적인 요소를 보태면 실내에서도 충분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00년 그는 회사를 설립한 후 1년 반 동안 제품개발에 매달렸고 2002년 첫 제품을 출시,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설립 5년 만에 회사가 10배로 성장했다”며 “앞으로 매년 5년 단위로 10배의 성장을 이루어 2016년에는 매출 1조 규모의 회사로 탈바꿈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골프존은 2012년에는 증권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외 유명 골프장 코스 완벽 재현
 
  골프존이 국내 스크린골프 시장에서 1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술력 때문이다. 전방에 있는 3m×5m 크기의 화면을 향해 골프공을 치면 화면에서는 골프공이 시원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린에 안착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마치 실제 라운딩을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스크린골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그래픽(3D), 게임 소프트웨어, 센서, 네트워크 등 6개의 IT 핵심기술이 융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사실적인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국내외의 유명 골프장을 촬영하거나 등고선을 측정하고, 설계도면을 구해서 이를 3차원 디지털 화상으로 표현해 사실감을 높였다.
 
  골프존은 국내의 유명 골프코스는 물론 페블비치, 세인트앤드루스 등 전 세계 유명 골프코스도 구현해 놓았다. 김 대표는 “미국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골프의 발상지인데 워낙 콧대가 높은 회사라 코스 사용권 계약을 맺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골프존은 전국의 2000여 곳 골프존 사이트(스크린골프 업소)와 이들 업소에 설치된 6000개의 시스템(스크린골프 부스)을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해 놓았다. 이를 통해 제주도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골프 게임을 즐길 수가 있고, 개인 데이터 공유는 물론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각종 이벤트 정보도 받아볼 수가 있다.
 
  김 대표는 “골프는 예의와 품위가 요구되는 고급 스포츠”라며 “전 국민 누구나 골프를 배워 삶의 질이 높아지고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골프존이 골프문화를 보급하고 선도하는 ‘골프문화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계획을 마련해 놓았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사실 原價(원가)경쟁입니다. 빠르고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을 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데, 이렇게 해도 궁극적으로 대기업을 이기기는 힘이 듭니다. 대기업을 이긴다고 해도, 그 후에는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콘텐츠 중심의 문화기업 형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크린골프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고부가치를 가지는 문화관련 콘텐츠를 집중개발 중입니다.”
 
  골프존은 현재 중국과 일본의 주요 도시에 상당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다.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의 4대 지역에는 현지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현재 골프존은 21개국에 스크린골프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김 대표는 “社勢(사세)가 좀 더 확장되면 서울 시내에 골프전문 빌딩을 지어 국내 골프산업을 선도하는 메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근본을 지키는 도시
 나의 뿌리를 찾으려면 대전으로 가라
 
세계 유일의 孝 공원 ‘뿌리공원’,
족보 출판업의 원조 ‘回想社’,
대학 최초로 설립된 ‘배재대 족보자료실’


사진 : 대전시 중구청 제공

崔逸 충청투데이 경제부 기자
著者無 저자없음
<대전 중구 침산동에 조성된 뿌리공원은 경로효친사상과 충효사상, 주인정신을 함양하는 차세대 교육의 장이다.>

네 근본이 무엇이냐? 너의 뿌리를 찾으려거든… 대전에 그 해답이 있다.’ 대전은 국토의 중심부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이 교통의 요충지였고, 최근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뿌리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전국 유일의 孝(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과 족보 출판업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回想社(회상사)’, 국내 대학 도서관 중 최초로 설치된 ‘배재대 족보자료실’ 등을 통해 한민족 뿌리 찾기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대전의 면모를 짚어 본다.
 
 
  세계 유일의 孝 테마공원, ‘뿌리공원’
 
  대전 중구 침산동 산 34번지에 위치한 뿌리공원은 民官(민관)이 합심하여 조성한 세계 유일의 ‘孝’와 ‘姓(성)’ 테마공원이다. 1997년 11월 개장한 뿌리공원은 11만㎡ 부지에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 사신도와 12지신을 형상화한 뿌리 깊은 샘물, 각종 행사를 열 수 있는 수변무대, 잔디광장 및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삼림욕장, 자연관찰원, 어린이 교통안전교육장 등을 갖춘 체험학습장이다.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136개 문중의 조형물과 유래비가 세워진 뿌리공원은 경로효친사상·충효사상 및 주인정신을 함양하는 교육공원, 다양한 가족단위 시설 및 이벤트 행사가 마련된 가족공원,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도심 속 자연공원이다.
 
  뿌리공원은 1997년 72개 성씨 조형물이 만들어져 문을 연 이후 지난해 64개의 성씨 조형물이 추가 설치됐으며, 효 관련 교육의 장으로 인기가 높아 유림·종친회·학교는 물론 가족 단위 관광객 등 연간 방문객이 1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공원 일대에서 효와 성씨를 테마로 조상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효의 정체성을 확립함은 물론 뿌리공원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육성하기 위한 ‘효 문화 뿌리축제’가 처음 개최됐다.
 
  이와 함께 올해 말 뿌리공원 내에 건립될 ‘족보박물관’도 대전을 상징하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5억원이 투입돼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1047㎡ 규모로 들어설 족보박물관은 상설전시실, 홍보전시실과 수장고,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각 성씨나 문중에서 보유하고 있는 족보를 전시·보관하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재 각 종중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전시물을 기증받고 있으며, 반세기 넘는 역사를 이어온 족보 전문출판사 ‘회상사’에도 협조를 구했다. 대전 중구청은 족보는 물론 성씨의 유래, 문중별 위인 등 다양한 성씨 관련 자료를 수집,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를 공개할 계획이다.
 
  李殷權(이은권) 대전 중구청장은 “우리 고장의 자랑인 뿌리공원에 명품 족보박물관을 건립, 명실상부한 충효의 전통을 계승하는 산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뿌리공원 개장시간은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6시~오후 10시,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7시~오후 9시.
 
 
  족보 출판의 원조, ‘회상사’
 

1988년 회상사 내에 설치된 ‘회상문보원’은 4만여 점의 자료를 보유한 국내 최초·최대 족보도서관이다(사진은 회상사의 김창수 공장장).

  회상사는 전국에 보급된 족보 10권 중 8권 이상을 생산해낸 족보 출판의 원조이자 족보 문화의 산실이다. 55년째 대전 동구 중동 47-4번지를 지키고 있는 회상사 社屋(사옥)에는 ‘전통문화 진흥, 차세대 육성의 전당’이란 글귀가 쓰여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1954년 30대 초반의 사업가였던 朴泓九(박홍구·88)옹에 의해 전국 최초의 족보 전문출판사로 창립된 회상사는 반세기가 넘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 회상사가 문을 열고 족보와 문집, 古書(고서) 출판을 본격화한 것을 계기로 주변에 인쇄업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인쇄 골목’ ‘인쇄 거리’가 조성됐다.
 
  회상사는 조판, 인쇄, 제본 등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처리, 1일 2000권을 발행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췄다.
 
  대전시민들에게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각인된 회상사는 자체 기술진이 고유 글자체를 개발, 1996년 박홍구 회장의 호인 春田(춘전)을 따 ‘춘전체’란 이름으로 특허등록을 했다.
 
1954년 회상사를 설립한 박홍구(88) 회장(왼쪽)과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장남 박병호(64)씨 부자.

  1988년 사옥 내에 설치된 ‘回想文譜院(회상문보원)’은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으로, 300여 년 된 <孝寧大君一子誼城君譜(효령대군일자의성군보)>를 비롯해 4만여 점에 달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150명에 달했던 직원은 금속활자를 대신한 컴퓨터 조판시스템 도입 등 공정 현대화와 CD에 담는 전자족보 제작 증가 등의 영향으로 현재는 35명으로 줄었다.
 
  여성 호주제 도입, 국제결혼 급증 등의 여파로 씨족 개념이 점차 희박해지며 족보의 중요성이 예전에 비해 크게 퇴색되고 있고, 경기불황으로 족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저하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회상사는 족보 출판의 명맥을 잇고 있다.
 
