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이 내 인생을 바꿨다 |
9월 14일(화)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이상하게 병원 출입이 잦았다. 위가 아파서, 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무슨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피곤해서 병원을 찾았다. 그때마다 의사들 하는 말이 하나같았다. 운동 부족이라고. 운동이 부족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거니까 틈틈이 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진짜 큰 병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나이가 있어서 더 위험하다며 운동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참 고마웠다. 하지만 운동이라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내 평생 운동이라곤, 어려서 동네 아이들한텐 두들겨 맞고 엄마 성화에 못 이겨 합기도 도장 한 달 다닌 것 하고,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동네 헬스장 한 달 다니고 그만둔 게 전부다. 내 성격에 뛰고 차고 던지고 들고 하는 이런 것들 딱 질색이다. 그런데 운동을 하라니, 대체 무슨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선뜻 맘이 내키지도 않았다.
운동하고 담 쌓고 산 내가 '자출족'이 되기까지
그러다 떠올린 게 자전거다. 자전거라면 한 번 맘을 붙여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도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올려놓기까지는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아침저녁으로 거울 앞에 설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오는 걸 보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전거 출퇴근을 감행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든 판에 자전거라니. 그걸 타고 동네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에 올라서면 마치 사자 우리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자칫 잘못하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때 바로 다음날로 자전거 출퇴근을 때려치우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전거 출퇴근을 그만둘 수 없었던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사실은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병원 문턱을 넘나드는 게 더 무서웠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권해보고 싶은 게 있다. 대장내시경이다. 그거 한 번 받아보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 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너 이래도 운동하지 않을래, 뭐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장내시경이 어때서, 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 있다. 알고 가면 재미없다. 대장 비우고, 머릿속까지 말끔히 비우고 가야 하늘이 두 쪽이 나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평일 자전거출퇴근에 이어, 주말엔 자전거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도 힘들었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40㎞를 달리는 데 하루 8시간이 걸렸다. 해질 무렵 파김치가 돼서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왔다. 그날의 여행이 그저 몸이 고된 걸로만 끝났다면,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처음 시도한 자전거여행으로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인생 처음 맛보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2년 전 1㎞도 걷지 않았는데, 15일 동안 1700여㎞ 달렸다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장거리여행을 떠났다. 5일 일정으로 한반도 육지 최남단 땅끝까지 내려가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장거리 여행을 감당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약했고, 사전 지식과 준비도 부족했다. 결국 3일이 지나,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지경이 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길에 있는 동안엔 참 행복했다. 그 단 3일만으로도 나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다시 1년이 지난 날, 국도를 따라 도는 전국일주 여행에 나섰다. 1년 전에 실패로 끝났던 일로 해서, 과연 전국일주 여행이 가능할지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땅끝을 찍고, 부산을 돌아, 강릉을 거쳐 대관령을 넘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 15일이 걸렸다. 그때 달린 거리가 총 1700여㎞다. 하루 100㎞ 이상을 달렸다. 결과를 보고, 나 자신도 무척 놀랐다. 2년 전의 나는 1㎞도 걸어 다니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 2년이 지나 15일 동안 1700여㎞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게 대수롭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내겐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그 후로는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 도는 자전거 전국일주를 꿈꿨다. 해안선 여행은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는 자전거 전국일주 코스 중에 최장거리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상 더 긴 거리는 없다. 그리고 해안선 여행은 그 어떤 여행길하고도 비교할 수 없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해안선 길이는 총 5620km다. 그나마 1910년 이후 간척과 도로 공사 등으로 일부 해안선을 곧게 편 결과 1900㎞나 줄어든 거리다. 이 해안선을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로만 따로 재어보자면 약 4000㎞가 나온다. '리'로 환산하면 1만 리나 되는 거리다. 이것도 순수하게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달렸을 때의 얘기지, 해안선 주변의 마을이나 관광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는 그 거리가 예상 밖으로 더 길게 늘어날 수 있다.
내년이면 쉰, 늦지 않았다 고로 달린다
마음이 아무리 굴뚝같아도 선뜻 마음을 정하기 힘든 여행이다. 하루 100㎞씩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도 꽉 찬 40일. 자전거여행 중에 발생하는 이러저러한 변수를 고려하면, 인간이 쇳덩어리가 아닌 이상 적어도 50일 이상은 걸리는 여행이다. 사실 시간을 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이런 저런 조건을 다 따지자면 막상 떠나기 어렵다.
내 나이 이제 내년이면 쉰이다. 늙어가는 걸 문자 그대로 피부로 느낀다. 더 늦기 전에 떠난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자전거여행을 시작했다면, 지금쯤은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행히 자전거여행 경험이 있어 온갖 장비를 새로 구비하는 것 외에, 두 달간 지속되는 여행을 준비하는 데 특별히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앞으로 길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다양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자전거여행에는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과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여행을 앞둔 오늘 밤 살짝 긴장이 되는 것 또한 숨기기 어렵다.
여행기는 가능하면 그날 있었던 일은 바로 그날 밤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도착 지점에서 전원을 공급받기 어렵다거나, 너무 늦은 밤 여행을 마치게 돼서 글을 쓰기 힘든 형편이 아니라면, 큰 무리가 없을 듯싶다.
완주가 목표의 전부는 아니다. 완주와 더불어 여행지에서 마주치게 되는 풍경과 여행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죽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내 몸무게 66kg, 짐은 줄이고 줄여서 총 15kg이다. 짐에는 노트북, 카메라, 텐트 등이 들어 있다. 텐트를 가져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비상용이고 실제 잠자리로는 주로 민박이나 여관을 이용할 예정이다. 옷가지는 여름과 가을 옷 위주로 준비했다. 11월 이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조금 걱정이다. 내 나름 대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내일(15일)은 서울 길음동 집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선 다음 해가 지기 전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는 마을에서 1박을 할 예정이다.
해병대 허가 받지 않으면 '출입 불가'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 서울에서 경기도 강화읍까지
9월 15일 (수)
첫날, 출발이 순조롭다. 생각했던 것보다 몸이 가볍다. 몸 상태 최상이다. 이런 상태라면,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여행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자전거 역시 무엇 하나 크게 나무랄 것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15kg이 넘는 짐을 싣고 달리는데도, 그 무게를 느끼기 힘들 만큼 부드럽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 자전거와 몸과 짐이 거의 하나가 된 느낌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이렇게 순조로운 출발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무언가 전에 없던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다.
한 가지, 짐을 싣고 난 뒤 자전거 무게 중심이 훨씬 뒤로 밀려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무게 중심이 안장 받침대 부위에 가 있다. 그 바람에 자전거를 들어 올리는 일이 수월치 않다. 게다가 앞바퀴를 살짝만 들어 올려도 자전거가 뒤로 넘어갈 것처럼 위태롭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넘어갈 때는 주의를 하는 게 좋겠다.
내가 여행용으로 준비한 자전거는 산악자전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악자전거는 애초 짐을 싣는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산악자전거 중에는 아예 짐받이를 장착할 수 있는 장치를 생략한 것도 있다. 이 산악자전거 역시 누군가 짐을 실을 수도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자전거든 다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피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여행용 전문 자전거를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런 자전거들은 또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니 저러니, 그게 어떤 자전거든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를 여행용으로 임시변통하는 수밖에 없다.
짐을 하나하나 나누어 쌀 때는 몰랐는데 그 짐들을 모두 자전거에 올려 싣고 나자 한 손으로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마지막에 텐트를 추가한 게 한계를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자전거 무게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30kg이 넘을 듯싶다. 이대로 갑자기 자전거를 들고 뛰어야 하는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자동차들을 점잖아졌지만, 위험요소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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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문인 북악터널을 넘는다. 도시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수백 미터 고갯길이다. 평소보다 한 단계 낮은 기어로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페달을 밟는다. 처음부터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마라톤을 뛰는 기분으로 끝까지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터널을 빠져나가는 사이, 이마 위로 땀이 주르륵 흐른다. 날이 꽤 선선해졌는데도, 여름 한 낮에 자전거를 탈 때만큼이나 주체하기 힘든 땀이다. 북악터널 끝까지 큰 힘 들이지 않고 올라간다.
어떻게 보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순조로운 여행이다. 나와 함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조차 오늘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점잖다. 그새 자전거를 대하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의식에도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 경적을 울리는 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좋은 현상이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서로 통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해도, 도로 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전거를 위한답시고 자꾸 새로운 자전거도로를 놓으려고 하는 것보다 기존에 만들어진 도로를 가능한 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동차들이 점잖아졌다고 해서 위험한 요소들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로 위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김포는 경인아라뱃길, 김포한강신도시 건설 등으로 상당 구간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런 길은 갓길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과 수시로 맞닥뜨릴 수 있다. 주의를 기울여 극히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
해병대의 허가를 '득'하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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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논바닥에 가로누운 벼까지 제 스스로 알아서 베어주고 낟알까지 다 알아서 거두어주는 콤바인이 고마울 뿐이라는 말이 왠지 씁쓸해 보인다. 농사를 짓는 게 오히려 더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농사짓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농부들이 있다. 농사를 그만두기를 권하는 정부가 있고, 수확의 기쁨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농부가 있는 나라,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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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교를 건너서는 바로 오른쪽으로 360도 방향을 꺾는다. 해안선 쪽으로 다가가면 바다 너머 문수산이 바라다 보이는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철책을 따라가는 자전거도로가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언제 또 다시 이렇게 한가한 길을 달려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철책에 붉은 패널이 여러 개 붙어 있다. 야간 주정차 금지, 사진 촬영 금지, 간첩 침투 사례가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주의 내지는 경고용 패널들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무언가 가슴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철책선을 따라간 자전거는 검문소 앞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선다. 연미정에서 내려다봤을 때, 자전거도로가 검문소 너머로 이어지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혹시나 해서 접근했는데, 역시나 경비병이 앞을 막아선다.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통과가 불가능하단다. 앞서 동막마을에서도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되돌아 나왔고, 역시 이곳에서도 발길을 돌려 세워야 할 판이다. 사전에 해병대의 허가를 '득'하지 않는 한 출입 '불가'다.