  대전 동구청장을 역임하고 2년여 전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회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朴炳浩(박병호) 대표는 “세태가 각박해지면서 자기의 핏줄을 찾으려는 의식이 크게 약화돼 안타깝다”며 “55년의 전통과 노하우, 전국 최대 규모, 최신 설비를 갖춘 회상사는 족보 출판의 원조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대학 도서관 중 최초로 개설된 ‘배재대 족보자료실’
 
  배재대 주시경 기념 중앙도서관에는 전국 대학 도서관 중 최초로 ‘족보·문집 자료실(Genealogy·Anthology Room)’이 설치됐다. 지난 2005년 8월, 개교 12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배재대 족보자료실은 성씨의 유래와 문중별 족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다량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국내 61개 성씨 199개 문중 387분파의 족보와 문집 등 총 973종 3357권의 자료는 배재대가 2004년부터 전국 각지의 문중으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구입한 것들로 <靑松世考(청송세고)> <靈山辛氏世譜(영산신씨세보)>를 비롯해 문화재로 등록된 고서 5권도 보유하고 있다.
 
  鄭淳勳(정순훈) 총장은 “민족 유산의 뿌리를 보존하는 특성화된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지역민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국 대학 도서관 중 처음으로 족보 자료실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사람] 李麟求 계룡건설 명예회장
 “대전사랑에 관한 한 ‘왕초’ 되고 싶어”
 
李麟求
⊙ 1931년 대전 출생.
⊙ 대전 중·고, 충남대 법학과 졸업. 충남대 행정대학원 수료. 충남대 명예 법학박사.
⊙ 1951년 학도병 자원 입대, 미 공병학교 유학. 1967년 육군 중령 예편.
⊙ 1970년 계룡건설 인수, 계룡건설산업 회장 역임.
⊙ 13대, 15대 국회의원(대덕 연기). 자민련 부총재 역임.
⊙ 현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계룡장학재단 이사장.
吳東龍 月刊朝鮮 기자  (gomsi@chosun.com)

대전 시내를 차로 달리면 영화배우 정우성이 등장하는 ‘리슈빌’(풍요로운 마을이란 프랑스어)이란 아파트 광고가 눈길을 끈다. 이 세련된 이름의 광고가 대전의 대표적인 향토기업 계룡건설의 아파트 브랜드라는 것을 외지인들은 눈치 채기 힘들다.
 
  李麟求(이인구·77) 계룡건설 명예회장은 스스로를 “대전의 터줏대감”이라고 했다. 그는 “閑山(한산) 이씨 종가를 비롯해 직계 9대는 지난 700여 년간 한 번도 충청도를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1970년 1월 20일 계룡건설을 인수한 이인구 명예회장은 40여 년간 계룡건설을 전국 시공능력 평가순위 21위의 건설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는 “우리 회사의 본사가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갈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리슈빌 아파트 브랜드는 삼성 래미안이나 LG 자이보다 대전시민들에게 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계룡건설은 작년 한 해 건설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 25.8% 증가한 1조 35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54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창립 39주년을 맞는 올해는 受注(수주) 2조1000억원, 매출 1조3000억원, 전국 10위권의 건설업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룡건설은 2008년말 현재 신규수주 1조4500억, 수주잔고 3조5000억, 회사채 부문 기업신용평가 A 등급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신용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명예회장의 ‘무차입 경영’ 방침 덕분이다.
 
  계룡건설은 다수의 신기술 및 특허를 바탕으로 선진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대한민국 최고아파트 대상, 건설협력증진 대상 등 굵직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불 끄고 사는 회장님
 
  이 명예회장 집무실은 최소한의 부분만 제외하고는 내부 형광등이 거의 소등돼 있었고, 쓰지 않는 컴퓨터 전원은 모두 뽑혀 있었다. 그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계열사 차원의 강도 높은 원가절감과 경영혁신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국내 30대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삭감하는 가운데 계룡건설은 지난 2월 25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임금 무삭감, 인원 무감축, 신규고용 창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2無(무)1加(가)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필자에게 계룡건설의 ‘임금 무삭감, 인원 무감축, 신규고용 확대’ 선언을 보도한 14개 언론사의 신문 스크랩을 보여주며 “임금동결, 반납이라는 모호하고 선언적인 내용보다 한 단계 발전한 실천방안으로 향후 기업들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社內(사내) 에너지 절약, 원가절감 노력만 철저히 해도 임금삭감을 안 해도 되고, 아까운 인재들을 해고하지 않고 더 뽑을 수 있다”고 했다.
 
  -중견기업으로서 2무1가 운동을 실천하려면 경영에 부담은 안됩니까.
 
  “물론 부담되지요. 하지만 그 정도는 원가절감 운동을 강력하게 하면 만회가 됩니다. 직원들 스스로도 감봉, 감원이 없도록 대중교통 이용하고, 이면지를 사용하고, 접대비를 줄이는 등 원가절감 운동에 적극 호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가절감 덕분에 작년에 540억원의 흑자를 보았고, 그 자신감으로 올해도 또 하는 겁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고려 후기의 문신 牧隱 李穡(목은 이색)의 19세손으로, 1931년 충남 대덕군 동면 효평리에서 태어났다. 이 회장은 대전중 5학년 때인 1950년 7월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 영천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301공병교육대에서 초단기 사관후보생 과정에 응시해 합격했고, 육군종합학교를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종합학교 임관 당시, 18세였던 그는 장교임관 연령 미달로 불합격됐으나, 판정관이 그의 ‘물건’을 확인하고 신체적으로 성년임을 인정해 임관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초급장교 시절 별명이 ‘잠지 소위’였다.
 
  그는 1951년 공병학교 교관으로 부임한다. 이인구 회장이 평생직업으로 ‘건설’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1952년 미국 국방성은 한국에 공병장교 40명으로 구성된 특별군사반 파견을 요청했다. 대전중 입학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40여 명의 선발장교 가운데 소위로서는 유일하게 합격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5·16 거사에 가담, 경부고속도로 건설
 
  그는 미국 육군공병학교 초등군사반 유학을 마친 후 미 국방성 매뉴얼섹션(군사교범총국)과 신병훈련소를 찾아다니며 수많은 기술자료를 구해 왔다. 이는 육군 공병이 戰後(전후)복구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기술자료들이었다.
 
  1953년 2월 귀국 후 그는 공병학교 교관으로 육군대학과 육군사관학교에 특강을 나갔다. 1961년 그가 대전지역을 관할하는 제3관구사령부 1202공병단 작전과장(소령)으로 있을 때,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에 적극 가담, 부대 지휘 과정에서 그는 쿠데타 진압군의 총격에 사살당할 뻔했으나 평소 친분이 있던 부연대장인 김영진 중령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쿠데타 성공 후 혁명주체 세력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들어갔고, 그는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그 기획을 육군 공병감과 건설부장관에게 맡겼어요. 공병감은 7인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저를 팀장으로 지명했습니다. 20일간 서울~부산을 헬기로 20여 회 왕복정찰을 한 후 노선확정을 위해 대통령께 보고했어요.”
 
  실무팀장 이인구 중령이 丁一權(정일권) 국무총리, 재무부장관, 건설부장관을 비롯한 5~6명의 관계장관, 참모총장, 공병감이 배석한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부고속도로 노선확정을 위한 보고를 시작했다.
 
  이 중령이 “공사비용을 산출해 보니 450억원이 소요된다”고 보고하자 박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도둑놈들! 나는 군인만큼은 믿어 왔다. 그런데 너희들 다 도둑놈들이다. 설명 끝!”
 
  육군본부에 복귀한 이 중령은 공병감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았지요. 박 대통령은 우리가 준 노선지도를 鄭周永(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에게 넘겨 견적을 미리 뽑았고, 정 사장은 300억원이면 가능하다는 견적을 보고했던 겁니다. 현대건설 견적책임자를 수소문해 알아보니, 항목별 공사견적은 우리 것과 오차 범위로 大同小異(대동소이)했지만, 현대건설 견적에는 토지보상비, 실시설계비, 감독비 등 아예 누락된 항목이 있었어요. 나는 퇴짜당한 견적표와 현대건설 견적표를 한눈에 비교한 차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차트를 걸어놓고 막 설명을 하려는데 표를 훑어보던 대통령이 ‘도둑놈은 따로 있구먼, 저희들이 받아먹을 돈만 견적한 거 아니야! 지난번에 내가 실수했어! 그대로 승인하니 다음 차례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십디다.”
 
 
  돌관공정으로 대전공설운동장 건설
 
  청와대를 나서는데 경호실장이 이 중령에게 유골함보다 큰 상자를 건네며 “각하의 하사금이니 받아가라”고 했다. 돈을 세어 보니 1000원짜리 신권으로 2000만원이었다. 이 중령은 공병감에게 돈을 전하면서 “각하의 하사금을 뜻있게 쓰자”고 건의했고, 그 덕에 전국 공병대 내무반에 각하의 하사품으로 라디오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인구 회장과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군에서 제대하고 계룡건설을 인수하여 건설업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대전시는 1979년 전국체전을 위해 대전공설운동장을 건설키로 했다. 1977년 鄭石謨(정석모) 충남도지사는 공설운동장 공사를 지명입찰에 부쳤고, 공사를 수주한 동서건설이 이듬해 부도가 나면서 경기장은 기초공사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대로 가면 국가행사를 他(타)도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 부임한 孫守益(손수익) 충남도지사가 건설협회 지부장인 저를 찾아와 ‘대전의 건설사가 공사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5대 건설사 사장이 모여 의논한 결과 ‘기일 내 준공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전부 빠졌어요. 저는 ‘이인구의 명예를 걸고 공기 내에 해내겠다’면서 전권을 위임 받았습니다.”
 
  이 회장은 운동장 내외에 수백 개의 외등을 설치하고 밤낮으로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며칠 만에 공사현장은 생기를 찾았고 대회 일주일 전인 10월 4일 준공됐다. 이 회장은 운동장 잔디밭에서 간단한 위로잔치를 하다 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공사 준공식이 있었다. 이인구 회장은 대전공설운동장 건립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는 날이었다.
 
  “그날 마지막 순서로 박 대통령이 제게 표창장과 휘장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때 손을 꽉 쥐면서 악수를 해주셨는데, 그분의 온기를 느낀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박 대통령 生前(생전)의 마지막 施賞者(시상자)가 될 줄이야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어쨌든 혁명에서 시작된 인연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서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룡건설 인수
 

미 공병학교 유학시절의 이인구 회장.

  이인구 회장은 1967년 18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18년간 공병장교로 근무하면서 군에 토목건축의 최신 공법을 도입하고, 공병학교에서 신공법을 전파한 공병의 산 교과서였다. 그런 살아있는 지식을 직접 건설회사를 경영하면서 적용하고 싶어 창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퇴직금 200만원, 대흥동 20평짜리 집을 담보로 미국으로 날아가 知人(지인)의 소개로 현금차관 3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이것을 시드머니로 하여 건설자재와 중장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유등천의 광권을 양도받아 모래, 작은 자갈, 큰 자갈로 분류하는 기계를 사용해 사업을 확장했다. 여유가 생기자 불도저, 페이로더, 덤프트럭, 콘크리트 믹서 등 중장비를 사들였다.
 
  이 와중에 공병 후배장교였던 김형식 사장이 그에게 당시 페이퍼 컴퍼니였던 계룡건설 인수를 의뢰했다.
 
  “계룡건설 인수 당시만 해도 50개 대전지역 건설회사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지금껏 경리는 과장-부장-이사-상무-전무-사장-회장을 맡아 온 李源甫(이원보)씨입니다. 회사 경영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차입경영 방침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당대의 서예 대가인 又荷 閔衡植(우하 민형식) 선생이 써준 회사 좌우명 一路邁進(일로매진) 휘호를 계룡건설 임원실에 걸어놓고 앞만 쳐다보고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충남 랭킹 1위 기업으로 ISO국제인증까지 받았죠.”
 
  이인구 회장은 13대, 15대 두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5대 국회 때 열린 한보청문회에서 그는 자민련 간사로 鄭泰守(정태수) 한보 회장은 물론,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金賢哲(김현철)씨에게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퍼부어 ‘청문회 스타’가 됐다.
 
 
  정치에서 영원히 은퇴
 
  -정계에서 활동했는데, 당시의 생활을 회고하신다면.
 
  “군생활 때나 민간 기업인으로 활동할 때나 정치인을 보는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을 ‘쌈꾼, 욕쟁이, 거수기’로 폄하했었죠. 제 나이 50대 후반에 이르렀을 때 소위 6·29선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새 시대가 온 것 같다, 대통령도 직선제로 선출하고 국회도 크게 변할 것이다. 새 시대를 여는 초기에는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내가 국회에 진출해 보자는 생각으로 13대 국회에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때 한사코 만류하던 아내가 ‘욕지거리 싸움은 절대 하지 않고 소신껏, 양심껏 하되 절대 두 번 이상은 국회의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표밭의 최전선에서 함께 뛰겠다’는 약속을 해 13, 15대 두 번만 하고 여한 없이 정치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그는 현실정치에 절대 불개입, 불간여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단다. 그는 선거철이 되면 회사 출입문에 정치인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안내문을 내붙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전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후 정치와 담을 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정치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니 난감하지요. 이제는 기업들이 선거로부터 자유로워져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도와줘야 합니다.”
 
  그는 “정계 은퇴한 이후 서울에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다”면서 “서울에 가면 정치인을 만나게 되고, 예전의 생활에 대한 유혹을 받을 것 같아 해외에 나갈 때도 서울을 경유하지 않고 인천으로 직행한다”고 했다.
 
  이인구 회장은 1992년 계룡장학재단을 설립, 총 64억원을 출연했다. 계룡장학재단의 총 자산은 200억원 규모. 지금까지 연인원 9000여 명에게 23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고, 올해는 연인원 500여 명에게 4억여 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계룡장학재단은 유림경로효친 대상,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사업, 병자호란의 三學士碑(삼학사비) 중건사업, 李舜臣(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사업, 독도 우리땅 밟기 운동, 유관순 열사 전기 발간사업, 金佐鎭(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등 공익문화사업을 벌여 왔다.
 
  “14대 총선에서 낙선 후 아내와 함께 한달 동안 유럽 등지로 외유를 하고 돌아와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동안 정치하느라 썼던 돈은 연 5억원은 됐습니다. 그 1년 분을 장학재단에 기금으로 낸다. 이렇게 해서 출발한 장학재단이 해마다 기금을 증액 출연해 지금은 출자자산이 64억, 자산 평가액이 200억원이 넘는 중견 장학재단이 됐어요.”
 
  현재 장학사업 활동 예산은 연간 8억~10억원 규모로 60%는 장학금 지급, 40%는 향토문화사업에 투자하고 있단다.
 
 
  ‘태안 기적’의 주인공
 
  2004년 10월 26일, 이인구 회장은 계룡장학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 광개토대왕비 복제비를 기증했다. 현재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 설치된 광개토대왕비는 국가정보원, 전쟁기념관 등지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모조비의 재질(섬유강화플라스틱, FRP)과 다른 광개토대왕비의 원석과 같은 돌로 된 실물 크기의 복제비다.
 
  이 회장은 광개토대왕비 원비(높이 6.4m)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중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원비와 같은 재질의 돌(응회암)을 구했다. 응회암은 1억년 전 백두산 폭발 때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돌이다.
 