수많은 유적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화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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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강화읍으로 방향을 바꾼다. 검문소에서 강화읍까지는 지척이다. 가는 길에 마치 어느 민속마을에라도 온 것처럼 오래된 성문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강화산성의 동문인 망한루다. 그 문을 통과하면서부터 강화도가 역사적으로 꽤 많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강화군청 뒤로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 궁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용흥궁은 조선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잠시 머물렀던 거처를 보존한 곳으로, 마을 안쪽에 일반인들이 사는 건물과 함께 마주보고 서 있는 게 독특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조한 건물로 외양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따랐고 내부는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을 차용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 왕조가 몽골 침략에 대항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후 39년 동안 사용한 궁궐이다. 조선시대에는 동헌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내부에 외규장각 건물이 들어서 있다. 고려궁'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궁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을 모두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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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는 정비 공사중이고, 성공회 강화성당은 예배당 문이 잠겨 있다. 용흥궁은 규모가 작은 데다 다른 시설이 너무 많이 들어차 있다는 느낌이다. 이들 유적은 솔직히 종교나 사적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몇 세기씩 격차를 둔 유적지들이 같은 구역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꽤 인상적이다. 시간이 있을 때 산책 삼아 천천히 걸으며 돌아볼 만하다.
강화읍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무렵, 몇 군데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자 어느새 해가 지려고 한다. 하루 해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강화읍에 숙소를 정하고 서둘러 땀에 전 옷가지들을 빨아 넌다. 오늘 하루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80.75km.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당한 거리다. 내일은 강화도 해안선을 일주한 다음, 다시 강화대교를 넘어 본격적으로 서해안을 따라 내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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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장'
여행 첫날이 상당히 많은 걸 좌우한다. 첫날 느끼기 시작하는 고통이 여행 끝까지 가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여행을 그만두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 역시 마찬가지다.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대부분 그 부분에서 고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점검이 필요하다. 틈틈이 주행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연습 주행 과정에서 내 몸의 어디가 불편한지를 파악하고, 자전거 위에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 경험에 장거리 여행에는 무엇보다 안장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안장의 높이와 위치가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장거리 여행 중에 반드시 고통이 따라온다. 자전거 전체 크기를 조정할 수 없다면 안장만이라도 내 몸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자전거라면 최소한 한 달 이상 꾸준히 페달을 밟아줄 필요가 있다. 공장에서 갓 나온 자전거는 제품 출고 당시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결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브레이크가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생기는 소음이라든가, 갑자기 하중을 받기 시작한 기어 변속 케이블이 장력을 잃으면서 변속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히 사용해보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런 부분들을 세세하게 바로잡아 놓는 게 좋다.
개떼에 둘러싸여 결국 헬멧을 벗었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 강화도 강화읍에서 황산도까지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 농로에 들어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끔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차례 헤맸다. 그래도 비포장 길은 나름 운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닷가 갯벌에 제방을 쌓고 그 위로 길을 낸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런데 이 길이 비가 내리던 때 곤죽이 된 상태로 차들이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울퉁불퉁 난장판이 되어 있다. 그나마 산악자전거를 타고 왔기 망정이지, 미니벨로나 사이클을 타고 왔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뻔했다.
길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과감히 진입했다. 가다 못 가면 돌아가면 되지, 정 힘들면 끌고서라도 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나머지, 결국 하루를 더 강화도에서 묵게 됐다. 운치 얘기를 했는데, 길이 너무 험해 그런 거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갯고랑 깊은 뻘을 보면서, 머릿속에 자꾸 선지가 떠올랐다. 한 점 뚝 떼서 자글자글 국을 끓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물게 상쾌한 아침... 시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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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에서는 잘 자고 일어났다. 드물게 상쾌한 아침이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때만 해도 어제에 이어 오늘 또 하루도 순조로운 여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서는 무언가 허전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곳을 관리하는 아저씨를 만나서는 강화도에서 고인돌 유적지를 가꾸고 보살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양념 삼아 들었다.
강화도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 내 앞에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걸어갔다. 눈여겨 볼 것이 탁자식 고인돌 1기뿐이지만, 그 앞에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 드물고, 안내소도 없고 문화해설사도 없던 예전의 썰렁한 유적지가 아니다. 강화도에는 모두 150여 기의 고인돌이 산재한다.
고인돌 유적지 앞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대식 건물 한 채가 들어서고 있다. 강화읍 갑곶리 강화대교 근처에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이 옮겨올 자리란다. 고인돌축제가 개최되는 10월 말 개관 예정이라는데, 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강화도 서쪽 해안 최북단에 있는 창후리 선착장까지 유쾌한 여행이었다. 도로가에 포도나무가 즐비했다. 포도가 제철인지 갓 딴 포도를 상자에 담는 주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도로 위로 싱그러운 웃음소리와 달콤한 포도 향기가 넘실거렸다.
창후리 선착장 앞에서는 한 어르신에게서 사진병으로 군대에 다녀온 자식 이야기를 들었다. 지나가는 객을 붙잡고 자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르신이 남 같지 않다. 그때 아주 잠깐,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강화도 사람들의 이 친근한 인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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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후리 선착장에서 다시 군인과 마주쳤다. 선착장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긴 설명에 들어갔다. 그의 말에 민간통제선, 사진촬영금지, 사전교육 등의 용어가 들어 있다. 나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같은 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군인이 안쓰러워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주고 뒤로 물러섰다. 여기서 교동도 들어가는 배를 탄다. 섬 주민이 아닌, 일반인들은 '사전교육'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창후리 어판장 좌판에는 마른 새우가 풍성했다. 모두 그곳 어부들이 직접 잡아 말린, 순수 국내산이다. 한동안 그곳에서 주민들이 온갖 잡다한 바다 생물 사이에서 잔 새우를 골라내는 작업을 지켜봤다. 콩알을 세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나서는 됫박에 담아 파는 수만 마리 새우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저 새우 한 마리 한 마리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새우 한 마리 하찮게 볼 일이 아니다. 등 굽은 새우 뒤에 등 굽은 어민이 있엇다.
'사생결단' '스릴만점' 본방은 농로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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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즐겁다 싶었던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자. 앞서 얘기한 농로와 비포장 길이 바로 창후리 선착장 부근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길을 못 찾아 3km 가량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잘못 든 걸 깨닫고 다시 되돌아갔다. 내가 한낮 땡볕 아래서 같은 수고를 두 번 되풀이한 건, 그곳에서 무언가 색다른 풍경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농로와 비포장 길에서 시간을 지체한 일은 앞서 얘기한 대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바닷가 제방 위 '비포장 길'에서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하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그냥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사생결단 스릴만점 자전거여행의 본방은 '농로'에서 벌어졌다.
비포장 길에서 내려와 농로에서 유유자적 길찾기 게임을 하고 있을 때다. 농로에도 막다른 길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한 무더기의 개똥을 발견하고 일순 긴장했다. 설마 여기에까지 개들이 드나드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깟 개똥이 무서워 도망갈 내가 아니었다.