  이 회장은 “80t 가량의 이 원석을 중국측에 ‘가공용 석재’라고 속이고, 특수 트레일러 차량으로 톈진(天津)항을 통해 인천항으로 이송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교량과 가옥 등이 훼손돼 보상비도 만만치 않게 물어야 했다”고 했다. 지금 광개토대왕비는 독립기념관의 명물이 됐다.
 
  이인구 회장은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때 태안사태 대책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기름방제 복구지원비로 3억원을 기탁한 것을 비롯해 회사의 장비를 동원, 오염지역 복구에 나서 천리포와 만리포 해수욕장 복구를 전담했다.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 기적이 펼쳐졌지만 해안가 주변의 기름 방제와 자갈닦기에 그쳐 아쉬웠습니다. 정작 생태적으로 중요한 갯벌복원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소홀히 했어요.”
 
  이 회장은 우선 천리포와 만리포 해수욕장의 복구를 전담하기로 하고 중장비와 인력 등 1억여 원에 상당하는 지원을 했다. 그는 李完九(이완구) 충남도지사에게 “지금 방제사업으로는 해수욕장과 갯벌을 살릴 수 없다”며 “방제를 무료로 해줄 테니 내게 전권을 달라”고 했다.
 
  그는 해수욕장 방제에 회사의 굴착기를 동원, 건설현장에서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명 ‘트렌치 공법’을 개발해 적용했다. 미국 학회에서도 놀란 이인구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해수욕장은 일정한 경사가 있습니다. 중장비를 동원해 모래사장을 수박에 줄을 긋듯 2m 깊이로 파서 쌓아 모래제방을 만들면, 제방의 모래무게가 모래를 눌러 짜 트렌치(도랑)로 기름이 빠집니다. 이런 원리로 전체 해수욕장을 굴착해 대부분의 기름을 제거했고, 기름을 완전 제거하기 위해 모래사장에 기름 먹는 박테리아를 주사했습니다. 이 방식은 미국 국립해양연구원에서 세계 최초의 오염제거 방식으로 소개됐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산타마리아 해변이 기름으로 오염이 됐는데, 7년 동안 해수욕을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6월에 논스톱으로 해수욕장을 오픈하는 기적을 달성했습니다.”
 
 
  대전시민에게 名品 시민의 숲 기증
 
  이 회장은 갯벌 복원에 더 주목했다. 갯벌은 한 번 오염되면 30~50년간 양식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태안은 3억3000만㎡(1억평)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갯벌 양식장입니다. 태안 군민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 생업을 해 나갑니다. 궁리하다가 갯벌의 試料(시료)를 채취해 미국 환경보호청 산하 국책연구소에 보냈고, ‘갯벌에 기름기를 제거한다고 뒤집어 놓지 말고 자연치유에 맡기면 2~3년 만에 원상복귀 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대신 자연치유를 돕는 약품을 갯벌에 조금씩 뿌려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작년 8월에 갯벌이 개방되고 다시 조개를 잡고 있습니다. 해수욕장 개장하는 날, 태안시에서 명예태안시민증을 주었고, 정부에서 유류오염방제 공훈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주더군요.”
 
  이인구 회장은 私財(사재) 100억원을 들여 대전시 유성구 유성구청앞 갑천 삼각주 일대의 5만7400㎡(1만7400평) 부지에 대전시민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이 공원은 계룡건설이 직접 시공해 완공 후 대전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어떤 계기로 ‘대전시민의 숲’을 조성해 대전시민들에게 기증하기로 한 겁니까.
 
  “2007년 4월 18일은 제 77세 喜壽(희수)였습니다. 기업활동을 하면 배당금 등 私財(사재)를 모을 수 있습니다. 나는 희수기념사업으로 1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고 이를 朴城孝(박성효) 대전시장과 상의했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대전에 ‘명품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대전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겁니다. 공사는 2007년 10월 시작했고, 현재 80% 공정이 진척되고 있습니다. 준공 즉시 이 조성물은 대전시에 기부채납합니다. 올해 대전의 전국체전과 우주대회를 앞두고 7월말 완공계획으로 있습니다.”
 
  -시민의 숲 건설과정에서 모델로 삼은 공원이 있습니까.
 
  “15명으로 시민의 숲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국내 6군데, 일본의 삿포로공원, 도쿄의 히비야공원 등 일본 전역의 공원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공원 설계는 테마파크 공원 설계로 권위가 있는 삼성에버랜드에 맡겼습니다. 교목류 1600여 주, 관목류 6만여 주, 초화류 13만여 본이 심어질 것입니다.”
 
2008년 6월 12일 대전 유성구청 맞은편에 조성중인 ‘유성 시민의 숲’ 현장에서 계룡건설 이인구(왼쪽) 명예회장이 박성효 대전시장(오른쪽 두번째), 진동규 유성구청장 등 참석자에게 조감도를 설명하고 있다.

 
  지역사랑의 징표
 
  이 회장은 ‘대전시민의 숲’ 추진과정에서 여러가지 걸림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먼저 대전시가 확보하려던 용지는 국토해양부 소유여서 무상 양여를 받는 데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2007년 10월 간신히 착공했지만 이번에는 예정지 안에 있는 유성구청 소유의 땅(9000여㎡)이 문제였다. 유성구청이 평생학습원 예정지라는 이유로 대체용지 확보와 건축비 지원을 대전시에 요구하면서 공사가 지연된 것이다. 이 회장은 대전시와 유성시가 ‘핑퐁게임’을 벌이자 기부를 철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대전시가 부지대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고 한다.
 
  오는 7월 대전시에 시민의 숲이 완공되면, 유성온천~시민의 숲~한밭수목원~엑스포과학공원에 이르는 갑천변 생태 녹지축이 완성될 전망이다.
 
  박성효 대전시장은 지난해 6월 공원 중간공정 공개설명회에 참석, “시민의 휴식공간이 유성온천에서부터 시작해 시민의 숲과 갑천 등으로 이어져 유성활성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면서 “특히 새로운 기부문화의 한 형태로서 시민의 숲은 국내 최초이며, 이 회장의 지역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구 회장은 “40년 전 雅號(아호)를 넉넉한 숲, 우거진 숲, 재산도 넉넉해지길 바라는 뜻의 裕林(유림)으로 지었다”면서 “숲이 우거지고 사계절 꽃이 피는 시민의 휴식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대전사랑의 왕초’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사람] 李鍾祥 서울대 명예교수
 “은근과 끈기의 토착문화와 첨단 과학의 통섭 이루어야”
 
李鍾祥
⊙ 1938년 충남 예산 출생.
⊙ 대전고,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비교미학 전공(문학석사),
    동양철학 전공(철학박사).
⊙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장, 서울대 미술관장 역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초대전(1997).
⊙ 現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위원, 독도문화 심기운동본부장, 한국벽화연구소장.
徐喆仁 月刊朝鮮 기자  (ironin@chosun.com)

5000원권 지폐에 들어간 율곡 초상화에 이어 5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신사임당 초상화까지 그려 화제가 된 一浪(일랑) 李鍾祥(이종상) 화백. 독도 지킴이로도 유명한 그는 올해 초 崔在天(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KTV에 출연, 統攝(통섭)과 예술에 관한 대담을 나누었다.
 
  이 화백은 고구려벽화 전문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국내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이고, 최 교수는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생물학자다.
 
  통섭(Consilience)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 이 말은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한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라시대 승려 元曉(원효)의 起信思想(기신사상)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지난 3월 초 평창동 작업실 부근에서 만난 이종상 화백에게 ‘통섭’ 이야기를 꺼내니 아버지와 고교 시절 은사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시대를 앞서갔던 두 분이야말로 통섭을 삶에서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충남 예산 출신인 이 화백은 富農(부농)에 광산까지 소유하고 있던 祖父(조부) 덕분에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李艮載(이간재)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구 회사인 ‘삼천리 전기’(후에 ‘번개표 전기’로 개칭)의 설립자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평생 화가의 꿈을 못 버린 원예학자이자 창조적인 사업가였어요. 어린 시절 저희 집은 금계부터 칠면조, 거위 등 온갖 동물이 득실대는 동물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이 동물들을 관찰한 후 그림으로 옮기곤 했지요. 또 일본에서 들어온 국광의 단맛과 국산 홍옥의 아삭아삭한 맛을 결합해 새로운 품종의 사과를 개발하기 위해 현미경을 붙들고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같은 예산 출신인 고암 李應魯(이응노) 화백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로, 조부의 극심한 반대가 없었다면 화가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던 아버지 곁에서 이 화백은 현미경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고,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곤 했다.
 
 
  창조적 사업가였던 아버지
 

1958년 대전고 미술부. 아랫줄 오른쪽부터 이종상 화백, 柳熙永(류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 金哲鎬(김철호) 미술 교사, 뒷줄 왼쪽부터 신부 화가 김인중, 李徹周(이철주) 전 중앙대 예술대학장.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버지의 현미경을 렌즈만 떼기 위해 분해하다 못쓰게 만들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혼쭐나기 전에 어서 이불 속에 들어가 자는 척하라”며 피신시켜 주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그를 혼내기는커녕 어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발전하는 법이오.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냥 넘어가는 아이는 퇴보할 뿐이지. 대신 뜯어놓은 물건은 다시 맞출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오. 호기심에 뜯어놓기만 하면 파괴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다시 맞춰 놓으면 창조하는 것이니 말이오. 내가 보기에 이 아이는 화가나 과학자가 될 것 같소.”
 
  어린 나이였던 그는 막연하게나마 ‘물건을 뜯었으면 다시 맞춰 놓아야 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뜯어보게 되었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 펼친 그림을 그려놓고 조립을 했다고 한다.
 
  이종상 화백은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이 무렵 그의 아버지는 서울 명동성당 근처에 한국 최초의 전구 회사인 ‘삼천리 전기’를 설립했다. 이북에 있는 수풍댐 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오던 시절이라 서울 사람이라도 대부분 호롱불을 켜고 살 때였다. 그는 “아버지는 사업을 해도 매우 창조적이었고, 미적 감각이 대단하셨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회사 설립 초기 아버지는 회사 마크를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했어요. 그런데 이 지도를 점점 단순화시키더니 번개 모양으로 만들었죠. 그러곤 ‘번개는 곧 전기 아닌가’라며 무릎을 치시더니 社名(사명)을 아예 번개표로 바꾸었습니다. 검은색 일색이던 성냥에 색을 집어넣은 분도 아버지셨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생활형편이 급격히 기우는 가운데 6·25가 터져 그의 가족은 피란처였던 대전에 눌러살게 됐다. 어머니는 홀로 형제를 키우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광주리 장사를 했고, 두 살 위의 형은 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에 다녔다. 고생하는 어머니와 형을 보며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의대나 공대에 가기 위해 명문 대전고에 진학했다.
 
  “1950년대 중후반 대전고는 한 해에 서울대에 200여 명씩 합격할 정도로 명문이었습니다.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등 서울 명문고 학생들이 피난 와 다니던 학교였죠. 이 학교에서 저는 인생을 바꿔놓은 교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문화의 시대를 예고한 고교 은사
 
  理科(이과)반 학생이었지만 그는 1학년 때부터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입학과 동시에 미술 서클에 가입, 시간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 하지만 같은 서클의 다른 친구들이 그렇듯 미술대 진학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미술 공부는 그냥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하는 취미였다.
 
  이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학년 말 새로운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다. 대구사범학교에서 온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아이들이 미술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도교사가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미술 교사를 채용했다. 또 이과생들에게 <小學>을 익히도록 하는가 하면 문과생들에게 물리학을 공부하게 했다. “너무 일찍부터 전공만 하면 기능인이 된다”며 文·理科(문·이과) 소양을 동시에 쌓도록 한 것이다. 통섭 교육을 일찍부터 실천했던 셈이다. 이 교장이 훗날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살아있는 은사로 알려진 朴寬洙(박관수) 선생이다.
 
  교사들 사이에 ‘호랑이 교장’으로 불렸던 박 교장은 미술반에 들러 이런 훈시를 하곤 했다.
 
  “지금은 전쟁과 식량난으로 먹고살 걱정을 하지만 제군들이 사회에 진출할 즈음에는 취미가 직업이 되는 문화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문화의 시대가 오면 미술하는 너희들이 총칼 들고 나라 지키는 군인보다 애국할 기회가 온다. 자기 전공이나 취미로도 얼마든지 조국에 충성할 수 있으니 미대 진학을 고려해 보라.”
 
  의대보다는 공대 건축과가 그림 그릴 기회가 많아 그쪽으로 진로를 굳혀가고 있던 그는 흔들렸다. 아들이 화가가 되길 바라던 아버지의 遺言(유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그는 의대를 지망하고 있던 친구와 함께 3학년 말에 진로를 전격 수정했다. 당시 그와 함께 서울대 미술대에 진학한 그 친구가 바로 세계 유명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고 있는 在佛(재불) 화가 金寅中(김인중) 신부다.
 
  서울대 재학 중 그는 최연소 國展(국전) 특선, 최연소 국전 추천 작가 등 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졸업 후에는 ‘철학이 빈약하면 미술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이 화백은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畵論書(화론서)들은 대부분 書畵家(서화가)들이 쓴 것인데, 이를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한학자들이 해독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림 기법과 작가의 고뇌가 들어가 있는 화론서를 화가들이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은 효용주의 교육 철학이 낳은 병폐”라고 말했다.
 
  “요즘 화가들은 그림만 그릴 뿐 인문학이나 과학에 대한 소양을 쌓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섭이 안 돼 난초는 잘 그리는데 대나무는 잘 못 그린다든가, 수묵에는 강한데 채색에는 약하죠. 미술이 기능화되고, 분업화되고 있는 겁니다. 동서양을 떠나 위대한 화가들은 사상(철학)과 재료(과학)와 기술(기법)을 두루 섭렵한 뮤러리스트(muralist)들이었어요. 해부학자이자 천문학자였고, 화공학자이자 연금술사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죠.”
 
 
  문화와 과학이 화학 반응해야
 
  산수화를 비롯해 초상화와 사군자 등에 능했던 玄洞子(현동자) 安堅(안견)이나 書畵(서화)는 물론 經學(경학)과 金石學(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秋史(추사) 金正喜(김정희)도 뮤러리스트였다. 이 두 거장은 대전이 자랑하는 조선시대 화가다.
 
  대전은 유난히 많은 화가들을 배출했다. 李馬銅(이마동), 朴魯壽(박노수), 張旭鎭(장욱진) 등도 이 고장 출신이다. 이들의 뒤를 잇고 있는 화가가 이종상 화백을 포함해 閔庚甲(민경갑) 전 원광대 교수, 김인중 재불 화가, 柳熙永(류희영) 서울미술관장, 李澈周(이철주) 전 중앙대 예술대학장 등이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대전고 동문이며, 이 중 이 화백과 민경갑, 류희영 등 세 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 市道(시도)에서, 그것도 한 고등학교에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이렇듯 많이 배출한 곳은 없다고 한다.
 