막다른 길임을 알고 돌아설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개떼가 출몰했다. 비로소 근처에 다 쓰러져 가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잡동사니에 파묻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런 막다른 길에서 나 홀로 개떼와의 조우라니, 참 볼썽사납게 됐다. 자전거를 탄 나를 발견한 개들이 맹렬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돌려 개 무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장딴지를 물어뜯을 기세다. 피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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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섰다. 지금까지 개에게 쫓긴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오늘처럼 개떼에게 둘러싸이기는 처음이다. 검은 놈, 흰 놈, 바둑무늬가 있는 놈, 다리가 짧은 놈, 몸통에 비해 머리가 유난히 큰 놈, 쓰레기 더미 위로 머리만 달랑 올려놓고 눈치를 보느라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 참 다양한 구성 인자를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나마 녀석들 모두가 하나같이 덩치가 작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한 놈이 내 퇴로를 막는 걸 보고 재빨리 헬멧을 벗어 들었다. 여차하면 헬멧이라도 휘두를 생각이었다. 헬멧을 손에 든 게 효과가 있었던지 내 뒤를 막고 선 놈이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한 풀 기가 꺾인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따라오면 다시 멈춰서고, 그러다 몇 발 다시 뒤로 물러서고 하면서 녀석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 싶을 때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되돌아 나오는데, 그 길 여기 저기 개똥 투성이다. 여기가 자신들의 구역임을 확실히 해둔 셈인데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예전에 '개주인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자전거 추격자임을 자임하는 개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글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을 겪고 나니 정말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누렁이가 내 다리에 주둥이를 들이대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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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낙조마을을 지나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마주쳤다. 언덕 위로 가까스로 올라섰을 때, 앞에 목끈이 없는 덩치 큰 누렁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농로에서 당한 일의 재판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언덕 아래 역시 급경사였다. 언덕 아래로 질주하는 자전거여행자를 따라올 개는 없다.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걸 본 누렁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달려왔다. 이때 겁먹지 않고 대범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누렁이가 내 다리에 주둥이를 들이대려고 하는 찰라, 다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다행히 부딪치지 않았다. 녀석도 내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마지막 순간에 몸을 움츠렸다.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왔다. 뒤도 안 보고 달아났다. 도대체 누가 저런 덩치 큰 개를 도로에 풀어놓고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 한참 달려와서야 녀석의 콧중배기를 걷어차지 못한 걸 후회했다. 강화도에는 유난히 풀어 키우는 개들이 많아 보인다. 다 좋은 일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개를 좀 더 잘 관리해야 하지 않나? '반려견'이 '짐승'이 되어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사진으로도 100% 다 잡아내기 힘든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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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의 백미는 선수선착장에서 바라다 본 바닷가 풍경이었다. 선수선착장에 서서 바다 건너 외포리가 건너다보이는데 그 풍경이 가히 절경이었다. 무슨 조화 속인지 바다 위로 옥빛 물띠가 길게 지나가고 있었다. 서해 바다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물빛이다. 외포리 마을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외포리를 둘러싼 산과 바다와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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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리 선착장에서 바라다본 갯벌 풍경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해가 지면서, 갯벌을 뒤덮은 함초가 금가루라도 뿌려놓은 듯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100% 다 잡아내기 힘든 장면이다. 그 모두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풍경이다. 보는 사람마다 감정도 다르다. 언제 또 같은 풍경을 보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마침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던 건 큰 행운이다.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 유일의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완전히 물이 빠진 뒤였다. 모래사장이 바닷가에 좁은 띠를 형성하고 있다. 바닷물은 보이지 않고 갯벌만 끝 간 데 없이 바라다 보일 뿐이다. 뻘을 적실 물은 있어도, 몸을 담글 물이 없다. 그런데도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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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송림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닷바람이 무척 서늘하다. 더위를 충분히 식히고도 남는다. 이럴 땐 바다에 들어섰다 뻘 범벅이 되느니, 차라리 바람으로 멱을 감는 게 더 깔끔하고 시원할 수도 있겠다.
강화도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섬이 둘이다. 동감도와 황산도로 모두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둘 다 무척 작은 섬이다. 동검도에는 자전거 타기 좋은 해안도로가 있다. 마을 중간 안쪽 길을 지나 서쪽 해안으로 내려가면 된다. 동검도에서는 어떤 길이든 남쪽 끝으로 내려가지 않는 게 좋다. 막다른 길인 데다 언덕이 높고 가팔라 되돌아 나오는 데 무척 힘이 든다.
동검도보다 더 작은 황산도는 섬 전체가 음식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 활어회마을이 형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들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난 서더리탕을 참 맛있게 먹었다.
강화도 동남쪽에 언덕이 꽤 많은 편이다. 황청리에서 외포리로 넘어가는 언덕이 비교적 길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동안 수고한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 선수선착장에서 선두리선착장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다만 그냥 죽으라는 법이 없어서 고개가 높은 만큼 경치도 뛰어나다.
해안선 여행에 해안선이 걸림돌이 될 줄이야!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4] 강화 황산도에서 인천 월미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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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금)
안개 자욱한 아침이다. 온 세상이 뽀얀 안개로 뒤덮여 있는 게 자전거타기 참 좋은 아침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침나절엔 선선한 가을 날씨를 보여주지만, 한낮엔 여전히 짱짱한 여름날이 계속되고 있다. 안개가 덮여 있을 때, 부지런히 달리는 게 좋겠다. 안개가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다. 해안을 따라 일정 거리를 두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 시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강화도에 들어선 이후로 내가 둘러본 '돈대'와 '보'와 '진'만 해도 열 개가 넘는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엔 동쪽 해안의 연미정에서 초지진까지 강화외성이 해안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숙종 때까지 내성, 외성, 12진보, 53돈대를 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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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침 황산도를 떠나 강화도의 자랑거리 중에 하나인 해안 자전거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강화대교를 향해 올라간다. 그 길을 가는 도중에 광성보 높은 문이 언덕 위에 우뚝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서 보기에도 꽤 웅장하다. 마치 서울의 광화문을 강화도 해안가 언덕 위로 옮겨다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냥 지나치기 힘든 풍경이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격전지다. 이곳에서 강화도에 상륙한 미국인 병사들과의 백병전이 있었다. 결과는 참혹한 패배로 끝났다. 격렬한 전투 끝에 조선군 대다수가 숨을 거뒀다. 주변에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가 있다. 강화도 여러 돈대 중에는 용두돈대를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여타 돈대와 다른 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이 특출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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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와 주변 돈대들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한 청년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자전거를 타고 오다 넘어져 뒷드레일러(기어변속장치)가 부러졌다며 육각렌치를 빌려달란다. 무릎에 찰과상을 입은 게 영 남의 일 같지 않다. 나 역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몸을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지워질 날이 없다. 다행이 육각렌치가 효용이 있어서, 당장은 자전거가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 수리를 끝냈다.
강화대교를 넘어가기 전, 더리미마을 앞 강화대교가 멀리 올려다 보이는 곳에 선착장이 하나 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작은 선착장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라다보는 바닷가 풍경이 색다르다. 강화대교 아래 새우잡이배 대여섯 척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에 사부작이 앉아 있다. 마치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다 잠시 쉬어 가는 새의 형상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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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얼굴이 갯벌만큼이나 검은 빛을 띤 어부를 만났다. 그의 말이 얼마 전 내린 폭우로 강(한강과 임진강)에서 '잘피'가 진뜩 떠내려 와 그물을 내리지 못하고 있단다. 이런 때 그물을 던져 봐야 잘피만 잔뜩 걸려 올라오고, 그물만 망가지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의 낚시대에도 계속 풀잎이 따라올라 와 애를 먹고 있다.
잘피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거나 어디 한쪽 구석으로 몰리면 그때 다시 새우잡이를 나갈 수 있다는데 그때가 언제쯤일지는 알 수 없다. 강에서 일어난 일이 바다에도 영향을 미친다. 멀리 강 상류에서부터 떠내려 온 풀들이 바다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바다 생태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에 고깃배를 피하게 된 바다 속 생물들이 일정 기간은 자신들의 성장과 번식에 전념할 수 있다. 당장 조업을 중단해야 하는 어부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 그 역시 더 큰 수확을 위한 예비기간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바다나 인간이나 휴지기란 게 필요한 법이다. 그러면서 바다가 더 풍성해지는 게 아닌가.
강화도에 내 발을 잡는 유적지가 너무 많다. 자연히 여행 일정이 조금씩 뒤로 미뤄지고 있다. 강화도를 제대로 알고 가려면, 적어도 3일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너무 서둘러 강화도를 떠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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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교를 넘어서는 곧바로 김포시 해안가에 진을 친 덕포진과 대명포구를 찾아간다. 덕포진은 해상의 군사 요충지로 배를 타고 한강이나 임진강으로 접근하는 외적을 포를 쏴서 막는 기능을 수행했다. 마주보는 곳에 강화도의 초지진이 있어 강화해협을 지나가는 외적에 협공을 가할 수 있었다. 이곳 역시 초지진이나 광성보와 마찬가지로 신미양요를 겪었다. 덕포진 역시 광성보의 포대 진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덕포진 가장 안쪽에 손돌목 묘가 있다.
강화대교에서 초지진까지 내려가는 길은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를 택했다. 처음엔 농로를 개척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농로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농로 한가운데에서 추수를 돕는 트럭에 막혀 되돌아 나와야 했다. 어제 한동안 농로에서 헤맨 기억도 있고 해서 바로 도로로 들어섰다.
대명포구에 최근(지난 8월) 함상공원이 들어섰다. 해병대 상륙함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2006년 퇴역한 운봉함을 군사 체험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함상공원답게 내부 관람 시설은 최상이다. 하지만 특별히 눈여겨볼만한 대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월남전에 7회나 참전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대명포구에 게와 새우젓 등속을 사러 온 사람들이 북적인다. 평일인데도, 여느 시장의 주말 풍경 같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정신없이 바쁘다. 사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을 치르려고 하고, 파는 사람은 생물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할 때 팔아넘기기 위해 애를 쓴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번잡한 어시장을 만났다. 대도시에 가까운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명포구는 육지의 최북단에 있는 포구다.
초지대교에서부터는 해안가 철책 아래 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런데 도로가 만들어진 지 꽤 오래된 탓인지, 2차선 도로에 갓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로가 차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게다가 길가에 잡풀이 무성하고, 아카시 같은 나무들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자전거를 타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도로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길을 어떻게 빠쟈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승용차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스쳐 지나갈 만한 공간이 생기는데, 대형버스나 덤프트럭 같은 것이 지나갈 때는 대책이 없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 여러 차례 지나갔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되돌릴 방법도 없다.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풀잎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얻어맞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데 그나마 30여 분을 달린 후부터는 교통 정체로 길가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서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도로 위에 서 있는 차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사생결단의 순간을 여러 차례 맞이했다. 이 길의 대부분은 공사 구간에 속한다. 도로가 엉망진창인 구간도 상당하다.
해안가 길이라고 해서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에서 낭만은 주워 먹으려고 해도 없다. 바다는 철책과 언덕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바닷가 공단 구역을 가로질러 지나가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한마디로 자전거를 타기 힘든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할 이유도 없는 길이다.
여기에서 꼭 해안선을 고수해야 하냐는 문제에 봉착한다.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달리다 보니, 비록 길은 있어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 어려운 길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러저러하게 자전거를 타기 좋지 않은 요소들이 있는데도 꼭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자칫 잘못하면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 모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안선을 포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길은 수만 갈래로 도처에 깔려 있다. 그중 어느 길을 가야 할지를 경정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 길이 자전거여행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것은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직접 가봐야 안다. 지도가 가진 맹점이 길의 유무를 그려 넣은 것 외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거기에 관광지나 주요 이정표를 표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보는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길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자전거여행자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보는 전혀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갓길이 있는지 없는지만 알 수 있어도 꽤 도움이 될 텐데 기대난망이다. 공사중 표시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지도 자체가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지도를 절대적으로 과신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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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월미도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엔 바닷가에 서서 하염없이 검은 밤바다를 응시하던 청춘들이 지금은 놀이기구에 올라타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는 거다.
어젯밤 밤늦게 너무 긴 사설을 풀어놓느라 기록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걸 잊었다. 어제 내가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87km다. 오늘 달린 거리는 77km. 누적거리 총 244km. 매일 80km 안팎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중간에 길을 헤매거나 곁길로 새는 일이 잦아 실제 거리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소래포구에서 떠올리는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
[우리나라 해안선 1만리 자전거여행 5] 인천시 월미도에서 안산시 대부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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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토)
어제는 지독히 피곤한 하루였다. 도로 위에서 날것으로 들이마신 이산화탄소의 양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과도했던 게 틀림없다. 오후 9시가 넘어 숙소로 찾아들었을 때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기사를 작성하다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를 졸았다. 정말 까무러칠 것처럼 졸렸다. 그래도 손은 계속 컴퓨터 자판에 올라가 있었다.
말인지 소인지 알 수 없는 글을 대충 끄적여 놓고 바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그 사이 써놓은 기사마저 날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때가 오전 2시. 오전 5시 30분경에 잠깐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기사를 완성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시계를 보고는 30분만 더 자고 일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뜬 게 오전 8시였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은데 그새 2시간 30분이 흘렀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켰다. 늦어도 9시 전에는 송고를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 시간을 내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일로 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진 편집까지 끝마치는데 1시간이 더 걸렸다. 사진을 기사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자꾸 프로그램이 다운이 돼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기사를 송고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때가 오전 10시. 늦어도 너무 늦었다.
비로소 씻고 닦고, 있는 짐 몽땅 챙겨서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핸드폰이 내 발목을 잡았다. 지난 밤 분명히 머리 옆에 두고 잤는데, 그 놈이 간다만다 소리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짐을 죄 뒤져보다 없어서 침대 밑까지 살펴봤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할 수 없이 카운터에 내려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부탁했다. 그제서야 그 놈의 핸드폰이 침대 밑에서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로 시커먼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군가 아는 체를 해줘야 그때 가서 겨우 입을 여는 그 맹한 놈이 어떻게 해서 저 혼자 그 어두운 침대 밑까지 기어들어갈 수 있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숙소를 나올 수 있었던 시간이 오전 11시였다. 한순간 맥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열일 다 제쳐두고 먼저 식당을 찾았다.
딱 '50%'만 딴나라 느낌이 나는 송도국제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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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한없이 느리게 달렸다. 기왕 늦은 거 빨리 가봐야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냥 이렇게 가는 데까지 가봐서 해가 떨어질 무렵에 그냥 아무 데서나 편히 쉬어갈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주말이 아닌가? 아무리 여행 중이라도 주말은 주말답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제2경인고속국도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해안산책로가 놓여 있어, 서둘러 페달을 밟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 먼저 가자 쫓아오는 차도 없고, 왜 그렇게 느려 터졌냐 좀 더 빨리 가자 재촉하는 동료 여행자도 없었다. 그늘이 보이면 서고, 풍경이 그럴 듯하다 싶으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실은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하면서 한없이 느리게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한낮이라서 그런지 송도국제도시 가기 전 아암도해안공원 앞 갯벌에 망둥어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참 한가한 풍경이었다. 한편으로는, 발목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곳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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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공원이 끝나는 데서부터 송도국제도시가 시작된다. 인천에서는 지금 송도, 영종도, 청라지구 등 3군데에서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그중 어제 내가 먼지를 잔뜩 들이마시면서 지나온 공사장 구간이 바로 청라지구다. 이들 신도시는 2020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려면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송도국제도시는 국제업무, 지식기반산업을 중심으로 IT, BT 등 첨단산업이 들어설 예정이란다. '첨단'자가 들어간 걸 보면, 도시도 왠지 그 자체 최첨단을 가고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일단 외양은 '그래 나는 너희들하곤 좀 달라'하는 티가 역력하다.
네모반듯하게 서 있는 게 시대에 뒤떨어진 건축 공법임을 강조하고 싶었던지, 대부분의 건물이 약간씩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조금 삐딱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보기에는 꽤 그럴 듯하다. '멋지다'는 느낌보다는 '거 참 신기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도시 한가운데 파란 물줄기가 흐른다. 간척지로 만든 땅에 인공호수라도 꾸민 것일까? 어디서 오는 물인가 했더니, 서해에서 끌어와 3번인가 정수 과정을 거친 바닷물이란다. 최신식 건물 사이로 흐르는 파란 물이 이색적이다. 그 위로 유람선인지 수상 택신지 알 수 없는 배 한 척이 지나간다. 배 위에서는 주변에 건축 중인 건물들을 설명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100%는 아니고 딱 50% 딴나라(유식하게 말해서 이국적인) 느낌이 나게 만드는 묘한 풍경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지는 최신식 최첨단 건물들이라고 하니까, 한 번쯤 다녀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나야 이제 다 늙어서 50%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때 묻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겐 미래를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망둥어... 내 목도 바짝 마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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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국제도시에서 소래포구까지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 길 오른쪽이 상당 구간 철망으로 가려져 있다. 길이 단조로워서 조금 지루할 수 있다. 소래포구에서 월곶포구까지 가는 길 역시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소래포구에서 내륙 쪽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해안 산책로가 나온다.
그곳에 주말이라 망둥어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난간에 바짝 달라붙어 있다. 더러는 산책로 한쪽에 텐트를 치고 장기전에 돌입한 사람들도 보인다. 낚시도 하고 즉석에서 매운탕도 끓여 먹고, '나 한잔 했어'하는 행복한 모습들이다.
망둥어란 놈들 참 불쌍하다. 강화도에서도 그랬고, 아암도해안공원에서도 그랬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마다 죄 망둥어만 낚아 올린다. 낚싯줄에 꿰여 짱짱한 햇볕에 꾸들꾸들 말라가는 망둥어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 목이 다 바짝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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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가 월드컵경기장이라면, 월곶포구는 동네 축구장이다. 소래포구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샴쌍둥이처럼 걸어 다닌다. 내 배에 앞선 사람의 등이 붙어 있다. 게들이 발가락 꼼지락거릴 시간도 없이 팔려나간다. 새우들이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이 팔려나간다.
그러고 보니,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게들도 다닥다닥, 새우들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전어를 회쳐 먹을 자리가 없어 시멘트 바닥에 비닐 돗자리 하나 깔아놓고 먹는다. 전어 먹다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 하느라 너무 너무 바쁘다. 이 모든 게 월곶포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두 포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심한 격차를 보이게 된 것일까? 월드컵이니 올림픽이니 하는 대회를 치른 국민들이라서 그런지 님 향한 일편단심 하나는 모두 국가대표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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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어울려 사는 맛은 예전만 못한 소래포구
지금의 소래포구는 예전의 소래포구가 아니다. 회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맛은 예전만 못하다. 그렇다고 월곶포구가 그 맛을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슴이 아프다. 물론 소래포구가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주말에 꽃게철, 전어철을 만난 데다 다음 주에 추석이라는 대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가한 맛은 월곶포구가 한결 더 낫다.
아픈 가슴을 안고 오이도로 향했다. 오이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조개구이다. 그리고 얼마 전 오이도에 또 하나 유명한 물건이 생겼다. 빨간등대다. 그냥 말이 등대고, 등대 모양을 한 전망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개구이와 빨간등대, 누가 만들자고 했는지 젊은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적당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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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후 6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태양의 붉은 기운이 서쪽 하늘 한 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숙소를 찾아 짐도 풀고 몸도 풀어야 할 때다. 그런데 오이도에 잠자리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여관 하나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가정적인 줄은 몰랐다.
할 수 없이 12km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로 진입한다. 오늘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참 많이도 알게 된다. 시화방조제에 밤낚시를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이 갯벌을 서성이는 칠게만큼이나 많다. 그래서 해가 다 져서 나 혼자 어두컴컴한 방조제 위를 달리는데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대부도에서 만난 고3 자전거 라이더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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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에 들어서서 한 무리의 자전거여행자들을 만났다. 4명이 한 팀이 돼서 십리포까지 간단다. 오늘 아침에 서울 집을 떠나 여기까지 왔다는데, 그 목소리가 십리포가 아니라 만리포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이 자신감이 넘친다.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실업계 고3이란다. 고3이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여행을 다닌다니, 참 맑고 깨끗한 정신을 가진 친구들이다.