  이 화백은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라 대전은 문화예술인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며 “이런 토착적인 저력 위에 각 곳의 지방색이 접변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의 환경을 구비하고 있는 곳 역시 대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전이 문화도시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종상 화백은 최근 3년 사이 대전에서 가진 자신의 전시회 경험을 들어 그 까닭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이 화백은 2007년 4월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 TJB 방송이 공동주관한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이종상’ 초대 개인전을 시립미술관 全館(전관)에서 열었고, 지난해 말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찾아가는 미술관 사업 일환으로 카이스트와 공동주관한 ‘과학정신과 한국현대미술’展(전)에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대전을 과학도시라고 하는데, 오랜만에 가서 보니 분위기가 참 묘하더군요. 과학 단지와 그 외의 도심이 동거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과학 단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전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문화활동은 서울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대전의 과학과 문화가 통섭하지 못해 서로 겉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카이스트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놀랍게도 대전 지역 작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역 작가가 없는데 어떻게 이게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시도한 전시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대작가 대표로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대전이 과학도시,문화도시로 발전하려면 이 지역의 토착적인 문화와 첨단과학이 섞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화백은 전시회가 아닌 강연 때문에 카이스트를 여러 번 방문했다. 그때마다 이 학교는 외부인들만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엑스포공원을 보았다. ‘저곳에서 끊임없이 음악회가 열리고 미술 전람회가 열리면 엑스포는 계속될 것이고, 대전의 문화가 살아 움직일 텐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유물화된 공간은 박물관 진열장으로나 들어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전은 恒心(항심)의 중심지입니다. 항심은 은근과 끈기의 충청도 사람을 뜻하죠. 문화의 생명이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대전은 문화와 과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충청도의 기질을 살려 과학과 문화가 발전적으로 화학 반응하는 도시로 키워 나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朴城孝 대전광역시장
 “더 이상 나눠먹기 식 국책사업 배정은 안 된다”
 
朴城孝
⊙ 대전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충남대 대학원 졸업.
⊙ 대전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충남대 명예자치행정학 박사.
⊙ 대전 서구청장, 대전시 경제국장, 대전시 기획관리실장, 대전시 정무부시장 역임.
⊙ 現 충남대 겸임교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부회장.
金容三 편집장/부장  (dragon03@chosun.com)

朴城孝(박성효·54) 대전광역시장실 옆의 응접실 벽에는 ‘조국, 또 다른 우리의 이름입니다. 호국,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보훈, 미래를 위한 우리의 도리입니다’란 글이 새겨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올해는 대전시가 생긴 지 60년, 대전광역시 승격 20주년이자 대전시에서 국제우주대회와 전국체전이 열리는 해다. 그 때문인지 시내 곳곳에는 ‘다시 보는 대전, 하나 되는 대전, 도약하는 대전’이란 슬로건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대전에 변화를 불어넣고 있는 현장의 중심엔 대전 토박이 박성효 대전시장이 있다. 대전 토박이로 태어나 대전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 대전의 살림을 이끌고 있는 박 시장은 대전시 경제국장(4년6개월), 역대 최장수 대전시 기획관리실장(4년5개월), 대전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대전 전문가다. 그는 대전시의 핵심 부서에 근무하면서 대덕연구단지를 ‘대덕밸리’로 명명했고,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초석을 쌓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4기 대전시장으로 당선됐다.
 
  -대전의 과거가 ‘교통의 요지’로 상징됐다면 오늘의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상징되는 과학도시, 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행정도시, 계룡시의 3군본부로 상징되는 군사도시입니다. 그런데 파리 하면 에펠탑, 뉴욕 하면 패션과 금융, 리버풀 하면 비틀스 등 상징적인 아이콘이 떠오르는데 비해 대전은 이렇다 할 상징적 아이콘이나 도시 이미지가 떠오르질 않습니다.
 
  “대전을 파리, 뉴욕 등 세계적인 도시들과 견주기는 쉽지 않겠지만 대전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메카’라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바로 대전의 아이콘이자 브랜드입니다. 원자력 분야를 예로 들면, 원자력연구소가 대전에 온 이후 원자력 유관기관들이 속속 모여들어 대전은 우리나라 원자력정책의 전진기지가 됐어요. 지난 20년간 소비자물가가 186%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11.4% 상승하는 데 그친 것은 원자력 덕분입니다. 원자력은 경제적 에너지이고 에너지 안보의 핵심인 것이죠.
 
  또 대전에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CDMA(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지상파 DMB 등 세계 최초, 최고의 기술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어요. 시속 300㎞로 달리는 KTX 안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메일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어떤 조사결과를 보니 지난 30년간 ETRI에 4조3645억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돼 104조5725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냈다고 합니다.”
 
  박 시장의 대덕 자랑은 끝없이 이어질 기세였다.
 
  “첨단의학 분야에서도 대전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덕에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해 4500억원 이상의 기술이전 수입을 올리게 됐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자동으로 건강상태를 체크해 담당 의사에게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스마트 바이오칩·센서를 개발했습니다. 최근에는 이집트가 대덕특구의 기술을 지원받아 自國(자국) 내에 첨단의료복합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덕특구는 대전의 아이콘
 
  -대덕특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데, 대덕특구를 한마디로 정의하신다면.
 
  “세계 10위권의 과학기술강국 대한민국을 견인한 곳입니다. 대전은 모든 과학 분야가 총망라된 곳이고, 이에 따라 미래 과학의 키워드인 융합기술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곳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대전의 아이콘으로, 대한민국의 아이콘으로 키우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어둡습니다.”
 
  -대전은 연구개발특구, 행정도시, 군사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불황을 그다지 타지 않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최근의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다른 지역,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도시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대전의 지역경제는 최근 들어 어떤 상황입니까.
 
  “대전은 유달리 샐러리맨이 많은 도시입니다. 연구개발특구, 정부대전청사, 계룡대와 자운대 등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대학도 17곳이나 있어 대학교수, 교직원, 대학생 등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습니다. 그런데 대전의 산업구조는 한 집 건너 식당, 다방, 술집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서비스업 중심이에요.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82% 수준이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돈 쓰는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경기가 나빠지면 그만큼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박 시장은 “다행히 산업단지를 확보하고 이곳에 기업유치에 전력한 결과 최근 3년간 167개 기업이 들어왔거나 들어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대전시는 기업유치를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까.
 
  “대전은 규모가 큰 대기업이 입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므로 작지만 강한 기업, 미래산업을 키우는 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업유치 촉진조례도 개정하여 이전에는 제조업에만 지원되던 이전보조금을 연구소, 연수원, 문화산업 관련 기업 등 서민경제에까지 파급효과가 큰 기업들에도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설보조금과 고용보조금, 교육훈련보조금도 콜센터, 텔레마케팅서비스업까지 확대해 여성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박성효 시장은 취임 이후 취약동네 재생프로젝트인 ‘무지개프로젝트’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무지개프로젝트 3단계 지역인 중구 부사동을 찾아 사랑의 집고치기 봉사에 참여한 박 시장이 한 독거노인을 격려하고 있다.

  대전은 특히 콜센터가 가장 많은 도시로서 이미 종사자가 1만명을 돌파했어요. 보조금 지원상한액도 2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렸고, 대규모 투자기업이나 전략산업·미래신성장산업에는 특별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대덕특구의 R&D(연구개발) 역량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이 들어서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대전 하면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상징입니다. 당시 국가지도부가 국가의 연구 핵심역량을 대전에 결집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대덕 연구·학원도시 건설 입지’로 충남 대덕이 결정됐습니다. 당시 국가지도부에서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연구집적단지’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작고한 崔亨燮(최형섭) 당시 과기처 장관이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며 부지를 물색해서 충북 청원, 경기 화성, 충남 대덕으로 후보지가 압축됐는데, 대통령께서 최고의 명당자리라며 손수 대덕을 꼽았다고 합니다. 청원은 비행장 등 군사시설이 들어설 곳이란 점이, 화성은 간첩 침투가 잦은 데다 방송시설이 들어선다는 점이 감점요인이었어요.
 
  우리나라 국민 1인당 GNP가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메카’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실천에 옮긴 것은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결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대덕연구단지의 힘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 국가지도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구개발의 역량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예요.”
 