짐받이에 텐트와 코펠이 매달려 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내 나이 17살 때 친구들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왜 자전거를 타고 가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친구들 참 씩씩하다.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다. 젊은 게 좋긴 좋군. 십리포까지 가서 그 이후에 더 내려 갈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지 생각해보겠다고, 나는 이제 또 어디에 가서 몸을 뉘여야 하나 고민인데, 이 친구들 그런 걱정은 아예 하나도 없어 보인다.
오늘 주행거리는 약 70km. 속도계를 바깥에 두고 와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내일 저녁 다시 정확한 수치로 바로잡겠다. 내일은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복잡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코스가 지렁이들이 지나다닌 흔적 마냥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연도교로 연결된 섬만 4개, 아예 육지로 변한 섬까지 치면 그 수를 알 수 없다.
온종일 비가 내린다, 다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겠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6] 대부도에서 영흥도까지
9월 19일 (일)
언제부터 내리는 비인지는 모르겠다. 오전 9시 무렵, 구봉도를 향해 가는 길, 비가 내린다. 빗줄기가 굵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견딜 수 있는 한, 가는 데까지 가볼 생각이다. 가방이란 가방에 모두 노란 방수포를 뒤집어씌운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햇볕 따가운 날이 계속됐다. 덥다고 구시렁거렸다. 그랬더니, 오늘 드디어 비가 내린다. 혹시 내 기도가 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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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도 들어가는 길 입구에 '구봉도유원지'라고 쓴 아치형 간판이 비를 맞으며 찾아오는 나그네를 반긴다. 구봉도는 대부도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손가락처럼 길게 뻗어나간 모양의 지형을 하고 있다. 구봉도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건 낚시터다. 지도상에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땅에 이렇게까지 많은 낚시터가 몰려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낚시터마다 낚시꾼들이 타고 온 차들이 꽉 들어차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의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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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도에 종현어촌체험마을이 있다. 마을 앞 바닷가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이 펼쳐져 있다. 비가 와서 바다 끝이 더 아스라하다. 갯벌 한가운데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다. 갯벌이 얼마나 넓은지 먼 바다로 나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검고 작은 그림자로만 남아 있다.
구봉도에 들어서 얼마 안 가 횟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를 발견했다. 녀석의 목에 끈이 묶여 있지 않다. 강화도에서 겪은 일도 있고 해서 움찔했는데, 그 녀석 나를 그냥 쳐다보는 둥 마는 둥한다. 아주 심상한 표정이다. 그곳 말고도 두세 군데에서 더 개들과 마주쳤지만, 특별히 자전거여행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놈이 없었다. 그중에는 심지어 꼬리를 감추며 달아나는 놈도 있었다.
제주도에 갔을 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었다. 육지에서 만난 개들과 달리, 제주도의 개들은 자전거여행자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기까지 했다. 구봉도의 개들이 그렇게까지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한결 달관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무엇이 강화도에 사는 개들을 그렇게 사납게 만든 것일까? 자전거여행을 계속 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참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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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도를 벗어나 선재도를 향해 간다. 대부도 서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선재도와 영흥도로 가는 표지판이 자주 나타난다. 선재도와 영흥도는 모두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얼마 가지 않아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진다. 아무래도 쉽게 그칠 비 같지가 않다. 하늘이 온통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이 길엔 갓길이 없거나 좁은 구간이 많아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자전거에서 내려 비를 긋거나 쉴 만한 공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재대교,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비가 오는데도 선착장까지 내려가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잿빛 하늘 아래 파란색 페인트칠을 한 배들이 파도 위에서 마치 요람이라도 타듯이 출렁이고 있다. 출렁이는 게 파도와 배뿐만은 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바닷가로 내려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 온몸에 비를 맞고 서 있는 내 마음까지 출렁인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서늘한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바닷가를 돌아나가자 다시 영흥도로 가는 길과 만난다. 이제 비가 그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아예 접어버린다. 잠시 멈추는 듯싶다가는 다시 퍼붓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내린다. 이제는 그만 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앞으로 다시는 하늘에다 대고 햇볕이 너무 뜨겁다느니 어떻다느니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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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도는 매우 작은 섬이다. 이제 선재도에 들어섰나 싶었는데 어느새 영흥도다. 빗속에 모습을 드러낸 영흥대교가, 잿빛 하늘 아래 위엄이 어린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이 절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고 찾아온 우매한 중생들을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천왕상을 연상시킨다. 나그네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영흥대교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다. 영흥대교에 인도가 있고 차도 옆으로는 좁은 갓길이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인도 바로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검푸른 바다다. 내 키에 비해 난간이 너무 낮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할 수 없이 찻길 옆 갓길로 접어든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매번 고민이다.
영흥대교 아래로는 큰 배들이 지나가게 되어 있다. 다리 중간 부분이 크게 원을 그리며 솟아 있다. 언덕이 높아 속도를 내기가 만만치 않다. 영흥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수협직판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영흥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비가 와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 직판장을 벗어나면 바로 진두선착장이다. 이곳 역시 선착장에 낚시꾼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흥도는 자전거동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중간 중간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코스가 있고, 바닷가 풍경을 바라다보며 자전거를 타는 묘미를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비교적 싼값에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도 있다. 영흥도 서쪽 해안도로가 일품이다. 일요일인데도 오가는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전거를 타고도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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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에 십리포해수욕장과 장경리해수욕장이 있다. 모두 모래사장이 넓고 고와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주말을 맞아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낸 관광객들이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채 백사장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오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아이들도 있다.
장경리해수욕장에는 유난히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바닷가 해변 가까이 있어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해변 소나무 숲 아래 텐트를 친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화로를 피워 고기를 굽는 냄새가 구수하다. 오토캠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실태를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량에 싣고 온 장비들이 어마어마하다. 비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텐트를 걷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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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를 맞아서인지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더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장경리해수욕장을 나와 영흥화력발전소를 찾아간다. 영흥화력발전소 곁에 에너지파크가 있다. 어떻게 보면 비가 오는 날 찾아가기 적당한 곳이다. 영흥화력발전소는 총 3340MW의 발전설비를 갖췄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주로 인천 지역에 공급된다.
이곳에 가면 바닷가에 화력발전소들이 들어서는 연유를 잘 알 수 있다.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 역시 잘 설명이 되어 있다. 놀이 삼아 즐길 수 있는 체험 시설들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기 좋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전기가 철탑 다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시를 밝힌다. 한국인의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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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뒤섞여 에너지파크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물벼락을 맞았다. 4륜구동차 한 대가 앞서 가는 차들을 추월하기 위해 노란색 중앙선을 넘어오더니, 반대편 차선 갓길을 달리고 있는 내게 물벼락을 안기고 달아난다. 순간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급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사람이든 차든 에너지가 너무 넘쳐도 안 좋다.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에너지가 좀 더 유용한 목적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너지파크에서 산성비가 내리는 이유도 살펴봤다. 화석 연료를 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나 공장이 질소 화합물이나 황 화합물을 배출하면서 빗물을 산성으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차를 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산성비를 내리게 하는 것으로 모자라, 내게 도로 위의 각종 오염물질로 뒤범벅이 된 흙탕물을 끼얹고 지나간 당신 역시 결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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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섬'이라고 꼭 쪽박을 차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7] 영흥도에서 제부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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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월)
지난 14일, 여행을 떠난 후 벌써 몇 개의 섬을 건너갔다 왔는지 잘 모른다. 육지에서 가까운 서해안의 섬들은 이제 더 이상 섬이라고 부르기 힘든 실정이다. 육지와 섬 사이에 연륙교가 놓이고, 다시 그 섬과 또 다른 섬 사이에 연도교가 걸쳐 있어서, 굳이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떠오르는 섬 이름만 들어봐도 강화도, 동검도, 황산도, 구봉도, 선재도, 영흥도, 메추리섬, 제부도까지 대략 8개 정도다. 나머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고, 또 내가 미처 몰라서 가보지 못한 섬들도 있을 법하다. 그 섬들을 일일이 돌아보는데 예상 밖으로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자연히 육지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섬은 섬인데, 섬이 아니다
아무리 작은 섬도 일주를 할라치면, 직선거리의 3배 가까이는 가야 하기 때문에 육지에서 이동할 때와는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서해안은 방조제를 제외하고는 직선이라고 할 만한 해안선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여행에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다.
점점 더 많은 섬들이 '섬'으로 남아 있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얼마나 더 많은 섬들이 육지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섬이 섬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켜갈 수 있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면, 섬을 육지로 만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여러 섬을 거쳐 오면서 몇몇 섬사람들에게서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육지와 섬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높이면서 생기는 생활의 편리성 못지않게, 외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지는 데서 생기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사람 관계가 지나치게 물질화되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지역의 자산이 중앙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마저 있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는 게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있다는 말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를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놓였지만, 그래서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됐지만,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섬을 잘 모르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섬에 있으면서 섬이 그리워지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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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뚫고 영흥도에서 선재도 거쳐 대부도로
어제 저녁 일기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창 밖을 내다보면서 바로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다.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이다. 방 안에서 눅눅한 냄새가 진동한다. 어젯밤 비에 젖은 물건들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곰팡이가 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오전 10시 30분, 빗발이 가늘어지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젖은 속옷을 입고, 젖은 양말과 젖은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게 오늘 내게 닥친 운명이다. 여전히 도로 바닥에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갓길이 좁아 물웅덩이를 피해 가는 게 쉽지 않다. 핸들을 부여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영흥도에서 다시 선재도를 거쳐 대부도로 되돌아 나온다. 그 사이 비가 그친다. 우비도 벗고, 가방에서 방수포도 벗긴다. 맨살에 와 닿는 바닷바람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 아직 해는 비치지 않고 있다. 자전거타기에 딱 좋은 날씨다.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만이라도 열심히 인생을 즐겨야 한다. 언덕을 쏜살 같이 내려가는데 마치 겨드랑이 아래로 날개가 돋는 기분이다.
비가 그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밑바닥이 드러난 갯벌 위로 낚싯대를 들고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어디를 가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만약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이들 섬을 채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한 곳의 바닷가에 그냥 주저앉았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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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온 천지가 포도밭...하지만 올해 농사는
대부도는 대표적인 포도 생산지다. 대부도에서는 포도밭이 아닌 땅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어디를 가나 포도를 손질하고 갈무리하는 사람를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가는 물론, 산기슭에도 포도밭이 있고, 심지어 바닷가마을에도 포도밭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포도가 이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인 소득원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 작황이 너무 좋지 않다. 최근 3주 가까이 비가 내리는 바람에, 포도 알이 물을 잔뜩 먹어 터져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생산량이 뚝 떨어지면서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았다. 포도뿐만이 아니다. 올해 과일농사가 전반적으로 안 좋다.
올 추석 선물로 한우세트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일 값이 너무 높게 치솟은 까닭이다. 그 피해가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어 안타깝다. 대부도의 포도는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다고 한다. 짠물이 밴 바닷바람이 포도의 당도를 높여준다. 지금 대부도에서는 포도가 한철이다. 대부도에서는 지금 포도를 먹거나 사가는 게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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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가는 길에 '메추리섬, 쪽박섬' 이정표가 눈에 띈다. 섬 이름이 이채롭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섬들인지 호기심에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가는 길에 언덕이 많아 애를 좀 먹었다. 게다가 이정표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곳임이 분명하다.
메추리섬은 메추리 형상을 한 섬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메추'라는 이름의 마을을 뜻하는 섬이었다. 섬까지 제법 긴 연도교가 놓여 있는데, 철조망으로 가로막은 선착장이 있는 것 외에 특별히 방문객들의 발길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외지인'들이 갯벌에서 소라와 게를 잡거나, 낚시를 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다.
메추리와 관련 없는 메추리섬, 쪽박과 관련 있는 쪽박섬
메추리섬을 나와 왼쪽으로 마을 안길을 더듬어 들어가면 쪽박섬이 나온다. 쪽박섬은 예상대로 '쪽박'처럼 생긴 아주 작은 바위섬이다. 쪽박섬을 앞에 둔 해변가의 한 매점 주인이 뭐 이런 것까지 보려 왔냐며 웃는다. 그러면서도 날이 맑은 날에는 제법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오늘은 오전에 비가 온 탓에 사람이 별로 없다고 아쉬운 표정이다.
주변이 좀 어수선한 것 말고, 경관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쪽박섬이 있는 해변가에서 영흥화력발전소와 영흥대교와 선재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메추리섬과 마찬가지로 물이 빠진 갯벌에서 소라와 게를 잡을 수 있다. 물이 들어오면, 그때는 낚싯대를 드리우면 된다. 쪽박섬이라고 해서 꼭 쪽박을 찰 일은 없을 것 같다.
쪽박섬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데 파리가 연신 날아든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파리떼 달라붙는 걸 그냥 바라만 보는 게 예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주인양반이 파리채를 들고 나와 파리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던 어부들 사이에 때 아닌 파리 논쟁이 붙는다.
왜 올해는 그 많던 모기가 사라지고 대신 파리가 더 늘었냐는 얘기다. 답? 그들 말에 따르면, 올해 비가 너무 많이 와 모기알은 다 쓸려 내려갔는데 파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답이다. 그러면 파리알은 왜 그대로 남아 있을까? 답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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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와 전곡항을 지나 제부도까지 내쳐 달린다. 탄도는 시화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육지가 된 섬이다. 얼마 전 앞바다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지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 바다 위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로는 이것이 국내 최초다. 이전에는 하루 두 차례 앞바다에 떠 있는 누에섬까지 바닷길이 열리는 광경을 보러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풍력발전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바닷길이 열릴 때 누에섬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누에섬 위에 등대전망대가 있고, 그 위로 펼쳐지는 낙조가 탄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곳에는 순전히 낙조를 바라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낙조를 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날이 좋아야 하는데 그런 날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서 누에섬 일몰이 망가졌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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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전곡항 역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에 요트와 보트가 접안할 수 있는 대규모 마리나 시설이 들어섰다. 자치단체에서는 이 지역을 '해양 레저 산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이 지역은 앞으로 해양 레저 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제부도 들어가는 길이 여느 섬과 달리 매우 이채롭다. 하루에 한두 차례 바닷길에 열리고, 갯벌 위를 얕게 덮은 시멘트 도로 위를 달려서 제부도까지 들어간다. 도로 옆으로 물이 찰랑거릴 때는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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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인도나 갓길이 없었는데 얼마 전 도로 왼쪽에 새로 인도를 깔았다. 길바닥에 맷돌을 깔아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좀 울퉁불퉁한 게 흠이지만 제부도까지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어 그 무엇보다 좋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꼭 한 번 지나가 볼 만한 길이다.
제부도에 들어서면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 내일은 강풍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어쩌면 내일이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조건을 갖춘 날이 될 수도 있다. 비가 오는데 강풍이 안 불거나, 강풍이 부는데 비가 안 오거나 해서 일기예보가 적당히 빗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 일정은 제부도에서 마감한다. 오늘 달린 거리는 57km, 누적거리는 총 423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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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8] 제부도에서 평택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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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주인의 호의는 이번이 처음
9월 21일 (화)
어젯밤 내 기도가 통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살피는데 바람은 강하게 불지만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 언제 또 비가 내릴지 몰라 서둘러 짐을 쌌다.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신발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다시 또 젖은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게 끔찍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짐을 바라바리 싸들고 내려오다가 모텔 입구에서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제 이곳에 들르면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무척 신기하게 바라보던 분이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거냐,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으냐, 언제까지 여행을 할 거냐며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해준다.
마지막 질문에는 거짓말을 했다. 두 달을 한 달로 줄였다. 쉰이 다 돼가는 남자가 혼자서 두 달 동안이나 여행을 한다고 하면, 혹시 집 나온 사람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보름 여행하고 집에서 쫓겨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다. 사실 한 달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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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가 돼서 잘 쉬다 간다고 인사를 했더니,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양갱 2개를 꺼내 내게 건넨다. 뜻밖이다.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식당 주인들의 호의는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어도, 모텔 주인의 호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남자 혼자 모텔을 찾아드는 걸 의아하게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양갱을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용기가 없어서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한다. 참 존경스럽다"고. 양갱을 받아들고, 난 참 부끄러웠다. 숙박 손님 뒤치다꺼리에 1년 365일 단 하루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숙박업계 주인으로서야 나처럼 장기여행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 부러울 수도 있지만,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다는 데는 너무 황송해서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양갱 2개에 이렇게 마음이 뿌듯해 보기도 드물다. 하늘이 돕고 사람까지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니까, 페달이 훨씬 가볍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강풍인들 장애가 될까? 아무 걱정이 없다.
진흙탕 길... 아, 또 속았다
제부도 모세길을 달려, 얼마쯤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러다 궁평리 이정표가 나오기 전에 해안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얼마 안 가 철조망이 나오더니, 그 아래로 비포장 진흙탕길이다. 한동안 망설였다. 그 길이 여행 둘째날 강화도에서 만났던 길과 유사하다.
그때 두 번 다시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길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길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열악하다. 길의 절반이 물웅덩이다. 흙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다. 자전거바퀴가 흙 속에 파묻히면서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에서 자꾸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렇게 또 속았다. 게다가 이 길에서는 철조망 지지대를 넘기 위해 전체 30kg 가까이 되는 자전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 이 길은 처음부터 입구에 자전거 출입금지 표지판을 걸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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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서 고약한 식물을 만났다. 좁은 길을 뒤덮고 있어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풀이 스친 자리가 따끔따끔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다봤더니, 옷이며 다리에 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쌀알보다 조금 작은 풀씨가 가시를 박고 옷과 살갗에 달라붙은 것이다. 풀씨가 박힌 장단지가 몹시 쓰라리다. 그 풀씨를 하나하나 뜯어내느라, 또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다. 풀씨를 그냥 잡아 뜯으면 가시가 남아 있게 돼 꽤 조심스럽게 들어내야 했다.
해산물 백 가지 맛을 볼 수 있다는 '백미리어촌체험마을'
궁평항 가기 전에 백미리어촌체험마을에 들렀다. 해산물이 풍부해 백 가지 맛을 맛볼 수 있다는 마을이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방문한 차와 오랜만에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놀러온 차가 마을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난 한 가족은 명절 때마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한다고 했다.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들어서면서 식당 안에 활기가 넘친다. 3대가 모였다. 조상이나 후손이나 모두, 한가한 한가위가 있어 행복한 하루다.