 
  나눠먹기 식으로는 희망이 없다
 
  이 대목에서 박 시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전이 과학을 다 가지고 있으니 찢어발기고 나눠먹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저는 과학이 나눠먹을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과학은 분산되고 나눠지면 2류, 3류로 전락합니다. IT와 BT(생명공학), NT(나노기술)가 융합하고 결합하여 세계 일류를 키우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대덕특구가 진정한 일류가 됐을 때 제2, 제3의 대덕특구를 논의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 시장은 “대덕특구가 대한민국의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최근 대덕특구 출연연구소들의 기술이전 성과를 조사해 봤더니 ETRI가 지난해 622억원을 벌어들였어요. 기계연 40억원, 화학연 29억원, 에너지연 22억원, 생명연 16억원, 원자력연 11억원, 카이스트 10억원 등의 기술수입료를 올린 것이죠. 대덕특구 출연연구소들의 순수 기술수입료만 따져 이 정도니 사업화를 통해 경제적·산업적으로 발생하는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국책사업 유치를 위해 대덕특구를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ETRI처럼 모든 출연연구소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조사해 특구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융·복합화가 시대의 화두
 
  -최근 들어 대전시는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구축하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며 대덕특구에 입지해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충청권 공약으로 발표한 사안이에요. 일각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축소하기 위해 과학벨트 공약을 발표한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벨트는 국제적 수준의 기초연구환경 구축을 위한 거점지구에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ABSI)과 중이온가속기를 설치하는 게 골자입니다. 거점지구에는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비즈니스 환경이 구축되는 것은 물론 정주 외국인의 국제적 생활환경도 조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덕특구 이외 지역에 거점지구가 지정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과학계에서는 기존 출연연구소들과 기초과학연구원 간 기능중복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어요. 또 기초과학연구원 내 50개의 연구단이 전국적으로 나눠지면 지난 36년간 쌓아온 과학역량이 분산되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죠.
 
  기초연, 표준연 등의 역량을 강화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면 예산도 아끼고 효율성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기초과학연구원 인근에 서울대 공대나 글로벌 대학의 분교, 해외 유명 연구소의 분원 등을 유치하면 글로벌 연구환경이 조성될 것이고요.”
 
  박 시장은 무엇보다 첨단기술의 집적을 통한 융·복합화를 위해서는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과학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시장은 BT, IT, NT, GT 등의 융·복합형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과학역량을 분산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점을 정부와 정치권에 호소하고 있고요.”
 
  -첨단의료복합단지는 盧武鉉(노무현) 정부 때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다가 늦춰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지자체가 이것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는데요.
 
  “36년 전 박정희 정부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연구개발집적지를 대덕에 세웠습니다. 이는 진행형이지 결코 완성형이 아닙니다. 완성형이 되려면 첨단의료산업 같은 국가 신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일은 국가사업이지 지역발전을 위한 균형정책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소신을 갖고 적지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지역이기주의적인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대전시는 지난해 최고 자원봉사도시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박 시장 취임 전 6만 8000명이던 대전의 자원봉사자 수가 현재 12만 6000명에 달한다. 이는 인구 대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전에 와야 하는 이유
 
  -첨단의료복합단지가 꼭 대전에 와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지금의 대덕특구가 조성되기까지 35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덕특구가 아닌 곳에 새로 막대한 재원을 투자할 여력과 시간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덕특구의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 초기 투자금액(8600억원)의 52%인 45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께도 임기 내에 성과를 가시화하려면 대덕특구가 적지임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전시의 기업유치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지난해 박 시장께서는 대덕특구에 73개의 기업을 유치해 402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3만8494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올해는 200개의 기업을 유치하고 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대덕의 과학기술과 인프라가 필요한 기업들이 이전을 검토했다가도 땅이 없어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대덕특구 내 330만㎡(100만평) 규모의 산업용지를 개발했고, 1년 걸리는 그린벨트 해제절차도 5개월로 단축했어요. 이렇게 조성된 산업단지에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300㎾급 발전용 연료전지 기술개발사업’의 총괄 주관기관인 두산중공업이 입주하기로 돼 있어요. 이를 따라 관련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겠죠.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전지용 실리콘 크리스털 생산공장인 웅진에너지도 대덕특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들 대기업,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대덕특구 내 연구기관들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R&D 허브도시를 선포하자 이전을 추진하는 관련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또 편리한 교통입지 때문에 대전으로 이전한 기업들도 많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시는 지난해 일본의 SMC공압과 제일시설공업으로부터 각각 3000만 달러와 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SMC공압은 공압기계 전문기업이고 제일시설공업은 클린 엘리베이터 제조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어요. 대전이 국토의 중심이어서 시장을 확보하기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대덕특구를 선택한 기업들이죠.”
 
  -기업유치를 위해 대전시가 내놓은 인센티브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 시는 기업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조례도 개정했어요. 제가 시장에 취임한 이후 지난해까지 163개 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7416명의 고용을 창출했습니다. 그래서 이젠 자신감도 붙고, 공무원들의 업무 성취도가 크게 높아졌어요. 기업지원 원스톱 서비스도 정착되어 대전으로 이전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엑스포과학공원의 대변신
 
  -대전은 또 계룡시의 3군본부 덕에 군사도시 성격도 강한데요.
 
  “계룡대뿐만 아니라 군수사령부, 자운대, ADD(국방과학연구소)가 대전에 위치해 있습니다. 국내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이 대덕특구에 입주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연관산업들이 대덕에 포진하여 국방산업 클러스터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 시장께서는 기존의 엑스포과학공원을 미래형 도시공간으로 재창조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입니까.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중 처음으로 1993년에 과학엑스포를 대전에 유치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엑스포를 치르고 그 공간을 모두 존치한 나라는 없습니다. 국민적 인지도 감소와 만성적인 운영적자가 반복되어 정부로부터 청산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은 법인에 대한 것이지 공원을 없앤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법인은 새로운 조직으로 흡수하고 공원은 시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공간으로 재창조할 계획입니다.
 
  현재 민자유치를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데, 기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한 상징 공간과 국책사업 유치 공간, 민자를 유치해 관광·문화·엔터테인먼트·상업·업무·교육 등이 복합된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죠. 엑스포과학공원 일원이 대전문화산업진흥지구로 지정돼 있습니다. 대전문화산업진흥원도 출범시켰고요.”
 
  박 시장은 엑스포과학공원이 영화산업의 허브로도 기능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국내 최고 수준의 스튜디오와 장비를 갖추고 있어요. 최근에 히트를 친 영화 ‘쌍화점’이 이곳에서 촬영을 했는데, 크고 작은 스튜디오가 파생하는 직접 경제효과가 15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 柳仁村(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대전엑스포공원에 고화질(HD) 드라마타운 조성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곳에는 학교나 병원, 경찰서 등 세트장과 함께 스턴트 교육장, 드라마 아카데미, 드라마 박물관 등 부대시설이 함께 들어서게 되는데, 드라마타운은 집객 효과가 커 8000여 명의 고용창출 효과 등 1조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됩니다. 드라마타운의 개념을 확장해 정부가 추진 중인 CS(Culture Science) 파크를 유치할 생각이에요.”
 
 
  국책유치사업 잇단 실패 이유
 
  -대전시는 그동안 자기부상열차 실용화사업 시범노선과 로봇랜드 등 각종 국책유치사업에서 잇따라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국책사업이 이른바 ‘정치적’으로 좌우되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면 정파를 떠나, 지역 간 경쟁을 떠나 정부가 소신 있게 나가야 합니다. 정부가 능동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정도의 원칙과 철학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 노무현 정부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사업까지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갖다 댔습니다.”
 
  박 시장은 자기부상열차 실용화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대전은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시제품(UTM-01)이 개발돼 현재 시험 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낙점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기관인 한국기계연과 시설 및 관리 주체인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한국철도공사가 대전에 위치해 있는 사업적 효율성을 제치고 인천공항을 시범노선으로 선정한 것은 지나치게 전시효과에만 비중을 둔 처사라고 봅니다. 자기부상열차 심사권자가 당시 건설교통부였는데, 산하기관인 인천공항관리공단이 인천과 손을 잡고 시범노선을 낚아챈 거죠.”
 