궁평항 역시 귀향길에 나선 차들로 북적이고 있다. 화성방조제가 생기기 전엔 한가한 어촌에 불과했던 항구가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규모의 관광지로 변했다. 항구에 들어가려는 차와 이제 관광을 끝내고 나가려는 차가 뒤섞여 몹시 혼잡하다. 주차장 한쪽에선 불우이웃돕기 트로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방파제는 강풍에 높은 파도가 일고 있는데도 낚싯대를 꼬나들고 있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방파제 아래에서는 즉석에서 회를 떠주는 사람들이 바쁘게 칼을 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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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방조제는 궁평항에서 시작된다. 방조제 왼쪽으로 자전거도로가 일직선으로 나 있다. 처음엔 방조제 오른쪽으로 올라섰다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감기면서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자전거도로 끝이 소실점으로 사라져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매향리', 매화 향기 가득했던 땅... 휴, 한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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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오른쪽으로 2005년까지 미군 폭격장으로 쓰였던 농섬이 보인다. 55년여 동안 사격과 폭격에 시달린 나머지 지금은 섬 머리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섬의 일부가 사라지는 동안 주민들이 당한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화성방조제를 나오면 오른쪽으로 또 다시 철조망 아래 비포장 길이다. 휴, 한숨이 나온다. 형편 무인지경의 길을 보고도 미련 없이 돌아서지 못하는 내 심정 아무도 모른다. 이 길 역시 흙탕길이다. 그나마 이전길들보다는 좀 나은 게 물웅덩이가 덜하고 땅이 비교적 단단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 길을 빠져 나오면 미군 사격장 반대 투쟁으로 유명한 매향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매화 향기 가득했던 땅이 전쟁 이후 미군의 사격장과 폭격장으로 쓰이면서 55년 가까운 세월을 미군의 사격과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 사이 오폭 등으로 사망한 주민만 20여 명, 굉음에 청력을 잃거나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게 된 사람은 부지기수다. 사람만 고통을 당한 게 아니라, 가축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그 사이 언론은 주민들의 고통을 알고도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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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투쟁이 일어난 건 1980년대 말이다. 그 이후로 험난한 투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한국 땅에서 미군의 힘은 무소불위다. 미군 기지를 없애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고, 미군 기지를 이전하는 것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구속과 투옥이 반복된 끝에 실로 55여 년 만에 사격장을 이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사이 매향리 앞바다에 떠 있는 섬, 농섬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했다.
매향리 마을 입구 도로가에 포탄 껍데기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주민들이 농섬 등지에 버려진 포탄을 일부 수거해 쌓아놓은 것이다. 전쟁 시기도 아닌 때, 마을 주변에 이런 포탄이 나뒹굴고 있는 게 섬뜩하다. 아마도 매향리의 과거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읽힌다. 나도 모르는 새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간간히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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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2리 마을 앞 공터에서 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기 직전이다. 마을 주민 한 분이 "명절이니 신나게 놀아야 한다. 아무나 와서 놀아도 된다"며 한껏 들뜬 표정이다. '아무나' 와서 놀아도 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 청년들이 탁자와 의자를 나르느라 부산하다. 어른들의 표정은 넉넉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천진난만하다. 마침내 매향리에도 평화가 찾아온 것인가?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마을이 매향리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향리를 지나 남양만방조제를 건넌다. 이 길은 평소 화물차가 많이 지나다니고 도로 폭이 좁아 꽤 위험한 편이다. 그런데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차량 한 대 찾아보기 힘들다. 그 긴 길을 오로지 자전거 한 대가 외롭게 지나가고 있다. 방조제를 지나면서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점점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있다. 조만간 큰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비 핑계로 하루 편히 쉬어 가면 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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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를 넘고 나서 상당히 길을 헤맸다. 길 안내 표지판이 상당히 아리송하다. 우회전해서 한참을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오고 다시 아산만방조제 표지를 재확인하고 나서 직진했다가 이번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해군2함대사령부 정문과 마주쳤다. 그 무렵 때맞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 한 번 시원하게 쏟아져서 좋은데, 이번에는 길을 잃고 막다른 길의 차량 진입 장애물 앞에서 맞는 비라 짜증이 솟는다. 바닷속이든 빗속이든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다. 마침 그 길을 가는 공사장 인부가 있어 길을 물었다. 그 분들 내가 참 딱하다는 표정들이다.
해가 지기 전에 아산만방조제를 건널 생각이었는데, 결국 해가 져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평택호에 머무른다. 평택호관광지 주변에 횟집들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느 집 하나 비 맞은 외로운 나그네를 불러 세우는 집이 없다. 오로지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댈 뿐이다.
숙소에 들어와, 물폭탄에 서울 도심이 마비됐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그 사이 내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도 여러 통 걸려 왔다. 지금은 비구름이 경기 남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평택 역시 호우주의보 지역에 포함이 되어 있다. 차라리 비가 올 바에, 아침 일찍부터 퍼부었으면 좋겠다. 비를 핑계로 만사 제쳐두고 하루 편히 쉬어 가면 좀 좋은가? 오늘 달린 거리는 85km, 누적거리 508km이다.
사라지는 성구미포구, '일품' 간재미무침 어쩌나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9] 평택호에서 왜목마을까지
9월 22일(수)
비가 오면 하루 쉬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날이 흐린데도 비는 내리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주섬주섬 다시 짐을 싼다.
오늘은 방조제만 3개 이상을 넘어야 한다. 방조제라는 게 대체로 다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까지 오는데 이미 여러 개의 방조제를 건넜기 때문에 이때쯤이면 아무리 멋지고 웅대한 방조제라고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기 힘들다. 더군다나 오늘 지나쳐야 할 방조제들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지나치게 불친절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어서 다소 지루하고 힘든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해안 일대가 대개 그렇듯이, 오늘 여행을 하게 되는 당진 지역 역시 부곡국가공단 등이 들어서 있어 해안을 따라 대규모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안전에 유의하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 이 길에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을 자랑하는 포구와 항구들이 꽤 있다. 중간 중간 원기를 회복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쉬어갈 만하다.
아산방조제를 넘으면 바로 충청남도다. 단순히 도를 나누는 경계를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확연히 다른 지역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방조제 위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파른 방조제 비탈을 걸어서 오르는데 조금 위태롭다.
방조제 위로 자동차 한 대는 거뜬히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 있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방조제를 건너서 바로 우회전하면 삽교천방조제까지 가는 해안길이 나온다. 그런데 그만 달리는데 열중하느라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한참을 가서야 도로 오른쪽 아래로 붉은색 아스팔트를 깐 산책로가 있는 걸 발견한다. 그곳으로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내려간다. 이 산책로가 삽교천방조제까지 이어진다. 삽교천방조제 역시 아산방조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두 곳의 방조제를 지나오고 나서, 사진으로도 아산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
삽교천방조제에서 내려서면 바로 삽교호함상공원이다. 공원에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나온 가족들이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차례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삽교호함상공원 주변으로 횟집 같은 음식점들이 꽉 들어차 있다. 추석 명절인데도 문을 열고는 명절 나들이를 나선 손님들을 맞느라 무척 분주하다.
해안가 공원이 제법 잘 꾸며져 있다. 하지만 공원 안까지 들어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공원 끝 쪽에 해안으로 들어서는 좁은 길이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에 자갈이 잔뜩 깔려 있다. 그나마 흙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 길로 맷돌포구 같이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포구들이 계속 나타난다. 크기가 작아서 더 정겨운 맛이 있다. 하지만 이 포구들은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이 일대 일부 지역에서 조만간 준설 및 매립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간척으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포구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제 이 포구들도 곧 그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더 더욱 짠한 느낌이다.
이 길은 얼마 가지 않은 지점부터는 시멘트 길로 바뀐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온 탓에 길 위로 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물 위를 달리느라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 좁은 해안도로는 서해대교와 행담도가 건너다보이는 음섬포구까지 계속된다.
음섬포구에서 돌아나와 한진항까지 가는 길은 부곡국가공단을 왼편에 두고 달리는 해안도로다. 추석을 맞아 대부분의 공장이 휴업을 한 까닭인지 도로 위로 운행 중인 화물차를 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공단이라고 여기지 못할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다. 가끔 공장 굴뚝 위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완전히 공장 가동을 멈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달리 쉬어갈 만한 곳도 없어 쉬지 않고 페달을 밟는다. 한진항을 지나 안섬포구까지 여전히 공단 해안도로다. 이 지역에서는 안섬포구를 눈여겨 볼 만하다. 공단 해안도로 끝에서 '안섬포구길'로 들어서면 마을이 하나 나오고, 그 마을 끝 높은 언덕을 내려가면 왼쪽에 방파제가 바다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나간 한적한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좀 힘들지만 공단 지역을 벗어나 잠깐 쉬었다 갈 만한 곳이다. 포구를 끼고 있는 마을이 꽤 안락한 느낌을 준다. 산비탈을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간재미무침 일품' 성구미포구도 사라진다
안섬포구를 나오면 석문방조제 가는 길이다. 석문방조제를 넘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포구가 하나 더 있다. 성구미포구다. 간재미무침으로 유명한 곳이다. 포구가 꽤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포구 바로 앞에 거대한 제철소 설비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그 설비가 아니었다면 한쪽에 검은 바위를 끼고 있는 포구가 더욱 아름다웠을 법하다.
포구로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온다. 포구에 작은 어시장이 있어 그곳에서 신선한 회를 맛보거나 포장을 해서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포구도 조만간 볼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앞에 있는 제철소가 포구가 있는 곳까지 시설을 확장할 예정이다.
조만간 성구미포구를 볼 수 없는 날이 온다. 이미 반쪽이 난 포구가 이제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한때 한국의 10대 미항 중에 하나로 불리던 성구미포구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습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성구미포구를 돌아서 나오는 기분이 씁쓸하다. 간재미는 산란기를 맞는 봄이 제철이다. 가오리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상어가오리가 정확한 명칭이라는 말이 있다.
성구미포구를 나오면 바로 석문방조제다. 석문방조제는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을 잇는 방조제다. 길이 10.6km로 상당히 긴 방조제다. 그런데다가 내내 찻길을 달려야 해서 그런지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진다.
방조제 비탈이 너무 가파르고 높아 짐 실은 자전거를 끌고서는 도무지 위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 할 수 없이 갓길을 달려야 하는데 갓길 위로는 또 불법 주차 차량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다. 위험천만한 풍경이다. 할 수 없이 도로 위를 차들과 함께 달린다.
자전거가 방조제에서 차도로 달린다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뒤에서 갑자기 뭐가 덮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길긴 또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나중에는 '지루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했을 정도다. 무섭다기보다 지루해서 어서 이 길이 끝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석문방조제의 단조로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무렵, 장고항에 도착했다. 장고항은 실치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항구다. 이른 봄, 뱅어 새끼인 실치가 장고항 주변으로 몰려들고, 이때 잡아서 먹는 실치회가 맛이 그만이라는 소문이다. 실치는 5월이 되면 뼈가 굵어져 더 이상 회로 먹을 수 없고 포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흔히 먹는 뱅어포다.
왜목마을의 명품 일출, 장고항 노적봉 덕분
석문방조제에서 장고항 넘어가는 길이 조금 길고 가파르다. 호흡을 가다듬는 게 좋다.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길 왼쪽에 우뚝 선 바위섬이 노적봉이다. 왜목마을에서 보면 이 노적봉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이 절경이다.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매년 연말 엄청난 수의 인파가 왜목마을로 몰려든다. 노적봉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장고항인데 그 덕을 순전히 왜목마을이 보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다. 장고항 선착장 너머로 국화도로 들어가는 연락선이 접안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장고항에서 왜목리로 넘어가는 해안도로가 꽤 가파르다. 언덕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도로를 돌아 올라가면 그 위에 좁고 어두운 터널이 뚫려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여서 자전거가 들어설 공간이 거의 없다.
터널 앞에 멈춰 서 있다가 다른 차들이 다 지나갈 무렵 미등을 켜고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언덕을 올라오느라 기어를 너무 저단에 놓아두는 바람에 중심을 잡고 서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다. 터널은 만든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중심 사고를 가진 사람이 틀림없다.
해가 질 무렵 왜목항에 도착했다. 왜목리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을 하고 있다. 너른 바다에 '왜가리 목'처럼 튀어나온 까닭에 그런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백사장이 꽤 넓고 곱다. 이곳의 백사장은 원래 갯벌이었던 것을 3년 전 모래를 갖다 부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인공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백사장과 그 앞에 떠 있는 작은 배들과 그 너머 푸른 섬들마저 원래 모두 오래 전부터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왜목항 바다 건너 왼쪽에 보이는 큰 굴뚝이 당진화력발전소다. 오늘 달린 거리는 75km, 총 누적거리는 583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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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10] 당진군 왜목마을에서 서산시 대산읍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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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목)
백사장 앞 바닷가에 고깃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왜목마을을 나서면 바로 대호방조제다. 만조 때라서 그런지 방조제 오른쪽, 발 아래로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바다 가까이 낮은 둑 위를 달리는 셈이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에는 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겠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 좋은 길이다. 방조제 끝 부분에 위치한 도비도휴양단지에 다가갈 무렵 방조제 아래 검게 드러난 갯벌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비도휴양단지로 휴식을 취하러 나온 관광객들이다. 도비도휴양단지에서는 간단한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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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갯벌에 깨알같이 박혀 있다. 돌투성이 갯벌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내려가 봤다. 호미로 열심히 갯벌을 긁어대더니, 그릇에 조개 몇 개를 주워 담는다. 바지락이다. 갯벌이 돌투성이라 걸음을 옮겨 딛기도 쉽지 않은데, 쪼그려 앉은 채 돌 틈 사이로 호미질을 하는 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우동 그릇만한 플라스틱 그릇에 바지락을 넘칠 듯 담은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상당히 오랜 시간 작업을 했을 것 같은데, 이제 겨우 30분 정도 됐단다. 30분을 같은 자세로 호미질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새 바지락을 이렇게까지 많이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의외다. 하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이 잡을 수 있는 양으로 결코 적지 않다. 몇 걸음 곁의 아저씨는 힘만 들지 잡히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바지락을 캐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도 눈에 띈다. 꽤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다. 단순히 바지락을 많이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바지락을 잡는 행위를 놀이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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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앉아 조개나 게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수렵 및 채취 본능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최첨단 산업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은 여전히 원시적인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니 관광객들 등쌀에 갯벌이 망가지느니 마느니 하는 말은 인간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설득력이 거의 없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갯벌을 망치는 주범은 전혀 다른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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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방조제를 건너면 서산 지역이고, 바로 서산에서 가장 큰 항구라는 삼길포항이 나온다. 삼길포항 앞바다를 바다낚시용 좌대들이 좍 덮고 있다. 마치 낚시꾼들의 천국 같다. 삼길포항은 선착장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직접 회를 떠주는 걸로도 유명하다. 비교적 싼 값에 회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마침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선착장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삼길포항의 상징은 '우럭'이다.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우럭등대가 있고, 해마다 10월 초면 우럭축제가 열린다. 날이 선선해지는 그때가 우럭이 한참 물이 오를 때다. 올해 축제는 10월 1, 2, 3일, 3일 동안 열린다.
삼길포항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길포항 건설공사'로, 2011년 말이나 돼야 공사가 끝난다. 그때가 되면, 최신식 항구로 거듭날 모양이다. 서해안의 포구와 항구가 자꾸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게 무척 아쉽다. 하지만 나 또한 옛날 사람이 아닌데, 무슨 수로 변화를 거부할까?
삼길포항 안쪽으로 대산산업단지까지 가는 해안도로가 나 있다. 절벽 아래로 그늘이 매우 짙은 길이다. 삼길포항으로 유람을 나온 관광객들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항구에서 사온 회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산산업단지 역시 고요하기 짝이 없다. 추석 기간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자전거여행을 하는 나로서는 엉뚱한 대박을 맞은 셈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공장 지대를 이렇게 유유자적 자전거를 달릴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추석 같은 명절이 한 해에 두세 번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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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산업단지에서 독곶리와 벌천포(벌말)를 찾아 나선다. 두 곳 모두 서쪽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지형이 마치 거대한 게가 바다 위로 집게발을 들어 올린 형상이다. 지형이 독특하게 생긴 만큼 찾아가는 길 또한 쉽지 않다. 또한 이 길은 언덕이 많아 몸도 상당히 고달프다.
먼저 위쪽 발가락에 해당되는 독곶리를 찾아간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도착한 곳에 의외의 풍경이 펼쳐진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외진 곳까지 음식점들이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음식점마다 가리비 굽는 냄새가 구수하다. 바닷가 끝에 조그마한 포구가 있다. 지도에도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포구다.
바닷가에 서 있는 한 할아버지에게 포구 이름을 물었다. 포구 이름이 별다른 게 없단다. 이런 곳에 이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어투다. 그래도 뭐라고 부르는 이름이 있지 않겠냐 했더니, 그냥 '황금항'이라고 하면 된단다. 바닷가 끝에 '황금산'이 있다. 아마 그 산 이름을 끌어다 붙인 것 같다.
황금항 앞이 가로림만이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이곳 역시 '개발'이 될 뻔한 곳인데 당시 개발을 지시한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숨을 거두면서 그만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그 말에 뭔가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개발이 되면 좋겠냐고 했더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단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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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 역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 고개가 너무 많아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중간에 되돌아갈까 약한 맘을 품었을까? 벌천포 선착장 또한 삼길포항만큼이나 번잡하다. 규모는 삼길포항과 비교할 수도 없이 작아 몸 돌릴 틈도 없다. 추석 마지막 날이라서 그러려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포구 역시 조만간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으로 보인다.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조력발전소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국토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비단 4대강뿐만이 아니다.
전 국토가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엄청난 개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개발이 주민들의 뜻과 다르게 진행되는 건, 분명히 그 개발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벌천포 선착장에 짠 내가 물씬 나는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내 가슴이 마치 바윗돌이라도 안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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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에서 300m 가량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벌천포해수욕장이 있다.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몽돌해수욕장이라는데, 해수욕장 입구 쪽으로만 몽돌이 구르고 있고 안쪽으로는 그저 작은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을 뿐이다. 안쪽으로는 지형상 파도가 치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모난 돌들이 서로 몸을 부딪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해수욕장은 그 어느 해수욕장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줄기 나뭇가지처럼 돋아난 지형의 양쪽에 작은 돌투성이 해변이 형성돼 있다. 폭이 약 50여 미터, 소나무 숲이 울창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쉬었다 가기 딱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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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해수욕장 안쪽으로 입구 쪽의 둥글둥글한 몽돌을 옮겨다 깔아놓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 싶은 곳이다. 하지만 이 해수욕장 역시 조만간 출입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갈고 닦으면 훨씬 더 아름다워질 텐데, 채 조탁도 시도해 보지 못한 보물을 눈앞에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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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포 가게 여기저기에 TV오락프로그램인 '1박2일' 출연진들이 남기고 간 사인이 붙어 있다.
벌천포를 나와서는 대산읍에 잠자리를 정했다. 대산읍에 다다를 무렵,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펑크를 때웠다. 수리하는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오늘 달린 거리는 65km, 총 누적거리는 648km이다. 여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 애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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