  박 시장은 “비용절감 차원에서도 납득하기가 어려운 결과”라면서 “당시에는 정부가 정말 상용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에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께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노무현 정권에서 결정한 행정중심복합도시 때문에 역차별을 당했다. 즉 행복도시 때문에 혁신도시 지정, 공공기관 이전 등에서 소외됐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참여정부가 행복도시를 대전과 연접한 지역에 건설하기로 했고, 대덕연구단지 일원은 특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행정도시가 대전 인근에 건설된다는 이유로 참여정부는 대전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에서 철저히 배제됐어요.
 
  대덕특구는 어떠했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대덕밸리 비전을 선포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지정했습니다. 비전만 제시했을 뿐,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심지어는 주겠다던 예산도 주지 않았어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6612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겨우 1515억원만 투자됐어요. 그런데도 국책사업 유치전이 벌어지면 정부에서는 항상 “대전은 행복도시, 대덕특구 다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차별 아닙니까.”
 
  -최근 전 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아젠다 중 하나가 저탄소 녹색성장입니다. 대전시가 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미래비전으로 선언했을 때 아마 가장 반겼던 사람 중 하나가 저였을 겁니다. 제가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나무, 하천, 자전거예요. 또 신재생에너지 R&BD(사업화연계기술 개발) 허브도시를 선언하고 관련 산업을 중점 육성하고 있지요.
 
  대전시는 환경과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환경도시로 나가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10월 ‘그린시티 대전’ 비전을 선포하고 6대 과제 28개 프로젝트를 수립했습니다. 3대 역점사업을 지속 추진하면서 생활폐기물 전처리시설(MBT), 폐기물활용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단지 조성 등 쓰레기 없는 도시, 온실가스를 2015년까지 1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탄소포인트제와 공공건물 신재생에너지시설 설치 의무화, ‘그린홈’ 지원 확대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녹색청정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지식경제부가 대덕특구에 나노융합기술센터를 구축키로 함에 따라 대전시는 나노융합 허브도시를 선언하고 관련 기업 100개를 유치하기로 했다.

 
  녹색교통망 구축 플랜
 
  박 시장은 또 4대강 살리기로 점화된 ‘녹색 뉴딜’도 적극 연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금강변에 녹색뉴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금강수계를 활용한 마라톤 코스, 자전거길 등도 확대할 예정이며, 도심을 통과하는 國鐵(국철)을 향후 건설할 도시철도 2·3호선과 연계하는 녹색교통망도 확충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즉 1단계로 호남선·경부선·대전선 등 32.4㎞를 전철화하고, 2단계로 계룡~신탄진 구간(38.6㎞)과 함께 충북선을 활용한 신탄진~청주공항 구간(47㎞)을 광역생활철도망으로 연결하는 방안이다. 박 시장은 “이런 녹색교통망 사업을 이명박 대통령께도 보고했고, 중앙정부의 적극지원도 약속 받았다”고 말했다.
 
  -2012년 대전시에 있던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할 예정인데, 이것이 대전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충남도청사가 이전하면 空洞化(공동화)가 심화되고 있는 구도심 상권이 더욱 피폐해질 것이 자명합니다. 충남도청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립근현대사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지역공약으로 발표했지만,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입지가 서울로 결정됐습니다. 따라서 국립민속박물관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해 올해 5억원의 용역비를 확보했어요.
 
  시에서도 국립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설득력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충남도청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을 포함한 개발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충남도청 이전으로 구도심 공동화가 더욱 심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척교 주변 복원사업과 대전역세권 개발사업, 은행1구역 재개발, 테마거리 조성사업 등을 서로 연계해 중앙로를 새로운 명품 공간으로 만들어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전시장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시점입니다. 취임 직후의 대전과 오늘의 대전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미래에 대한 시장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지난 3년은 미래를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시장에 취임하고 가장 역점을 둔 분야가 경제였어요. 침체된 경제를 되찾는 게 가장 시급해서 선거 때도 산업용지 330만㎡(100만평) 확보, 1만개 이상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대전에 오겠다는 기업도 땅이 없어 되돌아가야 했어요. 그래서 대덕연구개발특구 1·2단계 동시개발과 소규모 도시형 산업단지 개발에 착수한 결과 많은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산업구조를 미래형으로 바꿀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봅니다.
 
  3월부터 대덕특구 1단계(50만8000㎡)가 분양되고 2단계(178만5000㎡)도 올 연말부터 공급됩니다. 신탄진프로젝트와 연계해 대덕구 상서·평촌 일원 25만㎡를 무공해 산업단지로 개발,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금강변에도 310만㎡ 규모의 녹색산업단지를 개발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 중이고, 서남부 2·3단계에도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05년 555개이던 산업단지 입주기업이 3년 만에 714개로 늘었고, 종사자 수도 1만5050명에서 2만1944명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생산액은 5조2269억원에서 6조9618억원으로 확대됐고요.”
 
지난해 5월 대전시는 갈수기면 바닥을 드러내는 대전천의 유지 용수를 확보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도록 대전천 물길살리기 통수식을 가졌다.

 
  교통사고 사망률 획기적으로 줄어
 
  -3000만 그루 나무심기가 화제던데, 재임 중 나무를 열심히 심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시장에 취임하기 전 대전의 도심 녹지율은 전국 특·광역시 중 최하위권이었어요. 그래서 3000만 그루 나무심기, 3대 하천 가꾸기,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등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어요. 지난 3년 동안 총 4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심기는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앞으로는 탄소배출권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업활동까지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무심기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일이라 생각해요.”
 
  박 시장은 “3000만 그루 나무심기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크게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 시는 지난해 말 전국에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이 감소해 국회 교통안전포럼으로부터 ‘선진교통안전대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어든 이유는 3000만 그루 나무심기의 일환으로 생긴 교통안전지대에 녹지형 중앙분리대를 만들었더니 1년 사이에 중앙선 침범사고가 61% 줄었고, 교통사고 사망자가 20%나 감소한 것이죠. 교통안전과 도시녹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데 성공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박 시장에게 행정관료로서의 꿈을 묻자 이런 답이 나왔다.
 
  “저는 각박한 세상에 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런 이상향이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류는 인간의 상상을 실현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듯,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행정가가 되고 싶습니다.”⊙

[대전의 볼거리] 장태산자연휴양림
 대전시민의 휴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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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000여 명 이용 가능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에 위치해 있다. 대전 8경 중 하나다. 국내 유일의 메타세콰이어 숲이 울창하게 형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경관과 함께 가족단위 산림욕을 즐기는 이용객들이 즐겨 찾는 휴양림으로 유명하다. 1994년 해발 400m의 장태산 기슭에 故(고) 임창봉씨가 20년간 조성한 최초의 사유림이자 민간자연휴양림이다. 지난 2002년 대전광역시가 인수해 새롭게 리모델링한 후 2006년 4월에 다시 개방했다.
 
  하루 6000여 명이 이용 가능한 80㏊의 면적에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과 곤충원, 야생화원, 생태연못,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수련장, 교과서 식물원, 명상의 숲, 야생화 동산, 전망대, 자연체험학습장, 건강지압로, 피크닉놀이마당, 매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산 입구인 용태울 저수지를 지나면 휴양림이 펼쳐지고 산 정상의 형제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낙조를 바라볼 수 있으며 장군봉과 행상바위 등 기암괴석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대전의 볼거리] 계족산
 전국 유일의 맨발 마라톤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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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8경 중 하나

계족산은 대전시민들에게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산이다. 대전 동쪽에 위치한 높이 423.6m의 계족산은 대전 8경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경치가 수려하고 대청호와 대전시 전경이 보이는 등산코스, 대전 소재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된 계족산성 등으로 대전시민들이 평소 즐겨 찾는 산이다.
 
  이와 함께 34.5km의 林道(임도)는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에게는 라이딩 코스로 애용되는 한편 지난 2005년 이후부터는 전국 유일의 맨발 마라톤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역의 소주 업체인 (주)선양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5월 계족산 임도 13km를 활용해 맨발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마라톤 대회는 내외국인 5000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등산을 하거나 임도 트래킹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